몇몇 성경 번역 이슈

1. '-시니라'의 시제

한국어 성경은 개역성경의 선례 덕분에 '-느니라, -도다, -소서' 같은 고어체가 여전히 현역이다.
그런데 창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거는 시제가 현재일까 과거일까?
'하시니라'는 형태· 통사론 상으로는 당연히 현재 시제이다!! '하셨느니라'가 과거이지 '하시니라'가 도대체 어떻게 과거 시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더 상위의 의미· 화용론 레벨에서는 '하시니라'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모두 포함하는 시제로 오랫동안 구분 없이 뭉뚱그려서 사용돼 왔다.
개역, 한킹, 흠정역 어느 역본도 모든 구절에서 철두철미하게 용언 형태소 차원의 시제 구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 악의적인 변개나 오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다.
우리말이 단· 복수나 정· 부정관사 구분을 별로 안 하고,
초록과 파랑을 별 구분 없이 '푸르다'라고 표현하고,
"A와 B의 C"만으로 "A의 C" + "B의 C"를 모두 표현한 것과 비슷하게...
그냥 한국어 한국 문화권이 시제를 엄밀하게 따지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그게 성경 번역에도 반영됐던 거다.

차라리 현대어 어미를 썼으면 '창조하셨다, 숨을 거두셨다'라고 시제가 더 분명히 구분됐을 텐데, 고어체 어미가 시제 구분이 불분명했던 편이다.
'-함, -음'도 생각해 보자. 엄밀히 따지면 '-했음, -갔음'이라고 써야 과거가 되지만 통상적으로는 일일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감, 밥을 먹음" 그냥 이렇게 써도 문맥에 따라 과거라고 통용되는 편이다.

그래서 뒤늦게 창 1:1을 "창조하셨느니라"로 바꿔야 된다느니, 기존의 "창조하시니라"만으로 충분하다느니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령, 말보회 한킹의 경우, 처음에는 '시니라'이다가 나중에 '셨느니라'라고 바뀌었다.
흠정역은 6일 창조 이전의 과거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영이다 보니 저기 시제는 절대 바꿀 생각이 없는 상태이고. (허나, 요 1:1 하나님이셨느니라 이거는 과거 시제로 개정했음)

영어 문장대로 용언의 현재 과거 시제를 철저하게 해 준 최초이자 현재 유일한 역본은 바로 바로...... 표준역이다.
가령, 요 19:30은 고어체로 번역된 우리말 성경 중에 유일하게 표준역만 '숨을 거두셨더라'이고 딴 역본들은 '거두시니라, 돌아가시니라' 등이다.
그 반면, 2장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영킹이 saith 같은 현재 시제를 쓴 곳에서는 '하시니라'이다.

이거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말 성경 번역이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개선돼 나가야 할 점인 것 같다.
마치 요한일서의 beloved를 마치 dear XXX처럼 "사랑하는 자"라고 쓰던 것을 더 엄밀하게 "사랑받는 자"라고 바꾸듯이 말이다.

우리말도 영어 영향을 받아서 100년 전보다는 단· 복수나 능동· 피동 구분을 더 엄밀하게 따지면서 하지 싶다. 그게 마냥 번역투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엄밀하게 따지지 않던 옛날 성경이 악의적인 변개나 오역을 저질렀다고 판단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2. 무엇을/어떻게

의문사 무엇(what)과 어떻게(how)는 지칭하는 영역이 언어 품사 차원에서 다르다. "이건 뭘 표현한 거야?" /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어떡하다'라는 굉장히 미묘 므흣한 단어가 있다. 그래서 같은 의문이지만 영어로는 what으로 시작하는 반면, 우리말로는 how에 가까운 뉘앙스로 표현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발생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유명한 행 16:31의 바로 앞 절.. 30절 감옥 간수의 질문을 보자.
개역, 표준, 한킹 같은 우리말 성경들은 모두 "어떡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킹 이후에 등장한 킹 계열 역본.. 흠정역 내지 표준역만이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what을 직역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문제나 위기가 생기고 난감한 상황이 됐을 때 한국어 화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이를 어쩌면 좋지? 어떡해야 하지?"이다. "뭘 해야 하지"가 아니다. 예전에 월급값 못 한 여경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오또캐스트라' 드립을 생각해 보자.
"뭘 해야 하지"는 그건 자기 신변과 무관한 업무를 인계받으면서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죠?" 아주 객관적으로나 할 만한 말인 거다.

영어는 명사 지향적이고 체언을 꾸미는 관형어가 발달해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동사 지향적이고 용언을 꾸미는 부사어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있다"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 많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영어로는 what(무엇을 명사)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말로는 how(어떻게 동작)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방문 용건을 묻는 질문조차 "어떻게 오셨습니까?"("무슨 일로"가 아니라)라고 묻는 경우가 있고, 그걸 마 동석이 어느 영화에서 "봉고차 타고. 내비 찍고 왔어"라고 동문서답 개드립을 치지 않았던가.

이게 한국어다. 이것 말고도 영어로는 come인데 우리말로는 정황상 '가다'라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고, 부정의문문의 대답도 대놓고 yes/no의 번역이 갈리곤 한다. ㄲㄲㄲㄲ

3. 챔피언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필리스틴) 장수 ‘골리앗’은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정말 유명하다. 스타의 테란 메카닉 유닛의 이름으로도 쓰였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무엘상 17장을 읽어보면 성경 기자, 아니 하나님은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다. 거의 다 ‘그 블레셋 사람’, ‘그 블레셋 사람’ 일색이다.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이건 의도적인 서사이다.
성경의 진술 방식에서 이름 언급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누가복음 “부자(익명)와 나사로”, 룻기 “보아스와 아무개(익명..)”, 그리고 다니엘서 풀무불 씬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친구 이름들의 등장 빈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곳곳에 미주알고주알 명단들이 나오는 거다. 하다못해 로마서 16장 안부 인사 대상자 명단처럼 말이다.

그 대신, 성경은 골리앗이.. 그냥 평범한 파이터, 글래디에이터, 워리어 따위가 아니라 ‘챔피언’이었다고 언급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champio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삼상 17이다. 우리말로는 대체로 ‘투사’라고 번역됐다.

오늘날이야 챔피언은 무슨 개인 단위 게임이나 스포츠의 전국 단위 우승자, 1등 타이틀 보유자..라는 뜻이 강하다. 바둑 챔피언, 20xx년도 탁구 챔피언.
그래서 “세상에서 너무 챔피언이 되려 애쓸 필요 없다. 성경에서 챔피언은 부정적인 인물인 골리앗에게나 쓰였다” 이렇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겠다만 그건 “성경에서 그림(pictures)이 민 33:52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니 각종 영화 산업들도 영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들이다~ 영화사들도 다 OOO pictures이잖아?” 와 비슷한 급으로 아주 간접적이고 영적인 적용이라 하겠다.

챔피언은 원래는 자기 고용주나 VIP를 대신/대표해서 전투나 결투에 나가서 싸우는 직업 싸움꾼..이란 뜻에서 출발했다. 성경의 용례도 1차적으로는 이거지 싶다.
골리앗 저 시절에 “블레셋 대왕배 특전사 격투기 대회 우승 타이틀”이라든가.. 무슨 태평양 전쟁 일본군마냥 100인 참수 시합 같은 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언무언가를 지키고 수호하는 사람한테도 챔피언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그 대상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친환경 전기차를 운전하는 당신은 환경 챔피언입니다” 이렇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전기차가 진짜로 완벽하게 친환경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기아 니로 CF에 나오는 환경전투사 같은..;;
글쎄, 싸이의 노래 가사처럼 음악에 미치면서 인생을 즐기는 건 무슨 챔피언인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말이다.

물론, 지키고 싸우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반인들보다 더 힘 좋고 체격 좋고 잘 싸울 것이다. 골리앗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래서 우승자라는 의미가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직업이 챔피언인 사람은 지위 내지 실력도 챔피언일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말보회 한킹은 챔피언을 그냥 투사가 아니라 ‘최고 투사’라고 번역했더라. 저런 번역은 한킹이 유일하다. 원래 의미에다가 나중 의미까지 저렇게 넣고 싶었던가 보다. 한킹은 전반적인 번역 스타일이 영킹 직역뿐만 아니라 ‘나중 의미’도 더 살리는 쪽이다 보니.. 일면 수긍이 간다.
또한, testament를 그냥 언약이라고만 옮기기는 아까워서 흠정역이 ‘상속 언약’이라고 번역한 것과 비슷한 워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킹은 testament는 그렇게 번역하지 않음)

4. 은과 돈과 재물

행 8:20 말이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네 돈과 더불어 망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행 8:20)
여기서 ‘네 돈’ 부분을 ‘돈’ 대신 ‘은’이라고 번역한 역본이 생각보다 여럿 있다. 당장 개역성경도 그렇고, NASV나 NRSV도 그렇다.

궁금해서 잠시 조사를 해 보니, 이건 원문 변개 이슈는 아니다. 변개된 계보의 성서 중에도 ‘돈’인 역본 또한 많기 때문이다.
같은 헬라어가 문맥에 따라서 은도 되고 돈도 되는 것 같다. 즉, 이건 번역에서의 바리에이션이다.
베드로는 금과 은이 아니라 유독 은과 금이라는 말을 썼는데, (행 3:6, 벧전 1:18) 이때의 은과 저기서의 돈이 같은 단어이다.

우리 한자어에서는 현금, 등록금, 계약금 등.. 금을 돈과 비슷한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금에 앞서 은이 먼저 화폐로 널리 통용됐다.
오죽했으면 돈을 보관하는 기관의 이름도 ‘은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은전 한 닢'이라는 유명한 수필도 있다. ㄲㄲㄲ

성경에 등장하는 화폐들도 거의 다 은화이다.
주님의 몸값부터 시작해서 요셉의 몸값, 사도행전 19장에서 불태운 주술 서적의 가격.. 은이다.
서양의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동양의 중국도 이런 은본위제 국가로 유명했으며, 아편 전쟁 당시에도 은이 거래됐었다.

‘네 돈’ 말고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돈’은 앞의 돈/은과는 다른 헬라어이다. 용어 몇 개를 찾아보니 이건 보편적인 ‘부, 재물’과 비슷한 맥락으로서 돈을 의미하는 것 같다.

베드로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한낱 은이나 금과 견줄 바가 아니라는 요지의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아무쪼록, 우리 같은 헬알못(?) 일반인은 은이니 돈이니 재물이니 이런 게 알쏭달쏭하면 우리의 모국어, 아니면 최소한 영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최종 권위인 킹 제임스 성경이 규정해 준 원어의 뜻을 따르면 될 것이다.

하긴,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시편 8편에서 “인간을 천사보다 약간 낮게 하시고”에 '천사'가 히브리어로 그냥 엘로힘.. 하나님/신들과 같은 단어라고 한다. 돈/은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 신, 천사 모두 가능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_=;; 하지만 이건 문맥상 하나님일 리가 없고, 신약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헬라어로 천사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들었다. 저기서의 의미는 당연히 천사가 돼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여러 주제의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성경 읽을 때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번역본을 참고하면서 다양한 의미와 다양한 관점을 학술적으로 섭렵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그런 면모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닥치고 익숙한 단일 모국어 역본만 철썩같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골수에 새겨서 "암송"하고, 일상생활에서 곧장 그 말씀이 떠오르게 하는 거.

이 둘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으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단순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헛똑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적사기 말장난 기만을 싫어한다.
이솝 우화던가? 당장 고양이가 쫓아오는데, 똑똑한 쥐는 탈출하는 방법 100가지 중에서 뭐가 지금 가장 효율적일지 짱구 굴리면서 고민만 하다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나 닥치고 달리기인지 개헤엄인지 방법을 하나밖에 모르던 평범한(?) 쥐는 자기가 아는 방법 하나만 X나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아는 건 많은데 지혜가 없고 분별력이 없고, 어느 게 나에게 당장 필요한 진리인지를 모르는 건 영적으로 바람직하게 성장한 상태가 아니다.
전자가 오히려 혼동을 야기하면서 후자의 활동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 세상에 100%라는 건 없다" 이건 유한한 자원에서 최대의 가성비를 찾는 공학 같은 세상 학문에서나 통용되는 특징이다.
그 반면,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최종 권위는 이건데 그래도 추가로 참고적으로 요렇게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도 생각하긴 했다" 이렇게 중심 절대값부터 잡고 나서 부가설명 액세서리를 참고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다. 교리에 대한 문자적 해석부터 한 다음에 영적 교훈을 넓고 다양하게 적용하듯이 말이다.

성경 말씀이나 찬송가 가사 같은 건 책을 보고 있지 않아도, 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아도 일상생활 중에 튀어나오고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찬송가라고 해서 맨날 군가 아니면 중세 장송곡 같은 식상한 멜로디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거 뭐 악보를 읽기도 어려울 정도로 정도로 박자가 너무 복잡한 2000년대 이후 CCM은..;; 과연 어렵고 힘들 때나 성령 충만할 때 누구나 쉽게 떠올려서 그대로 부를 수 있을까? 세월을 안 타고 모든 성도들이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 될 수 있을까?

그것처럼 그 좋은 영어 성경도 말이다. 영어 성경에 Believe in the Lord Jesus Christ, Rejoice in the Lord 같은 쉬운 문구만 있는 게 아니다. 성막이나 성전 설명을 영킹으로 바로 읽고 알아듣고 머리에 외울 수 있겠는가?
영어 영어 하다가 자기한테 본질적인 걸 놓치지도 말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3 08:35 2024/08/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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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성경 번역 이슈

1. 혼을 얻는 자

잠 11:30 he that winneth souls is wise.
통상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호의를 얻고 마음을 사서 다들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이런 뜻이다. 그러나 좀 더 영적으로 들어가면 이건 '전도'하는 거.. 복음 전해서 남을 회개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끌어 온다는 뜻이 된다. soul winning.

말씀 보존 학회의 한킹은 저 구절이 동사가 win이라는 이유로 "혼들을 이겨 오는 자"라고 정말 단순무식 투박하게 번역했다. =_=;;
"우리 교회는 거리설교를 통해 매년 수십 명의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 오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말도 저렇게 전투적으로 한다. 옛날 개역성경의 "강하고 담대하라"처럼 언어에 대한 비표준 확장이라고 봐야 할지.. ^^

당연한 말이지만 저건 win a prize(상을 탄다/받는다) 할 때의 win이다. 경쟁 상대를 꺾거나 제쳐서 이긴 것은 beat라고 한다.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예시이다만, "1994년 올해의 명작 게임이라는 영예를 차지하고(win) 싶은 작품이 있다면 먼저 Doom부터 제쳐야/능가해야(beat) 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세상을 이기거나 마귀를 이기는 것도 아니고 혼들을 이기는 건 뭘까.. =_=;;
그렇다고 평범하게 get obtain acquire과 아무 차이 없이 얻는다고만 하면 성이 안 차니.. '쟁취'라는 말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했다.
오, 근데 유일하게 표준역이 저기서 쟁취라고 번역했구나. 우리말 성경 중에서는 첫 사례인 것 같다.
표준역이 논란이 많은 역본이긴 하지만.. 저기서는 단어를 잘 고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I am not a prize to be won! 나는 무슨 남자들의 전리품이 아니라구요! (디즈니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의 대사. Prince Ali 노래가 끝나고 얼마 뒤에..ㄲㄲㄲㄲㄲ)

2.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말 국어에서는 형용사 뒤에 명령문이 바로 오는 게 잘못됐다면서 여호수아의 저 유명한 말 "강하고 담대하라"라든가 예수님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비문(문법에 어긋난)이라고 비판이 제기되곤 했다.
그런데 기껏 대안이란 게 훨씬 더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거추장스러워진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해져라"이면.. 어떡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벧전 1:16) 같은 구절도 있다. 표준어를 준수했다는 최신 우리말 성경들도 이 구절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놔두고 있다.
'거룩하다'도 형용사인데? 동사가 아니기 때문에 '거룩한다'라는 말이 없는 거다. 쉽게 말해 '거북하다'(불편하다)와 완전히 동일한 품사이다.

하지만 '거룩하라'라는 말이 너무 간결하고 잘 와 닿는다. "거룩해져라, 거룩하게 살아라" 이렇게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고, 저걸 그대로 그냥 성경 언어적 허용이라고 정착시키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난 그렇게 본다.
우리말은 '맞다/틀리다/맞는/알맞은'처럼 근본적으로 형용사와 동사의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새로 번역되는 우리말 성경은 현행 언어 규범을 가능한 한 따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만 절대적으로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한킹은 흠정역 같은 후대의 역본 대비, 개역성경 스타일의 간결함이 있어서 더 잘 읽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가 더 간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울나라 헌법도 생각해 보자. 1987년 개헌 이후에 맞춤법이 개정되는 바람에 지금 관점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문장(..."투표에 붙이다")이 생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헌법을 호락호락 또 수정하지는 않는다. 그건 개헌이라는 엄청난 과업이 되어 버리며, 헌법에는 무슨 위키백과 같은 '사소한 수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이 그러한데 하물며 성경 본문에도 그런 정도의 권위와 무게감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싶다.

3. help meet for him

한국어 '맞다'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드물게 형용사-동사 품사통용이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meet.
옛날 영어에서는 '만나다'가 뭔가 '만족시키다, 충족시키다' it meets the requirement으로 확장되고, 그게 '-에 적합한, 알맞은'이라는 형용사로 더 확장된 듯하다.

그게 바로 창세기 2:18에서 아담을 위한 합당한 조력자(help meet for him)라고 번역되었다. meet는 형용사이므로 "help meet - for him"이 아니라 "help - meet for him"이라고 끊는 게 바람직하겠다.

근데 저 문맥에서 조력자란 곧 '배우자'이지 않은가?
이게 얼마나 임팩트가 컸으면 helpmeet라는 한 단어가 생겨서 배필, 배우자라는 뜻이 됐고.. helpmate라는 말까지 파생돼 나왔다. 이거는 마치 비키니에서 모노키니가 나온 것처럼, 어원상 관계는 없지만(meet ≠ mate) 걍 비슷한 조어가 튀어나온 것으로 보인다.

즉, help가 먼저이고 helpmeet는 후대의 해석 내지 파생 의미이다. 그러니 성경 번역을 helpmeet로 미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력자/도우미가 1차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help는 굳이 helper이라고 하지 않아도 help만으로 어느 정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얼추 들어있는가 보다. 물론 반대로 helper이라고 해서 굳이 사람일 필요가 없고 사물, 기계가 모두 가능하다.
게다가 help me라고 외치면 "사람 살려!!"가 되니.. help가 생각보다 인간적인 단어인 것 같다.

4. God forbid? The LORD forbid?

성경에는 그냥 No를 넘어서 천부당만부당, Absolutely not이나 May it never be 같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관용구가 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이를 God forbid라고 번역했다.
성경에서 이 표현을 제일 많이 사용한 책은 로마서이다. "그럼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하리? ㄴㄴ 절대 그럴 수 없음" 이런 패턴으로 말이다.

그래서 킹 제임스 진영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반드시 God을 살려서 '하나님이 금하시리'라고 번역해야 한다" vs "아니다, 저기서 God은 원어에도 없는 그냥 영어의 관용 어휘일 뿐이다~ 저거 한 덩어리 전체가 '절대 안 됨'이라는 뜻이다" 갖고 치고 받고 싸우는 일이 많다.
본인은 이런 소모적인 논쟁에 진지하게 가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뭔가 가타부타 의견을 내려면 다음 경우도 생각해서 일관되게 적용 가능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성경엔 God forbid뿐만 아니라 God save the king (국왕 폐하 만세 vs 하나님이 울 국왕을 보우하시리)라든가 God speed (축복 인사. 요즘으로 치면 God bless you에 가까운..)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전자는 구약 성경 역사서에서 두루두루 나오는 편이지만, 후자는 요한이서에서만 딱 두 번 등장하는 희귀 관용구이다.

(2) 짤막한 God forbid 감탄사뿐만 아니라 "God forbid that ..." 이런 문장도 있다. 창세기 44장에서 요셉의 형들이 "저희가 감히 파라오님의 술잔을 훔쳐 가다니요~ 저흰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최초로 이 문장이 쓰였다. God forbid를 '하나님이 금하시리라'라고 옮기려면 창 44:7이나 창 44:17도 그렇게 옮길 수 있겠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3) 그리고 끝으로.. 성경엔 God forbid만 있는 게 아니라 the LORD forbid도 구약에 있다. "주가 금하신다"..이고, 개역성경 용어로는 "여호와가 금하신다"이다. 단, 이건 단독 감탄사는 아니고 문장 형태만 있다.
삼상 24:6, 26:11에서 다윗이 사울 왕을 해코지할 수 없다고,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람에게 내가 감히 손을 댄다니~~~ "절대 그리할 수 없다"라고 말할 때 쓰였다.
그리고 왕상 21:3에서 나봇이 아합 왕에게 조상 대대로 살아 온 땅을 처분한다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할 때도 이 표현이 쓰였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말 성경들이 God forbid의 문장형은.. "결코 그럴 수 없다"라고 옮긴 반면, The LORD forbid의 문장형은.. "주께서 금하신다"라고 옮겼다는 것이다. 개역성경 이래로 표킹을 제외한 킹 계열 역본들이 모두 동일하다. (표준역은 '하나님이 금하신다'를 첫 시도했음)

이렇게 LORD forbid와 God forbid의 번역이 달라질 만한 이유가 원어 차원에서나 다른 이유로 인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하긴, 우리말에도 딱히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식하지 않는 "하나님맙소사" 이런 말도 있고, 영어 Good-bye도 god be with you에서 유래되기는 했다고 들었다. 재채기 인사인 Bless you도 그렇고..
그리고 예전에 영국에서 찰스 3세 국왕이 즉위했을 때 국가적으로 참 오랜만에 God save the king 인사가 울려퍼졌고.. 그게 자막에서는 우리말 애국가 가사 "하나(느)님이 보우하사"처럼 번역돼 나갔었다.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지금이야 우리말 '만세'는 hooray banzai-_-라는 평범한 감탄사로 많이 쓰이지만, 원래는 국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할 때만 쓰이는 아주 존귀한 단어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 만세를 국왕 폐하가 아니라 자기 나라에다가 끌어다 쓴 삼일 운동이 정말 파격적이고 민주적인 발상이었으니 말이다.
이를 감안하면 God save the king을 "국왕 폐하 만세"라고 옮긴 건 더욱 적절한 용례인 것 같다. 영어의 God이 우리말의 만세에 대응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5. 하루살이를 걸러내나, 모기에 긴장하나

성경의 마 23:24는 대략 "이 눈깔이 썩은 가이드놈들아. 니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잘도 꿀꺽하네?" 이런 의미의 책망 구절이다. ㄲㄲㄲㄲㄲ
개념적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같은 구조이다. 그리고 본질적이지 않은 디테일에는 왕창 목숨 걸면서 진짜 큰 잘못은 슬쩍 답습하고 넘기는 부조리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저 구절에서 후반부, 낙타를 삼킨다는 말은 지구상의 모든 성경 역본들 간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전반부, strain at a gnat은 역본마다 번역이 좀 갈리는 편이다.

먼저 gnat이 하루살이냐 모기냐를 갖고 갈리는데, 이건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음 strain가 진짜 문제다. "힘주다, 끙끙대다, 애쓰다, 신경 곤두세우다"인지 아니면 '걸러내다'인지가 갈린다. 참고로 현대에 strainer라고 하면 주방에서 쓰이는 걸러내는 동그란 체를 뜻한다.

거의 모든 성경들.. 심지어 킹 계열이라는 한킹, 근본역 표준역까지 다 "하루살이/모기를 걸러낸다"라고 옮겼다. 비킹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딱 하나.. 흠정역만이 유일하게 "모기에 긴장하고"라고 옮겼다. 뭐, 이것도 '대언'과 마찬가지로 안티오크 권위역에서 처음으로 유래된 번역이다.

서로 자기 번역이 맞다고 스트롱 성구 사전이 어떻고 웹스터 영영사전이 어떻고 심지어 원어 사전이 어떻고 막 떠드는데, 내가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이렇다.

strain out도 아니고 strain at이라면
뭔가를 '걸러 내는(out)' 것보다는 '-에(at) 신경이 곤두선다, 긴장한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흠정역 측의 견해에 일면 동의한다.

하지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보자.
모기한테 왜 긴장하는데? 왜 눈 부릅뜨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난리인데?

모기가 무서워서 긴장할 리는 없다. 쬐끄맣지만 성가신 놈이 있으니까, 잡으려고, 걸러내려고 저러는 거다.
불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짜증나는 앵앵~ 소리가 들릴 때.
잡가시가 왕창 많은 생선살을 씹어먹으려 할 때.. 그 심정 말이다. =_=;;

이런 차원에서 "모기한테는 긴장하고"라는 말이 결국은 "모기를 걸러내고"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긴장하고'는 표면적인 동작이고, '걸러내고'는 본질적인 의미이다.
"선물은 넙죽넙죽 받으면서"라는 의미를 "선물만 보면 입 헤 벌리면서", "선물만 있으면 손 잘도 내밀면서"라고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키?

피터 럭크만이 저기서 at은 out이라는 뜻과 다를 바 없다고 얘기까지 했다는데.. 당연히 문법적으로야 at이 on도 아니고 어떻게 out이랑 같을 수 있냐? 저 구절에 한해서 화용론적으로 동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킹의 영어 표현을 존중해서 "모기에 긴장하고"라고 번역을 하려거들랑, 여기 긴장이 최소한 무서워서 쫄아서 긴장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옆의 성경 교사가 보충 설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저 표현이 '걸러낸다'라는 의미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두 동작을 합쳐서 "기를 쓰고/눈 부릅뜨고 걸러내면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 win을 "쟁취하다"(이겨서 얻음)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한킹이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게 아니라고 비판받는 다른 여러 표현들도 이런 식으로 해명이 가능하다.
작은 숲(외형) vs 아세라(정체, 실체)라든가, 생활방식 vs 시민권 따위 말이다. 결국은 같은 뜻이다.
차라리 의역이 지나치다고(?) 비판할지언정, 최소한 오역이나 변개는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3/24 08:35 2024/03/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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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롬 브라우저: 가끔 멍 때리면서 URL + 엔터 때려도 페이지 로딩이 안 되고 아무 동작 안 하는 버그. 아마 어디 스레드끼리 데드락이 걸린 것 같은데.. chrome 프로세스들을 몽땅 강제 종료시키고 재시작을 해야 해결된다. 열어 놨던 브라우저 창들은 다 날아가고.. 빨랑 고쳐졌으면 좋겠다.

- Window 시작 메뉴: 가끔 검색어를 입력해도 멍때리면서 아무것도 안 나오는 버그. 이거 진짜 Windows 10 초창기부터 있었고, 고쳐진 듯하다가도 지금 win11 시국에서도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프로그램 좀 똑바로 못 만드나.. =_=

- '영화 및 TV'나 클래식 Media Player가 낫지, '미디어 플레이어' 앱은 품질이 개허접이다. 슬라이더를 움직여서 동영상을 여기저기 seek하다 보면 영상이 안 나오고 먹통 되는 버그가 있다.

- Windows 배경 그림이 일정 시간 간격으로 쫙 오버랩으로 바뀔 때: 수백만 개에 달하는 픽셀이 수십 프레임을 거쳐 바뀌는 계산량 부하가 장난이 아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컴 성능이 딸리면 오버랩 프레임 수가 떨어져야지, 돌아가는 프로그램의 실행이 느려지고 랙이 걸리지는 말아야 한다!

내 철칙은.. 사용자가 직접 실행하지 않았고 백그라운드 후방에서 저절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전방 프로그램의 실행의 겉보기 성능, 특히 UI 반응성에 영향을 주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CPU 팬을 쓸데없이 돌아가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 정도의 대규모 작업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작업 진행 상황을 표시하고 취소/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는 UI가 제공돼야 한다!
무단으로 백그라운드에서 자원을 소모하는 프로그램은 비행 신고 없이 영공을 무단으로 날아가는 듣보잡 비행체와 같아서 언제든지 격추.. 아니, 강제 종료시킬 수 있어야 한다.

- 워드패드: 실행 직후 글꼴 콤보 상자를 처음 펼칠 때 딜레이가 수 초 이상 너무 길다. Windows 7 이래로 11까지도 여전하다. 수많은 글꼴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면서 미리보기 만드는 건 아무래도 스레드로 옮겨야 할 거 같은데?

- PowerPoint: Word, Excel은 안 그런데 얘만 인터넷 다운로드한 파일을 제대로 열지 못한다. alt+enter 눌러서 위험 태그를 없애 줘야 열린다. 도대체 왜..?? (2013 기준)

마소에서 만드는 PC용 앱들의 완성도가 20년 전, 30년 전만 하지 않은 것 같다.
일단 PC 앱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크게 감소했고, 그리고 인터넷 발달 덕분에 "일단 출시부터 하고 버그는 나중에 패치로 때우지 뭐~~~"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필름 카메라 시절에야 하나 하나 조준 사격으로 정말 신중하게 찍어야 했겠지만, 요즘 디카/폰카야 뭐.. 닥치는 대로 마구 갈기고 나서 제일 잘 나온 거 하나만 고르면 되지 않는가? 사고방식이 그런 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소프트웨어도 한번 마스터 디스크 만들고 패키지의 양산에 들어가면 뭔가 더 수정을 할 수 없었다. 책을 출판하는 것과 비슷해서 테스트와 디버깅을 아주 신중하게 진행해야 했다. 설명서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깨알같은 보충 설명은 프로그램 내의 별도의 readme.txt에다가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도 다 옛날 추억 관행이 됐다. ^^

* 웹 로그인 관련 불편한 거

(1) 웹사이트마다 제각각 들쭉날쭉인 비번 최대 길이, 허용되는 문자 집합과 조합 조건들 제발 좀 표준화하고 조건을 완화했으면 좋겠다.
가령, 비번을 30자~40자씩 엄청 길게 넣었다면, 숫자 특수문자 X랄 안 넣고 알파벳 대소문자만 있어도 허용해 주는 식으로.
20여 년 전에 이거 조건을 까다롭게 하자고 제안했던 어떤 아재가 지금 와서는 이거 만든 걸 후회한다고 자책했을 정도이다.

비번이야 어차피 해시값을 저장할 텐데 길이 제한을 도대체 왜 넣냐 X신같이..?? 우리는 비번을 서버 DB에다 평문 String[20] 이렇게 저장한다고 광고하는 거냐? -_-;;

(2) 로그인을 실패했으면 아이디와 비번 중 뭐가 틀렸는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아이디 또는 비번이 잘못됐습니다" 이런 막연한 말은 개인적으로 좀.. -_-;;
이거 알려준다고 해서 딱히 보안이 더 취약해지고 위험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정보보호 보안 가이드에도 뭐가 틀렸는지 구체적으로 찝어주면 위험하다는 말은 없었다. 글쎄, 브루트 포스 방식으로 때려넣으면 실존하는 아이디는 수집이 가능해지겠지만.. 수집하는 효율도 그렇고, 아이디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은가? 오늘날 뿌려지고 있는 스팸메일의 양을 생각해 보면.. 어느 사이트든 아이디는 어차피 이미 털릴 대로 털려 있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아이디를 잘못 입력한 것만으로 "이 아이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튕기는 것까지는 과잉친절이고 바라지 않는다. 다만, 비번까지 입력하고 '로그인'을 누른 뒤에라도 비번에 앞서 아이디부터 잘못됐다면 나중에라도 그걸 좀 집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비번을 N번 연속으로 틀린 계정은 접속이 금지됩니다. 현재 X번 틀렸습니다. 잠금 해제하려면 추가 인증을 받으세요”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면 아이디는 어차피 노출이 불가피하다.
무차별 접속 시도를 통한 해킹을 봉쇄하려면 아이디를 숨기는 것보다는 저렇게 로그인에 한번 실패할 때마다 몇 초씩 딜레이를 넣고, 그게 몇 회 이상 반복되면 캡챠 같은 추가 인증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26 08:35 2024/0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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