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세기에 외세로부터 침략 받아서 주권을 빼앗긴 적 없고, 공산화된 적 없고, 쿠데타나 비민주 군사 독재를 겪은 적 없고, 헌정 체제가 널뛰기 하듯 바뀐 적도 없고.. 대공황 때문에 고생했던 것만 빼면 정치적으로는 큰 트러블 없이 살기가 참 좋았을 것 같다. 전쟁 참전은 다 남의 나라를 지켜 주러 했지, 자기 나라를 구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천하의 미국도 완벽한 유토피아는 아니니 사법 흑역사가 몇 건 있었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굉장히 비슷한 시기에 말이다.

1. Joe Arridy (1915-1939) -- 가스실

이 사람은 15세 소녀를 강간하고 손도끼로 찍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처형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20대 청년이지만 지능이 5세 어린이 수준밖에 안 되는 정신지체아였다는 것이다. 저런 끔찍한 흉악 범죄를 저지를 능력 따위는 1도 없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사건 현장 곁에 얼쩡대다가 붙잡혀 가서는.. 실적 올리고 싶은 형사와 검사에게서 집요하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다 보니, 뜻도 모르는 조서에다 지문 찍고 “그 아이 내가 죽였어요”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

이 사람은 교도관한테는 “우와~ 근육빵빵 아저씨다~!” 이러면서 교도소에서도 기차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작은 하마 이야기’에도 나오는 그 유서깊은 장난감 말이다!!
이런 사람이 “범행을 언제 어떻게 저질렀습니까” 같은 질문에 일관성 있게 제대로 대답도 할 리가 만무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사형이 교수형, 전기의자, 아니면 약물 주사인데.. 저 때는 미국도 무슨 나치 독일처럼 가스실을 운용했는가 보다. 그는 gas chamber이라는 게 무슨 장소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해맑은 표정으로 사형장으로 들어갈 때도 기차 장난감을 갖고 들어갔다. 교도관들이 그건 허용해 줬는가 보다.

천하의 미국에서 그때 경찰과 검사, 판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살인이고 사형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어서 무슨 행복한 왕자도 아니고 행복한 사형수 the happiest prisoner on death row라는 역설적인 별명까지 붙었다. 모파상의 소설 ‘행복한 사형수’하고는 관계 없다.

이 사건은 정작 진범이 딴 지역에서 잡혀서 그놈도 처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 통신이 열악해서 소식 업데이트가 더뎠는지, 한번 내린 사법 결정을 호락호락 번복할 수 없다는 똥고집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세뇌당한 저 사람도 자기가 진범인 듯 거짓 자백을 너무 진지하게(ㅠㅠ) 해 버렸는지.. 그래도 저 사람도 같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2011년에야 주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사면을 받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4년 12월에 부산에서 어느 발달장애 1급 청년이 아주 잠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2살짜리 아기를 창 밖으로 휙 던져서 바닥으로 떨어뜨려 죽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죽음이 뭔지 모르고 경찰이나 검사의 질문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사리분별과 판별이라고는 단 1도 못 하는 말 그대로 저능아였다.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한 자각이 없고 형사 책임을 질 능력도 전무했으니.. 피해자 집안의 입장에서는 정말 분통 터지겠지만 가해자는 아무 처벌 없이 무죄 방면되고 그 대신 치료 감호 판정만 내려졌다.
이랬는데 미국에서 저 때 저런 분위기 속에서 같은 사건이 터졌으면 가해자가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2. George Stinney Jr. (1929-1944) -- 전기의자

이건 앞의 1번보다도 더 뼈아픈 흑역사인 것 같다. 집 주변에서 7세· 11세 소녀 2명이 끔찍하게 살해 당했는데, 마침 곁에 있던 '만만한 흑인 소년'이 졸지에 용의자로 몰려 체포되고 범인으로 몰렸다. 이 소년은 오히려 경찰에게 그 당시의 주변 상황에 대해 증언을 하고 수색 작업을 도와 주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피해자 가족,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사, 배심원들은 모조리 백인이었다. 이들이 모두 짜고 입을 모아서 “보나마나 추잡한 검둥이놈이 사고 쳤구만”으로 몰고 갔다. 재판은 거의 나치 인민재판 급으로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피고인 측은 제대로 변호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죽였어요”라는 자백을 얻기 위해.. 비록 대놓고 물· 전기 고문이나 몽둥이 찜질까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굶겨 놓고는 “배고프지? 자백하면 밥 줄게~!” 정도는 시전했다고 한다. 중학생짜리 애한테.

결국 이 소년은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겨우 15세의 나이로 전기의자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체격이 너무 작아서 엉덩이 부분에다가 두꺼운 성경책을 몇 권 올려놓고 애를 앉혔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게다가 이 친구도 학교에서 싸움박질이 잦긴 했지만 명목상 교회 댕기는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그는 근현대 이래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사형수라는 타이틀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 기록은 앞으로 깨질 일이 없을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저 나이에 대학교를 입학한 것도 아니고, 저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니.. 그것도 누명을 쓰고..

이 사건은 어째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서 2014년에야 무죄 판결이 났다. 1번은 '사면'이라고 하고 2번은 '재심 결과 무죄'.. 법적 처분이 왜 서로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은 정황상 의심되는 진범(백인..!)이 있긴 하지만, 이놈은 빽이 있어서 법의 심판을 피해 갔다. 심지어 그놈의 부모가 배심원으로 들어가서 애꿎은 흑인을 범인으로 조작해서 사형장으로 보내는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미국은 프랑스나 독일처럼 유대인을 괴롭히는 건 없었지만 저기 특유의 인종 차별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근절된 건 아니라 여겨진다. 특히 남부 텍사스 같은 레드넥 동네 말이다.. -_-;;
요즘도 경찰들이 과격한 범죄 현장에서 흑인을 더 줘 패거나 심지어 권총 쏴서 사살해서 과잉 진압이라고 욕 먹기는 하는데.. 이 사건은 법적으로 사람을 누명 씌우고 사형장으로 보내 버린 거니 사건의 막장성이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다.

심지어 이렇게 흑인에게 누명 씌우기가 그 뒤에도 몇 건 더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사형까지 가지는 않고 교도소에서 몇 년 썩다가 누명이 풀렸을 뿐..

  • 이 소년은 우리나라 여수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일제는 패망한다” 이런 낙서를 한 게 들통나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주 재년 열사와 동갑이다. 역시 1929-1944.

  • 이렇게 인종 차별이 쩔었으니 미국에서는 n**** 이 단어가 f*** 급의 금기어 트라우마로 남았고, 치킨과 수박이라는 맛있는 음식조차 금기시되어버린 것 같다.
  • 그래도 그 미국에서도 흑인 남자(1870)가 백인 여자(1920)보다는 훨씬 더 먼저 투표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전근대 시절엔 세상 어디에나 가부장적 이념이 강했으니 일면 이해는 된다.

  • 근데 평등은 평등이지만, 반대로 멀쩡한 기존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에다가 쓸데없이 유색인종 주인공 집어넣는 PC 리메이크짓은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같은 유색인종이 보기에도 안 좋다. -_-;;

3. Edward Donald Slovik (1920-1945) -- 총살

이 사람은 군인이었고, 위의 두 사례 같은 막장 사법 살인을 당한 정도는 아니다. 결과만 따지자면 군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전시 탈영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안 좋은 타이밍에 굉장히 운 나쁘게 일벌백계 시범 케이스로 걸려서 사형 당했기 때문에 좀 억울하다면 억울한 사례가 됐다.

그는 성장 배경이 불우했는지 좀 질이 안 좋게 컸고, 10대 소년 시절부터 각종 기계에 자동차까지.. 온갖 절도죄로 잡범 전과가 주렁주렁했다.
저 사람은 소년원인지 교도소인지를 실컷 드나들다가 1942년에야 겨우 석방됐다. 출소 후엔 직장 잡고 연애에 성공해서 결혼도 하고, 이제 좀 마음 고쳐먹고 바르게 살려고 했다. 근데 결혼 생활 1년을 못 채운 타이밍 때 군 징집 영장이 날아왔다.

평시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저 사람 정도로 전과가 화려한 사람은 군대에서도 필요 없다고 안 받아 줬다. (무공 전과가 아니라 범죄 전과..ㄲㄲㄲㄲ)
그러나 저 때는 2차 세계 대전 시국이었다. 병력이 많이 필요하니, 캐 싸이코패스 흉악범만 아니면 어지간히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도 데려갈 정도로 징집 기준이 아주 낮아졌다.

그는 성장 배경의 특성상 단체 생활 잘 하고 군대에 적합한 체질이 아니었다. 각종 훈련이나 작전에서 수시로 낙오를 빙자해 전선을 이탈해 버리면서 전우들을 엿먹이고 고문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심지어는 6주 동안이나 짱박혀 잠적하기도 했다고.. 그는 “나 이런 데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 앞으로 또 탈영하겠다”라고 상관에게 항명을 예고하는 편지를 보내서 결국 찍혔다.

그의 상관들은 이런 편지는 그냥 없는 걸로 하고, 얘를 전투 스트레스가 덜한 부대로 전출이라도 시켜 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이판사판인데 군사 재판을 받아서 교도소에서 몇 년 썩는 걸로 군생활을 통째로 퉁치고 싶어했다.
사실, 미국 역사상 사형 선고를 받은 탈영병은 탈영 후에 살인· 강간 같은 흉악 범죄까지 저지른 사람뿐이었다. 이렇게 단순 탈영이나 병역 거부 자체만으로 사형이 선고된 적은 옛날 남북 전쟁 이래로 전무했다. 그러니 이 사람도 그걸 노렸는데..

그때는 2차 세계 대전 시국이었다는 것이 역시 문제였다. 천조국도 지긋지긋한 전쟁에 어지간히 이골이 나 있었고, 군복무 부적격자의 인권을 챙기는 것보다는.. 다른 멀쩡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군기 빠진 꾀병 의심 탈영을 일벌백계 하는 것에 훨씬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땐 한 집안 출신의 5형제가 몽땅 한 군함에서 성실히 근무하다가 다섯 명이 한 날 한 시에 몽땅 전사해 버린... '설리번 5형제'(1942)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 때문에 이 '에디 슬로빅'의 죄질은 정말 불행히도 예상보다 훨씬 더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그는 미국의 역사상 탈영죄 단 하나만으로 사형이 선고된 유일한 사례가 되어 버렸다. 그의 선택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야기한 것이다.
그의 아내와 친척들이 대통령에게 수차례 감형 탄원서를 냈지만 전시이다 보니 별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요청이 받아들여지지도 못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 탈영병이 21000여 명이나 발생했는데 순수 탈영만으로 사형 선고는 49건, 그게 실제로 집행된 건 이 사람 혼자뿐이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02 08:35 2024/04/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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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존엄사 논란

1. 사형 제도

일본은 자유 시장 경제, 정교분리, 민주주의 등등을 받아들인 선진국(OECD니 G20이니) 중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세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2020년대 현재까지도 흉악범에게 사형을 아주 활발하게 선고하고 적극적으로 집행하는 (좋은) 나라이다. 유럽 연합하고는 추세가 완전 정반대이다.

미국은 주마다 상황이 케바케이니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하자. 중국은 뭐.. 애초에 민주 국가가 아닌 거고.
일본이 다른 것들은 인권 인권 거리면서 다 풀어지고 널널해졌지만 저건 여전히 자기네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것 같다.
싱가포르가 그 국력과 지위에 걸맞지 않게 태형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이 범죄를 강하게 처벌하고 사형도 시원스럽게 때리는 걸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도 중국 좀 본받아야 된다고 성토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실은 중국을 배우기에 앞서 일본부터 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4킬 이상이면 정말 극단적인 미친 특례 상황이 아니면 무조건 사형, 2~3킬이면 불륜 보복이나 수십 년을 견디다 못한 간병 살인(중증 치매· 자폐· 조현병 따위) 정도로 현저한 참작 사유가 없는 한 사형,
1킬은 재범· 극도로 잔인한 수법· 전혀 납득되지 않는 반사회적 동기일 때만 사형.. 이런 식으로 킬수에 따른 양형 기준까지 정착돼서 수십 년째 일관되게 시행 중이다. 1960년대에 제정된 일명 '나가야마 기준'인데, 나름 일리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명목상 존재하며, 사형이 확정됐으면 6개월 이내에 집행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형사소송법 제465조). 근데 1990년대 말부터는 이걸 사문화시키고 집행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이 됐다.
그런데 일본은 사형 집행을 하긴 하는데.. 6개월이 아니라 수~수십 년을 가둬 놨다가도 아무 때나 예고 없이 갑자기 하는가 보다. 일본엔 이렇게 사형 집행 시설이 있는 형무소가 전국에 딱 7곳 있다고 한다.

사형수를 쓱 끌어내서 교수대에 매단 뒤, 스위치 3개를 교도관 3명이 동시에 누른다. 교수대를 실제로 동작시키는 장치는 그 중 한 곳에만 랜덤하게 연결돼 있다. 이는 총살형을 집행하는데 실탄과 공포탄이 사수마다 랜덤하게 섞여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스위치를 누르는 일에 참여한 교도관 3인은 그 집행 이후로 당일은 바로 퇴근이랜다. 그리고 사형 집행 특별 수당도 우리 돈으로 10~20만 원가량 나온다.

물론 일본 내부에도 좌파나 인권 단체들이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을 꾸준히 벌인다. 그러나 그게 아직까지 주류 여론은 아니다. 30년, 50년 뒤에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사형 집행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교정직 공무원에 지원을 하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그건 개인적인 보복이 절대 아니고 국가가 피해자 유족의 보복을 대신 집행하는 것이 아닌가?
낙하산 공수 훈련을 무서워서 못 하는 사람이라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사관학교에 가지 말아야 하고, 해부 실습을 비위 상해서 못 하는 사람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이런 일본과 달리.. 소말리아 해적들을 망망대해에 혼자 떨궈 놓을 정도로 무자비한 러시아조차도 자국에서 공식적으로 법적으로는 사형 제도가 없다. 구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면서 그게 폐지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거기는 흑돌고래인지 백돌고래인지, 깔끔한 사형이 차라리 더 나을 지경인 끔찍한 중범죄 교도소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푸틴 마음에 안 드는 야당 총수나 유명인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거나,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골로 갈 뿐이다.;; 걔들은 나름 "거짓말은 안 한다" 스킬에 능한 것 같다.

사형 제도 하니까 생각나는 게 더 있다.
옛날 조선을 굉장히 혐오하는 분들은 조선 정치인들이 남자다운 결투 하나 없이 맨날 당파싸움 벌이고 남을 꼰지르고 역모로 몰아서 사형시키는 비열한(?) 짓만 했다고 조선을 까는 편이다.
근데 이건 좋게 보면.. 조선은 엄청 굳건하게 법치가 정착됐고, 정적을 죽여도 형식적으로나마 늘 법대로 죽였다는 말도 된다.

타겟이 아예 군주라면..?? 영국과 프랑스는 자기 군주를 사형에 처했던 하극상 이력이 있다. (찰스 1세, 루이 16세..)
미국은 링컨에 케네디를 포함해 몇 명 더.. 대통령이 암살 당한 적이 있었다. 흠~ ㅎㅎ
우리나라는 군주나 국가원수가 자국민에게 ‘암살’ 당한 건 고려 공민왕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그 다음은.. 무려 박 정희.. 조선 시대엔 이런 사례가 전무했던 걸 보면 왕권이 강하긴 했던 것 같다.

2. 존엄사

옛날에는 저런 사형 집행에서 평등과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 단두대라는 처형 기계가 발명된 게 논란이 됐다.
저 시절엔 요즘과 달리, 사형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
흉악범 정치범을 사형에 처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이치이니 패스인데, 근데 “어떻게 귀족이 천한 평민 쌍것들하고 감히 동일한 방식으로 처형 당할 수 있단 말이냐? 그건 너무한=_= 거 아니냐?”가 파격적인 논란거리였을 뿐이다.

하긴, 2차 대전 전범 재판 때만 해도 어떤 전범은 군복에 총살형 요청이 거절되고 죄수복에 교수형이라는 통보를 받자, 너무 절망한 나머지 차라리 숨겨 놓은 독약으로 먼저 자살을 했을 정도였다. 죽는 방식을 갖고도 명예를 따지는 사람들은 엄청 많이 따진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기가 죽고 싶을 때 존엄하게 죽는 것도 인권이다~!! 웰빙뿐만 아니라 웰다잉도 중요하다”고 그런다.
예수쟁이들이야 구원받는 걸 웰다잉이라고 말하겠지만, 내세에 대한 관념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냥 죽는 타이밍과 방식에 대해서만 존비를 따질 뿐이다.

외국의 어떤 의사는 비활성기체를 잔뜩 주입해서 사람을 고통 없이 몇 분 만에 싹 편하게 골로 보내 준다는 자살 장치를 발명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단두대가 충격적인 논란거리였다면, 지금은 이런 자살 장치가 비슷하게 논란거리인 듯하다.

옛날에는 보다시피 사형 제도에 훨씬 더 우호적이었고 자살은 무조건 금기시였다.
그러나 요즘은 사형에는 가중치가 줄어들고, 자살이나 안락사에 좀 더 실드가 쳐지고 있다.
무작정 의지드립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까지 했냐? 이판사판 남까지 다 죽여버리면서 동귀어진한 게 아니라 혼자 곱게 자살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쪽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낙태에 대해서만 pro choice인 게 아니라 존엄사에 대해서도 pro choice인 것이다.

글쎄.. 현대 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크게 늘려 줬지만 이거 무슨 “원숭이의 손”도 아니고 젊은 시절의 건강과 기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장수는 아닌 경우가 많다.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심장만 억지로 고통스럽게 뛰게 하는 연명 치료는 돈은 돈대로 깨지면서 그냥 고문일 뿐인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락사가 전면 자유화되고 합법화돼 버리면.. 이건 죽고 싶지 않은 노인들한테도 “에휴~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나 같은 건 빨랑 나가 뒤져 줘야지” 같은 무언의 부담과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고, 거의 현대판 고려장이나 나치 T4 프로그램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 그건 좀 위험하다.

허나, 앞으로 극심한 저출산에다 보건 의료 발달 때문에 사회에 노인이 왕창 많아질 것이고, 50년 전에 만들어졌던 후한 복지 제도로는 이 많은 노인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지는 때가 분명 올 것이다.
이러면 나라에서는 인권 인권 하면서 역설적으로 도저히 답 없는 상태의 노인.. 특히 병든 미혼 독거노인들에게는 존엄사도 알음알음 주선하고 밀어붙이게 될지 모른다.

지하철 노인 무임 폐지보다는 차라리 저게 더 먼저 실현될 수도 있다. 1+1+1+1+1..의 총합을 줄이는 방법이 0.8+0.8+0.8+...보다는 1+1+0+0+1 ... 로 가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지금은 고령자에게 운전 면허 반납만 권장하지만, 그때는 생명 반납까지 권유를..?? 에휴~ 그런데 이것도 다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존엄사는 안락사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뇌사를 심폐사로 인정할지의 여부하고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약간 비슷한 맥락의 논란거리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면 글로 또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1/22 19:35 2023/01/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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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제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하늘로 가며,
제아무리 착한 사람, 불쌍한 사람, 의로운 사람, 법조인, 경찰, 검찰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흉악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라 해도 예수 안 믿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지옥에 간다.

그렇다. 그게 사실이다.
그래서 착한 일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고 믿는 여타 종교 신자들이나, 자기는 지금까지 남보다 충분히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불신자들은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냐며 항변한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뭐, 지금 내가 그것에 대한 시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거 아는가?
흉악범이 구원받으면 구원받은 흉악범이고, 사형수가 예수 믿으면 구원받은 사형수가 된다.
성경의 법칙대로라면 그들은 하늘로 가더라도 교수형은 당하고 간다. 이 땅에서 법이 규정해 놓은 죄값은 치르고 간다!

사형 제도는 지극히 성경적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결혼 제도를 제정한 것만큼이나 사형 제도도 만드셨고,
육식을 허락하신 것만큼이나 세상 정부가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걸 허락하셨다.
(창 9:6)
성경의 지론은 “ ‘살인하지 말지니라’를 어기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이다. 아멘.

여기서 살인이란 흉계를 품고(주로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고의로 죽이는 것을 말한다. 요즘 말이 많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성경으로 치면 출 21:29와 비슷한 맥락의 고의적인 살인으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을 더럽히는 성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속도위반 결혼으로라도 수습을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 성경에 따르면 한 치의 자비심 없이, 속죄 헌물도 안 통하고 무조건 사형이다.

다만, 고의성이 없는 과실치사는 성격이 다르며, 비록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사형 정도까지는 아니다. 정당방위도 응당 인정하며, 면책의 범위가 오늘날 근대 국가의 법보다 관대한 편이다(출 22:2).

그리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조직을 인정하고 공권력도 인정하는 성경의 특성상, 군인이 지휘관의 명령대로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 역시 그런 살인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병역 거부는 잘못된 행동이다)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이 폭도들에게 발포하는 것이나, 사형 집행관이 교수대 스위치를 누르는 것도 성경적으로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으며, 그런 공무원은 전혀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목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롬 13:4)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한다. 인터넷 뉴스 기사에는 피의자를 저주하면서 저런 놈은 이렇게 각을 떠서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온갖 폭력적인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너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정치인과 법조인들을 욕하면서, 신은 저런 놈 안 잡아 죽이고 뭐 하냐는 식의 댓글도 올라온다.

그 마음을 나도 이해하며 어느 정도는 공감도 한다. 비록 이런 네티즌들의 마음 상태도 건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겉으로 표출만 안 되었을 뿐이지 살인자 본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가 사형(死刑)이라는 필요악을 공의롭게 잘 집행해 줘야, 시민들이 분을 품고 보복 살인 내지 린치(私刑)를 할 생각을 안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사형 집행을 안 하면 다른 시민들이 실족하여 악한 마음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것도 불신자들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더 자비로울 거라고는 바라지도 않으며 기대도 안 하신다!

피해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형 집행 장면이 국영 방송으로 생방송 중계된다. 김 길태, 강 호순, 오 원춘 같은 주인공이 교수대에 오른다. TV에서는 근엄한 분위기 가운데에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다시 보여주고, 피해자 유족을 인터뷰하고 피의자의 마지막 유언을 공개적으로 받는다. 필요하다면 죄수들을 담당한 종교인 성직자의 인터뷰도 한다.
그 뒤 공개적으로 교수대가 작동하고, 잠시 후 법의관이 사형수가 완전히 죽은 걸 확인한다. 이 과정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사형 집행 장면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나돈다.

너무 과격한 상상인가?
난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람들이 죄와 벌과 죽음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게 될지, 모방 범죄가 또 생기고 사람들이 감히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왜 이렇게 시행을 안 하는지 궁금하다. 제아무리 인간말종 흉악범이라 해도, 무슨 독립 운동가의 심정으로 사람을 죽인 게 아닌 이상,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알고 죽음이 두려운 줄은 안다. 그래서 사형 당하기 직전에 어쩌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경우도 생긴다.

구약 율법 핑계를 대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의견이 아주 많다. 구약 율법 중에는 음식 규정이나 안식일 같은 것처럼 경륜의 차이로 인해 오늘날 전혀 무의미하고 적용되지 않는 제도나 규율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윤리는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유효하고 최소한 그 의도를 되살려 시행했을 때 나쁠 게 없는 게 거의 대부분이다. 가령, 신약 시대라고 해서 짐승과 마음대로 수간해도 괜찮은 건 아니지 않은가? (출 22:19; 레 20:15)

또한 사형 제도는 구약 율법에만 얽매인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히려 성경 전체가 인간의 죄와 벌과 구원 계획에 대해 논하면서 사형 제도를 두 말할 나위 없이 당연히 인정하는 뉘앙스에서 기록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가령, 롬 1:32) 그래서 오죽했으면 바울조차 행 25:11에서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으면 기꺼이 사형 당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자기 아들을 죽인 흉악범을 용서한 손 양원 목사 같은 유명한 사례가 있다. 그런 사람이 나오기 위해서라도 사형 제도가 있어야 한다. 법대로라면 죽어야 하는데 용서를 하고 탄원을 해서 목숨을 건졌으니 그게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당신도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이라면, 나라의 법은 공의롭게 요구하고 나서, 자기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나 원수에게 그런 사랑을 개인적으로 실천해 보아라. 알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아예 나라의 법이 흉악 범죄자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으니 오늘날 시국은 전 8:11처럼 되어 가고, 피해자 유족들은 가슴에 피멍이 든다.
오늘날은 정말로 가해자 인권만 있지 피해자 인권은 없다. 그냥 운이 나빠서 당한 것일 뿐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나는 도대체 민주화가 됐다는 요즘이, 옛날의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정권 시절보다 인권이 뭐가 좋아졌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결론을 내리겠다.
기독교 교리의 논리적인 성립을 위해서라도 사형 제도를 부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신이 불신자나 기독교 안티이고 그저 인본주의 박애주의자여서 사형 제도를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이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당신은 지금 살인자 마귀에게 속아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한 형벌을 필요하게 만든 것도 죄이지만, 죄에 대한 벌을 공의롭게 집행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역시 인간의 죄이다.

그리고 또 생각을 해 보아라.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사형 당하기로는 지금까지 크리스천들만치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린 집단이 또 있었겠는가? 그래도 그들은 사형 제도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성경에 입각한 바른 교리가 세상에 널리 퍼져서 영화 <밀양>에서처럼 “내가 용서를 안 한 가해자를 어떻게 신이 용서해?” 같은 시험에 드는 사람이 이 땅에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믿는 복음은 그저 막연하고 맹목적이고 몰상식· 비합리적인 게 아니라 지극히 건전하고 이치에 맞는 진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07/31 19:27 2012/07/3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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