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존엄사 논란

1. 사형 제도

일본은 자유 시장 경제, 정교분리, 민주주의 등등을 받아들인 선진국(OECD니 G20이니) 중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세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2020년대 현재까지도 흉악범에게 사형을 아주 활발하게 선고하고 적극적으로 집행하는 (좋은) 나라이다. 유럽 연합하고는 추세가 완전 정반대이다.

미국은 주마다 상황이 케바케이니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하자. 중국은 뭐.. 애초에 민주 국가가 아닌 거고.
일본이 다른 것들은 인권 인권 거리면서 다 풀어지고 널널해졌지만 저건 여전히 자기네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것 같다.
싱가포르가 그 국력과 지위에 걸맞지 않게 태형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이 범죄를 강하게 처벌하고 사형도 시원스럽게 때리는 걸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도 중국 좀 본받아야 된다고 성토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실은 중국을 배우기에 앞서 일본부터 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4킬 이상이면 정말 극단적인 미친 특례 상황이 아니면 무조건 사형, 2~3킬이면 불륜 보복이나 수십 년을 견디다 못한 간병 살인(중증 치매· 자폐· 조현병 따위) 정도로 현저한 참작 사유가 없는 한 사형,
1킬은 재범· 극도로 잔인한 수법· 전혀 납득되지 않는 반사회적 동기일 때만 사형.. 이런 식으로 킬수에 따른 양형 기준까지 정착돼서 수십 년째 일관되게 시행 중이다. 1960년대에 제정된 일명 '나가야마 기준'인데, 나름 일리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명목상 존재하며, 사형이 확정됐으면 6개월 이내에 집행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형사소송법 제465조). 근데 1990년대 말부터는 이걸 사문화시키고 집행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이 됐다.
그런데 일본은 사형 집행을 하긴 하는데.. 6개월이 아니라 수~수십 년을 가둬 놨다가도 아무 때나 예고 없이 갑자기 하는가 보다. 일본엔 이렇게 사형 집행 시설이 있는 형무소가 전국에 딱 7곳 있다고 한다.

사형수를 쓱 끌어내서 교수대에 매단 뒤, 스위치 3개를 교도관 3명이 동시에 누른다. 교수대를 실제로 동작시키는 장치는 그 중 한 곳에만 랜덤하게 연결돼 있다. 이는 총살형을 집행하는데 실탄과 공포탄이 사수마다 랜덤하게 섞여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스위치를 누르는 일에 참여한 교도관 3인은 그 집행 이후로 당일은 바로 퇴근이랜다. 그리고 사형 집행 특별 수당도 우리 돈으로 10~20만 원가량 나온다.

물론 일본 내부에도 좌파나 인권 단체들이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을 꾸준히 벌인다. 그러나 그게 아직까지 주류 여론은 아니다. 30년, 50년 뒤에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사형 집행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교정직 공무원에 지원을 하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그건 개인적인 보복이 절대 아니고 국가가 피해자 유족의 보복을 대신 집행하는 것이 아닌가?
낙하산 공수 훈련을 무서워서 못 하는 사람이라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사관학교에 가지 말아야 하고, 해부 실습을 비위 상해서 못 하는 사람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이런 일본과 달리.. 소말리아 해적들을 망망대해에 혼자 떨궈 놓을 정도로 무자비한 러시아조차도 자국에서 공식적으로 법적으로는 사형 제도가 없다. 구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면서 그게 폐지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거기는 흑돌고래인지 백돌고래인지, 깔끔한 사형이 차라리 더 나을 지경인 끔찍한 중범죄 교도소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푸틴 마음에 안 드는 야당 총수나 유명인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거나,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골로 갈 뿐이다.;; 걔들은 나름 "거짓말은 안 한다" 스킬에 능한 것 같다.

사형 제도 하니까 생각나는 게 더 있다.
옛날 조선을 굉장히 혐오하는 분들은 조선 정치인들이 남자다운 결투 하나 없이 맨날 당파싸움 벌이고 남을 꼰지르고 역모로 몰아서 사형시키는 비열한(?) 짓만 했다고 조선을 까는 편이다.
근데 이건 좋게 보면.. 조선은 엄청 굳건하게 법치가 정착됐고, 정적을 죽여도 형식적으로나마 늘 법대로 죽였다는 말도 된다.

타겟이 아예 군주라면..?? 영국과 프랑스는 자기 군주를 사형에 처했던 하극상 이력이 있다. (찰스 1세, 루이 16세..)
미국은 링컨에 케네디를 포함해 몇 명 더.. 대통령이 암살 당한 적이 있었다. 흠~ ㅎㅎ
우리나라는 군주나 국가원수가 자국민에게 ‘암살’ 당한 건 고려 공민왕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그 다음은.. 무려 박 정희.. 조선 시대엔 이런 사례가 전무했던 걸 보면 왕권이 강하긴 했던 것 같다.

2. 존엄사

옛날에는 저런 사형 집행에서 평등과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 단두대라는 처형 기계가 발명된 게 논란이 됐다.
저 시절엔 요즘과 달리, 사형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
흉악범 정치범을 사형에 처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이치이니 패스인데, 근데 “어떻게 귀족이 천한 평민 쌍것들하고 감히 동일한 방식으로 처형 당할 수 있단 말이냐? 그건 너무한=_= 거 아니냐?”가 파격적인 논란거리였을 뿐이다.

하긴, 2차 대전 전범 재판 때만 해도 어떤 전범은 군복에 총살형 요청이 거절되고 죄수복에 교수형이라는 통보를 받자, 너무 절망한 나머지 차라리 숨겨 놓은 독약으로 먼저 자살을 했을 정도였다. 죽는 방식을 갖고도 명예를 따지는 사람들은 엄청 많이 따진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기가 죽고 싶을 때 존엄하게 죽는 것도 인권이다~!! 웰빙뿐만 아니라 웰다잉도 중요하다”고 그런다.
예수쟁이들이야 구원받는 걸 웰다잉이라고 말하겠지만, 내세에 대한 관념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냥 죽는 타이밍과 방식에 대해서만 존비를 따질 뿐이다.

외국의 어떤 의사는 비활성기체를 잔뜩 주입해서 사람을 고통 없이 몇 분 만에 싹 편하게 골로 보내 준다는 자살 장치를 발명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단두대가 충격적인 논란거리였다면, 지금은 이런 자살 장치가 비슷하게 논란거리인 듯하다.

옛날에는 보다시피 사형 제도에 훨씬 더 우호적이었고 자살은 무조건 금기시였다.
그러나 요즘은 사형에는 가중치가 줄어들고, 자살이나 안락사에 좀 더 실드가 쳐지고 있다.
무작정 의지드립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까지 했냐? 이판사판 남까지 다 죽여버리면서 동귀어진한 게 아니라 혼자 곱게 자살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쪽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낙태에 대해서만 pro choice인 게 아니라 존엄사에 대해서도 pro choice인 것이다.

글쎄.. 현대 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크게 늘려 줬지만 이거 무슨 “원숭이의 손”도 아니고 젊은 시절의 건강과 기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장수는 아닌 경우가 많다.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심장만 억지로 고통스럽게 뛰게 하는 연명 치료는 돈은 돈대로 깨지면서 그냥 고문일 뿐인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락사가 전면 자유화되고 합법화돼 버리면.. 이건 죽고 싶지 않은 노인들한테도 “에휴~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나 같은 건 빨랑 나가 뒤져 줘야지” 같은 무언의 부담과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고, 거의 현대판 고려장이나 나치 T4 프로그램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 그건 좀 위험하다.

허나, 앞으로 극심한 저출산에다 보건 의료 발달 때문에 사회에 노인이 왕창 많아질 것이고, 50년 전에 만들어졌던 후한 복지 제도로는 이 많은 노인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지는 때가 분명 올 것이다.
이러면 나라에서는 인권 인권 하면서 역설적으로 도저히 답 없는 상태의 노인.. 특히 병든 미혼 독거노인들에게는 존엄사도 알음알음 주선하고 밀어붙이게 될지 모른다.

지하철 노인 무임 폐지보다는 차라리 저게 더 먼저 실현될 수도 있다. 1+1+1+1+1..의 총합을 줄이는 방법이 0.8+0.8+0.8+...보다는 1+1+0+0+1 ... 로 가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지금은 고령자에게 운전 면허 반납만 권장하지만, 그때는 생명 반납까지 권유를..?? 에휴~ 그런데 이것도 다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존엄사는 안락사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뇌사를 심폐사로 인정할지의 여부하고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약간 비슷한 맥락의 논란거리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면 글로 또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1/22 19:35 2023/01/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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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비용 치르기

자동차의 불법 주차 문제는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문제와 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눈에 현물이 보이는 컴퓨터 하드웨어나 자동차야 당연히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물건이라는 것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돌아가는 무형의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도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상품이라는 것, 그리고 땅값 왕창 비싼 곳에서 자동차가 상당한 공간을 점유하는 데도 비용 지출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단속만 없다면 불법을 저지르기도 훨씬 더 쉽다. 간단히 프로그램 파일을 복사하는 것이나 길가에 슬쩍 차를 세워 버리는 건.. 가게에 침입해서 컴퓨터나 자동차를 훔쳐서 튀는 것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가히 비교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은 이건 시민 의식이나 법 집행 시스템이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른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다.

2. 본보기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법을 어겼을 때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의를 응징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사람들이 당장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수고도 얼마든지 감수하며,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관념이 있어야 하리라 여겨진다.
가령, 내 돈 100원을 꿀꺽 먹은 공중전화나 자판기를 시정하기 위해서 1천, 1만 원의 시간과 노력과 금전 비용을 소모하며 민원 넣고 난리 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 일상적으로 배출되는 게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리암 니슨이나 차 태식 같은 아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유괴범들은 징역보다 무서운 전기/네일건 고문과 사적 보복이 두려워 범죄를 꺼리게 되며, 덕분에 그 아재 같은 피지컬을 갖추지 못한 아빠들도 덤으로 안심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 백신만 집단면역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국가로 가면 이 원칙이 더 절실해진다. 이러니 정상적인 나라라면 소말리아 해적한테는 인질 몸값을 호락호락 주면서 타협 거래를 하지 않는 거다. 반대로 소말리아 해적도 러시아 같은 무지막지한 나라의 선박은 안 건드린다.
동일한 맥락에서, 북괴하고도 돈 퍼주는 거래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다. 법과 상식이 안 통하고 힘에 굴복하는 것밖에 모르는 놈들한테는 저렇게 하는 게 정의 구현이다.

3. 불가피한 상황

세상의 보편적인 법은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라는 걸 인정한다.
자기가 목숨을 부지하려고(= 죽지 않으려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남을 해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으며, 비슷한 맥락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억지로 범죄에 떠밀려서 가담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를 법률 용어로는 '위법성 조각 사유 성립'라고 말하는 듯한데.. 물론 이런 극단적인 예외를 입증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질병을 입증해서 군 면제 받는 게 쉽지 않듯이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너무 배고프고 굶어 죽기 직전이어서 눈이 뒤집힌 나머지, 남의 음식을 집어먹은 사람도 이론적으로는 용서될 수 있다.
하지만 평시에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서는 그 정도로 막장 상황에 몰린 사람 자체가 극도로 드물며, 또 절도죄를 저지를 체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진짜로 굶어 죽기 직전 상태는 아님을 시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건 여느 정당방위 긴급피난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고 하겠다. 허나, "사흘 굶고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니, 이렇게 진짜로 굶주린 좀도둑은 정상이 참작되기는 할 것이다. 마치 "긴 병에 효자 없다"처럼 말이다.

4. 신고의 의무, 불고지죄

의사는 자신이 맡은 환자의 신체· 건강 상태 같은 개인 정보를 외부에 절대로 누설하지 말고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직업 윤리이고 법적 의무이다.
단, 환자에게서 총상이나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했다면 이를 경찰에 무조건 신고해야 한다. 이 또한 의무이다.

비슷하게.. 웹하드· 클라우드 사업자라면 업로더가 보관하는 데이터를 절대로 검열하거나 유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온갖 음란물· 불온물 등등을 제치고 아동 포르노는 발견 즉시 무조건 신고하게 되어 있다. 이건 너무 선을 넘는 막장짓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서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마치 서류 복사를 하는 기계나 사람이 위조지폐를 만들려는 정황이 발견되면 즉시 신고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 같다.

그 외에, 술이나 음란물이나 마약 같은 물건은 소지만 해도 죄, 소지는 자유이지만 판매· 유통하면 죄(미성년자에게 술) 등, 나라마다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 인권 국가에서라도 죄질이 악랄하고 매우 안 좋은 일부 죄에 대해서는 무죄 추정 원칙을 포기하고 그냥 걸리면 무조건 처벌, 미수도 처벌을 넘어서 신고하지 않고 묵인한 것만으로도 '불고지죄'로 처벌.. 이렇게 독하게 취급하는 게 있다. 그런데 시민들을 감시· 통제를 많이 하는 사회주의 비민주 국가에서는 국가 존립이 아니라 단순 정치와 관련된 별 희한한 행위까지 이런 식으로 검열하고 감시하기도 한다.

5. 죄를 지은 동기

같은 살인죄로 감방에 들어왔어도.. 신입 죄수가 이런 식으로 신고를 한다면 어떨까..??

  • 중증 치매/자폐 앓는 부모/자식을 10년을 간병하다가 도저히 참다못해서 차라리 교도소 가기로 작정하고 목 졸라 죽였다
  • 내 딸 죽인 데이트폭력 살인범을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니 억울해서 밤에 찾아가서 차로 치고 밀어버렸다
  • 김 구 선생 암살범을 내 손으로 패 죽였다
  • 우리 나와바리를 침범하는 상대방 조직원들을 몽땅 칼빵 놓고 보스의 목을 땄다

감방 분위기는 싸~해질 것이고 주변 죄수들이 그 사람 털끝만큼이라도 못 건드릴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이 그 감방의 왕고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딩 유괴살인으로 왔다고 하면 그냥.. 정반대 분위기가 되는 거다. 이런 죄수는 감방에서도 딴 죄수나 교도관으로부터 완전히 찐따 호구 동네북으로 전락이다.

인지상정이라는 게 죄수들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죄수들끼리도 인간 취급 안 하는 더 나쁜 죄인이란 게 있다. -_-;;

6. 가족

우리나라의 법은 혈연 가족 관계를 여느 인간 관계보다 더 밀접하고 특별한 것으로 보고 이를 존중한다.
예를 들어.. 보통은 수배된 범죄 피의자를 숨겨주고 도피를 도와주는 건 그 역시 범죄로 간주되어 처벌된다. 하지만 그 피의자의 가족이 당사자 편을 들어서 저렇게 해 준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

물론, 사회 공익을 위해서는 가족이라도 그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족도 범죄자를 숨겨 주기보다는 자수를 권유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미국에서는 유나바머가 동생의 신고와 제보로 잡혔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박 나리 양 유괴 살인 사건은 가해자의 부친이 적극적으로 신고해서 잡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가족이 최소한 공범 가담까지는 아니고 당사자를 숨겨 주기만 한 것은 국가 공권력이라도 묵인하고 눈 감아 준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인륜을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는다.
매체에서 어떤 애새끼가 대놓고 자기 부모를 어디 고발하는 장면을 딱 생각해 보아라. 골수 세뇌 사이비 종교나 공산당 빨갱이 집단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존속 살인은 일반 살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된다. 마치 군대에서 상관 살해가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것처럼 말이다.
단, 현행법은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게 아니다. 존속(부모 쪽)을 비속(자녀 쪽)보다 더 '존귀하게' 취급한다. 다시 말해 다른 모든 정황이 동일하다면 아이가 부모를 살해한 것이 부모가 아이를 살해한 것보다 형량이 더 무겁다. 애초에 존과 비라는 글자에서부터 그런 뉘앙스가 대놓고 담겨 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건 결과만 보자면 정말 상상도 못 할 극악무도한 패륜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나뉘는 것 같다. '돈 때문에'는 어처구니없는 사유이지만, 'xxx를 견디지 못해서'는 일면 수긍이 가는 안타까운 사유인 듯하다.

  • 어린 자녀가 부모로부터의 학대를 못 견뎌서 -- 주취 가정폭력이나 지나친 학업 성적 압박, 집착
  • 다 큰 자녀가 부모의 노답 질병(특히 치매 같은..)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 개차반 니트 백수 자녀가 단순히 돈 때문에 (유흥자금-_-)
  • 다 컸고 사회적 지위에 문제가 없는 자녀라도 진지하게 돈 때문에 (유산 상속 관련)

하지만 오늘날은 가족이라고 특별하게 취급하고 봐 주거나 가중 처벌하는 걸 없애는 쪽으로 법리가 바뀌어 가는 추세이다. 애초에 가족이라는 조직의 정의 자체도 굳이 남자와 여자가 천년가약 맺고 친자식 낳아서 형성된 조직이 아니라.. 그냥 뜻 맞는 사람끼리 동거하면 동성이건 제3의 성끼리건 전혀 무관하게 형성 가능하고, 그러다가 수틀리고 안 맞으면 언제든지 해체도 가능한 가볍고 부담 없는 모임으로 바뀌어 간다.

명절들은 전통적으로 원래 하던 이벤트가 다 사라지고 그냥 해외여행 가고 노는 날로 바뀌었다. 간통죄라는 게 없어지고 동성 결혼도 법적으로 인정된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가~ 족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러면 서로 피곤할 일 없고 육중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 없고 가정 폭력도 없을 것 같고 좋긴 한데.. 뭔가 종족 보전과 번성도 안 될 것 같다. >_<;; 옛날 사람들이 바보여서 그렇게 무뚝뚝하고 고지식하게 산 게 아니었다.

7. 사회악

술이나 성, 폭력이 관여하는 통상적인 중범죄를 차치하고, 집과 차와 관련하여 없어져야 할 3대 사회악은 이런 것인 듯하다.

(1) 전세 사기: 빌라왕 같은 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부동산 바닥에서 카드 돌려막기나 폰지 사기, 유령 회사 같은 부류를 구사한 건가..??
(2) 중고차 사기: 하도 악명 높아서 침수차 부활을 엄벌하고 근절하겠다고 나랏님이 칼을 빼 들었는데.. 처벌만 강화한다고 호락호락 척결할 수 있겠는지는 모르겠다.

(3) 달리는 대형 트럭에서 부산물이 떨어져나오는 일체의 사고들: 결박 불량 낙하물, 판스프링 짝대기, 터진 타이어 등등등.. 일부는 드디어 중과실에 추가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날벼락 맞는 차가 종종 나온다.
과적은 걸리면 운전자뿐만 아니라 그렇게 시킨 놈도 처벌.. 이런 식으로 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집은 부동산이지만 자동차는 준부동산 정도로 취급된다.
자동차, 텐트, 집은 모두 장기 무단 방치되고 있는 물건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제아무리 사유재산이라 해도 소유주가 관리를 안 하고 기약 없이 방치한 게 있으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더 일찍 더 강하게 처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2/12/29 08:35 2022/12/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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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한국 국제

작년 가을엔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국내외로 대히트를 쳤었다.
거기에는 끝부분에 김 희원 같은 방탄-_-유리 전문가를 떠올리게 하는 유리 전문가 출신의 게임 참가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람 프로필이 "1987년부터 모 유리 공장 재직"이어야 하는데, 1897년으로 잘못 기재되어 나가서 구설수에 올랐었다.

1897년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던 해이다. 그만치 엄청난 옛날이다.
이건 이제 중국 눈치 볼 필요 없이 "우리나라의 군주도 '왕-전하'가 아니라 '황제-폐하'이다~"
우리도 단순히 독립국을 넘어서 '제국'이기도 하다고 자뻑에 가까운 대외 선포만 한 것에 가깝다.
서 재필의 독립문이 완공된 때도 얼추 1897년 저 때였다.

중국, 일본보다도 영토가 작은 주제에 국호에 大짜를 붙였으며,
거느리는 식민지 하나 없지만 그냥 어감이 간지 나 보이니까 제국인 거다.
왕조가 바뀌었다거나 나라의 정체성이 바뀌었다거나 한 것도 전무하고, 자동차로 치면 그냥 외형만 바뀐 페이스리프트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대한제국은 보통은 그냥 조선의 역사의 연장선으로 뭉뚱그려져서 취급된다.

1899년 8월 17일엔 '대한국 국제(國制)'라고.. 흔히 한국 최초의 근대식 헌법이라고 불리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건 내용을 볼 때 근대적인 민주 헌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한국 대황제'에다가 북괴 최고존엄을 집어넣으면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다.

1조부터 9조까지 내용을 요약하면.. 대한국 대황제(= 고종!!)께옵서는 입법 사법 행정 군사 뭐든지 자기 꼴리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말밖에 없다. 궁금하신 분은 검색 앙망..
게다가 글을 적을 때 '대황제'라는 단어는 무조건 엔터를 눌러서 줄을 바꿔서 맨 첫 단어로 나오게 써 놨다~!!!! ㄷㄷㄷㄷ

북괴에서 최고존엄 돼지 이름에다가 고유한 문자 코드를 집어넣은 것과 거의 똑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_-;;
신민에게 보장되는 권리 따위는 한 마디도 없고, 제4조에 왕권에 도전하는 신민 나부랭이는 신민의 도리를 어긴 죄인이라는 위협만 있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정됐던 일본이나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 헌법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게 바로 옛날 조선 구한말의 실체였다. 이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 조선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체제가 바뀐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인지를 알 수 있다.
솔직히 개천절과 한글날 대체공휴일을 줄 바에야, 그건 집어치우고 제헌절이나 다시 빨간날로 되돌렸으면 좋겠다.

남한은 대한민국으로 진화했고 아직 국민 의식이 옛날 선각자들을 못 따라가서 큰일인 반면,
북한은 옛날 조선에 가까운 형태로 유턴해서 되돌아갔고 상황이 일제 시대보다 더 나빠졌다는 거다.

제대로 된 국민 의식 교육을 하려면 각종 시설의 창립일은 제발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이후를 기점으로 잡도록 하고, 조선이나 북한 따위와는 달라진 것, 차별화하면서 더 좋아진 것을 부각시키고 강조해야 할 것이다.

7. 보복

우리나라의 역사상 매우 잔혹하고 야만적인 법이 존재했던 사례를 꼽자면 6· 25 사변의 초기에 군대에서 시행됐던 (1) '즉결처분'.. 그리고 먼 옛날 고려 시대 초기(5대 경종)에 잠깐 전국적으로 시행됐던 (2) '복수법'을 들 수 있겠다.

(1)은.. 개전 초기에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니 "군기가 빠져 가지고 명령 없이 무단 후퇴하는 놈은 재판 없이 바로 총살이다"를 의도한 것이었다. 10대 고등학생들까지 쥐어 짜내서 겨우 사흘 동안 극악의 야메 날림 훈련만 시킨 뒤에 총 쥐어 줘야 했던 시절이니 더 말을 말자..
(2)는.. 호족들 민심을 달래려 했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말 그대로 revenge 복수라는 뜻이다~!

(1)과 (2) 모두, 사소한 이유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제멋대로 죽여도 되는 살인 면허로 변질됐다. 그러니 둘 다 거의 1년 만에 허겁지겁 전면 금지되고 폐지됐다.
무분별한 사적 보복은 금지하고 막아야겠지만, 그래도 반대로 우리나라 공권력의 형벌은 죄질에 비해 너무 약하긴 해 보인다. 특히 음주운전 인명 사고 같은 거.. 최소한 생명은 생명으로 갚도록 해야 한다.

성경에도 나오는 "눈은 눈으로, 입은 입으로"는 그 자체는 전근대 시절의 야만적인 법이 절대 아니다. 자기가 당했던 것 '이상'으로는 절대로 더 보복하지 말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8. 일본 -- 전쟁 금지, 고문 금지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벌였다가 완전히 박살 나고 무조건 항복한 이력으로 인해, 향후에도 군사력이 싹 봉인 당해 버렸다. 최상위 법인 헌법에서 제9조에 “국력을 동원하는 적극적인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라고 명시되었다. 일본과 한국은 20세기 전반에는 식민 지배를 하느냐 당하느냐로 행로가 갈렸다면, 후반에는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와 군대에 안 가면 안 되는 나라로 계속해서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다음으로 일본 헌법의 제36조는 저 9조 “침략 전쟁”만치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제국 시절의 악행을 금지하고 청산한다는 뉘앙스가 적극적으로 들어간 흔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공무원에 의한 고문 및 잔학한 형벌은 절대로 금지한다”

과거에 쟤들이 식민지 조선인뿐만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도 저런 짓을 적극적으로 했었기 때문에 ‘절대로’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았으면 말이 우리나라 헌법 제12조처럼 평범하게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정도로 평범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일제도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형벌 자체는 특별히 심하게 잔인하거나 야만적이지 않았다. 사형 집행도 평범하게 교수형이나 총살형이었지, 나치 독일처럼 이동식 단두대로 목을 뎅겅 짜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100인 참수 경쟁 같은 건 별개로 생각해야 할 전쟁 범죄인 거고..)

단지, 죄를 묻는 수사를 위한 고문이 악랄했으며, 그런 관행이 전체주의 군국주의 분위기 하에서 묵인되었을 뿐이다.

고문이 행해지는 목적은 딱 둘이다. (1) 혐의를 인정하라, 이게 아니고 혐의 자체는 분명한 경우라면 (2) 누가 시켜서 한 짓인지 배후를 불어라..;;
이렇듯, 한국과 일본의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vs "천황은 국가와 국민의 상징이다"만큼이나 제정된 배경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출입국관리법 제11조 제7항에 근거하여, 일제 시대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사람을 학살· 학대하는 일에 관여한 사람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후손까지 몽땅 금지하는 게 아닌 이상, 지금이야 세월이 워낙 많이 지나서 저건 사문이나 다름없는 규정이 됐을 텐데.. 일제 강점기의 트라우마가 법에 이런 식으로 반영돼 있다. 이런 정서는 반대로 일본의 법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형법에 특정 중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넘어 ‘처단’한다고.. 뭔가 법을 제정한 사람의 감정적인 빡침(?)까지 느껴지게 하는 단어가 몇 군데 남아 있었다. 그 죄는 다른 죄보다 특별히 심각하고 죄질이 나쁘다고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이 단어는 삭제되거나 그냥 평범한 처벌이라고 순화되었다. 제일 마지막에는 제87조 내란죄에만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라고 남아 있었지만 이 역시 조만간 사라질 예정.. 프로그래밍 언어 API로 치면 deprecated된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14 19:34 2022/01/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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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작정하고 법을 찾아 본 건 다음 분야들이다. 다들 내 관심 분야 내지 생활 패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 병특 하던 시절에 복무 관련 규정들: 이건 까딱 잘못하다 걸리면 편입이 취소되고 다시 군대로 끌려가는 문제이므로 제일 크리티컬했다. 그래도 이 법은 사회에서 '을'인 복무자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일단 편입해 들어가면 회사가 아니라 복무자 자신이 티오(인원 배당)를 갖는다는 개념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 거리설교 관련: 주변에 민폐를 잘못 끼치면 경범죄에 걸려서 과태료를 물기 때문이다.
  • 캠핑과 야영 관련: 내가 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는 걸 좀 좋아해서 그렇다. 4개 정도의 법이 얽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 자동차의 합법적인 크기와 무게 관련: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다. 도로교통법뿐만 아니라 도로법이던가 둘 이상의 법에서 중복 규정돼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오래 전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한 게 있어서 그렇다. 덕분에 우리나라에 국가보안법 말고 이런 법도 있다는 걸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더 먼 미래에 기회가 되면 언급할 일이 있을 것이다.

법 하니까 더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를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한 건 아닌데 그냥 집행만 무기한 안 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전체가 우리나라 영토이며 통일을 지향한다고 헌법에 명시는 해 놨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한 지경이다. 애초에 6· 25 사변도 말은 휴전이라고 써 놨지만 사실상 종전이 됐고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졌다. 이렇게 법과 현실이 서로 안 맞는 구석이 생겨 있는 게 느껴진다.

외국으로 가면.. 일본은 군대를 보유하는 것을 영원히 절대로 금지한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자위대가 사실상 군대나 마찬가지이다. 이것도 법과 현실의 괴리라고 봐야 할까?
물론 저 헌법 때문에 일본은 자기네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지 못하고 무조건 내수로만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에 파병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규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닌 것도 사실이다.

2. 취사· 야영을 할 수 없는 곳

구분 적용 대상 야영 금지 근거 위반 시 처벌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평지나 언덕, 산기슭 정도에 공원 형태로 조성된 녹지 제49조+동법 시행령 제50조 제56조, 10만원 이하 과태료
자연공원법 국-도-군립공원(주로 경치 좋은 산) 및 지질공원(공룡 화석, 지층, 운석..) 제27조 제86조, 200만원 이하 과태료
하천법 나라에서 지정한 국가하천 및 지방하천의 특정 구간 제46조 제98조, 300만원 이하 과태료
수도법 취수시설이 설치된 하천, 호수 등(상수원) 제7조 제83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

  • 그러니 수락산은 산 중턱까지 민간 산장 휴게소가 들어서 있는 반면, 근처의 국립공원인 북한산은 그런 거 없고 등산로를 이탈하는 것, 계곡에 들어가는 것 몽땅 금지이다. 그 대신 북한산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보니 적당히 낮은 고도까지는 등산로가 아주 널찍하게 잘 닦였고, 화장실과 각종 표지판들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하루 만에 완주가 불가능한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지정된 구역에서만 야영을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야영 허용 구역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
  • 산보다는 강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 (위반 시의 처벌이 더 강함) 물론 현실에서는 낑낑대며 올라야 하는 산보다는 강이 접근성이 더 좋고 공간이 더 많고 야영하기도 더 쉽다.
  • 단순 공원보다는 특별한 공원에 대한 위반 처벌이 더 강하다. 그리고 단순 하천에 비해 상수원 하천은 뭐.. 처벌 수준을 교통 범죄에다 비유하면, 신호위반 속도위반이던 것이 음주운전으로 껑충 뛴 것과 비슷하다.
  • 4월부터 10월에 저녁 7시까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한강 공원의 텐트는 원래는 아예 안 되는데 예외적으로 봐주는 것에 가깝다. 위반 시의 과태료 100만원은 도시공원과 비교했을 때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자연공원법이나 하천법보다는 낮게 잡힌 것이다. 저기는 1980년대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산물일 뿐, 국립공원만치 대단한 곳은 아니니까..
    더구나 상수원도 아니다. 한강의 취수 마지노 선은 잠실대교 수중보이기 때문이다. 거기보다 하류 구간은 취수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 그냥 이름 없는 평범한 산의 정상에서 밤에 텐트 치고 자는 건 위의 법들 중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고기까지 구워 먹으려면 속 편하게 돈 내고 전용 캠핑장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멀리 해수욕장까지 가든가..

3. 민사와 형사

소송에서 민사 vs 형사, 경찰의 교통과 vs 강력과, 의료에서 당장 생명하고는 별 지장이 없는 과(성형) vs 직접 관련이 있는 과(외과)..
요것들이 다 심상이 서로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가령, 누가 내 돈을 빌려 놓고는 기한 내에 갚지 않고 떼먹었다면 민사 소송을 걸어서 강제집행으로 돌려받는 게 순서이다. 사기죄로 엮어서 형사 소송까지 걸려면, 그 사람이 애시당초 돈을 갚을 생각이 없었고 단순 채무불이행 이상으로 매우 악의적으로 채권자를 물먹였다는 정황까지 입증해야 한다.

교통사고 가해자의 경우도 특례법 위반 여부, 고의성 여부, 피해 규모 등에 따라 보험사의 배상만으로 끝나는지 아니면 형사 처벌까지 받아서 콩밥 먹어야 하는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그리고..

  • '피고'는 민사에서만 쓰는 말이고 '피고인'은 형사에서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피고인'은 '피고'와 달리, 재판에서 패소했다간 전과자가 된다. 이걸 왜 구분하며 그것도 왜 하필 '人'짜의 여부로 구분하는지는 참 의아하게 느껴진다. 영어로는 둘 다 그냥 defendant 이다. 경우에 따라 민/형 구분을 위해 앞에 civil / criminal이 붙을 뿐..
  • 완전 생뚱맞은 bar이라는 단어에 변호사라는 뜻이 있는 게 의외이다.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은 bar exam이라고 하고, ‘대한 변호사 협회’도 영어로 bar association이라고 부른다. 경찰을 police officer 대신 cop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심상이려나?
  • 변호사와 판사는 민· 형사 소송에서 모두 등장하는 반면, 그럼 검사는 형사 말고 민사에서는 별 필요나 존재감이 없는 존재인 건가..??

4. 형벌의 분류

우리나라 법에 규정된 형벌은 방식을 보자면 재산형과 자유형으로 나뉜다. 자격상실· 정지는 명예형에 속하긴 하지만 형법상의 처분보다는 행정 처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신체형(태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에 형벌을 '규모 내지 급'으로 나누면.. 경범죄급과 중범죄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경범죄처벌법의 벌칙이 대부분이며 뒤끝이 없다. 빨간줄이 그인다거나 향후 몇 년 동안 범죄 기록이 조회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검사가 개입해서 정식으로 기소하고 재판까지 열기에는 너무 자잘하고 사소하고 경미한 영역을 담당한다.

이것을 표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재산형 자유형
경범죄 과료 (과태료,범칙금) 구류
중범죄 벌금 금고/징역

그런데 범칙금이라는 건 정체가 굉장히 모호한 것 같다. 과료나 벌금 같은 부류는 아닌 행정 처벌인데 굳이 과태료와 다른 명칭을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5. 범죄 자체에 대한 중독

세상의 강력 범죄들은 우발적이건 계획적이건 대부분 돈 때문에, 또는 여러 방식의 뒤틀리고 비뚤어진 심성 때문에(자기가 무시 당하고 있다는 생각, 욱하는 감정 조절 실패, 너 죽고 나 죽자는 자포자기 등) 벌어진다.

물론, 그 정도 알량한 이유만으로 끔찍한 범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범죄자는 그에 상응하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 정도 이유나 목적조차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고 오로지 거기서만 짜릿함과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도 드물게나마 분야별로 있는 게 현실이다.

(1) 원한을 해소하거나 돈을 뺏거나 다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인 자체만을 즐기는 거라면 그냥 미친 싸이코패스 쾌락 살인마이다.
국내의 경우 옛날에 “살인을 더 할 수 없어서 우울하고 답답하다. 이럴 거면 날 빨리 사형 집행이나 해 주쇼”로 악명높았던 정 남규 정도가 이 등급일 것이다. 그 사람은 교도소에서 이제 남을 죽일 수는 없으니,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2) 자기한테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고 사흘 굶은 상태도 아닌데 남의 물건을 습관적으로 쓰윽~ 하는 건.. ‘도벽’이라고 말까지 만들어져 있다. 남에게 안 들키고 슬쩍이 성공하면 뭔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라도 하나 보다. 마치 도박 중독과 비슷하게 말이다.
손버릇이 나쁜 건 어린애부터 성인까지 의외로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3) 그리고 방화도 있다. 10여 년 전에 악명을 떨쳤던 울산 봉대산 불다람쥐 사건 기억하는 분 계신지? 2014년엔 우울증 기분 탓에 습관적으로 서울 대모산에서 산불을 낸 50대 주부가 검거되기도 했다. 야산이나 건물에 몰래 불을 질러서 활활 타는 걸 보고 그 자체만으로 후련함과 쾌감을 느끼는 극도로 위험한 연쇄방화범 부류도 있다.

도박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살인, 절도, 방화도 중독이 있는 것 같다. 가해자는 범죄자와 정신병자라는 두 영역에 모두 걸쳐 있는 셈이다.
강간도 중범죄이며 변태 중독자가 없을 리가 없는 분야이다. 하지만 성욕은 식욕 수면욕 배설욕처럼 그나마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욕망이다. 이건 다른 범죄 중독과는 약간 다른 분야로 간주하여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흉악범은 보통 누굴 죽이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살인을 이미 저지른 뒤에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서 불이나 물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다. (현장 방화, 또는 자동차 째로 수장..)
하지만 피해자의 시신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됐거나 물에서 건져졌다 하더라도.. 현대의 법의학 기술은 사람이 진짜로 화재로 인해 죽었거나 익사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이미 죽은 뒤에 거기에 놓인 것인지 정도는 아주 간단히 정확하게 판별해 낸다. 폐에서 검출된 이물질이라든가 시신 표면의 다른 상처들을 보면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06 08:32 2020/06/0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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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운전자라면 이미 다 아실 것이고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듯,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는 하이패스라는 통행료 무인 자동 정산 시스템이 있다. 고속도로의 입출구에서 모든 차들을 강제로 잠시 세워서 현금으로 통행료를 걷는 시스템은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운전자에게나 회사에게나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잔돈 취급을 없애서 톨비 결제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고속도로 카드가 도입됐다 식당에서 현금 대신 식권, 버스에서 토큰이 도입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단, 신용카드는 안정성 문제 때문에 톨게이트에서는 취급을 전통적으로 거부해 왔다.

그 뒤, 통행료 결제를 원큐에 할 뿐만 아니라 차량을 정차시킬 필요도 없게 하기 위해 다음 세대 기술인 하이패스가 도입됐었으며, 종전의 고속도로 카드는 폐지됐다.
하이패스는 편리하기도 하고 2000년대 초에 도입되던 당시에는 나름 미래의 신기술을 염두에 둔 시스템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물건으로 전락한 면모가 있다.

요즘은 하다못해 여느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만 가도 차량 번호판이 자동으로 인식되고 따로 주차권이 발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이패스는 식별 태그나 카드 한 장만 구비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차량들이 단말기를 사서 등록· 개통해야 하는 번거로운 체계이다.

이건 그 당시에 고려 대상이었던 보안 통신 방식과도 관계가 있으며, 또 단말기를 통해서 통행료 결제뿐만 아니라 도로 상태(정체 여부)와 기상 정보까지 중계하여 고속도로 종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통 정보 시스템은 싸제 내비들에게 완전히 역할이 넘어갔으니 그 예상은 빗나갔다. 굳이 하이패스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한국 도로 공사는 전국의 모든 차량들에 하루빨리 하이패스를 장착시키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에서 하루빨리 톨게이트들을 싹 없애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 취지와 심정은 이해하지만, 하이패스의 보급이 늦어지고 있고 당장 내 차에조차 아직 하이패스가 없는 이유는 모든 차량들에 일일이 단말기를 달아야 하는 그 불편한 구조 때문이다. 초기의 진입 장벽이 높으니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운전자라면 별로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더구나 2000년대 이후로 전국의 수많은 고속도로들이 이 시스템 기반으로 거미줄처럼 개통돼 버렸으니 이제 와서 그걸 선뜻 고치지도 못한다.
물론 일개 건물의 간단한 무인 차량 인식 주차 시스템과, 전국에서 수십~수백만 대의 차량의 출입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금융거래를 안정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 시스템이 그 규모와 신뢰성이 서로 비할 바는 못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좀 더 가벼운 시스템이 초기에 도입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계속 남는다.

이건 마치.. 비슷한 1990년대 말에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차량을 도입할 때.. "앞으로 뭐 서울-부산을 겨우 1시간 56분 만에 왕래할 텐데, 차내에 편의 시설 같은 건 별로 없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객실에 콘센트를 전혀 설치하지 않은 것과 같은 급으로 예상이 빗나갔다.

2차 구간에 대전· 대구 도심 구간까지 이제 경부 고속철은 전구간이 완전 개통했음에도 불구하고 KTX는 그 정도로까지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철도 건설이 세월아 네월아 지연되는 동안 전국민에게는 스마트폰이 보급됐고 전기 충전 없이는 잠시도 견딜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 새마을호에도 있는 콘센트가 KTX에 없는 것은 정서상 받아들여질 수 없었으며, KTX 산천에는 곧장 콘센트가 추가되었다.

서울 2기 지하철의 경우, 미래에 건설 예정인 3기 지하철과의 환승을 고려해서 나름 머리를 써서 여의도, 몽촌토성, 녹사평, 논현 등의 역을 만들었으나.. 몇 년 뒤 IMF 때문에 3기 지하철이 거의 다 파토 날 줄 그때 누가 예상했겠는가? 결국 기존 3· 7호선의 연장과 신규 9호선만이 예상대로 추진되었으며, 여러 역들 중에 여의도와 오금 역만이 미리 만들어 둔 확장 고려 설계의 수혜를 입었다.

이처럼 어떤 대규모 건축이나 공공재 시스템 구축 사업은 불과 10~20년 뒤의 미래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표준을 잘못 정해서 후손들이 대대로 고생하는 게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 글자판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용 전기 전압 220V 승압과 철도 표준궤는 미래를 내다보고 적절한 타이밍에 밀어붙여서 표준이 다행히 잘 정착해 있다. 아직 1xx V의 굴레를 못 벗어나 있는 일본과 미국처럼 되지 않았다. 일본은 협궤까지 잔뜩 깔려서 인제 와서 이걸 어찌할 수도 없고 더 고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7.
2013년에는 베네딕트 교황이 몇백 년 만에 아주 이례적으로 재직 중에 자진 사임하더니만, 2016년엔 아키히토 일왕이 갑자기 생전퇴위를 선언했다. 어떤 조직의 최고 대빵을 종신직으로 수행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지위를 내려놓아 버리면 전직 대빵에 대한 예우도 그렇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 모로 난감해질 텐데.
이 방면으로도 자꾸 이변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왕이 인간선언을 한 지 70년 만의 일이다.

일왕 중에는 전임인 히로히토, 교황 중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재임 기간도 길었고 격변의 20세기 중후반 동안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후임 중에 아직 이들만 한 행적을 남긴 사람은 없다. 물론 아직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도 않기도 했고.

그래도 재위 기간과 영향력으로 치면 이들조차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는 다 버로우 타야 할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올림픽이 두 번 열리는 걸 봤으며, 또한 국가 원수로서 2차 세계 대전과 유튜브, 트위터, 스마트폰 시대를 다 경험한 할머니이다.
자기 재임 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을 도대체 몇 명이나 거쳐 갔는지도 모를 지경이고. -_- 무려 1920년대생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백 선엽 장군, 송 해 씨 같은 연배와 짬인데, 은퇴도 안 했다.

8.
(1) 주민등록증과 (2) 운전 면허증과 (3) 여권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개인을 법적으로 식별하는 데 완전히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신분증이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을 입증하는 관점 내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특성과 장단점이 있다.
민증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기본적으로 평생 가지만, 면허증은 소지자가 주기적으로 운전 능력을 입증하는 '갱신'을 해야 하며, 여권은 유효기간이 지나고 나면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세 신분증들 중에 발급하는 데 금전적인 부담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여권이다. 또한 여권은 신분증들 중 유일하게 카드가 아닌 수첩 형태이며, 소지자의 집 주소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분실을 대비해 국내 거주지와 연락처를 기재하는 란이 있긴 하지만, 이건 optional한 정보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상의 소재지를 정확하게 담고 있지는 않다. 쉽게 말해 국내 거주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여권을 업데이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에 자동차가 몹시 비싸고 귀하고 자동차 운전사가 완전 고소득 전문직이던 시절엔 면허증의 희소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던 것이 자동차가 넘쳐나고 개나 소나 운전을 하게 되면서 면허증이 거의 민증을 갈음하는 보편적인 신분증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단, 면허증이 제아무리 흔해 빠진 신분증이 됐다지만 얘는 자동차를 몰 정도의 최소한의 신체· 정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소지할 수 없다.

군대를 예로 들어 보면, 정말 대한민국 남자라면 '개나 소나' 다 의무적으로 가는 곳이지만, 반대로 눈 하나 없거나 엄지손가락 하나만 없어도 결코 갈 수 없는 곳이 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격이다. 면허증은 신분증들 중엔 능력에 의한 진입장벽이 가장 높다.

한편, 우리나라가 못살고 외국 여행을 함부로 할 수 없던 시절엔 여권도 면허증 만만찮게 능력 진입장벽이 높았다. 당장 비행기삯은 차치하고라도 유학, 이민, 사업 출장 같은 걸 아무나 할 수 있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여권 역시 아무나 언제든지 바로 만들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외국 나갈 일이 없는 사람들이 '안 만들' 뿐이지, 만들고 싶은데도 '못 만드는' 사람은 없다. (상습 여권 분실로 인한 페널티에 걸리지 않은 한)

이들에 비해 민증은 제일 범용적이고 원천적이다. 면허증은 do 지향인 반면, 민증은 순수하게 be 지향이기 때문이다. (뭐, 더 정확하게 쓰자면 면허증은 may do를 나타내고 자격증은 can do를 나타낸다는 차이도 있다.)
문득 신분증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생각이 나서 글을 써 봤다. 이를 영적으로 적용하면 구원받는 것도 자격증을 따는 게 아니라 순수 신분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한 200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공신력이 있는 신분증에 들어가는 증명 사진은 당사자의 귀가 반드시 노출돼 있어야 하고, 배경은 어떻고 시선은 어떻고 옷차림은 어떻고... 같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제정되어 적용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건 여권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관행이다. 전자 여권의 도입 때문인지, 9· 11 테러 때문인지 무슨 계기로 이쪽 규정이 더 엄격해졌는지가 궁금하다.

9.
옛날에.. 사회 행정 금융 시스템이 몽땅 전산화되고 사회 곳곳에 CCTV 같은 게 생기기 전엔 나쁘게 말하면 온갖 편법과 비리가 횡행했다. 보는 눈이 없고 악행의 증거를 객관적으로 챙길 방법이 없어서 말이다.
단적인 예로, 세리들은 규정된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차액을 '삥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걔들은 비록 부유할지언정 성경이 기록되던 시절부터 이미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런데 세금을 걷는 관원의 입장에서 역으로 실드를 쳐 주자면.. 그렇게 백성들을 잠재적 탈세자로 악하게 보고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을 경우, 소수의 진짜 나쁜놈들이 실소득을 속이고 고의적인 탈세를 저지르는 걸 감지하고 예방할 방법도 없었다. 이러니 전근대 시절엔 농민과 관리 사이의 빈부격차가 넘사벽이고 백성들의 삶이 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산화라는 게 없던 시절에는 열악한 검증 능력과 느린 행정 속도를 교묘하게 역이용해서 Catch me if you can 같은 초대형 사기를 치는 괴수가 있을 수 있었으며, 또 나쁜 쪽뿐만 아니라 좋은 쪽으로 예외와 일탈도 존재 가능했다.
간단한 예로는 박카스 광고라든가 영화 <진주만>에서 나오는 것처럼 원래는 규정상 안 되는데 샤바샤바 해서 이름을 추가해 넣고 군대에 쓰윽 입대하는 거 말이다.
자서전을 보면 지 만원 박사도 어렸을 때 그런 편법 유도리 덕분에 육사 같은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그런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옛날엔 어느 인심 좋은 시골 의사가 환자에게 "님은 그냥 잘 챙겨 먹는 게 약입니다" 이러면서 아예 돈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랬다간 아마 의료법 위반으로 잡혀갈 것이다.
공항에서는 아무리 다 쓰러져 가는 허약한 노인이라 해도 모르는 사람의 짐을 들어 주면 안 됨. 마약 던지기 범죄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옛날에 1차 세계대전 시절에는 공중전이라는 게 처음 등장했는데 텅 빈 하늘에서 전투기 조종사들끼리 마치 중세 기사의 공중 버전마냥 기사도가 잠시 꽃폈다. 도전장을 공군 기지에다 떨어뜨리고 정정당당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도그파이트가 벌어지고..;; 하긴 그때는 똑같이 사람을 죽이더라도 은폐 저격은 비열하고 치사한(!) 짓거리라는 참 순진 낭만하던 생각이 통용되던 시절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지상에서는 지휘관들이 봤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크리스마스 휴전'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1914년, 개전 직후 첫 해 일회성으로 그쳤지만).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웬 노턴 1세 황제(1819?-1880)라고 미국의 황제를 자처한 기인 아저씨가 레알 기성 정치인들의 입지까지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얻으면서 자칭 황제 행세를 하다가 갔다. 이게 진지하다면 내란죄에 근접해 보이고, 개그라면 허 경영 같은 과대망상 병맛 느낌도 들지만, 그는 위험하지 않으면서 허 경영보다는 100배는 더 제정신이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요즘 시대라면 나타나기가 더욱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다.

지금 사회가 점점 더 자극적이고 관능적인 걸 쫓아가며 물질 황금만능주의로 치닫고는 있으나, 과거의 예외적인 깨알같은 인간미 추억에만 연연하느라 그 사회 시스템이 전산화 이전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는 믿음과 양심이 필요한 형태가 아니라 법과 규정과 시스템대로만 돌아가는 형태로 바뀌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과정이나 동기를 일일이 따질 시간은 없고 오로지 결과만이 중요하다.

10.
본인은 법학도가 아닌 관계로 잘은 모르겠지만.. 아래와 같은 개념은 마치 경제에서 성장과 분배 비율,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을 논하는 것만큼이나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고 사람 취향을 많이 타는 논쟁거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 사법거래: 비록 쳐죽여도 시원찮을 큰 죄를 지었더라도, 여죄를 순순히 자백해서 행정력 낭비를 줄여 주고 공범 검거 같은 추후 수사에 큰 기여를 했다면 형량을 많이 줄여 준다. 전근대적인 고문이 말 그대로 채찍이라면, 사법거래는 당근에 해당되겠다.
  • 함정수사: 경찰 측이 용의자 내지 일반 시민에게 미끼를 던져서 일부러 죄를 짓도록 유도한 뒤, 누가 미끼에 걸리면 이때 뿅 나타나서 잡아 족친다. 암행 단속을 위해 단순히 사복 차림 내지 일반 차량으로 위장만 한 차원이 아니다.

사법거래는 공권력이 개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소요되는 공권력 행정력의 낭비를 줄여 준다는 점에서는 좋다. 억지로 옷을 벗기는 것보다는 당사자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게 좋듯이 말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정의 구현이 핵심인 형사 사건에다가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식의 실용주의 경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법 제도와는 무관한 시스템이지만 비슷한 예로 '기여입학'이 있다. 얘는 당연히 학문의 전당에다가 실용주의 경제 논리를 적용한 거라는 비판이 있다(돈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아야 하는 영역에 돈을??). 미국은 사법거래와 기여입학이 모두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아직 천민 자본주의의 때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곳에다 이를 적용하는 건 좀 무리인 듯하다.

경찰이 하는 일은 창과 방패 중 거의 언제나 방패 역할에 국한돼 있다. 오목으로 치면 늘 흑이 아닌 백돌만 잡는 격이다. 하지만 어떤 범죄는 이런 불리한 위치에만 있어서는 증거를 확보하고 적발하고 뿌리뽑기가 대단히 힘들고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경찰이 불가피하게 좀 더 적극적이고 사악(?)하게 나간다. 개인 단위의 단순 잡범이나 흉악범을 잡는 것보다는, 마약이나 조직적인 위조지폐, 탈세, 간첩처럼 범죄 조직이 뿌리깊게 얽혀 있고 말단의 행동대원 한두 놈 잡는 걸로는 일망타진이 되지 않는 범죄가 그 대상이다. 이쪽으로 일이 더 전문화되면 그건 경찰이 아닌 방첩기관의 영역이 된다.

특히 마약은 굉장히 가혹하다. 거의 연좌제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은 진심· 본의 따위는 묻지 말고 몽땅 잡아 가두는 식으로 수사하지 않으면 조직을 송두리째 소탕할 수가 없는가 보다. 그러니 함정에 걸리지 말라는 차원에서, 공항에서 짐을 옮겨 달라는 부탁조차 절대로 들어 주지 말라고 나라에서 홍보를 하는 것이다. "니가 마약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마약이 결과론적으로 너를 통해서 옮겨졌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참 매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공권력은 그 존재부터가 이미 필요악이다(세금을 안 내거나 지금보다 훨씬 더 적게 내는 꿈같은 세상이 상상이 되는가?). 그런 걔네들이 또 다른 필요악을 동원하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어 보인다. 경찰은 존재감 없이 있는 증거만을 토대로 수사해야 하는데, 적극성이 너무 커져 버리면 없는 증거를 조작해서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 갈 테니 그건 또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끝으로, 우리나라는 정당방위에 굉장히 인색한 반면, 애초에 총 들고 자기 집 지킨다는 관념이 강한 미국은 그에 대한 판정이 매우 관대하다. 이것도 사법거래· 기여입학· 함정수사 등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문화적인 차이 되겠다. 그래도 미국 쪽이 전반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책임과 자율을 더 강조하는 선진적인 체계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08 08:29 2017/01/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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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라 vs 하지 말라

세상의 법이나 규칙 같은 것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하라'(do)보다는 '-하지 말라'(don't) 위주로 만들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시험 문제야 학습자의 심리적인 영향을 감안하여, "-틀린 예는?, -아닌 것은? -없는 것은?" 같은 부정적인 문제는 일정 비율 이상 만들지 말라고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러나 법률은 아무래도 죄를 다루고 사람의 재산과 생명을 다루다 보니 심각하고 부정적인 말이 많다.

자동차나 총기, 전기톱, 독극물 같은 위험한 물건의 취급 설명서는 온갖 오· 남· 악용 상황을 금지하는 주의· 경고문으로 가득하다.
복싱은 룰의 태반이 금지 반칙 조건의 리스트라고 한다. 그 덕분에 위험한 격투기이면서도 신사의 스포츠로 품위가 유지되는 듯하다.

프로레슬링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Please, don't try this"(제발 따라하지 마세요!)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don't 규칙이다. -_-;; 옛날에는 at home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저건 다~ 전문가들이 지극히 통제된 환경에서 각본 다 짜서 하는 액션이고, 그러고도 후유증이 쌓이고 가끔은 안전사고도 나니... 일반인이 현실에서 따라할 생각이라고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home을 붙인 것이었다. 그런데 "응? 집이 아니면 학교나 도장에서는 해도 된다는 얘기네?" 이렇게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사고 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던지라 at home은 나중에 빠지게 됐다.

don't에 비해 do 법은 "납세나 병역 따위의 의무를 수행하라" 말고는 흔치 않다.
세상법에서는 어린 자녀를 제대로 먹이고 재우고 치료하지 않은 것 정도가 꽤 적극적인 do 법의 위배이다. 이것 말고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도 만드네 마네 하는 말이 있지만, do 법은 아무래도 마음의 동기를 측정 가능치 않다 보니 적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까 말이 나온 자녀 부양도 do 법의 위배가 걸리는 것보다는 자녀를 학대하지 말라는 don't 법의 위배까지 간 뒤에야 적발되고 처벌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성경에도 물론 don't 법이 적지 않다. 특히 최초의 법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도 don't 법이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 do 법도 의외로 좀 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 계명과 인간 계명의 중간쯤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제4와 제5는 don't가 아니라 do 계명이다.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에게는 단순히 패륜을 저지르지 '않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이상의 적극적인 예우를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don't는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do까지 해야만 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
또한 안식일은 유대인과 하나님 사이의 표적으로서, 일정 주기로 강제로 쉬는 것도 당장 손해를 감수하는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다. (안식일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6·25나 진주만 폭격이나 다 일요일에 벌어졌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라고 돼 있으니 don't가 아닌 do 형태라고 본다.

구약 모세오경을 보면, 신성모독을 저지른 어느 혼혈아만 공개처형(레 24:10-23)을 한 게 아니라, 안식일에 일을 하다 걸린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도 나온다(민 15:32-36).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 흉악범도 아니고 겨우(?)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중범죄로 간주하여 죽였던 것이다.

안식일이야 신약 시대에 직접적으로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성경엔 믿지 않은 것, 기도를 게을리 한 것, 복음 안 전하는 것 등 더 적극적으로 do 법을 명시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도 많이 있는 셈이다.

특히 오늘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죄, 지옥 가는 유일한 죄"는 살인· 간음· 사기처럼 하지 말라는 짓을 저지른 죄가 아니라, 하라는 것을 안 한 죄이다!
마치 출애굽 직전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반드시 발라 놓아야 한다거나, 놋뱀을 반드시 바라봐야만 살 수 있다거나 한 거처럼.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2. 법을 만드신 분, 법 위에 계신 분

성경에는 신약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한 예가 아주 많다. 이것은 성경과 성경간의 연계 효과를 강화하고 내용을 교차검증하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가령, 여느 무신론자 개독안티가 아니라 예수 믿고 교회도 댕긴다는 사람이 창세기 1~3장은 설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렇게 치고 들어가면 된다. "야, 니가 믿는 그 예수님도 아벨이 실존 인물이고 의인이라고(마 23:35, 눅 11:51) 아주 진지하게 인증을 했구만 그럼 예수님도 팩트가 아닌 거짓을 믿은 거냐?" 이런 식이다.

어디 그 뿐이랴? 여타 성경 인용의 정확도는 변개된 성경과 그렇지 않은 성경을 판단하는 잣대 역할도 한다. 막 1:2의 대언자들 vs 이사야가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성경의 용례를 찾아보면, 예전 성경을 언제나 문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정확하게 인용하지는 않은 예도 많다.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합 2:4)는 신약에서는 ‘자기’가 빠지고 의인은 그냥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 갈 3:11, 히 10:38)로 바뀐 걸로 유명하다. 그것도 무려 세 번이나 말이다. 이것 말고 또 다른 예로는 이 글을 참고하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예수님 역시 초림하셨을 때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안식일 때 제자들이 곡식을 비벼 먹었는데, 이때 주변 율법주의자들과 키배를 하면서 하신 말씀이 “사람의 [아들]은 곧 안식일의 [주]니라” (마 12:8)였다. 이건 결국 안식일을 뭐 어찌 하셨다는 뜻이겠는가? 이 모든 사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떤 법을 제정한 주체에게는 자신도 그 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그 기존 규칙을 초월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또 규칙 위에 예외를 둘 권리도 있다.
성경에는 다른 여러 사건들도 많지만 특히 에스더기가 그 두 사례를 잘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결국은 하나님께는 두 적용을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신자로서 그 모든 판단(judgment)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시 119:75).
이 관계를 잘 생각해 봐야 예수님/사도들의 성경 인용은 필요에 따른 적절한 수정인 반면에, 이브와 사탄의 성경 인용은 변개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킹 제임스 성경도 God forbid 같은 표현은 축자 번역이 아니라 동적 일치 의역이라는 식으로 딴지를 거는 시비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봤던 월트 디즈니 <알라딘>도 이 법의 권위와 관련된 비슷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술탄이 자스민 공주에게
“법에 따르면 너는 네 다음 생일 때까지 반드시 왕자와 결혼해야만 한다구.” (The law says you must be married to a prince by your next birthday.)
라고 융통성 없게 말하지만, 나중에 결말부에서는 결국 이렇게 말하니까 말이다.

법을 고치겠다. 난 술탄(왕)이니까. 지금부터 공주는 자기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다. (꼭 왕자가 아니어도)”
(물론,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락가락 이랬다 저랬다를 막으려고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 체계에서는 입법과 행정을 분리하고 있다. “짐이 곧 법이다”를 제도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막은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08 08:36 2015/09/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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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 범죄자
  •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 구류, 금고, 징역
  • 교도소, 구치소, 유치장, 소년원
  • 밀입국, 불법체류
  • 과태료, 범칙금, 과료, 벌금, 추징금
  • 불법주차, 부정주차

법률 용어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관점이 서로 다른 개념들이 의외로 많다. 이 글에서는 자동차 운전과 관련된 것들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다.

신호와 속도는 딱히 악의적이지 않아도 운전자가 경미하게라도 종종 위반하기 쉬운 사항이다. 주변에 차가 없고 위험 요소가 보이지도 않는데, 고지식하게 기다리기 싫고 규정 속도대로만 가기가 싫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그놈의 노란불 딜레마 때문에 어영부영 하다가 본이 아니게 신호 위반에 걸리기도 하며, 이 때문에 면허 시험에서 떨어지기까지 하면 억울함과 짜증이 최악에 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교통법규 위반을 단순 경범죄 급으로 용인했다가는 도로가 난장판이 되고 교통사고가 폭증할 것이니 누군가는 이걸 단속도 해야 한다. 자동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무겁고 빠르고 단단하고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속도· 신호 위반에 걸렸을 때 우리는 국가에게 돈을 뜯기는데, 그 형태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범칙금 또는 과태료라는 두 형태가 존재한다.
범칙금은 경찰이 실운전자에게 직접 징계를 내리는 관점인지라 돈+벌점 형태이다.
그러나 과태료는 실제 운전자가 아닌 차량 소유주에게 행정부가 제재를 가하는 관점이다. 같은 위반 아이템에 대해서 액수가 범칙금보다 약간 더 높지만(+1만원) 벌점은 없다.

이렇게 체계가 이원화된 이유는 단순히 "너 벌금+벌점 같이 받을래, 아니면 돈 더 내고 벌점은 안 받을래? 골라" 차원이 아니라 더 깊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도로 위에서의 경미한 위반을 일일이 다 단속하면서 운전자들을 사법부 차원의 형벌을 내려서 범죄자·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그리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보다 아랫단에서 더 가볍고 뒤끝 없는(?) 처벌을 선택하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또한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무인 카메라 단속에 걸린 건 현장에서 경찰에게 걸렸을 때와는 달리 면허증을 까고 실운전자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는 과태료 또는 범칙금 선택의 형태로 고지서가 날아온다. 교통법규의 위반에 대해서 실운전자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이런 단속 방식과 관점, 단속 명의의 차이로 인해 범칙금과 과태료라는 두 체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뭐,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원래는 범칙금이 원칙이긴 하지만.

땅은 좁은데 차가 너무 많은 관계로, 운전을 마친 뒤엔 불법 주정차도 운전자들이 꽤 자주 저지르는 위반 사항이다. 이로 인해 정부 기관에게 단속을 당했다면 그때는 운전자가 현장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 없이 차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긴, 애초에 주정차 단속은 구청/시청 공무원이 하지, 경찰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주차 위반 과태료는 일찍 내면 원래 내는 금액의 20%를 깎아 주는 듯하다.

과태료(행정부)와 범칙금(경찰)의 관계는 이렇게 설명이 됐는데..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을 때 뜯기는 돈은 과태료나 범칙금이 아니라 "벌금"이다. 이것은 집행 주체가 사법부이며(= 판사의 판결), 똑같이 돈을 내더라도 집행유예만큼이나 전과가 남는 대단히 무거운 처벌이다.
음주운전 정도면 사고 안 낸 초범이어도 액수부터가 수십~수백만 원급으로 나오니 단순 속도· 신호 위반 과태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벌금형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공무원 내지 직업 군인 진로에도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과료는 그냥 벌금의 다운사이즈 버전으로, 이 역시 과태료나 범칙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주로 쓰레기 무단 투기나 노상방뇨 같은 경범죄를 저지르다 걸렸을 때 부과되는데, 현실에서는 이것도 사법부 주관의 과료보다는 경찰 주관의 범칙금 형태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주차 얘기가 잠깐 나왔으니 말인데, 불법주차와 부정주차의 차이는 이러하다.

  • 불법주차: 어떤 자동차라도 세워진 채 공간을 차지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다른 차의 교통 흐름에 지장을 주고 시야를 가려서 사고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대로변을 포함해 교차로,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 소화전의 근처는 더욱 그러하다.
  • 부정주차: 차를 세울 수는 있는 곳이지만 그 차가 네 차는 아니다. ㄲㄲㄲㄲ 주로 거주지 우선 주차 구역이나 골목길, 아파트 단지 안이 이런 곳에 속한다.

그러니 불법주차는 길에 대해서 public한 성격이 강한 반면, 부정주차는 어떤 공간에 대해서 private한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지방 정부가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을 정하기도 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불법뿐만 아니라 부정 주차를 단속하기도 한다.

구석에 주황색 실선이 그어진 도로는 원래 주· 정차가 모두 금지되는 곳이지만 현실에서는 불법 주차된 차들이 많고 관례적으로 단속도 없이 그 관행이 묵인되는 곳도 왕왕 있다.

단, 위의 모든 규정에는 예외가 있다. 긴급 자동차를 비켜 주는 등 지극히 정당한 사유로 인해 정지선을 넘고 신호를 좀 위반한 거라면, 상황 입증만 가능하면 과태료 부과는 당연히 면제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차 위반도 정당한 사유로 인해 불가피하게 한 것이 인정되면 마찬가지로 구제 방법이 있으니 더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 보면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13 08:28 2015/06/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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