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인을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서울 여행을 하고 제 발로 지하철/전철을 이용하기 시작한 건 2001~2002년 사이부터이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중에서 5호선은 전동차가 아주 중독성 있는 특이한 가속 구동음을 낸다는 걸 스스로 인지한 게 한 2003년쯤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에서 어떻게 이런 구수한 소리가 날 수 있는지 나는 골똘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자동차처럼 연료를 폭발시키는 소리도 아니고, 비행기처럼 공기를 뿜는 소리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기계를 만들어야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나팔을 부는 듯한 관악기 소리에 가까운지, 아니면 현을 켜는 듯한 현악기 소리에 가까운지는 내 음악 지식으로는 판단을 못 하겠다.

그래서 내부 디테일을 좀 공부하다 보니 몇 가지 용어를 알게 됐다. 전동차의 동력비 변환 메커니즘은 저항 제어, 쵸퍼 제어에 이어 반도체를 이용한 최신 기술인 VVVF(가변 전압 가변 주파수) 제어 방식으로 변모해 왔는데, 바로 VVVF 초창기에 속하는 차량이 이런 독특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VVVF도 다 같은 물건이 아니다. 초기의 VVVF-GTO 방식은 윙~윙 하는 소음이 큰 편이지만, 나중에 등장한 VVVF-IGBT 방식은 구동음이 조용해진 편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는 물론 GTO 방식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이곳에서.. 그리고 또 이곳 설명도 꼭 봐라, 두 번 봐라.

철덕들이야 이 소리를 아주 좋아하지만, 일반인들은 5호선 열차가 주행 중에 너무 시끄럽다고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자갈 대신 콘크리트 노반, 좁은 터널, 굴곡이 많은 선형 등 여러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당시 첫 도입되었던 VVVF 인버터도 소음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긴 했다. 게다가 5호선 차량의 인버터는 원래 지하도 아니고 지상 전철용 부품이 납품된 거라고도 하고.

그래서 5호선의 운영사인 도철에서는 장기적으로 5호선 전동차의 인버터를 더 조용한 것으로 차츰 교체하기로 계획을 세웠으며, 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인 2012년 2월, 제 502편성 열차 하나를 시범적으로 독일제 VVVF-IGBT 인버터로 교체해서 굴리기 시작했다.

난 그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열차와 마주칠 일은 없었다. 수십 편성짜리 열차 중에 달랑 하나만 바뀐 거니까 말이다.
그랬는데.. 며칠 전에.. 드디어 조우했다!

환승을 위해 겨우 두 정거장 구간밖에 이용을 못 해서 구동음을 충분히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2-3-9호선 신형 전동차보다도 더 조용한 듯하다. 그쪽 계열 소리가 아니다. 첫음은 G와 G# 중에서 G에 더 가까웠지 싶다.
내가 지난 10년간 탔던 5호선답지 않게 전동차의 구동음이 너무 조용해져서 적응이 안 된다.

마치 예전에 6호선에서 잠깐 다니던 전설의 609편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처럼 지금 5호선에는 혼자 구동음이 튀는 열차가 하나 다니기 시작해 있다.
이런 식으로 이제 5호선의 마스코트인 ABB사 기존 구동음도 점점 듣기 어려워질 수 있으니, 이제 서둘러서 녹음하려면 녹음하고 구동음을 실컷 감상해 둬야겠다.

어쨌든 철도는 이렇게 아름다운 구동음을 내면서 달리는 전동차도 있으니, 참 웰빙 교통수단임이 틀림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20 08:39 2013/02/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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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서울 지하철 609 편성

서울 지하철 6호선 하면 2기 지하철 중에서 전구간이 가장 늦게, 21세기가 돼서야 개통한 지하철인 동시에 전대미문의 튀는 전동차 구동음으로 유명한 노선이다. 2000년대 초· 중반에 서울 지하철 5, 6호선의 신비로운 구동음은 내 삶의 낙이었다. 5, 6호선 모두 현대 정공이 차량을 제작했는데 어째 인버터 부품은 서로 다른 회사 것이다(5: 스웨덴 ABB, 6호선: 일본 미쓰비시). 그래서 구동음도 제각각임.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철도 차량의 핵심 기술은 일본, 유럽 등 외제 기술의 각축장이었다. 현대는 일본과 거래하고 대우는 유럽과 거래하는 식으로.. 차체 정도야 우리나라 기술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차량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전동기라든가 동력비 조절 인버터는 여전히 외제. 마치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런 와중에 전동차의 인버터를 국산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시범적으로 탑재된 차량이 바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609 편성이었다. 제작사는 현대 정공(로템 법인 출범 전). 이 연구는 한국형 고속철 개발과도 관련이 있을 텐데 뭔가 협동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국산 VVVF-GTO 소자를 탑재한 이 609 편성은 6호선 초기 전동차 중 하나로 바로 도입되어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승객 수가 적고 배차가 길어서 만만했는지 6호선이 시범적으로 선택된 듯하다. (6호선은 역당 승차 인원으로 치면 그 짧은 8호선보다도 이용객 수가 적다.)

그러나 609 편성은 이내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기술 미숙 때문이었는지 인버터의 회생 제동 효율이 시원찮고 고장도 잦았다.
그래서 현업에서의 운행 빈도는 차츰 낮아졌으며, 결국 2005년에는 완전히 퇴역하고 인버터가 다시 다른 6호선 전동차와 동일한 외제 VVVF-IGBT로 교체되어 버렸다.

그 당시에 선구자적인 철도 동호인이 레어템인 609 편성 전동차의 구동음을 녹음해 놓은 덕분에 그 자료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철도 음향 분석의 전문가인 사무엘 님은 자체 감정을 한 결과, 이 609 편성의 구동음과 가장 유사한 구동음을 내는 지하철은 대전 지하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구동음의 음높이가 둘이 굉장히 비슷하다. F#~G 사이인데 G에 더 가깝다.

http://blog.naver.com/sj10913/50072280911
http://blog.naver.com/sj10913/50014134335

이 블로그 운영자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음향 연구에 관심이 있는 분 같다. 위의 음향에서는 두 전동차 구동음의 음높이가 좀 차이가 있어서 609의 음높이가 살짝 더 높지만, 본인이 다른 경로로 입수한 609 구동음 중에는 음높이가 대전 지하철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있다.
둘의 음향은 굉장히 비슷하게 들리지만 둘은 기술적인 디테일도 다르고 제작사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더욱 신기하다.

이런 609 편성의 흑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였을까?
서울 도시철도 공사(SMRT)는 서울에서는 제일 어리고 파릇파릇한 지하철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와는 달리 전동차 부품의 국산화와 심지어 전동차 자체 개발에 남다른 관심과 의욕을 보여 왔다.

한때는 여러 병크들 때문에 도철의 음 사장님이 굉장히 많이 까였으나, 병크가 해소되고 또 스크린도어 기술의 국산화를 잘 이끌어 내면서 나름 능력도 인정받았다.
작년 12월 말에는 SMRT에서 드디어 코드명 SR-001이라는 자체 전동차 시제품을 선보이기까지 했는데(한국형 고속철의 코드명이 HSR-350이었던 것처럼), 사장이 직접 나서서 열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http://blog.naver.com/ianhan/120121006513

마침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연장을 앞두고 전동차가 더 필요해지기도 한지라, 양산형 차량은 7호선 3차 도입분 차량으로 곧바로 투입될 것이다.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6호선이 아닌 7호선이 혜택을 입을 예정.

역사가 워낙 짧아서 21세기 이래로 단 한 번도 신형 차량이 들어온 적이 없었고 전동차의 내구연한 연장으로 인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 서울 2기 지하철에, 새로운 바람이 예상된다. 사실 큼직한 통유리에 조용한 VVVF-IGBT 소자라는 오늘날 신형 전동차의 큰 트렌드는 서울 지하철 7·8호선 2차 도입분 전동차에서야 드디어 정착한 셈이다.

아니나다를까 저 행사가 열렸던 장암 차량 기지 한켠에는 SR-001과 나란히 과거의 609 편성 전동차도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보인다.

경부 고속철의 경우, 2차 개통을 계기로 일단 KTX가 예전보다 워낙 증편되다 보니 신형 차량인 KTX 산천도 더욱 많이 투입되었다. 산천은 잘 알다시피 프랑스 떼제베가 아닌 국산화 차량인데, 시설은 좋은 반면 아직도 이따금씩 고장을 심심찮게 일으킨다고 들었다.
기술이 살 길이다. 과거 나로 호의 실패도 그렇고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국 철도 기술도 점차 성숙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이 나라에 이공계 엔지니어가 더욱 대접받는 풍토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1/01/15 19:28 2011/01/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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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음악 교실

1.

지난 남아공 월드컵 때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그런데 경기 중계 방송을 보고 있으면, 경기장 내부에서 웬 웅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서 귀에 거슬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영어로는 drone/droning이라고 한다. 딱 정확한 표현이다.
스타크에서 저그의 일꾼 유닛인 드론이 이 단어이다. 설정상 드론은 말벌인데, 웅웅 윙윙거리면서 일을 한다나?)

본인은 그게 무슨 잡음인지 알지 못했다. 더운 여름에 아프리카에서 축구 경기를 개최하다 보니 더워서 냉방기라도 가동하는 소리인가 했다. -_-;;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거기는 남반구이기 때문에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며, 저녁에는 사람들이 숫제 긴팔까지 입었다.

잘 알다시피 그 소리는 부부젤라라고 하는 나팔 비슷하게 생긴 아프리카 민속 악기 소리이다. 관중석에서 이런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이해해 달라고 해설가들이 몇 차례나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소리는 지하철에서 나는 이 소리와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조용한 지하철 승강장에서나, 아니면 지상에 돌출돼 있는 지하철 터널 통풍구 근처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친숙한 이 소리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런 기계음 같은 소리도 엄연히 악기로 내는 소리인데,
하물며 전동차 VVVF 구동음은 영락없이 음악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아예 그걸로 노래까지 만든 적이 있다. ㅋㅋㅋ
http://www.youtube.com/watch?v=EExvEF2zudA 지멘스 옥타브는 음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

본인은 국내 유일 & 최초의 Looking for you 채보자이다.
악보를 본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그걸 채보했냐고 내게 묻곤 했다.
하지만 이건 천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노력의 산물이다. Looking for you를 끈질기게 한 3천 번만 들으면 누구라도 16분 음표 하나 안 놓치고 그대로 채보할 수 있다. Looking for you를 뼛속까지 내 음악으로 소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새마을호를 제대로 탔다고 간주할 수 없다.

곡 중에는 아래와 같이 색소폰으로 좀 어려운 기교를 부린 부분이 있는데, 그런 곳은 소리 재생을 절반 이하로 늦춰서 끈질기게 들으면서 음표를 정확하게 그려 넣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악보를 교회에서 작곡을 전공한 어느 형제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더라. “이런 부분은 들리는 대로 받아적다 보니 16분 음표 여러 개로 복잡하게 표기했겠지만, 실제로는 꾸밈음이겠군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식음을 표현하는 꾸밈표는 악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매크로와 같은 존재일 거라고 말이다. 간단한 꾸밈표 중 하나인 스타카토를 예로 들어 보자.

#define 스타카토(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2);   쉼표((길이)/2);   }
#define 메조_스타카토(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3/4); 쉼표((길이)/4);   }
#define 스타카티시모(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4);   쉼표((길이)*3/4); }

http://user.chollian.net/~kktae386/menu02/me0206.htm 참고. 꾸밈표도 여럿 존재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정한 패턴을 띠는 바리에이션을 한 기호로 간단하게 축약해서 표현하려는 욕망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31 08:45 2010/08/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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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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