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음악 교실

1.

지난 남아공 월드컵 때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그런데 경기 중계 방송을 보고 있으면, 경기장 내부에서 웬 웅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서 귀에 거슬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영어로는 drone/droning이라고 한다. 딱 정확한 표현이다.
스타크에서 저그의 일꾼 유닛인 드론이 이 단어이다. 설정상 드론은 말벌인데, 웅웅 윙윙거리면서 일을 한다나?)

본인은 그게 무슨 잡음인지 알지 못했다. 더운 여름에 아프리카에서 축구 경기를 개최하다 보니 더워서 냉방기라도 가동하는 소리인가 했다. -_-;;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거기는 남반구이기 때문에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며, 저녁에는 사람들이 숫제 긴팔까지 입었다.

잘 알다시피 그 소리는 부부젤라라고 하는 나팔 비슷하게 생긴 아프리카 민속 악기 소리이다. 관중석에서 이런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이해해 달라고 해설가들이 몇 차례나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소리는 지하철에서 나는 이 소리와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조용한 지하철 승강장에서나, 아니면 지상에 돌출돼 있는 지하철 터널 통풍구 근처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친숙한 이 소리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런 기계음 같은 소리도 엄연히 악기로 내는 소리인데,
하물며 전동차 VVVF 구동음은 영락없이 음악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아예 그걸로 노래까지 만든 적이 있다. ㅋㅋㅋ
http://www.youtube.com/watch?v=EExvEF2zudA 지멘스 옥타브는 음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

본인은 국내 유일 & 최초의 Looking for you 채보자이다.
악보를 본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그걸 채보했냐고 내게 묻곤 했다.
하지만 이건 천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노력의 산물이다. Looking for you를 끈질기게 한 3천 번만 들으면 누구라도 16분 음표 하나 안 놓치고 그대로 채보할 수 있다. Looking for you를 뼛속까지 내 음악으로 소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새마을호를 제대로 탔다고 간주할 수 없다.

곡 중에는 아래와 같이 색소폰으로 좀 어려운 기교를 부린 부분이 있는데, 그런 곳은 소리 재생을 절반 이하로 늦춰서 끈질기게 들으면서 음표를 정확하게 그려 넣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악보를 교회에서 작곡을 전공한 어느 형제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더라. “이런 부분은 들리는 대로 받아적다 보니 16분 음표 여러 개로 복잡하게 표기했겠지만, 실제로는 꾸밈음이겠군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식음을 표현하는 꾸밈표는 악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매크로와 같은 존재일 거라고 말이다. 간단한 꾸밈표 중 하나인 스타카토를 예로 들어 보자.

#define 스타카토(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2);   쉼표((길이)/2);   }
#define 메조_스타카토(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3/4); 쉼표((길이)/4);   }
#define 스타카티시모(음높이, 길이) \
  { 음표(음높이, (길이)/4);   쉼표((길이)*3/4); }

http://user.chollian.net/~kktae386/menu02/me0206.htm 참고. 꾸밈표도 여럿 존재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정한 패턴을 띠는 바리에이션을 한 기호로 간단하게 축약해서 표현하려는 욕망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31 08:45 2010/08/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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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페르치 2010/09/08 22:48 # M/D Reply Permalink

    'Looking For You' 라면 Kirk Franklin의 노래를 말하는 겁니까? 그런류의 노래도 들을 만한가요?

    1. 사무엘 2010/09/09 01:02 # M/D Permalink

      아니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는 MALTA라는 일본의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작곡하고 연주한 곡입니다. 1988년에 발표된 곡이고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 스페르치 2010/09/10 00:05 # M/D Permalink

      감사합니다. 그럼 재즈류는 들을 만합니까? 음란하지는 않습니까?

    3. 사무엘 2010/09/10 01:49 # M/D Permalink

      엄밀히 따지면 재즈는 육신적인 음악이죠.
      저는 Looking for you만 빼면 재즈 장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며, 그런 스타일의 곡이 교회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즉, 저 곡만 철도와 결부지어 예외적으로 빠져든 경우입니다. ㅎㅎ
      (뭐, 예외도 너무 많아지면 위험하겠죠.)

  2. 인민 2011/07/17 22:28 # M/D Reply Permalink

    한번 날개셌(희한하게 난 오타) 게임 10단계 BGM이나 채보해 볼까요
    근데 그 BGM 제목이 있나요?

    1. 사무엘 2011/07/18 00:55 # M/D Permalink

      6종류의 BGM 중 유일하게 그 곡만 제가 정체를 잘 모릅니다. 무척 옛날에 어느 미디 자료실에서 우연히 구한 곡이지요. 제목도 Summer이어서 문장도, 고유명사도 아닌 그냥 보통명사이다 보니 정체를 파악하기 더욱 어려울 겁니다.

    2. 인민 2011/07/18 23:18 # M/D Permalink

      쿨럭;;; 하나도 여름같지는 않은데 말이죠(Summer라는 타이틀은 6단계가 더 어울리는)
      오히려 기계/시계돌아가는소리를 음악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했다고는 할수 있어도(전동차 VVVF에 비하지는 않겠지만요 :->)
      찾으려고 미디 사이트 휩쓸어보았지만 없네요. 혹시 그 BGM의 미스테리성 때문에 지옥훈련 BGM으로 쓰신건가요?

      “지옥훈련”의 타이틀을 달았으면 타자인들에겐 미안하지만 조금 병크같은 분위기라도 느낄 수 있도록 에어맨이 쓰러지지 않아 무언어판도 괜찮을··· 어라?(문제는 충분히 길어야 하지만)

      추신. 6단계와 8단계 BGM은 “정체를 알고” 계시는 건가요?

    3. 사무엘 2011/07/19 07:26 # M/D Permalink

      그래도 가끔 파도 소리도 들리잖아요. ㅎㅎ
      6과 8단계의 BGM은 유명한 국내 가요입니다.

    4. 특백 2011/11/09 15:44 # M/D Permalink

      그 BGM (아직 남아 있다면 ㄲ)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상업적인 용도로 쓰지 않습니다. ←(혼잣말 : 애초에 쓸리가 없잖아 그리고 지체간에 이게 뭔소리여)

      하여간.. 소장은 하고 싶네요

    5. 사무엘 2011/11/09 16:41 # M/D Permalink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죠.

  3. 소범준 2011/09/25 19:52 # M/D Reply Permalink

    1. ㅋㅋ 역시나 이것도 각종 오덕스러움의 집합체네요.
    작년 월드컵 때 부부젤라 소리는 가히 사람을 정신 사납게 하는 성가신 거??-_-;;
    그래도 VVVF 구동음은 훨씬 낫죠. ㅋㅎ

    2. 링크 달아주신 일본 전동차 패러디 락 음악은 웬만한 오덕 아니면 짜릿함을 보지 못하겠군요.
    전동차 구동음은 가히 환상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음악의 또 한 분야?ㅎ;;

    3. 철도와 성경은 선순환으로 충분히 엮일 수 있지만, 신앙과 또 다른 분야는 흠좀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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