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세계사 중에서 중국의 역사는 1음절로 O나라 이런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재미있는 분야이다. 은나라 주나라 금나라 요나라.. 특히 요나라 위에는 이불나라가 있다는 개드립이 나돌기도 했다. -_-;;

내가 보기에 중국의 역사는 대략 4개의 큰 구획으로 나뉘는 것 같다.
시즌 1은 춘추 전국 시대에다가 만리장성과 진시황으로 유명한 옛 진나라, 그리고 漢나라 정도까지다.
그 이름도 유명한 삼국지는 시즌1의 끝물 정도가 배경이다. 춘추 전국 시대인 줄 알았는데 거기랑은 다르다.

시즌 2는 진(위진 남북조)-수-당.
바빌론이 니므롯 시절의 왕창 고대 바빌론이 있고 유대인이 포로로 끌려갔던 후대 바빌론도 있듯이..
중국 역사에는 같은 이름의 나라가 나중에 중복 등장하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 정도나 그렇다. 단군조선, 이씨조선.. =_=;;

진나라가 존재감이 컸던지 중국을 뜻하는 Sino-계열 접두사 음운은 여기에서 유래됐을 거라 추정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Korea처럼 말이다.

안록산의 난, 사사명의 난은 당나라 후기에 등장한다.
안록산 - 안경서(아들) - 사사명(부하) - 사조의(부하의 아들) -_-;; 의 순으로 죽이고 죽이는 게 되풀이됐던 것은 성경에서 엘라 - 시므리 - 오므리의 순으로 부하가 하극상을 벌이던 북이스라엘 왕 역사와 비슷하기도 하고, 또 "케네디 - 오스왈드 - 잭 루비"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당나라 군대가 왜 어쩌다가 무슨 20세기 초중반의 이탈리아군처럼.. 군기 개 빠진 막장 군대의 대명사가 돼 버렸는지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의문이다. 당나라 당나라 하니까 당나귀가 떠오르는데.. ㄲㄲㄲ 당나귀조차도 '당나라에서 들여온 품질 좋은 나귀'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시즌 3은 중세-근대라고 할 수 있는 송-원-명-청이다.
대륙은 한족뿐만 아니라 만주족이니 거란족이니 심지어 몽골 민족이니.. 여러 민족이 번갈아가며 차지했던 적이 있다.
캐세이 패시픽 항공.. 이러는 cathay.. 이것도 '거란족'에서 유래된 또 다른 중국 명칭이다.

황건적(한나라 시절에 활약)이랑 홍건적(원나라를 멸망시킴)은 정말 이 정도로 서로 완전히 다른 시대에 출몰했었구나. 까먹고 있었다. ㄲㄲㄲㄲㄲㄲ

강시처럼 땋은 머리에 동그란 모자 쓰고 있는 변발.. 이건 마치 흰 두루마기에 갓 쓴 조선 선비만큼이나 판에 박힌 중국 의상인데.. 당연히 청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 조선은 임진왜란 때까지는 명나라와 동맹도 맺었지만, 얼마 못 가 병자호란 때는 후신인 청나라한테 털렸었다.

마지막으로 시즌 4는 현대에 속하는 통일 중화민국, 그리고 1949년 이래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공 vs 대만 구도가 되겠다.
소련은 무너지고 나서 러시아로 국호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중국은 지금도 국호와 정체성이 동일하다. 그저 경제를 개방했고 한중 수교를 한 덕분에.. 옛날 정도로 날을 세우는 적성국가까지는 아니게 됐기 때문에 중공 대신에 중국이라고 편의상 불러 줄 뿐이다. 중공의 본질은 현재까지도 바뀐 게 없다.

저 많고 많은 나라들을 거치면서 쟤들은 일본처럼 해가 뜨는 동쪽 근원도 아니고, 무려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국'이라는 자뻑 칭호를 스스로 쓸 생각을 언제부터 했나 모르겠다. 서양에서 지중해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쟤들은 공산당 시절에 전통 문화를 많이 단절시켰다. 현대의 글자(간체자)와 발음 표기(한어병음)는 시즌 1~3시절 것과 호환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용어도.. 옛날 중국어는 중문이라고 부르고, 현대 중국어는 '한어'라고 부른다. 's (~의)가 중문에서는 之이지만 한어에서는 的인 것.. 다들 아실 것이다.

역사가 유구하니 문화재가 많이 전해지기야 하겠지만 아편 전쟁 때 털린 것, 문화대혁명 때 자폭시킨 것=_=;; 장 제스가 망명 떠나면서 싹싹 긁어 간 것도 많다. 오히려 장 제스가 긁어 간 것들이 문혁 때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됐을 지경이니..

나도 동심이 있던 시절에는 중국은 대륙의 기상 같은 재미있는 게 많은 동네이고 우리와 같은 일제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호의적인 쪽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도와준 건 대만의 장 제스이지 마오는 1도 기여한 거 없잖아? 오히려 북괴 편만 들었지.

요즘 같은 시국에서는 난 중공의 행패를 놔두고서 반일만 할 생각은 1도, 추호도 없다. 게다가 쟤들은 사실 1970년대 우리나라 유신 독재 시절보다도 더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고 온갖 매체들을 검열하고 심한 독재를 하고 있다.
중공은 짝퉁이나 미세먼지, 바이러스 같은 거 말고 제발 선한 것 유익한 걸 갖고 세계에 기여 좀 했으면 좋겠다.

여담으로, china와 japan은 소문자 보통명사로서 각각 도자기, 옻 칠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 korea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스크래블 게임에서 만들 수 없는 단어이지만, china와 japan은 허용된다.

2. 프랑스의 역사

(1) 일반적으로는 1940년대에 세계의 악역으로 엄청난 깽판을 쳤던 일본과 나치 독일이 많이 부각되는 편이다. 하지만 1800년대 초에는 프랑스도 유럽을 몽땅 전쟁터로 몰아넣었었다. 나폴레옹이 히틀러나 도조 히데키 이상의 전쟁광이어서 말이다.;;;
그는 자신은 군인으로서 전략 전술의 천재였고 타 인종 학살 같은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나 많은 자국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하고 사지로 몰아넣어 죽게 만들었다. 러시아에 쳐들어갔다가 동장군에게 나가떨어진 것조차도 프랑스나 독일이나 똑같았다. 그리고는 나중에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몰락했다.

(2) 독일이 전간기 때 "우리가 1차 대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질 리가 없었다. 이게 다 배후에 깔렸던 유대인, 빨갱이, 간첩 같은 놈들 때문이다"라는 인지부조화 합리화에 빠졌던 것처럼.. 프랑스도 과거엔 은근히 그런 감정이 있었다. 20세기 초, 마녀사냥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에서 벌어졌던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드레퓌스 누명 사건이다.
또한, 쟤들도 민족 순수주의 국뽕이 나치 독일(아리안 인종 게르만 민족..) 만만찮게 쩔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같은 소설도 지어졌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보면.. 독일이 아~~무 배경이나 맥락 없이 전적으로 혼자만 망상에 빠져 맛이 간 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프랑스 혁명 시절의 로베스피에르 아저씨에 대해 읽다 보면 옛날 이탈리아의 수도승 사보라롤라가 강하게 같이 떠오른다.
개인은 아주 금욕적이고 도덕적이고 청렴했는데, 뭔가 지도자로서는 진짜 피도 눈물도 없이 자기 신념을 밀어붙이고 다 때려부시고 죽이다가(?) 결국은 폭발한 민중에 의해 축출되고 처형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사보라롤라는 하드코어 종교인 수도승이었던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그 프랑스 스타일의 계몽주의에 심취해서 오로지 인간의 이성만 따지던 무신론자 내지 이신론자였다는 차이가 있다. 극과 극은 통했던 걸까.

(4) 난 대외적으로 칭송받는 것만치 프랑스 대혁명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 전 구제도가 정말 조선 말기 같은 X같은 상태이긴 했던 게 사실이지만, 혁명 진행 과정도 마치 6 25 도중의 광기어린 민간인 학살이라든가, 중국 문화 대혁명, 러시아 공산 혁명 같은 냄새가 느껴지는 게 많다. 마리 앙투아네트조차 "빵이 없다고? 그럼 고기를 먹으면 되지?" 이 정도로 막장 개썅년은 아니었다는 건 후대에 밝혀지지 않았던가..??

공포정치 시절에 단두대로 사람 목을 하도, 너무 많이 짤라서 뭐 어찌할 지경이었다~~ 이런 말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 스탈린 뺨치는 수준이었다. 과학자 라부아지에까지도 괜히 브루주아로 몰려서 목이 뎅겅 날아갔던 게 아니다.

(5) 쟤들은 뭘 그렇게 맨날 투쟁을 해대는지.. 프랑스 국가, 공산당 인터내셔널가(!!), 라 미제라블 영화에 나오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노래.. 세 곡이 다 뭔가 비슷한 심상이 느껴진다.
종교적으로는 유럽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정도를 골수 가톨릭 국가 3인방으로 칠 수 있겠다. (러시아는 정교회)
다만, 2차 대전 때 프랑스는 연합국이고 이탈리아는 추축국이 돼서 행로가 갈렸다. 스페인은 색깔이 좀 애매한 편..

3. 보너스: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

먼 옛날 시즌 1에 속하는 시기인 기원전 5xx~4xx년대엔 중국 대륙에 공자를 비롯해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뜬금없이 확 출현했었다. 왜 그랬을까?
더 나아가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탄생과 불교의 창시조차도 얼추 이 시기이다.
이건 본인이 생각하기에, 비슷한 시기에 먼저 벌어졌던 남유다 왕국의 멸망과 유대인 바빌론 포로기하고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잠언과 전도서의 전파)

내가 무슨 세계사 고대사 전공자는 아니니 이런 식으로 성경을 세상 지식에다가 끼워맞추는 건 좀 조심해서 최대한 신중하게 언급하려 한다만.. 저 정도면 유의미하게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한다.
"한자 속에 담긴 창세기" 이런 것도 좀 무리수 어거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양 양(羊) 자가 아름답다, 의롭다 등의 굉장히 좋은 뜻의 부수로 쓰이는 건 우연이 아니어 보인다. 물론 이런 건 다 심증일 뿐이다~~

4. 보너스: 프랑스와 중국에서 역적의 최후

1757년, 프랑스의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엔’은 행차 중이던 국왕인 루이 15세에게 난입해서 칼을 휘둘려 시해하려다가 실패하고 붙잡혔다.
그는 사형 집행에 앞서, 다리 주리 틀기,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꼬집히기, 그렇게 꼬집힌 상처 부위에다가 뜨거운 액체 유황이나 납 들이붓기 같은 끔찍한 고문을 무려 두 달 동안이나 당했다.

공범이나 배후가 없이 단독 범행임이 밝혀진 뒤엔 이 사람도 말의 뒤에다가 팔다리와 목을 연결하고 잡아 당겨서 뽑아 버리기, 즉 거열형으로 처형 당했다. 판결문부터가 깔끔하게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가 아니라 “피고인을 …이렇게 죽인다”로 커스텀 맞춤형-_- 처형 방식이 아주 디테일하게 적혀 나왔다.

왕인 루이 15세 당사자조차 “짐이 실제로 죽거나 다친 것도 아닌데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냐”라고 이의를 제기했을 정도지만, 주변에서 일벌백계를 보여야 된다면서 만류해서 형이 저렇게 집행됐다.

한편, 1864년엔 중국 청나라에서 태평천국 운동이 완전히 진압됐다. 이때는 나라가 태평천국이라는 내란과 아편 전쟁이라는 외환 때문에 대단히 어렵던 시절이었는데..
창시자인 홍 수전이 자살 내지 타살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아들 ‘홍 천귀복’은 도망쳤다가 붙잡혀서 겨우 15세의 나이로 능지형을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실, 도망을 잘 쳤으면 시골에서 자기 정체를 깔끔히 세탁하고 잠적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런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곱게 자란 금수저였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시피한 코흘리개 응석받이였다. 시골에서 궂은일을 도저히 할 수 있지 않았다.

얘는 태평천국이니 정치니 아무 관심도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어했고, 고문 도구들을 보고는 무서워서 울면서 자기가 아는 것을 몽땅 다 술술 불었다. 그래서 투옥 기간 동안 딱히 험악한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비의 죄를 물려받는 바람에 꼬박 하루 동안 산 채로 1000군데가 넘는 칼빵을 당하면서 살점이 파였고, 아파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서 정말 비참하게 죽었다. 아편을 잔뜩 먹이거나 심지어 미리 죽여 버린 뒤에 살을 파내는 자비 같은 것도 없었다.

태평천국은 뭔가 태조의 입맛대로 마개조된 사이비 신정국가를 지향했다는 점, 기존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않은 점, 10수 년 남짓밖에 못 가고 망했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의 태봉 궁예와 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원본이 기독교냐 불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만, 사건이 발생한 시기의 유사성(1800년대), 그리고 관군과 반군 사이에 악에 받쳐서 항복한 포로까지 몽땅 몰살했다는 점에서는 홍 경래의 난과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한편, 중국에서 능지형이 공식적으로 마지막으로 집행된 건 1905년 2월, Fou Tchou-Li (또는 Fu Zhu-Li)라는 죄수라고 한다. 이 사람도 VIP를 살해한 정치범..
이건 서양 선교사가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흑백이 아니라 컬러였다면.. 굉장히 끔찍할 것이다.
저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인권 천국이 따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1/08/21 08:35 2021/08/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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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철도 매니아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철 차량을 납품한 국가(알스톰)를 바로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철도뿐만이 아니라 항공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 그 내막을 들어 보면 놀랄 것이다(이미 상식 차원에서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과거에 지구를 누비는 민간 여객기(특히 대형)를 만드는 회사는 오로지 미국 보잉 사밖에 없었다. 독점이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건을 만들어 낼 기술과 자본력을 갖춘 곳이 지구상에 흔할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단일 건축물(위에 천장과 지붕이 있는-_-)은 바로 보잉 사의 비행기 생산 공장이라고 한다. 뭐, 미국 국방성도 무지하게 크고 아름답다고 하고, 또 미국 모처에 있는 퇴역 전투기 야적장도 가히 억소리 나는 규모라고는 하던데. 아무튼..;;

1970년대가 되자 이 민간 여객기 시장에 프랑스, 영국, 독일이 연합하여 끼어들었다. 그들이 세운 회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에어버스. 독일과 영국에서 부품을 만들어서 이들을 프랑스가 최종 조립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연구해서 콩코드만 만든 게 아니라, 독일까지 끌어들인 후 더 실용성이 높은 아음속 여객기도 개발해 낸 셈이다. 비행기 하나 개발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들었을까?

허나, 비행기는 잘 알다시피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비싼 물건이며, 다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주행 중의 risk가 크고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가 개발된 뒤에도, 보수적인 기존 항공사들은 지금까지 무난하게 안정성이 검증되어 온 보잉 비행기를 그냥 이용하지, 역사 짧은 파릇파릇한 회사에서 갓 만든 비행기의 도입을 꺼려 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에 도철(SMRT)에서 음 사장의 주도하에 야심차게 지하철 전동차를 자체 개발했지만, 수출은 고사하고 정작 근처의 서울과 인천시에서조차도 품질을 못 믿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던 걸 기억하라.
지하철이 가다가 선로 위에서 좀 멈춘다고 해서 승객이 다칠 리도 없겠건만, 그 안전한 철도 차량 도입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하물며 여객기는?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는 '홈그라운드'인 영국, 프랑스, 독일 국적의 항공사에서밖에 이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이윤은커녕 언제쯤 개발비나 제대로 뽑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1979년, 우리나라의 대한 항공이 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변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에어버스 항공기를 대량 도입하여 이를 국내선과 아시아권에서 무사고로 성공적으로 잘 운영한 것이다. 그래서 에어버스가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 민항기 시장에서 보잉 사와 대등한 양분 구도를 차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프랑스로서는 한국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었다. 당시의 대한 항공의 회장(겸 한진 그룹 회장)이던 故 조 중훈 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프랑스에서 굉장히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았으며, 그 뒤에도 프랑스를 방문이라도 한다치면 거기서 완전 국빈급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보통은 자국의 고위 정치인 또는 군 장성이나 받을 법한 등급의 훈장을 외국의 민간 기업인이 받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의 아들도 나중에 프랑스에서, 아버지의 것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훈장을 받았다.

뭐, 그가 매국 행위라도 해서 외국에서 훈장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국내 기업을 외면하고 외국 기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쨌든 한국과 프랑스에서 모두 해피엔딩 스토리를 만든 것이고 잘 하긴 한 셈이다. 한때는 대한 항공이 사고를 많이 내서 특히 1997~99년 사이엔 1년 간격으로 비행기를 한 대씩 깨먹은 흑역사가 있는데, 그건 다 보잉 기종이었고 에어버스 기종은 아니었다. =_=;;;

이런 와중에 미국과 유럽에 이어, 잘 알다시피 중국까지도 항공· 우주 산업에 본격 뛰어들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공계 육성 다시 좀 하려나. ㄲㄲㄲㄲㄲㄲㄲㄲ
심지어 나로 호도 차라리 러시아가 아닌 중국과 공동 연구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돌 정도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 프랑스는 상술했듯이 우리나라의 철도와 항공하고 이런 깊은 인연이 있고,
관련 국가로 또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차라는 현대 포니를 디자인한 사람은 쥬지아로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이고,
아시아 음반으로서 세계를 석권한 88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
이다.
뭔가 한국적인 정체성이 느껴지는 작품에 이런 외국인의 손길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30 08:21 2011/05/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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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지금까지 이 블로그의 역사 카테고리에 올라오는 글은 대체로 우리나라 역사, 그것도 현대사 쪽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신선하고 색다른 소재를 다루도록 하겠다.
이번에 ‘사무엘 블로깅 스튜디오’-_-;;의 내부 아이디어 회의에서 소재로 채택된 아이템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유명한 외국 인물이고 그것도 굉장히 옛날 사람이다.

잔 다르크!
오를레앙의 성녀/처녀라고 불리고 백년 전쟁에서 조국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구한 영웅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한 세대 남짓 전에 살았다.
(프랑스는 영국과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는 훗날 미국과도 어째 비슷한 구도이다.)

잔 다르크라는 명칭은 전통적인 first name / last name 형태는 아니다. 아르크의 조안(Joan of Arc) 정도에 가까우며, 이는 성경에서도 막달라 마리아가 막달라의 마리아인 것과 비슷한 맥락임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 관순 열사가 잔 다르크와 여러 모로 비교되곤 한다. 잔의 생년은 1412, 몰년은 1431인데, 거기에다 490만 더하면 유 관순의 그것(1902~1920)과 거의 일치한다. 비록 성장 배경과 행적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으나, 만 20세도 못 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은..;; 실제로 유 관순 자신부터가 학창 시절에 잔 다르크의 전기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기도 잔처럼 살고 싶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종교에 관한 한 아주 독실했다는 것. 유 관순은 이화여대의 전신인 학교에 다니면서 외국의 개신교 선교사로부터 감리교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다. 잔은? 가톨릭 쪽인데, 아예 하늘로부터 ‘조국을 구하라’라는 계시=_=를 받았다고 한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변장을 하고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왕을 바로 찾아서 알아보고 경의를 표할 정도의 신통력도 소유했다고. (물론 왕을 전에 만나 본 적이 없는데도)

본인은 성경 이외의 직통 계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이상한 은사주의와 결부시켜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북한 같은 극단적인 곳에서 정말 극소수 예외적인 간증이 나오는 건 제외 내지 판단 보류). 그러니 잔 다르크는 꽤 흥미로운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티마 예언 같은 게 생각나서 살짝은 섬뜩하기도 하다. 그걸 심지어 UFO 현상과 결부짓는 연구자도 있다던데.

나름 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있던 유 관순과는 달리, 잔 다르크는 아예 글을 배우지도 못한 문맹이었고 스펙상으로는 정말 보잘것없는 촌뜨기 시골 소녀였다. 그러나 자기를 깔보고 모함하고 해치려는 사람들과의 언쟁은 매우 논리정연하고 유창하게 잘 했다고 한다.1) 마 10:19-20이나 행 6:10이 적용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식 교육도, 군사 훈련도 받은 적이 없는 겨우 여고생뻘 소녀가 어떻게 해서 전쟁터에서 그렇게 큰 공을 세웠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전투병으로든, 지휘관으로든, 아니면 그냥 얼굴마담 정신적 지주일 뿐이었든지 말이다.
잔은 그 흔한 초상화조차 전해지지 않으며, 오늘날 전해지는 관련 그림들은 다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화가가 그린 상상화이다. 다만, 10대 소녀를 30대 이상의 아줌마처럼 삭힌-_- 그림이라든가, 치렁치렁한 긴 생머리 차림으로 갑옷을 입은 여군 모에화 그림은 아무래도 고증 오류가 아닌가 싶다. -_-;;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뮬란을 생각해 보자. ㄲㄲ)

그러나 이런 잔의 최후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너무나 비참했다. 군주인 샤를 7세와의 관계가 어째 성경에서 다윗과 사울의 관계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라? 다윗도 양치기 출신 촌놈) 듣보잡 촌뜨기 소녀가 전쟁에서 공을 세워 너무 유명해지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자, 그녀의 도움을 받은 국가는 위기에서 벗어난 뒤부터 그녀를 오히려 경계하게 된 것이다.2)

그렇게 프랑스 황실과 불편한 사이가 되어 있던 차에, 잔은 불리한 전투에 나갔다가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당시 관행이었던 몸값 지불이라든가 포로 교환 같은 대응책이 얼마든지 있었으며, 적국인 영국조차도 잔을 바로 죽여 버리는 것보다는 그런 협상을 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샤를 7세는 어차피 정치적으로 이용 가치가 끝난 잔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그녀를 고의로 철저히 외면했다. 자기를 당당한 프랑스 국왕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부하를 그렇게 배신하는 천하의 개쌍놈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른바 토사구팽.

마치 예수님이 동족으로부터 버림받았듯이, 잔 다르크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적국인 영국에서 온갖 고초와 수모를 당했다. 듣자하니 잔은 여성용이 아닌 일반 (남자) 군인용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힘들게 지냈으며, 간수들로부터 수시로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성경에서 삼손이 블레셋 군대에게 붙잡히고 나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를, 예수님이 체포된 후 무슨 짓을 당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잔을 이용해서 프랑스로부터 단물을 좀 빼내려고 했는데 정작 프랑스가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그럼 영국의 입장에서는 적군인 잔을 살려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잔이 차라리 삼손처럼 다른 데에 이용할(노동력-_-) 가치가 있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죽이긴 하는데, 뭔가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서 죽였다.

잔을 정죄하는 재판 역시 성경의 스토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성경을 보면 악의 무리들이 체포된 예수님을 짜고 치는 고스톱 각본대로 정죄하듯, 잔은 변호사 선임이나 가족 면담 같은 일체의 법적 권리도 행사하지 못했으며 재판은 일방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됐다. 잔은 훗날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도 모르고서 ‘본인은 교회의 처분대로(=사형) 따르겠습니다’ 문서에 그냥 서명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막장이 따로 없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행적으로는 도저히 트집 못 잡으니까 신성 모독과 하나님 사칭 정도나 걸고 늘어졌듯, 잔을 이단자로 만들기 위한 떡밥으로 남장(신 22:5)이 거론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건 “성경에 드보라 같은 여걸도 나오니까 여자 목사도 교리적으로 OK” 내지, 예수님에 대해서 안식일에 병 고친 걸 갖고 트집 잡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마디로 말해 찌질하다.

결국 잔 다르크는 각본대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정말 꽃다운 나이에 화형대에서 끔찍한 최후를 마쳤다. 영화를 보면 화형 집행을 하기 전에 희생자에게 삭발을 하던데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백성들로 하여금 유해를 챙기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는 절명한 뒤에도 시신이 세 차례에 걸쳐 완전히 불타서 형체가 남지 않았으며, 가루는 그대로 강에 뿌려졌다고 한다.3)
뭐, 시신의 보존 상태에 관한 한은 유 관순도 만만찮게 처참하긴 했다. -_-;;

샤를 7세는 잔 다르크가 죽은 지 무려 25년이 지나서야 그녀에 대한 명예 복권을 선언하고, 이단 혐의를 철회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평판은 당대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던 듯하다.
오히려 그녀가 본격적으로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건 근대에 와서 민족주의, 국가주의 같은 이념이 부각되고부터라고 한다. 그래서 가톨릭에 의한 성녀 승격도 20세기 초가 돼서야 이뤄진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내부에서는 역시 우익들이 잔 다르크를 아주 좋아한다. 과거 박통이 이 순신 장군에 유달리 집착하고 성웅화한 것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 보면 정확하다. 박통의 롤모델이라 일컬어지는 나폴레옹이 잔 다르크를 팍팍 띄운 것도 응당 사실임. 그런데 다음으로는 히틀러가 그 나폴레옹을 굉장히 존경했다며?
위인을 존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자기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고인드립으로 변질되는 것은 언제든 경계해야 하겠다.

Notes:
1) 예를 들자면, “오호.. 네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라? 그 신님의 말 억양은 어떻던데? ㅋㅋ”라는 비아냥거림에, “님 말투보다는 듣기 좋더군요! -_-” 식의 시크한 답변. 뭐, 이런 것 말고도 잔은 신학자, 종교 지도자들의 말문도 막을 정도로 조리 있게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관을 논증했다고 한다.

2) 군 수뇌부가 왕권보다 너무 강해져서 아브넬과 사울 내지 요압과 다윗처럼 된다면 그건 문제이지만, 반대로 저것도 영 아니잖아? 국가를 위해 충성한 사람을 저렇게 홀대하면..;;

3) 화장터에 가 보면 알겠지만, 사람의 시신은 신원 확인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깡그리 불태워 가루만 남기려면 은근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2차 세계 대전의 말엽엔 히틀러가 자살 후에 그렇게 화장되고 싶어하였으나, 차마 그렇게 되지 못했고, 결국 소련군이 치아 상태를 보고 히틀러의 시신을 확인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17 08:39 2011/05/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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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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