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

1961년, 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막장 반전극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 소개글 1, 소개글 2)

일단, 강도 강간 살인 사건의 피해자부터가 유부남이 바람 피우던 불륜 커플이었다. 야밤에 차 몰고 나가서 외지에서 데이트 중이었는데, 갑툭튀한 복면+권총 차림의 단독 강도에게 털렸다. 피해자들은 돈 주고 이 차도 주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제발 풀어 달라고 강도에게 읍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강도에게 저항하다가 총을 여러 발 맞고 말았다.

남자는 치명상을 입어서 목숨을 잃었다. 여자는 근처 농민에게 간신히 구조되어 살아나긴 했지만, 중상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평생 휠체어 신세가 됐다. 범인은 남녀가 모두 죽은 줄 알고 이들을 밖에 버린 뒤, 차를 빼앗아 몰고 도주했다.

다른 목격자가 없는지라 범행 도구인 권총과 탄창의 동선, 근처 대중교통과 호텔 투숙객 목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용의자가 어렵게 추려졌다. 하지만 정황 증거뿐, 물증이 없었다.
급기야는 무슨 테이큰의 “Good luck” 목소리 식별하듯이 생존 여성 피해자(발레리 스토리.. 스펠링이 Storie임)에게 용의자의 “시끄러, 조용히 안 해?”(현장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말투 재현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아, 이거 범인 목소리 확실해요!”를 확인받았다. 이를 토대로 ‘제임스 핸래티’라는 용의자가 결국 기소되었다.

체포된 핸래티는 이렇다 할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았으며,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기도 하면서 의심 살 짓을 했다. 하지만 유죄건 무죄건 어느 쪽으로든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인권 변호사들이 핸래티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법부는 피해자의 증언에 더 큰 가중치를 두고 유죄를 확정해 버렸으며, 1962년 4월에 핸래티를 사형에 처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심지어 피해자 여자가 자기 불륜을 덮으려고 엉뚱한 사람을 누명 씌웠네, 피해자 남자의 부인이 불륜을 응징하려고 킬러를 따로 고용해서 보냈네 하면서 온갖 낭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밖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저 외딴 곳에 권총 강도 달랑 한 명이, 그것도 별로 비싸지도 않은 소형차를 노리고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게 좀 뜬금없어 보이긴 한다... 또한, 성경조차도 유죄 판결은 최소한 두세 명 이상의 일치하는 증언을 확보한 뒤에 내리라고 돼 있는데 저건 그것도 아니었다.
논란이 너무 거세어지면서 급기야는 영국에서는 이 사건을 끝으로 사형 제도 자체가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DNA 감식 기술이 도입되고 이 사건을 1999년(피해자 속옷의 정액)과 2001년(가해자 무덤..!)에 다시 조사한 결과는..

“핸래티는 진범이 맞았다!!!”


수만~수십만 분의 1의 확률이 맞아떨어지고 두 결과가 완벽하게 교차검증이 되니 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비록 1960년대 당시에는 저런 기술이 없어서 검사와 판사가 자신의 감과 재량만으로 기소하고 다소 무리수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치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듯이 판결 자체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와중에 애꿎은 사형 제도만 같이 사형 당했고..

인권 진영에서는 수십 년에 달하는 자기 신념과 노력이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 물거품이 됐으니 완전 멘붕 해야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져서 "아냐, DNA 감식이 잘못된 거야. 핸래티는 무죄가 틀림없어"를 끝까지 고집하기도 했다.;;

핸래티의 부모는 아들놈이 마지막 면회 때 도대체 무슨 약을 먹고 뻔뻔스럽게 “제발 저의 억울함을 풀어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었나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피해자이던 ‘발레리 스토리’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면서 이제야 애매한 사람을 골로 보낸 썅년이라는 누명을 벗었다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분. 독신으로 살면서 긴 한을 푼 뒤, 77세의 나이로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도 DNA 감식 덕분에 1998년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의 진범이 근처 외노자였던 걸로 밝혀진 바 있다. 덕분에 당시 덤프 트럭 기사와 동기 남학생이 의혹과 누명을 완전히 벗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잘 알다시피 1980년대 “화성 살인의 추억” 진범이 밝혀졌으며, 결과적으로 같은 싸이코패스인 유 영철의 추측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죽은 게 아니면 다른 죄를 짓다 걸려서 이미 수감 중일 것이다. 사고 안 치고 이렇게 오래 조용히는 못 지낸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데모질 따위가 아니라, 과학 기술이야말로 범죄 수사에서 인권을 얼마나 상상할 수 없이 많이 크게 향상시켜 줬는지를 실감한다.
저런 게 없는데 당장 치안은 유지해야 되니 옛날에는 피해자의 증언과 용의자의 자백에만 목숨을 걸면서 강압수사에 고문까지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피, 정액, DNA 같은 걸 생각하면 경이롭다. 사람이 자기 체액을 흘리면서 남긴 족적이라는 건 호락호락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핏자국쯤이야 어지간히 씻고 또 씻어도 루미놀 시약으로 식별 가능하며,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나서 다 썩은 시체에서도 저렇게 DNA를 추출하는 거 봐라. 겨우 지문이나 배설물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경의 “땅이 자기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동생의 피를 받았은즉..”(창 4:11),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가 흘려진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민 35:33)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영적인 계층, 문학적인 서사 과장 빈말이 결코 아니어 보인다.
그럼 시체를 땅이 아니라 바다에 쥐도 새도 모르게 던져 버리면 어떻냐고?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계 20:13)도 있다.

본인은 성경적으로나 개인 감정적으로나 강경 단호한 사형 제도 찬성론자이다. 늘 드는 비유이지만, 인간에게 사형 제도는 결혼 제도와 동급으로 성경적이고, 육식이 가능한 것만큼이나 이치에 맞다.
저렇게 나중에라도 극적으로 진범이 밝혀지는 사건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국내 장기 미제 사건들은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영국의 저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강간까지 해서 자기 흔적을 더욱 커다랗게 남겨 놓았기 때문에 진범이 식별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미제 사건들 중에는 용의자는커녕 피해자의 시체조차 못 찾은 것도 있다.. CCTV와 DNA 감식이 있었으면 금세 범인이 잡혔거나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인데~!

  • 1986 유명 모델/배우 윤 영실 실종
  • 1991 김 은정 아나운서 실종
  • 1991 대구 성서 초등학생 5인 실종· 살인 (일명 개구리 소년)
  • 1991 이 형호 군 유괴 살인
  • 1991~94 대천 영· 유아 연쇄 유괴· 실종
  • 1998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
  • 1999 대구 아동 황산 테러 -- 죄질이 매우 나쁘고 참혹했던 사건.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계기가 됨!
  • 2000 김 신혜 존속살인 의심 (용의자가 잡히긴 했지만 피해자의 친딸이며, 현재까지 줄곧 무죄를 주장하고 있음)
  • 2001 부산 배산 여대생 살인
  • 2004 서천 카센터 방화 살인
  • 2004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
  • 2005 서울 신정동 연쇄 살인
  • 2006 영등포 노들길 살인
  • 2008 서천 종천면 할머니 실종
  • 2008 부산 청테이프 살인
  • 2008 대구 초등학생 납치 살인

Posted by 사무엘

2020/02/26 08:36 2020/02/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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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은 섬나라이고 전통을 아주 좋아하며,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좌측통행을 하고 내부적으로 여러 왕국들로 갈라져 있어서 독립하네 마네 다투는 등, 유럽의 여느 나라와는 달리 독특한 점이 많다. 일찌감치 교황과 결별하여 정치· 종교적으로 내륙과는 별개노선을 갔으며, 리즈 시절에 그야말로 대영제국을 이뤘고 영어라는 자기네 언어와 킹 제임스라는 성경을 전세계에 퍼뜨린 것은 정말 비범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영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혼자 국제(= 유럽 대륙) 추세를 거스르면서 좀 고집 부리고 삽질한 사례도 있었다.
(1) 먼저 달력 얘기부터. 잉글랜드는 그레고리력의 도입 시기가 무려 1752년으로 유럽에서 압도적으로 제일 늦은 꼴찌였다(무려 100수십 년). 율리우스력보다 오차가 더 적고 정확한 역법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원수지간인 교황이 만든 달력을 선뜻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이 워낙 절기를 많이 따지는 종교이기도 하고, 교황은 전세계에서 날고 기는 똘똘한 고위 성직자들 중에서 선출되기도 하니..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는 덴 머리가 비상하게 잘 돌아갔는가 보다.

영국의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리고 스페인의 대문호인 세르반테스는 동갑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난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그레고리력 기준의 날짜이고 셰익스피어는 아직 율리우스력 기준의 날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날에 24시간 이내의 시간차를 두고 죽은 건 아니라고 여겨진다. 뭐, 그래 봤자 기일의 차이는 2주를 넘지 않았을 것이고, 서로 다른 달력 체계에서 그렇게라도 날짜가 일치하는 것만 해도 용한 일이긴 하다.

돈키호테가 전편이 1604~05년에 출간됐고 후편은 1615년, 작가가 죽기 딱 1년 전에 완간되어 나왔다. KJV가 출간된 1611년과 동시대 되겠다.
단,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에 자국에서 출간되던 킹 제임스 성경과 관련해서 딱히 기여한 건 없는 걸로 여겨진다.

(2) 1749년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명했는데.. 피뢰침의 끝을 뾰족하게 만드느냐 뭉툭하게 만드느냐가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거리가 되었다.
여기서 영국은 뭉툭한 피뢰침을 한동안 고집했다. 이유는.. 그게 과학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영국 황실에 반역하고 독립을 선언한 미국 식민지 역적놈이 뾰족한 걸 쓰기 때문이었다. 으음..

영국이 이런 사소한 데서 은근히 병맛스러운 고집을 많이 부렸구나. 무슨 에디슨과 테슬라의 교류 직류 논쟁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만 당파 싸움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러니 걸리버 여행기가 릴리풋 왕국(소인국) 편에서 계란 껍질을 어느 쪽부터 까는지를 갖고 대판 싸우는 풍자 장면을 넣었지 싶다. 그 당시 영국 상류층 사회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다. 컴퓨터계에서 유명한 엔디언(비트 순서)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된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나는 당연히 뾰족한 피뢰침이 과학적으로 집전 성능이 더 뛰어나고, 미국의 승리에 영국의 삽질로 알고 있었는데.. 영문 위키백과를 보니까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3) 끝으로 20세기. 영국은 남극점 최초 정복 타이틀을 듣보잡 노르웨이 사람에게(로알 아문센) 빼앗긴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아문센에 대해서 대놓고 인신공격 음해 언플을 벌인 건 물론이고, 학교 교과서에다 자국의 스콧이 남극점에 먼저 도달했다고 대놓고 주작 왜곡 거짓말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러다 이웃 나라들로부터 극심한 비웃음을 견디다 못해 슬쩍 고쳤다. 이 정도면 6· 25 북침 왜곡쯤은 약과인 거 같다.

그러니, 이런 영국은 자기들이 표준궤나 표준시 같은 세계 표준을 만들면 만들었지, 남이 만든 표준은 잘 안 쓴다. 도량형에 미터법도 안 쓰고, 화폐단위는 여전히 파운드를 고집하며 최근에는 유럽 연합에서 탈퇴까지 감행했다. 이런 조치에 대한 호불호 내지 정치적인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단지, 쟤들이 그러고도 남을 친구들이라는 심정이 이해된다.

2.
영국 하면 왠지 빨강이 떠오른다. 레드 코트, 적기 조례 등등..
그래서 보너스로 red와 대응하는 다른 색들과 그 심상· 용도로는 어떤 게 있을까? 언어에도 유의어와 반의어라는 관계가 있는데 이런 거 찾아보니까 결과가 재미있다.

  • 황색: 주의와 경고(축구 반칙 카드)
  • 백색: 적혈구와 백혈구, 적색거성과 백색왜성(천문), 러시아 적백 내전, 전방과 후방에서 교통수단의 등화 차이(브레이크등/전조등· 후진등)
  • 흑색: 지나친 G로 인한 블랙아웃과 레드아웃(항공우주), 빨강-검정 나무 자료구조(전산), 홍차의 한국어와 영어 표현 차이. 비행기 블랙박스는 사실은 검정이 아니라 찾기 쉬우라고 고채도 홍/황색 계열 도색임.
  • 녹색: 적십자와 녹십자, 적록 색맹, 적조와 녹조, 횡단보도 신호등, 엘리베이터나 주식에서 상하 관계
  • 청색: 수도꼭지와 정수기에서 온수와 냉수, 각종 게임에서 양 진영의 깃발 색깔, 남녀(단, 성차별적이라고 요즘은 색깔 구분은 안 하는 듯), 헤모글로빈과 헤모시아닌 기반 혈액

3.
독자 여러분은 개를 식용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가?
본인의 생각을 말하자면 개 역시 인간이 필요에 따라 키우는 여러 가축 중 하나이고, 동시에 필요한 경우 여러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일 뿐이다. 얘만 특별하게 취급돼야 할 필요는 없으며, 하물며 같은 개 중 일부 품종은 애완견용이고 일부는 식용으로 분류해야 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애완견이 특별히 영양학적으로 독이라도 들어있어서 못 먹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개는 특별히 똑똑하고 충성심이 뛰어나고 인간과 닮았고 무슨 감정이 있고 어떻다고..? 그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메리트가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개가 아무리 사랑스러워 봤자 인간과는 달리 죽으면 완전히 소멸이며, 내세에서 다시 인격체로서 만나 보지도 못한다. 또한 잡아먹히는 개가 불쌍하면,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잡아먹히는 다른 동물들은 뭐가 되는가?

애견 동호인 분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개만 유독 집 밖이 아닌 집 안에 들여놓고, 그걸로도 모자라 옷 입히고 고기까지 먹이면서 키우는 건 그거야말로 개를 잡아먹는 것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인 현상으로 보인다. 헐벗고 굶주리고 못사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애완견 키우는 분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지만 애완견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다른 선과 악이나(절대악과 필요악) 생명 우선순위를 논하는 데서는 좀 이성이나 판단력이 이상하게 비성경적인 쪽으로 꼬이는 경향이 있다. 뭐, 브리짓 바르도 같은 아줌마는 그 중에서도 평균 이상 굉장히 막장으로 추해진 사례이고.

더구나 선진국들에서는 휴가철만 되면 유기견들 처리하느라 난리도 아닌데, 지금 시국에서는 개가 진정 불쌍하다면 애견인들이 "개 잡아먹지 말라"에 앞서 "개를 버리지나 마라/말자"부터 더 강조해야 하지 싶다. 식용으로 잡아먹히는 거나, 약물 주입으로 안락사 당하는 거나(주인을 못 찾아서, 혹은 주인이 고의로 인수를 거부해서) 죽는 건 똑같다.

무슨 성매매를 합리화하고 공창을 만들듯이 개 도축도 규격을 정하고 완전히 법의 양지로 끌어올리자는 얘기가 진작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렇게 개도 FM에 규정된 대로 잡아먹는 나라요"라고 대외적으로 홍보를 하는 건 동네 창피한 일인 걸로 간주되는 듯하다. -_-;; 마치 눈치 보느라 흉악범 사형 집행조차 못 하듯이. 개 잡아먹는 게 그렇게도 부끄러운 일인가? 좀 민망한 현실이다. (난 개고기는 일부러 피하지는 않고 회식 자리에서 있으면 먹는 정도로 먹는다.)

4.
사람들이 자기가 실제로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한 것처럼 남에게 허세 부리고 싶어하는 심정은 어디에나 있는 듯하다.
예비군들은 전투복에 자기가 이수하지 않은 온갖 특기 마크를 덕지덕지 붙여서 일명 전투복 튜닝을 하고.. 군 내부의 높으신 분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온갖 훈장들을 제복에다 주렁주렁 붙인다.

이런 맥락으로, 자동차의 경우 엠블럼이나 머플러를 튜닝해서 실제 성능보다 더 고성능인 차인 것처럼 위장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 또래의 직딩이 어떻게 쏘나타 2400cc 내지 제네시스 쿠페 3800cc를 굴리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머플러와 엠블럼만 교체해서 상위 사양인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 실제로는 2000cc 차였다.

지금까지 에쿠스 5000cc를 생각보다 자주 본 적이 있었다. 이것들 중에도 실제로는 기본 사양 3800cc이지만 엠블럼 위장을 한 놈이 있을지 모르겠다. 에쿠스는 제로백이 5~6초대인데, 성능이 성능이니만큼 3800cc와 5000cc는 제로백이 약 1초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길이가 5m가 넘는 거대한 차량이 밟으면 그렇게 쑥 가속을 받고 튀어나간다는 게 상상만 해도 신기하다. 괜히 고성능이 아니다.

자가용 승용차는 배기량이 높아질수록 성능은 좋아지지만 연료 소모량이 증가하여 연비도 떨어지며, 무엇보다도 자동차세도 왕창 붙어서 유지비가 증가한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가서 크기가 3종류인 집을 구경하니 마치 2000cc, 2400cc, 3000cc 차급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차량의 배기량 위장은 당장 도로에서의 안전을 위협한다거나 무슨 계급 위조 및 사칭만치 해로운 짓은 아니기 때문에 딱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5.
옛날 자동차와 지금 자동차를 비교해 보면 엔진이 동일 배기량으로도 출력과 연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승차감이 좋아졌으며, 그러고도 환경오염은 덜 시키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엔진의 구동 원리는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피스톤 왕복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있다. 또한 엔진의 회전력과 토크를 바퀴를 굴리는 데 적합한 형태로 변환해 주는 변속기도 수동은 톱니바퀴, 자동은 유압 토크 컨버터로 형태가 정착해 있다.

이런 관행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 이의를 제기하는 대표적인 발명으로는 방켈/반켈(Wankel) 또는 로터리라고 불리는 엔진이 있다. 피스톤이 동그란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고 얘가 두 바퀴가 아니라 한 바퀴를 돌면서 흡입-압축-폭발-배기 행정을 해치운다. 그건 좀 2행정 엔진을 닮았다.

로터리 엔진은 왕복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힘들게 변환하는 계층이 필요하지 않으며 연료의 폭발을 더 직관적으로 회전 운동으로 연결해 준다. 그래서 배기량 대비 엔진의 출력이 더욱 높다는 장점이 있으나.. 기계적으로 만들기가 더 어렵고 엔진 부품의 마모가 더 심하고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 엔진의 주류로 등극하지는 못했다.
장점이 있긴 하지만 아직 단점이 더 커서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는 무탄피 총알과도 비슷해 보인다.

또한 변속기에도 일명 CVT라고 불리는 '무단 변속기'가 있다. 얘는 N개의 단을 나타내는 이산적인(discrete) 톱니바퀴로 변속을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원뿔대 모양의 체인에다가 벨트를 걸어서 최고단과 최저단 사이의 아무 동력비라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얘는 의도한 대로 잘만 만들 수 있다면 변속 충격 없이 자동 변속기처럼 부드러우면서, 연비는 수동 변속기처럼 좋은 이상적인 동력 변환 계통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CVT 역시 변속기의 주류가 되지 못한 건 다 기술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얘는 대형차의 고출력 엔진에 적용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으며, 여전히 경차· 소형차급에 머물러 있다. 자전거만 해도 체인이 견딜 수 있는 힘보다 너무 강한 힘으로 밟으면 체인이 미끄러지거나 심하면 파손되지 않던가? CVT는 그런 게 기존 변속기보다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인천대교에서 퍼져서 대형 사고를 일으켰던 마티즈 CVT 때문에 CVT에 대한 더 나쁜 편견과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내연기관에 왕복 운동이 아니라 회전 운동을 직통으로 만들어 내는 로터리 엔진이라는 게 있는데.. 전기 모터에는 회전 운동이 아니라 직선 운동을 직통으로 만들어 내는 모터가 있다. 바닥에 달린 유도 레일을 따라 출력을 발생시키는 이 모터를 '선형 유도 모터'라고 한다.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는 모두 선형 유도 모터(LIM) 기반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아닌 경전철도 LIM 기반인 경우가 있으며, 국내의 경우 용인 경전철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에서는 L0계라고 불리는 '주오(중앙) 신칸센'이 개통하여 최고 시속이 무려 600km를 넘어섰다. 주행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창문은 무슨 비행기 창문처럼 작아졌으며, 앞뒤로 운전실이 없지만 그래도 앞뒤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

그리고 열차의 앞뒤는 비행기보다도 더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납작하고 뾰족해졌다. 기계가 들어갈 공간, 승객이 탈 공간을 좀 뺏겨도 좋으니 어떻게든 공기 저항을 극단적으로 줄이려고 발악에 가깝게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공기 저항은 고속 주행 교통수단의 최악의 적이며, 속도가 올라갈수록 저항도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그래도 대기가 상당히 희박해져 있는 고도에서 날지만 열차는 공기 농도가 제일 짙은 지표면을 달리지 않는가?

한때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리니어'가 선로가 커브가 전혀 없이 곧은 직선이라는 뜻이라고 아주 말도 안 되는 오보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10여 년 전에 <인천 관광 2009년부터 전차로>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군용 탱크 사진을 내보냈던 것과 같은 급의 병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05 08:35 2017/01/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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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이야기

롤스로이스(Rolls Royce)는 잘 알다시피 영국의 명차로, 세계 톱클래스급의 간지를 자랑하는 대형 초호화 고급 승용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 그룹 회장님이 마이바흐와 더불어 개인용으로 굴리는 차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웹툰에서는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에서 정 안봉 이사장의 자가용이 저 차라고 설정되어 있다..;; (220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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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엔진룸이 매우 두툼한데 비해 헤드라이트는 모양이 작다. 수 년 전 모델은 헤드라이트 아래에 있는 미등이 원형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뀐 듯하다.
참고로 지금으로부터 한 30년쯤 전에는 차 모양이 이랬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라디에이터 그릴은 파르테논 신전을 형상화한 형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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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는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고 재고를 쌓아 놓는 양산이 아니라 주문 생산만 되었으며, 그 공정도 다 장인 수작업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지금 당장 돈만 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차를 덥석 팔아 주는 것도 아니었고 안정적인 소득과 지위, 평판이 있는 고객에게만 팔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명차를 구입만 덥석 해 놓은 뒤에 차주가 쫄딱 망해 버리면 차는 처분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 같은 차가 겨우 중고 매물로 나도는 건 롤스로이스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체면상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인 것이다.

그 대신 한번 고객에게 판매하여 넘겨 준 차는 폐차하는 순간까지 제조사에서 끝까지 책임을 졌다고 한다. 그래서 롤스로이스가 소재로 등장하는 이런 예화가 있을 정도이다.

롤스로이스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퍼져 버려서 차주가 무슨 보험사 긴급 출동도 아닌 차량 제조사에다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제조사에서는 곧바로 헬기를 띄워 다른 멀쩡한 롤스로이스를 공수해 줬는데, 나중에 그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기는커녕 그런 일 자체가 없었다며 완전히 입 싹 씻고 함구했다. “롤스로이스는 애초에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고장을 공식적으로 고장이라고 취급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장 수리비 같은 개념도 없다).

물론 오늘날은 롤스로이스가 그 정도까지 극단적으로 도도하지는 않다. 이런 극소수 엘리트 고급차는 양산차에 비해 수지가 안 맞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까지 그런 고집만 부릴 수는 없다.
마치 오늘날은 슈퍼컴도 저가 양산형 CPU를 병렬로 연결해서 쓰지, 슈퍼컴만의 전용 아키텍처 같은 개념은 없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과거의 수제형 슈퍼컴인 크레이 시리즈가 맥이 끊어진 것을 생각해 보시라.

그래서 요즘은 돈만 내면 누구라도 롤스로이스를 사서 굴릴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예전보다야 이 차 구경하기가 쉬워졌다. 게다가 롤스로이스 역시 뒷좌석만 고급화시키는 게 아니라, 차주가 직접 앞좌석에서 운전을 하는 오너 드라이빙 트렌드를 더욱 반영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

비록 그 정도로 격이 낮아졌다(?) 해도 롤스로이스의 가격은 여전히 최하 수억 원대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내지 에쿠스 네댓 대(5000cc 최상위 모델 기준으로!) 이상 값은 충분히 하는 비싼 가격이다. 게다가 구매한 후에도 어마어마하게 깨질 세금과 기름값, 보험료 따위는 어찌 감당하려고?

롤스로이스는 리무진 형태가 아니라 4명밖에 못 타는 세단 주제에 차의 길이가 5.6m에 달한다. 1톤 트럭 특장차보다는 확실히 더 길고, 2.5톤 트럭의 길이와 얼추 비슷하거나 약간 더 짧다. 그러니 일반적인 승용차 자리엔 주차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크다. 그 대신 뒷좌석에 탄 사람은 앉은 채로 다리를 쫙 들어서 뻗어도 될 정도로 공간이 완전 넉넉하다. 좌석에 앉은 채로 다리를 다 뻗을 수 있는 교통수단은 새마을호 특실, 비행기 1등석 등 극히 드물다.

엔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롤스로이스는 예로부터 V형 12기통 엔진에 6000~7000cc에 달하는 배기량을 자랑한다. 3000cc대의 6기통 엔진만 달아도 대형 승용차인데 롤스로이스는 그 크기의 두 배라는 뜻이다. 차의 무게는 1톤대는 당연히 아니고 공차 중량만 약 2.5톤가량. 여러 통계를 보면 공인 연비는 1리터에 거의 5~6km대라고 한다. 마티즈를 보고 출력이 약하다고 탓해서는 안 되듯, 롤스로이스는 확실히 경제성을 보고 굴려서는 안 되는 차임이 분명하다.. ㅎㅎ

롤스로이스는 전통적으로 엔진의 정확한 출력 한계를 함구하고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옛날에 자동차생활 잡지에서 취재를 할 때도 회사 관계자는 “충분히 큽니다”라고만 얼버무렸지 정확한 숫자 얘기를 안 했었다.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인 걸까?
그래도 지금은 롤스로이스에 대한 베일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벗겨졌다. 제원을 검색해 보면 460마력대의 최대 출력과 70kg대의 최대 토크가 곧장 뜬다. 최대 성능이 나오는 rpm은 여느 가솔린 엔진 차량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롤스로이스의 계기판에는 엔진 회전수를 표시하는 통상적인 타코미터는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이 엔진 최대 성능의 몇 %를 뽑아 쓰고 있는지 백분율만이 표시되며 이것이 타코미터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그런다. Windows Vista부터는 작업 관리자에서 메모리 사용량을 바이트 단위가 아니라 백분율 단위로 보여주는데, 마치 그런 걸 보는 것 같다.

롤스로이스는 뒷좌석 문이 앞좌석과 같은 앞쪽으로 열리는 게 아니라 뒷쪽으로 열리는 게 특이하다. 그리고 타이어 휠의 중앙에 있는 휠캡은 바퀴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가 움직일 때도 데굴데굴 같이 따라 구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한다. 차 문과 트렁크는 버튼 하나만 눌러서 전동 개폐가 되며, 뒷좌석엔 좌석별 개인 비디오 장비와 우산 거치대도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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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 고급차 소리를 들으려면 단순히 내장재만 호화로운 게 아니라 닥치고 승차감이 좋아야 할 것이다.
승차감에 관한 한 롤스로이스는 정말 본좌급이라고 한다. 탑승자는 엔진음을 도무지 들을 수 없으며 주행 중에도 워낙 진동이 없어서 차가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라니 말 다 했다.

오죽했으면 롤스로이스는 정숙성을 내세우기 위해 내부 모델명을 다 유령과 관계 있는 이름으로 정해 왔다. 그래서 고스트, 레이쓰, 팬텀 따위.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그 단어이며, 고스트와 레이쓰는 스타크래프트 테란 유닛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클록킹 스킬이 있는 유닛이라는 공통점도 있고 말이다. 이들 중 '팬텀'이 바로 가장 비싼 최상위 기함급 모델이다.

끝으로, 명차 고급차의 앞부분에 관례적으로 상징처럼 붙어 있는 마스코트(hood ornament)를 생각해 보자.
현대 차 중에는 제네시스에도 없고 오로지 에쿠스에만 그런 마스코트 비스무리한 액세서리가 붙어 있다.
롤스로이스는 '환희의 여신상'이라고 불리는 마스코트가 달려 있으며 내력도 굉장히 길다. 공식 명칭은 the spirit of ecs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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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름을 보니까 역시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spirit of ecstasy는 도로가 아닌 철도에 있지 않던가!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를 빼 놓고서 교통수단에서의 황홀감, 엑스터시를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불가능이다.

정말,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 음악이 흘러나왔던 건 한글 창제 내지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건이다. 혁명, 혁신,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하필 저 음악을 골라 넣은 그 당시의 철도청 고위 간부는 그야말로 심리학, HCI, 인지과학 분야의 어마어마한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을 낚기 위해, 미래의 철덕 양성을 위해 치밀한 음모를 꾸미면서 Looking for you를 선곡했을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정말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철도가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기회가 된다면 강연, 저술을 통해 널리 알리고 싶다.
아아, 롤스로이스 얘기를 하면서도 철도가 연결됐구나.. ㅋㅋㅋㅋㅋ
아무튼, 롤스로이스를 직접 타면서 열차와의 승차감을 상호 비교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12/04 08:30 2013/12/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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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의 메리

1539년에 크고 아름다운 그레이트 성경까지 나온 뒤에야 영국은 확실히 개신교 국가로 탈바꿈하는가 싶었으나, 헨리 8세가 죽은 후 개신교 계열의 에드워드 6세(병으로 요절)와 그 후의 9일천하 레이디 제인 그레이(지못미..;;)가 제대로 권력 승계를 못 하면서 메리 1세가 역사를 다시 뒤로 되돌려 놓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비운의 9일천하 여왕인 제인 그레이는 삶이 정말 기구했다. 왕위에 앉을 마음이 없었고 사실은 “너 여왕 됐어”란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졸도를 할 정도였던 여인도 아니고 소녀였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등쌀에 떠밀려 정략 결혼을 하고, 조국의 개신교 노선을 이어 나갈 여왕 자리에까지 여차여차 올랐지만 백성들의 의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

결국 골수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메리 1세는 제인 당사자가 권력욕이 있는 인물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제인의 부모가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살려 두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제인더러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 주겠다는 카드를 제안하였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결국 20살도 못 된 고등학생 나이에 처형 당했다. 그땐 단두대 같은 것도 없었고, 사형 방식은 그냥 도끼로 목을 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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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그레이는 라틴· 히브리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똑똑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외모도 아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냥 귀족하고만 결혼해서 학자나 교사로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인데 저렇게 정치· 종교적 희생양으로 전락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만 겨우 고등학생 나이 때도 자기 신앙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크리스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최후의 순간에 시편 51편을 외웠으며, 집행을 앞두고 눈이 가려진 뒤엔 “어, 형틀이 어디 있지?” 하면서 당황하며 자신이 목을 내밀 곳을 손을 더듬어 찾았다고 한다. 이 장면은 주변 사람들의 애처로움을 더욱 자아냈으며, 이것이 그림으로 남아 전해진다.

이런 사연을 거쳐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잘 알다시피 피의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회를 포함해 개신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선왕이 구축해 놓은 영국 내의 종교 개혁 인프라를 모조리 망가뜨렸다. 그래서인지 메리 1세는 초상화를 봐도 좀 표독스러운 모습의 못생긴 여자로 그려져 있고, 특히 이 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는 네로에 필적하는 싸이코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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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화형 당한 크리스천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여 명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숫자만 보면 그래도 1000단위도 아니고 생각보다는 적은 규모인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공산당 숙청 수준은 아닌 듯. 하지만 메리 여왕이 사람만 죽인 게 아니라 성경까지 죄다 불태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에 주목하는 세속 역사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종교 문제를 빼면 메리는 사회·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악한 군주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그 분야에까지 막장이었으면 진작에 짤렸겠지;; 또한 메리 역시 여왕에 오르기까지 개인사나 가정사는 불운한 편이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지병으로 인해 자녀 한 명 못 낳고 중년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영국에서 갑자기 개신교 박해가 시작되자, 영국에 있던 종교 개혁 성향의 학자들은 죄다 외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피신해 있는 동안 지금까지 구축된 원어 자료를 집대성하여 더욱 좋은 성경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제네바 성경이다. 예정론과 개신교 교황이라는 오명 때문에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좋지 않은 평판을 갖고 있는 존 칼빈이 그래도 이때는 영국의 종교 개혁자들을 잘 보호해 준 공로를 세웠다.

제네바 성경은 처음으로 66권 전서를 모두 원어에서 번역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장· 절 구분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리고 무슨 스터디 성경처럼 온갖 난외주가 첨가되어 성경의 각 구절마다 편찬자들이 생각하는 해설과 강해가 성경 본문의 양보다도 많이 들어갔다.

4. 킹 제임스 성경 -- 종교 개혁 성경의 종결자

메리에 이어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되면서 영국은 다시 개신교 노선으로 돌아갔다. 이 시절에 영국 내부의 종교 대립은 가히 오늘날 우리나라의 좌우 이념 대립에 맞먹는 수준이었으며, 반가톨릭 진영에서는 진짜 반공 교육 수준으로 교황을 험담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나는 교황이 싫어요” 급이었으며, 교황이 성경에서 예언된 적그리스도 바로 그놈이라고 대놓고 가르쳤다.

예전에 헨리 8세에 이어 왕위를 잠시 이었던 에드워드 6세 왕은 어릴 때부터 궁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겨우 초등학생 나이인 11살 때 “교황은 레알 마귀 자식이며, 나쁜 놈이요 적그리스도요 가증스러운 독재자 천하의 개쌍놈이라고 썼을 정도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이 승복 어린이 수준이지 않은가? “교황을 죽입시다 교황은 나의 원수”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정치적으로도 가톨릭과 앙금이 생길 대로 생긴 게 사실이다. 또, 과거의 역대 교황들이 자신을 예수님 급으로 신성시하면서 “교황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같은 안하무인 개드립을 치는 것을 보면, 어차피 그들은 북한 김 일성· 김 정일이 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긴 했다.

제네바 성경은 재야(?) 종교 개혁자들이 사용해 온 좋은 성경이긴 했으나 외국에서 자기네끼리 제작된 사역(私譯)이었으며, 엘리자베스 시절엔 국교회 내부에서 또 그레이트 성경의 개정판 격인 비숍 성경이라는 걸 만들어 썼다. 가톨릭-개신교뿐만이 아니라 같은 영국의 개신교 노선 내부에서도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갈등이 깊어진 게 이 시기이다. 가톨릭으로부터의 박해가 없어진 뒤엔 영국 교회가 또 대립과 반목으로 인해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이후, 후임인 제임스 1세 왕은 청교도와 성공회를 중재하는 차원에서, 이제 다시는 성경을 또 만들 필요가 없게끔 완벽한 성경을 만들기로 승인을 내려 준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 드디어 1611년에 나왔다. 장과 절 구분, 100% 원어 번역, 청교도와 성공회 모두 OK, 국내 인쇄 등 예전 성경들이 차츰차츰 확보한 좋은 속성을 모조리 물려받았다.

이 책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으며, 킹 제임스 이후 영국에서는 먼 훗날, 1881년에 부패한 웨스트코트· 호르트 본문에 기반한 RSV가 나오기 전까지는 또 새로운 성경이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역본이 나올 필요가 이제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회와 청교도 사이의 대립 구도로 인해, KJV가 번역될 때는 성경 번역 역사상 전무후무한 철저한 검증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이것 덕분에 KJV는 유례가 없는 고품질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위기가 기회로 승화된 셈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종교 개혁을 거꾸러뜨릴 목적으로, 바티칸의 일종의 비밀 결사대인 예수회라는 무지막지한 비밀 조직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KJV에 앞서 듀에이 레임스라는 판타지 짝퉁 성경을 만든 바 있으며, 엘리자베스 다음으로 영국에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왕이 즉위하자 용병을 고용하여 화약 폭발로 제임스 1세 왕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음모는 기적적으로 사전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세속 역사가들은 인류가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휴머니즘을 추구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본인의 시각에서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고 복음이 전파되면서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세상이 암흑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교황이 역사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고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는 것에는 본인 역시 세속 역사가의 시각과 100% 일치한다만, 그것이 기독교라고 싸잡아 분류되는 것에는 본인은 동의할 수 없다.

유럽 국가들 중 영국만이 종교사가 저렇게 특이한지, 왜 영국만 국가 교회가 존재하며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는지? 왜 영어 성경만 여러 계보가 존재해 왔는지? 더 나아가 하필 킹 제임스 성경이 세계에 퍼져 나간 최종 권위 성경이 되었는지에 대해 KJV 신자라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도 역사를 잘은 모르지만 내 신앙의 정체성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내력은 공부해 두려 한다.

오늘날 인도에 불교가 없으며 예루살렘에 기독교가 없는 것처럼, 영국도 이제 성공회의 노선은 천주교 쪽으로 다시 거의 기울었고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잘 모른다. 발간 400주년을 맞이한 작년에 반짝 조명 정도나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야만인 바이킹들이나 뛰놀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이 전반적으로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식민지 개척을 할 정도로 강대국이 된 것에 성경과 복음이 기여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05 08:28 2012/03/0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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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의 중세 암흑기

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장구한 시간이다. 성경에는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공의로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한편, 한국사에서는 신라가 AD 900년대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존속하여, 도읍인 경주 역시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본인이 경주 출신이다만, 그 작은 도시가 천년고도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교회사가 시작되었으나 진리의 빛이 꺼졌던 중세 암흑기가 거의 1000년에 가까이 계속되었다고 여겨진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나중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되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유럽이 본격적으로 동양을 과학 기술로 압도하기 그 전에! 그 사이 기간에 대해서 나만 아무 정보가 없는 걸까?

그 사이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이라고는 진짜 십자군 전쟁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과 잔다르크는 1400년대 사건이니, 중세 중에서는 그나마 나중인 편이고.

그 기간 동안 어느 샌가 교황이 유럽을 모조리 장악했으며 성경은 금서가 되었고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횡행했다. 어떻게 해서 교황이 저런 국제적인 종교 괴물로 등극할 수 있었는지 그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교회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대한 지식이 보충되어야 할 것 같다. (아 하긴, 우리나라만 해도 이단 교주들이 얼마나 돈 잘 버는지를 생각해 보면, 교황이 종교 장사로 큰 대박을 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은 했겠다.)

어렸을 때 즐겨 읽었던 유레카 학습 만화 세계 역사 시리즈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었다. 제6권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나오는데, 제8권은 곧바로 메디치 가문이 어떻고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콜럼버스, 루터 따위가 나온다. 시간 차이가 장난이 아닌데 중간에 그야말로 엄청난 skip을 한 것이다. (제7권은 칭기즈 칸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 같은 아시아 편이고 유럽 얘기가 아님.)

더 정확히는 6권의 뒷부분에 ‘중세 유럽’이 특집 형태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짚고 넘어가 있었다. 세심하게 여러 에피소드를 편성하고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넣은 게 아니라, 글과 벽화 소개 위주로 백화사전식으로 “그냥 이런 게 있었다. 끗”이었던 것이다. 중세는 정말 긴 기간이었는데도 이때의 유럽 역사는 이렇다 할 위인이나 큰 변화가 그다지 없었고 사료도 부족하고... 세속 역사가들로부터도 가히 흑역사로 취급받는다는 걸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들의 주된 배경이 되기도 하고.. ㄲㄲ

이 글에서는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시기에 있었던 일을 영국의 교회사 위주로 요약해 보겠다.
중세에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고 성경을 읽고 침례를 행하던 크리스천들은 알비겐시스, 왈덴시스처럼 지역이나 모임 리더의 이름을 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며 숨어 지내던 소수의 무리들이었다. 루터가 이신칭의를 주장하기 전부터 이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고려·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럼 아무 기회도 없이 다 지옥 갔냐”라고 기독교에 트집을 잡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중세엔 서양도 복음에 대한 접근성이 동양하고 별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쪽에서는 어차피 교황이 성경을 다 빼앗아 불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교리로 지옥으로 보내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양엔 왈덴시스 같은 집단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종교 재판소도 없지 않았는가? -_-;;; 피장파장이다.

도미니크 구즈만(천주교에서 성 도미니크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라는 수도승이 그런 크리스천들과 교리 논쟁(오늘날로 치면, 종교갤에서의 키배)을 종종 벌였으나, 그들을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가톨릭은 교리도 완전히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부터가 로마 제국 시절에 세상 권력과 결탁하여 순교자들의 피를 부르며 시작되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말로 곱게 회유가 안 되는 반동분자들을 적당히 꼬투리 씌워 조지기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가 만들어 낸 게 종교 재판소의 원조이다. 서기 1223년, 교황 그레고리 9세에 의해 드디어 정식 공표된 종교 재판은 마녀도 아니고, 이슬람 같은 완전히 다른 이교도도 아니라 전적으로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그들 재산을 빼앗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나머지 목적은 2순위, 3순위일 뿐이다.

2.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성경 번역의 역사

그러다가 존 위클리프라는 영국 사람이 처음으로 14세기에 처음으로 영어 성경이라는 걸 만들었다. 열악한 당대 상황 때문에 비록 본문이 부패한 천주교 라틴 벌게이트 기반이었지만, 영어 철자법도 아직 정립해 있지 않던 시절에 원어가 아닌 영어 성경이 나온 것만 해도 어디냐. 그 위상이 가히 영국의 개역성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구한말에 나온 한글 개역성경도 부패한 본문 기반 + 맞춤법 비정립 시기! 1881년 RSV 할 때의 그 개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번역한 덕분에 천주교로부터 극심한 미움을 받았으며, 나중에 죽고 나서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무덤에서 시신이 다시 꺼내어져 목이 잘렸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국어에서 욕설로 쓰이는 육시(戮屍)를 실제로 당했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영국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겪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오래 된 영국 왕으로 헨리 8세 아니면 기껏해야 7세 정도까지만 기억을 할 것이다. 이 헨리 8세는 원래는 당시 유럽의 여느 군주들이 그랬듯이 막강한 교황의 권세 앞에서 깨갱 하고 있었다. 친가톨릭이었고 딱히 소신 있는 종교 개혁자 성향도 아니었다.

그랬는데 부인을 6명이나 둔 호색한이었던 그는 치정 문제로 인해, 더 정확히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라고 불리는 왕비와의 이혼을 교황의 승인 없이 추진하려다 보니 교황과 결별· 단절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바티칸은 이 소식에 당연히 발칵 뒤집혔으며, 헨리 8세에게 험담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천주교는 이 사람을 루터만큼이나 몸서리치게 미워하며 나쁘게 말한다. 비록 헨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똘끼를 선한 방향으로 이끄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국이 천주교의 손아귀에서 정치적으로 벗어날 징조가 보이던 15~16세기엔 천주교에는 악재, 기독교에는 호재가 연달아 터졌다. 에라스무스라는 학자가 바른 성경 계보인 공인 본문을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하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에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라는 당대 정세도 기여를 했다.

이때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공인 본문을 기반으로 신약 성경을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했다. 마침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로 책을 값싸게 많이 찍어 보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지금으로 치면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에 필적하는 정보화 혁명이었다.

그리고 영국에는 윌리엄 틴데일이라는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등장하여 그 독일어 성경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영어 성경을 만들었다(신약+모세오경+알파. 아직 전서를 만들지는 못함). 바른 원문 계보에서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다.

틴데일은 “누구나 성경을 휴대하고 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 소 몰고 밭 가는 촌뜨기 아이라도 교황보다 성경을 많이 알게 만들어 놓겠다”라는 도발적인 공언까지 했는데, 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발상이었고, 그런 열성 때문에 그는 결국은 나중에 순교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교수형과 화형을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에 당하면서 죽었으며, 죽기 전에 “주여, 우리나라 왕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크게 외쳤다. 아직 영국은 친가톨릭과 친개신교 노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고, 영국의 고위 관료나 성직자 중에는 친가톨릭 성향에 틴데일을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헨리 8세 왕이 틴데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틴데일의 기도는 그가 죽은 지 6개월 남짓한 시간 만에 응답되어, 헨리 8세는 틴데일의 친구인 마일스 커버데일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국 성공회가 공식 사용할 영어 성경을 만들게 했다. 커버데일은 사역(私譯)이던 틴데일의 번역물을 십분 활용하여 1535년, 커버데일 성경을 만들었다. 왕이 승인하고(公譯) 성경 66권이 모두 번역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 바로 이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존 로저스라는 사람이 매튜라는 가명을 써서 매튜 성경을 내었다. 이것은 잉글랜드라는 자국내에서 인쇄된 최초의 성경이라 한다. 틴데일과 커버데일 성경은 모두 영어 성경이지만, 각각 독일과 스위스에서 인쇄된 후 영국으로 밀반입되었기 때문이라고. 국가가 떳떳하게 대놓고 성경을 찍을 정도로 개신교 세력이 충분히 크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下에서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2/03/03 08:24 2012/03/0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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