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해 버렸으니 허접한 게 아니라, 오히려 500년이나 버틴 대단한 왕조이다”라는 요지로 조선 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서울대 중문과 허 성도 교수가 했다는 강연을 보신 분이 있는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래 전에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조선이 그저 말기에 막장으로 치달아서 망할 만하니까 망했고 먹힐 만하니까 일제에게 먹혔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조선 역시 리즈 시절에는 기강과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진 좋은 나라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식의 황당한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특히 조선왕조 실록은 훈민정음에 버금가는 위대한 문화 자산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뭔가... "성경에 과학적으로 아주 정확한 진술이 있다.." 그런 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본인에게는 그분의 성함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저 강연을 한 허 성도 교수는 '한국사 사료 연구소'에 재직하였으며,
유니코드가 정식 제정되기 전에 아래아한글이 제공하던 '제2수준 확장 한자'를 제정하고 글자를 직접 그리기까지 했던 분 중 하나이다.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credits에도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 모로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공적이 뚜렷한 분임이 틀림없다.흔히 한글 전용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한문 고전을 통해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해서 고전을 번역을 해야지, 그걸 빌미로 전국민에게 어려운 한자· 한문을 원어 그대로 가르치기에는 국가적인 손실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허 교수는 그 주장이 가리키는 '소수의 전문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올해에 갓 정년 퇴임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사무엘

2014/03/16 08:16 2014/03/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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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대 김 빛내리 교수라고 우리나라에서 미생물학 내지 bio-informatics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가 계신다. 최종 학력은 옥스퍼드 대학 박사. 대외적으로 쓰는 영어식 이름은 Narry Kim이라고 한다. (오옷) 연구실 이름은 “RNA 생물학 연구실”.

이분은 외국의 저명한 일류 학술지에 수시로 논문을 냈으며 한국의 촉망 받는 여성 과학자로 이미 여러 번 선정되고 상도 받고 언론도 탔다. 진짜 이름값 하는 인생을 살았다. 허나 본인은 생물학에 완전 문외한인 관계로, 이분 소개는 예전에 이 광근 교수 같은 분을 소개할 때만치 자세하고 정확하게는 못 한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

본인의 지인 중엔 대학원에 진학하여 생물학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는 친구가 있다.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김 빛내리 교수 얘기를 꺼내자 걔도 “어, 너도 그분이 누군지 아는구나.” 하고 반가워했다. ^^

비슷한 예로, 본인의 동창 중에는 정말 학창 시절 내내 수학과 물리만 파면서 살던 덕후로, 과학고와 카이스트의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하며 사는 놈이 하나 있었다. 걔에게는 “잘은 모르겠지만 네 연구 분야가 그럼 이 휘소 박사가 파던 분야하고 비슷한 거냐?”라고 거들먹거려 주니까 걔 역시 반가워하더라.

2.

난 강 용석 씨가 한창 안 철수 씨를 때리는 글을 블로그에다 올릴 때 그의 글을 통해서 김 교수에 대해서 처음으로 듣게 됐다. 세상에 그런 엄청난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도 그 긴 시간 강사 생활을 거쳐서 힘겹게 교수에 임용되고 그 짬밥에 아직도 조교수· 부교수 급인데, 안 철수 부부에게 주어진 서울대 정교수 특혜는 해도 해도 너무한 사기 수준이라고 말이다.

본인 역시 안 철수 씨가 머리와 노력을 겸비한 의학도 출신의 엄친아 수재이고 왕년의 컴덕후 겸 훌륭한 기업인· 경영자인 것은 응당 인정한다. 하지만 교수 세계에서 그 정도로 급격한 진급이 합당할 정도로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안 씨가 허접해서가 아니라 학계에는 유명세만 안 탔을 뿐이지 안 씨보다 더한 우주괴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석학’은 아니잖아?

뭐, 강 용석 씨 자신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스펙과 프로필을 자랑하는 똘똘이 수재이며 한때는 시사와 관련하여 굉장히 통렬하고 날카롭고 속 시원한 글을 많이 올리긴 했다. 하지만 좀 싸가지 없는 말투와 교만과 오만방자함 때문에 지금은 다시 버로우 탄 듯하다. 조금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안목이 아쉬웠다.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고 빳빳하게만 살아 와서인 걸까.

3.

김 빛내리 교수 말고 본인이나 평범한 한국인들이 아는 유명한 여성 과학기술인으로는 역시 윤 송이 씨가 있다. 학력은 잘 알다시피 서울 과학고에 카이스트를 거쳐 MIT 박사이다. 모교로 돌아와 교수의 길을 갈 법도 한 진정한 엄친딸이지만, 이분은 그냥 곧바로 기업체로 간 경우이다. 사실 윤 씨는 일단 진로 자체가 과학자보다는 공학자에 훨씬 더 가깝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억만장자가 됐을 터이니 굳이 교수 자리가 아쉬울 필요도 없다.

윤 송이 씨의 여동생인 윤 하얀 씨는 언니의 명성에 너무 가려져서 조명을 못 받았을 뿐이지 역시 만만찮은 천재로,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여 과학자의 길을 갔다고 알려져 있다. 분야는 생물학. 뭐, 본인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선배나 동기 중에 남매가 나란히 동일한 과학고에 입학하는 흠좀무스러운 형제· 남매가 있긴 했다.

윤 씨와 달리 김 교수가 과학고 출신이 아닌 이유는, 그 시절에 아직 주변에 과학고가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김 교수는 1969년생. 서울 과학고가 1989년 개교이니, 그 시절엔 한국의 과학고 1호인 경기 과학고밖에 없었다. 윤 송이 박사가 1975년생이고 아마 서울 과학고의 초창기 졸업생이지 싶다.

4.

김 빛내리 교수와 상당히 비슷한 이름이 옛날에는 범죄의 안타까운 희생자의 이름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1997년의 ‘박 초롱초롱빛나리 양 유괴· 살해 사건’인데 기억하는 분 있는가? (자동사와 타동사의 차이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편의상 줄여서 ‘박 나리’ 양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특이하게 긴 이름을 갖고 있고, 또 가해자는 겨우 20대 후반의 면식범 임산부였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끼친 충격이 굉장히 컸다. 가해자의 남편은 경찰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는 아내에게 거의 멘탈 붕괴 상태로 “○○야, 설마 네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지? 제발 아니라고 얘기해 줘!”라고 절규하기도 했다.

못 말리는 된장녀 기질과 과시욕, 외국 유학을 갔지만 적응 못 하고 다시 돌아온 것, 입만 열면 횡설수설 거짓말, 자기 잘못은 인정 안 하고 끊임없는 변명 등을 보아하니, 본인은 가해자인 전 현주 씨의 모습이 21세기를 풍미한 희대의 또라이 사기꾼인 신 정아 씨하고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 내역은 성격이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비슷한 종류의 정신병 기질이 아닌가 싶다.

법조인들이 보기에도 전 씨는 죄질이 매우 나빠 보였고, 그래서 엄벌이랍시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8살짜리 딸을 잃은 유가족들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분노했다. 그래도 가석방이나 사면 따위 없이 전 씨는 지금까지도 40이 넘은 나이로 교도소 복역 중이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당연히 이혼을 했으며, 그때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진작에 외국으로 입양되었다. 쩝~
(애초에 저 여자,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하다. 온갖 감언이설로 자기 처지를 속이고 남자를 속였지 싶다.)


김 빛내리 교수로 얘기를 시작했는데 정작 이분 자체에 대한 얘기는 별로 못 하고 같이 덩달아 떠오르는 주변 지식 얘기만 잔뜩 늘어놓게 됐다. ^^
참고로 한글 학회 직원 중에도 ‘김 한빛나리’ 선생님이 계신데, 이분은 남성임.

Posted by 사무엘

2012/05/29 08:40 2012/05/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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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근 교수는 프로그램의 정적 분석 분야에서는 아마 우주괴수급의 전문가가 아닌가 여겨지는 분이다.
카이스트 교수로 첫 부임했다가 2003년부터 서울대로 이직했다. 학부 출신 역시 서울대. 1983년에 입학 당시 자연과학 단과대 수석을 차지했으며, 재학 성적 역시 내내 최상위권이던 수재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교수는 상당한 동안이고 학생 시절 모습이 어땠을지가 상상이 된다.

개교 초창기부터 딱부러지게 전산학과가 있었던 카이스트와는 달리, 서울대는 198, 90년대엔 이과에 속한 계산통계학과와 공과에 속한 전자계산기공학과로 컴퓨터 쪽 학과 계열이 므흣하게 나뉘어 있었다. 통합된 컴퓨터공학부라는 게 생긴 것은 1990년대 말 내지 21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덧붙이자면, 연세대 역시 컴퓨터과학과라는 이름이 생긴 건 2005년부터이고 그 전엔 정보산업공학이라고 하여 이쪽으로의 분류가 모호했다.
IT 붐과 함께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학과 이름이 비교적 최근까지도 일류대급에 속하는 대학에도 없었던 게 의외이다. 어쨌든, 이 교수 역시 당시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이분의 설파 교리(?)와 연구 분야는 이러하다.
먼저, 기계 중심적이지 않고, 수학적으로 더 엄밀하며 인간의 사고와 논리를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향한다. 사실, C/C++이나 자바는 오늘날의 최신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이나 방법론이 반영된 깨끗한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전산학 순수주의자(?)는 특별히 람다 대수에 기반한 OCaml이나 최소한 Scheme 같은 함수형 언어를 선호한다. 함수가 마치 일반 상수처럼 코드 중간에서 별다른 작명 없이도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값처럼 다뤄질 수 있다.
이게 좋은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심지어 C++도 C++0x에서는 함수 포인터를 대체할 만한 람다 대수 문법이 추가되었으며, 비주얼 스튜디오 2010에서는 F#이라는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가 새로 도입되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그리고 이 교수가 연구하는 정적 분석이란, 프로그램을 실제로 실행해 보지 않고, 그 구조를 뜯어보기만 하고서 이 프로그램이 잠재적으로 배열 첨자 초과 오류나 메모리 누설 따위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진단을 내리는 기술을 말한다. 사실, 좋은 프로그래밍 언어란, 컴파일러만 통과한 프로그램이라면 뻗지 않고 잘 돌아간다는 보장이 되어야 하고 컴파일 시점 때 해당 코드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모든 문제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분의 지론이다.

이게 가능할까? 입력은 키보드나 파일로 들어오고 메모리 할당과 해제가 일어나는 통로가 주어져 있을 때, 복잡한 루프와 배열, 함수 재귀호출, 다중 포인터 로직을 추적하면서(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게 아니고!) 딱 보고 이 코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찾아내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ㅋㅋ

당연히 머리가 터져나가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프로그램을 일일이 실행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꼼꼼하고 확실한 검증이 행해질 수 있다. 자동차를 실제로 만든 뒤에 충돌시켜서 부숴 보지 않고도 디자인만 딱 보고 운전자의 안전에 어떤 문제가 있겠는지 예측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은가.

사실, 프로그램 정적 분석과 뿌리를 공유하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바로 전산학에서 다루는 정지 문제(halting problem)이다. 이는 오늘날의 컴퓨터 모델인 튜링 기계에서는 100% 완벽하게 푸는 게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그램 정적 분석기 또한 100% 완벽하고 정확하게 동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실제로는 문제가 있는 부분이 아닌데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는 false alarm도 존재한다. 그 이상 더 정밀하게 동작할 수는 없기 때문.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어디냐. C/C++은 성능이 무지막지하게 좋은 대신, dangling pointer, memory leak, buffer overflow 등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무시무시한 버그와 보안 문제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chaotic한 언어가 아니던가? 전산학 전공자는 소프트웨어 공학 시간에 익히 배워 알듯, 소프트웨어 개발이란 건 그렇잖아도 작업의 절대적인 양과 질을 측정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그러니 소스 코드를 정적 분석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이는 IT 산업계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뻑이 날지 모르는 C/C++ 언어로 의료 기기나 우주선 같은 크리티컬 시스템을 만들거나 사용하려면 미리 보험이라도 들어 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로. -_-;;

이런 복잡도를 제어하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게 이 광근 교수의 목표이다.
그분은 이걸로 이미 저명한 학술지에 적지 않은 논문을 냈고, 소프트웨어 검증 솔루션을 개발하여 기업체에 납품했다.

사실, 비주얼 스튜디오도 일반인이나 학생이 사용하는 라이선스 말고 제일 비싼 엔터프라이즈급 라이선스 제품을 써 보면, 소스 코드 정적 분석 기능이 들어있다.
기회가 되면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도 그런 걸로 한번 좀 분석해 봐야 할 텐데 말이다. 메모리나 GDI 개체, 커널 핸들 등 해제가 필요한 자원들은 전부 클래스 소멸자가 처리하게 바꾸고, 지속적인 개량과 코드 리팩터링을 해 왔기 때문에 그런 초보적인 실수는 이제 없으리라 여겨진다만, 이걸 시스템 차원에서 깔끔하게 입증을 못 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코드를 실행하지 않고 척 들여다보기만 한 뒤 그 코드로부터 문제될 만한 부분을 알아서 찾아 내는 것은 활용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마치 공항 검색대가 가방을 열어 보지 않고 사생활 침해 걱정이 없이 비행기에 실을 수 없는 물건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유용한 기술인가?

이 광근 교수는 자기 연구 분야를 차치하고라도, 독특한 스타일의 강의 자료나 여러 글들을 읽어 보면, 가히 공부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며 정말로 보통사람이 아니다 싶은 면모가 여럿 느껴진다. 특히 이분은 우리말로 학문하기에 대한 관념이 굉장히 투철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 “MIT라는 이름은 본토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황해도 과기원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으며, 떼제베도 프랑스 원어민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단지 매우 빠른 열차일 뿐이다. 우리만 혼자 폼나 보인다고 외래어 알파벳을 남발하고 있다.”
  • “비록 어떤 개념이나 기술이 외국에서 유래되었다 하더라도, 그 원판을 능가하는 학문적 성과는 언제나 모국어를 통해서만 이뤄져 왔다.

외래어는 싹 다 배격하고 정확· 엄밀함을 희생해서까지 무조건 뭉뚱그려서 순우리말만 쓰자는 국수주의 주장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주장이다.
작년에 한창 카이스트가 자살과 영어 강의 때문에 시끄럽던 시절에 이분은 자기의 지론을 다시 한데 정리한 개념글을 하나 교수신문에다 기고했다. 그 후 이 글은 전산 비전공자, 심지어 인문학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인용되고 폭풍처럼 칭송받고 있는 중이다.

IT 쪽 최정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례적으로 용어 순화와 모국어 강의를 옹호하니 뜻밖이지 않은가? 저 글에 딱히 정치색이 있는 건 물론 전혀 아니지만, 영어 강의, 세계화 이런 것들을 반대하고 이념적으로 진보 성향이 좀 있는 사람들이 더욱 지지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조 국 교수도 그 글을 완전 극찬한 바 있다.

카이스트 교수 부임 시절에 이 교수는 학과 이름을 전산학과에서 컴퓨터xx학과로 바꾸는 것도 괜히 쓸데없는 일이라고 만류한 적이 있다. ACM, IBM의 M은 완전 구닥다리 용어인 '기계'라는 뜻이지 않냐고 말이다.

그리고 대학 캠퍼스 내부의 건물들을 초행자도 식별하기 쉽게 번호가 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신 바 있다.
그 제안 때문인지 이분이 서울대로 전근 가신 뒤에 얼마 안 되어(2004~2005년쯤 아마?) 카이스트도 건물들에 N0, E0, S0 같은 식으로 번호가 붙었다.
서울대는 워낙 건물이 많고 내부가 복잡해서 진작부터 그런 게 있다.
연세대는 그런 거 없다. 본교 도입이 시급합니다.

지금이야 카이스트 전산학동이 수 년 전부터 몇 층 더 증축되었지만, 그 당시에 이 광근 교수는 아마 공간 부족으로 인해 전산학동이 아닌 이웃 산업공학동에 연구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어른들의 사정이 더해져서 그분은 서울대로 전근을 가신 걸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전산학과의 김 태환 교수도 서울대로 가셨다.

이분의 수업은 진짜 그냥 온갖 기호와 공식, 증명이 즐비한 수학 덕후식이며 빡세다..;;;
그래서 카이스트 재학 시절, 내게는 좀 굴욕적인 기억이 있다.
C++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중독되다시피하던 내 머리 구조로는 nML이네 뭐네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PL”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전공 필수 과목일 뿐만 아니라 전근을 앞둔 스타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드랍하고 말았다. 2003년 봄 학기의 일이다. 그것도 수강 변경도 아닌 철회 기간에 출혈을 감수하며 드랍.

난 그 당시 <날개셋> 한글 입력기 2.x와 3.0의 개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 않은 복잡한 추상화 계층이나 뜬구름 잡는 이론에는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던 시절이었다. 동기 부여를 받으면 철도 덕후 수준으로 머리가 미쳐 돌아가지만, 동기 부여가 없는 곳에는 난 담을 확 쌓아 버리고 죽어도 관심 안 보인다. 역시 난 프로그래밍으로 다른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삶의 목적이지, 프로그래밍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은 내 적성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C++보다 더 엄밀하고 깔끔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수학 덕질하는 것보다는, 당장 윈도우 API로 옛한글과 세벌식 모아치기를 구현하는 것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서..

그래서 나중에 한 태숙 교수의 PL을 다시 들었다. 이분의 PL 수업이 그나마 내가 생각했던 PL 수업에 더 근접한 평범한(?) 것이었고, 들을 만했다.;;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들의 특성과 개념, 값의 평가 시기, LL 파서, LR 파서, garbage collector의 동작 원리 등등.. 참고로 덧붙이자면, 내가 예전 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듯 한 교수 역시 왕년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공부 만렙 괴물이다.;;

현재는 카이스트 전산학과의 류 석영 교수가 과거 이 광근 교수의 제자이며, 그분 뒤를 이어 카이스트 프로그래밍 언어 연구실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한 태숙, 최 광무 교수와 같이).
류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이 교수 연구실은 말도 못 하게 무지막지하게 빡세기 때문에, (그 대신 잘 적응하면 얻는 것도 많겠지);; 어지간한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그분 연구실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건 비추라고 한다. =_=;;;
그래도, 좀 까칠한 것만 빼면 교수님은 학자로서 정말 좋은 분이라고.. ㅜㅜ

어쨌든 이 광근 교수. 수업 하나 들은 적도 없이 헤어졌지만, 이런 식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본인이 이분에 대해 수집한 모든 정보들의 출처는 당연히 그분의 공식 홈페이지이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방문해 보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2/02/29 19:12 2012/02/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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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우중(전 대우 그룹 회장) 씨는 경기고 출신인데 학창 시절에 좀 '놀아서' 서울대는 못 가고 연세대 상경과에 갔다고 한다.

2. 도올 김 용옥 박사(인문학자, 방송인)도 역시 학창 시절에 일탈도 하고 패싸움도 일삼을 정도로 좀 '놀았고', 특히 수학이 완전 바닥을 기는 바람에 서울대를 못 가고 고려대에 갔다고 한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형들은 다 KS(경기고-서울대) 라인에 교수가 돼 있는데 자기만 가문에서 학벌이 가장 안 좋아서 컴플렉스가 있었고 함. 그것이 훗날 그의 '학위 수집증' 기질에 영향을 준 것 같다.

3. 김 진우 교수(일리노이 주립대 언어학 명예교수, 연세대 석좌교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굉장히 잘 했고 원래 서울대 언어학과를 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Catch Me If You Can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교통· 통신이 열악하던 옛날에, 하나밖에 없던 서울대 지원서가 어이없는 이유(가정사 관련..)로 소실되는 바람에 서울대에 지원 자체를 못 하고 차선책으로 연세대 영문학과에 가게 됐다고.
그래도 그 덕분에 최 현배 박사도 만나고, 지금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 라인 인맥에 합류. 이분은 모교인 연세대에도 언어학과를 개설하고 싶어하는 1人이시라 한다.

4. 오 준호 교수(KAIST 전자공학)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봇 전문가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카이스트' 하면 '휴보 로봇'이 떠오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어릴적부터 기계 덕후였고 뼛속까지 공돌이였다. 당사자의 회고에 따르면, 공부에는 한동안 손을 놓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 수학에서 극한이라는 개념을 배우면서 공부에 순식간에 물미가 텄고, 교육과정을 다 따라잡았다고 한다. 흠좀무.
그러나 대학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독일어를 도저히 못 해서였다고 한다. -_-;;

좀 노느라 서울대를 못 간 바람에(3은 제외) 대신 간 학교가 연세대· 고려대급이라니 오늘날의 수험생들에겐 참 경악스럽긴 하지만,
옛날에는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지방 국립대의 위상도 높았으며, SKY 그룹 안에서도 학교간 지원자의 학력 격차가 지금보다 더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오늘날처럼 재수· n수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시절은 더욱 아니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인인 1을 제외한 2~4는 모두 석· 박사는 외국에서 마쳤다.

그리고 4번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 외국에도 역사적으로 라틴어 때문에 학력 발목이 잡힌 유명인사가 꽤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끝으로, 본인은...
학부는 당시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을 가장 많이 인정해 주던 곳으로 가고,
대학원은 적성에 맞는 과를 찾다 보니,

서울대하고는 둘 모두 인연이 없게 됐다.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2/02/01 08:52 2012/02/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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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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