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수여식 (201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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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를 졸업한 지 어언 7년이 지난 뒤에야 후드가 걸쳐진 졸업 가운이라는 걸 입게 됐다. 주황색은 공학을 뜻한다. (학사용 졸업 가운은 후드가 없음.)

학사는 성적이 중요하니 최우등/우등 졸업이라는 게 있다. 박사는 시험 점수 따위를 초월하여 개개인이 이제 자기 분야에서 프로 연구자이니, 졸업자들이 모두 호명되고 학위 논문의 제목까지 유인물에 다 기재된다.
그 반면, 석사는 둘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콩라인이다.

태풍 직후, 날씨가 최강 좋았다. 맑고 파란 하늘 덕분에 사진 찍기는 최고의 날씨였다.
괜히 Y대 아니랄까봐, 학위수여식은 찬송가 제창과 성경 봉독으로 시작해서 축도로 끝났다.
혼자 예상한 것보다 좀 더 오버하듯이 씨익~ 웃어야 사진이 더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나온다는 걸 느꼈다.

내가 전형적인 내 학부 학교 출신들이 가지 않는 학교와 과로 대학원 진학을 하고, 남들은 박사까지 다 마칠 나이에 이제 겨우 석사를 마친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남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없는 진로를 만들면서 가고 있어서..;;

Posted by 사무엘

2012/09/03 19:20 2012/09/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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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우중(전 대우 그룹 회장) 씨는 경기고 출신인데 학창 시절에 좀 '놀아서' 서울대는 못 가고 연세대 상경과에 갔다고 한다.

2. 도올 김 용옥 박사(인문학자, 방송인)도 역시 학창 시절에 일탈도 하고 패싸움도 일삼을 정도로 좀 '놀았고', 특히 수학이 완전 바닥을 기는 바람에 서울대를 못 가고 고려대에 갔다고 한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형들은 다 KS(경기고-서울대) 라인에 교수가 돼 있는데 자기만 가문에서 학벌이 가장 안 좋아서 컴플렉스가 있었고 함. 그것이 훗날 그의 '학위 수집증' 기질에 영향을 준 것 같다.

3. 김 진우 교수(일리노이 주립대 언어학 명예교수, 연세대 석좌교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굉장히 잘 했고 원래 서울대 언어학과를 가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Catch Me If You Can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교통· 통신이 열악하던 옛날에, 하나밖에 없던 서울대 지원서가 어이없는 이유(가정사 관련..)로 소실되는 바람에 서울대에 지원 자체를 못 하고 차선책으로 연세대 영문학과에 가게 됐다고.
그래도 그 덕분에 최 현배 박사도 만나고, 지금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 라인 인맥에 합류. 이분은 모교인 연세대에도 언어학과를 개설하고 싶어하는 1人이시라 한다.

4. 오 준호 교수(KAIST 전자공학)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봇 전문가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카이스트' 하면 '휴보 로봇'이 떠오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어릴적부터 기계 덕후였고 뼛속까지 공돌이였다. 당사자의 회고에 따르면, 공부에는 한동안 손을 놓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 수학에서 극한이라는 개념을 배우면서 공부에 순식간에 물미가 텄고, 교육과정을 다 따라잡았다고 한다. 흠좀무.
그러나 대학은 서울대 대신 연세대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독일어를 도저히 못 해서였다고 한다. -_-;;

좀 노느라 서울대를 못 간 바람에(3은 제외) 대신 간 학교가 연세대· 고려대급이라니 오늘날의 수험생들에겐 참 경악스럽긴 하지만,
옛날에는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지방 국립대의 위상도 높았으며, SKY 그룹 안에서도 학교간 지원자의 학력 격차가 지금보다 더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오늘날처럼 재수· n수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시절은 더욱 아니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인인 1을 제외한 2~4는 모두 석· 박사는 외국에서 마쳤다.

그리고 4번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 외국에도 역사적으로 라틴어 때문에 학력 발목이 잡힌 유명인사가 꽤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끝으로, 본인은...
학부는 당시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을 가장 많이 인정해 주던 곳으로 가고,
대학원은 적성에 맞는 과를 찾다 보니,

서울대하고는 둘 모두 인연이 없게 됐다. 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2/02/01 08:52 2012/02/0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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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우 교수 (언어학자)

김 진우 교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언어학자로, 특히 음운론 분야에서 세계구급 권위자이다. 한국에서는 <언어>의 저자라고 말하면 그쪽 분야 전공자들은 알아듣지 싶다.
이분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60년대 초에 미국에 건너가서 한국인 최초로 UCLA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1964년 석사, 1966년 박사......;;; 뭐야 이거 무서워..;1)

그리고 1967년엔 곧장 일리노이 주립 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여 미국에서 언어학을 가르쳤으며, 아예 언어학과 학과장까지 역임했다고 한다. 1982년엔 발행처는 모르겠지만 무슨 미국 인명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뭘 잘해야지 저렇게 될 수 있는지는 내게 묻지 말라..ㄷㄷㄷ;;

교수가 된 지 4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분은 학계에서 가히 만렙 중의 만렙을 찍었다. 일리노이 대학 명예 교수에, 학부 모교인 연세대로부터도 “국내에서도 후학 좀 양성해 주삼” 거듭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 2007년부터 석좌 교수로 부임. 몸이 둘일 수가 없는 게 아쉬울 뿐이지 한국과 미국 어디에서도 와 달라는 곳이 쇄도하는 저명한 석학이 되었다.

서 남표 카이스트 총장과는 한 살 차이. 나이도 비슷하고 미국 유학 가서 대학 학과장을 역임한 교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_=;;

본인은 이번 학기에 국어 음운론 연구를 들었는데 교수님이 왕년에 저 정도로 괴물이셨지는 미처 몰랐다..;;
내가 언어학 쪽으로 뭘 좀 알면 저런 유명한 교수님에게서 많은 걸 얻고 배워 갈 수 있을 텐데, 나의 그릇 크기가 못 따라간다. -_-;;
지금까지 내가 낸 과제물들을 보고 얼마나 민망해하셨을까? ㅠㅠㅠㅠㅠㅠㅠ

회식 자리에서 잠시 얘기를 나눠 본 바로는 김 진우 교수님은,
제임스 맥콜리 교수(시카고 대학 언어학)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고,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맥콜리 교수는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언어학을 재미로 즐길 줄 아는 양반이었음”이라고 회고하심. 흠좀..;;;
그리고 본인에게 덧붙이기를 “오, 그나저나 자네가 맥콜리 교수를 어떻게 아나?” 이러더이다.

워싱턴 대학의 故 서 두수 교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서 국어학· 한국학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 봤다고 말씀하셨다. 교수 세계는 엄청나게 좁고 좁은 바닥이다 보니 원래 서로 다 안다. ㅡ,.ㅡ;; 그분의 아드님이 그 이름도 유명한 카이스트 서 총장이라고 내가 얘기하자 그건 처음 들었다며 놀라셨다.

첫 수업 시간에 언어 현상에 대한 관찰, 가설 같은 걸 강조하실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분은 사실 이공계 마인드도 투철해 보였다. 수학· 과학 같은 과목도, 좋고 싫고를 떠나서 학교 공부는 시험만 쳤다 하면 다 100점씩 맞았다네.. ㅠㅠ

의대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외과 치료가 적성에 안 맞아서 진로를 바꾸셨다고 한다. 이공계 대학원을 갔으면 자기도 서 남표 같은 거창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웃으셨지만... 선생님, 선생님은 이미 언어학에서도 충분히 넘사벽급 만렙을 찍어 계십니다.
하긴, 언어학 자체가 추상적인 계층으로 들어가면 다 수학, 논리학인 것도 사실이고.

역시 교수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보는 건가 보다. ㅠㅠㅠ
허나, 이분의 고학 시절 회고록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나는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억압적인 환경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일제 강점기, 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등 교육 환경도 열악했다.
그러나 나는 가난이 무지의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오늘의 풍요로운 환경을 활용하지 않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서글프고 안타깝다.
왜냐하면 나는 최상의 조건 속에서 단지 평범함만을 좇는다면 그건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분, 학비 벌려고 백인들에게서 멸시 받으면서 접시 닦던 시절에는 '내가 미국까지 가서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그냥 돌아가서 한국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만 해도 충분한데' 이런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고.2)
그때 학업을 때려치웠으면 오늘의 김 진우 교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 남표 총장도 미국의 고등학교와 MIT 학부 시절에 자기 말마따나 호스로 물 쏟아붓듯이 밀려드는 학교 수업 물량 공세에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도 고학을 했으며, 그 당시엔 요즘 같은 자살 따윈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댄다.

이런 걸 생각하면 옛날과 지금의 환경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 기술의 발달, 정보 접근성의 평등, 물질적인 풍요 면에서는 과거보다 확실히, 월등히 더 좋아졌다. 이는 본인의 세대가 우리 부모 세대에 고마워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 대신에 신세대들이 치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대가도 있다.
과연 요즘 대학은 옛날 정도의 고학으로 학비 조달이 가능할까?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가능성이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미국은 자녀 나이가 18세만 되면 부모가 경제 지원을 딱 끊어 버리는데, 한국은 무슨 부모가 결혼한 자녀의 집까지 마련해 줘야 하나? 나약한 것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과연 요즘 월급 모아서 집 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어느 쪽 말도 일리가 있는 면도 있고, 어느 쪽 말도 좀 어폐가 섞인 비약도 있어 보인다. 그 중 어느 게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내 능력으로는 더 결론을 못 내리겠다.
본인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야 고생을 모르고 편하게 자라고 나약한 면모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성세대가 까는 것만치 그렇게까지 개념 없고 구제불능도 분명 아니다. 그들도 다 자기 살 길 찾아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말 어지간히 어려울 때 자살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사회 구조적으로 답이 안 보이니까.. -_-;;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 구조에 대한 괜한 피해· 비관 의식을 불식시키려면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도 한번쯤 필요한 것 같다.

김 진우 교수 얘기하다가 갑자기 얘기가 옆길로 많이 샜네..;;
아무튼 저분은 천재에다 노력형... 뭐 더 말이 필요없는 타입 되시겠다. 그저 존경스러울 뿐.
나도 좀 불안한 진로를 가고 있고 학교와 회사 같이 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내가 정말로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힘든 상태인지는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다.


Notes:
1) 재미있게도, 분야만 다를 뿐 출신 학교가 거의 같은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UCLA에서 경영학 석사, 그리고 나중에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된 김 진우 교수도 있다. 정말 헷갈리기 쉽겠다. -_-; 물론 경영학과 교수는 언어학 김 진우 교수보다는 훨씬 젊은 분이다.

2) 여담으로, 유학을 갔다 온 건 아니지만 카이스트에도 좀 비슷한 위상으로 신분을 바꾼 분이 계신다. 기초 필수 영어 과목과 교양 영문학을 가르치는 인문 사회 과학부의 이 수현 교수인데, 무려 15년 가까이나 중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홀연히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영문과 박사 학위를 받고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 지금은 역시 만렙 찍은 후 이미 명예교수가 되셨다. 그 나이에 교사에서 교수로 업글한다고 해서 돈· 시간 면에서는 그리 메리트가 없을 텐데 정말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7 19:18 2011/06/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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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를 떠난 교수들 외

본인이 학부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는 서 남표 총장을 주축으로 하여 내부 시스템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나 같은 학생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바뀐 제도도 꽤 되기 때문에, 병특도 휴학이 아니라 일찌감치 졸업을 해 버리고 간 것을 본인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_- (본인은 최 덕인· 홍 창선 원장에서 시작해서 러플린 총장으로 끝난 세대이다.)

본인의 전공인 전산학과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조교수였던 분이 부교수가 되고 부교수가 드디어 정교수로 진급해 있는 것을 홈페이지를 통해 보곤 했다. 또한 ICU가 진통 끝에 카이스트와 결국 합병되면서, 그쪽 인력의 유입으로 인해 예전에 못 보던 교수들 얼굴이 크게 늘었다. 정보통신부가 없어진 게 크게 작용했으리라.

200X년도에 스탠퍼드, MIT 등 굴지의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곧장 카이스트로 온 젊은 신임 교수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제는 교수가 돼도 정년 보장이 옛날만치 쉽지 않고, 주변에 온통 널린 게 천재들 뿐이니 연구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찮을 것이다. 서 총장이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엄청 쪼아대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샌가 카이스트를 떠난 교수도 보인다.
얼마 전엔 우연히 졸업생 조회 웹사이트에서 본인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그랬는데, 본인의 학부 졸업 논문 지도교수였던 분이 지금은 카이스트 교수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뭐, 학부 졸업 논문은 진짜 형식적이었고, 교수님이 내 리포트를 읽어는 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얼렁뚱땅 통과가 되긴 했다. 그래서 요즘은, 학부 수준에서는 졸논을 좀더 실무 위주인 현장 실습이나 졸업 프로젝트로 대체하는 게 카이스트를 비롯한 국내 대학들의 전산과의 추세이다.
처음에 본인의 지도교수는 다른 분이었는데, 나중에 졸논을 쓸 무렵에 여차여차 하다 보니 저 교수로 바뀌었다. 어째서 하필 그분으로 배정됐는지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좀더 검색을 해 보니까, 그 교수님은 고려대로 전근을 가 계셨다. 오홋;;;
호기심에 옛날 교수들 검색을 더 해 봤는데, 굉장히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성균관대에 전직 카이스트 교수가 네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2008~09년 무렵에 한꺼번에 저기로 간 것이었다. 본인은 학부 시절에 그 교수 4인 중 3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어이쿠, 게다가 이것도 나 혼자 뒷북이었다. 성균관 대학교는 스마트폰 열풍 속에서, (그리고 아마도 이 건희 본좌님의 입김으로) 소프트웨어학과를 신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드웨어인 반도체에 이어서 소프트웨어까지 특성화?? 본격 IT 대학으로 거듭나려는 듯.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대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를 한꺼번에 네 명이나 스카웃해 갔으며, 이것은 이미 그 당시에도 큰 뉴스거리로 떠올랐다고 한다.

아마 대전 생활에 신물을 느꼈거나, 서 총장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거나, 반대로 성균관대의 파격적인 처우 제안에 끌렸거나...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분들이 전근 간 게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말:

1.
본인은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오지 않았고 병특 중에도 딱히 군대와 관련된 안 좋은 일을 겪은 적은 없기 때문에,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_-;;; 같은 건 안 꾼다.
하지만 한때는 아래와 같은 판타지 같은 꿈도 자다가 몇 번 꾸긴 했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ISEF에 또 출전하는 꿈 (10년 도 더 전 일을..;; ㅋㅋㅋ)
- 병특을 마친 뒤에 카이스트로 3년 만에 복학하여 졸업 이수 요건 채우느라 고민하는 꿈 (아놔 나 3년 전에 졸업했어-_-)

2.
본인은 주임 교수가 국문과 소속인 협동 과정 대학원에 갔지만 학위 논문의 지도교수는 국문과가 아닌 컴퓨터과학과(전산과의 연세대 학과 명칭) 교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이곳의 교수들은 어떤 분이 있는지 틈틈이 찾아보고 있다. 본인의 코스와는 정반대로 학부는 연세대에서, 석· 박사를 카이스트에서 마친 교수가 한 분 계시는구나. 뭐 학번 차이는 본인과는 이미 까마득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내년부터는 국어학뿐만 아니라 컴퓨터과학과의 대학원 수업도 들을 예정이다. 본격 공학관에도 드나들게 되겠구나.

3.3.
그나저나 내 홈페이지 메인의 공개 사진을 바꿀 때가 되긴 했다. 공중파 TV에 출연한 화면이고, 분장도 아주 잘 돼 있는 데다 자막 내용-_-까지 여러 모로 아주 간지나는 모습이긴 하나.. 벌써 5년도 더 되어 너무 오래 됐고, 결정적으로 본인은 이제 카이스트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TV에 출연한 게, 2006년에 한글 관련 다큐에 출연한 게 마지막이니, 다음엔 철도 관련 다큐에서.. (ㅎㄷㄷㄷ) 자막은 당당하게 '연세대 언어정보학과'라고 말이다. 그런 화면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 듯.

그래도 대전과 카이스트도 언제까지나 내게 제 2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남을 것이다. 일반 대학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카이스트만의 그 학교 분위기와 프라이드(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_-)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19 09:39 2010/10/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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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각종 잡설

1.
요즘 컴파일러는 참 똑똑하긴 하다.
release 빌드로 만든 exe/dll을 우연히 디버거로 들여다봤는데, 예상보다 함수 인라이닝을 상당히 더 적극적으로 해 놓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static 라이브러리 안에 들어있고(즉, 템플릿처럼 컴파일 때 매번 함수 몸체가 include되는 것도 아니고, 링크할 때가 돼야 정체가 알려지는...;;)
statement가 4~5개 정도 있던 함수도 함수 몸체 전체가 인라이닝되어 호출되는 곳에 일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라이닝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함수인데 말이다. 또한 FM대로 하는 전통적인 C/C++의 컴파일-링크 구조로 볼 때에도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니까 exe/dll 사이즈가 꽤 커졌겠구나 싶었다.
사실, 요즘 컴파일러들은 단순히 '빠르게 최적화'를 넘어서 번역 단위(translation unit), 쉽게 말해 오브젝트 파일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역 최적화라든가 심지어 프로파일 기반 최적화 기법도 제공하고 있다.
그런 것까지 동원해서 변태적인 튜닝을 하고 나면 코드의 크기가 대체로 더 커진다. 그렇게 커지는 건 대체로 인라이닝 때문이다.

그나저나, 개발 중인 ngs3.dll (날개셋 한글 입력기 커널)의 600KB 돌파 경축~~ ㅋㅋ

2.
그러고 보니, 웹에서 그림을 실제 크기와는 다르게 확대/축소해서 표시할 때 안티앨리어싱을 하기 시작한 게 IE8부터이구나!
8이 7에 비해서 바뀐 게 뭐가 있는지 도통 궁금했는데 아주 중요한 게 하나 개선됐다.
왜 진작에 이렇게 조치를 안 취했는지 모르겠다. 훨씬 더 보기 좋다.
예전에는 IE에서 축소된 그림은 보기가 굉장히 흉측했었다. 8 쓰다가 다시 7을 써 보니까 바로 티가 난다. 집 컴도 인터넷 뱅킹만 이상 없이 되면 8로 업글을 할 텐데.. 아직 7 쓰고 있다.

한편, 모 웹사이트는 표 안에 <tr><p></tr>라는, 문법에 어긋나는 HTML 코드가 들어있었다.
지금까지 IE는 이런 웹사이트도 그냥 알아서 봐 주고 제대로 표시해 줬다.
그러나 여타 브라우저라든가 IE8에서는 이 표의 레이아웃이 깨진다. '호환성 보기' 옵션을 켜야만 옛날처럼 보인다.

IE가 ActiveX 말고도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욕 얻어먹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 같다.
특히 구닥다리 IE6은 오늘날 최소한 개인용 컴퓨터 환경에서는 거의 다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이제 아직까지 IE6이 쓰이는 곳은, 개인의 권한으로 웹브라우저를 바꿀 수 없는 피씨방, 공공장소의 컴퓨터밖에 없지 싶다. 그런 곳에는 아직도 IE6이 널렸으며, 이제 IE6 퇴출 캠페인은 개인 사용자가 아니라 그런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

3.
연세대는 정문에 들어서면 쭉 큰길이 나 있고 중앙 지점에서 Y자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그런데 남쪽의 정문, 남서쪽의 쪽문, 그리고 북동쪽의 동문, 북쪽에 있는 기숙사 구도는 카이스트의 지리 구조와 무척 비슷해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월요일이 아니라 언제나 3월 1일이나 9월 1일 이후에 개강하는 것도 카이스트와 동일하다.

재미있는 차이점을 말하자면, 교시라는 개념이 있고 수업 시간이 무조건 n시간 단위로 떨어진다는 것. 카이스트는 딱히 교시가 없고 3학점짜리 학부 수업이라면 90분씩 두 번도 한다. 그러나 연대는 1시간과 2시간 이런 식이다. 그런 체계는 학부 시절에 보지 못했다.
또한 연대에서는 여러 식당에서 밥을 먹어 봤지만, 메뉴 자체가 여러 종류가 있어서 그것만 고를 수 있지 카이스트의 학부 식당처럼 반찬을 내가 일일이 골라서 선택한 반찬별로 돈을 내는 식당은 못 봤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12 17:15 2010/10/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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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철도 생각

1. 대학원 생활과 철도

연세대 안에서 문과 대학에 속하는 위당관, 외솔관 같은 건물은 정문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밖이 아주 조용할 때는, 정문 근처의 경의선 철길로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그 먼 곳까지도 들린다.
물론 새마을호나 KTX 같은 열차의 소리는 어림도 없고, 디젤 기관차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철도가 소음과 진동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게 이런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긴, 디젤이면 그나마 양반이지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열차가 지나가면서 주변에 끼치는 side effect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뿜어져나오는 연기가 아주 그냥..;;
"이 친구,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먹었나?"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일산에서 통학하는 대학원 선배가 계셔서 그분께 "경의선 서울-수색 구간은 운행을 마친 일반열차들이 회송하는 경로이기 때문에 선로 용량이 부족해서 전철이 1시간에 1대꼴로밖에 못 다닙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자기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놀라워하셨다. 열차가 왜 이렇게밖에 안 다니는지 궁금했고 불편했더랜다. 사실, 연세대 학생 중에도 자기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철길이 경의선인 줄 모르는 사람이 꽤 있다. 서울이나 용산역에서 운행을 마친 여객열차들이 회송하는 경로라는 것도 다들 처음 듣는다는 반응.;;

언젠가 학교에서 경의선 열차로 서울 역에 간 후, 거기서 바로 열차를 타고 대전이나 경주로 가 보고 싶다. 그럴 일도 언젠가 분명 생기게 될 것이다. ^^

그나저나 연대 정도면 지하철 역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아서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질없는 생각이다.
강의실이 정문에서도 워낙 멀어서.. 결국은 어차피 셔틀버스 타게 되더라. ㅋㅋㅋ 셔틀버스 타고 매일 독립문 구경하면서 등교한다.
학교 지리에 완전 새내기이던 시절에나 신촌 역에서 강의실까지 걸어 다니지, 지금 그 짓을 다시 하라면 최소한 혼자서는 못 할 것 같다.

끝으로, 좀 엉뚱한 상상.
(1) 내가 만약 지금 같은 과가 아니라 이공계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고 (2) 카이스트나 서울대를 가지 않고 유학도 가지 않는다면,
내가 가게 됐을 가능성이 높은 곳은 단연 포항공대일 것이다. 서울도, 대전도 아니라면 고향과 가까우면서 가격 대 성능이 뛰어난 학교가 단연 저기였을 테니까 말이다. 집에서 CDC 타고 다니며 통학하거나 아니면 아예 운전을 하겠지.;;

하지만 둘 다 본인의 성향상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고, 또 지금은 KJV를 믿는 지역 교회가 필요하고 게다가 철덕 기질(우리나라에서 서울과 수도권만치 철도 교통이 발달한 곳은..;)까지 있다 보니 서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지는 중이다.

2. 철도는 웰빙 고품질 교통수단

본인은 지금까지 강북, 강남, 심지어 분당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10~25km 정도 떨어진 다양한 곳을 나름 출퇴근 경로로 왕래한 경험이 있다. 물론 어느 곳이든 주된 출퇴근 교통수단은 지하철이지만 아주 가끔 버스도 이용해 봤다.

버스와 지하철 중 더 빠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지하철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 차이가 나냐 하면, 지하철을 탔을 때 문에서 문까지 걸리는 전체 소요 시간과, 버스를 탔을 때 버스 안에서 순수하게 보내는 시간이 비슷하다. 즉, 버스를 타면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에서 내려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하철을 탈 때에 비해 추가로 더 걸린다는 뜻이다.

그래도 버스는 일반적으로 지하철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타서 목적지에서도 더 가까운 곳에 내린다. 또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없고, 지하철로는 한두 번 갈아타야 하지만 버스로는 한번에 가는 노선이 존재한다. 실제로 본인의 집에서는 논현을 경유하여 강남 역까지, 그리고 분당 야탑과 서현까지, 게다가 심지어 학교까지도 환승 없이 바로 가는 버스가 모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는 일반 도로 교통수단에 비해 우월하다.
빠르고 대량 수송이 가능하고 정시성이 뛰어난 것뿐만이 아니라, 일반 도로 교통보다 훨씬 더 쾌적하고 편한 여행이 가능하다.

철도는 불쾌한 진동, 급가속, 급제동, 급커브가 없어서 멀미를 사실상 전혀 겪지 않는다. 자동차 특유의 차냄새도 없다.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열차 안에는 안전벨트라든가 구명용 조끼, 구토용 봉투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어지러워서 노트북 작업이나 독서를 할 엄두를 못 내며, 그저 자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열차 안에서는 이동 중에 그런 지적 활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만치 철도는 시쳇말로 "웰빙 고품질" 교통수단이라는 뜻이다. 철도는 정시성뿐만이 아니라, 탑승자를 덜 피곤하게 만든다는 점에서까지 사람의 시간을 아껴 준다. 도시 철도의 성격을 띠는 지하철은 정차가 굉장히 잦기 때문에 조금만 거리가 멀어지면 의외로 자동차에 비해 속도 메리트가 감소한다. 그러나 저런 편안함 덕분에 시간을 버는 면모도 생각해 봐야 된다는 뜻이다.

쾌적성 면에서는 철도와 비행기가 비슷하게 편하고, 버스와 배가 비슷하게 불편한 것 같다. 물론 비행기도 난기류 때문에 흔들릴 때는 가끔 멀미를 하지만, 버스나 배 수준의 빈도로 발생하는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상 교통수단은 고체 매질과 마찰이 있고 선박도 액체 매질과의 마찰이 있지만, 비행기는 오로지 기체와의 마찰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도는 철과 철이 접한다는 특성상 매질과의 마찰이 아주 작으며, 완전히 떠서 달리는 자기 부상 열차는 마찰이 항공 수준과 동일하여 더욱 편안한 여행이 가능할 것이다. ^^;;

3. 열악한 철도 인프라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는 철도 투자에 지금까지 너무 인색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없던 여객 철도 노선을 완전히 새로 만든 게 얼마나 됐나? (기존선의 개량, 연결, 복선화 같은 거 말고)

가장 시급했던 영동· 태백선 같은 산업선이라든가 6,70년대에 경전선이나 만든 게 전부이다.
고속철은 '빠른 경부선'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신규 노선이 아니고, 공항 철도나 수도권 전철을 빼면.. 전무에 가깝다.

가령, 일제 강점기 때까지 철도가 없던 충청남도 공주에 철도가 생겨서 새마을호가 다니기 시작했다거나,
하남과 용인에 철도가 들어갔다거나, 대구와 광주가 철도로 연결됐다거나 한 적이 대한민국 역사상 없었다는 소리이다.
그러는 동안 고속도로만 가히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구축되어 가고.;;

그러니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로지 자가용이나 고속버스만 생각하게 되고, 철도는 명절에나 생각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KTX라는 명칭 그 자체가 사실상 경부선이라는 노선과 한국형 떼제베라는 차량 계보를 대표하는 말이지만 일본은 신칸센의 노선과 차량 계보 규모가 가히..;; 이웃나라 일본에서의 철도에 대한 인식과 한국에서의 그것은 가히 넘사벽에 가까운 차이가 존재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이야 우리나라도 KTX에, KTX 산천에, 누리로에, 공항 철도처럼 다양한 철도 차량이 들어와서 다재다능한 전동차 맛을 보기 시작하는 중이지만 그 전에 우리나라의 철도 인프라는 가히 시간이 정지해 있는 것에 가까웠다. 재래식 기관차+객차 운영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고, 앞으로 기관차는 화물 아니면 침대차 같은 곳에서나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06 15:00 2010/10/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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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이야기

이미 대문에도 올리고 몇 차례 알렸듯이, 본인은 연세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9월 1일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쪽 근황에 대해서도 블로그에다 글을 남길 필요를 좀 느낀다.

※ 학교 얘기

보통 대학들은 표어(표어? 교훈?)에 라틴어나 한자 나열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데에 즐겨 등장하는 '베리타스'(진리)라는 단어는 아예 차 이름으로까지 본격 등장해서 '제네시스'와 맞장 뜨는 중이다.
하지만 성균관대나 육사 같은 곳은 성향상 표어가 응당 한자(한자어도 아니고) 형태. 설마 육사 표어가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같은 라틴어 나부랭이이겠는가? ㅋㅋ

그런 학교들 중, 연세대는 기독교 계열 학교가 아니랄까봐, 표어로 간지나게 성경 구절을 쓰고 있다(요 8:32). 사실 성경 자체도 한때는 라틴어로 읽어야 간지 나던 시절이 있었지만, 연세대는 굳이 외국어를 쓰려면 그냥 NIV 성구로 대체하는 듯.

아울러 연세대의 상징 동물은 독수리이다.
딱히 성경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독수리로 제정한 건 분명 아니라고 들었다만,
표어가 요한복음 구절이고 요한복음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네 생명체(마;사자, 막;황소, 눅;사람, 요;독수리) 중에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독수리와 관련이 있으니... 웬지 묘하게 연결이 잘 됨을 느낀다.
학교의 상징색은 감청색(군청색)이라고 하는데,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노선색과 일치한다. 어??

연세대와 라이벌 구도인 고려대의 상징이 크림슨색 + 호랑이인 건, 워낙 옛날부터 강렬하게 들었기 때문에, 고려대를 전혀 다니지 않고도 알고 있었다. "민족고대" ㅋㅋㅋㅋ 어디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하긴, 고려대는 아예 교표에까지 호랑이 그림이 있긴 하다.

※ 과 이야기

본인의 진학 컨셉은 완전 '짬뽕'이다. 문과와 이과 짬뽕. 이론과 실무 짬뽕..;;
계열이 정해져 있는 단과 대학원이 아니라, '언어 정보학'이라는 학과간 협동 과정을 선택했다. 잘 알다시피 국어학과 전산학 연계이다.
대학원은 자기가 공부할 걸 알아서 찾아서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 곳인 만큼, 학부와는 달리 학과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코스도 개설하고 있다. 학과간 협동 과정 말고 산학 협동 과정이란 것도 있다.

이공계 대학원에는 한 과 안에 각 교수들마다 자기 전문 분야에 맞게 운영하는 여러 랩(연구실)이 있다. 가령 전산학과 대학원을 예로 들어 보면 그 아래에 데이터베이스 연구실, 컴퓨터 아키텍처 연구실, 네트웍 연구실, 컴파일러 연구실, 컴퓨터그래픽 연구실 등이 있듯이 말이다.
학과간 협동 과정은 각 과들이 그렇게 특화된 연구실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언어 정보학, 비교 문학, 언어 병리학 등.

본인이 간 이 대학원은, 학부를 본인과 같은 경로로 거친 사람이 흔히 선택하는 진로는 아니다.
좀 의외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랩 생활 하는 이공계 대학원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난 논문 쓸 건 이미 다 생각해 놓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는 그 연구 아이템에 대한 학문적인 근거와 권위를 부여하는 활동 정도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 프로젝트가 아닌 내 연구와 내 개인플레이가 main이 될 수 있는 곳을 골랐다.

나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혼자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갖춘 프로그래머치고는 솔까말 의외로 수학이나 전산학이나 전자 공학 덕후가 아니다. 내가 그런 공돌이였다면 어쩌면 철도 공학 연구하러 갔을지도 모를 일.
그렇다고 해서 촘스키 같은 골수 언어학자 기질도 아니고... 난 그냥 우리말과 한글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싶어서 이 길을 택했다.
논문 자격 시험도 알고리즘, 운영체제 같은 과목보다 말뭉치 분석, 형태론 같은 과목으로 응시하고 싶어서 말이지.. 그래도 여기는 논문 연구 분야에 따라서 공학 학위도 준다. ^^;;

※ 미래-_-

이공계 대학원은 맨날 랩에 출퇴근하면서 바쁜 대신에, 그래도 교수 밑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각종 기업 등 취업문도 넓은 편이다.
인문계 대학원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하고만 싸우면 되고 널널한 대신에, 알아서 부업 뛰면서 학비 벌어야 되고, 취업문 좁고, 잘못하면 평생 보따리 장수 신세를 못 면한다....... 라고

본인은 알고 있었으나,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국내" 대학원은 이공계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유학파와 국내파 차별이 꽤 심하며, 유학파가 아니면 교수나 대기업 채용에서 완전 국물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가는 분야는 유학을 갈 필요가 없는 곳이긴 한데, 그만큼 취업문도 좁고 학계 분위기도 아주 폐쇄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단과를 선택한 게 아니고 협동 과정이다 보니 위상이 어중간하고, 학계로 진출하는 길도 더 좁을지도. 뭐, 그런 고민은 2년쯤 뒤에 석사 마칠 즈음에 박사를 계속 할지, 한다면 어디서 할지를 고민하면서 같이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석박사 정도 되면, 이제 대학 간판이나 학부 평점, 토익 점수, 해외 연수, 알바 같은 스펙 나부랭이에 연연하는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 뭘 연구해서 학위를 받았으며 논문 주제가 무엇이냐, 무슨 교수 밑에서 무슨 학파-_-를 계승했나, 학계에서 무슨 활동을 했나가 main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알려진 '오답'들은 잘 피해서 최선을 다해 이 진로를 골랐는데, 이건 또 다른 오답이 아니라 정답이었으면 좋겠다. (현재로서는 정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나름 연세대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협동 과정인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06 09:12 2010/09/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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