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 열전

1. 중국: 한어병음의 고안자

중국에서는 1950년대 말을 기해서 공식 표기 문자를 간체자로 바꿨으며, 비슷한 시기에 발음 표기도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주음부호 대신 알파벳 기반의 한어병음으로 교체했다.

간체자는 모르겠고 한어병음을 고안한 사람은 '저우 유광'(周有光)이라는 경제학자 겸 언어학자이다. 중국을 우주 개발 강국으로 터를 닦아 놓은 첸 쉐썬만큼이나 자기 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천재 중 하나이다. 각각 문과, 이과 버전인지..?

저우 유광은 겁나게 똑똑했을 뿐만 아니라 겁나게 장수하기도 했다. 1906년에 태어나서 바로 3년 전, 2017년에 죽었다! 이 얘기를 해 주니 중국인 지인들도 꽤 놀라더라. >_<
철덕의 예시를 든다면, 경부선이 개통해서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해에 태어난 사람이 SRT 수서 고속철이 개통하는 걸 보고 죽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자기 아들이 2015년에 80살의 나이로 먼저 죽었다..!!

남자가, 그것도 장수촌에서 평생 농사만 지으며 스트레스 없이 산 할배도 아니고, 교수 등 고위관직을 넘나들던 아저씨가 110세를 찍었다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백 선엽 장군이 오늘 내일 100세 진입이긴 하다만..

그리고 첸 쉐썬 박사도 저우 박사만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1911년 태생, 2009년 사망으로, 100세에 근접하며 꽤 장수했다.
비슷한 연배인 타국의 로켓 과학자들과는 확연하게 비교된다. 독일-미국의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소련의 세르게이 코롤료프(1907-1966) 말이다.
누구든 몸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잘 해야겠다.;;

2. 일본: LHA의 개발자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88년에 한국에서는 어떤 겁나게 똑똑한 의사가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안티바이러스 유틸을 만들었다.
그런데 1988년에 일본에서는 어떤 겁나게 똑똑한 의사가 파일 압축 유틸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LHA. 개발자인 요시자키 하루야스는 최근 사진과 근황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은 아니다만, 여러 사이트들에서 1955년생의 내과의사(physician) 겸 아마추어 프로그래머라고 그럭저럭 소개돼 있다.

저 사람이 압축 알고리즘 자체를 완전히 새로 고안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 당시 외국 서적을 통해 압축 알고리즘 이론을 공부해 보고는 흥미를 느껴서 그걸 그대로 또는 자기 식으로 조금 바꿔서 어셈블리어로 코딩해 보고 lzh 파일 포맷을 만들고, 파일들을 한데 묶어 주는 유틸리티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는 PC 통신으로 파일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압축 유틸을 다루는 게 필수였다. 소요 시간과 전화 요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껏해야 format a: , diskcopy a: b: 이러던 시절에 압축 유틸리티는 이례적으로 명령 옵션 사용이 좀 복잡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시절에 압축 유틸리티라는 게 lha a xxx.lzh *.* (압축하기) 이런 식으로 사용되곤 했기 때문이다.

LHA는 일단 일본 내부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압축 프로그램으로 등극했으며, 일본과 가까워서 그런지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내 개인적으로도 집 컴이 286 AT이던 시절,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 본 압축 유틸리티는 pkzip이 아니라 LHA였다.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영미권에도 알려졌는지, id 소프트웨어에서 Doom 같은 게임을 배포할 때 바이너리들이 이 방식으로 압축되었다고 한다. (정작 그 시절에 도스용 아래아한글은 내 기억으로 zip 압축이었는데..)

개발자분은 pkzip의 개발자인 필 카츠와도 종종 연락하고 친목을 나누면서 90년대 초까지는 프로그램을 버전업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인지라(능덕..) 프로그래밍에서는 서서히 손을 떼게 되었고, LHA는 후임 개발자 없이 압축률과 처리 속도 면에서 ZIP을 비롯한 타 압축 파일에 밀리기 시작했다. 유니코드, 64비트, 멀티코어 지원, 보안 문제 등등에도 대응하지 못했다.

Windows의 경우 XP에선가 zip 압축 파일 내부를 탐색기에서 일반 폴더 들여다보듯이 직통으로 조회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는데, 일본어판은 LZH 파일 내부도 그렇게 들여다보는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직접 확인은 못 해 봤음)

허나 2010년대에 와서는 일본 내부에서도 각종 소프트웨어에서 LZH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대를 풍미했던 압축 파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누가 만들었는지 LHICE라는 프로그램과 *.ice라는 압축 파일도 나돌았었는데.. 이건 그냥 LHA/LZH과 동일한 클론일 뿐이다.

3. 한국: 배우 신 영균

지난해 11월엔 원로 배우 신 영균 씨가 전재산 환원을 선언하면서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 링크)
기사의 제목을 "내 관엔 성경책만 넣어 달라"라고 뽑으니 이거 뭐 당사자가 오늘 내일 하는 위독한 상황이고 유언을 남기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사자는 91세의 나이에도 쟁쟁하시다. 사진만 보면 그냥 평범한 70대 노신사 정도로나 보일 정도로 건강하다~!

이분은.. 그야말로 만능 엄찬아였다.
집안 사정 때문에 서울대 치의대를 나와서 치과 의사를 시작했지만.. 연기를 너무 좋아하던 개인적인 꿈을 떨칠 수 없어서 결국 병원 때려치우고 이미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데뷔했다. 196~70년대에 배우 및 영화 제작자로 전격 전업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유명한 1964년의 최고 흥행작 <빨간 마후라>에서 주연 배우를 맡았다.

이분은 그러다가 사업과 부동산 투자에도 손대서 대성공을 거뒀다. 영화관을 통째로 소유하는 등 몇백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고, 나중에는 교수, 정치인까지 역임했다.
인생 자체가 영화나 다름없는 입 쩍 벌어지는 ㅎㄷㄷ한 분이다. 의사부터 하다가 사업, 정치까지 다 손대고 갑부가 됐다는 점에서는 안 철수나 공 병우하고도 비슷하네..

그런데 이분은 그냥 세상적인 성공으로도 모자라서 신앙까지 완전 독실했다. 프로필 상의 종교는 침례교였다는데..
그 당시에 잘나가던 배우들이 갖은 스캔들에 이혼 이력 하나 없는 경우가 없다시피했던 반면, 이분은 그렇지 않았다. 술· 담배 안 하고, 평생 한 아내하고만 아무 트러블 없이 가정과 직업에 충실하며 살았다.

이 정도면 가히 모든 걸 완벽하게 이룬 분 같다. 완전 부럽다. 자기 인생이 자기가 연기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자서전이라도 쓴 게 없나 궁금하다.
이런 옛날 사람에 대해 내가 어떻게 아냐 하면.. 잘 알다시피 예전에 “소령 강 재구”부터 시작해서 옛날 영화 좀 뒤져보다가 프로필이 하도 인상적인 분이 있어서 기억에 남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마침 17년을 재직하다가 91세 나이로 퇴직하신 맥도널드 최고령 알바 어르신 얘기가 보도됐던데.. 그분하고 거의 같은 연배인 것도 신기하다.

4. 박사

우리나라와 관련된 근현대 인물 중에는.. 대학원에서 논문 쓰고 통과되어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지 않았지만 관례상 박사라고 불리는 인물이 좀 있다.

가령, 서 재필은 의사이지, 박사학위 소지자는 아니다. 아마 의사 doctor와 박사 doctor가 헷갈려서 박사라는 호칭이 붙은 것 같다. 옛날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카 여사를 보고도 '호주댁'(오스트레일리아?)이라는 별명이 통용될 정도였으니..
뭐, 서 재필은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 의대 코스를 마친 사람었으며, 의사는 그 자체만으로 석· 박사에 준하는 고된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긴 하다.

또한, 호머 헐버트 역시 다트머스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박사학위 소지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 공식 학력만으로도 교육자로서 거의 대학 강사급의 일을 한 똑똑한 사람이긴 했다. 언어학, 신학 등 다방면에서 말이다.
이들과 달리 이 승만 할배야 누구나 잘 알다시피 진짜 미국 대학 박사 1호였고, 프랭크 스코필드는 수의학 박사였다. 공 병우 박사도 단순 의사를 넘어 나고야 제국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다.

5. 과학 분야 노벨 상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본은 이제 일곱째도 아니고 17째도 아니고.. 무려 27째 노벨 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저 동네는 애초에 중소기업 연구원이 노벨 상을 받는 미친 나라이다. 노벨 상이 무슨 동네 똥개 이름도 아니고 뭐 저렇게 흔해 빠졌냐..

지난 2014년엔 청색 LED 관련 연구를 한 사람이 물리학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리튬이온 전지 차례구나. 디스플레이, 그리고 2차 전지.. 다 오늘날 매우 중요하고 실용성이 높은 연구 분야이다.
일본의 저력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고 무섭다. 그리고 저런 라이벌을 과거에 실력으로 꺾었던 현대와 삼성 경영주와 엔지니어들이야말로 진짜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였다.

요즘은 노벨 상 수상자들의 연령이 예전에 비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을 한 분야 외길만 파다가 인생 황혼기인 7, 80대 때 받는 게 보통이다.
정말 엄청난 돈지랄 인프라가 필요해서 여기 국력과 경제력으로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예외적인 분야가 아닌 한.. 노벨 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방망이 깎던 노인, 독 짓는 늙은이, 은전 한 닢 같은 근성의 외곬수 과학 기술 덕후가 존중받고 예우받고 마음껏 오덕질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저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 그냥 떼거지로 우글거려야 하고, 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따라오는 구조가 돼야 한다.

우주인이니 금메달리스트니 스타 과학자(그놈의 노벨 상 받는)니 육성하겠다고 난리법석 떨고 나라에서 멍석 깔고 전시행정 쑈 헛짓을 벌이면 벌일수록, 우리나라는 노벨 상과는 더욱 멀어지고 요원해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01 08:32 2020/01/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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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업화 시절 무용담들을 살펴보면.. 경부 고속도로와 포니와 제철소 3관왕을 달성한 왕회장부터 시작해서 과감하게 반도체를 시작한 삼성 이 병철 회장, 일본으로부터 용케 스프 제조 노하우를 전수받아서 삼양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전 중윤 회장 등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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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건국 초창기, 할배가 집권해 있을 때야 김 두한의 사딸라를 능가하는 손 원일 제독의 근성의 가격 후려치기 협상(군함 도입), 그리고 홍 덕영 골키퍼의 눈물의 투혼 같은 이야기가 캐감동이다. 그건 각각 군사와 스포츠 분야이고, 경제와 기업 이야기는 아무래도 훗날 박통 때부터야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분야에 더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로 '기업비사'라든가 '신화 창조의 비밀' 시리즈를 쭉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반기업 정서가 횡행하는 시대에 사상 무장용으로 유익하다. 뭐 굳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극한직업' 시리즈도 좋고 말이다. (당연히 영화 말고 다큐멘터리..)
학교에서 애들한테 주식 투자나 부동산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알량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유 환상의 허구에 속지 않을 정도의 방어적인 경제관념 교육은 어릴적부터 정말 필요해 보인다.

친환경 친인간(?)에 더불어 공유하고 국유화하자고 선동하는 넘들치고 자기 사재 기부는 1원도 한 놈이 없으며, 자기들은 누구보다도 재테크에 빠삭해서 시장 경제 자본주의의 혜택을 다 입고 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며 과학이다. 남의 돈 세금 갖고는 천하에 무슨 생색인들 못 내겠는가?
반공, 안보 외치는 높으신 분들치고 자기 자식새끼 군대 보낸 놈이 없는 것을 비판해 왔다면(실제로는 그 정도까지 막장인 것도 아님), 저 분야에 대해서도 똑같이 일관된 비판이 나와야 마땅하다.

뭐 그건 그렇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위대한 거장 중 하나로,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한 한국의 철강왕 박 태준(1927-2011)을 빼놓을 수 없다. 질 좋은 강철이 있어야 그걸로 자동차도 만들고 선박도 만들고 레일도 만들 테니 제철소는 반드시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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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는.. 뭐 이런 분위기의 장소이다. 여느 제조 공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 붉은 쇳물은 화산 용암이나 마그마보다 훨씬 더 뜨겁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시설을 맨땅에서 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UN 세계은행(IBRD), 국제 제철 차관단 등의 통상적인 국제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그걸 밑천 삼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는 한국 같은 못사는 듣보잡 나라가 뜬금없이 제철소를 짓는 게 가능할 거라고 전혀 믿지 않았으며,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이때 박 정희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박 태준은 기지를 발휘해서 “아 그럼 대일 청구권 자금을 대신 투입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했고, 대통령은 “오, 기막힌 생각이군. OK!” 했다.

그래서 결과만 따지고 보면 포항제철은 원래 농수산업 지원에나 사용할 돈, 그리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으로 주라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쓰윽 전용해서 만들어졌다. 훗날 포항제철은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저런 사람들을 딱히 만나 주지도 챙겨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포항제철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블랙기업 악덕기업이어서? 설립자 박 태준이 친일적폐 싸이코패스 악마여서?
아니었다. 박 태준은 그런 인륜이나 도덕이 없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위인전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하고 청렴한 기업인이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된다면서 회사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고 물러났을 정도로.

더구나 그는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의 창안자였다. “이 제철소는 우리 선조들의 피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만드는 거다. 이 돈은 절대로 부정하게나 헛되이 쓰여서는 안 된다. 실패하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어서 속죄하자” 이랬던 분이다.

포항제철은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1973년 6월 9일은 포항제철 제1고로에서 최초의 쇳물이 쏟아져나온 날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6월 9일을 ‘철의 날’이라고 기리고 있다. 당일부터 바로 기린 건 아니고 생각보다 늦은 2000년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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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엄청난 업적을 남겼는지를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 1978년, 중국의 덩 샤오핑이 일본에 가서 우리도 제철소를 만들고 싶다고 자문을 구하자 일본의 신일본 제철 회장(이나야마 요시히로)은 “님 나라에는 박 태준 같은 인물이 없으니 여느 공장 정도는 지어도 제철소까지는 무리일 겁니다” 이렇게 뼈 있는 말을 남겼다.
  • 그리고 박 태준은.. 한국에 제철소는 택도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작성해서 세계은행으로부터 자금 대출을 무산시켰던 영국의 존 자페(Jon Jaffe) 박사를 1986년에 런던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존 자페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17년 전의 판단에 대해 후회가 없으며, 지금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해도 똑같이 쓸 것이다. 겨우 그런 나라에서 대형 제철소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인 게 맞다. 다만, 한국에서는 박 태준이라는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인물 때문에 나의 예상이 예외적으로 빗나가게 됐을 뿐이다” ㅡ,.ㅡ;;

백 선엽(미국에서 더 예우와 존경을 받는 만렙 원로 장성)이나 차 범근(축구 선수 시절..)처럼 국내보다도 외국에서 더 전설을 넘어 레전드 평판을 받는 거인이 일부 있는데, 박 태준 역시 이에 해당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람이 정작 훗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 같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일면 이해가 된다.

그는 우향우 운운하면서 피 같은 돈으로 혼신을 다해서 노력해서 제철소를 만들었다. 만약 실패하고 돈만 날려먹었다면 진짜로 이 한몸 바다에 빠져 죽어서라도 속죄할 의향이 있었지만, 이렇게 성공한 이상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고 선조들 앞에서도 이제 지극히 떳떳하다.
그 이후로 포항제철이 더 성공한 것은 “기업 경영을 잘한 덕분”이지, 더는 무슨 부당한 돈이나 착취 덕분에 부정하게 성장한 게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이렇게 된 와중에 포항제철이 또 누구 후손에게 사죄를 한다거나 무슨 보상을 해 준다거나 하면.. 포항제철을 처음 만들 때 들였던 피눈물 나는 노력의 의미에 흠집이 가고 그게 떳떳하지 못한 행적이 되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는 추후 불거진 보상 드립은 가당치 않은 요구라고 여기고 무시했음이 틀림없다. 사회 환원은 학교도 세웠고 이 정도 사내복지 수준이면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성경에서 약간 비슷한 예가 떠오른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을 두 번 행했는데, 처음엔 반석을 쳤으며, 한참 나중에 두 번째엔 반석에게 말만 해야 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불신하고 반역하는 미개한 백성들에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두 번째에서도 별 생각 없이 예전처럼 반석을 쳤다. (민 20:10-11)

그래도 물이 콸콸 나오긴 했기 때문에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모세의 이런 행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두 번 못 박는 것과 같은 영적으로 굉장한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반석은 예수님의 예표) 이 자그마한 실수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처럼.. 한번 죽을힘을 다해서 선조들 내지 일제 시대 피해자에게 justify를 받았다면 두 번 또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반석의 영적 의미가 중요한 것만큼이나, 포철의 창업주 입장에서는 저런 관계와 의미가 왕창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의 이런 사례를 다른 과거사 청산 문제에다가도 넓게 응용하면,
(1) 항일 독립운동가 출신인 대통령(할배)과 법무부 장관(이 인)이 왜 건국 당시에 반민특위를 해체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

(2) 그리고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라고 해도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직접 받았던 재산 이상으로, 걔네들이 정당하게 노력해서 재산을 불린 것까지도 다 몰수하는 게 법적으로 타당하나 하는 문제에다가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빨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애국자들을 앞뒤 경황 안 따지고 몽땅 다 친일적폐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절망적이고 급박하던 상황에서 결국 일제 부역 군경이라도 동원해서 왜놈보다 더 나쁜 빨갱이들을 잡아야 했으며, 나라를 망조로 몰아넣을 지경이던 사채를 몽땅 정리하기 위해서 유신 헌법을 포함한 다른 극단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애초에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굉장히 비민주적인 조직..)
그리고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다른 돈줄이 도저히 없으니 피묻은 돈도 좀 끌어다가 산업의 근간인 제철소를 만들게 됐다.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가 없고 당연히 헛점과 부작용이 있고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임기응변식 조치의 가성비와 효용성에 대해서 다각도로 입체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는 있다. 무작정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부른 투정과 그 시절에 누구도 가능하지 않았던 선비질 잣대 역시 금물이다. 그건 옳지 않다.

프로그래머로서 본인이 드는 비유이지만, 마소만 해도 초창기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시절에 그렇게 온갖 독점과 지저분한 짓까지 감내하면서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마르지 않는 탄탄한 밥줄--운영체제, 오피스--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지금의 후임 사티야 나델라 때는 옛날과는 반대로 온갖 오픈소스 진영을 여유롭게 무료 지원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명백히 칭송받아야 마땅한 애국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9 08:35 2019/12/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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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식물보다 키우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니 식품 버전인 고기 역시 채소보다 비싼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동물은 해체해서 식용 부위를 추출하는 것도 식물보다 훨씬 더 어려우며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어디 그 뿐이랴? 보관하는 데도 식물보다 훨씬 더 저온의 냉장· 냉동이 필수이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채식만 해서는 영양학적으로 제대로 성장하고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인간은 소화 기관의 구조가 육식 동물에 더 가까운지라, 식물을 섬유질까지 몽땅 뽕을 뽑으면서 오랫동안 길게 소화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풀만 뜯어 먹으면서 그 엄청난 덩치와 체력, 그리고 쇠고기라는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소가 참 대단하긴 하다. 개와 돼지는 사료가 인간의 음식과 어느 정도 호환되는 잡식이기라도 하지만 소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길거리의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는...;; 가능할 리가 만무하다.

아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 근대화 이전엔 서민들에게 육식이 아예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었다.!! 물자 절약 내지 정신력 단련(?) 명분으로 그것도 무려 1000년이 넘게 말이다. 물론, 알음알음 산짐승이나 물고기를 몰래 잡아먹는 것까지 금지는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이 정도면 무타구치 렌야 같은 사람이 "일본인은 초식동물" 드립을 칠 만도 했겠다. ㄲㄲㄲㄲ

또한, 한반도의 조선만 해도 소를 무단 도축하다 걸리면 사형이었다. 조선이 무슨 힌두 교를 믿어서 소가 숭배 대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는 단순 식용으로 함부로 잡기에는 다른 용도로도 너무 비싸고 귀하신 몸이며 거의 국가 차원에서 수효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상업과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 냉동 기술의 발달 덕분에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고기를 풍부하고 저렴하게 먹고 있다.
고기는 식물에 없는 영양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영양과 별개로 부드럽고 기름기가 흐르는 게 비주얼과 냄새까지도 일품이다. 그렇다 보니

  • "반찬이 온통 잡범들뿐이네. 어디 살인 사건 하나 없나?"  (영화 아저씨 대사 중)
  • "식탁에서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구나. 그런데 자연에도 달리는 동물이 있는데 여긴 그게 없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라면 끓여 주세요~ 그분..)

처럼 고기 타령을 하는 방법도 참 예술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식용 가축은 너무 많이 키우는 경우 각종 배설물로 인한 수질 오염과 지구 온난화(메탄 가스..) 문제가 커진다. 구제역 같은 질병 리스크도 있고 말이다.
엄청난 대량 생산과 동물학대 급의 착취로 단가만을 낮췄을 뿐이지, 고기 한 점을 얻는 데 드는 절대적인 비용이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통상적인 소· 돼지고기나 생선 말고 좀 기괴한 다른 형태의 단백질 공급원, 그리고 기존 고기들의 대체제들이 연구 개발되고 있는 사례를 나열해 보았다.

1. 민물고기

서양에서는 위생 관념이 막장이던 옛날에도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생각은 차마 안 했던가 보다. 회와 초밥을 세계화시킨 것은 일본이다. 생고기는 익힌 고기와 달리 잘 썰리지 않기 때문에.. 요리사가 잘 썰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바닷물고기가 아니라 붕어 같은 민물고기를 회를 쳐서 먹는다면..?? 그것도 양식도 아닌 자연산을 그대로..??

이건 베어 그릴스 급의 그 어떤 생존왕이라도 권하지 않는 식사법이다. "난 관대하기 때문에 기생충의 숙주가 되고 싶어 미치겠소~!"가 아니라면 구충약을 단단히 챙기고 at your own risk로 먹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쫄깃한 맛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여서 민물회 매니아 취향인 사람도 있다.

민물고기는 척추동물 급에서는 활동 범위가 가장 제한되고 좁은 생물이다. 안 그래도 물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바다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교통수단으로 치면 안 그래도 앞뒤로밖에 못 다니는 철도 차량인데 동력원도 단거리용 직류 전기만 가능한 도시철도 지하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일반열차용 교류 전철화 구간을 이용할 수 없음)
그리고 민물고기는 인류가 거의 최초로 섭취한 육류라고 여겨진다. 바닷물고기나 다른 육상 동물보다는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을 테니..

2. 충식

취향이 정말 특이한 일부 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듬이 달린 검정색 또는 형형색색의 벌레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징그러움과 더러움과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생물들이 크기까지 척추동물 급으로 거대하다거나, 밟아 죽일 때마다 헤모글로빈이 섞인 시뻘건 피가 찍찍 터져 나왔다면.. 마치 사람 말고 다른 동물이 도구와 불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공포와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덩치 작고 징그럽고 체액이 뻘겋지도 않고, 인간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고, 번식력 하나는 왕창 막강하니.. 인간은 이런 곤충을 별 생각 없이 정말 잘 죽인다. 그리고 곤충이 식용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먹을 게 없으면 역사적으로 곤충도 먹어 왔다. 메뚜기 정도면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으며, 메뚜기 섭취는 심지어 성경에도 나올 정도이다. (레위기, 침례인 요한..)

실제로 곤충은 먹이 공급 비용 대비 뽑아낼 수 있는 단백질의 효율이 의외로 좋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 학대 논란 따위 전혀 없이 바글바글 떼거지로 양성해서는 곧바로 굽고 튀기고 가공해서 식품으로 만들 수 있다.;;; 벌레를 죽이는 건 돼지나 소 따위를 도축하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가볍고 쉬운 일일 테니..

벌레(번데기 포함)를 그대로 굽거나 튀겨서 내놓는 것이랑, 벌레로부터 단백질 같은 성분만 추출해서 벌레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분말, 칩, 육포 등..) 식품을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서는 중국 정도가 전자 같은 충식에 우호적인 듯하며, 영상물에서 사람들에게 충식에 대해 꽤 대놓고 긍정적으로 널리 홍보한 사례는 아마 라이온 킹이지 싶다. 심바는 자기 몸의 8할은 타 포유류가 아니라 곤충인 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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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고기의 대체제로 연구되고 있는 건 후자이다. 충식이라는 티를 최대한 안 내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로 하여금 심리적인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3. 콩고기 등의 식물성 고기

식물성 재료를 이용하여 고기의 외형과 맛을 재현하는 기술이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많이 발달해 왔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고기 맛을 잊지는 못하는 채식주의자라든가, 원가를 최대한 낮추면서 얼큰한 국물과 고기 건더기를 fake로라도 구현해야 하는 라면 스프 제조업자들이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고기화하기 제일 만만한 작물은 단연 콩이다. 콩은 지력을 소모하는 타 식물들과 달리,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서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아주 신기하고 유용한 식물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진작부터 밭에서 수확하는 고기 급의 취급을 받아 왔다. 성경에서 다니엘이 바빌론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와 와인 대신에 먹었던 것도 그냥 채소가 아니라 콩이었다. (단 1:12)

대놓고 가공육이 아니면서 각종 냉동· 인스턴트 식품에서 고기 비스무리하게 박혀 있는 것들, 성분에 '대두단백'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전부 콩고기이다. 이것들이 고기 맛을 저렴하게 내는 데 이미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가공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원재료가 진짜 고기보다 워낙 저렴하니 수지가 맞는 듯하다.

콩고기도 싸구려만 있는 게 아니며, 비싸게 고퀄리티로 만들면 요리사도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레알 동물 고기하고 맛과 식감이 비슷해진다고 한다.
다만, 너무 비싸지면 그냥 진짜 고기를 쓰고 말지 콩고기를 만든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마치 위조지폐가 제조 비용이 액면가 이상으로 너무 비싸지면 만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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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말고도.. 밥이나 분식류를 만들지 어떻게 저걸로 고기를 만드나 싶은 밀이나 쌀로도 고기를 빚어 내는가 보다. 햄· 소시지· 스팸 같은 가공육이야 싸구려는 진짜 고기 대신에 밀가루만 잔뜩 들어있긴 하지만.. 그런 곡식에도 단백질이 없지는 않다.

물론 이런 식물성 고기로 김치를 볶는 것까지 가능한 삼겹살이라든가.. 꽃등심, 갈비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햄버거 패티용 다진 고기라든가 제육볶음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았다. 기름기와 영양분까지 진짜 고기를 대체하지는 못해도 외형과 맛은 얼추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4. 배양육 (인조 고기)

앞의 2번은 척추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고 3번은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거 4번은 아예 채식만치도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실험실에서 생화학적인 방법만으로 고기를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식용 가축의 줄기 세포를 키워서 살코기를 얻는 방법이 쓰인다.

이건 동물을 full scale로 키우는 게 아니라 고기를 얻는 부분만 인위로 얻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다. 글쎄, 원가를 더 절감하기 위해서 일명 GMO라고 불리는 유전자 조작까지 행해질 여지가 있는데, 그건 현재로서는 논란이 많으며 벌써부터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배양육은 진짜 고기를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윤리 문제와 비효율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생산 비용 자체가 너무 높다. 굉장히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식물성 고기는 저렴하기라도 한 반면, 식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인공 배양육이 기존 대체 고기의 장점을 곧장 흡수 가능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고 당장 양산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을 정도로 맛 좋고 육즙과 품질이 뛰어난가 하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5. 똥고기

인간의 배설물이 끔찍하게 더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도 인체에 흡수되지 않은 영양분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실험 정신(!) 덕분에 알려져 있었다.

식물에게야 동물의 배설물이 거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변이 아닌 소변 정도는 여과· 정수해서 사람이 다시 마시는 기술이 실제로 쓰이고 있다. 특히 우주 정거장 같은 데서 말이다. 우주에서는 물이 귀한데 무겁기까지 하기 때문에 식수를 따로 챙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소 연료가 연소한 결과물로 생긴 물이라든가 인체에서 나온 오줌까지 몽땅 재활용해서 식수로 활용해야 한다.

허나, 대변을 퇴비로 삭힌 것도 아니고 오리지널 X로부터 영양분을 추출하고 살균 처리를 해서 고기 패티를 만들었다면 선뜻 먹을 수 있겠는가? ㅠㅠ
이건 배양육이나 식물성 고기처럼 여러 기업들에서 앞다투어 연구한 건 아니고, 오덕의 나라 일본의 어느 대학교 연구팀(이케다 미츠유키 교수??)에서 2011년에 딱 한 번 결과물을 발표해서 전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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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 문제는 정말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연구 책임자가 직접 먹으면서 인증을 했다.;;
그리고 생산 비용이 아무래도 기존 진짜 고기보다 더 비싸지만 생짜 배양육보다는 저렴하며, 이 역시 추가적인 후속 연구와 대량생산을 통해 충분히 낮출 수 있다고 그런다.

그러나 그 뒤로 연구가 얼마나 더 진행됐는지, 2019년 현재는 딱히 검색돼 나오는 게 없다. 연구하는 중에는 맨날 X과 부대끼며 사느라 X냄새 때문에 고생 많이 하지는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ㅠㅠㅠ

제주도에는 일명 똥돼지라고 불리는 '제주 흑돼지'가 유명하다. 털 색깔이 검기도 하거니와, 먼 옛날에 실제로 인분을 먹이면서 독특하게 사육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로 똥을 먹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변은 영양분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온갖 세균도 많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1번은 좀 성격이 다르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대체 고기 생산 기술은 21세기 인류를 먹여 살릴 고부가가치 신기술 중 하나라면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갑부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단백질의 출처라는 게 식물로도 모자라서 벌레, 줄기세포, 심지어 대변까지 등장했다..;; 그나마 이미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는 것은 식물이 유일하고, 줄기세포 배양육은 아직 완성도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벌레와 대변은 기술적인 난관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팔아먹으려면 심리적인 거부감도 극복시켜 줘야 할 것이고, 그게 안 되면 그냥 동물 사료용이나 환경 처리 기술 정도에나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맛 좋은 대체 고기가 저렴하게 보급되어 마치 쿼츠 시계나 디지털 카메라 같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기존의 진짜 고기는 마치 기계식 시계나 필름 카메라처럼 현역 일선 주류에서 물러나고, 소수의 매니아 고급 취향용으로나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진짜 고기는 안 그래도 비싼데 대량 생산 메리트까지 없어지면 그 가격을 서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겠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현재로서는 겨우 수 년 안으로 가깝게 금방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 여담: 곤충이 죽는 방식

기왕 충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문득 의문이 든다. 곤충은 죽을 때 왜 늘 벌렁 뒤집힌 채로 죽을까?
밟거나 누르거나 파리채로 때리는 등의 물리적인 방법으로 죽일 때는 실감하기 어렵지만, 살충제라는 비충격· 비파괴식(?) 방법으로 죽여 보면 놈은 약속이나 한 듯이 뒤집힌 채로 발버둥 치다가 죽는다. 파리건 바퀴벌레건.. 비행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말이다.

몸체를 일부러 뒤집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 각종 만화나 일러스트에서 곤충이 뒤집힌 모습은 죽은 모습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된다. 사람 얼굴 그림에서 눈이 X자 모양으로 그려지고 혀가 튀어나온 게 기절하거나 죽은 모습의 상징이듯이 말이다.

글쎄, 겉의 현상만 보고서 본인이 세우는 가설은 곤충은 (1) 살충제가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도 휩쓸려 날아갈 정도로 가볍고, (2) 배보다 위의 등 쪽이 훨씬 더 무겁다. 자동차나 선박만 해도 무게 중심이 높으면 잘 전복되듯이, 이런 구조 때문에 "곤충은 살충제에 몸이 마비되어 죽을 때는 대체로 벌렁 뒤집힐 것이다" 정도로 추측한다.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다리가 맛이 가는 것하고 몸이 뒤집히는 것하고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답변이 납득이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멀쩡히 살아 있고 날지 못하는 곤충을 매끄러운 평지에서 180도 벌렁 뒤집어 놓으면 스스로 똑바로 설 수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가능한 놈도 있고 불가능한 놈도 있을 것 같다.
저렇게 뒤집힌 채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곤충을 도로 뒤집어 놓으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실제로 이동하지는 못하겠지만 뒤집히지 않은 원래 자세대로 죽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평범하게 자연사 내지 병사한 놈은 이론적으로는 그냥 배가 땅을 향한 평상시의 자세로 죽는다고도 한다. 허나, 대부분의 곤충은 인간에 의해 끔살 당하거나 아니면 자연에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자연사하는 놈이 과연 얼마나 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6 08:35 2019/1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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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지난 추석 때 산에서 벌초를 해 보니 동물과 식물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이 들곤 했다.
톱과 낫으로 식물에게 하는 짓을 동물에게 그대로 했다간.. 그야말로 종류를 불문하고 처참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식물은 그렇게 베고 또 베어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또 자라난다.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버리거나 약을 쳐서 화학적으로 말려 죽이지 않는 한 말이다.

식물은 동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한쪽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다른 쪽에서는 전혀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동물과 식물은 그 근원이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를까 싶다. 식물은 죽어서 부패하는 과정도 동물(특히 빨간 피가 흐르는 것들)보다는 훨씬 덜 역겹고 덜 징그럽지 않던가..

그리고 한편으로.. 산에서 야생 전투모기에게 수십 군데를 물려서-_- 서울 모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오래 가는 가려움과 붓기를 체험해 봤다.;;
모기에게는 사람의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가 마치 삼겹살 굽는 냄새처럼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리고 모기도 단백질이 그렇게 궁하지 않을 때는(;;) 그냥 평범하게 식물의 진액만 빨아먹는다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기나 거머리가 사람에게 아무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피부를 찢고 피를 쪽 빨아 가는 기술은 인류가 아직 개발하지 못한(주사기..) 신묘막측의 영역이 틀림없다..;;
이런 일이 있었던 관계로, 오늘은 특별히 식물에 대해서 그 동안 관찰하고 생각해 온 여러 썰들을 풀어 보겠다.

1. 풋사과와 풋고추

우리말에서 '풋-'이라는 접두사가 활발하게 쓰이는 식용 식물이 사과와 고추 말고 또 존재하는가 모르겠다. 둘 다 '풋' 버전은 표면이 초록색이다가, 완전히 익은 놈은 빨간색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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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경우, 빨간 고추는 너무 매우니 단독으로 우적우적 먹는 일은 사실상 없고, 다지고 갈아서 고춧가루나 다른 양념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 그러나 초록색 풋고추는 복불복으로 아직 덜 맵기도 하기 때문에 얘만 단독으로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풋고추가 매운지의 여부를 외형만 봐서는 알 수 없으며, 내 경험상으로는 그냥 복불복 운에 의존해야 하는 것 같다. 다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은 신빙성이 있다. 작고 홀쭉한 놈이 더 매울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큼직한 풋고추는 대체로 맵지 않더라.

한편, 사과의 경우 일부 초록색 껍질의 사과를 보면 마치 한국에서 흰 껍질 계란을 보는 것처럼 희귀· 희소함이 느껴진다. 이건 대놓고 설익은 풋사과를 딴 게 아니라 초록색 상태에서 여느 익은 빨간 사과에 준하는 맛이 나는 '아오리'라는 별도의 사과 품종이라고 한다.

배는 사과 같은 껍질의 색깔 변화도 없고, 내부가 공기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색되는 것도 없으니..
금속으로 치면 철과 구리의 이온화 경향 같은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가 궁금한 생각이 든다.

2. 억새

난 어린 시절부터 억새라고 하면 그냥 길다란 잎의 단면이 날카로워서 맨살이 베이기 쉬운 귀찮은 풀 정도로만 알아 왔다.
줄기에 뾰족한 가시가 숭숭 돋은 물건은 장미를 비롯해 여럿 있지만.. 잎이 저런 구조인 물건은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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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억새도 갈대처럼 꼭대기에 하얀 이삭들이 달려 있어서 언뜻 보기에 둘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억새를 검색하면 둘의 차이점, 구분 방법이 잔뜩 걸려 나올 정도이다.
둘이 그 정도로 서로 닮았는지는 본인도 미처 몰랐다. 다만, 갈대는 물 주변과 습지에서 더 즐겨 서식하고 억새보다 키가 훨씬 더 크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는 1937년도 곡인 '짝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으악새는 그냥 억새의 방언인지, 아니면 다른 조류 동물인지 심상이 중의적이어서 영원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가 보다. 작사자가 오래 전에 죽고 없으니 말이다.

옛날에 "화왕산 억새 태우기"라는 행사가 경남 창영에서 3년 주기로 개최되어 왔다. 그러나 딱 10년 전의 6회 때 불을 잘못 질러서 방문객이 5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이 행사는 영원히 폐지되었다.

3. 관목(灌木 shrub)

세상의 식물 중에는 가로수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고, 나팔꽃처럼 덩굴 줄기밖에 없는 부류도 아니고..
굳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무이긴 한데 나무라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왕창 작아서 몸통이 안 보이는 물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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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관목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다 자라도 키가 2미터를 안 넘고 작고, 초록색 잎만 둥그렇게 무성하면서 줄기· 몸통이 안 보이는 작은 나무(?) 말이다.
길거리나 정원 같은 데서 조경용으로 맨날 보는 식물이니 하나도 생소할 것 없다. 어떤 도로에서는 길가가 아니라 정중앙에 중앙분리대 대용으로 이런 부류의 식물이 심겨 있기도 하다.

얘들은 지면까지 차지하는 부피가 골고루 크기 때문에 조밀하게 심어서 사실상의 울타리 역할도 한다.
내가 이런 식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하긴, 대나무는 잘 알다시피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과일과 야채의 경계도 많이 헷갈리는 편이다.

4. 잔디

정원을 구성하는 식물 중에서 나무, 관목보다도 더욱 키가 작고 지표면을 가장 낮게 덮고 있는 건 잔디일 것이다.;; 얘는 뿌리와 잎만 있지 줄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허구헌날 밟히고, 초식동물에게 뜯어먹히지만 얘는 그래도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는가 보다. 아 그러고 보니 땅뿐만 아니라 무덤 봉분을 뒤덮고 있는 것도 이런 부류의 잔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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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잔디가 심어져 있으면 미관에 더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온도와 습도 조절이 되고, 운동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크게 줄여 준다. 또한, 돗자리를 깔 때도 밑면에 흙먼지가 덜 묻게 해 준다. 신이 창조해 주신 정말 고맙고 유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잔디도 겨울에는 죽어서 누래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초록색이 유지되는 상록(?) 잔디 또한 있다고 한다.

5. 잡초

'잡초'라는 건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인위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분류이다. 잡초라는 종이 생물학적으로 따로 있다거나, 얘들이 무슨 해충· 병원균 급으로 인간이나 자연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똑같은 초록색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이 식용 가능한 건 아니다. 글쎄, 상추나 깻잎 같은 건 인간이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채소잎을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초식동물조차도 아무 식물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밀림· 정글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기보다 인구 부양력이 형편없다. 그냥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의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잡초는..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들고 뿌리로 흙을 붙잡아 두는 등 식물의 아주 기본적인 공통 역할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인간에게 기여하는 게 없고, 심고 관리하지 않아도 자라기는 왕창 잘 자라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이 진짜로 재배하려고 하는 농작물(생산성이 더 높은)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잡초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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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무성한 뻘밭. 잔디밭과 비교하면 풀들의 키부터가 들쭉날쭉이고 미관에 좋지 않다. 마치 난개발로 스프롤 현상이 심한 도시의 건물들 모습 같다.)

아니면 농사와 무관하게.. 그냥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불쑥불쑥 불청객처럼 자꾸 자라고 생겨나기 때문에 잡초이다. 이런 잡초는 야외에서 시야를 가리고 미관을 해친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잡초라고 불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식용 가능하지 않은 것은 잡초의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왜 하필 인간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은 식물이 유용한 식물보다 억척같이 잘 자라는 걸까? 그 근본 이유를 성경에서 찾자면 인류의 타락과 더불어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 3:18) 말씀을 펴야 할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육군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런 녹색 괴물의 강인함과 생명의 끈질김에 줄곧 경악하게 된다.;;

6. 약품

끝으로, 식물에게 치는 약품은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뉘는 듯하다.

  • 영양제 또는 병충해 치료제: 대상 식물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 농약: 대상 식물의 주변에 붙어서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해충· 잡초· 세균 따위를 제거하기 위해
  • 제초제· 고엽제: 대상 식물을 죽이기 위해

1번 영양제· 치료제는 혼자 성격이 많이 다르니 논외로 하고, 어떤 약품이 농약이냐 제초제냐 하는 것은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에프킬라가 모기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궁극적으로는 해롭듯이, 그 끈질긴 잡초를 말라 죽게 하는 농약이 보호 대상 식물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단지, 이로운 농작물이 죽기 전에 잡초를 먼저 죽게 해 줄 뿐이다.

골프장은 산을 깎고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어야 만들 수 있지만, 내부의 깔끔한 잔디밭도 농약을 왕창 많이 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만, 도를 넘는 정도는 아니고 나라에서 전국에 등록된 골프장들을 상대로 관리 실태를(농약 사용량 같은..) 조사도 한다고 한다.

농약은 번개탄만큼이나 자살 수단으로 하도 많이 악용된지라 미성년자의 구매, 얼굴 안 보이는 인터넷 거래를 통한 구매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뭐, 자살이 아니라 실수로 마신 경우도 있고, 또 음식에다 고의로 몰래 타서 남을 죽이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러라고 만든 농약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위험하고 환경에 해롭다는 이유로 농약을 아예 안 쓰면 인류는 다시 옛날처럼 잡초와 병충해와 힘겹게 싸워야 하고 농산물의 가격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친자연, 유기농만 고집하다간 후진국형 기생충과 전염병에 다시 시달리게 될 것이다.

농약은 잡초뿐만 아니라 병충해도 상대하기 때문에 살충제하고 성분이나 용도가 뭔가 호환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가령, 그라목손은 살충제로 치면 DDT 같은 위상이랄까?? 너무 위험하고 장기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당장 후진국에서 사람들이 말라리아 때문에 픽픽 쓰러지는 와중에 DDT보다 가성비 더 좋은 모기 퇴치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농약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맨날 친자연을 외쳐도 애초에 자연이 인간에게 좋은 것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3 08:34 2019/12/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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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 면허의 종류

자동차를 포함해 모든 교통수단들은 잘 알다시피 관련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운전하고 운행할 수 있는 물건이다.
특수한 유형의 자동차를 몰기 위해 추가로 따야 하는 자격증이 있긴 하다. (버스 운전 자격, 위험물 차량 취급 자격..) 하지만 아무 특성 없고 제일 몰기 쉬운 자그마한 경차라도, 아니 오토바이라도 몰기 위해서는 면허를 따야 한다.
자격증은 보유자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긍정 관점이지만, 면허는 반대로 이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은 관련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 관점이 더 강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면허가 다 같은 면허는 아니다. 몰 수 있는 차체의 크기 내지 승차 인원수에 따라 종류가 갈리며, 다음으로 운전의 성격에 따라서 종류가 갈린다. 자동차 운전 면허의 경우, 보통/대형은 차체의 종류를 구분하며, 1종/2종은 운전 성격을 구분한다. 2종 면허에 같이 붙는 편인 '자동'은 면허 조건을 명시하는 부가적인 옵션 중 하나이다.

운전 성격은 무엇이냐 하면 비영리 자가용 운전이냐, 아니면 금전적인 이득이 걸린 영업용 운전이냐 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명사가 셀 수 있는 개념인지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따진다면(가산· 불가산), 교통수단의 면허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가용/영업용 종류이다.

자동차 면허에서 1종은 원래 비행기로 치면 사업용 내지 운송용에 대응하는 전용 면허였다. 그랬는데 자동차가 워낙 흔해지면서 그런 구분이 많이 옅어졌기 때문에 1종은 그냥 대형+수동 연계 면허인 것처럼 굳어졌다. 그러니 요즘은 대형 면허 없이 보통만으로 긴급자동차 승합차를 몰 수 있고, 2종 면허만으로도 '바사아자' 번호판의 택시 기사가 될 수 있게 조건이 완화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1종 보통으로도 트럭은 대형 버스 뺨치는 크기인 무려 11톤급까지 몰 수 있다. 2종은 4.5톤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중형 버스를 능가하는 크기이다. 그런 트럭은 차가 아무리 커 봤자 사람이 3명밖에 안 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1종 보통으로 승합차는 아담한 15인승 봉고차급까지만 몰 수 있고, 중형 버스를 운전하려면 1종 대형 먼허가 필요하다. 차량 크기와 승차 인원에 이런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은 영업용 자동차 중에 제일 몰고 싶은 차가 무엇인가? 택시는 제일 잽싸고 날렵한 난폭운전 총알 기동이 가능=_=하고.. 대형 버스는 왕창 크고 사람을 많이 태운 상태에서 '버스 전용 차로'라는 메리트를 이용해서 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대형 트럭은 차종에 따라서는 버스보다도 더 거대하며, 운전대가 압도적으로 제일 높고 뒷좌석 내지 천장의 아늑한 개인 공간(침대 또는 다락방)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속도와 통행 우선순위는 제일 낮고 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슨 차량을 몰든 운전은 재미있다. 하지만 쉬고 싶을 때 못 쉬고 운행 스케줄을 맞춰서 불철주야 강제로 운전해야 한다면 그것만 한 고문도 별로 없지 싶다.

2. 차들의 크기와 폭

난 대형 시내버스와 고속· 시외· 관광버스는 동일한 반경의 타이어를 사용하는 대형 버스이고 크기가 거의 같지 않은가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제원표를 보니 시내버스는 대형이라 해도 길이가 11m급인 반면, 고속버스 중에는 12m가 넘는 놈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높기도 후자가 좀 더 높다.

"도로의 구조ㆍ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 도로법 시행령 제79조,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4조"에 따르면, 국내에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최대 크기 한계는 길이 13m, 폭 2.5m, 높이 4m이다. 굴절 버스나 트레일러처럼 중간에 꺾임이 있는 놈은 좀 더 길어도 되지만, 꺾임이 없는 단일 차체의 한계는 저렇다.
그리고 무게는 축당 10톤, 전체 40톤이 한계인데, 이건 사람을 태우는 버스는 무게 따위 걱정할 필요 없고 트럭이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현대 유니버스, 기아 그랜버드 같은 버스의 최고 사양을 보면 길이는 거의 12.1 ~ 12.5m에 달하고 폭은 2.49m, 높이는 3.3 ~ 3.5m여서 법적 한계에 거의 근접해 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제일 큰 버스이다. 엔진은 1미터당 1000cc씩 잡기라도 했는지 역시 12000cc를 넘는 배기량에 400마력 이상이다.
화물차 역시 트레일러 말고 25톤 트럭(현대 엑시언트), 또는 그보다 작은 트럭이라도 초장축 모델을 보면 이 한계에 근접해 있다.

이 크기와 무게를 초월하는 차량은 일반 차량들처럼 등록해서 평범한 번호판을 받고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 없다. 공항 활주로, 탄광 내부, 놀이공원 내부 같은 자기 영역에서만 주행 가능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또한 군용차 중에서도 승용차나 트럭을 넘어 아예 탱크나 자주포처럼 무기에 더 가까운 건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물건이 아니다. 그거 조종 특기는 군에서든 사회에서든 자동차 운전 면허와 동급으로 인정되지도 않으며 별개로 취급된다.

남자라면 왕창 빠른 차 아니면, 이렇게 엄청나게 큰 차를 몰아야 간지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 에너지 1/2 mv^2 중에서 m과 v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왕창 큰 거 말이다.
참고로 국내 기준으로 경차는 길이 3.6m, 폭 1.6m, 높이 2m, 엔진 배기량 1000cc 이내이니 얼마나 작은지가 비교된다..;;

한편, 자동차가 폭의 한계가 저렇게 2m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철도 차량은 표준궤 기준으로 3m대에서 논다.
"철도차량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과 관련 별첨 자료를 보면 집전 장치를 제외한 높이의 한계는 4.5m이고, 폭은 3.4m가 한계이다. 다만, 차량의 상부와 하부는 폭의 한계가 3.2m대로 약간 줄어든다.
그 좁은 궤도 위에 자동차보다 훨씬 더 뚱뚱한 차량이 올라가서 달린다는 걸 생각하면, 철도가 공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3. 10% 유도리

우리나라에 자동차 주행의 ‘규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법규에는 10% 초과까지는 봐 주는 유도리라는 게 존재한다.
최대 속도 100km/h 단속이면 이론적으로 110까지는 봐 준다.
과적 단속이 차량 총중량 40톤까지이나, 실제로는 44톤까지는 봐 준다.

승차 정원 초과는 과속· 과적만치 적극적으로 단속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상태로 사고가 나서 주행 실태가 까발려지면 그때부터 골치 아파진다.
일단 법적으로는 이 역시 10명당 한 명꼴로 초과는 봐 준다. 단, 고속도로 주행이 아닐 때에 한해서다.

12인승 승합차 정도의 덩치라면 13명이 구겨서 타는 것쯤을 묵인한다는 뜻이다. 다만, 택시는 얄짤없다. 기사의 입장에서 승차거부가 불법인 것만큼이나, 승객의 입장에서도 돈 아끼려고 한 차에 기사 포함 6명 이상씩 한 차에 구겨 타는 것은 동일하게 불법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물론, 아침에 입석 시내버스 한 대에 6~70명씩 콩나물 시루처럼 타는 것은 이런 법으로부터 열외된 영역이다. 거기는 좌석의 안전벨트 설치 규정조차도 적용되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또한, 경차도 시장의 특수성-_- 때문에 각종 까다로운 안전 테스트에서 열외되어 오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참고로, 승차 인원을 계산할 때 13세 미만 영 유아 어린이는 3인을 성인 2인과 동급으로 친다는 세부 규정도 있다(!!). 어린이는 차량의 승차정원의 관점에서 2/3인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ㅎ

사람 머릿수야 사람이 직접 세는 이산적인 값이니 오차가 있을 리 없겠지만, 과속과 과적 단속은 사정이 다르다. 10% 유도리는 운전자 쪽이나 단속자 쪽에서 혹시나 눈금이나 계기에 오차가 생기는 바람에, 법을 아슬아슬하게 지켰는데도 초과 위반이라고 판정되는 논란과 분쟁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 여유 buffer는 마치 도로의 갓길이나 안전지대와도 같은 개념인 셈이다.

평소에 갓길이나 안전지대에 주· 정차를 하거나 거기를 주행하지 말아야 하듯, 애초부터 유도리를 전제하고서 “80이라고 쓰고 88이라고 읽는다, 100이라고 쓰고 110이라고 읽는다”에 충실하게 운전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다가는 단속에 걸려도 할 말 없다.

여담: 개인적인 생각

(1) 운전 중에 앞에 차가 없이 공간이 아주 많고, 그렇다고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커브나 내리막이라는 이유만으로 브레이크 좀 남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브레이크 경고등은 뒷차를 굉장히 신경 쓰이게 만들며, 이런 것들이 쌓여서 유령 정체까지 유발하게 된다.

매우 비경제적 비효율적인 짓인 건 덤이고 말이다. 재가속 한번 할 때마다 몇십 원 이상의 비용이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관념이 좀 있어야 할 텐데..
버스, 지하철, 택시를 탈 때는 100원 하나 올라가는 것조차 신경 쓰이고 아깝지 않더냐?

(2) 또한 본인은 개인적으로 과속 단속 카메라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최저임금제뿐만 아니라 저거도 좀 없앴으면 좋겠다. 저것 때문에 쓸데없이 드는 제동+재가속 기름 손실도 전국적으로 장난이 아닐 거다. 대한민국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면서? ㄲㄲㄲ
과속 단속 카메라는 커브+신호대기 교차로 같은 걸 앞두고 있을 때에나 극히 제한적으로 뒀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실은... 시내 주행 속도 제한이 60이던 걸 50으로 더 낮췄더라. 젠장..

도대체 속도가 무슨 죄냐?
"어 빈부격차 문제가 심하다고? 그럼 부자들을 강제로 세금 걷어서 같이 거지로 만들어 주면 되겠네?" (당연히 자기 패거리들은 더 부자 되고) 식으로..
안내 표지판의 시안성 개선, 1차로 저속 차량 단속, 음주운전의 처벌 강화 같은 더 합리적인 개선을 할 생각은 안 하고, 뭐든지 적기조례 식으로 쥐어짜기 규제부터 하고 보는 인간들 목을 비틀어 주고 싶다.

빼도 박도 못하고 어느 블랙기업의 막장 운영 때문에 발생한 선박 교통사고를 갖고 대통령의 7시간 개X랄 하던 시절이나,
멀쩡히 속도 지키면서 잘 가다가 그냥 자살 급으로 차 사이에서 튀어나온 애를 친 걸 과속이라고 프레임 씌우는 거나..
이 반도가 감성팔이 선동이라는 악성코드에 취약한 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사람 뇌는 보안 패치 업데이트 좀 할 수 없나? 소프트웨어만으로 안 되면 물리 치료 하드웨어 장착이라도 동반해서..

아아, 그리고 구간 단속은 진짜 최악의 병신짓이고 악랄함의 극치이다.
경제를 시장 자유방임에 맡기는 것만큼이나 자동차 속도도 좀 자유방임에 맡겼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아니면 고속도로에서 속도 제한을 150~160 정도로 좀 현실화하든가 말이다.
이렇게 운전자들이 쌩쌩 잘 달려 줘야.. 시속 120에서도 휘발유 엔진으로 3000rpm을 안 넘어가는 6단 변속기까지 개발해 낸 자동차 회사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에 저속 차량은 알아서 우측으로 갖다대고, 추월은 반드시 좌측으로만 하게 해야 한다. 한 차로에 좌우로부터 차량이 동시에 진입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앞지르기 규정 위반” 이게 알고 보면 무려 중앙선 침범, 음주· 무면허, 신호위반과 동급의 12대 중과실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교통 범죄이다. 그런데 그 범죄를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것들이 바로 1차로에서 저속으로 가고 있는 무개념 차들이다. 이것들이 단순 과속 차량보다 훨씬 더 도로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애들이기 때문에 그런 관행부터 근절해야 된다.

아~ 이 정도면 난 운전 습관도 우파인 건가. ㅡ,.ㅡ;;
사람이 먼저 그딴 게 아니라 빠른 차와 느린 차의 편차를 인정하고 장려하고, 규제 대신 운전자의 자율과 책임,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더 중요시하는 성향이니까.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C/C++과 비슷한 이념이다.

(3) 이런 맥락에서.. 본인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왼쪽 줄은 걸어 올라가는 바쁜 사람을 위해 반드시 비워 두자" 주의이다.
안 그래도 에스컬레이터의 주행 속도부터가 세계 최하위권으로 끔찍하게 느린 주제에 걷거나 뛰지도 말라고? 안일한 규제 만능주의 행정 편의주의 미친 짓일 뿐이다.
다만, 오르막이나 평지(무빙워크)가 아닌 내리막에서 쿵쾅거리며 뛰어 내려가는 것은 기계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반대다. 걸어 내려갈 거면 발에다 힘을 줘서 사뿐사뿐 내려가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0 08:32 2019/12/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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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최근에 직장일 때문에 이메일을 자동으로 생성해서 보내는 프로그램이란 걸 난생 처음으로 작성해 봤다. 소켓 API만 써서 말이다.
서식이고 첨부고 몽땅 다 생략한 최소한의 형태만 생각한다면, 이메일을 보내는 것 자체는 내 예상보다 굉장히 간편하게 쉽게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SMTP 서버 명령어 몇 개만 스펙대로 주고 받으면 된다.

발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수신자조차도 실제로 수신하는 대상과 화면에 표시되는 수신자가 서로 다르게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스팸 메일을 대량으로 살포하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걸 이제야 느꼈다. 이런 문제도 있고, 또 이메일 내용을 다른 해커가 가로챌 수도 있으니 이 바닥에도 온갖 복잡한 인증과 암호화 계층이 나중에 도입된 거지 싶다.

이메일과 관련하여 서버에다 요청을 보낼 때는 줄 바꿈 문자가 \n이 아니라 반드시 \r\n을 써야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건 어째 유닉스가 아닌 DOS/Windows 진영의 관행과 일치한다. 그리고 메일 본문의 끝을 의미하는 게 도스의 copy con이 사용하는 Ctrl+Z 같은 제어 문자가 아니라 그냥 "빈 줄+마침표+빈 줄"이다.

또 주목할 만한 것은 DATA(본문)에 들어가는 발신 날짜였다. 난 메일을 보내면 발신 시각 정도는 메일 서버가 자기 시각을 기준으로 당연히 자동으로 넣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이메일을 보낼 때 발신 시각을 일일이 써 넣지 않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보내는 쪽에서 알려 줘야 하며, 허위로 조작된 임의의 날짜· 시각을 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 써 주는 날짜· 시각은 "Tue, 18 Nov 2014 13:57:11 +0000" 같은 형태로, 날짜와 시각, time zone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요일이라는 일종의 잉여 정보도 있다.
이 형식은 RFC 2822에 표준 규격으로 정해졌는데, 보다시피 사람이 읽기 편하라고 만들어졌지 컴퓨터의 입장에서 간편하게 읽고 쓸 수 있는 형식은 아니다. 컴퓨터의 관점에서는 그냥 1970년 1월 1일 이래로 경과한 초수, 일명 Unix epoch 숫자 하나가 훨씬 편할 텐데 말이다. time zone도 무시하고 UTC만 통용시키고 말이다.

실제로 이 날짜· 시각 문자열은 그 형태 그대로 쓰이지 않는다. 어차피 이메일 클라이언트가 파싱을 해서 내부적으로 Unix epoch 같은 단순한 형태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당장 메일들을 오래된 것-새것 같은 순서대로 정렬해서 목록을 뽑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그걸 출력할 때는 "2014년 11월 18일 오후 10시 57분 11초"처럼 사용자의 언어· 로케일과 설정대로 형태가 또 바뀌게 된다.

그러니 사람보다는 기계가 더 활용하는 날짜 시각 문자열 포맷이 왜 저렇게 복잡한 형태로 정해진 건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읽고 쓰기 위해서 달 이름과 요일 이름 테이블까지 참조해야 하고 말이다. 글쎄, SMTP 명령어를 사람이 직접 입력해서 이메일을 보내던 엄청난 옛날에 사람이 읽고 쓰기 편하라고 저런 형태가 정해진 건지는 모르겠다.

Windows API의 GetDateFormat/GetTimeFormat 내지 C 언어의 asctime/ctime 함수 어느 것도 이메일의 날짜· 시각 포맷과 완전히 일치하는 문자열을 되돌리지는 않는다. 특히 C 함수의 경우,

Tue Nov 18 13:57:11 2014

로, 년월일 시분초 요일까지 정보가 동일하고 맨 처음에 요일이 나오는 것까지도 일치하지만.. 이메일 포맷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C 함수도 나열 순서와 글자수가 언제나 동일하고 불변인 것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저걸 변경할 수는 없다. 저 결과값을 그대로 쓸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참고로 일반인이 저런 날짜· 시각 format 함수를 작성한다면 그냥 단순무식하게 sprintf "%02d %s" 같은 방식으로 코딩을 하겠지만, 프로그래밍 언어 라이브러리에서는 그런 짓은 하지 않고 성능을 최대한 중요시하여 각 항목들을 써 넣는 것을 한땀 한땀 직접 구현한다. 해당 라이브러리의 소스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Windows API에는 SYSTEMTIME이라는 구조체가 있고, C에는 tm이라는 구조체가 있어서 날짜와 시각을 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tm이라니.. 구조체 이름을 무슨 변수 이름처럼 참 이례적으로 짧고 성의없게 지은 것 같다. -_-
C 시절에는 앞에 struct라는 표식을 반드시 덧붙이기라도 해야 했지만 C++은 그런 것도 없으니 더욱 난감하다. C++의 등장까지 염두에 뒀다면 이름을 절대로 저렇게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tm 구조체의 멤버들 중 월(tm_mon)은 1이 아니라 0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연도(tm_year)는 실제 연도에서 1900을 뺀 값을 되돌린다는 것도 직관적이지 못해서 번거롭다. 즉, 2019년 7월은 각각 119, 6이라고 기재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Windows의 SYSTEMTIME은 그렇지 않으며 wYear과 wMonth에 실제값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월이 0부터 시작하는 건 쟤네들 문화권에서는 어차피 월을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배열 참조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연도는.. 무슨 공간을 아끼려고 굳이 1900을 뺐는지 모르겠다. 16비트 int 기준으로 서기 32767년만 해도 정말 까마득하게 먼 미래인걸 말이다.

아 하긴, 20세기 중후반엔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10과 1)만 써도 70이니 90이니 하면서 월과 일의 숫자 범위보다 월등히 컸기 때문에 변별력이 있었다. 연도도 두 자리만 쓰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1900을 빼는 것은 그런 관행을 반영한 조치였을 것이다. Office 97은 있어도 Office 07은 없고 2007이니까 말이다.

엑셀 같은 스프레트시트들도 날짜 겸 시각을 저장하는 자료형의 하한이 1900년 1월 1일로 잡혀 있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철도가 개통한 1899년 9월 18일 같은 날짜는 아슬아슬하게 날짜형으로 저장하지 못하며, 일반 문자열로만 취급된다. =_=;;

이렇게 인간 가독형 날짜· 시각 말고 기계 가독형으로 직렬화된 날짜· 시각을 저장하는 정수 자료형으로 Windows에는 FILETIME이 있고, C에는 time_t가 있다. FILETIME은 Windows NT 시절부터 64비트로 시작했지만 후자는 2000년대 이후에 와서야 2038년 버그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각 플랫폼별로 64비트로 확장됐다. 사실, 이때부터 PC도 64비트로 바뀌어서 플랫폼에 따라서는 long 같은 자료형도 64비트로 바뀌기도 했다..

그리고 요일이야.. 두 구조체 모두 일요일이 0이고 토요일이 6이다.
요일도 이름이 아닌 숫자로만 취급하는 언어는 내가 알기로 중국어밖에 없는데 혹시 더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인간의 언어에는 설마 0요일이 있을 리는 없고 1부터 시작할 텐데.. 중국어의 경우 일요일은 日이어서 이게 0 역할을 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가 1요일~6요일에 대응한다.

이상이다. 이메일 얘기로 시작해서 날짜 시각 얘기로 소재가 바뀌었는데..
이메일(POP3/SMTP)을 비롯해 HTTP, FTP 같은 표준 인터넷 프로토콜들을 클라이언트와 서버를 모두 소켓 API만으로 직접 구현해 보는 건 코딩 실력의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솔루션만 사용하면 되니까 실용적인 의미는 별로 없겠지만, 학교에서 학술..도 아니고 그냥 교육적인 의미는 충분히 있을 테니 말이다. 내부 구조를 직접 살펴보면, 이런 프로토콜의 secure 버전이 왜 따로 만들어져야 했는지 이유도 알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를 응용해서 특정 메일에 대해 자동 회신을 보내는 프로그램, 한 FTP 서버의 파일을 다른 FTP 서버로 올리는 프로그램까지 만드는 건 시험이나 과제 용도로도 괜찮아 보인다. 요즘은 FTP 같은 거 명령어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장 본인도 모른다. ㅎㅎ

이메일을 쓰지 않는다는 도널드 커누쓰 할배가 문득 생각난다. 이분이야 뭐 1970년대,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건 그냥 기업· 연구소, 정부 기관만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이메일이란 게 처음으로 발명됐던 시절에 그걸 다뤄 왔던 분이다. 그러다가 현역 은퇴 후에 때려치우고 온라인 공간의 속세와 단절한 셈이다. 이젠 뭐가 아쉬워서 누구에게 이메일로 연락을 하거나 연락을 기다려야 할 처지도 전혀 아니고.. 그냥 아날로그 종이 편지를 취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시댄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18 08:32 2019/12/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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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날개셋 한글 입력기 최신 버전이 나온 지가 또 벌써 두 달이 돼 가는데.. 현재는 9.9 내지 10.0이 개발 중이다.
현재의 최신 버전인 9.82에서는 이 버전만의 고유한 버그가 발견된 것은 현재까지 없다. 그럭저럭 잘 만들어진 것 같다. 그 대신 오래된 버그가 발견된 게 여럿 있어서 개발 중 버전에서 이들을 잡는 중이다.

1. 각종 UI에 표시되는 글자들의 크기 체계화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는 한자 후보 선택 UI라든가 각종 입력 도구들처럼(화면 키보드, 문자표 등) 글자를 일반 비트맵 글꼴이나 표준 UI 폰트(굴림/맑은 고딕 9)보다 약간 더 크게 찍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내가 날개셋 버전 10이 임박한 시기에 이 부분을 건드리게 될 줄은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필이 꽃히면서 다음과 같이 대대적으로 수술을 했다.

(1) 첫째, 그런 글자들을 대 아니면 소라는 두 그룹으로 나누고, 반드시 그 둘 중 하나에 소속된 통일된 크기로 표시되게 했다.
큰 글자는 버튼이나 정사각형 셀 하나에 글자 하나가 큼직하게 표시되는 상황으로, 문자표, 부수 한자 입력, 이모지 등이 해당된다.
작은 글자는 외부 모듈이나 입력 패드의 한자 선택 UI, 그리고 '조합 자동 완성',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가 해당된다.

(2) 날개셋 제어판의 시스템 계층에다가 이 두 그룹의 실제 크기를 사용자 정의할 수 있게 했다.
단위는 운영체제 표준 UI 폰트의 크기(100%)에 비례하는 백분율이며, 기본값은 '대'는 200%, '소'는 134%이다. 100%보다 더 작은 값을 줄 수는 없고, 최대 500%까지 줄 수 있다.

외부 모듈의 한자 후보 선택 목록에 글자가 너무 작으니 좀 키워 달라는 요청이 지금까지 몇 건 접수된 게 있다. 겨우 그 기능만을 위한 UI를 구현하는 것은 번거로워서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큰 작업을 하면서 저것도 이제 덩달아 가능해졌다. '작은 크기'를 150%~200%대로 키우면 된다.

그 반면, '큰 크기'를 200%보다 더 키우면 화면 키보드, 한손 입력기, 12키 입력기 등 비슷한 크기의 글자를 사용하는 입력 도구들의 덩치도 한꺼번에 키울 수 있다. 단, 이미 화면에 띄워진 도구는 말고, 다음에 새로 생성되는 도구부터 말이다.

(3) 맑은 고딕은 구닥다리 바탕· 굴림 같은 글꼴과 달리 글자의 종횡비가 정확한 1:1 정사각형이 아니며, 자체적으로 줄 간격 여백이 크게 잡혀 있기도 한 글꼴이다. 그래서 바탕· 굴림을 지정하던 곳에다가 맑은 고딕을 지정하면 글자가 너무 작게 찍히는 문제가 여러 곳에서 있었다.
이번에 그 문제도 완전히 해결했다. 크기가 동일한 값으로 주면 바탕· 굴림이건 맑은 고딕이건 상대적인 크기가 비슷하게 지정되며, 단지 맑은 고딕은 줄 간격만 더 길게 벌어지게 했다.

글자 크기를 지정하는 제어판 UI는 이렇게 구현되었다.
이전에 글꼴을 선택하는 옵션이 있었으니 거기에다가 크기를 지정하는 옵션도 한 그룹으로 엮어서 같이 넣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UI를 어떤 형태로 만들지 결정하기가 어려워서 고민을 많이 했다.
시스템 계층 탭은 안 그래도 공간이 비좁아져 있는데, 글꼴이니 키보드 드라이버니 입력 도구니 하는 것들은 서로 관련이 전혀 없고 따로 노는 아이템들이다.

더구나 글꼴의 종류에 이어 크기를 지정하는 옵션이 들어갔다면 이제는 미리보기(preview) 창도 슬슬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 하지만 지금 저 탭에 미리보기 창을 넣을 공간 따위는 전혀 없다.
상황이 답이 없는 지경으로 흘러가니, 이제 글꼴과 관련된 옵션들은 별도의 탭으로 분리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번거로우며 들인 노력 대비 결과가 좋지는 않아 보인다.

최종적으로는 보다시피 '미리보기'라는 링크를 넣고, 사용자가 이걸 클릭하면 아래에 "입력 도구 자동 구동 목록"이 있던 영역이 글꼴 미리보기 창으로 바뀌게 했다. 미리보기 창의 디폴트 크기도 저 정도가 딱 적당하고.. 이게 여러 모로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다.

2. 후보 UI에 표시되는 글자의 폰트 체계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모든 구현체(편집기, 외부 모듈, 입력 패드)에는 한자 변환 후보를 표시하고 선택받는 UI가 있다. 별도의 옵션이 없으면 그냥 운영체제의 기본 글꼴로 글자를 표시하지만, 특정 글꼴을 써서 표시하라고 사용자가 지정도 할 수 있다.
다음 버전에서는 이 글자의 크기뿐만 아니라 글꼴과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은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1) 정규 후보 변환 UI뿐만 아니라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도 후보 목록을 출력하는 부분에서는 저 글꼴 설정이 반영되게 했다.

(2) 그리고 저 글꼴 설정과는 완전히 별개로, 코드값이 특정 영역에 드는 문자는 무조건 이 글꼴로 출력하게 하는 일명 fallback 글꼴 조건을 추가로 지정 가능하게 했다. 그 조건은 별도의 텍스트 파일로부터 읽어들인다.

2번이 아주 참신한 기능이다.
지금 사용 중인 운영체제보다 시기적으로 유니코드에 더 늦게 찔끔 추가된 문자는 그 운영체제에서 글꼴을 제대로 잡아 주지 못한다. 가령, 일본의 새로운 레이와 연호 마크(U+32FF) 같은 것 말이다. 10여 년 전에는 ‘우편번호’ 마크, 20여 년 전에는 유로화 마크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리고 아예 대놓고 특정 custom 글꼴을 써야만 제대로 표시되는 사용자 정의 영역 문자도 있다.
그런 것들은 글꼴 설정과는 별개로 무조건 이런 전용 글꼴을 써서 출력하라고 수동으로 고정해 놓는 게 좋을 것이다.

이건 사용자가 막 자주 사용할 만한 옵션은 아니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어 보인다.
새굴림 같은 옛날 글꼴이 있다면 한양 PUA에 있던 구결을 그 글꼴을 써서 출력하라는 지시를 예제 차원에서 남겨 두었다.

3. 휴대전화 입력기

휴대전화 입력기가 제공하는 4가지 모드 중, 영문과 기호 모드에서는 한 버튼에 3개의 문자가 배당돼 있다. 그리고 이들 중 하나를 버튼을 연타해서 골라서 입력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동일한 글자를 연달아 입력하거나 같은 버튼 그룹에 속한 문자를 이어서 입력하기가 불편하다. 매번 SEP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조합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불편을 덜기 위해 이번 버전에서는 다음 두 방법이 추가되었다. 우클릭 메뉴를 통해 편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

  • 타이머: 버튼을 누르고 나서 0.5초 정도 반응이 없으면 조합이 자동으로 종료된다.
  • 길게 누름: 버튼 자체를 0.5초 정도 길게 누르면 이 글자는 다음 글자로 넘어간 상태로 삽입된다.

'길게 누름'은 한글· 영문 같은 모드에서 해당 버튼에 해당하는 숫자를 입력하는 용도로도 쓰이는 편인데, 기왕 '길게 누름'을 인식하는 김에 저렇게 동작하는 옵션도 같이 추가되었다.

4. cursor가 가리키는 글자를 표시하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입력 도구들 중 "문자표, 부수로 한자 입력, 이모지 문자표" 이 셋은 고정된 테이블을 기반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대표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새 버전에서는 이들에게 문자를 입력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역으로 cursor가 가리키는 문자를 자기 문자표에서 찾아서 표시해 주는 기능도 동시에 추가될 예정이다.

각 입력 도구들은 우측 상단에 ↔ 화살표가 그려진 자그마한 버튼이 추가되었으며, 이를 누르면 cursor 뒤에 있는 글자를 찾아서 표시하게 된다. 즉, "가|" 가 아니라 "|가"일 때 '가'에 대한 정보가 나타난다. 해당 입력 도구의 테이블에 존재하지 않는 문자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짤막한 비프음이 난다.

이 기능을 '부수로 한자 입력'에서 사용하면 낯선 한자의 부수와 획수가 무엇인지를 곧장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이모지 같은 다 문자표와도 연계하면 이 문자와 관련된 주변 다른 문자들을 곧장 조회할 수 있다.
물론 이 기능은 날개셋 편집기 내지, 외부 모듈의 경우 TSF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실제로 글쇠 입력을 받는 문자 생성기 말고, 입력 도구가 문자를 밖에서 보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바깥 문자를 역으로 얻어 오는 동작이 구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 기타 자잘한 개선

(1)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GUI 중에는 편집기의 글꼴 목록이나, 제어판 시스템 계층의 외부 모듈 목록처럼 백그라운드 스레드를 사용해서 내용을 표시하는 것이 좀 있다. 그런데 스레드의 준비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 ESC를 눌러서 해당 대화상자를 잽싸게 닫으면 응답이 몇 초 내지 무기한 멎어 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이 오랜 지병을 이번에 완전히 해결했다.

(2) TSF를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에서 구현 가능하지 않은 특수글쇠(앞 글자 조합 상태, 특정 낱자를 앞으로 보내기 따위)를 눌렀을 때 프로그램이 얼어붙는 문제도 해결했다.
사실 이 문제 자체는 5년도 더 전 7.7 버전에서 해결되었지만, 훗날 9.8에서 크롬 브라우저 버그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보정 로직에서 동일 문제가 재발하게 되었다.

(3) 최신 아래아한글의 글쇠배열 편집기에서 저장한 ukl 파일도 날개셋 제어판에서 읽을 수 있게 내 프로그램의 변환기 로직을 수정했다.
아래아한글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글쇠배열 편집기가 도입된 건 먼 옛날 2004부터인데, 그때는 파일 포맷 시그니처가 1.0이었다. 그게 어느 샌가 2.0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내 프로그램에서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시그니처만 그렇게 살짝 바뀌었지 파일 내부 구조는 바뀐 게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시그니처를 인식하는 부분만 수정했다.

아래아한글의 글쇠배열 편집 기능은 customize 범위가 매우 제한적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UI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좀 있다. 글쇠배열의 이름을 지정하는 게 편집 화면이나 별도 UI로 있는 게 아니라 저장 대화상자에서 하게 돼 있고..;;
Shift 윗글쇠 부분을 편집하는 것도 마우스나 메뉴를 통해 가능하지 않고 키보드 space를 눌러야 한다고 도움말을 직접 참고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차라리 저 shift 그림을 클릭해서 전환이 가능하다면 훨씬 더 직관적일 텐데..

(4) 그리고 날개셋 제어판의 글쇠배열, 입력 유형(ist)을 열었는데.. 자체 고유 포맷 말고 내부적으로 변환을 거치는 파일을 가져왔을 때는.. 나중에 열기 대화상자를 눌렀을 때 이전 파일의 위치가 기억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여러 파일을 하나씩 연달아 살펴볼 때 불편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수정했다.

(5) MS Word에서 문자표 계열 입력 도구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도구로 문자 입력이 가끔 제대로 되지 않던 문제를 해결했다. 얘만 좀 특이하게 동작하는 게 있어서 그랬다.

여기에다가 입력 도구와 관련, 그리고 세벌식 동시치기 관련 기능 강화 작업까지 마무리 되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9.9를 넘어서 10.0에 무난히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15 08:34 2019/12/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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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의 파편화

본인은 지금까지 많은 글들을 통해 밝혔던 바와 같이, 조금 마이너하고 특수한 교회를 다니고 있다.

  •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고 주장한다. 이게 단순히 가장 우수한 번역본인 정도를 넘어서 무오한 최종 권위라고 생각한다. 영어라는 언어에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고 믿는다.
  • 재침례: 세례를 부정하고(특히 유아 세례는 더욱) 침례교를 표방하지만,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여느 침례교는 아니다. 그렇다고 KAC인지 뭔지, 속세를 떠나 사는 듯한 아나뱁티스트 같은 교단/단체하고도 아무 관계 없다.
  • 분리· 근본주의: 여느 기성 교회들보다는 옛날 스타일을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강단에 설 때는 무조건 정장, "형제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무조건 목사님이라고".. 그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본인의 반공 우파 성향은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신앙 노선과는 별개이고 무관함을 밝힌다. 구국 애국 운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인이 각자 따로 할 일이지, 지역 교회가 교회 간판을 걸고서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심지어 일제 시대에 크리스천이 3· 1 운동에 참가할지의 여부를 판단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잣대이다.

본인은 좌독은 국가관 역사관 말고 다른 분야의 교리나 행실이 그나마 건전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일말의 일관성과 논리와 신념이 있기라도 하면.. 동의는 안 해도 인정은 해 주는 등급이다. 나와 간극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만큼이나 한 분야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 정도로 간주한다. 그게 아니면 단순 반골기질 쩌는 여느 철없고 분별력 부족한 육신적인 신자, 구원받고도 술· 담배 못 끊고 있는 신자 급일 뿐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날 때나 형제라고 대하고 존중해 주지, 전쟁터 내지 빨갱이들 폭동을 진압하는 내전 현장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내가 살기 위해 그에게 부득이하게 총질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나는 인간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피고를 동정하지만 나의 직분인 판사로서는 법에 따라 피고에게 합당한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처럼 말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정치 얘기는 그렇다 치고 종교 분야만으로 관점을 좁히더라도,
본인의 신앙 노선은 참 안타깝게도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게 별로 없다. 본인도 이에 대해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가 이단시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세대주의, 영혼몸 삼분법, 구원의 영원한 보장, 재창조 간극까지 어쩜 이렇게 인지도가 좋지 않은지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놀랄 놀 짜였다. 내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기독교계는 왜 이렇게 교리 교파가 찢어져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왜 지금과 같은 노선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성경이라는 책은 어디까지가 그냥 묻지 말고 일단 믿어야 하는 공리, 즉, 합법적으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속하고 어디부터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논리와 일관성인지..
하나님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속성이나 진술을 어떤 원칙과 체계에 따라 종합하고 조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따지면서 봐야 한다. 본인의 신앙관은 이 원칙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개나 소나 하나님에 대해서 한 면모를 적당히 좋게만 포장해서 말하면 전부 "와 그런가 보다" 하고 한쪽에 자기 꿀리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정과 섭리를 더 좋아하는 파벌, 선행을 더 좋아하는 파벌, 거룩과 공의를 좋아하는 파벌, 힐링힐링을 더 좋아하는 파벌 등등으로 말이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진다. 기독교계가 온통 파편화돼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자면.. 기독교계는 절대로 깔끔 깨끗한 동네가 아니다.
일반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성경과 교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신학계까지도 말이다.

수학· 과학 같은 곳은 진짜 닥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곳이고, 승부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스포츠로 치면 양궁 같은 곳이다. 화살이 과녁 중심에서 시각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꽂혔는지만을 판정하는 일에 개인 주관이나 믿음이나 신념이나 양심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선수 간의 몸싸움· 반칙이나 판정 조작도 있을 수 없다.

가~끔 뭐 자기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네, 4색 정리를 더 간단하게 증명했네, 리만 가설이나 P/NP 문제를 증명· 반증했네, 영구기관을 발명했네, 지구가 평면이네 등의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긴 하지만 다 걸러진다. 거기는 철저한 관찰과 상호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류 다수의 주장이 대체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전하다.

누군가가 실적과 돈 때문에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 적발된다. 사람이 아무리 악하고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다고 해도, 수학적인 엄밀함까지 판별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수학 말고 관찰이 수반되는 과학 쪽도.. 지금이 옛날처럼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없고 플로지스톤이나 자연발생설이 지지받던 시절은 아니니, 지금까지의 물리 법칙이나 과학 발견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 뿌리째 싹 뒤집힐 일은.. 0은 아니어도 거~의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악의적인 원인 때문은 아니다.

허나, 신학 쪽은 사정이 저렇지 않다.
신앙은 주관적이고 증명 불가능한 믿음을 수반하며, 성경 역시 무슨 수학· 과학 논문처럼 접근 가능한 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추잡한 본성이 똥고집까지 가미되어서 자기가 꼴리는 대로 믿으면서 그야말로 별 희한한 이단 교리, 궤변, 온갖 지적 사기들이 마음껏 횡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기는 역설적으로 다수 주류만 따른다고 해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바르게 믿고 행하던 교회나 신학교조차도 다수 주류가 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순수성을 잃고 배도하고 변질되고 타락한다. 그러니 뜻있는 사람들 일부가 분리되어 나와서 자기 조직을 또 세우고 그러다 거기마저도 타락하여 분리가 발생한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고 또 파듯이 말이다.

이게 이 바닥이 흘러가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큰 그림, 패턴을 모르니까 성경도 그냥 여느 고전 텍스트처럼 학자들이 알아서 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 주고 잘 개정해 주는 줄로만 알고..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하고 이단시하는 것이다.

이 바닥이 정말 X나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파편화된 바닥인 건 사실이다.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도,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뭐 하나 일치하는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여기가 조화가 아닌 생화가 있고 정말 거물급 보물이 있기 때문에 벌레들이 들끓는 것이다. 골치아프고 진입로가 더럽다고 해서 진리를 찾는 걸 포기해 버리고 때려치우면, 그것도 게임에서 지는 거다.

뭐, 다수 주류만 따라가면 최소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진짜 정신나간 막장 사이비 정도는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수준이 딱 거기서 끝이다. 그냥 철도교 믿는 수준의 종교 생활까지만 가능하지, 최상의 금덩어리(?)까지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대한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고, 교리 간에 논리적으로 연결 고리가 생기는지, 나한테 당장 육신적인 탐욕 대신 영적 만족을 채워 주는지, 모든 사람이 나처럼 믿고 행했을 때 교회나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겠는지 이런 것들을 따지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을 공부하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이상한 결론으로 빠질 일이 없다. 어린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한편으로 박사에 교수라도 삼천포로 훅 갈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 기독교 교리 논쟁을 할 때만큼은 "니만 맞고 나머지 많은 신자들은 다 틀렸다는 거냐?" 이런 소리는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이다. 그럼 애초에 예수는 왜 믿기 시작했는지 난 그것부터가 너무 궁금하다. 불신자들도 완전히 똑같은 질문과 불평을 하는데 말이다.
난 이런 상황을 정말 많이 겪어 봤다. 이 논리가 기독교 vs 비기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재귀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장인 내가 종교관이 완강하고 고집 세다고 느껴진다면.. 99%는 그렇게 느끼는 그 당사자도 완전히 동급으로 완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이는 마치 작용-반작용 법칙과도 같다.
그 사람도 남이 말하는 근거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얘기만 밀어붙이고 싶은 상태이다. 그리고 성경 구절이나 논리로 반박을 못 하면 그 다음엔 말투가 어떻네 교만하네 고집이 세네 사랑이 없네 하면서 주변의 태도나 인성 운운하며 다른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 게 사람의 심성이다. 그런 자세로는 남과 논쟁을 하고 남을 설득할 수 없다.

학교에서 애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쳐서 무신론 우생학을 주입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안이라는 그 좋은 창조 연대기에 대한 견해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나 노아의 방주 흔적, 그랜드 캐니언을 찾아 다니기 전에 성경이 말하는 이전 세상 개념부터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건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 추신: 내부 분열

이렇게 양심과 신념상의 이유로 인해 대세를 따르지 않는 좁은 길 마이너한 진영이 생기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치는데, 그럼 마이너한 걸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잘 뭉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안 그래도 작고 좁은 진영 내부에서도 별 희한한 걸 갖고 반목이 발생해서 더 갈라지고 찢어지곤 한다.

이건 굳이 기독교계의 킹 제임스 진영만 그런 게 아니다. 안 그래도 1%도 채 안 되는 세벌식 글자판 진영이라든가, 정치 이념 쪽의 우파 애국 보수 진영이라든가.. 내가 관심을 가져 본 마이너한 진영들에서 한 치의 예외 없이 발견되더라.

교회 내에서 성경 해석의 차이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이거 뭐 영어나 히브리어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한국어 호칭 사용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고 마음에 안 든다고.. 안 그래도 좁은 진영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갖춘 교회를 애써 찾아왔다가 저게 그렇게 휙 돌아서고 떠날 정도의 사유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완전히 세상적인 이념 진영인 유명 우파 논객들 간의 팀킬 싸움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본인은 의사는 환자를 강압적이고 거칠게 대하더라도 돌팔이가 아니라 환자 치료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방망이 깎던 노인" 스타일을 존경하고 인정한다. 기본적인 말투가 싸가지 없고 행실이 거칠더라도, 그 껄렁껄렁한 전투력과 팩트폭력이 좌빨들을 까고 공격할 때 일관되게 발휘만 된다면 그 실력을 존중해 준다. 박 근혜, 황 교안 같은 인물에 대한 생각이나 땅굴· 5 18에 대한 생각이 나와 살짝 다르더라도 그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본인처럼 판단하지는 않던가 보다.

난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같은 편인데 우리 좀 싸우지 맙시다"만 붙들고 있을 생각도 없다. 내부 분열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면모도 있다.
얘들은 개돼지 좀비 레밍 들쥐가 아니고, 교활한 기회주의 웰빙 타입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개성과 고집이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사람들인데 어찌 좌빨 홍위병 같은 급의 무식한 개떼 단결과 결집이 가능하겠는가? 한 단점이 없는 대신 다른 쪽에 한계와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반목과 갈등이 생겨서 평소에는 각자 찢어져서 제 갈 길 가더라도, 그래도 더 큰 공통의 적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만은 잠시 동안이라도 같이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너무 많이 바라다가 실망하지도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12 08:35 2019/1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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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해 본 일들

1. 국대 떡볶이, 태극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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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떡볶이와 순대는 그냥 이름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음식이지, 이런 번듯한 식당에서 먹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분야를 개척한 식당 브랜드가 있고, 또 창업주가 사상이 올바르고 굉장히 건전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곧장 친구들까지 데리고 여기를 들러서 음식을 마음껏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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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개천절 오후에는 광화문에서 가히 역대 최다 인파가 결집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레카 탄핵 반대"라는 중대한 이슈가 있었던 2017년 삼일절 때의 초창기 태극기 집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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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정치의 정 짜에도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는 우파 진영이 이쁜 짓을 했기 때문이 아니며, 특히 할 일 없는 늙은 꼰대들이 일당을 두둑히 받았기 때문은 더욱 절대 아니다.
정치색과 무관하게 대통령이 하는 짓과, 그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작자의 조적조 조로남불 꼬라지, 이놈들의 해도 너무한 가식과 위선과 궤변과 변명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딴 이유는 없다. 그 현실을, 그 팩트를 좌좀 대깨문 나팔문 문슬람들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 이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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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화장을 또 찾아가 봤는데 이젠 또 내년까지 공사랜다. 도대체 2년, 3년째 날짜를 고쳐 가며 공사만 계속하고, 정식 개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사 핑계로 무기한 방치하는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3. 용마산 등산

그리고 날씨가 좋을 때 용마산을 오랜만에 다시 올라서 정상까지 가 봤다.
첫 개척이 아니고 야영을 한 것도 아니니, 중요도가 별도의 글로 올릴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니 그냥 근황 소식에다가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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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은 서울 시내에서 접근성이 아주 좋으며, 심하게 높지 않으면서 돌산이어서 내부 경치가 좋다.
그리고 등산하는 동안 대부분의 구간에서 산 바깥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동부 간선 도로 구간이 몽땅 내려다보인다. 세상에 이런 산은 흔치 않다.
산을 오르면서 저 아래의 팔각정을 거쳐 갔는데, 산행을 계속하니 그 팔각정도 이렇게 내려다보는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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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풍경은 대략 이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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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에서는 근처의 배봉산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사실 본인은 배봉산에서도 언젠가 저기 용마산을 다시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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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정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표지석과 옛 측량 시설, 그리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태극기 깃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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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아차산 정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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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 파고든 저 마을이 바로 아치울 마을이다. 본인은 아차산을 답사하면서 저리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까이 있는 희고 둥근 모양의 교량은 구리암사대교이다.

4. 노들섬

서울 한강대교는 중앙에 노들섬이라는 하중도를 지난다. 거기는 먼 옛날엔 사유지이다가 국가에서 거금을 주고 매입한 뒤, 해마다 항공 사진 모습이 바뀔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오페라 하우스(??)가 만들어져서 지난 9월 말에 개장했다. 그래서 본인도 이에 흥미를 느끼고 노들섬을 다녀왔다.

노들섬의 자가용 접근성은 남산과 동일하다. 한강대교에서 노들섬 내부로 들어가는 차도와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공간이 비좁은 관계로 등록된 업무 차량만 드나들 수 있다. 일반 방문객이 차를 저기에다 댈 수는 없다.
한강대교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주차장은 이촌 한강 공원에서 제일 서쪽의 제4 주차장이다. 거기는 풀밭이나 편의점 등 공원 본연의 시설과는 멀리 떨어져서 접근성이 안 좋지만, 한강대교와의 접근성은 제일 좋다. 거기서 한강대교를 근성으로 5~10분 내지 걸으면 노들섬에 갈 수 있다.

심야나 이른 새벽.. 그리고 5~10분 정도 잠깐 정차하는 거라면 한강대교의 길가에다 잠깐 차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리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처 중앙선의 안전지대에도 차를 세울 수 있지만, 이 역시 원래는 불법이고 다른 대형 트럭이나 견인차가 세워져 있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못 된다.
그냥 지하철 9호선 노들(강남) 내지 4· 6호선 삼각지 역(강북)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게 제일 속 편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아직 공사가 덜 끝난 부분이 많고 생각만치 볼 건 없었다. 무슨 선유도 정도의 퀄리티는 아니다. (풀밭, 산책로..)
특히 교량의 동쪽 말고 건너편 서쪽은 아직 풀숲 밀림(...)인데 거기도 뭘 더 만들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원등 상사 동상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더 욕심을 내자면, 서강대교의 밤섬도 이렇게 개방됐으면 좋겠다. 믿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거기에 아예 사람이 살고 마을까지 있었다니 말이다. (교량 따위 없으니 본토와는 나룻배로 드나들었고..;; ㄷㄷ)

Posted by 사무엘

2019/12/09 08:36 2019/12/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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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고속도로 번호 체계는 2001년에 전면 개편되어 그 해 8월 2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체계는 무식하게 개통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 게 아니라, 숫자의 번호만 보고도 이 도로가 횡축인지(0부터 시작하는 짝수) 종축(5부터 시작하는 홀수)인지, 대략 어느 위치를 지나는지(대소 비교), 간선인지 지선인지(2~3자리), 지역 순환선인지 같은 것을 얼추 알 수 있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계는 첫 도입됐던 당시에는 굉장히 참신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2004년 버스 노선 개편처럼 말이다. 홀짝으로 종축· 횡축을 구분하는 것은 기존 국도의 번호 체계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이제 고속도로의 번호도 그런 관행을 더 깔끔하게 따르게 되었다. 고속도로도 앞으로 국도처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많이 깔릴 것을 미리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체계의 큰 특징은 개통 시기나 사업 주체가 다르더라도 같은 선형이면 동일한 도로라고 보고 동일한 번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혼자 따로 노는 민자이지만 기존 호남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25번이며,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도 기존 중앙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55번이다.

이때 서울-안산 고속도로가 서해안 고속도로(15)로 편입됐으며, 반대로 처음에 서해안 고속도로 소속이던 안산-신갈 구간은 깔끔하게 영동 고속도로(50)의 서쪽 구간으로 넘겨서 각각 종축과 횡축으로 선형을 일치시켰다.

이는 마치 서울 지하철 4호선에다가 코레일 과천선과 안산선을 몽땅 하늘색으로 엮어서 '수도권 전철 4호선'이라고 표기한 것과 비슷한 통합이다. 어차피 열차들이 직통 운행을 하니까 말이다. 지하철과 국철의 구분을 없애고,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지하철 고유색인 빨강이 사라진 게 2000년 4월부터이다.

그리고 철도계 역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동일선상의 직결 운행이 예정된 전철들은 같은 색깔로 표기하고 있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대표적인 예이고, 지금 수인선도 분당선과 동일하게 노란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포 경전철의 경우, 비록 시스템적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직결 운행을 할 수는 없지만 개념적으로 9호선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9호선과 동일한 금색/커피색을 내세우는 중이다.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바뀌었는데..
고속도로의 경우 요즘 하도 많이 생기고 있어서 정신이 없다. 옛날의 경부라든가 서해안, 중앙, 중부내륙처럼 장거리 간선들을 작정하고 바둑판 형태로 만들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그 대신 여기저기 찔끔찔끔, 복잡한 선형으로 개통하는 게 많은지라, 번호를 어떻게 부여하면 좋을지 직관적으로 예상이 안 되는 게 늘었다. 가령, 15 서해안으로도 모자라서 151(서천-공주)에다 17(평택-파주), 171(용인-서울) 등등..
전라선 철도의 고속도로 버전인 순천-완주는 27이고, 구리-포천은 29..

사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컨벤션이라면 37보다는 351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결코 짧지 않은 영천-상주조차 301이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 두 자리 수 번호 중에 x1, x3은 앞으로 쓰일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기왕 이 번호 체계가 깔끔하게 유지되려면 미래에 건설될 고속도로들의 전체 큰 그림에 대한 굉장한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미래에 구현될 기능까지 다 염두에 두고 부모 클래스와 가상 함수들을 미리 세밀하게 설계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고속도로의 이름은 기점과 종점 도시를 연결하는 형태로 지어지곤 하는데, 어디가 기점이고 어디가 종점일까? 철도만 해도 역의 번호를 부여하는 순서가(상· 하행) 노선별로 굉장히 케바케 뒤죽박죽인데, 비슷한 문제가 고속도로의 작명 방식에도 존재한다.
가나다 순서인지, 서울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바다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301은 공식 명칭이 영천-상주가 아니라 상주-영천인 걸 보면.. 도대체 원칙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생겼던 시절에는 '간'이라는 단어까지 있어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였는데, 그게 '경부 고속도로'라고 축약되었고, 이후의 고속도로들은 다시 도시 이름을 full로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가령, 60번 고속도로는 잠시 '경춘 고속도로'라고 불린 적이 있었지만 더 연장된 뒤부터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됐다.

사실, 한국 도로 공사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에도 이름을 없애고 국도처럼 번호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려 하고 있다. 물론 예전의 오랜 관습이라든가 사업 구간의 차이에 따른 구분 때문에 이름이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뿐만 아니라 재래식 톨게이트도 없애는 게 궁극적인 장기 계획이니.. 우리나라의 교통 시스템은 이것저것 바뀌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름 다음에는 '고속도로'라는 칭호를 붙이고, 번호 다음에는 '고속국도'를 붙이는 게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호남 고속도로와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모두 고속국도 25호선(또는 25번 고속국도)에 속한 구간이다" 같은 식이다.

한편, 도로 말고 서울의 한강 교량들은 처음에는 개통 순서대로 "제n 한강교"라고 이름을 붙여 왔다. 그러다가 다리의 수가 늘어나고 번호가 뒤죽박죽 꼬여 가자, 번호만 상류에서 하류 순으로 오름차순 리넘버링하는 식으로 개편하지 않았다. 번호 자체를 없애고 마포, 반포, 한남처럼 교량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이게 됐다. 1980년대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취한 조치이다.

교량이야 도로처럼 선이 아니라 강의 특정 지점이라는 점에 가까운 개념이니, 고유한 이름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도 나들목들까지 이름을 싹 없애고 번호만 붙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나들목도 외국인이 알아보기 쉽게 번호를 병기하자는 의견도 소수나마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7 08:33 2019/12/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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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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