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이 블로그의 옛날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옛날 고전 게임들을 회상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본인이 어릴 때에 생각한 가장 typical한 게임은 사람 또는 최소한 두 팔 두 다리가 달린 캐릭터가 2차원 던전을 뛰어다니면서 적을 죽이는 액션/아케이트 장르였다. 그래서 주 관심사도 페르시아의 왕자나 황금도끼 같은 부류였는데..

하루는 오랜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약간 색다른 게임이 되살아난 관계로 별도의 글을 좀 쓰게 되었다. 바로 슈파플렉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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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통상적인 액션/아케이드라고 보기에는 맵 구조가 단순하고 주인공의 묘사가 더 기하학적(?)이며 퍼즐의 비중이 매우 높다. 주인공이 대놓고 동그란 공 모양인 건 Bumpy's Arcade Fantasy 말고는 쟤 정도밖에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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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파플렉스는 간단한 규칙에 비해 게임성과 중독성이 대단히 뛰어나서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라 칭송을 받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수천 개의 custom level들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이 게임의 명목상 배경은 컴퓨터 내부=_=;;이다. 주인공은 저 붉은 공 모양의 입 큰 캐릭터이다. 주인공은 던전 안에서 좌우상하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던전의 전체 시점이 좌우전후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중력이 아래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소수 레벨은 주인공에게도 중력이 걸리기 때문에 위로 한없이 자유롭게 올라갈 수가 없다.

게임의 기본적인 목표는 던전 안을 돌아다니면서 위험물에 걸려 죽지 않고, '인포트론'이라고 불리는 아이템을 모두 먹어서 모은 뒤 출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초록색 기판은 주인공만이 먹어서 없앨 수 있는 일종의 지형인데(적은 이걸 못 없앰), 이게 없어지면 그 위에 있던 돌덩어리와 인포트론은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물체에 맞으면 주인공이건 적이건 다 죽는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이 녹색 기판을 먹으며 이동 중일 때는 눈을 소복소복 밟는 듯한 찰진 소리가 들린다.)

슈파플렉스의 모티브는 팩맨과 분명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지형을 먹어 없애서 장애물을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은.. 1983년에 개발된 완전 옛날 게임인 Digger와도 비슷한 것 같다.
혹시 Digger 아는 분 계시는지? 본인은 초딩 시절에 컴퓨터 학원에서 디스켓 넣어서 흑백 모니터 XT 컴퓨터로 저걸 돌려서 해 봤다. 얘는 주인공이 무슨 자동차처럼 생겼으며, 한 화면에서 보석을 다 먹기만 하면 자동으로 레벨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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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슈파플렉스는 Digger보다야 머리 써야 하는 복잡한 요소가 훨씬 더 많다.
돌과 인포트론이 막 복잡하게 섞여 있는 곳에서 뭘 까딱 잘못 건드리면 죽거나, 인포트론이 돌 사이에 파묻혀서 내가 먹을 수 없게 되는 게 많다. 마작으로 치면 무작정 짝이 맞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가까운 패를 없애다가 나중에 게임을 풀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장르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게임 하다가 너무 골치 아파서 스트레스만 잔뜩 받을 법도 한데.. 덕후들은 오히려 이런 데에 완전 열광한다.
엔하위키 아니랄까봐 각 레벨과 게임 특성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설명돼 있다. 역시 거기 글 쓰는 사람들은 덕력이 장난이 아니다.

PC 통신 시절에 내가 알고 지내던 내 또래의 어느 컴덕/프로그래머는 슈파플렉스의 중독성을 극찬하던 매니아였으며, 도스용으로 슈파플렉스 레벨 에디터를 자작하기도 했다. =_=;;
하긴 별도의 복잡한 트리거나 이벤트가 별로 없이 정말 사각형 격자 데이터만으로 레벨이 만들어지니 데이터가 압축/암호화만 돼 있지 않다면 레벨 에디터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겠다.

이 게임의 백미는 돌더미들이 하나씩 순서대로 떨어지면서 좌우로 균형 있게 데굴데굴 굴러서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이다. 이런 게임 메카닉은 어떤 알고리즘으로 구현되었을지가 프로그래머로서 무척 신기하게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라면 옛날 비디오 게임에 대한 추억을 하나 이상씩은 다 갖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웹툰 작가 가스파드는 작년 가을부터 <전자오락 수호대>라는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알다시피 이건 뭐 예고편부터가 일개 웹툰 퀄리티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약 빨고 이런 걸 창조해 냈는지? 천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퍼즐보다는 더 현실성을 추구한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을 왜곡하는 효과는 종종 등장한 경우가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7단계 끝부분에서 초록색 물약을 먹어서 잠깐 낙하산 효과가 나며, 퀘이크 1의 비밀 레벨은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동체들이 중력이 1/n토막 나서 꽤 높은 점프가 가능하다.
물론 지구상에서 그걸 실제로 구현하는 건 제트팩 같은 것이라도 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달 같은 다른 작은 행성으로 가든가.

Posted by 사무엘

2015/01/17 08:25 2015/01/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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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5/01/18 15:58 # M/D Reply Permalink

    둘다 옛날생각이 풀풀 나는 게임이네요 ㅎㅎ

    1. 사무엘 2015/01/19 09:30 # M/D Permalink

      옛날 게임과 옛날 자동차 회상하는 거 전 아주 좋아합니다. ^^

    2. Lyn 2015/01/20 18:35 # M/D Permalink

      전 게임엔 영 재능이 없어서 한번도 저 두 게임을 클리어해보지 못했네요 ㅡㅡㅋ

    3. 사무엘 2015/01/20 22:40 # M/D Permalink

      저도 회상하는 것만 좋아한댔지, 잘한다고는 절대로 얘기 안 했습니다~! ^^
      슈파플렉스 저걸 어떻게 혼자서 엔딩을 봅니까. 저 역시 게임 잘 못 합니다. 특히 퍼즐류는..;;

  2. 김 기윤 2015/01/21 14:25 # M/D Reply Permalink

    옛날 게임이면 이것저것 만이 해봤는데, 트랜스포트 타이쿤을 빼고는 (정작 이것도 샌드박스류라, 일단은 2030년으로 끝을 내고도 무한대로 추가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엔딩을 본 게임이 없네요.

    옛날에 했었던 게임이면, 범피, 볼피드, 너구리, 고인돌, 브릭스2, 외 기타 등등등등 꽤 많았는데 말이죠orz

    1. 사무엘 2015/01/21 19:37 # M/D Permalink

      생각보다 도스 게임들을 많이 접하셨군요. DLL을 만든 적이 없으신 건 new 같고, 도스 게임은 old 같음. ^^

  3. ujinyang 2015/05/05 20:42 # M/D Reply Permalink

    슈파플렉스 나오기 몇년전에 ROCKFORD 라는 게임을 재밌게 했었는데,
    슈파플렉스는 몇판해보니 완전 판박이라 더는 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서 찾아보니까, BOULDER DASH 타입으로 분류하네요.
    http://en.wikipedia.org/wiki/Boulder_Dash
    아직도 이런류의 비슷한 게임이 나오나 봅니다. 연대표가 있네요.

    1. 사무엘 2015/05/06 07:36 # M/D Permalink

      아하, 팩맨· Digger보다도 더 유사한 동일 장르 기존 게임이 있었군요.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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