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국산화

1975년 12월에 현대 자동차에서 최초로 고유 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만들어 낸 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말고 가전 분야에서 이에 필적하는 발전을 선도하던 기업은 바로 지금 LG 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였다.
라디오를 생산해 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1966년 8월에 최초로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개발· 생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부품을 국산화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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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TV 한 대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물가로 6만 원이었다. 이건 자료를 찾아 보면 엥겔 지수 자체가 더 높던 그 시절에 쌀 무려 20여 가마니의 가치를 상회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당시의 서민 경제력으로는 TV를 집집마다 장만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마을 이장님 집에서나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했다는 걸.. 개개인이 전화기와 DMB를 들고 다니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금성사는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7년에야 컬러 TV를 만들어 냈다. 그 당시에 국내 최고의 전자공학 공돌이들이 머리를 짜내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컬러 TV가 대세가 된 뒤에도 휴대용 소형 텔레비전이나 아파트 현관 인터폰 같은 CCTV는 가격이나 기술 문제 때문인지 여전히 흑백이 많이 쓰이곤 했다.

한 점에서 평면 화면을 표현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으니 초창기의 텔레비전은 아주 그냥 동그란 구면이었다. 컬러화를 이루고 채널 다이얼을 버튼으로 바꾸고 리모콘도 추가하고.. 이 모든 것 이상으로 텔레비전 관련 기술자들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당연히 이 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엔 완전평면 슈퍼플랫 브라운관 어쩌구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크기도 30~40인치까지 커졌다. 한편, 컴퓨터 모니터는 큰 게 20몇 인치대.

하지만 공간 복잡도가 무려 O(n^3)에 달하는 크고 무거운 브라운관으로는 그 이상 대형화는 도저히 무리였다. 아울러 재래식 아날로그 TV 규격의 해상도만으로는 화질도 대형 화면에 적합하지 않았을 테고.
오늘날의 스마트폰 같은 초소형 컴퓨터가 출현 가능해진 데엔 단순히 집적도가 높은 고성능 CPU뿐만이 아니라 얇은 디스플레이 소자도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거 발전을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옛날에 21세기를 상상했던 공상 과학 매체를 보면, 사람들이 첨단 기술이랍시고 텔레비전 전화로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하는데, 화면은 둥~그런 브라운관 화면인... 지금으로서는 참 웃지 못할 장면이 남아 있는 것이다. ㅎㅎ

이제 전세계에서 브라운관 모니터의 생산 중단이 임박했다.
브라운관 모니터에 떠 있는 운영체제로 어울리는 물건은 Windows XP 정도가 마지막이지, 2000년대 중반인 Vista와 그 이후부터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플로피 디스크도 새로 만들어지는 PC에서는 이때쯤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한때 한창 유행했던 컴퓨터 모니터의 '보안경', 그리고 전원을 켜면 화면이 서서히 fade in으로 화면이 나타나던 장면 따위도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 돼 간다.
그리고 컴퓨터에서는 VGA D-sub 단자도 점점 쓸 일이 없어지는 중이다. 한때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영상 신호를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냈지만 지금은 다시 DVI 같은 디지털 규격으로 회귀한 지 오래이다. LCD는 브라운관보다 근본적으로 더 디지털 친화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2. 테스트 패턴

옛날엔 그래픽 모드로 진입하는 도스용 프로그램들은 실행 전에 비디오 모드를 묻거나 "이 글자가 잘 보이면 F5를 누르세요" 요청을 하는 게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 아날로그 영상물에서 이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물건은 바로 테스트 패턴이다. 현재 텔레비전이 신호를 잘 잡았고 색상을 옳게 표시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나타내는 색깔띠들이다. 흑백 명암과 RGB 각 축의 극단에 해당하는 고채도 색상들 조합이 쭈욱 나열돼 있다. 이것들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 규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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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과 같은 단순한 색깔띠는 텔레비전보다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을 때 맨 앞부분에서 잠깐 보였을 것이다. SMPTE Color bar (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라고 불린다.

오른쪽의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색깔띠는 필립스 전자에서 만들었는지 PM5544라는 코드명이라고 불린다. 옛날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정규 방송을 시작하기 15~20분쯤 전부터 '화면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송출하곤 했다. 배경 위로는 현재 시각과 금일 방송 순서 같은 것도 떴다.
화면 조정 중일 때는 BGM이 흘러나오는 편이지만, 정규 방송이 끝난 뒤에는 그냥 무음이나 단순 싸인파 소리만 들어있기도 했다.

디지털 통신에 온갖 복잡한 규격과 프로토콜이 존재하고, 아날로그 비디오 테이프에도 VHS나 베타맥스 같은 상반된 규격이 있었듯이..
아날로그 영상 신호 송신 방식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크게 NTSC와 PAL이라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NTSC를 쓰지만 북한은 우리와 다른 PAL을 사용하며, 이는 아마 의도적으로 일부러 다르게 정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 흑백 TV를 기준으로 신호 체계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컬러 방식이 개발되었을 때는.. 기존의 흑백 TV는 여전히 자기가 인식하는 흑백 신호만 수신이 가능하게.. 즉 하위 호환성이 유지되게 흑백 TV가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대에 컬러 신호가 교묘하게 추가되었다고 한다.
컬러 TV의 입장에서는 걍 RGB가 더 직관적이겠지만, 흑백 신호의 strict superset을 구성할 수 있는 HSL 방식으로 색을 표현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JPG 압축 과정에도 색깔을 RGB에서 HSL로 바꾸는 게 있었지 싶은데?

뭐, 본인은 전자공학 쪽은 문외한에 가까우며 지금은 구닥다리 아날로그 TV 송신이 진작에 중단됐을 정도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이런 쪽 이야기가 은근히 흥미롭게 들린다. 디지털 고화질 TV의 등장과 함께 화면의 종횡비가 와이드로 바뀌었다. 아울러 컴퓨터 모니터도 이 추세를 따랐는지 16:9 와이드가 대세가 된 지 오래이다.

3. 옛날 방송과 지금 방송의 차이

지금은 TV 뉴스에서 볼 일이 없어진 코너가 최소한 둘 있는데, 하나는 아침 7시 뉴스를 하기 전에 나오던 편인 "세계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에 나오는 편이던 "주식 시세"이다. 이유는 당연히 정보의 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에서 굳이 그걸 선별해서 틀어 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날씨처럼 범국민적인 정보라면 모를까, 그런 건 그냥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찾는 게 더 빠르다.

온갖 기업들의 주식 시세와 함께 상하 ▲▼ 삼각형들이 뜨고 있을 때는 꽤 다양한 고퀄의 BGM들이 많이 흘러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밤 9시 뉴스를 하기 전에 흘러나오던 시보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해 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옛날에는 파란 배경의 추레한 아날로그 시계 CG에다가 PC 스피커 스타일의 기계음 일색이었다.
당장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방송사고 동영상을 찾아 보시기 바란다. 그 시절에 9시 시보가 어떠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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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시계 그림은 점점 휘황찬란한 보석 CG로 바뀌었고, 광고의 비중이 커졌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그냥 아날로그 시계 그림과 긴 차임벨 음향 자체가 삭제되었다. 영상 컨텐츠의 90% 이상은 광고이고.. 딱 정각 3초 전에 시각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형태가 됐다. 이것이 시보 영상의 변천사이다.

4. 대기업에서 옛날에 개발한 소프트웨어

이제 좀 더 보편적인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옛날에는 금성과 삼성(!!)뿐만 아니라 대우와 현대도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을 생산했고 심지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금성사의 경우 '하나'라는 텍스트 모드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어서 한때 관공서 표준으로 쓰이기도 했고 '하나 스프레드시트'를 만든 적도 있다. 나중에 Windows용으로는 '윈워드'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었지만 그건 망한 듯하고.

전자 제품도 함께 만드는 대기업에서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팀에서는 요즘 뭘 만드는지 모르겠다. 쟤들은 일단은 그래도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독립적인 패키지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게임 같은 걸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분야는 이미 시장이 다 포화했으며, 대기업이라고 해서 기성 IT 특화 업체들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나마 삼성 전자의 훈민정음만이 좀 오래 간 정도이다.

5. 옛날의 경제 구도

끝으로, 우리나라의 옛날 상황에 대해서 단순히 못 살고 못 먹던 시대라는 막연한 편견 이상으로 진지하게 고려할 점이 하나 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었다. 돈 되는 건 뭐든지 닥치고 수출하고, 그렇게 어렵게 번 외화를 아끼려고 국가적으로 완전 목숨을 걸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을 육성은 해야 하지만 국내에 석유 소비(=외화 유출)가 너무 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동차의 내수 보급을 어느 정도 통제를 해야 했다. 듣보잡 신생 자동차 브랜드이다 보니 외국으로 수출은 아주 싸게 하고 반대로 손해분을 비싼 내수 가격으로 때우는 전략은 우리 같은 서민에게야 불리하지만 그 시절에 국가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국제적으로 석유 파동이 벌어지니 저걸로도 모자라서 국가에서 자동차 산업 합리화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해야 했으니,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도 인위적인 규제가 있는 셈이었다.

또한 전에도 말했지만 겨우 신혼여행이나 배낭여행 명목으로 외국 나가는 건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유로는 자기 사비가 아무리 많다 해도 나라에서 여권을 만들어 주질 않았다. 양담배 추방하고 과소비 추방하고 국산품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잔뜩 벌였으며, 기업에서의 외제품 수입은 정말로 연구 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기업들은 자동차나 전자 기기를 만들 때 국가에서 밀어붙인 "x년 안으로 국산화율 y% 이상 진입" 같은 할당량을 반드시 달성하며 연구 개발을 해야 했다. 하물며 다른 외제품도 아니고 외제차에다가는.. 당연히 세금 왕창 때렸다.

지금이야 우리가 그렇게 폐쇄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OECD와 WTO 회원까지 된 주제에 그래서는 안 된다. 기술· 경제 방면에서 외국과 대등한 경쟁력이 있다면야 다 개방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불가피한 시장 왜곡과 보호도 해야 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외국에 나가고 외래 문물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정말 우리나라가 그만큼 잘살고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춘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08 08:32 2015/01/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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