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글을 검색해 보니 5년도 더 전, 굉장히 옛날에 한번 텔레비전 방송 사고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말 그대로 출연자가 저지른 실수 위주로 유명한 국내 사건들을 나열했었다.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류를 해 보고자 한다. 이유와 원인이야 어쨌든 최종 시청자들이 방송사에서 의도하지 않은 화면을 보게 된 일체의 사건들을 일컫는다.

다음 카테고리들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며, 사건의 심각성도 그에 비례해서 더 커진다. 실수가 아니라 범죄에 더 가까워진다.

1. 출연자의 실수

생방송 중에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출연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터져 버리는 귀여운 유형이 많다.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파리가 앉았습니다"(2001)가 이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예다. 한번 웃음병이 도져 버리면 마치 비행기가 실속에 빠져 버린 것처럼 출연자들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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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수습하려고 MC가 나름 재치와 센스를 발휘해서 애드립을 구사한 것이었을 텐데, 오히려 그게 게스트 출연자의 웃음 고문을 더욱 가속해 버렸다. =_=;

다만,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뉴스 기자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방송사고도 있었다. 이건 재미있는 사고라고 볼 수는 없다.
출연자의 실수로 인한 방송 사고는 관계자가 자기 방송사 내부에서 징계를 당하는 결과는 야기할 수 있는 반면, 그래도 대외적으로 누가 경찰서 정모를 한다거나 공권력의 철퇴를 받지는 않는다. 사안이 제일 가볍다.

2. 출연자의 고의 난동

국내에서는 카우치 성기 노출(2005)이 이 카테고리에서는 아마 제일 충격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방송에 나오지도 못하고 고생 많이 해야 했다. 그리고 쇼 프로는 무조건 생방송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전 검열은 가능하게 5분 지연 전송을 하게 제도가 바뀌었다.
이건 스샷을 올리기가 좀 민망하니 그냥 링크로 대체하겠다. 오죽했으면 이 장면을 북한 방송 화면에다 합성하여 "천하의 개쌍놈들" 짤방이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또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리포터가 갑자기 권총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건 실수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3. 외부인의 난입

여기서부터는 일단 해당 TV 프로의 제작과 출연에 관여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다. 방송 중 외부인의 난입은 비행기 사고로 치면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와 비슷한 격이다.
이 분야에서 지존으로 꼽히는 국내 방송 사고는 두 건이 있다. 먼저 "귓속에 도청장치" 사건(1988). 이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엽기적인 사고인지라 외국에서도 소개되었다. 어떻게 겁대가리를 상실하고서 생방송 중인 뉴스 스튜디오로 침입을..? 하지만 그래도 심하게 악의적이지는 않은 정신병자의 난동일 뿐이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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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면 화들짝 놀란 스탭이 괴청년을 제압하여 바닥에 철퍼덕! 패대기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또한, 괴청년은 끌려 나가서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다시 한 번 "도청장~~!@#!@"이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처절하게 외친다.

이 사건과는 달리, 만민 중앙 교회 MBC 침입 난동(1999)은 사안이 더 심각하다. 일개 종교 집단의 시위로 인해 공중파 방송국이 털리고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해프닝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부인의 물리적인 난입보다 더 ㅎㄷㄷ한 단계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4. 전파 납치

컴퓨터에 해킹이나 패킷 스니핑이 있듯이, 이건.. 방송국이 멀쩡하게 송신해 준 신호를 가로채서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테크닉이다. 이것은 방송계의 위조지폐 내지 비행기 하이잭이나 마찬가지이며, 통상적인 방송 사고를 아득히 초월하는 범죄 행위이다. 특히 북한과 대처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전파를 갖고 장난 치는 짓을 더욱 무겁고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존 신호를 교란시키고 수신을 방해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신호로 대체하는 것은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고 기술적으로도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음성은 그렇다 쳐도 영상은 바꿔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전파 납치는 국내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에서 벌어진 '맥스 헤드룸' 전파 납치 사건(1987)이다. 영화가 방영되던 텔레비전에서 몇 분 동안 갑자기 기괴한 배경에 가면을 쓴 웬 정신병자의 기괴한 엽기 퍼포먼스가 흘러나왔으니 시청자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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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괴전파가 대략 어느 지역에서 발신되었는지 정도만이 어렴풋이 파악됐을 뿐, 누가 왜 저질렀는지 범인은 끝내 잡히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저 정체 모를 아저씨는 방송국에 가지 않고, 방송국 기자를 만나지 않고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그럭저럭 실현했다. 하지만 어렵게 기껏 집어넣은 화면엔 동요 가사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따위는 없었다. 가면을 쓴 얼굴에 알아듣기 힘든 기괴한 음성, 그리고 끝에는 웬 SM스러운 스팽킹+신음 장면만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방송· 통신 내지 전파 공학이라고 해야 하나.. 저런 것도 특히 처음 개발되고 등장하던 당시엔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이긴 했겠다. 난 저런 건 진짜 새까맣게 모른다.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근원을 파헤치려면 물리학의 전자기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이건 뉴턴 고전 역학도 아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물질 세계의 특성에 대해 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어서 GG를 쳐 버렸다.

라디오에 FM과 AM이 왜 존재하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중파· 단파 방송은 무엇이고 케이블 TV, 위성 TV, DMB는 무엇인지, 옛날에 무전기는 어떤 원리로 동작했고 지금의 휴대전화와는 기술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지금의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과는 차이가 무엇인지, UHF/VHF는 무엇인지...
터널 안에서도 음성· 영상 신호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자동차 내비는 터널 주행 중일 때 보정을 어떻게 하나?) 그러고 보니 옛날에 무전기는 송· 수신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면 실시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턴 방식!) 말을 하는 쪽이 내 말이 끝났음을 알리기 위해 '오버'라고 해 줘야 했다. 그거랑 지금 무선 전화의 기술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등..;;

그래도 이런 분야에도 괴수 천재는 분명 있을 것이다. 옛날엔 정말 전파를 갖고 노는 사람은 자동차 기술자만큼이나 가히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했을 것 같다.
신호 상태가 안 좋거나 수신되는 신호가 아예 없을 때는 옛날에는 수상기를 통해 그저 랜덤한 아날로그 white noise와 치지지직 소리만을 접할 수 있었던 반면, 요즘은 JPG artifact를 본다. 과연 디지털 시대를  실감한다.

*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본인은 11년쯤 전에 공중파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 있음. ^^;;

Posted by 사무엘

2016/01/18 08:25 2016/01/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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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6/01/19 10:48 # M/D Reply Permalink

    자동차 네비는 지금까지 달려온 속도를 가지고 역산하는게 보통이고(어차피 터널은 일자형이니) 고급형 제품은 자이로가 달려 있습니다

    1. 사무엘 2016/01/20 06:14 # M/D Permalink

      역시 그 방법 말고는 딱히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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