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가 움직이는 과정

전동차는 내연 기관 대신 전동기(모터)로 달리다 보니, 자동차와는 달리 시동이라는 게 없고 자동차와 같은 식의 변속이라는 개념도 없다.
내연 기관은 달랑 기름만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작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 전기 불꽃으로 점화를 해 줘야 하고, 엔진에 갑자기 큰 부하가 걸리면 시동이 꺼져 버리기 때문에 동력비 조절을 외부에서 해 줘야 한다. 이런 과정이 전동차에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건 생각해 보면 무척 신기한 사실이다. 차 키를 꽂는 곳을 보면 ON까지만 있고 START가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외부로부터 동력과 전력을 공급 받으니, 생각해 보면 카오디오나 동작하는 임시 ACC 모드도 필요하지 않다. 전원을 켜고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적인 부팅 초기화만 끝나면 곧장 달릴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지하철은 대부분의 경우, 냉방기나 송풍기를 가동하면서 달리기 때문에 그런 거 돌아가는 소음이 밖으로까지 들리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그런 걸 전혀 가동하지 않는 아주 추운 날에 지하철을 타 보면, 열차가 역에 정차해 있을 때는 그 어떤 엔진나 기계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달리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구동음이 들린다. 이래서 전기 차량은 디젤 차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조용하다.

전동기가 내연 기관보다 on/off가 얼마나 자유로운지는 절연 구간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남영-서울역 같은 구간은 자동차로 치면..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시동을 끄고 관성으로 달리면서 휘발유 엔진을 경유 엔진으로 교체한 뒤, 다시 시동을 걸어 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구간이다. 그래도 전동차는 그냥 전원 공급을 끊었다가 다시 공급만 하면 기계에 별 무리가 없이 잘 달릴 수 있는 것이다.

관성으로 달리다가 강한 역풍이나 장애물 때문에 서 버리면... 그 전동차는 꼼짝없이 디젤 기관차로 끌려가는 "구원 운전"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전혀에 가깝게 발생하지 않는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철도 차량이 얼마나 무겁던가. 운동 에너지도 이미 상상을 초월하게 갖고 있다. 어지간한 자동차하고 충돌해도 자동차만 박살 난다. 철도 차량 안에 안전 벨트가 괜히 없는 게 아니다.

그 무거운 철도 차량을 서 있는 상태에서 그 정도 가속도로 움직이는 힘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자동차 1단 기어 정도의 기어비로는 어림도 없다. 전기가 아니면 그런 가속력을 얻기 어렵다. 단순히 매연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전기는 지하철(철도)과 이 정도로 궁합이 잘 맞는 에너지인 것이다. 물론 비행기는 기름을 이용해서 일반 4행정 내연 기관이 아닌 제트 엔진 같은 다른 방법으로 매우 큰 힘을 얻지만, 연료 소모가 심하다.

어디서 본 통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서울에서 다니는 대형 중전철의 경우, 한 칸당 최대 적재 하중을 20톤으로 잡고 설계된다고 한다. 즉, 이를 초과할 정도로 너무 차가 무거워지면 힘이 겨워서 버벅대고 가속이 떨어지겠지만, 그 이하에서는 차는 완전히 동일한 가속력으로 출발 가능하다는 것. 아침 시간 초만원일 때 지하철 한 칸에 거의 200~220명의 인원이 탄다는 것을 감안하여 충분하게 잡은 수치임이 틀림없다.

덧,

1. 이걸 생각하면 자살-_-을 해도 지하철 투신 같은 처참한 같은 방법은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뭐, 이제는 코레일 구간 빼고 서울 지하철은 사실상 전부 스크린도어가 완비됐지만 말이다.

2. 열기관은 그 태생상 일단 구조적으로 효율이 매우 낮은 기계이다(내연 기관은 열기관의 일종). 뭐, 화력 발전소와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 역시 전기를 그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생산하긴 하지만, 다른 열기관들에 비해서는 효율이 높은 편일 것이다.

3. 우리나라 전철이 교류 전기의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는 25000V짜리 전압은.. 정말 말 그대로 초고압이다. 신체가 선에 완전히 접촉하기도 전에 불과 몇 cm 앞으로만 접근해도 펑! 연기와 함께 불이 붙는다. 당연히 전신에 화상을 입고 감전사한다. (물론 사람을 죽게 만드는 요인은 사실 전압이 아니라 전류이지만)
정말 조심해야 한다. 2006년 동대구 역 어린이 감전사를 비롯해 최근까지도 사고가 몇 건 난 적이 있다. 일반열차가 아닌 전철도 교류 전기를 쓰는 구간은 그 전기가 흐른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03 07:32 2010/02/0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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