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밤차의 추억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 노선으로 경부선(경부 고속선 포함)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사실은 중앙선과 동해남부선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에 청량리 역이 있다면 부산에는 부전 역이 그 역할을 한다. 경부선 이외의 다른 마이너 노선을 주로 취급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경부선은 선형도 좋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 대도시를 경유하는 매우 중요한 노선으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찌감치 복선화가 되었고, 197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도권 광역전철이 개통하기도 했다. 물론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만 잇는다면 용인, 상주를 경유하여 지금의 중부내륙 고속도로와 비슷한 노선이 거리가 더 짧으나, 험준한 지형을 피하기 위해 대전과 수원을 경유하는 노선이 결정된 것이다. (사실, 경부선 덕분에 가장 극적으로 급발전한 도시는 단연 대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부선과는 달리 중앙선은 경부선과 비슷한 위상의 장거리 간선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낙후해 있다. 건설부터가 경부선보다 35년 가까이 늦었고, 경부선은 이미 복선화 작업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물자가 열악하던 2차 세계 대전에 그것도 경부선보다 훨씬 더 험준한 오지를 경유하여, 애초에 여객보다 화물에 더 비중을 두고 졸속으로 만든 노선이니 경부선보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부선은 지금은 시속 140까지 달리는 구간도 있는 반면, 중앙선은 여전히 6~70대에 머물러 있다.

중앙선은 광역전철 개통도 덩달아 경부선보다 시기적으로 30년이 늦다. 복선 선로+대피선으로 전동차와 일반열차가 다니는 지금의 중앙선은 정확하게 1970년대 경부선의 모습이다. 경부선은 시도 때도 없이 서울-부산 열차가 드나들고 고속철까지 건설된 반면, 중앙선은 전구간을 다니는 열차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한산하며, 아직 전구간이 복선이나 전철화되지도 않아 있다. 청량리-부전 전역 정차 통일호가 2004년 KTX 개통에 맞춰서 폐지된 뒤에는 중앙선을 전구간 직통 운행하는 열차는 하루 단 한 번, 밤차밖에 없었다. (2008년부터는 낮에도 한 차례 전구간 직통 열차가 생기긴 했지만) 중부내륙과 중앙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중앙선은 더욱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경부선과 중앙선의 차이와 더불어, 그 중앙선 밤차의 추억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2003년 말, 서울에서 볼일을 본 후 새마을호를 타고 경주에 가려고 했는데 그 열차를 놓치고 못 타는 바람에 대신 우연히 발견하여 타게 된 열차가 바로 중앙선 밤차였다. 세상에 이런 열차가 있나 싶었다. 그 당시는 서울-경주가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렸다. 비록 느리지만 수원, 천안, 구미, 대구처럼 늘 식상한 역명이 아니라 원주, 제천, 안동 같은 색다른 지역을 지나면서 철도 여행의 운치를 더욱 북돋워 주었다.

그 후 본인은 이 열차를 상행과 하행 할 것 없이 기회가 될 때마다 애용했다. 경부선 열차를 이용할 수 없는 시간대에 존재하는 매우 훌륭한 우회 경로였기 때문이다. 고속철이 개통한 이래로 열차 시각표가 무수히 많이 개정되었지만 중앙선 밤차만은 없어지지 않고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량리 21:00 하행, 그리고 경주 0:06 상행은 바뀌지 않았다. 경주-서울 6시간 36분이던 소요 시간이 2005년 하반기에는 이 5시간 40분대로 좁혀지기도 했는데, 다이아가 비현실적이었는지 지금은 다시 6시간 10분 정도로 조정되어 있다.

서울 역을 출발하여 대구 역에서 대구선-동해남부선으로 빠지는 열차가 새마을호 중에는 여럿 있다. 하지만 무궁화호 중에도 밤 10시~10시 반 시간대에 서울을 출발하여 부전으로 가는 차가 하루 단 한 번 있다. 그래서 경주 역에 새벽에 도착하는 열차는 중앙선 밤차와 더불어 이 열차까지 합해 총 2회가 존재한다. 이 구도도 2003년 이래로 지금까지 전혀 바뀌지 않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실 밤차라는 것은 엄청 장거리 내지 소요 시간이 긴 노선에 적합한 것이고 요즘은 없어지는 추세이다. 선로의 관리 측면에서 볼편하기 때문이다. 침대차만 해도 오래 전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밤에 청량리 역을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에 강릉에 도착하는 그런 노선에나 어울린다. 하지만 중앙선은 앞으로 획기적으로 열차 주행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한, 이런 특별한 환경에 따른 수요를 충당하는 밤차가 당분간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KTX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간선 노선! 그래서 본인 역시 이 열차에 애착을 갖고 앞으로도 더욱 자주 이용하고자 한다.

기타 잡설

1. 심야에는 중앙· 태백· 영동선과는 달리 경부선과 호남선은 전차선을 가동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경부선 쪽 밤차는 언제나 디젤 기관차가 다닌다.

2. 고속철 개통 전에는 주말에만 운행하던 경주-대전 경유-광주 무궁화호가 있었다. 대전-서대전 구간을 지나가는 아주 독특한 열차였다. 본인은 고향이 경주이고 그 당시 학교는 대전이었다. 그러니 일요일 17:20에 경주를 출발하여 20:30쯤에 대전에 도착하던 이 열차는 학교로 돌아갈 때 이보다 더 적격일 수 없던 열차였다.
경주에 사는 덕분에 청량리 밤차를 비롯해 여러 독특한 열차를 이용할 기회가 있었다.

3. 경부선은 서울-대전 평지, 대전-대구 산악, 대구-부산 강과 들판이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중앙선도 대략 그런 구도가 있다. 어디까지는 들판, 어디까지는 산, 안동 이남부터는 평지.. 여기에 대한 연구도 좀 해야 하는데, 맨날 밤차만 타니까 그렇게도 절경이라는 중앙선 바깥 경치를 잘 구경할 수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16 07:32 2010/02/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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