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1995-6년 사이는 PC 게임 환경의 역사상 굉장히 의미심장한 과도기였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이 도스에서 윈도우로 넘어가고 있었고, 그래픽 역시 VGA 320*200 256색 모드를 탈피하여 2D 게임을 기점으로 고해상도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래픽 가속기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고, 비록 아직 듣보잡 지위이긴 하나 DirectX란 것도 그때 개발되어 나왔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 95를 게임용 엔터테이먼트 플랫폼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패키지 게임의 경우, 저장 매체도 CD롬이 슬슬 플로피 디스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 게임은 650MB 공간을 꽉 채울 정도로 대용량은 아니었다. 97~98년 사이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도 음악과 동영상을 제외한 립버전이 200MB 안팎이었고, 윈도우 95 역시 실제 운영체제 파일 용량은 100MB도 채 하지 않던 시절이다.

이때 몇몇 게임은 CD롬을 아주 재미있게 활용했다. 디스크를 오디오 CD 겸 CD롬 겸용으로 만들어서 파일은 50-100MB 정도의 공간만 차지하고, 나머지 공간에다가는 게임 배경 음악을 집어넣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퀘이크 1이다. 옛날에 무슨 팝송 영어 교재 CD도 그렇게 겸용 형태였다. 공간 활용을 잘 한 경우라 하겠다.

게임 내부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일반 CD 플레이어로 간단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노출한 것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건 굉장히 기발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때는 그 CD를 정품 인증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비록 가상 CD 기술 때문에 완전히 무력화됐지만 말이다.

그 당시에 오디오 CD는 CPU와는 완전히 별도로 동작했기 때문에 CPU에 부담을 전혀 주지 않았다. 요즘이야 MP3 틀어 놓고 온라인 게임도 마음대로 할 정도로 하드웨어 환경이 좋지만, 486이나 펜티엄급 컴퓨터만 해도 MP3 하나 트는 것만으로 CPU 사용률이 10~20% 정도 치솟던 시절이었다.

미디보다 음질 좋지, CD롬의 남는 용량을 활용하지, CPU 부담 안 주지, 40분 남짓한 정도의 시간이면 게임 사운드 트랙을 모두 담는 데 별 무리도 없지(게임 음악은 은근히 짧으며, 나머지는 전부 반복이다. ^^), 허접하게나마 정품 체크도 간단히 할 수 있지..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요즘은 온라인 게임 클라이언트가 최하 기가바이트급이다. 배경 음악은 미디도 아니고 그냥 내부적으로 mp3/wma/ogg 같은 걸 그대로 재상한다. 불과 15년 남짓 전인데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3/20 17:53 2010/03/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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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 용태 2010/03/20 20:48 # M/D Reply Permalink

    윈도우 95를 설치하면서 나오는 홍보 화면에 " 더 실감나는 게임 지원" 이 뜨면 도스 게임도 제대로 안되면서 이런 홍보나 한다고 불만을 가졌었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윈도우 플랫폼은 게임머신이 돼버린것 같습니다 ^^ 친구가 구매했던 한컴홈97;;;;;;에 딸려온 올드게임묶음도 생각나네요. 배경음악이 midi파일이라 제가 좋아하는 배경음악으로 바꾸고 게임했던 기억도...

    1. 사무엘 2010/03/21 05:53 # M/D Permalink

      네, 정말 격세지감이죠. 윈도우 클래식 GDI와 Direct3D가 따로 놀던 것이 이제는 아예 기술적으로 Direct3D가 주류가 되고 GDI조차 그 위에서 돌아가는 구도로 바뀌었으며, 도스 역시 소프트웨어적으로 에뮬레이션이 가능한 지경이 됐고요. 기술의 발전이 정말 무서운 정도입니다.
      같은 미디라도 과거 도스 게임은 특유의 FM 음향이나 wave 오디오 악기 소리로 꽤 멋지게 재생을 했었는데 그게 윈도우로 갓 포팅됐을 때 음악 소리는 영 들어 줄 수준이 못 됐죠. 지금은 소프트웨어 미디만으로 거의 노래방급 음질이 나옵니다만, 이제 게임 음악용으로 미디 자체가 안 쓰이니 미디 볼 일이 없어지고 있네요. DirectMusic이 괜히 개발이 중단된 게 아니죠. ^^

  2. 김재주 2010/03/21 10:17 # M/D Reply Permalink

    참 많은 것이 바뀌었지요. 심지어 IE마저도 9버전에서는 GDI 대신 Direct2D를 이용하여 웹 페이지를 렌더링한다고 합니다. 이러다 나중엔 어디까지 갈는지도 궁금하네요.

    1. 사무엘 2010/03/21 13:38 # M/D Permalink

      웹에서는 플래시가 3D FPS 수준만 아닐 뿐이지 이미 어지간한 게임을 능가하는 그래픽의 궁극의 경지에 가 있죠. 그리고 그 정도는 이미 그 작은 스마트폰에도 실현돼 있으니... 정말 인간이 상상하는 그 어떤 image라도 표현할 수 있게 되겠습니다.

  3. 김 기윤 2010/03/27 22:50 # M/D Reply Permalink

    CD 사용량이 얼마 안된다,, 하니 갑자기 얼마전에 한 CD 가 생각나는군요.

    탄막 만들기 책..에 동봉되어 있던 CD 인데, CD 내용 통째로 하드 디스크로 복사를 시도했는데 순식간에 끝나서 깜짝놀랐는데.. 그것도 그럴것이

    CD 한장에 들어있는 데이터가 달랑 3.29MB ;;;;;

    1. 사무엘 2010/03/28 00:01 # M/D Permalink

      그런 용도로는 지름이 조금 작은 '미니 씨디' 같은 것도 있지요. 넣어서 돌려 보면 인식과 탐색 속도도 더 빠르고요. 설마 큼직한 650MB짜리 표준 디스크에 그게 들어가 있었다면 흠좀무.
      그나저나, 10여년 전 제가 정올 작품 출품할 때는 다 3.5인치 디스켓 한 장을 썼더랬습니다. 그런 분량의 작품으로도 입상 가능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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