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특성 이야기

1. 대미지 컨트롤

인체는 어떤 나쁜 환경이나 대미지에 오래 노출돼서 몸이 다치고 상했더라도, 치료한답시고 그 반대편 상황에 곧장 성급히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특징이 있다.

동상을 입었더라도 그 부위를 갑자기 뜨거운 물 같은 데에 집어넣지 말아야 한다.
화상을 입었더라도 그 부위를 갑자기 얼음물 급의 찬물에 풍덩 집어넣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미지근한 물에다가 오래 담가서 냉찜질을..)

아주 오랫동안 굶어서 죽기 직전인 사람한테 갑자기 밥과 고기를 많이 먹이는 짓은 금물이다. 그러면 몸이 그걸 못 받아들여서 토사곽란을 일으키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탄광 매몰이나 삼풍 백화점 붕괴 같은 사고 때문에 10일 넘게 암흑 속에 갇혔다가 구조된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로 나온다. 갑자기 빛에 노출되는 것도 눈에 안 좋다고 들었다.

피부가 쇠붙이에 깊숙이 심하게 찔렸다면 그 이물질을 함부로 빼내지 말아야 한다.
어디 무거운 물체에 오랫동안 깔려서 깔린 부위가 괴사할 지경이 됐지만, 그 물체를 함부로 치우지 말아야 한다. 깔린 부분에만 고여 있던 독소가 온몸으로 퍼져서 압좌 증후군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의료 보건 업종이 일이 힘든 것 같다. 각종 금단증상이라는 것도 각종 나쁜 중독이나 자극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더 심해진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고..
사람이 밥을 먹는 과정은 자동차 연료통에다가 기름을 꿀꿀 집어넣는 게 아니라, 배터리를 급속 충전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유아 기억상실증

"사람들은 대부분 3살 이전 시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유아 기억상실증' 때문이다. 유아 기억상실증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흔한 현상으로, 삶의 초기 3~5년 정도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애 최초의 기억은 대략 3살부터 3살 반 정도에 형성된다."

이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나도 저기에 정확하게 해당된다.
나도.. 거의 86~87년 사이가 마지노 선이고 그 이전은 선사시대-_-이다.
아부지가 내게 나이를 물으셨는데 내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하니 "넌 4살"(한국식이겠지)이라고 대답을 들었던 게 스스로 인지하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제일 어린 나이이다.

텔레비전으로 본방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제일 오래된 공익광고도 유튜브를 뒤져 보니 86~87년이다. 그때는 TV를 틀면 온통 올림픽 준비하느라 난리이기도 했고 말이다. -_-
난 흑백 TV나 흑백 사진, 중고딩 가쿠란-_- 교복을 주류로 본 경험은 없다. 그리고 당대에 인지했던 제일 옛날 대통령은 딱 노 태우였다.

인간은 아기 때 주변에서 들리는 모국어를 신기에 가까운 능력으로 흡입해서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춘다. 도대체 어떻게 그 나이대에 그게 가능한지는 내가 알기로 과학적으로 여전히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그렇게 언어 습득과 등가교환으로 언어 습득 이전의 옛날 기억은 지워져 버리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걸 생각하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의 의미도 다시 곱씹게 된다.
어차피 기억을 못 하니까 3살 이하 아기들을 마음대로 학대해도 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때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는지의 여부로 그 애의 인격이나 정신 건강이 평생 결정되어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갓난아기한테 기계적으로 물리적인 젖과 물만 주고 씻겨 주고 기저귀 갈아 주기만 하고, 아무 관심 안 주고 교감과 애정 표현 안 하고 스킨십 안 해 주면..??
놀랍게도 그 아기는 몇 달 못 가 죽는다고 한다!! 무슨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학대는 절대 안 한 것 같은데, 아기한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 이런 비정한 실험을 실제로 한 군주 내지 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건 마치 식물이 햇볕을 못 봐서 죽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아무리 물 많이 주고 땅이 비료로 기름져 있어도 햇볕 없고 통풍이 불량하면..;;

3. 이와 잇몸

신체 기관 중에 구강은 외부로 노출되어 있으면서 음식물이 들어가는 부위이다. 여기가 평소에 청결하지 않고 음식물 찌꺼기 때문에 세균이 끼면 이나 잇몸.. 혹은 둘 다 탈이 나게 된다.
이의 병.. 충치, 치아우식증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교육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잇몸의 병.. 풍치, 치은염-치주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 역시 잇몸에 피는 비타민 C 결핍증 정도로만 아는 게 전부였다.

충치가 생기면 이가 윗쪽부터 시커매지면서 썩는다. 에나멜질이 썩네 상아질이 썩네, 신경까지 닿네.. 그러면서 진행 단계가 4개나 세분화돼 있다.
그런 것처럼 잇몸병도 얼추 4단계로 나뉜다. 잇몸은 다른 곳보다도 이와 이 사이의 양치가 제대로 안 될 때 탈이 나기 쉽다.
얘는 시커먼 건 없다. 그냥 벌개지고 붓다가 나중에는 이의 아래쪽이 다 드러나 보이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자는 건물이 화재나 폭발, 테러 때문에 폭삭 주저앉고 붕괴하는 것과 비슷하다.
후자는 건물이 지진이나 홍수 때문에 지반이 싹 없어지는 바람에 그냥 자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꿩 대신 닭"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 없으면 잇몸"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 없이 잇몸만으로 어떻게 고기를 씹겠는가.

건강한 치아를 위해서는 소금이니 알코올이니 하는 어설픈 민간요법 찾아볼 시간에, 동네 치과에서 단돈 1~2만 원으로 의료보험 받을 수 있는 스케일링부터 받는 게 훨씬 더 낫다.
그리고 그냥 약품 가글은 물리적인 칫솔질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를 무슨 때 밀듯이 너무 세게 닦는 것도 이와 잇몸에 안 좋다고 하니 인체는 뭔가 극단적인 것에 취약한 게 틀림없다.

비전공자인 내가 아는 건 이 정도까지.
근데.. 입안이 무슨 배 속 내장도 아닌데, 같은 입안을 보고 치과마다 진단해 내는 충치 개수가 다르고 치료 견적이 들쭉날쭉이라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 얘기를 들어 보면 치과 진료에 대한 과잉진료 불신이 여전히 없지 않다. 자동차 정비 쪽에 과잉 정비(멀쩡한 부품까지 몽땅 다 갈아 버리는-_-) 폐단이 있는 것처럼 의료도 사정이 비슷한가 보다.;;

  • 통상적인 칫솔질 → 치실 → 스케일링 → 잇몸 치료의 순으로 쑤시는 정도가 하드코어해지는 것 같다. 약한 잇몸을 찌르고 쑤시는 건 마치 손톱 끝을 찌르고 쑤시는 것처럼 괴롭게 느껴진다. >_<

  • 양치할 때 치약 묻힌 칫솔에다가 습관적으로 물도 묻히고 싶다. 거품이 잘 나고 치약이 잘 도포되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치과 의사들은 막 해롭고 나쁜 짓까지는 아니어도 그걸 별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들 중 하나로 흔히 검색되는 "치약 성분이 희석되기 때문"은 좀 의아하게 느껴진다. 물을 묻히든 안 묻히든 치아에 닿는 절대적인 치약의 양은 동일하고 물리적인 솔질 강도도 동일한데 왜 약효가 떨어진다는 걸까? 그리고 광고에 나오는 것보다 치약을 훨씬 적게 써도 된다는 지론과도 별로 안 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 이빨이 몽땅 나가는 것보다는 눈 한두 개를 잃는 게 더 치명적이다. 보험에서도 실명을 더 크게 보상하며, 군대에서도 이건 곧장 4급이나 면제 등으로 처분해 준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눈을 다칠 정도의 극단적인 이벤트는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니, 안과보다는 치과가 존재감이 더 크고 사람이 치과를 찾을 일도 더 잦은 듯하다.

4. 손발가락

'쇠냄새'라는 건 사실 쇠 자체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손으로 그런 금속을 만졌을 때, 손 표면에서 분비되는 고유한 성분이 금속과 닿아 변질되면서 나는 냄새일 뿐이다. 하긴, 그런 미묘한 분비 성분이 있기 때문에 사람 손이 닿는 곳마다 지문 채취도 가능할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은 인체의 말단 부위이다 보니, 질병이나 사고로 일부가 절단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조폭이나 비밀결사 같은 뒷세계에서는 맹세나 징벌· 각인의 의미로 약손가락이나 새끼손가락의 첫 마디를 일부러 자르는 관행도 있다. 그래도 이런 부위는 절단되더라도 지혈만 잘 해 주면 생명에 지장은 없다.;;

잘려서 떨어져나간 그 말단 부위를 잘 챙겨 가서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도로 봉합해서 붙일 수도 있다. 봉합 가능 조건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좋은 상태에서 치료를 최대한 빨리 받아야 하지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잘린 손발가락이 자동으로 재생되지는 못한다.;; 인체는 무슨 플라나리아나 불가사리, 도마뱀 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생이 잘 되는 단순하고 물렁물렁한 생물들은 물리적인 절단에 강한 대신, 온도나 주변 염분 농도 같은 게 조금만 틀어져도 바로 녹아 버린다. 용어 좀 쓰자면, '항상성 유지' 능력이 고등한 동물보다 훨씬 못하다. 인체야 상처에다 소금 뿌리면 드럽게 아픈 걸로 끝이겠지만, 플라나리아는 소금 테러만으로도 사람으로 치면 온몸에 염산· 황산 테러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사고로 멀쩡한 손발가락이 잘리는 거 말고.. 다른 질병이나 세균 때문에 이 말단 부위까지 피가 잘 안 통해서 조직이 괴사하고 썩어서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조직은 절단하지 않으면 근처의 살아 있는 부위까지 부패균과 독소가 다 퍼지고 썩기 때문이다.

  • 동상: 인체가 견딜 수 없는 저온에 너무 오래 노출돼 있으면 물질대사에 애로사항이 꽃피고 피가 잘 못 돈다. 이 경우 인체는.. 심장에서 멀리 떨어졌고,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말단 부위부터 먼저 포기하게 된다.
  • 버거 병: 이번엔 저온이 아니라 혈전 때문에 혈관이 막히고 피가 제대로 못 돌아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작살 나는 병이다. 결과는 역시 괴저로 인한 사지 절단..;; 통계적으로 골초 흡연자가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서 상관관계가 명백하나, 그 구체적인 이유인 인과관계가 의학적으로 다 규명되지는 않은 듯하다.
  • 참호족: 1차 세계 대전 참호처럼.. 세균이 득실대는 더러운 진창 똥물에 피부, 특히 발이 너무 오래 노출되면 피부병을 넘어 피부가 썩어들어간다.;;; 이건 습성 괴저이다.
  • 당뇨발: 참호족만 있는 게 아니라 당뇨발도 있다. 혈당 때문에 말초혈관과 신경이 손상돼서 위와 비슷한 결과가 야기되고 발가락이 시커멓게 썩을 수 있다.;;;
요거 말고 또 다른 케이스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동상의 반대편 극단인 화상도 3도 이상을 입으면 당연히 피부 이식 아니면 절단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30 08:36 2023/09/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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