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력량, 전기료

전기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고 광속으로 흘러가 버리고, 축적된 양을 무게나 비주얼 같은 직관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기가 난감하다.
그래도 아주 대충 간략하게라도 전기 저장 매체들의 용량과 비용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5볼트 AA 건전지 하나: 약 3~4와트시
  • 3.7볼트, 20Ah(2만 밀리Ah)짜리 보조배터리: 약 70와트시
  • 내연기관 승용차용 12볼트, 70Ah 납 배터리: 700~800와트시 (단, 납 배터리의 특성상, 현실에서는 저 용량의 거의 절반 정도까지만 소모하고 어서 다시 충전해 주는 게 안전함)
  • 비슷한 배터리 전기 승용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 대략 70~80킬로와트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만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일반적인 스마트폰 한 대를 하루 종일 켜 놓기만 했을 때 사용하는 전력량은 10~40와트시 남짓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리튬이온 배터리가 아니라 건전지로 가동하려면 디지털 도어락에 들어가는 정도의 건전지(AA 사이즈 4개? 8개?)를 거의 매일 몽땅 갈아 줘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ㅎㄷㄷㄷㄷ 도어락은 거의 1년에 1번꼴로만 건전지를 갈면 된다는 걸 생각하면.. 전력 소모량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2) 전기차는 배터리가 통상적인 내연기관차 납배터리의 90~100배 용량을 자랑한다.;; 물론 그 대신 차 무게는 500kg, 30~40% 정도 더 나간다.
승용차라는 게 원래 사람이 최대 5명이 탈 수 있는 차다. 그런데 동일 차급의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만으로 사람 5명 이상의 무게를 더 먹고 시작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이 때문에 전기차는 단순히 엔진음 작고 조용하기만 한 게 아니다. 묵직하고 운전 특성이 내연기관차와 많이 다르다. 타이어나 서스펜션, 브레이크도 동급의 내연기관차보다 더 튼튼하고 더 비싼 걸 써야 한다. 디젤 차량이 동급의 휘발유 차량보다 더 무겁고 튼튼한 것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3)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요금은 1000와트시(= 1 킬로와트시) 당 120~200원대이다.
뭐, 이 나라의 전기 요금 체계는 아주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표현하기가 난감하다. 하지만 월 300킬로와트시 이내만 써서 누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일 저렴한 기본 단가만 산출하면 이렇다.

참고로 요즘 전기차 충전 요금도 1kWh 당 3~400원 돈이니 건물 전기와 크게 차이 나지 않거나 약간만 비싼 수준이다.
여기에다 저 전기차 배터리의 최대 용량을 곱해 보시라. 전기차는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기름값 대비 매우 저렴하다는 걸 숫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충전료가 갈수록 오르고 있으며, 전기차의 배터리 100% 충전 연비가 동급 기름차의 만땅 연비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것 역시 고려할 사항이지만 말이다.

2. 자동차의 배터리

내연기관이라는 건 처음에 시동을 걸 때 외력을 전해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에는 배터리 기반의 starter가 쓰이는데, 시동을 걸 때 생각보다 전기가 많이 든다.
키를 start로 돌리는 0.x초? 1.x초 남짓한 시간 동안 승용차 급이라도 1000W~3000W에 달하는 전기가 소모될 수 있다. 이걸 전력량으로 환산하면 0.3에서 1와트시에 달한다.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수 초 이상 끼릭끼릭 거리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 저만 한 전기가 계속 빠져나간다.
이건 온갖 무거운 쇳덩어리 부하가 걸려 있는 차 엔진 크랭크를.. 시동 유지 가능한 최소 회전수 이상으로 돌려주는 만만찮은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동차용 납 배터리는 용량 대비 저렴하지만 매우 무겁고 충전 속도도 매우 느리다. (별로 커 보이지도 않는 저 상자가 15~20kg이나 한다니..)
게다가 방전 상태에서 오래 방치하면 그대로 변질돼서 더 충전 못 하고 완전히 못쓰게 돼 버리는 등 까탈스러운 특성도 적지 않다.

쟤는 천상 시동 걸 때 짧고 굵게 소모한 뒤에.. 오래 주행하면서 가늘고 길게 서서히 충전하는 것에만 특화돼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전자기기용 배터리처럼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배터리만 덩치를 키워서 실용적인 전기차를 만드는 건 곤란하다. 20세기 초에는 이런 배터리를 밑천으로 전기차를 만들었으니 곧 내연기관차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배터리 전기차가 고속버스와 대형 트레일러, 대통령 방탄차, 군용차(!!!), 건설기계, 모터스포츠(F1 머신!!)의 영역까지 진출 가능할까?
그게 안 되면 전기차는 그냥 내연기관차가 차지하던 파이의 일부만 분담하는 것에 머무르지 싶다.
배터리라는 게 사람이 들고 다니는 기기의 동력원으로는 적당하지만, 사람이 들어가고 타고 다니는 대형 기기의 동력원이 되기에는 크기와 무게, 충전 속도, 안전 문제 등이 걸리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대형화가 어렵다.

몇몇 자동차나 소형 드론, 모터보트는 전기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여객기나 심지어 전투기, 초대형 화물선, 유조선은 배터리 전기는커녕 천연가스나 수소 연료전지로도 요원하다. 에너지 저장 효율에 관한 한 액체 석유를 능가하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3. 배터리의 충전 가능성, 재활용 가능성

(1) 오늘날 같은 리튬 이온 배터리가 보급되기 전에는 전기 자동차라든가, 심지어 잠수함에도 그 거대한 납-황산 배터리가 어쩔 수 없이 쓰였다고 한다. 물에 잠긴 채로 내연기관을 가동할 수는 없으니까.;;

이러니 옛날 2차 대전 시절의 잠수함은 평소에는 떠 다니다가 잠깐 잠수할 때만 마치 고스트나 레이쓰가 클로킹 쓰듯이 잠수를 해야 했을 것이고.. 잠수 중에는 기동성이 그야말로 극악으로 떨어졌을 것 같다. 어뢰를 몇 번 피하느라 급기동이라도 하고 나면 배터리가 다 방전됐을 것 같은데..

(2) 옛날에 아폴로 계획 때 15, 16, 17호에서는 잘 알다시피 월면차가 투입됐었다. 얘들도 공기가 없는 달 표면을 주행하니 동력원은 응당 전기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은-아연 전지가 쓰였다고 한다.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그냥 일차전지이다. 달에서 한 1주일 머물면서 월면차의 배터리를 충전해 가며 장거리 주행을 하는 건 계획에 없었으니 말이다.

전지의 성능은 전압 36V에 전류량 242Ah이었다고 한다. 이걸 곱하면 전력량이 9KWh에 약간 못 미친다. 공교롭게도 "지구 기름차 - 월면차 - 지구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얼추 등비수열을 형성한다.
그래도 달은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저 정도면 나쁘지 않고 충분한 용량이었던 것 같다.

(3) 배터리는 그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든 공통적으로..
날씨가 너무 추우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그리고 계속 쓰다 보면 성능이 서서히 열화되고 충전 가능 용량이 줄어든다는 특성이 있다. 날씨로 인한 열화는 일시적이고 가역적이기라도 하지만, 노후화(?)로 인한 열화는 비가역적이다.

마치 한겨울에 수도꼭지를 약간이라도 틀어서 수도관을 얼지 않게 하는 것처럼.. (일부러 물 틀어서 드는 수도료 << 동파된 수도관의 복구 비용이어서;; )
배터리는 자기 전력을 소모해서라도 주변 온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키고 나서 사용하는 게 역설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는 듯하다.

(4) 글쎄, 애초에 충전이 안 되는 전지를 다 써 버린 거나, 충전 용량이 현저히 떨어진 오래된 배터리나..
다들 간단한 방법으로 직접 충전은 못 하더라도 재료를 재활용할 수는 있다.
그 금속 재질을 화학적으로 녹이고 재가공해서 새 배터리/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단순 충전보다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금속이란 게 견고한 물질이다 보니 재활용 효율이 타 재질의 쓰레기 대비 월등히 높다. 배터리 중에서는 자동차용 납 배터리가 그 효율이 99%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관련 산업이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함께하며 완전히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오늘날 많이 쓰이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는 세계적으로 재활용 효율이 겨우 5%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납보다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문제의 해결이 절실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22 08:35 2026/08/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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