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여행은 정말 재미있다. 이착륙 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엔진 소리의 음높이가 팍 치솟고 '쿠르르릉!'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을 하더니, 이내 주변의 중력 가속도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에 붕 떠 있다. 이게 이륙이다.
한편 착륙은? 점점 고도가 낮아지더니 '쾅쾅!'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이내 랜딩 기어 바퀴에 의존하여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엔진이 역회전하여 제동 거는 바람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앞쪽이 아닌 뒤쪽부터 착지한다. 뒤쪽에 바퀴도 더 많이 달려 있다.

조종사에게는 이착륙이 제일 힘든 고비이지만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고, 승객에게는 이때가 제일 재미있는 순간이다. 비행기도 열차만큼이나 운전 시스템이 어지간한 건 다 자동화가 돼 있지만, 이착륙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 좁은 활주로 위치에 딱 맞게 착지하는 건 정지선을 딱 맞춰 지하철 전동차를 세우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또한, 그 집채만 한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는지 선풍기 위의 종이를 비롯해 소위 '베르누이의 법칙'을 설명한다는 여러 예제를 봐도 본인은 이해가 잘 안 되고 실감이 안 간다.

비행기는 최대한 높은 고도로 올라가서 난다. 비록 올라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높은 곳일수록 대기가 옅고 공기 저항이 작아져서 연료 소모가 줄고 동력 효율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가 너무 옅어서 비행기를 띄워 주는 매개체인 유체 자체가 부족할 지경이어도 안 되기 때문에, 어차피 한없이 높이 올라가지는 못한다. 열기구나 풍선은 터지기 때문에 한없이 못 올라가듯이 말이다.

장거리 여객기의 순항 고도는 3만 피트가 넘으며, km로 환산하면 약 10km 남짓이다. 지구의 대류권과 성층권 사이의 경계쯤이 되는데, 여기가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나서 순항하기 좋은 고도라고 한다. 사실 2차 세계 대전 때 미군이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할 때도 거의 9~10km에 달하는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이 정도로 굉장히 높은 곳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떨어지던 폭탄은 지상으로부터 약 500m에 달한 지점에서 터졌다.)
우리가 지상에서 전방 10km에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공간을 볼 일은 거의 없다. 아쉬운 대로 비슷한 체험을 하는 건 등산을 했을 때 정도나?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는 나보다 거의 10km 밑으로 성냥갑보다도 작은 집과 도로, 심지어 구름과 바다와 산까지 볼 수 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지구 과학 수업 시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대류권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지만 성층권에서는 올라갈수록 다시 기온이 올라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상 100km 정도 고도만 돼도 이미 중간권을 지나 열권이다. 참고로 국제 우주 정거장이 있는 곳은 지상으로부터 약 400km 남짓. 즉, 서울-부산 거리 정도만 위로 올라가도 이미 지구가 확실히 둥글다는 게 느껴지며 우주가 코앞에 있다. 로켓은 비행기와는 달리,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닥치고 오로지 위로 전속력으로 치솟기만 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그 정도 높이까지 발사체를 띄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로 호가 실패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기상 현상이 없을 것 같은 그 높은 상공에 공기의 급속한 흐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 사실이다. 일명 제트 기류(jet stream)이다. 이걸 잘 타는 비행기는 바람을 타고 마치 무빙워크 위로 걷듯이 손쉽게 비행이 가능하다. 제트 기류는 발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걸 이용하느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딱 같은 위도를 유지하면서 일본을 거쳐서 태평양을 수평으로 횡단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북쪽으로 빙 돌아 알래스카를 거쳐서 오는 것이다. 알래스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 그래도 러시아 동쪽 맨 끝과 알래스카 사이 경계가 그나마 인간이 사는 이어진 영토가 제일 없는 곳이다 보니, 거기가 지구상에서 날짜를 끊는 경계선으로 설정된 것도 참 흥미로운 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또 든다. 순항 중인 비행기 안에서, 순항 중인 다른 비행기(특히 마주 오는)를 창문 밖을 통해 볼 일이 있을까?
승객은 그런 걸 보기가 좀체 어려울 것이고, 아주 운 좋을 때나 우리 비행기의 밑으로 나는 비행기를 하얀 점으로 아주 잠깐 볼 것이다. 그러나 정면이 보이는 조종석에서는 그런 것 목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거미줄처럼 이으면서 하늘을 누비는 여객기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도 아무 길이나 직선 거리를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경제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최적화 항로만 몰아서 다니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가능성이 은근히 높다. 게다가 국제법상 여객기들은 어느 때라도 인근의 공항에 n시간 안으로 즉시 비상 착륙 가능한 항로만 골라서 날아야 하기 때문에, 육지로부터 완전 멀리 떨어진 태평양 허허벌판 같은 곳은 지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아무 장애물이 없고 가시거리가 굉장히 긴 조종석에서는 하늘 저 편에 무슨 하얀 점처럼 보이는 게 맞은편 여객기이다. 물론 상행(한국->미국)과 하행(미국->한국)별로 날 수 있는 고도도 다 수백 m 이상 차이가 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점은 그냥 순식간에 커지다가 쌩~ 하고 없어져 버린다. 나도 900km이고 저쪽도 900km이면 상대 속도는 무려 시속 1800km이며, 1초에 500미터가 넘게 나아가는 속도이다. 아찔하다.

고속도로에서도 자동차끼리 안전 거리가 최하 100미터인데, 자동차의 10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비행기는 서로 100~200m끼리만 근접해도 실제로 부딪쳐서 인명/재산 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near miss라는 사고로 처리된다. 사고라는 말은 이 사건이 사고 일지에 기록되고 원인 책임 규명 조사와 관련 책임자 징계가 뒤따른다는 뜻이다.

영화나 CF를 보면 구름 위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멋진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은 CG가 아닌 이상,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를 촬영하는 또 다른 특수 비행기를 띄워서 거기서 촬영한 것이다. 흠좀무..;; 두 비행기끼리는 최소 수 km는 떨어져 있고 고도의 기술로 zoom 해서 그런 걸 촬영한 거라고 보면 된다. 하긴 요즘은 전투기 공중 급유까지 하는 세상인데 뭘 못 하겠는가.
다만 비행기는 뒤쪽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남기면서 움직인다는 특성상,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찍는 것은 여러 모로 위험하고 무리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1 09:08 2010/07/2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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