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이야기

이미 대문에도 올리고 몇 차례 알렸듯이, 본인은 연세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9월 1일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쪽 근황에 대해서도 블로그에다 글을 남길 필요를 좀 느낀다.

※ 학교 얘기

보통 대학들은 표어(표어? 교훈?)에 라틴어나 한자 나열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데에 즐겨 등장하는 '베리타스'(진리)라는 단어는 아예 차 이름으로까지 본격 등장해서 '제네시스'와 맞장 뜨는 중이다.
하지만 성균관대나 육사 같은 곳은 성향상 표어가 응당 한자(한자어도 아니고) 형태. 설마 육사 표어가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같은 라틴어 나부랭이이겠는가? ㅋㅋ

그런 학교들 중, 연세대는 기독교 계열 학교가 아니랄까봐, 표어로 간지나게 성경 구절을 쓰고 있다(요 8:32). 사실 성경 자체도 한때는 라틴어로 읽어야 간지 나던 시절이 있었지만, 연세대는 굳이 외국어를 쓰려면 그냥 NIV 성구로 대체하는 듯.

아울러 연세대의 상징 동물은 독수리이다.
딱히 성경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독수리로 제정한 건 분명 아니라고 들었다만,
표어가 요한복음 구절이고 요한복음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네 생명체(마;사자, 막;황소, 눅;사람, 요;독수리) 중에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독수리와 관련이 있으니... 웬지 묘하게 연결이 잘 됨을 느낀다.
학교의 상징색은 감청색(군청색)이라고 하는데,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노선색과 일치한다. 어??

연세대와 라이벌 구도인 고려대의 상징이 크림슨색 + 호랑이인 건, 워낙 옛날부터 강렬하게 들었기 때문에, 고려대를 전혀 다니지 않고도 알고 있었다. "민족고대" ㅋㅋㅋㅋ 어디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하긴, 고려대는 아예 교표에까지 호랑이 그림이 있긴 하다.

※ 과 이야기

본인의 진학 컨셉은 완전 '짬뽕'이다. 문과와 이과 짬뽕. 이론과 실무 짬뽕..;;
계열이 정해져 있는 단과 대학원이 아니라, '언어 정보학'이라는 학과간 협동 과정을 선택했다. 잘 알다시피 국어학과 전산학 연계이다.
대학원은 자기가 공부할 걸 알아서 찾아서 연구하고 논문을 써야 하는 곳인 만큼, 학부와는 달리 학과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코스도 개설하고 있다. 학과간 협동 과정 말고 산학 협동 과정이란 것도 있다.

이공계 대학원에는 한 과 안에 각 교수들마다 자기 전문 분야에 맞게 운영하는 여러 랩(연구실)이 있다. 가령 전산학과 대학원을 예로 들어 보면 그 아래에 데이터베이스 연구실, 컴퓨터 아키텍처 연구실, 네트웍 연구실, 컴파일러 연구실, 컴퓨터그래픽 연구실 등이 있듯이 말이다.
학과간 협동 과정은 각 과들이 그렇게 특화된 연구실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언어 정보학, 비교 문학, 언어 병리학 등.

본인이 간 이 대학원은, 학부를 본인과 같은 경로로 거친 사람이 흔히 선택하는 진로는 아니다.
좀 의외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랩 생활 하는 이공계 대학원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난 논문 쓸 건 이미 다 생각해 놓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는 그 연구 아이템에 대한 학문적인 근거와 권위를 부여하는 활동 정도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 프로젝트가 아닌 내 연구와 내 개인플레이가 main이 될 수 있는 곳을 골랐다.

나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혼자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갖춘 프로그래머치고는 솔까말 의외로 수학이나 전산학이나 전자 공학 덕후가 아니다. 내가 그런 공돌이였다면 어쩌면 철도 공학 연구하러 갔을지도 모를 일.
그렇다고 해서 촘스키 같은 골수 언어학자 기질도 아니고... 난 그냥 우리말과 한글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싶어서 이 길을 택했다.
논문 자격 시험도 알고리즘, 운영체제 같은 과목보다 말뭉치 분석, 형태론 같은 과목으로 응시하고 싶어서 말이지.. 그래도 여기는 논문 연구 분야에 따라서 공학 학위도 준다. ^^;;

※ 미래-_-

이공계 대학원은 맨날 랩에 출퇴근하면서 바쁜 대신에, 그래도 교수 밑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각종 기업 등 취업문도 넓은 편이다.
인문계 대학원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하고만 싸우면 되고 널널한 대신에, 알아서 부업 뛰면서 학비 벌어야 되고, 취업문 좁고, 잘못하면 평생 보따리 장수 신세를 못 면한다....... 라고

본인은 알고 있었으나,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국내" 대학원은 이공계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유학파와 국내파 차별이 꽤 심하며, 유학파가 아니면 교수나 대기업 채용에서 완전 국물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가는 분야는 유학을 갈 필요가 없는 곳이긴 한데, 그만큼 취업문도 좁고 학계 분위기도 아주 폐쇄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단과를 선택한 게 아니고 협동 과정이다 보니 위상이 어중간하고, 학계로 진출하는 길도 더 좁을지도. 뭐, 그런 고민은 2년쯤 뒤에 석사 마칠 즈음에 박사를 계속 할지, 한다면 어디서 할지를 고민하면서 같이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석박사 정도 되면, 이제 대학 간판이나 학부 평점, 토익 점수, 해외 연수, 알바 같은 스펙 나부랭이에 연연하는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 뭘 연구해서 학위를 받았으며 논문 주제가 무엇이냐, 무슨 교수 밑에서 무슨 학파-_-를 계승했나, 학계에서 무슨 활동을 했나가 main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알려진 '오답'들은 잘 피해서 최선을 다해 이 진로를 골랐는데, 이건 또 다른 오답이 아니라 정답이었으면 좋겠다. (현재로서는 정답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나름 연세대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협동 과정인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06 09:12 2010/09/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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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르심 2010/09/06 18:11 # M/D Reply Permalink

    학교 다니기 시작했구나. ^^ 같은 대학원생이지만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다르네~. 부럽다~.ㅋ

    1. 사무엘 2010/09/06 20:09 # M/D Permalink

      뭐 인문계 식으로 공부해서 이공계 식으로 논문을 쓰는 맞춤형 대학원이랄까..
      그래도 수학식만 없을 뿐이지 국어 문법도 만만찮게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더라.
      내 공부는 내가 알아서 잘 챙겨서 해야지. ^^;;

  2. 맑아릿다 2010/09/07 21:03 # M/D Reply Permalink

    잘 오셨어요:9 전산언어학 분야에선 연대 국어정보학 협동과정이 단연 독보적이니 잘 선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열 전공하고 그 대학원에 들어오는 학생이 많진 않아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언어학 쪽이야말로 여러 가지 전공의 콤비네이션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지요.OTL 난 뭐지ㅠㅠㅠㅠㅠ

    오늘 말뭉치언어학연습 수강으로 바꿨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강 허락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하시다니 그런다고 내가 질 줄 아시는감ㅋㅋㅋ

    1. 사무엘 2010/09/07 23:18 # M/D Permalink

      저의 학부 모교야 모든 이공계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익히 알려져 있고, 거기에 제가 들어간 과정이 레전드-_- 수준이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9월 3일자 특집글 참고 ㄲㄲ) 즉, 그때는 HOW가 중요했죠.
      그러나 대학원은 사정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밑천이 많으니, 목표로 정한 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은 어려운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학교 무슨 과를 갈지 고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학부 때보다 훨씬 더 고민 많이 하고 애썼죠. 이제는 WHAT이 중요해진 셈입니다.

      낯선 학교로 진학했지만, 맑다 님 같은 학문의 동반자가 있어서 참 든든합니다. ^^;;
      한느님의 수업 수강에 성공하신 것 축하. ㅋㅋㅋㅋㅋㅋㅋㅋ
      내년에 대학원 가더라도 저랑 겨우 한 학기밖에 차이 안 날 텐데, 기회 되면 우리 과 사람들도 소개해 줄게요. 이미 언정원하고도 인연이 있으시니. ㅋㅋㅋ

  3. 나그네 2010/09/14 12:00 # M/D Reply Permalink

    저는 개인적으로 김 용묵님을 알고 지내지는 않지만 축하드립니다. 논문자료수집 천천히 하시면서 대학원 생활 잘 지내시길 바래요.

    1. 사무엘 2010/09/15 09:16 # M/D Permalink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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