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 역에서 느껴지는 애환

* 카테고리를 뭘로 잡아야 할지 난감한 글이다. 철도 얘기, 성경 얘기, 별별 얘기가 다 들어가서... -_-

※ 철도 얘기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서쪽 종점은 잘 알다시피 방화 역이다. 그러나 서쪽 종점이라고 해서 이 역이 5호선 역 전체를 통틀어 서울 최서단에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5호선 최서단 역은 김포공항 역이며, 그 후로 5호선은 선형이 다시 살짝 동쪽으로 바뀐다. 김포 공항을 경유하기 위해 굴곡을 일부러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6호선의 최서단 역은 월드컵경기장 역이다. 서울 2기 지하철이 건설되던 당시에는 월드컵 경기장을 강서구 마곡 지구에 만들지, 은평구 상암동에 만들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결국 후자로 결정되면서 6호선의 노선에도 그쪽으로 급히 굴곡이 추가된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자들이 고생을 좀 했다고 들었다. (덧붙이자면, 당시 조 순 서울 시장의 지시로 마곡 지구의 개발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5호선 마곡 역도 10년이 넘게 미개통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방화 역은 시의 거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종착역답게, 그 인근은 좁은 4차선 도로이고 한가한 베드타운이다. 동쪽 종점인 상일동이나 마천도 비슷한 분위기이다. 본인은 2008년 6월 말, 마곡 역이 거의 12년만에 정식 개통하기로 한 바로 전날, 방화 행 막차를 타고 거기까지 간 후, 근처 PC방에서 외박을 했다. 그리고 새벽 5시 반에 하행 첫 차를 타고 5시 38분경, 갓 개통한 마곡 역의 승강장에 지하철 회사 관계자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최초로 발을 디뎠다!

이건 완전, 달에 최초로 도착한 아폴로 11호 조종사 같았고, 또 주의 첫 날에 아침 일찍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는 심정이었다(막 16:1). 본인은 예수님의 부활은 눈으로 못 봤지만 마곡 역의 부활을 맨 먼저 목격한 증인이다. 본인처럼 마곡 역 답사하러 인천에서 미리 찾아와 기다렸다는 어느 철도 덕후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 날, 본인도 어차피 혼자 간 게 아니었고, 같은 철도 동호인 후배 친구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본인에게 방화 역은 이런 오덕스러운 추억이 있다. 그런데 방화 역 인근에는 주거 구역만 있는 게 아니다. 국어학에 관심이 많고 동시에 KJV 빌리버이기도 한 본인에게 꽤 큰 의미를 지니는 기관이 두 곳이나 이 지역에 입주해 있다.
하나는 국립 국어원이고, 또 하나는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이다. ㅎㅎ

※ 철도 말고 나머지 얘기

다만, 관심 분야가 유사할 뿐이지, 두 곳 모두 본인이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적은 없는 곳이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가령, 한글 학회와 국립 국어원은 민간 단체와 정부 기관이라는 차이도 있거니와 정체성도 완전히 다르고, 서로 원수지간까지는 아니어도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 그 이유를 근본적으로 파헤치자면 서울대 이 희승 라인과 연세대 최 현배 라인까지 길고 긴 흑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이 글에서 다 다루지는 않겠다. 뭐, 요즘은 어차피 옛날 같은 그런 파벌 싸움 자체가 별로 무의미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국립 국어원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비판을 한글 학회에다가 하는 사람의 글을 예전에 좀 보곤 했다. 이건 지하철로 비유하자면, 코레일 관할 역 내지 코레일 소속 전동차에서 생긴 불만 사항 민원을 서울 메트로에다가 넣는 것과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말글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문화 체육 관광부 소속 정부 기관이 방화동에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그리고 또 말보회도 아주 유명하다. 있는 위치가 하도 상징성이 크다 보니, 우리 진영에서 설교 같은 공식 석상에서 가끔 말보회를 완곡하게 언급할 때 ‘방화동 교회’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아는 게 아니라 어설프게 들어 본 사람의 머리에는 “KJV = 말보회 = 이 송오 = 피터 럭크만 = 이단”이라는 다중 거부 장치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다. 이걸 두고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탓할 수는 없다. 바른 성경에 대한 관념이 없고 성경의 보존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삐뚤어진 신앙도 잘못됐지만,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사랑으로 전하지 않고 무례하게 깽판 부리면서 간증을 다 망친 진영도 잘못한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남 탓할 자격이 없는 게... KJV를 처음부터 말보회 진영을 통해서 받아들였다면, 난 과격 면에서는 아마 이 송오 목사의 후계자(?)로 지목될 정도의 전투종족이 되지 않았을지? ㅋㅋㅋㅋ 럭크만 정도의 성경 실력은 없는 주제에 그 사람의 성깔만 Ctrl+C, Ctrl+V가 돼서.. 성경을 무기로 삼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단들 욕하고 까는 글 기고하면서 말이다.
그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오버하느라 기성 교회 사람들 마음을 아주 닫아 버리게 만든 건 분명 잘못이다. 오죽했으면 “말썽 보존 학회”로 전락을.. -_-

“처음에 한국에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더라.”(1절) “And 한국 교회는 교리의 혼돈과 공허로 가득한데, 정작 KJV 교계는 여러 파벌들로 갈라져 있으며 기성 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찍혔더라.”(2절)
이게 한국 KJV 교회 역사의 간극 이론이 아닌가 싶다. 그 간극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절을 1절 이후의 시간 순으로 해석하면 간극 이론이고, 2절을 1절이 일어나던 당시의 배경 상황 내지 부연 설명으로 풀이하면 간극을 배제한 해석이 되는 셈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기발하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9/02 09:10 2010/09/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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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0/09/02 10:13 # M/D Reply Permalink

    외할머니 댁이 상일동 역에서 내려서 걸어 가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상일동 역에 자주 가 봤습니다.

    상일동 역에 다다르게 되면 사람이 지하철 한 량에 우리 가족밖에 없어서 역 한 두개 정도를 누워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1. 사무엘 2010/09/03 00:18 # M/D Permalink

      그 대신 거기는 배차도 절반에 불과하니 낭패. =_=

    2. 주의사신 2010/09/03 10:34 # M/D Permalink

      아마 1/2의 확률로 한 대씩 오는듯 했습니다만?

    3. 사무엘 2010/09/04 01:48 # M/D Permalink

      네. 상일동/마천 행이 번갈아가면서 다니죠.
      그러니 각 지선은 ‘배차 간격’이 본선의 두 배이고, ‘배차’는 본선의 절반이 됩니다.

  2. 삼각형 2010/09/02 10:54 # M/D Reply Permalink

    말보회, 예장 합동측에서 98년 이단 판정 받았다죠. 그 판정 할 권리를 누가 줬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죠. 주요 이유는 KJV만 믿으며 사상이 과격하다는 것.

    저도 그쪽이 좀 과격파라서 별로 긴 하지만 그래도 이단은 아닙니다. 과격 단체이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교리에서 문제는 없으니까요. 방법이 문제지.

    전 처음 들을 때 '학회'가 무슨 이단이지? 라고 생각했었죠.

    1. 사무엘 2010/09/03 00:20 # M/D Permalink

      ㅋㅋㅋ 말이 안 되는 소리이죠. 기독교라고 하면서 바른 성경 위에 믿음이 굳건히 서지 않은 교계는 약간의 툭 하는 ‘보안 공격’에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아 참고로, 요즘 말보회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럭크만 박사 진영과도 결별했다고 하네요. ‘옛날에 우리가 너무 심했었다’고 약~간 자중하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고 합니다.

    2. 소범준 2011/09/19 00:26 # M/D Permalink

      참.. 바른 성경 위에 서지 않은 교단들도 참 흠좀무네요..-_-
      내지는 흠좀무도 안되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인지도 ...ㅉ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지부터 냉철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단이라고 치부하는 세상 교단 '어른들'의 모습과 속내는 무엇인지... 참 안습이네요..

  3. 소범준 2011/09/17 12:38 # M/D Reply Permalink

    1. 방화 역도 어렸을 적 전철 여행에서 빠지지 않았던 주요 코스였죠.
    상일동/마천 코스도 당연 지사이구요. 아~ 오이도 역 만큼이나 갔다온 그날이 까마득~ 하네요.

    2. 말보회의 지체들은 오직 지체로서는 같은 전우이자 동지의 심정으로 보호는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 지만 그 이상은 반드시 공정하게 바라보고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판결하시겠지만요.

    3. 그래도 한.킹. 성경이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흠정역이 정말 최고죠) 요새는 그들의 심정도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에 한국 교회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보존 섭리에 관심을 안 두니 오죽 할까요..

    하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킹제임스 성경 한글판은 반드시 하나님이 선택하실 겁니다.

    1. 사무엘 2011/09/17 19:32 # M/D Permalink

      1. 어, 형제,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철덕인 것 같은데요..;;
      저랑 알게 되기 전부터 그렇게 전철 타고 다니면서 활동을 해 오셨나요? ㄲㄲㄲㄲㄲ

      2. 말보회 쪽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저는 말보회를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데,
      오히려 거기 있다가 나온 분들은 말보회 말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경우를 저는 자주 봤습니다.

      단순히 KJV를 너무 과격하게 전한 수준 이상이라고 하네요. 내부 비리가 많고 분위기가 영 이상하고 설립자의 독재가 너무 심하다는 식으로 실상을 전하시던데, 저는 그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오로지 KJV를 보고 여기 들어왔는데, 제정신으로는 실족하지 않고 거기서 못 버틴다고..;;

      또한, 지금까지 늘 지적되어 오듯, 한킹은 KJV를 표방하면서 왜 KJV에서 비롯되지 않은 번역이 그리도 많은지가 풀리지 않은 의문입니다.

      솔직히 퀄리티와 인지도 어필 면에서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할 KJV 번역본은 흠정역밖에 없습니다. 정 목사님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셨음..;;
      흠정역 400주년 기념판에 대한 논평도 며칠 뒤 이곳에 글이 올라올 겁니다. 뭐, 형제는 청지기 카페에 먼저 올라온 글을 통해 저의 중심 생각을 이미 접했겠지만.. ^^

    2. 소범준 2011/09/17 23:31 # M/D Permalink

      1. 으힉ㅎㅎ 저는 광명시에서 살았던 당시이고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0년도에 저희 집 근처로 7호선이 생겼을 때부터 처음 7호선을 광명(현 광명사거리)역에서 신풍역까지 타본 것을 시작으로 제 할아버님과 함께 전철 여행을 많이 다녔죠. 실은 이건 제 의지가 생기기 시작한 때의 일이고, 그 전에도 어른들 따라서 전철 여행을 몇 번 해 보았죠. ㅋㅎ

      2. 그래도 말보회가 한국 땅에 킹제임스 성경이 정착할 수 있는 풍토와 기반을 제공해 준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고 칭찬할 만한 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보회 쪽 분들의 노고가 조금이라도 있었기에 흠정역도 감지덕지로 확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지요.(물론 흠정역이 한킹에서 갈라져나왔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이 말 하는 건 절대 경우가 아니지만요..;) 조금 불편해도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가야죠.

    3. 소범준 2011/09/17 23:34 # M/D Permalink

      아..! 그리고 저는 아직 공식적으로 철도 동호계에 이름을 날린 적은 단 한 번도 없구요, 활동이란 것도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즐기기만 했을 뿐이죠..ㅎ^^;

    4. 사무엘 2011/09/18 22:17 # M/D Permalink

      어린 시절을 서울 지하철 7호선 2차 구간 개통과 함께하셨다니...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부러울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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