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되었을 때는 임상 실험을 차마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맨 처음에 동물을 상대로 실시한다. 사실 의학 내지 생명 공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실험용 흰쥐를 비롯해 적지 않은 동물들이 희생된다. 그래서 그런 연구소의 뒤뜰에는 동물 위령탑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쪽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또 인간에게 예상되는 위험을 대신 체험해 주는 존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더미(dummy)이다. 더미란 사람과 유사한 체구, 체중, 표면 재질을 갖추고 있는 마네킹 비슷한 인체 모형이다. 여기에다 온갖 센서들을 장착한 후 개발 중인 신차의 좌석에 곱게 앉혀 놓고 차를 충돌시킴으로써, 탑승자가 신체 부위별로 어떤 데미지를 받았는지, 생명에 지장은 없는지, 차 디자인이 안전 면에서 문제가 없는지를 연구진들은 꼼꼼히 분석하게 된다. 보통 시속 60km로 주행하다가 콘크리트 벽에 정면충돌하는 테스트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 같다.
더미는 덩치는 옷 가게에 진열돼 있는 마네킹과 비슷하다. 그러나 용도는 그런 마네킹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코스프레를 하는 일이 없으며 사람의 체중까지 흉내내어야 하기 때문에 마네킹보다 더욱 무겁다(지게차로 운반한다고 한다). 또한 대량 생산하는 물건이 아닌 데다 최첨단 센서 장비가 동원되다 보니 가격도 굉장히, 엄청 비싸서 한 개 가격이 억대에 육박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더미 하나의 가격이 거의 버스 한 대 가격이라는 뜻.
더미는 성인 남자, 임산부, 노인, 어린이, 아기 등 다양한 체구별 에디션(?)이 존재하며 이 한 세트가 일종의 더미 일가족을 구성한다. 실제로 자동차 회사의 연구소는 이런 더미 한 세트를 보유하고서 한 모델이 개발될 때까지 수십에서 무려 백수십 회에 이르는 충돌 테스트를 하게 된다. 한번 테스트용으로 사용한 더미는 강한 충격으로 인해 파손된 부품만 그때그때 교체하고서 거듭 재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나(가격의 압박), 심하게 손상된 더미는 어쩔 수 없이 폐기하고 새걸 구입하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 충돌 테스트를 할 때 차를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밖에서 차를 원격 무인 조종이라도 하는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차는 가만히 서 있으면서 바닥의 무빙워크 같은 궤도가 위의 차를 날라서 벽에다 부딪히게 만든다고 한다. 궤도가 힘이 엄청 좋아야 할 것 같다.
쉽게 말해 실험 대상차는 시동을 걸지 않으며 바퀴가 굴러가지도 않는다는 뜻인데, 내가 옛날에 무슨 충돌 실험 동영상을 본 기억으로는 바퀴도 굴러갔던 것 같아서 좀 의아스럽다.
어쨌거나 교통사고란 정말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다. 그냥 순식간에, 너무나 허무하게 사랑하는 가족, 사회 구성원, 유능한 인재를 죽거나 불구 병신으로 만들며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이놈의 음주운전 사고는 단순 과실치사가 아니라 고의성을 가미하여 살인 내지 살인 미수죄로 다스려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