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악 연주와 자동차 운전의 관계

페르마타(늘임표)는 자동차 주행 중에 만나는 과속방지턱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자동차 주행을 음악 연주에다 비유하는 건 심상 면에서 의외로 그럴싸하다. 그래서 음악 연주에다 빗댄 자동차 CF가 있고, 우리나라엔 아예 '쏘나타'라는 이름의 자동차도 있다.

2. 작곡과 편곡의 관계

작곡과 편곡의 관계는 군용기에서 공중전과 폭격의 차이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에서 새로운 주선율을 만들어 내는 건 가장 화려하고 창의적인 활동이며, 이는 비행기로 치면 기동력이 가장 뛰어나고 제일 뽀대 나며, 공중전을 벌여서 적군의 군용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전투기와도 같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과를 가장 많이 세운 비행기는 우월한 기동성으로 육군과 해군을 지원하여 지상의 목표물을 없애 주는 폭격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선율을 실제로 풍성한 반주가 곁들어진 음악으로 만들어 주는 작업은 뼈대에다 살을 붙이는 편곡이다.
오늘날은 공중전과 폭격이 모두 가능한 전폭기가 대세이듯, 음악계에도 혼자 작곡· 편곡에 심지어 가사까지 직접 쓰는 만능 싱어송라이터도 있긴 하다.

3. 화음과 합창 파트

본인은 음악에서 박자보다 화음· 화성에 더 끌리는 편이다. 높이가 다른 음들에 대해서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을 보듯이 일종의 공감각적인 심상을 느낀다. 단선 악보 노래만 부르다가 화음을 넣어서 합창을 부르면.. 마치 흑백 영화를 보다가 컬러 영화로 바뀐 듯한 느낌이다. 사실, 각 파트별로 연습을 하는 게 사진 촬영으로 치면 R, G, B 각 색깔축을 제각기 현상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교회에서 성가대 찬양 같은 거 연습할 때 파트 연습은 힘들고 어렵고 시간도 더 많이 걸린다. 하지만 제대로 부르면 훨씬 더 아름다운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힘들게 연습한 보람이 있다. 또한, 합창뿐만 아니라 돌림노래 같은 부류도 좋다.

합창은 보통 여자+고/저, 남자+고/저 이렇게 네 파트로 나뉘는데, 그 중 '남자+고'에 해당하는 테너 파트가 내 경험상 제일 어렵다.
소프라노는 그 노래의 주선율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쉽고 친숙하다. 알토는 조금 연습이 필요하지만 음역이 낮아서 부담 없으며, 소프라노의 협화음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음을 내기 쉽다. 베이스는 음역이 제일 낮으며, 그 멜로디도 굉장히 단순한 경우가 많다.

그 반면, 테너는 보통 여성 파트와 관계 없는 생소한 멜로디 위주인 데다 음역도 아주 높다. 조심해서 부르지 않으면 삑사리가 난다. 교회에서 합창 연습을 하면서 평소에 테너만 부르다가 다른 파트를 도와주기 위해서 파트를 옮겨 봤더니 거기는 부르기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

테너로도 모자라서 카운터테너는.. 뭐 높은솔 이상으로 올라가고 남자 성대로 거의 여자 음역을 내는 파트이니.. 타고난 성대나 특수한 테크닉을 구비하지 않으면 감당 불가능일 것이다. 접두사 'counter-'는 거의 'anti-, against'와 비슷한 뜻인데 테너의 반대가 아닌 테너의 강화를 나타내는 음역 이름에 붙었는지 모르겠다.

4. 음고 (또는 음정)

본인은 앞서 언급한 저런 취향과 배경으로 인해, 어떤 곡이나 노래를 배웠으면(특히 교회 찬송가) 들었던 그대로 기계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음높이로 부르는 걸 좋아한다. 악기 없이도 첫음이 정확하게 기억돼 있기 때문에 반주가 있건 없건 쌩목으로도 동일한 음고가 나온다. 이런 데에 좀 쓸데없는 집착 같은 게 있다.
화가로 치면 무슨 고전파처럼 걸어다니는 사진기를 추구하고, 음악으로 치면 걸어다니는 녹음기를 추구한다.

그런데 음반의 곡은 음역이 전문 가수에게 맞춰져서 그런지 일반인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나>(송 명희 작사, 최 덕신 작곡) 같은 경우 음반의 오리지널 C장조로 그대로 부르면 결말부에서 음이 무려 높은솔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찬양집 악보를 보면 조를 A장조 정도로 낮춰 놓곤 한다.

비록 회중의 편의를 위해서 조를 옮긴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 비록 같은 곡이긴 하지만 조가 바뀌면 느낌이 싹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흥, 감동, 여운이 C장조를 기준으로 다 형성되고 머리에 박혔는데, 곡을 다른 조로 부르면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가 달라지면 같은 곡도 느낌이 확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Looking for you를 들을 때도 mp3 음원을 구한 뒤부터는 사운드 에디터를 돌려서 얘를 단2도부터 장7도에 이르기까지 반음계의 모든 음역으로 조를 달리하면서 다 들어 봤다.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들으면서 조를 바꾸고, 템포를 바꾸고 가장 비슷한 악기를 찾아보고 멜로디를 채보하고..

이 음악으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느낌을 그냥 뼛속까지 다, 금이빨만 빼고 모조리 씹어먹고 소화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모가 형 증기 기관차부터 KTX, 경인선에서부터 경부고속선에 이르기까지 철도 덕후로 머리 구조가 개조되어 갔다..
철도청이 사람을 완전히 버려 놨다. Looking for you라는 곡은 어설프게 내보내는 철도청 CF 10편, 이미지 광고 100편도 배출하지 못한 평생 매니아 고객, 철도교 신자를 만들었다.

5. 이조악기

본인은 오로지 Looking for you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색소폰을 악기를 직접 구입해서 배워 보기까지 했다. 새마을호 음악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내가 피아노 다음으로 접하는 제2군 악기는 플룻이나 기타 같은 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기타는 주선율 연주가 아니라 코드 반주용으로 워낙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때문이요, 플룻은 소리가 예쁘고 교회에서 찬송가 특송 보조용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2군을 넘어 3군으로 가면 클라리넷, 오보에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철도가 아니었으면 색소폰도 3군에 속했을 것이다. 그것도 알토보다는 소프라노 색소폰 말이다.
이거 무슨 외국어 같다. 피아노는 영어 같은 악기이고, 2군 3군은 중국어나 스페인어, 일본어 같은 제2 제3 외국어에 해당되겠다. 바이올린은 좀 여성형 악기인 것 같아서 제낀다.

모든 악기들이 그렇겠지만 색소폰은 도대체 어떤 유체역학적인 원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걸까? 황동으로 된 커다란 몸체뿐만 아니라 마우스피스, 그리고 나무로 된 reed가 어떤 상호작용을 해서 소리가 나는지.. 어찌 보면 금속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옛날에는 이런 악기나 열쇠· 자물쇠를 만드는 장인의 기술이 요즘의 자동차 반도체 기술 같은 최첨단 하이 테크놀러지였을 것이다.

소리가 멋있긴 하지만 알토 색소폰 정도 되면 악기가 꽤 크고 무겁다. 그리고 불었을 때 소리가 피아노 이상으로 꽤 큰지라, 아파트에서 연습하기가 좀 부담되기도 한다.
저음을 제대로 내기가 어려운 건 초· 중딩 때 학교에서 배웠던 리코더와도 비슷하다. side effect 없이 옥타브를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것도 좀 어려운 축에 든다.

이 외에도, 본인은 색소폰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 얘는(알토 기준) 기준조가 C가 아니라는 걸 알고서 굉장히 놀랐었다. "아니 사람 헷갈리게 왜! 도대체 왜 악기를 그딴 식으로 만들지? 무슨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헐.. 색소폰이 이조악기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내가 덥석 색소폰을 사고 배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는 음과 실제로 악기에서 들리는 음이 서로 다르니, 굉장한 연상거부와 불편함이 야기된다. 그래서 색소폰으로는 아무 악보나 덥석 내가 원하는 조로 연주하지 못하며, 미리 전조를 머릿속이나 종이에다 해 놔야 된다. 가령, Looking for you를 들은 대로 그대로 불려면 오리지널 F조가 아니라 D조로 전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은 이조악기가 색소폰만 있는 건 아니다. 트럼펫은 기준조가 Bb(플랫)이라고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장성 경례곡, 그리고 결정적으로 군대 기상 멜로디가 왜 전부 Bb조인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6. 아리랑 멜로디가 붙은 영어 찬송가

한국인 중에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장로교 교단에서 1990년대에 '아리랑' 멜로디에다가 가사를 써서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라는 찬송가를 만들어 수록했다.

이 사실이 내 기억이 맞다면 2000년대 이후에 어느 SBS 다큐멘터리의 소개를 통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백인 코쟁이들이 "오 아리랑이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요(찬송가용으로)! 원더풀!" 이러는 인터뷰가 실렸다. 심지어 그 영어 가사가 한국어로 역번역되어 일명 아리랑 찬송가로 수입되기까지 했다.

뭐, 한국 민요가 외국의 찬송가에 실렸다니 좋은 일이다. 막 "한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는!" 국뽕에 취할 필요도 없고, "그게 뭐 대수라고" 식으로 너무 시니컬하게만 볼 필요도 없다.
사실, 특정 민족의 민요 멜로디가 찬송가 가사에 붙는 건 흔한 일이다. 또한 극단적인 예로,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는 군가 정도가 아니라 "존 브라운의 시체"라고 찬송가와는 1도 관계 없는 노래의 멜로디에서 유래되었으며, 우리말 가사조차도 출처 불명의 창작이지 정확한 번역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미국 본토에서 저 찬송 부르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으면 링크를 소개하려 했는데, 전부 국내에서 "미국에 아리랑 찬송가가 있대!"라고 소개하거나 가사를 역번역해서 부른 것밖에 안 뜬다. 그래서 링크 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찬송가에다가 국악 스타일을 접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서양식 7음계가 좋다. =_=;;

7. 옛날 자동차 소개 테이프에 수록되었던 BGM들

1991년쯤이던가.. 본인 초딩 시절에 집의 첫 차가 현대 엑셀이었다.
차를 사니 취급설명서와 보증서 같은 책자가 따라오는데, 책자뿐만 아니라 제조사에서 차량의 전반적인 관리 요령을 BGM과 함께 남녀 나레이터가 낭송해 놓은 테이프도 같이 줬었다.
아마 이건 차종마다 다르지는 않고 모든 승용차 공통, 모든 트럭 공통..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오래 전 일이지만, 난 그 테이프를 즐겨 들었다.
"반드시 무연 휘발유를 사용하셔야 하며, 납 성분이 포함된 유연 휘발유를 사용하시면 뭐 어쩌구(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팬 벨트, 휠 베어링, 디스크 드럼의 마모 상태 점검.." 뭐 이런 단어가 나왔던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BGM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선곡을 한 담당자가 단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1) A면

El Bimbo (Paul Mauriat) -- 맨 처음 "안녕하십니까? 저희 현대 자동차의 고객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인트로와 함께 나오던 음악이다. 제목을 한참 뒤에야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C단조)
첫 곡이 끝난 다음에는.. 뭔가 월광 소나타 스러운.. Thexder 게임에서 주인공이 죽었을 때 나오는 게임오버 음악과 비슷한 곡이 나왔다. (F단조)
(정체불명. 기억 소실)

Love is Blue (Paul Mauriat) -- 난 이 곡을 현대자동차 테이프에서 난생 처음으로 들었다. (A단조)
그 뒤로도 두 곡 정도가 더 있었는데, 제목은 모르지만 주요 구간 멜로디는 지금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모두 C단조이다.

(2) B면

뒷면 첫곡도 꽤 유명한 음악인 걸로 기억하는데, 멜로디를 기억하지만 제목 모름. (C단조)
(중간은 정체불명. 기억 소실)

Plaisir D'amour -- 끝에서 셋째. 테입 전체를 통틀어서 거의 유일하게 장조곡으로 기억한다. 여느 연주와는 달리 주선율이 팬 플룻이고, 템포가 좀 빠른 편이었다. (F장조)

저 곡은 제목을 번역하자면 "사랑의 기쁨"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같은 제목의 바이올린곡을 작곡한 게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곡이다. "도~미솔 파미 레(도#)레파라~".. 아마 들으면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그건 원제도 독일어인 Liebesfreud이다. 자매품으로 "사랑의 슬픔"도 있다는 게 흥미로운데..
그 반면, 저 Plaisir D'amour는 출신이 프랑스 계열이다.

The Lonely Shepherd (James Last) -- 끝에서 둘째. 영화 <킬 빌>에서도 오마주 되어 흘러나온 유명한 곡이다. (D단조)
운행 중 비상 상황 발생시 대처 요령 섹션과 함께 흘러나왔다. 팬 플룻 연주곡이 두 곡 연속으로 나오는 셈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 결말부에서 덕담과 함께 빠이빠이 하며 흘러나온 곡 역시 C단조의 유명한 곡이며 멜로디가 기억 나고 주선율을 악보로 정확하게 쓸 수 있지만.. 무슨 곡인지 제목은 모르겠다.
30대 이상 나이의 방문자 분들 중에 혹시 이런 추억 있으신 분 안 계신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3 08:31 2018/05/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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