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록으로서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

'성(城)'이라고 하면 서양에서는 월트 디즈니 영화 인트로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주변에 moat라고 불리는 도랑도 있고 거대한 저택이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아무래도 만리장성 같은 긴 성벽이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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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남한산성과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돼 있다. 그러나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한양도성은 세계 유산에까지 등재될 정도의 유니크함은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아 등재가 거절됐다.

수원화성은 남한산성만치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 없고 한양도성만치 오래되지도 않은 데다, 일제 시대와 6· 25 전쟁을 거치며 왕창 훼손됐던 것을 어차피 후대에 재건· 복원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 세계 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을까?
'화성 성역 의궤(儀軌)'라는 기록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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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짓는 데 동원된 기자재와 구체적인 공사 기법, 건설 당시의 꼼꼼한 일지, 건설 과정에서 중앙 정부와 주고받았던 공문들, 건설에 참여했던 석공과 목수들 명단... 이런 게 미주알고주알 몽땅 적혀 있다.

성이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기고 다 파괴됐다 해도 이 FM대로만 다시 이행하면 정말 1700년대 고증을 100% 반영해서 성을 똑같은 절차를 동원해서 똑같은 형태로 고스란히 다시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해 프로그램 소스 코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 당시에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지 현대 고고학 지식을 동원해서 재추적해야 하는 이집트 피라미드나 이스터 섬 모아이 같은 물건과는 처지가 정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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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그 유명한 오사카 성만 해도, 저 정도의 상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재건된 건물은 그냥 외형만 얼추 닮았을 뿐, 내부는 그냥 엘리베이터까지 달린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재현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조선이 말기에 망한 과정이 워낙 추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실록을 포함해 기록 하나는 타 왕조나 국가들보다 신경 써서 잘 남겼다. 이런 기록 덕후 왕조에서 한글 같은 문자를 새로 창제했으니, 문자의 창제 시기와 설계 컨셉 같은 것도 꼼꼼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런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으며, 지금의 재건 레플리카가 1700년대 초기 원형 건물과 동급의 권위와 정통성이 있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세계 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원형 건물과 동등한 권위"... 아마 킹 제임스 성경 빌리버들에게 귀가 솔깃하게 들릴 텐데..
그렇다. 성경도 이런 정도의 퀄리티로 전수되고 번역됐다. 그렇기 때문에 자필 원본이 진작에 소실되고 없어도 지금 읽는 역본이 자필 원본과 동등한 영감을 담고 있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오래되고 낡은 채로 짱박혀 있는 소수 사본이 아니라, 끊임없이 필사되고 읽히고 닳아 없어지길 반복했으며 교차 검증도 되는 다수 사본이 진품이다.

또한 수원화성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구약 성경에 기록돼 있는 온갖 쓸데없이(?) 디테일해 보이는 사람 명단이나 숫자 목록, 물건들의 구체적인 치수들에 대해서도 관점을 달리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성경 기록이 각종 초자연적인 기적까지 포함해서 모두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근거이다.

2. long S

1611년도 킹 제임스 성경 원판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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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를 오늘날보다 더 많이 쓰고 있고 (booke, fowle, forme, grasse, selfe, sunne, starres)
u와 v가 헷갈리는 등.. (heauen??)
완전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어 스펠링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겨우 thou, thy, -eth 이런 건 그냥 약과다.

심지어 KJV의 고유한 특징이라 불리는 '이탤릭체'조차도 오리지날에서는 이탤릭이 아니었다.
보다시피 본문은 뉴욕 타임스 같은 '고딕체'이고, 이탤릭은 그 안에 작은 크기의 '로만체'로 적혀 있다. (정작 난외주에서는 이탤릭체가 쓰였는데도!)
첨가된 단어에 대한 표기는 차라리 한글 개역성경과 더 가까운 형태인 셈이다.

그런데 I와 J, U와 V, W 이런 게 오락가락 하는 건 제쳐놓고라도.. s가 f처럼 적혀 있는 건 굉장히 적응이 어렵다.
graffe, beafts, felfe, feafons, leffer, faid, firft, alfo (???)
게다가 모든 s가 저렇게 쓰인 것도 아니고 s 자체 역시 따로 있다. s와 f모두 각각 음절초와 음절말에 다 등장하기 때문에 정확한 등장 조건이나 규칙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이건 어찌 된 영문일까?

독일어 철자법에 ß가 있는 것처럼 저 시절에는 long S라는 게 따로 있었다.
내 생각에, 한글로 치면 아래아와 비슷한 존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처음엔 발음이 미묘하게 달랐지만 한쪽의 음가가 오래 전에 소멸하고, 영어의 철자법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결국 long S는 짤린 것이다. 그게 무려 1700년대의 일이다.
아래아가 음가를 상실한 뒤, 20세기에 와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짤린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 하겠다.

킹 제임스 성경이 원체 archaic한 단어와 문체로 유명하긴 하지만, 글자 자체도 archaic한 놈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수학에서 일명 '인테그랄'이라고 불리는 적분 기호 ∫가 바로 길게 늘어뜨린 long S의 후신이다. sum을 나타낸다.

3.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본인은 개인적인 신앙 노선을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이다.
구원의 길이 예수 유일이듯이, 그런 독단 배타적인 교리를 텍스트 형태로 명시하고 있는 성경도 특정 역본 유일이라는 개념은 이상하거나 어색할 것이 전혀 없다고 본다.

성경만은 번역되는 과정에서 여느 텍스트가 번역될 때와는 달리 예외적이고 특례적인 섭리와 보존이 있었다고 믿는다. 설령 KJV라는 성경의 번역을 지시한 왕이나 번역자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야만 기독교계가 원어 원문 운운하는 온갖 지적 사기와 말장난, 혼돈을 벗어나서 뭔가 절대 기준을 가질 수 있다. 교리의 근간과 믿음의 대상이 존속할 수 있으며 기독교가 최소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고전 텍스트들은 잘난 학자들이 점점 더 원래의 의미를 복원해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이미 정확하게 잘 완성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트렌드가 반대로 타락하고 퇴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솔로몬 왕이 아기를 둘로 쪼개서 반반씩 나눠 가지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 아이의 진짜 엄마는 완전 화들짝 멘붕했지 않던가? 성경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읽는 성경이 변개되고 파편화돼 있다는 말을 절대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JV 유일주의는 기독교계에서도 소수설로 취급되고 있으며,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아주 많다.
이런 사람들은 KJV에 '없음' 구절이 없는 게 정상이 아니라, 반대로 '없음'이 원래 맞고 KJV가 후대에 추가(!!)돼서 사본학 근거가 부족한 구절까지 덤으로 갖고 있는 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없음'이 있긴 하지만 동일한 내용이 성경의 다른 부분에도 있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도 해명한다. 예를 들어 마 17:21에서 "기도와 금식"이 삭제되긴 했지만 막 9:29에는 동일 내용이 남아 있다.
골 1:14에서 '그분의 피를 통해'가 삭제되긴 했지만 엡 1:7에는 동일 내용이 남아 있다. 이런 식이다.

행 12:4의 '이스터'(파스카)와 마 12:40의 '고래'(케토스)는 단골로 오르내리는 번역 이슈이다. 이건 KJV 옹호 진영에서도 다 반박이 돼 있다.
요일 5:7은 일명 '요한의 콤마'라 하여 킹 제임스 성경에서만(동일 계열의 바른 사본도 포함)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온전히 입증하는 구절인데... 이것도 원래 성경에는 없던 말이 후대에 추가된 거라고 말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은 나쁜놈들이 변개하고 삭제하는 게 훨씬 더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과잉 충성분자가 첨가하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시나리오라고 본다. 계 22:18을 뻔히 믿는 사람이 설마 감히 첨가를 하겠는가?

그리고 원어· 원문뿐만 아니라 해석에 대해서도 대립하는 구절이 있다. KJV 빌리버들은 시 12:6-7이 하나님 말씀 보존에 관한 약속이라고 본다. 7절에 나오는 preserve them은 당연히 바로 앞의 words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자들은 이마저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보존한다는 말일 뿐이라고 말한다.

성경에 이런 말을 하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다중적용 예언이 나오는 게 한두 군데가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불편해하고 굳이 가리려고 애쓰는 건, 마치 창 22:8에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것임"이라는 의미가 절대로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고 창 1:2와 렘 4:23을 같이 연결하여 심판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단시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KJV 유일주의를 기를 쓰고 공격하고 반박하는 사람들은 저런 유명한 구절들을 끄집어내서 KJV가 오역을 했거나 원래 원문에 없는 문구를 추가한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벧전 2:2까지 거론하면서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는 잘못된 교리가 맞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는 것은 본인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이런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성경과 관련하여 어차피 어딘가에 권위를 둬야 한다면, 현대 역본 번역자나 원어학자를 믿을 바에야 차라리 400여 년 짬밥의 안정화 내력이 있는 영어 성경에 권위를 두는 것이 훨씬 더 건전하고 현실성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지엽적으로 약간 오류(흑역사, 아쉬운 점, 단점, 나쁜 점, 부정적인 것)가 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보면 좋은 게(선한 것, 감사할 것, 유익한 것 등..) (훨씬) 더 많고 괜찮다."
이런 사고방식은 통계를 동원하여 공학 연구나 과학 실험 결과를 평가할 때, 혹은 우리나라 현대사 같은 걸 논할 때, 이· 박 대통령 같은 사람의 행적을 평가할 때는 적절하고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성경은 적당히 오역이나 오류도 좀 있지만 대충 요점만 들어맞으면 되는 부류의 책이 아니다. 만약 성경이 그런 부류의 책이라면 자기가 성경의 오류 감별사라고 설치면서 궤변 말장난을 늘어놓는 사기꾼들, 성경에 기록된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내용들을 제멋대로 영해하는 미친놈 이단 교주 등.. 그로부터 야기될 혼돈· 무질서와 오류, 부작용, 폐단이 가히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내가 저런 사고방식을 몰라서 KJV 유일주의를 고수하는 게 아니다. 성경이 기독교 정체성의 유지에 어떤 기여를 하는 존재이며 나에게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이런 지론을 갖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28 08:29 2018/06/2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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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2

2018년 여름 현재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차기 버전인 9.5가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 수 차례 연기와 번복을 거듭해 왔지만, 9.5는 정말로 완전체 파이널 버전이 될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작업해 놓은 것을 정리해 보니 분량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9.5 이후로는 버전업을 하더라도 그 주기가 지금보다 더 길어질 것이며, 지금 같은 장기적인 개발 계획 없이 그때 그때 생긴 아이디어 반영이나 문제점 개선 위주로만 가볍게 새 버전이 나올 것이다. 2000년에 나왔던 1.0 이래로 18년이 지나서야 이제 좀 한글 입력기가 물건다운 물건이 완성된 것 같다.

1.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의 변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차기 버전에서는 9.3에서 첫 도입되었던 입력 도구의 모습이 이렇게 미묘하게 바뀌었다.

  • 후보 목록이 언제나 입력란의 왼쪽 끝에 표시되는 게 아니라("한국어"), 실제로 삽입되는 위치("처리") 근처에 표시되게 했다.
  • '한글 단어를 한자로' 변환 기능의 경우, 낱글자에 대해서는 한자의 훈도 표시되게 했다. (곳, 아내, 슬퍼할.. 등)
  • 지금 변환 가능한 영역("처리")과 그렇지 않은 영역(그 이후 "학술대회")을 검정 vs 회색으로 구분해서 표시하게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개선 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글 조합 상태와 관련해서 여러 미묘한 버그들을 발견해서 잡았다.

  • 이미 한자로 변환되어 있는 곳으로 cursor를 옮기면 무조건 모든 한자들이 도로 한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예전에 변환했던 단위로만 역순으로 복귀되게 했다. 예를 들어, 위의 그림과 같은 상태에서 마지막 한자인 '보(報)'를 건드리면 '정보'만 한글로 돌아가고 '한국어'는 아직 한자로 유지되어 있다.
  • 평범한 왼쪽 화살표나 backspace 말고 특수글쇠(앞 글자 달라붙기 같은)의 기능으로 cursor를 움직여서 앞의 한자를 건드렸을 때는 한글 복귀가 제대로 되지 않던 버그를 잡았다.
  • 저런 특수글쇠로 비한글 문자 사이를 왕래할 때 cursor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버그를 잡았다.
  • 한글을 조합하던 중에 글자판을 변경했을 때 조합이 종료되지 않던 버그, 맨 마지막 글자가 아니라 중간에서 한글을 조합하고 있다가 한자를 선택했을 때(예: '훈(민)정' 조합 중에 訓民) 변환이 제대로 되지 않던 버그를 잡았다.

2. '고급 입력 스키마 - 고급 글쇠 인식' 기능의 변화

지난 7.4에서 첫 도입되고 나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고급 입력 스키마'에 간단한 modifier key 필터링 기능이 추가됐다.
지금까지는 얘를 이용해서 D 같은 문자 글쇠에다가 입력 기능을 배당하고 나면, Shift+D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Alt+D 같은 걸 눌러도 글쇠가 아무 구분 없이 인식하고 동작해 왔다. (Alt 인식이 불가능한 외부 모듈 구현체는 제외)

얘는 말 그대로 저수준 고급 글쇠 인식 기능이기 때문에, modifier의 인식 여부는 modifier 글쇠 자체가 눌렸을 때 변수와 수식을 이용해서 사용자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게 취지이긴 하다. 하지만 저건 너무 고지식하다고 여겨져서 Shift, Ctrl, Alt에 대해서 인식 여부를 사용자가 지정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이건 단축글쇠 규칙만치 세밀하지는 않기 때문에 modifier 글쇠의 좌우까지 구분하는 기능은 없다. 고급 입력 스키마는 A, S, D 같은 인접한 글쇠가 동시에 눌린 것, B를 길게 누른 것, C를 눌렀다가 뗀 것 같은 이벤트를 감지하는 것이 목적이지, 단축글쇠처럼 왼쪽 Shift+L, Ctrl+Win+X 이런 combination을 세밀하게 감지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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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fier key 필터링 여부를 지정하는 체크 박스는 on/off뿐만 아니라 indeterminate라는 제3의 상태도 있는데(위의 그림에서 Ctrl), 이게 바로 예전처럼 modifier가 눌렸든 안 눌렸든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D와 Shift+D에 대해서 동작을 구분하고 싶다면 Shift는 indeterminate로 맞춰 놓고 별도의 변수로 상황을 구분하면 된다.

Shift는 몰라도 Ctrl과 Alt는 단축글쇠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사실상 언제나 off로 지정해 놓는 게 좋을 것이다. 단축글쇠 옵션에는 좌우 중 무엇을 눌렀는지 구분하지 않는다는 옵션이 있을 뿐, 아예 on/off 여부를 구분하지 않는 옵션이 있지는 않다. 이 역시 대조적이다.

modifier key 필터링은 key down에 대해서만 동작한다. key up은 key down 이벤트에 걸렸던 글쇠가 떼졌다면 그 당시의 modifier와 관계 없이 언제나 동작한다. 키보드가 무슨 마우스 버튼도 아닌데.. A키를 그냥 뗐을 때는 이렇게 동작하고, Shift가 눌러진 상태에서 뗐을 때는 이렇게 동작하는.. 그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 기능을 굳이 구현해야겠다면 역시 변수와 수식을 이용해서 사용자가 직접 구현하면 된다.

3. '고급 입력 스키마' 기능의 변화

오랫동안 빈 공간이 많아 황량하고, 별로 자주 쓰이지도 않는 옵션밖에 없던 '고급 스키마 옵션' 탭에 유의미한 옵션이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비한글 문자가 입력되어도 기존 한글 조합을 일시적으로 보존'해 주는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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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빠르게 하다 보면, 한글을 조합하고 있고 한글 입력과 관련된 글쇠들이 미처 다 떼어지기 전에 space나 쉼표 마침표 같은 문자 글쇠가 먼저 눌러질 수 있다. 이 경우 "ㄷ.ㅏ", "르 ㄹ" 같은 오타가 생기기 쉽다.

허나, 이 옵션이 지정되면 입력 스키마가 이런 비한글 문자를 문자 생성기(한글 입력 오토마타)로 곧장 보내지 않고, 한글의 옆에다가 임시로 붙여 준다. 즉, "다."처럼 된 상태에서 "당. "으로 한글 조합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 있다가 모든 글쇠에서 손이 떼어지고 나면 조합이 종료된다.

이거 간단한 발상이지만 생각보다 꽤 유용하다. 오동작 부작용도 거의 없고 말이다. (물론 공백까지 저렇게 보정이 되게 하려면 '글쇠 및 변수 옵션'의 '추가로 인식할 글쇠'에다가 space도 0x20으로 추가해 줘야 한다.)
스크린샷에서 보다시피, 여는 괄호 계열에 속하는 (<[{ 이런 것은 같이 눌러졌을 때 한글의 뒤가 아니라 '앞'에 붙도록 별도의 옵션을 줄 수도 있다.

이미 옆에 붙은 글자가 있는 상태에서 또 비한글 문자가 입력되면, 이 기능은 그것까지 추가로 붙여 주지는 않는다.
단지, 이미 붙었던 글자를 없애고 새로 들어온 문자로 대체하도록 할 수는 있다. '중복 입력 허용' 옵션은 그렇게 동작 방식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은 여러 글쇠의 keydown과 keyup을 감지해서 동작하기 때문에 고급 스키마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한글과 비한글이 섞인 가변 길이의 조합을 표시하기 때문에 문자 생성기도 '고급 입력기'와 연계해서 동작한다. 정말 말 그대로 고급스러운 기능인 셈이다. 기본 입력기만 사용하고 있을 때는 이 옵션이 사용 불가 상태로 표시된다.

4. 한글 입력 엔진 쪽의 변화

(1) 오토마타 중에서 'xxx 처리 후 조합 중단'을 의미하는 -6, -9 같은 마이너한 기능들이.. 조합이 완료된 한글 뒤에 쓰레기 문자를 삽입하기도 하던 버그를 고쳤다.
그리고 마지막 두 타의 입력 순서를 교환하는 꽤 어려운 -11도 복잡한 상황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던 버그를 고쳤으며, 이 기능은 더 전문적인 특수글쇠에다가도 구현해 넣었다.

(2) 오토마타의 O 변수는 지금까지 입력 글쇠 또는 현재 조합 중인 한글의 종류가 두벌식인지 여부를 비트 1|2 플래그 형태로 갖고 있는데, 이 뿐만이 아니라 지금 한글 조합이 처음부터 사용자의 타자로 입력된 건지 아니면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 재현되었는지(4)에 대한 정보도 추가했다.

달라붙었거나 특수글쇠 같은 걸로 재구성된 조합에는 O 변수에 4라는 비트값도 추가되어서 나온다. 그래서 사용자가 처음 한글을 입력할 때는 모아치기 오토마타를 사용하는데, 달라붙은 한글에 대해서는 더 세밀하게 무한 낱자 수정을 사용한다거나 식으로 오토마타를 구성할 수 있다.

(3) C0|0x23이라고 직전 두 글쇠의 입력 순서를 교환하는 특수글쇠를 추가했다.
이건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ㄷ.ㅏ'를 '다.'로, 특히 두벌식 자판에서는 '뭥미'를 '뭐임'으로, '생리'를 '새일'로, 'ㅇ버'를 '업'으로 바꿔 준다. 물론 앞 글자의 조합 상태를 마음대로 넘나들고 바꾸기 위해서는 날개셋 편집기나 MS Word 같은 환경이 필요하다.

두벌식 자판은 구조적으로 동시치기를 구현하기 힘들다 보니, 순서가 뒤바뀐 오타는 이런 식으로 강제 보정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내가 테스트를 해 보니.. 순서가 뒤바뀌는 오타가 날 정도이면 그 오타 이후에도 타자가 여러 타가 진행되어 버리는 편이기 때문에 이런 보정 특수글쇠를 적절한 타이밍에 누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기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으리라고 본다.

이전에 추가되었던 C0|0x22도 원래는 이걸 의도했었으나, 기술적인 난이도 때문에 기능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글쇠의 교환이 아니라 글자 전체의 위치 교환 수준에 그쳤었다.

5. 편집기의 미세한 버그 수정

이제 더 고칠 게 없을 거라 여겨지는 편집기에서 의외로 버그가 몇 개 발견되어 고쳐졌다. 그것도 직전 버전에만 있던 게 아니라 꽤 오래된 버그들이다.

  • 이전 글에서 언급한 대로, 24픽셀 글꼴을 사용하고 있는데 일본어· 중국어 IME의 조합을 나타내는 밑줄(점선이나 실선..)이 여전히 16픽셀 기준 높이로 취소선처럼 잘못 표시되던 문제를 해결했다.
  • 아주 미묘하고 발견하기 어려운 버그이긴 한데, 도구모음줄의 세로 폭이 실제보다 더 크게 잘못 계산되어서 아랫부분이 제대로 갱신되지 않고 가로줄 모양의 잔상이 생기는 걸 보신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런 현상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 이건 사용자의 데이터를 파괴할 수 있는 치명적인 버그이다. UTF-16LE가 아닌 다른 인코딩으로 파일을 저장할 때 크기가 수MB(대략 2MB) 정도를 넘어가면 그 2MB 정도의 경계에 속하는 줄이 낮은 확률로 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언제나 발생하는 건 아니고 좀 복잡한 조건이 우연히 충족됐을 때만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가 이제야 발견되었다.

6. 사소한 UI 개선 사항

(1) 날개셋 제어판에서 어떤 글자판(입력 항목)에 어떤 입력 스키마와 어떤 문자 생성기를 배당할지--빈/기본/고급-- 지정하는 부분의 명칭은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이 입력 항목의 기반 루틴"이었다.

허나, '루틴'이라는 말이 엔지니어가 아닌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색하고 생뚱맞아 보여서 이걸 '기능 수준'이라고 바꿨다. '빈/기본/고급'이 기능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기술 기반', '기술 수준' 등의 용어도 고려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기능 수준"이라고 말을 정했다.

또한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날개셋문자의 종류로는 일반 문자, 세벌식/두벌식 한글 등이 있는데.. 특수글쇠의 명칭이 '특수 코드'라고도 혼용되고 있어서 이를 없앴다. 그냥 '특수글쇠'로 통일했다.

(2) 굉장히 사소한 변화이다만.. 날개셋 편집기에서 다수의 블록을 잡은 뒤 날개셋 외부 모듈로 텍스트 필터를 사용할 때, 블록이 4개까지만 인식되고 5개째 이상부터는 필터 변형이 되지 않던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도 거의 10년 가까이 전부터 변함없이 존재하던 문제였지만, 여파가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방치돼 있었다. 애초에 외부 모듈에서 텍스트 필터는 TSF A급 프로그램이 아닌 곳에서는 사용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존재감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개셋 편집기가 바뀌어야 할지, 아니면 외부 모듈이 바뀌어야 할지는 난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Windows의 TSF 스펙이란 게 한 치의 모호성 없이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 모듈이 문제를 피해 가는 것이 당장 더 간단하기 때문에 그것부터 조치를 취했다.

일단 내가 주변에서 보는 텍스트 에디터나 워드 프로세서 중에서 불연속적인 다수의 블록을 잡을 수 있는 프로그램 자체가 날개셋 편집기와 MS Word밖에 없다. 하지만 Word는 여전히 외부 모듈에다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블록의 내용을 넘겨주지 않기 때문에 이 기능이 직통으로 동작하는 프로그램은 같은 계열의 날개셋 편집기밖에 없다. 레퍼런스로 삼을 프로그램이 이것밖에 없으니 편집기와 외부 모듈 중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판단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3) 이것도 아주 사소한 변화이긴 하다만,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모든 대화상자들을 꼼꼼히 검토했다. 그래서 버튼들만 쭉 나열돼 있는 곳에서 좌우 화살표를 누르면 성격이 같은 것들끼리 포커스가 순환되게 했다. 여기서 버튼이라는 건 '확인/취소' 같은 누르는 버튼뿐만 아니라 라디오· 체크 버튼까지 포함이다.
옛날에 이걸 한번 정비한 적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규칙이 깨진 부분이 다시 많이 생겨 있었다.

(4) 편집기의 '삽입-기타 가져오기' 대화상자도 해당 기능이 처음으로 도입됐던 3.0 이래로 변화가 없다시피했을 텐데..
콘솔 프로그램을 골랐을 때는 파일 경로와 인자, URL일 때는 주소.. 이렇게 각 방식에 필요한 추가 정보만 그때 그때 화면에 표시되게 외형을 바꿨다. 그 결과 대화상자의 크기도 약간 더 작아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 날개셋문자의 0문자 처리

끝으로.. 말이 나온 김에 이번 기회에 규약을 확실하게 정했다.
한글, 일반 문자, 특수글쇠 등.. 각 종류별로.. 종류만 그렇게 정하고 내부 코드값은 아무것도 없는 0인 날개셋문자를 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뭔가 크게 대단한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글을 조합 중인 상태에서 0번 일반 문자가 입력되면 조합만 종료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문자는 그 정의상 한글 조합을 무조건 종료시키고, 0번 문자는 '문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합만 종료되는 효과가 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글 기반이면서 초중종 세 성분이 모두 0인 날개셋문자는 한글 조합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시킨다. 다만, 조합 중이던 한글의 타입은 바뀔 수 있다. 가령, 두벌식으로 '각'을 입력하고 나서 세벌식 기반의 0문자를 입력하면 조합 중이던 문자의 외형은 동일하지만 내부적인 속성이 두벌이 아닌 세벌로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두벌식 모음 'ㅏ' 같은 걸 입력하더라도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나서 '가가'가 되지 않고 그냥 '각ㅏ'가 된다.

이런 경우와 달리, 특수글쇠 0문자는 그 어떤 side effect 없이 언제나 현행 조합 유지인 것이 반드시 보장되게 했다.
글쇠 수식에서 조건부로만 무언가가 입력되고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지금 입력을 그대로 놔두고 싶으면 특수글쇠 0문자를 의미하는 C0|0을 배당하면 된다. 단, 텍스트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아무 동작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조합 문자열을 덮어쓰는 동작이 발생하기 때문에.. 외형상 텍스트가 바뀐 게 없더라도 텍스트가 변경됐다는(modified) 판정을 받을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25 08:31 2018/06/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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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엔 철도에서는 KTX가 최초로 개통했으며(4월 1일), 서울 시내에서는 버스 전면 개편(7월 1일)이 시행되어서 우리나라 대중교통에 굉장히 큰 변화가 생겼다.

먼 옛날에 서울 시내버스가 분홍색 도색이었던 것은 본인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실시간 위치 안내가 있나, 한눈에 보이는 노선도가 있나, 앱이 있나, 환승 할인이 되나, 도대체 뭐가 뭔질 모르겠으니, 서울에서 살지 않는 초행자에게 지하철 말고 버스는 도저히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던 와중에 버스 개편은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여러 마리의 토끼들을 한번에 잡으면서 가히 혁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 운임 결제 수단

  • 선· 후불 교통카드(티머니!)가 도입되어 기존의 현금, 토큰(버스), 마분지(지하철) 승차권을 모두 대체했다.
  • 이 통합 결제 수단을 기반으로, 교통수단간 최대 5회까지 무료 환승과 거리 비례 요금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 지하철은 종전의 권역별 요금제에서 탈피하여, 최단거리 추정 원칙 하의 거리 비례 요금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분지 승차권 기반의 정액권이 없어진 대신, 카드 기반의 지하철 전용 정기권이 등장했다.

(2) 버스의 용도 세분화와 경쟁력 강화

  • 버스들은 부도심 구간 순환, 지선, 간선, 광역이라는 성격별로 선명한 빨노초파 4색으로 바뀌었다. 흰 바탕에 색깔 줄무늬 그런 거 없고 차체 전체가 같은 색으로 칠해졌다.
  • 그리고 버스들의 노선 번호도 서울을 7등분한 권역 번호를 기반으로 예전보다 훨씬 더 일관성 있게 바뀌었다.
  • 큰 간선 도로에는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생겨서 간선 및 광역 버스들의 주행 속도가 크게 향상되었다. 법적으로 고속버스가 전체 구간의 몇 % 이상을 고속도로로 다니는 버스이듯, 간선 버스는 노선 중 몇 % 이상을 반드시 여기로 다니는 버스로 정의시켰다.
  • 버스 회사들이 장사 잘 되는 노선에만 편중되어 양극화+치킨 게임 공멸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준공영제가 시행되었으며, 기존 여러 회사들을 통합한 컨소시엄 업체도 등장했다. 사기업 일색인 버스 업계에 '한국 BRT, 서울 교통 네트웍'처럼 뭔가 공기업 같은 이름의 회사가 이때 생겼다.

2004년 버스 개편 이전에도 대도시에는 초록색 차선으로 구분된 버스 전용 차로라는 게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중앙의 1차로가 아니라 제일 마지막 n차로에 있었다. 정차나 우회전 하는 차들 때문에 차로를 온전히 버스만을 위해 분리할 수가 없었으며, 24시간 내내 시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 비해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는 굉장히 큰 변화였다.

그리고 덤으로..
마침 버스· 지하철의 요금도 올릴 때가 됐던지라-_-;; 버스 개편과 함께 그 당시 700원이던 기본 요금이 800으로 올랐다. 더구나 현금을 사용하면 100원이 또 추가되니 사실상 200원이 오른 셈이었다. 하지만 카드로는 환승 할인이 되니 체감 대미지가 많이 상쇄됐다.

1. 요금 관련

버스는 원래 한 번만 돈을 내면 끝인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환승 할인이란 게 도입되면서 내릴 때도 뭔가를 대고 찍는 형태로 바뀌었다. 찍고 내린 뒤에 후속 교통수단을 30분 이내에만 탑승하면 된다. 그것도 심야와 러시 아워에는 1시간으로 term이 더욱 관대해진다.

단, 지하철은 원래 자기 내부에서 환승 통로가 제공되고 있으니, 소프트 환승 예외가 인정되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찍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 환승 할인이 인정되지 않는다. 옛날에 노량진 역이 1-9호선간 환승 통로가 없던 시절에는 소프트 환승이 됐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오로지 경의선 서울 역만이 남아 있다.

심지어 공항 철도 서울 역도 과거에는 소프트 환승이 됐다가 환승 통로가 개통한 뒤부터는 규정이 폐지됐다. 지하철 사이의 소프트 환승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에만 인정한다는 것이 일관된 정책인 듯하다. 그러니 용산-신용산 같은 경우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버스도 같은 번호의 버스를 내렸다가 다시 타는 것은 환승으로 인정되지 않고 재승차(= 기본요금 재부과)로 처리된다. 같은 번호의 반대편 방향이더라도 말이다.

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한 카드로 여러 명이 함께 타는 '다인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처음에 탈 때 한 번만 찍고 끝이던 과거 관행을 존중(?)하여, 비환승 1회만 탑승일 때는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도 언제나 기본 요금이다. 그리고 내릴 때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 찍고 내렸다 하더라도 버스 1회 탑승은 기본 요금 거리를 초과해서 탔다 하더라도 거리 비례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교통수단을 2개 이상 이용하여 일단 환승 할인을 받았다면, 더 이용하는 교통수단 없이 버스에서 최종 하차를 앞두고 있을 때 카드를 반드시 찍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 교통수단 이용은 끝을 알 수 없으니 최장거리를 뛴 것으로 간주되며, 기본요금의 두 배가량의 페널티를 받는다. 이게 거리 비례 요금제의 1회 탑승에서 이론적으로 산정하는 최대 액수이다.
그리고 경기도 시내버스들은 서울 버스 같은 유도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비환승 1회 탑승이더라도 내릴 때 카드를 반드시 찍어야 한다.

초기에는 빨간 광역 버스들은 환승 할인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 기억하시는가? 2010년대가 돼서야 환승 할인이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인천· 경기 소속의 광역 버스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철도계에서는 공항 철도와 각종 경전철(의정부, 용인)들도 처음에는 환승 할인을 해 주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독불장군은 소탐대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운영사들도 인정하였으며, 차라리 기본 요금을 추가로 걷을지언정 환승 연계는 다 되도록 시스템이 바뀌었다.

한편, 버스가 그렇게 바뀌는 동안 지하철에서는 지난 2009년, 지하철 9호선의 개통과 함께 서울· 수도권 지하철 전체에서 마분지 1회용 승차권이 완전히 폐지되어 사라졌다. 9호선은 처음부터 마분지 승차권 투입구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1회용 승차권도 반영구적으로 재활용 가능한 카드 형태로 바뀌었는데, 이건 하차 과정에서 집표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집표를 유도하기 위해 승차권 구입 시에 부득이하게 보증금 500원을 추가로 걷게 되었다. 그래도 보증금이 카드의 제조 원가보다는 여전히 저렴하다.

모든 지하철역에서 돈거래를 하는(= 교통 카드 충전과 승차권 판매) 유인 창구가 사라진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이지 싶다. 지금이야 최저임금 상승 때문에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들이 온통 무인으로 바뀌는 추세이나, 지하철역은 훨씬 더 전부터 단순한 업무는 모두 무인화되었다. 서울 지하철이 처음 개통했을 때는 지하철을 탈 때도 역무원이 승차권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서 개찰을 했는데 그와 비교하면 참 드라마틱한 변화이다.

2. 그때와 지금의 비교

버스 개편이 시행됐던 첫날에는.. 그냥 바뀐 것 자체 때문에 혼란스러워한 사람, 정치 성향 때문에 이 명박 서울 시장을 괜히 싫어했던 사람들까지 몽땅 난리를 쳤다. 쓸데없이 크게 적은 알파벳 기호 때문에 'X랄염병 버스', 그리고 버스들을 몽땅 중앙 버스 전용 차로에 집어넣었다가 생겨난 '버스철' 등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미흡했던 점은 차차 개선되었으며, 버스 개편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외국에서도 이 버스 개편 사례를 배우러 올 지경이 됐다.

지금은 버스 개편 초기 내지 당시 노선 설계자들이 의도했던 것만치 색깔별로 버스들의 성격과 용도가 분명하게 나뉘지는 못한 듯하다.
일단 노란 버스들은 전멸하다시피해서 남산 인근에 극소수 노선밖에 없으며, 탑승은커녕 구경조차 한 번도 못 해 본 사람들이 많다. 강남이나 여의도에 있었다고 하는데 난 직접 본 적이 없다. 이젠 차라리 마을 버스들에 노란색을 부여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이다. 단, 노란 버스는 의외로 기본 요금이 초록· 파랑 버스와 같고 마을 버스보다 비싸다.

그리고 초록과 파랑 버스들의 구분도 굉장히 모호해졌다.
초록 버스 중에도 어정쩡한 장거리 노선이 있고, 파랑 버스 중에도 간선 도로를 막 많이 달리지 않는 게 있다. 원래 파랑 버스는 같은 구간 안에서도 정류장을 덜 서고 기본 요금도 더 비싸게 책정할 생각이었지만.. 거기까지는 맹렬한 반대 민원 앞에서 버로우를 탔다. 초록 버스와의 차별화를 포기하는 쪽으로 갔다.

버스 개편이 처음 시행됐을 때는 간선 버스에 굴절(일명 아코디언) 버스도 잠시 등장했다. 하지만 외제차는 아무래도 유지 보수가 불편하다 보니 곧 없어졌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반대로 국산 인버터를 장착한 차량을 도입했다가 잔고장이 너무 잦아서 도로 없앴는데 흥미로운 점이다.

2010년대에 와서는 굴절 대신 2층 버스가 서울시는 아니고 경기도 광역/급행/좌석버스 위주로 등장해 있다. x축을 늘리려다 말고 그 대신 y축을 선택한 모양이다. 하지만 얘도 외제차이고 잔고장에 취약해서 버스 회사들이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번 수리를 맡기면 부품 구하는 동안 그냥 세월아 네월아여서..

버스의 노선 번호들은 자릿수도 서로 제각각 다르도록 굉장히 기발하게 정해져 있다.

  • 노랑 순환은 한 권역을 벗어날 일이 없고(한 자리) 종류도 다양하지 않으니(한 자리) 번호가 총 두 자리..
  • 초록 지선은 한두 권역을 다닐 수 있고(두 자리) 종류가 다양한 편이기 때문에(두 자리) 총 네 자리..
  • 파랑 간선은 서로 다른 권역을 누빌 수 있고(두 자리) 종류가 지선만치 많지는 않기 때문에(한 자리) 총 세 자리.
  • 빨강 광역은 총 네 자리이지만 첫 자리가 9로 시작..

서울 권역 번호는 1~7까지 있으며 0은 도심이다. 9는 광역 버스를 나타내는 접두사로 예약돼 있으니 결국 8이 하나 남는데.. 8xxx로 시작하는 번호들은 각종 맞춤형 지선 버스들을 가리키는 특수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N으로 시작하는 심야 전용 간선 버스는 2004년 버스 개편 당시에는 없다가 나중에 등장했는데, 심야에 귀가하는 직장인들의 교통비 절감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반응이 좋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이 자정에서 새벽 1시로 운행 시간이 연장된 것도 200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였지 싶다.

20세기에는 시내버스가 디젤 대신 천연가스 기반으로 바뀌고, 엔진이 차체의 앞이 아닌 뒤로 옮겨지고, 그것도 모자라서 저상 차량까지 등장한 것이 변화였다. 더 옛날에는 안내양이 없어지고 하차벨이 생긴 것, 시내버스에서 감히 에어컨 바람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였다.

그랬는데 21세기에는 저런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겼고 버스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조회하면서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xx번 버스 yy분 후 도착 예정, 현재 이 차의 내부 혼잡도는 zz" 이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단순히 저 버스가 현재 어느 정거장에 있고 여기까지 몇 정거장 남았는지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건 신경 쓸 필요 없고 아마 지금으로부터 몇 분 뒤에 도착 예정이라고 더 직관적인 정보가 제공되는데, 버스는 지하철보다 정시성이 훨씬 더 떨어지는 교통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이 예상 시각이 생각보다는 꽤 정확하다. 이건 그 버스의 이 구간 이 시간대에서의 평소 운행 통계 데이터를 토대로 아주 정교하게 산출된 값이기 때문이다.

또한, 운전석 주변이 온통 투명 플라스틱 차단막으로 둘러진 것도 내 기억이 맞다면 2010년대부터.. 버스 기사 폭행 사건이 몇 건 터진 뒤에 관련법이 강화됨과 동시에 시행되었지 싶다. 그 이전에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기억 나시려나 모르겠다.

버스 요금은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평균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많이 오른 요금에 속한다. 물론 처음에 워낙 저렴하게 시작하기도 했고, 또 그때에 비해 지금은 승용차와 지하철 때문에 버스의 수송 분담 비율 자체도 많이 내려가서 1인당 단가가 올랐으며, 지금은 비싼 대신에 과거에 누릴 수 없었던 여러 편리한 인프라를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버스 도착 예정 시각 안내만 해도 우리 생각보다 굉장히 대단한 기술을 동원하여 돌아가는 물건이다. 승객이 마냥 바가지만 쓰고 있는 건 아닌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통했던 KTX도 초기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 그래도 교통수단 시스템이 선진적으로 바뀌면서 공통적으로 '환승'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대중교통이 적절히 갈아타면서 spoke-to-spoke (거점 중심)가 아니라 일일이 point-to-point (문에서 문까지..)를 추구하다가는 속도와 접근성 어느 것 하나도 못 잡으면서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고속철이야 1990년대부터 대놓고 벌어졌던 국책사업이다만, 서울 버스 개편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처음에 생각해 내고 추진한 관료와 학자와 엔지니어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고 싶다. 참 큰일을 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22 08:33 2018/06/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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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헌 2018/06/22 18:26 # M/D Reply Permalink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을 LG CNS 에서 했는데, 런칭 전날에 전직원이 밤새 서울시내를 돌아다시면서 테스트를 했다는 도시전설이 있더군요. 믿거나말거나..

    이런 정도 규모의 거대한 시스템 개편은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이 안갈 정도로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ㅎㅎ 어디 회고나 백서 같은게 있으면 읽어보고 싶네요.

    1. 사무엘 2018/06/22 19:31 # M/D Permalink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_^
      거기에서 유래된 '한국스마트카드'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긴 했죠!

      저 역시 버스 개편과 관련해서 관계자가 나중에라도 회고록 같은 거 출간했으면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버스 개편 이전에 서울 올림픽 대회 진행 통합 전산망 설계, 금융· 행정 전산화, 열차 승차권 발매 전산화 같은 것도 다 우여곡절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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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라는 그룹이 부른 <칵테일 사랑>은 1994년 즈음에 국내 가요계에서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명곡이다.
그때 본인은 초딩이었다. 신세대 X세대 이러고 있었고 PC 통신이 아직 활발하게 돌아갔으며, 개인용 PC는 486이다 펜티엄이다 멀티미디어다 이러던 시절이었다.

칵테일 사랑은 몽환적인 반주와 적당히 아름다운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뭔가 하늘의 목소리 같은 노랫소리가 어우러져서 가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당시 음반에는 동일곡의 아카펠라 버전도 수록돼 있었다. 마치 붉은국과 맑은국, 후라이드와 양념 차이 같은데, 반주를 뺀 노래 음원에서는 '~팝 ~팝 ~드드드 두두' 이러는 비트박스(?)도 더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명곡을 만들어 냈으니 음반이 몇 장 팔리고 요즘 같으면 유튜브 조횟수가 얼마가 나오고, 작사· 작곡자와 가수는 떼돈을 벌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런 소식은 별로 들리는 게 없다. 그룹 마로니에와 가요 칵테일 사랑은 관계자들이 얽힌 내력이 참 복잡하기 그지없다.

마로니에는 멤버들의 세대 교체가 잦았다. 칵테일 사랑은 초창기 창립 멤버들의 작품으로, 김 선민 작사· 작곡이고 최 선원· 신 윤미 노래이다. 우리가 아는 원곡의 녹음은 1993년 초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이 훗날 이 정도로 대히트를 칠 줄은 노래를 만든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녹음을 마친 뒤 가수 구성원이 공중분해돼 버렸다. 최 선원은 소속사를 변경하고 떠났으며, 신 윤미는 더 큰 물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유학도 아니고 아예 이민을 떠났다.

그러니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김 선민은 다른 멤버를 뽑아서 칵테일 사랑의 얼굴마담 역할을 시켰다. 백 종우(남성)와 김 민경· 김 정은(여성). 이 트리오가 TV 출연도 하고 뮤직비디오 녹화도 했다.
곡의 퀄리티에 비해 굉장히 뜬금없고 촌스러운 티가 나는 그 동해 바닷가 뮤비 말이다. 그냥 가사 내용대로 그대로 길거리와 카페를 배경으로 넣기만 해도 저것보다는 나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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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상에서 유난히 예쁜 미인이다 싶은 사람이 김 민경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CF 모델 출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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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마로니에는 도덕적으로 좀 지탄 받을 짓을 했다.
립싱크야 아직 그때까지는 관행이었고 신규 대체 멤버들 역시 실력이 전혀 없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음반의 노래와 얼굴마담들 라이브가 퀄리티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출처 명시 없이 기존 신 윤미의 결말부 코러스 부분까지도 막 도용해서 내보냈다. 조가 G에서 Ab로 올라가고 "마음~ 울적할 때에~~ 거리를 걸어 보고 취해도 보고~~ 우우우~ 으아아아~~" 그 클라이막스 말이다.
그러니 진짜 가수인 최 선원· 신 윤미가 자기 정체를 다시 밝히고 저작권 소송을 걸어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룹 마로니에는 '칵테일 사랑'만을 남긴 채, 큰 주목을 못 받으면서 대중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6~07년쯤엔.. 마로니에의 초창기 멤버들은 어찌 됐는지 모르겠고, 백 종우(마로)가 한 타이밍 더 나중에 들어왔던 여성 멤버인 김 지영(파라)를 주축으로 해서 '마로니에 걸즈'라는 여성 듀엣 그룹을 결성했다. 백 종우는 기획· 프로듀싱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른 여성 가수를 하나 더 충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2011년, 마로와 파라는 오랜 교제 끝에 결혼했다. 칵테일 사랑을 리메이크 해서는 부부가 같이 종종 매스컴에 출연해서 불렀는가 보다. 보기 좋은 커플이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리메이크한 곡이 원곡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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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 윤미 씨도 미국 간 지 10수 년 만이던 2005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자기가 직접 칵테일 사랑을 다시 부른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원판 목소리가 어딜 가지는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결말부의 힘찬 코러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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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로 인해, 칵테일 사랑은 처음 노래를 부른 여자, 원곡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 그리고 지금 마로니에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룹의 여자 멤버가 모두 다른 인물인 노래가 됐다. 근본적으로는 오리지날 가수가 노래에 대한 권리를 확실하게 챙기지 않고 일찍 잠적해 버려서 벌어진 해프닝이라 하겠다. 그랬는데 곡이 너무 대박을 쳐 버리고, 이게 아직 국내 가요계의 후진적인 관행이던 저작권 의식이나 립싱크하고도 얽혀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칵테일 사랑과 비슷한 시기에(1993~94) 히트 쳤던 국산 명작 게임인 미리내 소프트 "그 날이 오면 3"이 20년 뒤에 "드래곤 포스"라는 모바일 게임으로 리메이크된 걸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울러, 드라마 모래시계라든가 더 클래식 '마법의 성'도 비슷한 시기에 히트 쳤던 작품들이며 추억거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9 19:35 2018/06/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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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

1970년대 중반, MS-DOS의 전신격인 CP/M 때부터 있었던 완전 초창기 실행 파일 포맷이다. 고안자는 개리 킬달.
엄밀히 말해, 얘는 파일 포맷이라 할 것도 없는 쌩 메모리 이미지 덤프였다. 그 어떤 고유한 헤더나 메타데이터도 없이 그냥 곧장 기계어 코드와 데이터가 쭉 이어질 뿐이었다. 코드와 데이터는 모두 64KB 단일 세그먼트에 묶여 있었고, 메모리 주소의 첫 256바이트는 시스템 용도로 예약되어 있어서 프로그램이 사용할 수 없었다.

확장자가 com인 실행 파일은 그냥 명령 프롬프트에서 돌아가는 간단한 유틸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겨우 몇만 바이트 남짓한 com 형태로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는 게임도 많이 나왔었다. 그래픽이라고 해 봤자 320*200 4색 CGA 수준이긴 했지만.. Alley Cat처럼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컴퓨터의 대세가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고 성능과 메모리 용량이 향상되자, 이 형식은 큰 프로그램을 만들기에는 너무 비좁아졌다. 그래서 확장할 필요가 생겼다.

2. MZ EXE

1983년, MS-DOS 2.0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그 전의 1.0은 파일 시스템에 서브디렉터리라는 게 지원되지 않았으며 실행 파일도 아직 COM밖에 없었다.
EXE는 단일이 아닌 다중 세그먼트(특히 코드 영역과 데이터 영역의 분리)를 도입하여 64KB 공간 한계를 얼추 극복했다. 메모리 모델이니, far near 포인터니 뭐니 하면서 일이 굉장히 복잡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또한, 멀티태스킹 환경에 대비해서 재배치 정보도 도입했다. 이제 좀 운영체제에서 파일을 있는 그대로 메모리에 올리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가공과 상대 주소 보정을 하는 loader가 필요해졌다.

오늘날 모든 EXE들은 앞부분에 MZ라는 문자로 시작하는 간단한 헤더를 갖추고 있다. MZ는 EXE 파일 포맷의 설계자인 당시 마소의 프로그래머 Mark Zbikowski의 이니셜이다! zip 압축 파일의 식별자인 PK (개발자 필립 카츠)만큼이나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파일 포맷 식별자 이니셜일 것이다. MZ 저분은 미국 토박이라고 하지만, 이름으로 보아하니 러시아 계열 이민자의 후손인 듯하다.

비록 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Windows용 실행 파일들은 지금까지도 과거 호환을 위해서 앞부분에 최소한의 MZ EXE 헤더 껍데기는 넣어 놓는 게 관행이 돼 있다.
한편, 32비트 이후부터는 프로그램들이 옛날처럼 다시 단일 세그먼트 기반 flat 모델로 돌아갔다. 단지, 그 세그먼트의 이론적 최대 크기가 꼴랑 64KB이던 것이 4GB로 왕창 커졌을 뿐이다.

3. NE (new)

1985년에 발표된 Windows 1.0과 함께 등장한 포맷이다. 도스와는 다른 방식의 API 호출, exe와 dll의 구분, 표준화된 리소스와 버전 정보 데이터, 함수의 import와 export 내역처럼 도스용 exe에는 없던 추가적인 정보가 많이 필요해진 관계로 새로운 실행 파일 포맷을 또 제정한 것으로 보인다. 단, 맨 앞부분은 그냥 도스 EXE처럼 시작하고, 새로운 방식은 다른 오프셋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NE 다음의 PE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NE는 Windows뿐만 아니라 마소에서 1986년경에 잠시 만들다 말았던 일명 '멀티태스킹 MS-DOS 4.0'(일반적인 그 MS-DOS 4.0 말고)용 실행 파일 포맷으로도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스는 텍스트 기반 환경이지만 Windows는 GUI 환경이고, 16비트 Windows에는 딱히 콘솔(명령 프롬프트)이라는 서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이너리 수준에서의 파일 포맷만 일치할 뿐, 양 플랫폼의 실행 파일을 딴 데서 원활하게 실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Windows 1.x부터 3.x까지 16비트 시절에 실행 파일 포맷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 2에서 3으로 넘어가던 시절에는 Windows에 386 확장 모드라는 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종전의 리얼(real) 모드뿐만 아니라 보호(protected) 모드에서도 잘 실행된다는 보증 플래그가 추가되었다. 평범한 Windows API만 쓴 프로그램이 여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이다.

1980년대 왕창 옛날에 만들어졌던 일부 Windows용 프로그램들은 95뿐만 아니라 3.x에서 실행해도 "구버전용임. 여기서도 일단 실행은 되지만 케바케이기 때문에 온전하고 정상적인 동작을 기대할 수 없음. 최신 버전을 구해서 쓰셈.." 이런 주의 메시지가 뜨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이 플래그가 없이 옛날 방식대로 빌드된 프로그램이어서 그렇다.
특히 대화상자가 캡션(제목 표시줄)이 없이 표시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옛날 냄새가 풀풀 난다. 캡션은 popup 윈도우가 아닌 overlapped 윈도우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NE 방식의 실행 파일에는 각종 코드와 데이터, 리소스들이 resident, non-resident, discardable 이런 식으로 속성 구분이 있었다. 컴퓨터에 메모리는 왕창 부족한데, CPU와 운영체제 차원에서의 가상 메모리 지원이 없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멀티태스킹을 구현하려다 보니, 돌아가는 방식이 가난함과 처절함 그 자체였다.
읽어들인 데이터는 언제든지 주소가 재배치되거나(단편화를 막고 연속된 많은 영역의 메모리를 확보할 수 있게), 삭제되어서 디스크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반드시 메모리에 언제나 불러들여 놓는 데이터는 성능 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만 한해서 지정해야 했다.

4. PE (portable)

1993년에 등장한 Windows NT 3.1에서 첫 도입된 또 다른 새로운 실행 파일이다. AT&T에서 오래 전에 개발한 COFF라는 오브젝트/라이브러리 파일 포맷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마 Windows NT 개발진의 출신 배경이 그쪽 계열 연구소여서 이런 포맷에 친숙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마소에서 개발하는 개발툴들은 16비트 시절에는 obj/lib의 포맷으로 인텔에서 개발한 OMF 방식을 썼지만 32비트부터 COFF로 갈아탔다. 그리고 exe/dll을 로딩하는 방식도 쿨하게 memory mapped file 방식으로 바꿨다.

PE는 현대적인 32비트 가상 메모리 환경에 맞춰졌기 때문에, 16비트 NE처럼 수동 메모리 관리를 염두에 둔 지저분한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그먼트 대신에 코드, 데이터, 리소스 등의 용도별 섹션이 있고, 이들 섹션은 간단한 문자열 태그로 구분하기 때문에 섹션의 추후 확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헤더에 CPU 식별자도 넣어서 굳이 x86뿐만 아니라 다른 CPU 아키텍처의 실행 파일도 이 방식으로 기술 가능하게 했다.

훗날 64비트 CPU가 등장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1990년대 말에 IA64의 출시를 염두에 두고 PE의 기본 틀은 동일한데 메모리 주소나 몇몇 size 필드만 4바이트에서 8바이트로 확장된 일명 PE+ 규격이 나왔다. 그래도 기존 32비트에서도 얘를 알아보고 최소한 "에러 메시지+실행 거부" 정도의 대처는 할 수 있다.
리소스는 64비트도 32비트와 바이너리 차원에서 포맷이 완전히 동일하다. 이게 무슨 기계어 코드도 아닌데 필드 크기가 굳이 64비트 크기로 확장됐다거나 한 건 없다. 문자열이 유니코드 기반으로 바뀌었으니 16비트 방식과는 호환되지 않지만 32와 64비트끼리는 호환된다.

오늘날은 재래식 네이티브 코드뿐만 아니라 닷넷 기반(가상 머신), 그리고 UWP용(일명 metro) 앱 같은 것도 나왔지만, 이들도 실행 파일들의 기본 골격은 PE로 동일하다. 그 안에서 읽어들이는 시스템 DLL과 구동 방식이 서로 차이가 날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7 08:36 2018/06/1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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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의 성수대교는 지금이야 빨강 도색의 8차선 교량이지만 20세기에는 하늘색 도색의 4차선 교량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일 당일 아침에 상판 하나가 그냥 뚝 무너져서 아래로 떨어지는 초유의 붕괴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똑같이 상판과 함께 밑으로 떨어진 피해자라도 추락 타이밍이 어떤지에 따라 운명이 너무, 완전히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전경들이 타고 있던 소형 승합차는 상판과 같이 거의 동시에 꽤 자연스럽게(?) 떨어진 덕분에 전경들 전원이 착지 타이밍 때 경상 정도밖에 입지 않았고 전원 무사했다. 심지어 외관상 차량의 손상도 별로 없었다.
아무리 같이 떨어졌다고 해도 차량 자세만 전방으로 유지됐을 뿐 엄연히 자유낙하이고, 엘리베이터가 수십 미터 높이에서 줄 끊어져서 추락한 것과 동일한데.. 그래도 차의 모든 타이어, 서스펜션, 시트 등이 충격을 고르게 흡수해 준 덕분에 탑승자들이 살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2) 그 반면, 같이 나란히 추락했던 옆의 승용차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강물로 돌진해서 침수됐다.
다른 어떤 승용차는 상판의 붕괴 직후에 다리에서 수직으로 추락해서 물에 빠졌다. 이건 차량 전방의 엔진룸이 수면 아래를 바라보는 자세이니 일종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같은 양상이 됐다. 차량과 탑승자가 온전할 수 없었다.

(3) 최악의 경우는 잘 알다시피 16번(오늘날 145번의 전신?) 시내버스였다. 붕괴 부위와 다리 쪽으로 반반씩 걸쳐 있다가 결국은 무게 중심이 앞으로 기울면서 전복된 채로.. 천장이 아래를 향하는 자세로 추락해 버렸다.
차량은 가히 성냥갑처럼 구겨졌고, 승객 대부분이 저 높이에서 머리 부분부터 땅에 부딪혔으니 몰살을 면치 못했다. 전체 사망자 32명 중 2/3인가 3/4가 이 버스 승객이었다.

이것 때문에 성수대교 붕괴가 더욱 비극적인 참사가 되었다. 훗날 2010년 7월, 인천대교 마티즈 김 여사 사고 때도 공항 리무진 버스가 뒤집힌 채로 다리 아래로 추락해서 승객이 12명이나 사망한 것이 위의 사고 형태를 재현했다.
이렇게 차량들의 추락 타이밍이 엇갈리는 편인데.. 그래도 다리 아래의 수심이 얕아서 상판이 침수되지 않고 마치 섬처럼 육지를 만든 것, 그리고 차량과 차량끼리 부딪쳤거나 심지어 저 시내버스가 아래의 다른 차량 위로 떨어졌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성수대교보다 더 옛날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폭발했을 때에도 승무원들은 그 폭발과 화재에 휘말려서 공중에서 전원 즉사한 게 아니었다. 승무원 탑승 구역은 그 와중에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들은 성층권에 진입한 15km에 달하는 높이에서 거의 2분 30초 동안 자유 낙하하다 해수면에 부딪힘으로써 추락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떻게 아냐고? "이 아줌마 콧구멍에서 반점이 나왔어..."는 아니고, 일부 승무원(2명? 3명?)이 착용한 헬멧에서 비상용 산소 마스크가 사용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장이 뛰는데, 시퍼렇게 산 채로" 우주선의 잔해와 함께 지상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물이라 해도 그냥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거나 별 차이 없는 지경이었다.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낙하산 같은 게 아닌 이상, 그 어떤 어설픈 보호 장비로도 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다만, 아까 성수대교처럼 어지간한 한강 다리 높이에서 사람이 뛰어내리면 추락 자체의 충격보다는 그냥 "입수 후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로 인한 기절 + 익사"의 수순으로 죽는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고 있을 때는 이론적으로는 바닥에 누운 채로 한 손은 이마를, 한 손은 뒤통수를 받치고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누울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겠지만... 추락 순간에 점프 같은 건 가능하지 않으며, 그러다 더 다치니 시도도 하지 말 것.

Posted by 사무엘

2018/06/15 08:36 2018/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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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본인도 좀 흔치 않은 협동과정 대학원에 소속돼 있긴 하다만..
서울대에 있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더 독특한 곳인 것 같다.

박사 졸업생 중에.. 문 중양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학부이지만 이쪽으로 전공을 완전히 바꿔서 현재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론 조선 및 한국의 과학사 쪽에 특화돼 있다. 국사 연구에도 이공계들이 좀 많이 와야 한다고 호소하던 허 성도 전 서울대 중문과 교수 같은 분이 좋아할 듯하다.

장 대익 교수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부인데 대학원을 가서는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이런 걸 쭉 파다가 어쨌든 역시 서울대 교수가 됐다. 다만 여느 교수들과는 달리 전공의 스펙트럼이 막 깊고 좁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분은 열렬한 다윈 매니아이고 창조과학의 맹렬 안티 저격수이기도 하다.;;

김 태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학부 졸업 후에 이 분야로 진로를 옮겼고, 현재는 전북대 교수 겸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세벌식 자판 사용자이고, 작년 가을엔 연세대에서 무려 한글 기계화의 역사에 대해 강연도 했다.
강연 중 화면을 보니 직결식 글꼴도 잠시 나오던데.. 청중 중에 그 직결식 글꼴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는 걸 과연 알았을지 궁금하다.

2. 멋있는 법조인

  • 한 문철: "예상할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던 사고. 100대 0입니다!" (이 판정을 보험사 직원들이 싫어합니다)
  • 천 종호: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 그럼 니 돈 주면 되지 왜 남의 돈을 뺏어 주...나!!! 공부만 잘하면 되나?"
  • 박 준영: 명대사 때문은 아니고.. 그야말로 한국판 엔자이 사건들을 전부 들춰 내서 피고인들의 누명을 벗겨 줬거나 그러려고 애쓰고 있구나.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2007년의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그리고 무기수 김 신혜 사건까지 다 동일 인물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글쎄, 아무리 사회 약자를 위해서 발벗고 일한다 해도, 변호사까지 돼서는 사무실 월세도 못 내고 파산에 스토리펀딩 운운하는 건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좀 언플 오바 같다. 선장이 자기 할 일 다했고 다른 선원과 승객들 다 대피시켰고, 자기도 충분히 구조되고 탈출할 수 있는데도..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고 객기 부리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데..
뭐 종합적인 평은 지켜봐야 할 일이고.

다만, 머리는 좋아서 사시까지 붙었는데 그 뒤로 사상은 이상해지고 맛이 가서 6· 25가 무슨 침인지 모른다거나, 자기 나라 정체성 부정과 적화 부역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한 법조인들과 그거 출신 정치인들은 하나도 멋있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징그러운 괴물처럼 보인다.

3. 멋진 말들

싸움  관련

  •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 미국 해병대 표어
  • 제군들은 조국을 위해 죽지 마라. 적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 조지 패튼 장군
  • 북한/베트남/쿠바를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 커티스 르 메이 장군
  • 적의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 메이어 다간 (전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 나는 만년 전사다. 여러분도 전사가 되어라. -- 남 재준 (전 국정원장)

우주 개발 관련 인물

  • 세상에 불가능한 게 무엇인지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 고다드
  •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 케네디 대통령

케네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옛날에 로버트 고다드도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는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나이키 광고 카피보다 훨씬 더 고퀄이다.
게다가 저 말은 고다드가 액체 연료 로켓을 개발해서 유명인사 되고 떼돈 번 뒤,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면서.. 밥 로스 화가가 "참 쉽죠?" 이러듯이, 기자들이나 후학 앞에서 덕담이랍시고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말은 고다드가 1904년,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덕분에 그 당시 관행이었던 졸업생 대표 고별 연설 때 나왔다..;; 질병 때문에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후덜덜이다.
참고로 서 재필도 1889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고별 연설을 한 바 있다. 공부 하나는 정말 겁나게 잘했는가 보다. 그리고 같은 고졸이어도 100년 전의 고졸과 지금의 학력 인플레 하에서의 고졸은 같은 레벨이 아니었을 거라는 게 실감이 간다.

물론 세상에는 엄연히 인간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도 있으며,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까라면 까"가 많은 폐단과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 신 앞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의 정상적인 지적 활동과 노력이 몽땅 쓸데없는 바보짓인 것도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으면 21세기가 다 돼 가지고서 달 착륙 자작극이네 NASA 음모론 그딴 소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 아폴로 13 (1995): Hello, Houston. This is Odyssey. It's good to see you again.
  • 에어 포스 원 (1997): Liberty 2-4 is changing call signs.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
  • 라이터를 켜라 (2002): "열차가 부산역에 멈춰 섰다. 다시 반복한다. 열차가 부산역에 안전하게 멈춰 섰다."

다들 비슷한 형태의 결말부이긴 한데,
1이 제일 스케일 크고 감격스럽고 멋있고.. 2는 그냥 통쾌하고 정의 실현을 대리 만족한 정도이고, 3은... 좀 병맛스럽다.

4. 경찰에 대한 뻔한 이미지

법조인 다음으로 경찰을 살펴보면.. 영화에서 경찰이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뭔가 판에 박힌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꼭 나온다. <아저씨>에서는 차 태식에게 "이 아줌마 콧구멍에서 반점이 나왔어. 뭔 얘긴지 알아?"라고 열과 성의를 다해 심문을 하던 박 형사가 있으며,
<범죄도시>에서 '진실의 방'을 빤히 쳐다보던 피의자에게 "뭐 보노, 새꺄? xx 터쟈뿔라.."라고 일침을 놓는 오 동균 형사가 있다. 주연 못지않게 아주 웃겼다.

그리고 미국물의 경우, 경찰은 근무 중에 끼니를 때우기 위해 꼭 도넛을 먹고 있다. 주토피아에서 아주 잘 묘사돼 있지만 꼭 주토피아만 그런 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도넛 역할을 하는 게 컵라면이라고 한다. 옛날에 강력 사건이 벌어져서 단체로 수색 작업에 나선 경찰들 모습이 매스컴을 탔는데.. "어, 그런데 저 경찰들이 먹고 있는 건 뭐야?" 이런 식으로 마케팅이 돼서 컵라면이 대박을 쳤다고 한다.

옛날에는 설거지를 해도 서양에서는 동물인 해면을, 동양에서는 식물인 수세미를 썼다고 하는데 문화권별로 재미있는 차이점이 보인다.

5. 한국, 일본, 미국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 군대를 일정 기간 강제로 의무적으로 다녀와야 하는 나라 vs
  • 국제법상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 (침략 전쟁, 해외 파병, 무기 수출 같은 거 할 수 없는 자위대만으로..)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 이 좁아 터진 땅덩어리 하나 겨우 지켜 내느라(그것도.. 같은 언어 쓰는 명목상의 동족으로부터) 천신만고 겪은 나라, 육군이 비대한 나라 vs
  • 2차 대전, 6·25,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등 세계 방방곡곡 남의 나라의 평화를 지키느라 애쓴 자국 군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나라, 해군이 비대한 나라

완전 극과 극이다.

6. 괴담과 도시전설

그러고 보니.. 내가 초딩 정도로 어렸던 시절엔 도대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이상한 괴담, 도시전설 같은 게 그리도 많이 나돌았다.
밤이 되면 학교 안의 무슨 동상· 석상이 살아 움직여서 책을 읽는다네, 눈에서 빛이 난다네 하는 거,
옛날에 조폐공사 사장의 딸 '김 민지' 양이 끔찍하게 유괴 살해 당해서 현행 동전 디자인에 그 아이의 족적이 곳곳에 들어갔네 어쩌네 하고.. ㅠㅠ

공포의 삐에로 인형의 섬뜩한 한 마디 "또 둘이네."라든가..
그러니 <공포특급>, <오싹오싹 공포체험> 이런 책도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국내에 암약 중인 "조선족 장기 적출단의 실체" 같은 게 괴담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관련 중국· 홍콩 영화가 인기를 끌기라도 했는지, '강시'라고 팔· 다리의 관절이 굽지를 않는 청나라 복장의 좀비? 드라큘라?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이놈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숨을 쉬지 않고 꾹 참아야 된댄다. 쟤는 모기처럼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끝으로, 초딩 시절에는 정말 몸서리칠 정도로 무서웠던 의료 통과의례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포경수술이요, 다른 하나는 주사의 끝판왕 일명 '불주사'라고 불리는 결핵 예방 접종이다.
세월이 흘러 포경수술은 굳이 모든 애들이 반드시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대세가 굳어져 가고 있다.

이거 원조는 유대인의 표적으로서 성경에서 당당히 언급되는 할례이다. 그런데 어느 미개한 곳에서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대상으로 소중한 부위에다가 무슨 짓을 하길래 거기에다가도 할례라는 말을 붙이고, 그러다 애 잡거나 성 불구로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불주사라는 용어 그 자체는 옛날에 물자가 부족해서 주사 바늘을 일회용으로 못 쓰고 알코올 램프 불꽃으로 소독해서 재활용하던 관행에서 유래되었다(흐음, 알코올 자체도 소독제인데..??). 하지만 주사 바늘은 사용 과정에서 바늘 끝이 미세하게 손상되고 뭉툭해져서 관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위생과 감염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사용해서 좋을 것은 전무하다. 마치 아날로그 신호나 JPG 그림이 열화되는 것처럼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내 기억으로 결핵 예방 접종(BCG)은 처음에 어깨가 아닌 팔뚝에 준비 주사를 놔 보고 며칠 뒤에 거기가 부풀어올랐는지의 여부에 따라 후속 접종을 하거나 안 했지 싶다.

엄청 옛날에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천연두 예방접종은 더 뜨겁고 따갑고 아팠는지 모르겠다만, 그 시절 얘기가 와전되고 과장되어.. 결핵 예방 접종까지도 무슨 담배빵을 지지기라도 하는 듯이 '불주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선사했던가 보다.

지금도 흉터가 남는 주사식 결핵 예방 접종 자체는 시행되고 있는가 보다. 그리고 옛날에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씰도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판매? 강매되었던 것인데 요즘은 옛날 이야기가 돼 간다. 차라리 카톡 이모티콘 같은 걸 이런 형태로 판매하는 게 더 나을지도..?

7. 흔한 오류

내 경험상, 가방끈 길고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이 특별히 빠지기 쉬운 위험, 오류 내지 함정이란 별 거 아니다.

(1) 자기가 배우고 아는 지식이나 이론이 실제로 유효하게 적용되는 조건, 문맥, 한계, 범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아무 데서나 나대는 것.
(2) 자기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이니까 딴 분야에서도 전문가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 위의 1번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고의적이고 적극적인 맥락에서다.


이 함정에 빠지면 그 누구라도 헛똑똑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내지 "저는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한 적 없습니다"처럼 되고 "난 오로지 완벽한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같은 망상에 빠지게 된다.
마음 상태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능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2 08:33 2018/06/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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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 애니메이션

요즘은 스마트폰의 카메라에 렌즈가 하나가 아닌 둘이 달려서 나온다고 한다. 음향은 진작부터 2채널 스테레오가 보편화되긴 했다만, 영상도 사람의 두 눈처럼 두 렌즈의 결과를 적절히 합성함으로써 시야각과 광량을 더 개선하고 더 나아가 공간 인식에도 참고하려는가 보다.

총으로 치면 총열이 두 개 달린 초강력 샷건 같다. 비록 카메라는 셔터를 누를 때 반동이 발생한다던가 하지는 않지만, 촬영도 조준 잘해서 흔들리지 않게 찍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뭔가 사격과 비슷한 면모가 있어 보인다.

총이 휴대성을 강조하느라 총구가 너무 작으면 화력이 감소하며, 총열이 짧으면 명중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이와 비슷하게 렌즈도 너무 작으면 화각이 감소하고 화면 가장자리가 휘는 왜곡이 심해진다. 초소형 몰래 카메라로 열악하게 찍은 영상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심한 걸 볼 수 있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그냥 자동화기를 넘어서 기관총 정도 될 텐데..
이게 실사 영화를 만들 때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실사 영화 그림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하는데, 한장 한장 보면서 2D 그림으로 일일이 베껴 그려 넣는 기법은 (1) 로토스코핑이다. 그리고 실사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찰흙 인형이나 레고 구조물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이동시키고 바꾸면서 찍는 건 (2)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1)은 애니메이션으로 실사에 준하는 자연스러운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2)도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장면을 실사로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긴 하지만, 노가다 양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3D CG 기술이 발달했고 인건비 절약이 중요한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3D CG로 오히려 2D 만화 그림체를 흉내 내고, 없는 찰흙 인형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격과 카메라 얘기가 동시에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스마트폰이 아주 가끔은 오발신(?) 현상이 있는가 보다.
전화기가 평소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분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아서 응답했는데 저쪽에서는 배경음만 들리고 아무 말이 없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직접 묻거나 다시 전화를 해 보면 자기는 그때 전화를 한 적이 없댄다.

자동차가 급발진 의심 증세가 있고 총기도 오발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스마트폰도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전화기를 잠금 해 놓고 지내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오발신이 될 수 있지? 궁금하다.

2. 총은 살살 쏘면 맞아도 안 아파?

  • 총은 살살 쏘면 맞아도 안 아파~!
  • 하드디스크는 데이터를 엄청 많이 집어넣게 되면 무게가 늘어난다.
  • 에어컨은 살살 약하게 틀면 전기를 덜 먹는다.

이런 예가 또 뭐가 더 있을까?
으음..; 뭐랄까 "무거운 사람이 가벼운 사람보다 같은 높이에서 더 빨리 떨어진다" 같은 급의 발상 같다.
기초 과학 법칙에 극도로 무지하거나, 현대 문명의 이기들의 기본적인 동작 원리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이게 다들 그냥 요술상자 매직· 블랙박스인 줄로만 아는 기계치라면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영구기관 같은 사이비 유사 과학 데에도 낚이기 쉬울 것이다. 사실, 마찰이 아주 작아서 굉장히 오래 술술 잘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기계만 해도 일상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으며, 영구기관인 걸로 착각하기 쉬우니 말이다.

에어컨이 전기를 덜 먹게 하려면 송풍기의 강도를 낮출 게 아니라 설정 온도를 높이거나, 아예 냉방을 끄고 송풍 모드로만 바꿔야 한다. 총을 살살 때리는 게 가능한 몽둥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거나, 에어컨을 뭔가 최첨단 고성능 선풍기의 연장선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착륙하려면, 기수를 아래로 향하게 할 게 아니라 위로 들고 엔진 출력이나 서서히 낮춰야 한다. 기수가 먼저 땅에 닿는 건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이다..;;
자동차가 피시테일에 빠져서 요동치고 있다면 오히려 가속을 해서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게 해서 불안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이렇듯, 기계를 잘 다루려면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조작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3. 90도 직사

군대에서는 총을 사용하는 훈련을 마친 뒤 복귀해서는 병사들 전원이 오와열 맞춰서 총구를 하늘로 들고 "노리쇠 후퇴 전진, 어깨 위에 총, 격발, 이상 무" 이렇게 총기에 총알이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데 이때 격발이 되어서 진짜로 하늘을 향해 90도로 총을 쏴 버리면 어떻게 될까?

  • "건전지에 전선으로 양극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나요?"
  • "자동차 운전 중에 기어를 갑자기 R로 바꾸면 어떻게 되나요?"
  • "망원경으로 태양을 직접 보면 어떻게 되나요?"

꼭 destructive하고 위험한 쪽으로 비상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엔 꼭 있다.

저 경우, 물론 바람 때문에 총알이 정확하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그대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공기의 저항 때문에 탄두는 처음에 격발됐을 때보다는 훨씬 더 천천히 땅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수치를 동원해서 구체적으로 그 위력이 얼마 정도 되는지... 총알은 고도 몇백 m 정도까지 올랐다가 1기압의 지표면에서 얼마 정도의 종단 속도로 떨어질지, 머리에 맞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낭설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만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뭐, 밤 하늘에 비행기를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는 것도 금지고, 공중으로 총을 쏘는 것도 도대체 무슨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절대 금지이긴 하다.
그리고 총알도 아니고 박격포를 90도로 쐈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이다. (박격포는 그 특성상 포병이 아닌 보병에 속하는 병과이다.)
저격수나 포병이나 다 규모가 차이가 있을 뿐 보병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화력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4.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과학 기술

  • 질소 합성: 인간은 다른 것보다도 우선 잘 먹어서 영양 상태가 좋아야 면역력도 좋아지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공기 중의 질소를 인공적으로 농축해서 암모니아를 합성하고 비료를 만들 수 있게 됨으로써 식량 생산에 치트키를 넣을 수 있게 됐다.
  • 백신과 항생제: 인류를 무수한 세균성 질병으로부터 구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게 없던 시절엔 야외· 야전에서 좀 크게 다쳤다 하면 환부가 세균에 감염돼서 사람이 픽픽 죽거나 사지를 통째로 절단하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출산이나 발치 이후에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 수돗물 염소 소독: 깨끗한 상수도를 보급하는 기본적인 인프라야말로 그 어떤 의료· 제약 기술 이상으로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큰 기여를 했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흐르는 물로 늘 손을 씻는 것 말이다.
  • 비타민의 존재 규명: 이거 존재를 모르던 시절에는 평범한 식단을 유지할 수 없는 군인이나 선원들이 전쟁 내지 항해 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비타민 결핍증으로 픽픽 쓰러지고 죽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안전 유리가 없던 19세기 말의 자동차 초창기 시절에는 시속 60이 채 안 되는 속도로 교통사고가 나도 앞유리창이 와장창~ 하면서 수류탄 파편으로 변해서 탑승자에게 사망 또는 중상을 야기했다. 뭔가 기본적인 안전 장치가 없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사람이 죽을 이유가 전무한 간단한 상황에서도 사람이 픽픽 죽거나 중상을 입어야 했다.
그리고 굳이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항생제나 백신이 없던 시절에 인류의 의료도 딱 그런 정도로 열악했었다.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불과 200년 남짓 전만 해도, 의사들이 방금 전에 시체를 부검했던 손으로 그대로 다른 환자들의 환부를 만졌다. 의사라는 사람들부터가 손 씻기의 필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이 점에서는 오히려 동양이나 유대인들보다도 더 미개했다.

양치질에서 물리적으로 구석구석 칫솔질을 잘 하는 게 치약 바르고 묻히고 가글링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듯, 손 씻는 것도 '흐르는' 깨끗한 물에 손가락 구석구석을 비비고 문지르는 게 비누를 묻히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완전 기름때 위주가 아닌 이상..). 그리고 그 물을 잘 소독하여 보급하는 것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수십 년 전에는 여객기 스튜어디스가 누적된 간접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려서 이걸 산업 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위험한 힌덴부르크 수소 비행선도 객실 안에 흡연실과 라이터가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참 어이가 없다.

그리고 대소변은 반드시 화장실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길거리에서는 함부로 침 뱉지 말고, 기침은 팔꿈치로 입을 가리면서 하고, 다같이 식사를 하는 곳에서는 국을 국자로 푸는 것.. 이런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전염병 예방에 기여를 한다. 미국도 20세기 초에는 "제발 침 뱉지 맙시다" 계몽 운동을 할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세균의 존재가 규명된 것까지는 좋은데, 20세기 초에 일본에서는 그 당시의 최신 첨단 학문 트렌드였던 '세균설'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비타민 결핍증까지 세균 탓이라고 오인해서 군인들을 필요 이상의 위생 검열로 고생시키면서 결핍증은 전혀 해결하지 못한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바이러스까지도 세균이라고 주장했던(주작? 단순 착오?) 노구치 히데요를 배출했던 동네답다.

5. 기타 기계· 기술 분야 얘기

(1) 에어컨은 필터 청소를 안 하고 관리를 잘 안 하면.. 켠 직후에 그 특유의 더러운 냄새가 바람에 잔뜩 섞여 나온다. 하지만 그 냄새는 본격적으로 냉동이 시작되고 찬 바람이 나오면 없어지는 편이다. 처음이 문제다.

디젤 차량도 차가 적당히 속도가 붙고 엔진 회전수가 올라간 뒤에는 괜찮은데 갓 출발할 때, 혹은 급가속을 할 때가 크리티컬이다. 연료의 불완전 연소 빈도가 높고 이때 매연이 뿌뿡 뿜어져 나온다.
VVVF 전동차 중에서 초기형인 GTO(사이리스터 소자) 기반 차량은 가속할 때 특유의 시끄러운 전자음이 나는데, 정작 전동기가 최대 출력에 도달하면 윙윙 소리가 인간의 가청 대역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조용해진다. 이런 것들이 다 기계의 특성인 것 같다.

(2) 내연기관에서 반켈 엔진이 왕복 운동이 아니라 회전 운동을 직통으로 생성하는 형태라면, 전동기에서 선형 모터는 특수하게 생긴 차량과 궤도를 이용해서 회전조차 생략하고 차체의 운동을 직통으로 구현한... 그런 형태로 볼 수 있겠다.
하긴, 옛날에 KTX가 처음 개통했던 시절엔 KTX가 살짝 떠서 달리는 자기 부상 열차(선로 위의 호버크래프트!!)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부상 열차가 다 시속 SF스럽게 400~500km/h로 달리는 것도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9 19:37 2018/06/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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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_=;;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에서 가까이서 본 광안대교와, (대략 1.2km 정도 떨어짐)
저 멀리 일본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본 광안대교(대략 50km)는 외형상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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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쪽에서 본 교량은 해수면 수평선의 아래로 푹 꺼지듯 내려앉아 있음이 명백하다.
굳이 이 사진 말고 어느 풍경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원근법 때문에 작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건 교량 위 아래의 기둥 크기 비율을 고려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래로 꺼진 건 명백하게 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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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은 말 그대로 해수면에 거의 근접하는 낮은 고도인 반면, 쓰시마 섬에 소재한 '한국 전망대'는 해발 70m에 달하는 언덕 위의 고지대이다! 그럼 상식적으로 광안대교가 밑동까지도 잘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참고로 광안대교의 도로는 해발 45~50m 남짓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할까?
답은 하나,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도 그냥 중앙의 소실점 근처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듯이 사라지는데..
그 현상만 갖고는 flat earther들이 선뜻 수긍하질 않으니, 이럴 땐 일개 선박보다 훨씬 더 크고 확실한 증거인 광안대교 풍경을 제시해 보자.

이 문제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성경 믿고 신의 창조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이다.
과학으로 검증이나 재현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지도가 평면이니까 지구도 평면이다" 수준의 유체이탈이나 마찬가지인 아무말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아폴로 승무원들이 달에 다녀 온 것도 사실이고, 지구가 둥근 구인 것도 사실이다. 그건 창조· 진화라든가 성경의 무오성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
"땅의 원"(circle of the earth - 사 40:22)이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땅의 네 모퉁이"(four corners of the earth - 계 7:1)는 지구가 평면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이 그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음모론 괴담스럽게 볼 필요 없다. 세상이 영적으로 아무리 악해도 멀쩡히 눈과 귀로 관찰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것을 호락호락 조작하고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지구 모양을 갖고 사기를 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이득을 얼마나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세상 다른 현상은 다 음모론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최소한 (1) 전기차가 망한 것과 (2) 인간이 과거에 달이 간 적이 있는지, 갔다면 지금은 왜 달에 더 안/못(?) 가고 있느냐 하는 건 음모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현상이다.

(1)은 무슨 석유 회사의 외압 로비 같은 거 전혀에 가깝게 없으며, 있다 해도 전기차 몰락의 주 요인이 결코 아니다. 그냥 전기차가 배터리의 무게와 가격, 항속 거리와 충전 시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기름차의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망했을 뿐이다. 전기차는 처음에 간단하게 만드는 게 기름차보다 쉬웠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실용화가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디젤 엔진 기반의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가 배터리 기반 전기차로 가능할까?? 21세기에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2) 역시..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니 더 안 보내는 것일 뿐이다. 허무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이것보다 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우주 관련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꼭 미국 NASA만 세상 모든 정보를 움켜쥔 빅 브라더스 흑막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왜 소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국 최대의 경쟁자요 어떻게든 미국의 행보에서 약점 잡을 것 찾느라 목숨을 걸었던 소련조차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냈던 걸 빼박 다 ㅇㅈ했구만.. 설마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같이 짜고 조작극을 벌였다고 믿으시는가? 애초에 NASA 자체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멘붕 하고서 미국이 허겁지겁 설립한 연구 기관일 뿐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 냉전이 끝났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대중화되고 정보화 시대네 뭐네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666이 어떻고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 중앙 통제되고 정보 접근성으로 인한 신분 계층 차별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괴담이 왕창 나돌았다.
난 그 심정은 이해한다. 198, 90년대라면 나도 그런 쪽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의 뚜껑을 열어 보니 세상은 그렇게 막장으로 무식하고 폐쇄적이고 흉물스럽기보다는.. 훨씬 더 상업주의 자본주의적으로 돈의 논리를 따라 개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기술과 정보들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기는커녕,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무료로 내지 아주 저렴하게 풀렸다. CCTV, 블랙박스, 중앙집권 전산화 덕분에 치안, 행정과 금융이 정말 투명하고 깨끗해지고 신속· 공정해졌다.

남극과 달은 은폐는커녕 표면의 스트리트 뷰가 나도는 지경이다!
아폴로 우주선을 제어하던 컴퓨터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가 github에 공개되어 있다. 설마 그게 다~~ 주작 조작이겠는가?

물론 그것들이 마냥 자선행위 차원에서 풀린 건 아니며, 그 투자 비용은 더 교묘한 방식과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회수되긴 할 것이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던 기술과 집중되었던 자본이 나중에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쪽으로 얼마든지 악하게 쓰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구체적으로 실현될지 우리로서는 선뜻 추측할 수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그 엄청난 기술들이 대중들을 통제하여 고작 아폴로 계획 자작극이나 지구 평면이라는 엄청난 팩트(?)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어 쓰이고 있다고 믿는 건... 성경을 믿는 것보다 정말 엄청나게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날 같은 정오 시간대에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림자 길이가 차이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그걸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추측 계산해 내기까지 했다. 이 때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 중간 시기이던.. 그야말로 엄청난 옛날이다. 기구 하나조차 띄울 여력이 안 되던 시절에 지구가 둥근 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고, 그 둘레를 오늘날의 측정값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이다.

컴퓨터, 우주선, 휴대전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2천 몇 백 년 전의 사람보다도 통찰력이 뒤쳐져서야 되겠는가?
세상 자녀들이 빛의 자녀보다 더 지혜롭게 머리 잘 돌아가는 분야가 있다는 건 성경도 인정한 팩트이다(눅 16:8). 그걸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7 08:33 2018/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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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8/07/14 01:08 # M/D Reply Permalink

    제가 이걸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저는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는 이과생이었고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었으며
    대학에서는 공업수학과 4대역학(열역학, 재료역학, 유체역학, 동역학)을 공부했었습니다

    initial condition :
    1)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대로
    지구는 반지름이 6377000 m인 구라고 가정
    2) 쓰지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광안대교까지 거리는 50000 m라 가정(네이버 지도에서 보면 실제는 56000 m 정도)


    1st. 쓰지마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관측자의 높이를 해발 0 m 라고 가정했을 때
    50000 m 떨어진 거리의 광안대교는 해발 몇 미터부터 보일 것인가?

    고1 수학에서 원의 접선의 방정식과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면 이건 금방 풀 수 있습니다
    제 연습장에는 완벽하게 풀이했지만 타자로 치기 번거로운 관계로
    간단한 풀이방법과 결과만 소개하고 실제로 맞는지는 직접 계산해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저는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했으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구가 둥글면
    해발 196 m부터 보이게 됩니다
    즉 광안대교가 보여서는 안 됩니다


    2nd. 쓰지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관측자의 높이를 해발 70m라고 가정했을 때
    50000 m 떨어진 광안대교는 해발 몇 미터부터 보일 것인가?

    원 밖의 한 점에서 그은 접선의 방정식입니다
    첫번째 풀이보단 많이 복잡하지만 이것도 고1 수학 수준입니다

    지구의 중심을 xy좌표의 (0,0)으로 하고 반지름은 6377000 입니다
    쓰지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관측자의 높이(원 밖의 점)를 (0, 지구 반지름 + 해발고도)
    즉 (0, 6377070)으로 가정합니다

    연습장 3쪽 정도 나왔는데
    31.743 m부터 보여야 합니다
    광안대교 도로의 높이가 50미터라고 하면 30/50즉 해수면에서 도로까지 거의 60%에 해당하는 지점이
    안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참고로 해발 70미터에서 해수면(지구의 표면)이 보일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9879m입니다

    <풀이법>

    해발 고도를 0m라고 가정 했을 때

    "반지름 * 각도 = 호의 길이"를 이용하여 호의 각도를 구하고
    빛이 직진하며 이 각도로 반지름과 탄제토 각도를 곱하고
    피타고라스 정리를 활용하면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해발 고도를 70m라고 가정했을 때

    직선의 방정식 y = mx + 6377070
    원의 방정식 x^2 + y^2 = 6377000^2

    직선이 원의 방정식에 접하는 기울기를 찾고
    (제가 찾은 것은 m = -4.685511425 * (10^-3)
    그러므로 직선의 방정식은 y = -4.685511425 * (10^-3) x + 63377070)
    원의 중심에서 광안대교까지 그른 직선의 방정식
    Y축에서 시계방향으로 (50000/6377000) 라디안 만큼 기울어진 직선
    즉 기울기 tan(pi/2 - 50/6377)
    직선의 방정식은 y = tan(pi/2 - 50/6377) x
    를 연립하고
    (0, 0)에서 부터 거리를 구하고
    이것에 원의 반지름을 빼면 됩니다

    <사람들이 직접 계산해 보지 않는 이유>
    심리적인 건데 요즘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필수로 극한의 개념을 배우게 되는데
    미분과 적분이나 테일러 급수전개나
    역학에서 미소 변화에서 tan a = a로 근사값으로 계산해 버리는데
    이게 지구도 그렇게 거대해서 극한의 개념이 적용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사실 지구가 크다고 해도 극한의 개념이 적용될 정도로 크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고1 수준의 수학 문제니까
    사무엘님도 충분히 계산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신세카이 2018/07/14 02:48 # M/D Reply Permalink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크기 계산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비친 그림자의 길이 차이로
    지구의 둘레의 길이를 측정했다는 것은 정말 유명한데요

    처음에 전제 조건을 다는 것이
    태양이 무한히 먼 거리이고 빛에 평행하게 들어온다고 가정을 하는데

    실제로 태양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멀지 않고
    빛이 직진은 하지만 평행하게 들어오지 않는다면
    지구가 둥글지 않아도 그림자의 길이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 "햇살 구름"이라고 검색해서
    여러 이미지들을 보면
    구름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절대 평행하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사무엘 2018/07/14 06:56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신세카이 님과 지금까지는 주로 정치· 종교 쪽 얘기만 나눴던 것 같은데 이 분야 얘기는 완전 처음이네요. ^^ 자세한 보충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이공계이신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삼각함수 동원해서 광안대교의 예상 높이를 혼자 얼추 계산해 보기도 했습니다. 부산과 쓰시마 섬에서 계산으로 얻은 높이 차이는 님의 말씀처럼 100수십 m대의 값이 나왔었습니다. 저는 input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196보다는 작은 값을 얻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예전에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갔을 때는 얘들은 도대체 태양열을 받는 각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서 한국보다 더운가 계산하려 '시도'한 적도 있답니다. (이건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부터 시작해서 계산에 필요한 input 값들을 정확하게 얻는 것부터가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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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나들이 2

특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일상· 근황에 가까운 가벼운 나들이를 요 근래에 했던 것들을 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개인 연구건 직장일이건 잘 안 풀리고 있다. ㅠ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답이 딱 안 나오고 개발 방향이 갈팡질팡이고 버그는 안 잡힌다. 올여름 중으로 날개셋 9.5 최종판과 후속 논문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것도 개인적으로는 악재다.

이럴 때일수록 좀 쉬고 머릿속을 초기화한 뒤, 완전히 새로워진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 노숙

내가 이런 걸 왜 지금까지 몰랐나 싶다.
비 내리는 날 새벽과 아침에 숲 속 나무 정자 아래에서 빗소리 듣고 풀 냄새 맡으며 뒹굴거리는 건..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중독성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키는 '한뎃잠'이라는 훌륭한 순우리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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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 올 때는 그냥 집 근처 공원의 벤치에 누워서 자 보기도 했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벤치의 중간에 일부러 칸막이나 손잡이를 만들어 넣는 것 같다만, 그래도 그게 없어서 한 사람이 쭉 누울 수 있는 벤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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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뎃잠을 여러 번 자 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1) 체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고 중간에 잘 깨긴 하더라. 어지간히 더운 곳이 아닌 이상, 잘 때 덮는 이불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또한, 찬 공기뿐만 아니라 (2) 차가운 바닥으로 열을 빼앗기는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푹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온을 위해서 밑에 까는 이불이 필요하다.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탄다.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또한 불면증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체질이다. 피곤하면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곧장 잠들며, 5~6시간이 워프된 후에 개운한 상태로 일어난다.
일부러 물을 1리터쯤 마시고 잠든 게 아니라면, 밤중에 오줌 마려워서 깨는 것조차도 거의 없다. 그 대신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가지만..

그래서 본인은 나름 야영· 노숙에 최적화된 체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보온을 충분히 하지 않은 생태로 밖에서 잠들면 기대했던 것보다 이른 서너 시간 남짓 후에 깨 버리더라. 충분히 못 자고 수면 리듬이 깨졌으니 그 뒤로는 편안한 하루가 보장되지 못한다. 그래도 그대로 코나 목이 가 버리고 감기에 걸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벽 1~2시에 잠드는 순간까지도 밖이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5~6시 무렵에 눈을 뜨면 밖이 상당히 춥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도 얼굴을 잘 감싸서 호흡할 때 찬 공기가 코로 대놓고 들어가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늦어도 5월 초 정도까지의 이야기이고, 계절이 여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에서 자듯이 대충 이불 덮고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모기 때문에 밖에서 제대로 자기 어렵다. 모기를 피해서 몸을 감싸고 덮어 버리면 밖이 시원하다는 장점이 사라지니까..
방수· 방충이 되는 1인용 텐트를 장만해서 적극 활용하고 싶어진다.

2. 남한강 이남-남한산성-서울 동남부 깜짝 드라이빙

팔당 댐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강북은 국도 6호선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데, 강남의 광주 방면으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머리를 식히고 분위기를 전환할 겸 달려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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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더 경치 좋고 쉬기 좋은 곳만 찾자면 북한강(가평 방면)이나 남한강 이북(양평 방면) 쪽으로 가는 게 더 낫지만, 더 남쪽으로는 갈 일이 잘 없으니 희소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개발되지 않은 오지 탐험은 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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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으로의 합류가 얼마 남지 않은 경안천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도보 등산과 시내버스(성남)에 이어, 동남쪽의 광주시 구간을 통해 드디어 자가용으로도 가 보게 됐다. 전에 서울 남산을 도보 등산과 케이블카에 이어 시내버스로도 간 것처럼 말이다.

서쪽 성남시 구간의 도로는 경사가 굉장히 급한 반면, 동쪽 광주시 구간의 도로는 길고 경사가 완만해 보였다.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산을 타고 오른다는 느낌 자체가 별로 안 들 정도였다.

3.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 산책

본인은 지금까지 북악산을 세 번 정도 서로 다른 등산로로 종단· 횡단을 해 봤는데.. 나름 남쪽으로 청와대를 가장 가까이 지나고(직접 볼 수는 없지만) 산의 정상을 지나고, 유일하게 신분증을 까고 출입 신고를 해야 입장할 수 있는 한양도성 구간을 최근에 한번 더 답사했다. 재작년 봄에 최초로 답사한 뒤 2년 만의 일이다. 사실, 여기가 제일 북악산다운 곳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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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근처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이 대대적으로 때 빼고 광 내서 밝은 구리색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1· 21 사태 당시에 같이 순직했던 정 종수 경사에 대해서도.. 참 늦은 감이 있지만 흉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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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덥긴 해도, 산은 잎이 초록색일 때 올라야 제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위의 사진은 정상에서 청운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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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엔 정상 표지석만 찍었고 이렇게 내가 나온 모습을 촬영하지는 않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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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한양도성 등산로(혹은 산책로? 탐방로?)는 성 바깥쪽이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다. 북악산의 다른 영역과 한양도성 등산로를 완전히 분리· 단절하여, 여기로 오려면 반드시 안내소를 거쳐서 번호표 목걸이를 받아야 하게 말이다.

이 등산로보다 더 안쪽으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철조망도 당연히 있으며, 이건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이탈하여 풀숲을 헤치며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당사자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단순한 동네 뒷산이나 공원이 아니라 무슨 전방 같은 군사 시설 주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조선 시대 유물과 한데 어우러졌다는 것이 북악산 등산의 묘미이다.

대부분의 산책로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성을 따라 나 있지만, 잠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4. 용마-망우산 구간 재답사

본인이 지금까지 아차· 용마· 망우산 일대를 올랐던 내력은 다음과 같다.

  • 가장 먼저 서쪽 중곡 역 방면에서 용마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찍었다. 다음으로 능선 겸 서울 둘레길을 따라서 북상하다가, 더 동쪽의 망우산 중심부로 이탈하여 망우산 정상 표지도 봤다. 하산은 북쪽의 시립 묘지(일명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했다. 당시 산에서 비를 철철 맞았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 2차 답사 때는 동쪽의 아차산 입구에서 산을 올라서 산 정상을 찍었다. 그 뒤 용마산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북상하다가 구리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 3차로는 아예 차를 가져가서 시립 묘지에서 들어갔다가 그리로 나왔다. 차도를 따라 시민 묘지만 한 바퀴 돌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각종 옛날 유명인사들의 묘소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답사 당일은 아주 흐렸으며 산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이번 4차 답사 때는..
이들 산의 종축 중앙이고, 용마 터널 근처이기도 한 사가정 공원에서 용마산을 올랐다. 여기서 용마산 능선에 도달하고 나니, 망우산 방면과 아치울 마을 방면이 갈리는 교차로도 거의 곧장 나왔다.

본인은 거기서 계속 북쪽으로 가서 예전처럼 시립 묘지 구간으로 들어갔다. 다만, 계속 길만 따라 간 건 아니며, 도중에 동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백교(한다리) 마을에 도달함으로써 산의 횡단을 마쳤다. 이 정도면 여기 산들도 안 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등산로를 밟아 보게 됐다.

'사가정'이란 이 일대에서 살았던 '서 거정'(1420-1488)이라는 조선 시대 문신의 호라고 한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기왕 저렇게 호를 지을 거면 왜 '사가장'이라고 지을 생각은 안 했나 모르겠다.
사가정 공원은 생각보다 이른 2005년에야 생겼다. 일자산 근처에 온통 둔촌 둔촌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옛날에 이 산의 기슭에 살았던 유명한 학자 내지 관료를 홍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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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길이 돌계단처럼 나 있고 곳곳에 벤치와 오두막, 운동 기구가 있었다.
숲이 울창한 덕분에 온통 짙은 그늘이 져 있어서 직사광선 노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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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마산 남북 능선에 진입했다. 아치울 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서 북쪽으로 쭉 가면, 망우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도 나온다. 거기도 지나치면 길이 포장된 도로로 바뀌고 망우산 묘지 구간으로 진입한다.
본인은 묘지 구간을 좀 지나다가 동원천 약수터 방면으로 이탈하여 숲 속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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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방황하던 끝에 용마-망우산을 횡단하는 덴 성공했다. 그리고 딱 한 번 하늘이 트인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의 묘지..
여기만 나무 베어내고 숲을 잔디밭으로 바꿔 놓아 있었다. 망우산의 항공 사진을 보면, 이렇게 혼자 외딴 곳에 자리잡은 묘지가 몇 군데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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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그친 뒤에 산을 오르니 날씨 맑고 하늘 푸르고, 5월이어서 잎도 온통 짙은 초록색인 데다.. 계곡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서울 방면과 구리 방면 어느 쪽으로든 말이다. 어떤 곳은 물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도 했다.
비록 산 아래의 경치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산 속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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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내 차도와 함께 저수지와 마을이 나왔다. 아치울보다 더 북쪽에는 백교/한다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늘 산기슭의 한적한 전원마을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마치는 건 내 스타일 등산의 뻔한 클리셰가 돼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4 08:29 2018/06/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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