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IR은 도스 시절에, 특히 컴퓨터 깨나 하는 사람들의 거의 필수품인 쉘 겸 통합 유틸리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작고 가벼운 크기에 굉장히 편리한 인터페이스. 단축키에 중독되고 나면 이거 없이는 불편해서 못 살았죠. 기본적으로 텍스트 영문 모드였지만 한글 바이오스도 인식하고 나중 버전은 윈도우 95 아래에서 긴 파일 이름도 그럭저럭 잘 인식했습니다.
도스 시절엔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한 확장자를 상대로 단일 연결 프로그램밖에 바로 실행 못 하는 윈도우 쉘과는 달리,
압축 파일 내용 바로 보는 기능, 드라이브를 바로 바꾸는 단축키(Shift+C, D), 특정 프로그램을 바로 실행하는 펑션 키 연결, 노턴 유틸리티 NCD를 필요 없게 만든 F10 MCD, 그리고 특정 단축키로 바로 디렉토리를 바꾸는 QCD, 그리고 두 창 열어서 보는 기능.
간단합니다.
원하는 디렉토리로 빨리 가고,
선택된 파일에 대해서 다양한 조작을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키 조작만으로 바로 실행하는 것.
저도 처음부터 M 사용자는 아니었는데 94~95년경에 M 거의 광신자인 한 친구의 영향을 받아 쓰게 됐습니다. 아주 편리하더군요.
등록판으로 바꿔 주는 크랙도 한동안 쓰고 지냈지만, 98년에 그렇잖아도 도스용으로는 마지막 버전이 된 3.10이 나왔을 때 나름대로 돈 주고 정품을 구입했습니다.
등록판은 About 화면의 강제 딜레이가 없으며 서로 다른 드라이브로 디렉토리 통째 복사가 가능하고, 보라/mcopy 같은 보조 유틸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MDIR은 컴을 잘 못 다루는 개발자의 여자친구를 위해 개발되었던 걸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그 두 사람은 결혼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MDIR은 여자친구의 전유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개발된 끝에, 01년 말에는 드디어 윈도우용도 나왔고, 개인 명의가 아닌 회사 제품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MDIR 정도면 EditPlus처럼 세계적으로 셰어웨어로 내놓고 팔아먹어도 손색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미국 같은 데서는 솔직히 제가 지금까지 개발한 프로그램보다도(날개셋, WordTech 등) 규모가 작은 프로그램도 당당히 개인 개발자로서 이름 걸고 홈페이지 운영하면서 셰어웨어로 팔아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운영체제 쉘 구조부터 시작해서 상당 수준의 하드웨어 지식, 인내심과 노가다 코딩까지 통달해야 했을텐데 놀랍기 그지없었죠.
하지만 2003년경, MDIR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는 경영수지 악화로 인해 없어졌고, 개발자 역시 그 회사를 나와서 이제는 완전히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MDIR의 소스는 갖고 있으되 공개할 의향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얘를 유지보수할 여건은 안 되고.. 한 마디로 그렇게 개발이 중단되고 묻혀 버린 것입니다.
개발자는 MDIR 개발만 중단한 게 아니라 IT계에서 완전히 은퇴했고, 이제 완전히 다른 사업을 하면서 산다고 합니다. (안습)
MDIR은 상당히 이색적으로 C/C++이 아닌 파스칼(볼랜드)로 개발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윈도우용은 자연히 델파이로 개발됐죠. 도스용은 EXE 파일이 아주 빡세게 암호화-압축돼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분석 방법으로는 빌드 개발툴을 알 수 없는데, 저는 처음에 이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6비트 EXE이기 때문에 메모리 제약이 좀 있었고, 특히 MCD에서 1000개가 넘는 디렉토리를 표시할 수 없고, 한 디렉토리에서 2000개가 넘는 파일을 표시할 수 없는 게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후자는 단순히 파일이 다 안 보이는 걸로 끝이지만 전자는 디렉토리 스캔하다가 프로그램이 뻑났거든요. 도스용도 32비트 컴파일러로 재개발됐으면 참 좋았을텐데, 쉘 유틸리티의 특성상 하드웨어에 종속적인 명령이 많아서 개발툴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윈도우용은 32비트이다 보니 메모리 제한은 없지만, 이제 유니코드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5.0에서 추가될 기능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5.0은 끝내 나오지 않은 채 MDIR의 개발은 중단됐습니다.
이 때문에 MDIR 정식 등록자들이 무척 좌절하고 허탈해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MDIR의 개발자도 극심한 불법복제의 피해자이기도 했습니다.
등록판을 불법복제 하려면 최소한의 부끄러운 줄은 알고 혼자 조용히나 쓸 것이지 대놓고 개발자한테 시리얼 번호 알려 달라고 메일 보내는 골빈녀석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더군요.
MDIR 역시 뭐 복사방지 락이라도 달고 나온 건 아니고, 전적으로 소프트웨어적인 방법만으로 등록판 판별을 해야 했기 때문에, 등록판 판별 방식을 여러 번 변경하고, EXE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막기 위해 복잡한 방법으로 실행 파일 암호화/압축을 거쳤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도스용 게임 Titus Fox이 컴퓨터별로 레벨 코드 생성을 어떤 원리로 하는지가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윈도우 비스타에서도 WinM이 돌아가긴 합니다. 하지만 32비트 어플의 특성상, 64비트 윈도우 시스템 디렉토리 같은 곳엔 접근이 되지 않습니다. 32비트 윈도우 시스템 디렉토리로 그냥 리다이렉션 돼 버리죠. (속임수)
어쨌거나 컴퓨터 세계는 이제 진짜로 기술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자본력을 도저히 못 당해 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의 힘을 입어 컴퓨터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도 다 저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