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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부르는 찬양곡 중에 "찬양하라 내 영혼아"라는 짤막한 곡이 있다.
국내외로 모두 대체로 작곡자 미상이라고 적혀 있고, 국내에서는 '예수전도단 번역'이라고 소개돼 있다. CCM 앨범 중에는 1991년에 나온 주찬양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에서 거의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성경 좀 읽은 분들은 이 곡의 가사가 기본적으로 시 103:1에서 착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절은 시편 구절대로 "찬양하라"인데, 2절은 "감사하라", 3절은 "기뻐하라"라고 뭔가 다른 좋은 동사들로 바리에이션이 있다. 이것은 살전 5:16-18의 3대 권면에서 '기도하라'만 빼고 적당히 가져와서 가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뻐하라'(시 33:1 등), '감사하라'(시 106:1, 107:1, 136:1 등)는 시편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단, 가사의 번역에는 아쉬운 점이 좀 있다. 먼저 1절의 동사는 원래 praise가 아니라 bless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우리말 성경의 번역 관행에 따라 단어를 구분하자면 찬양보다는 찬미, 찬송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한국어 찬송가 특유의 영/혼 혼동도 아쉽다. "내 영혼아"가 아니라 "오 내 혼아"가 되면 음절수가 딱 맞다. 성경 구절에는 감탄사 O가 실제로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 찬송도 후렴이 "내 영혼 평안해" 대신 "내 혼이 평안해"라고 고쳐 주면 교리적으로 더 정확해진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겠는지를 생각해 보자. '내 속에 있는 것들'의 정체는 뭘까? 내 자아? 내 세포? 내 장기? 혹은 병균? 박테리아? '그들의 벌레'만큼(막 9:44, 46, 48)이나 알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성경은 성경으로 풀면 된다. 성경에서 within me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면 답이 나온다.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시 43:5, 시 42:11) 등.

사람의 자아 내지 인격, '나 자신'을 구성하는 것은 혼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몸이라는 껍데기 안에 '혼'이 들어있어서 나 자신이 나의 혼을 제3자 대면하듯이 "내 혼아" 이런 형태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구약 시절에는 교리적으로 몸과 혼이 완전히 밀착해 있었다고 함) 내 속에는 혼도 있고 영도 있고 마음, 생각 등도 있다. 한편, '내 속중심'(bowel)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건 문자적인 신체 장기와 마음(창 43:30, 왕상 3:26)을 모두 가리키더라.

이런 심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내 속에 있는 것들아"가 내포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결국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명령처럼 혼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찬양 악보집에 따라서는 "내 속에 있는 것들아"라는 표현이 생소하다고 가사 자체를 "온 맘과 정성 다하여"라고 고친 물건도 있다.

또한 그냥 in이 아니라 within이기 때문에 '안'이 아닌 특별히 '속'이라고 번역한 듯하다. 둘은 구분이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단어이긴 한데, '안'의 반의어는 '밖'이고 '속'의 반의어는 '겉'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다.

준비 찬송으로 이거 부르면서 '내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 주니 아주 도움 됐다면서 반응이 좋았다.
나 역시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찬송을 회중들에게 같이 부르자고 주문할 수는 없으니 곡들의 배경과 의미에 대한 공부가 필수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성경이 말하는 몸, 혼(soul), 영(spirit)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겠다.
한글 글자판에만 두벌식과 세벌식이 있는 게 아니라 신학계에서도 2분법(몸 / 영혼)과 3분법(몸 / 혼 / 영)으로 해석 노선이 대립하는가 보다.
하지만 본인은 언어· 단어 차원에서 명백하게 다른 개념을 자기가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왜 한데 싸잡아서 일컫는지 모르겠다.

물론 혼과 영은 단순한 언어 직관만으로는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엄밀하게 구분해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성경적으로 혼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대충 영혼이라고 싸잡아서 말하고,
성경에서 영이라는 일컫는 더 추상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성령' 말고는 나머지는 다 그냥 정신, 기운 정도로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Q정전에서 유래된 그 이름도 유명한 병맛 용어인 '정신승리'도 영어로는 spiritual victory이다.

혼, 영에 해당하는 '가장' 가까운 순우리말을 굳이 찾자면 내 생각엔 각각 넋, 얼 정도라고 본다. '넋을 잃다/넋이 나가다/얼이 빠지다/넋을 위로하다' 이런 데에만 쓰기에는 아까운 단어이지만, 지금은 좀 국뽕(우리얼! 말과 글과 얼 ㅋㅋ)이나 동양철학스러운 느낌이 너무 짙어져 버린 것도 사실이다. 정서상 당장 성경 번역에다 반영하자는 말은 아니다.
반도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고 성경이 처음으로 번역됐을 때 성경의 표현이 언어의 용례를 주도해서 정착시켰다면 모를까 지금은 좀 늦은 감이 있다.

단순 어학 사전에서는 이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용례를 찾을 수 없다. soul을 찾아도, spirit을 찾아도 다 비슷하게 정신, 영혼 따위의 풀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넋, 얼을 찾아도 마찬가지이고. 마치 heart-mind, 생각-마음 같은 미묘한 유의어 관계이다.

이런 전문용어들의 엄밀한 구분을 위해서는 어학사전이 아니라 해당 업계의 전문 용어사전을 참조해야 한다.
가령, 국어/영한사전에서 철도 용어인 궤조/궤도/선로, rail/railway/track의 엄밀한 차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 뒤섞여서 제시돼 나오지. 이런 예가 한둘이 아닐 것이며 성경· 신학 용어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엔 spirit이 비인격적인 '정신' 같은 용례가 없지는 않다. 세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보고는 너무 놀라서 멘탈이 붕괴되었다고 할 때 "there was no more spirit in her"이 딱 한 번 있다. 어쩌면 저 숙어 자체가 그냥 관용구인 것일지도..
언행에서 어떤 영이 나왔느냐는 물음(욥 26:4)에서의 영(사람의 영, 짐승의 영, 마귀의 영, 하나님의 영..)도 영 자체에 어떤 인격적인 의미를 부여한 용례는 아니다.

하지만 아합 왕을 꾀어내어 죽이겠다고 말한 것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어떤 영이다(왕상 22:21). 이게 이해가 안 되니 평범한 공포물을 많이 본 현대인들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장면(마 14:26)이나 욥 4:15 같은 장면에서 ghost 같은 '귀신, 유령'을 떠올리며, 심지어 성경조차 그렇게 번역된 경우가 있다.

성경의 표현은 여기서도 그냥 a spirit이다. 영은 살과 뼈가 없는 존재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눅 24:39). 이건 사람이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ghost는 성령님을 나타내는 Holy Ghost가 아니면 다 give/yield up the ghost라고 해서 말 그대로 '숨지다/죽다'에서 '숨'을 의미하는 용도로만 쓰였다. 그 이상 wraith, phantom, spectre 같은 개념은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저런 영들이 사람의 관점에서 gods(신들)라고 일컬어지긴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굳이 콧구멍 두 개, 손발가락 5개 같은 외형뿐만 아니라 사람도 몸· 혼· 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 계층을 이어받았다는 뜻도 있다. 한글 개역성경은 영과 혼 구분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사람의 창조를 설명하는 창 2:7에서 혼을 영으로 뒤바꿔서 번역했고, 짐승에게도 영이 있음을 말하는 전 3:21에서는 영을 혼으로 뒤바꿔 번역한 흑역사가 있다.

복음을 전해서 다른 사람을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행위를 영어로 soul-winning이라고 하는데.. 이게 우리말로는 번역이 완전히 엉망진창이다. 여기서도 멀쩡한 혼을 영으로 바꿔서 흔히 '구령'(口令 말고)이라고 하는데, 동음이의어는 둘째치고라도 명백히 오역이다. 개역성경이 창 2:7의 'living soul'을 '생령'으로 엉뚱하게 번역한 것과 동급의 오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영을 혼이라만 바로잡으면 우리말은 婚과 동음이의어가 되어서 매우 생뚱맞은 결혼 프러포즈처럼 들리게 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어느 동네에서는 win을 문자적으로 번역해서 '혼을 이김/이겨 옴'이라고 자체적으로 말을 만들어 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뜻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저건 더 이상한 번역이 아닐 수 없다.
상을 탔다고 할 때 상을 이겨 왔다고 말하지는 않잖아(win a prize)..;; 트로피나 상장을 발로 잘근잘근 짓이기기라도 하나?

상대편을 무슨 승부를 벌여서 이겼다고 자동사가 아닌 '타동사' 형태로 영어로 말할 때는 beat를 쓴다. win은 대회 이름(win the game)이나 보상을 목적어로 받을 때에나 '이기다'라는 뜻이지, 적군이나 경쟁자를 받는 단어가 아니다. Doom 게임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은 아래의 1994년도 어느 PC 잡지의 문구가 두 단어의 용례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고(win) 싶은 신작 게임이 있는가? 그렇다면 Doom부터 제치고(beat) 올라와라."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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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win에 beat 같은 인격체 목적어가 들어갔다면 그건 남의 마음을 얻어서 내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승리하다'와는 완전히 별개의 의미와 용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이런 것도 영· 혼과 관란하여 언어에 존재하는 혼동의 카오스의 한 예이다.

개인적으로 spirit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본 곳은 페르시아의 왕자 2 게임의 부제 the spirit and the flame이었다.
soul이라는 단어는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아시아의 혼(심장, 눈동자?)' 이라고 자화자찬 홍보를 하는 듯하다. 이거 아니면 쏘울메이트 같은 거.

둠 2의 몬스터 중에는 대놓고 '(구원받지 못하고) 잃어버려진 혼'이 있다(lost soul). 그런데 lost soul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곳은 pain elemental(고통의 근원?)이라는 몬스터이다. 이것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작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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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기독교 카테고리에 넣을지 언어 카테고리에 넣을지 꽤 고민되는 내용이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03 08:33 2017/06/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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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널의 번호

예전에도 남산 터널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명칭의 일관성에 대해서 살짝만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서울 남산 터널은 “제1~제3 남산 터널” 같은 식으로 불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게 제1~제4 땅굴, 제2 경인 고속도로 같은 유사 분야의 다른 명칭들과 일관성이 있다. 교량조차도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는 예전 명칭이 각각 제1~제3 한강교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순서를 나타내는 의존명사 ‘-호’는 일반적으로는 보통 제일 끝에 붙는다. 서식 2호, 명령 1호처럼.. 이게 자연스럽다. 그 반면 “남산 1호 터널”은 다른 유사 용례가 없고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호 뒤에 추가로 더 붙는 ‘호실’, ‘호선’, ‘호기’ 같은 걸 보면 ‘실, 호, 기’도 의존명사이기는 마찬가지다. ‘터널’과 같은 위상의 형태소가 아니다.

요까지만 글을 썼는데..
팔당 역 근처의 국도변에 연달아 등장하는 터널들의 이름도 찾아보니 거기는 '팔당 제1터널', '팔당 제2터널'... 이렇게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일관성 없는 혼란의 극치이긴 하다만 제n이 그래도 차라리 n호보다는 나은 것 같다.

2. 비슷한 단어

decease (디씨-스) 죽다 / disease (디지-즈) 질병
철자와 발음과 뜻이 서로 은근히 헷갈리기 쉬운 단어쌍인 것 같다.
loyal(충성스러운)과 royal(왕가의)
 jealous(질투심 강한, 시샘하는)와 zealous(열광· 열성· 열심적인)에서도 비슷한 심상이 연상된다.

sharp / pointed
'날카롭다'와 '뾰족하다'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뾰족한 건 진짜 0차원 점으로 모이는 것만 해당하고, 날카로운 건 1차원에도 해당된다. 칼날이 닿는 곳이 선을 형성하니까 말이다. 송곳을 끝이 뾰족하다고는 하지만 날카롭다고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미래에 구분이 없이 모호해질 여지는 있음)

dark는 '어둡다'와 '캄캄하다' 중에 어디에 더 가까울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송 명희 시인의 찬송시 중에도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 미워했고, 우리의 캄캄한 마음이 그를 몰랐으며"가 있으니 말이다.
물리적으로 빛이 안 비쳐서 풍경이 시커먼 것 중심인 단어가 있는가 하면, 바깥과는 무관하게 내가 지금 앞이 안 보이는 것 중심인 단어도 있다. 둘 다 dark에 대응할 수도 있지만, "아 문제가 너무 안 풀려서 눈앞이 캄캄하다"라고 말할 때는 "눈앞에 어둡다"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짜로 시력이 어둡거나 야맹증을 앓고 있는 건 "눈이 어둡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관계가 서로 오묘하다.

pull / tow / haul
모두 기본적으로 '끌다, 견인하다'라는 뜻이 있다. pull은 뜻이 제일 넓고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고 차량이나 불법주차 차량을 다른 기계로 견인하는 건 tow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공항에서 갓 출발한 비행기를 자력 주행 가능한 곳으로 밀거나 끌어 주는 차량도 tow car라고 부른다.
한편, haul은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 간다고 할 때 종종 본 것 같다. tow와는 어감이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어서 그런 것 같다.

3. 중국어

내가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는 현재 영어밖에 없긴 하다만, 그래도 중국어에 일말의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은 (1) 열차 안내방송과 (2) 아저씨 대사다.
(1)이야 “번쯔 리에처 목포 더 무궁화 하오 리에처” 같은 것이고, (2)는.. 해당 영화가 정말 명대사가 너무 많은 작품이어서 말이다. “즈 차예시 총 샨양 아이더. 허 디얼바.”

테이큰에 이어 아저씨에 너무 꽂힌 나머지 오죽했으면 도대체 심양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대륙 지도를 꺼내서 찾아 보기까지 했다. 딱히 차가 특산품인 동네는 아닌거 같던데. ㄲㄲㄲㄲㄲㄲ
그나저나 덩달아 같이 알게 된 건, 하얼빈이 우리나라에서 딱 정북향이라는 점이다. 안 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인 다롄-뤼순과도 생각보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하얼빈도 막연히 황해 건너편 대륙 어딘가에 있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시기적으로 별 관계 없는 임시정부의 망명 동선 같은 것과 헷갈렸던 것 같다. 만주, 훈춘 이런 건 그냥 동쪽 끝이고.

“중국서 조폭영화 좀 봤는갑네. 깜장으로 쫙 빼.. 무슨 장례식 왔나. ㅋㅋㅋㅋ” 를 통역할 수 있으려면 중국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듯하다.

인터넷 글을 통해 보게 된 새로운 영단어들을 단어장으로 정리해서 틈틈이 외우고 있다. 일본어도 최소한 글자(히라/가타)는 좀 읽을 수 있게 테이블을 암기하고 있는데 머릿속에 정말 안 들어가진다. 특히 읽는 거 말고 쓰는 건..;;

어학이라는 게 사람에게 매우 큰 지적 자산이요 스펙이 되는 건 사실이다. 언어 장벽으로 사람들을 갈라 놓은 게 괜히 신의 한수가 아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언어를 뒤엎는다는 건 아예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 거니까.
본인은 창조론자에 언어 신수설을 믿는 사람으로서, 언어마다 문법과 어휘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온갖 괴상한 굴절과 불규칙들도 배후에 일종의 지적 설계가 있다고 추측할 정도이다. -_-;;

이 와중에 그나마 영어 같은 언어가 세계어가 된 건 축복이다. 철자법이 개판인 것만 빼면 그나마 글자도 형태가 간단하고, 이 정도면 굴절어가 아닌 그냥 고립어(형태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절이 굉장히 단순해졌고, 그러면서 정/부정관사 단/복수처럼 엄밀해야 할 건 엄밀하게 남아 있고, 쓸데없는 높임법 따위 없이 2인칭은 하나님이래도 you라고 간단하게 호칭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모국어가 쓰레기라는 소리는 아니다. 본인은 이런 주류 영어· 알파벳과는 구조가 극과 극으로 너무 다른 한국어· 한글이 그 때문에 오히려 유니크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창의적인 활용 방안을 찾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어도 언어의 사회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최대한 모호하고 무질서한 면모를 없애고 문법과 어휘를 조금씩 개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4. More..

  • 우리말의 '보통'은 생각보다 뜻이 굉장히 많고 중의적이다. 부사로서 in general이라는 뜻과 형용사로서 ordinary라는 뜻이 있는 품사통용어이다. 아, 거기에다 빈도부사(sometimes) 같은 뜻도 지닌다. 와/과(접속조사 and & 부사격조사 with), 그리고 '다른'(형용사 different & 관형사 another)만큼이나 어떨 때는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 친정, 처가, 외가 .. 다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인 거 맞지?
  • 똑같이 '돌'이 들어가는 이름인데 리빙스턴 / 산돌(서체 회사 이름이기도!), 아인슈타인 / 일석..;; 어감이 굉장히 다르다.
  • 똑같은 lawyer이어도 성경에 나오는 율법사와 오늘날의 변호사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 유대교의 priest와 천주교의 priest가 완전히 다르듯이 말이다.
  • 정신승리, 영적 승리.. 영어로는 똑같이 spiritual victory인데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뉘앙스가 달라진다. 영어는 <아Q정전>의 영문 번역본에서 실제로 쓰인 단어이기도 하다.
  • 영어는 I/Y 같은 고모음에서 장모음/단모음이 오락가락 하는 편인 것 같다. vitamin(바이/비타민), missile(미싸이얼/미쓸), direct(다이렉트/디렉트). 비타민은 그렇다 치지만 미국 영어는 뒤의 두 단어에 대해서 영국식 국제 영어와는 달리 단모음을 선호한다.
  • 난 '이름'이 full name(성명)도 되고 first name(...)도 되는 게 불편하고 싫었는데 잘 알다시피 영어에도 어차피 day(날/낮), man(사람/남자), egg(알/달걀) 같은 어정쩡한 의미 관계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man과 day는 성경 번역과도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정도의 의미 중의성을 제공한다.
  • pray, bless, repent 이런 단어들은 기본적인 심상은 공통이지만 동작 주체 내지 대상이 사람이냐 하나님이냐에 따라서 구체적인 번역이 달라지는 단어이다. (기도하다/부탁하다, 복을 빌다/복 주다/찬송하다, 회개하다/돌이키다)
  • 난 개인적으로 '미덥다 미쁘다' 이런 용언이 안 그래도 믿음 짱 종교의 경전인 성경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솔직히 정치색만 없으면 두음법칙도 없는 게 더 낫고.. 친구와 동무, 국민과 인민도 구분해서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굳이 얼음보숭이 같은 이상한 말 만들 필요 없이 이미 있는 말이라도 적절히 구분해서 잘 쓰면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24 08:34 2017/02/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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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A와 SONY의 로고타입

'혼다'랑 '쏘니'.
1946년에 설립된 일본의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문 분야는 다르다. 혼다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 엔진 달린 탈것 전문이고 쏘니는 전자 쪽 전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현대 자동차와 삼성 전자처럼. 종전 후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미쓰비시 같은 기업과는 달리 전범 논란이 없다.

혼다와 쏘니는 둘 다 납작한 로만체 계열의 서체로 로고타입을 표현한다.
그래서 혹시 "완전히 동일한 서체인가?"란 의문을 품고 로고타입을 자세히 살펴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동일하지는 않다. N자 모양을 보면 차이가 명백하다. 단순한 폭이나 진하기 같은 산술적인 차이가 아니다.
혼다가 글자 모양에 변화를 더 줬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N에서 대각선 획이 오른쪽 수직선에 완전히 붙지 혼다의 것처럼 아래에 독자적으로 닿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체는 운영체제에서 흔히 보는 서체들 중에서는 Bookman Old Style과 비슷하다. Bookman도 Times 같은 다른 서체들에 비해서는 꽤 납작한 편이지만, 로고타입은 그것보다 더욱 납작하다.
이것 말고 또 서체가 유사한 기업 로고타입의 쌍이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아주 오랜만에 글꼴 관련 짤막한 기록을 하나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6 08:30 2016/10/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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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언어 관련 생각들

1.
“A is better than B.” (A는 B보다 더 낫다)라는 영어 평서문에 담긴 정보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A를 묻는 wh 질문을 만든다면 “Who is better than B?” (누가 B보다 낫다고?)가 될 것이다. 이건 쉬운 문제다.
그럼 B를 묻는 질문은 뭐가 될까?

Who is A better than? (A가 누구보다 낫다고?)
Than who is A better?

내 문법 시스템으로는 위와 같은 두 문장이 만들어지긴 한데... 평생 저런 형태의 문장을 만들 일이 없다가 만들고 보니 정말 괜찮은가 모르겠다.
인간의 언어가 경이로운 점이 뭐냐 하면 화자는 평생 접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을 그것도 안긴 문장· 이어진 문장 같은 복잡한 형태로 자유자재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2.
그리고 than 다음에는 문법 원칙상으로는 목적격이 아니라 주격이 온다. better than me가 아니라 일단은 better than I가 맞다는 것. 하지만 It's me/I만큼이나 이건 원어민들 사이에서도 구분이 굉장히 문란해져 있다.
게다가 who와 whom의 구분도 이와 같은 처지이다. 3인칭 단수는 him/her을 쓸 곳에다가 he/she를 갖다붙이지는 않을 텐데 왜 그러는 걸까?

테이큰에서도 리암 니슨이 유괴범을 고문하면서 "You sold my daughter? You sold her? Huh? To who(m)?"라고 물을 때 나는 당연히 whom이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다시 들어 보니 너무나 분명하게 그냥 who였다.
의문대명사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번에도 내 머리는 0.1초 만에 테이큰 대사를 검색 결과로 내놓았다. 영화 한 편 제대로 봐 놓으니 실생활에서 대사를 정말 많이 우려먹으며 지낸다. 테이큰은 좋은 영화이다~ㅎㅎ

3.
다음으로, “Replace A with B.” (A를 B로 바꿔라)라는 문장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A를 묻는 wh 질문은 What do we replace? (우리는 뭘 바꾸는가?) 이다.
그럼 또 B를 묻는 질문은 어떻게 만들면 될까? 영어는 with만 붙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With what do we replace? (우리는 무엇으로 바꾸는가?)
What do we replace with?

그래서 찾기/바꾸기 대화상자를 우리말로 옮길 때면 난 늘 껄끄러웠다. Find what / Replace with가 각각 "찾을 문자열 / 바꿀 문자열"이긴 한데, '바꿀 문자열'은 문맥에 따라 개념상 B뿐만 아니라 A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어에서 체언 없이 조사를 앞세워서 '으로 바꿈'이라고는 안 쓰니까 의미가 엄밀하지 못하게 되는 건 뭐 어쩔 수 없다. (뭐, See also를 가뿐하게 '도보시오'라고 옮긴 백괴사전은 참 기발하다.)

4.
우리말에서 (내가 보기에) 관계가 굉장히 이상해져 있는 단어의 쌍이 최소한 둘 있는데, 바로 '장/쪽'과 '성/이름'이다. 양면이냐 단면이냐가 분명치 않다 보니 '다섯 장'은 대부분의 경우 다섯 페이지이지만 가끔은 앞뒤로 열 페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page/sheet에는 양면 개념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말만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이름의 경우, 가끔은 first와 family를 모두 포함한 full name을 뜻하지만 가끔은 그 자체가 '성'과 대립하여 first name만을 뜻하기도 한다. 한 단어가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모두 포함하다니 거 참..;;
성/이름도 그렇고 다시 '장'으로 돌아오면, '장'은 '쪽'뿐만 아니라 알다시피 chapter를 의미하기도 해서 더욱 지저분하다. 이런 건 순우리말만으로 도저히 변별이 불가능하다면 외래어를 로컬라이즈 해서라도 논리적으로 분간이 되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5.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어에는 sibling을 뜻하는 한 단어가 없나 참 궁금하다. '내일', '초록' 같은 건 순우리말이 없어서 한자어라도 있지만, sibling은 부모/자식 같은 한 단어도 없어서 그냥 "형제 자매는 있습니까?" 이렇게 매번 풀어서 설명하게 되는 게 불편하다. 이렇게 꼭 필요한 우리말이 없으니 전산학에서 트리 구조를 설명할 때는 오늘도 '시블링, 시블링' 이런 외국어가 나올 수밖에 없다.

6.
한국어는 '저희'라는 1인칭 복수형이 존재하는 것도 다른 언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아이템이라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청자를 확실히 배제한 1인칭 복수이고 1인칭 쪽을 좀 낮춤으로써 청자를 높이는 효과까지 있으니, 특히 회사가 고객에게 말할 때 사용하기에 무척 적절한 대명사이다.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이것을 제4인칭으로 분류하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7.
종교관 중에는 이신론(deist)이라는 게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하지만 그 신은 아주 기계적이고 정교한 자연 법칙에 가까운 추상적인 존재일 뿐, 무슨 인격을 갖고 있고 인간의 삶에 관여하거나 인간에게 무슨 계시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종교관이다. 뉴턴의 법칙은 절대적인 법칙이긴 해도 무슨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은 아닐 테니까. 유신론을 뭔가 무신론 내지 불가지론 스타일로 풀이한 것 같다.

미국이 지폐에까지 In God we trust가 적혀 있는 나라이고, 메이플라워 서약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시작할 정도로 기독교 이념이 철철 넘쳤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대 대통령을 포함한 건국 공신들이 다 프리메이슨이네,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아니네 하는 이의 제기도 많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은 신자가 아니라 실제로는 저런 이신론자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신론의 '이'는 한자로 무엇일까?
二(2)는 당연히 아니요,異(다름)도 아니며, 바로 理(이치)이다. 이성이라고 할 때의 그 한자이다.
한때 일부 '유(柳)씨' 가문에서 자기 성을 한글로 '유'가 아닌 '류'로 쓰게 해 달라고 소송도 냈던 것 같던데, 理는 '리'로 좀 구분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리신론'. 二나 異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이미 "그럴 리가 없다" 같은 문맥에서 의존명사 理는 두음법칙 없이 오랫동안 잘 사용해 오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기도 하는 것 같다.

8.
뭐, 영어도 만능은 아니긴 마찬가지다. time이 시각도 되고 시간도 되고.. number가 번호도 되고 수도 되어서 꽤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건 본인이 예전 글에서 몇 번 지적한 바 있거니와, free가 무료 & 자유를 다 의미하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점이다. "free software"는 영어권 사람이 문서에다가 친히 'free as in free beer(맥주가 공짜!)'이라고 모호성 해소를 해 줄 정도로 free는 유명한 다의어이다.

한국어가 ㅐ와 ㅔ의 중화로 인해 '내, 네'가 동음반의어가 돼 버린 것은 굉장한 막장 상황이긴 하다만, 영어도 2인칭 대명사의 단· 복수 구분이 없는 것과, 남녀 구분 없이 3인칭 단수 사람을 간단히 일컫는 대명사가 없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점이다. 이것 때문에 (s)he, he or she, 심지어 they 등 갖가지 꼼수가 나돈다. 그렇다고 사람까지 it으로 싸잡아 일컬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9.
영어에서 안테나(antenna)의 복수형은 antennas또는 antennae이다.
곤충의 더듬이를 가리키는 안테나의 복수형은 불규칙인 antennae인 반면,
더 나중에 생긴 기계 안테나의 복수형은 규칙인 antennas이다.

이와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는 mouse이다. 요놈의 복수형에 대해서는 영어권에서도 혼란이 많다.
전통적인 생물 생쥐의 복수는 mice이지만, 컴퓨터 포인팅 장비인 마우스는 mouses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동사 hang은 처음에는 '걸다, 매달다'이다가 '사람 목을 매달다 → 교수형에 처하다'라는 뜻이 확장되어 나갔다.
본래 뜻인 '걸다, 매달다'의 과거형은 불규칙인 hung이지만, '교수형에 처하다'의 과거형은 역시나 hanged이다.
이렇듯, 다의어의 경우, 단어의 활용· 파생 형태에까지 그대로 의미 확장이 반영되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
그나저나 일본어에는 우리말 주격조사 이/가(일본어 발음으로는 '가')와 보조사 은/는(일본어 발음으로는 '와')에 개념적으로 거의 그대로 대응하는 조사가 존재한다는구나..!! 신기하다. 그래서 '고레와', '고레가' 요런 말이 있었구나.
지구상에 이런 개념 pair가 존재하는 언어는 한국어/일본어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굉장한 레어템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두 언어가 문법 구조는 무척 비슷하며, 상호간 학습 장벽을 크게 낮춰 준다.
일본어는 음운 구조가 워낙 간단하다 보니 한국어처럼 받침 유무에 따른 이/가 바리에이션 같은 건 없다. 다만, 쓰기는 '하'라고 적고 읽기는 '와'라고 이상하게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들었다.

11.
'르' 불규칙이 적용되는 형용사 용언인 '빠르다'와'다르다'를 생각해 보자. 얘들은 '-ㄹ리'가 붙어서 '빨리, 달리'라고 부사형 활용이 가능하다. '-이/-히'라는 부사형 접미사가 붙어서 얼추'빠르게, 다르게'를 짧게 줄인 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멀다/가깝다'에 서 '멀게/가깝게' 대신 '멀리/가까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런 활용은 보편 생산적이지 않다. 즉, '바르다'(right, correct 형용사), '가파르다', '푸르게' 같은 용언은 저렇게 활용이 가능하지 않다. '게으르다'는 '게을리 하다' 정도로만 활용 가능한데 양상이 좀 다른 듯.
그래서 '달리', '빨리' 같은 단어는 좀 예외적인 케이스로 간주되어서 사전에 별도로 등재돼 있기도 하다.
올림픽 표어를 '보다 빠르게'라고 번역할 때와, '더 빨리'라고 번역할 때는 어감이 서로 확 달라지는 것 같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힘차게" 중에서 faster만 '-게'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주목하라.

'다르다'가 활용된 '다른'은 말 그대로 활용된 형용사(different)도 되지만, another를 의미하는 관형사 '다른'도 된다. 같은 형태의 단어가 두 의미를 모두 지닌다는 게 꽤 흥미롭다. '와/과'가 and뿐만 아니라 with의 뜻도 갖는 것처럼.
사전에서 '다른'을 찾아 보면 관형사의 뜻만 실려 있다. 형용사 하나만 있는 영어와는 달리, 국어의 체언 수식언에서 형용사와 관형사가 구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국어에서 형용사는 수식언 중에서 용언에서 유래된 것만을 일컬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새 이름으로'에서 '새'는 관형사이지만, '새로운'은 형용사이다.

12.
옛날에는 인간 학문의 모든 분야가 그런 것처럼 언어 쪽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학풍이 꼴보수였다.
대표적인 예가 <걸리버 여행기>를 지은 조너선 스위프트인데.. 사회 풍자적인 선구자라는 점에서는 중국의 루 쉰과도 이미지가 비슷해 보인다.

루 쉰은 한자를 없애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망한다고까지 한자를 디스한 걸로 유명한데, 스위프트는 사전을 만들어서 사랑스러운 자기 모국어 영어의 스냅샷을 기록으로 남기고, 앞으로 세속화되거나(?) 더럽혀지지 않게 영원토록 불변의 언어로 남길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couldn't 같은 구어체의 어휘가 버젓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에도 왕창 분노했다고... 이런 사람이 오늘날의 일명 인터넷 축약어, 한글 파괴 이런 걸 보면 노발대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에휴.." 이랬을 것 같다.

오늘날은 분위기가 이와는 완전 반대로 갔으니 참 아이러니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은 말뭉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대의 언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반영만 하면 된다."이다. '너무'도 사람들이 다 긍정적으로 쓰면 뜻풀이를 바꿀 수 있다. 동성애자들도 결혼을 하니까 결혼의 정의도 굳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건 아니라고 업데이트 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니까.

지금 학풍이 0이고 스위프트가 1이라면 난 그래도 여전히 0.7~0.8 정도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모든 걸 감히 판단할 만한 실력은 없지만, 난 그래도 언어에도 타락이라는 게 있긴 하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물론, 그 타락이라는 게 겨우 맞춤법 안 지키고 상스러운 비속어 남발 같은 단편적인 현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님.
그냥 쓰기 나름, 정하기 나름인 용례가 바뀌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르다/틀리다'처럼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있던 개념의 구분이 문란해지는 것만은 막았으면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1 08:35 2016/0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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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탤릭체 이야기

라틴 알파벳에는 다른 문자와는 달리 이탤릭이라고 약간 기울이고 흘려서 쓴 변형 서체 유형이 있다. 획을 진하게 하는 '볼드'와 더불어, 산술적인 변형뿐만 아니라 아예 별도의 폰트를 만들어서 제공 가능한 글자 속성 중 하나이다.

옛날에 비트맵 글꼴 시절에는 윗첨자· 아래첨자와 더불어 이탤릭은 아예 별도의 글꼴(폰트 패밀리)로 제공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출력 장치의 해상도가 올라가고 결정적으로 윤곽선 글꼴 기술 덕분에 글자의 크기 제약이 없어지면서 이탤릭과 윗첨자· 아래첨자는 모두 아무 글꼴에나 추가로 적용 가능한 '변형 속성'으로 바뀐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탤릭을 아마 수학식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보고 써 왔을 것이다. 수학에서 일종의 '예약어'라 할 수 있는 sin, lim, log 같은 단어은 반드시 regular 정자체로 쓰고, 나머지 임의의 변수명은 이탤릭으로 썼으니 말이다. 단, 소문자 이탤릭을 너무 흘려서 쓰면 그리스 문자와 구분이 어려워지기도 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와 알파, n과 η, x와 χ 같은 것.

개인적으로 20여 년 전, 아래아한글 2.1이던가 2.5에서 처음 도입된 수식체를 아주 좋아했다. regular 모양은 신명조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이탤릭이 굉장히 미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수학 교재나 상업용 출판물에서 쓰인 서체이기도 했다.
지금 아래아한글은 수식의 서체가 뭔가 LaTex스러운 서체로 바뀌었고 마소 제품의 경우 한때는 그냥 타임즈이다가 지금은 다른 걸로 바뀌었는데... 난 아래아한글의 원조 수식체가 지금도 그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원문에 없는 단어를 뜻하는 이탤릭체 표기가 아주 친숙할 것이다. (사실은 옛날 한글 개역 성경에도 본문보다 "약간 작게 쓴 글자"가 있어서 개념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하긴 했다.)

이탤릭 서체는 세로 중심선이 사선 모양으로 기울어질 뿐만 아니라, 세리프 계열의 경우 세로획의 위· 아래 끝 부분이 살짝 둥글게 삐친 형태로 바뀐다.
이탤릭 전용 서체가 없는 글꼴은 응용 프로그램이 글자 모양을 그냥 수학적인 일차 변환으로 기울여서 찍어 준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1) Oblique라고 불리는 다른 모양일 뿐 이탤릭이 아니다.

산세리프 계열에 속하는 서체들은 딱히 이탤릭이나 오블리크나 모양 차이가 별로 없어서 굳이 이탤릭 전용 서체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 두 글자의 모양을 한데 포개서 차이를 비교해 봐도 되겠지만. 또한 알파벳 말고 숫자 역시 Times 같은 세리프 계열 서체를 봐도 그냥 그대로 기울인 오블리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숫자는 딱히 italic-ready 문자는 아닌 듯하다.

이탤릭은 정자체보다야 날려 쓴 듯한 느낌을 주지만, 모든 글자들이 한 획으로 완전히 이어진 (2) 필기체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소문자 i나 l의 이탤릭은 세로선이 기울어지고 위와 아래에 동그란 삐침까지만 있지, 필기체처럼 두 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획이 생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Brush Script 같은 필기체 계열의 서체들은 정자체 모양이 태생적으로 이미 좀 기울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또 이탤릭을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끝으로, 세로 중심선은 90도 수직선인데 이탤릭체에 적용되는 삐침만 적용한 (3) upright italic이라는 것도 타이포그래피 용어로는 있는 모양이다. 실용적인 의미나 가치가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 정도이다.

이탤릭체는 글자의 수직 높이는 변함없는데 중심선이 약간 기울어짐으로써 실질적으로 글자의 크기가 약간 더 커지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이탤릭체는 중심선을 정확하게 몇 도 기울이는 것이 정석일까? 여기에 통일된 규격이 있긴 할까?

MS Word의 경우, 이탤릭체가 적용된 글자로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면 신기하게도 포인터의 I자 모양도 이탤릭체 모양으로 기울어진 모양으로 바뀐다. 그리고 cursor(캐럿) 역시 단순 수직선이 아니라 기울어진 사각형 모양으로 바뀐다. 사선 모양이 굉장히 엉성하고 못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화면 캡처를 해서 들여다보면, Arial, Verdana처럼 이탤릭 전용 서체가 있는 글꼴들은 세로선의 기울기가 5인 듯하다. 즉, 오른쪽으로 1픽셀 움직이는 동안 세로로는 대략 5픽셀이 움직인다. 이것은 각도로 환산하면 약 78.7도(수직선이 90도)이며, 따라서 11~12도 정도 기울이는 셈이 된다. 기울어진 cursor의 기울기도 이것과 얼추 일치한다.

한편, 이탤릭체 모양의 마우스 포인터는 화면을 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울기가 4이다(약 76도).
흥미로운 것은 전용 서체가 없이 프로그램이 기본으로 구현하는 이탤릭이다. 얘는 기울기가 거의 3(약 71.5도)에 가까워서 누운 정도가 위의 글자들보다 더 과격하다. 따로 새로 만들어진 획이 없이 전적으로 산술적인 변형만으로 기울어짐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기울여 준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부적으로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면 흥미로울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개념들의 예를 그림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rial은 bold에 대해서도 전용 이탤릭 서체가 있는 반면, Arial Black은 전용 서체 없이 산술 연산으로 오블리크가 이탤릭의 역할까지 하고 있으며 기울기가 더 과격하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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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5/07/16 08:44 2015/07/1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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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중에서 한글에 대해서 정말 경이로운 체계를 가진 우수한 문자라고, 심지어 라틴 알파벳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극찬을 늘어놓은 석학들이 있다. 개중엔 재레드 다이아몬드처럼 언어학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인문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도 있지만, 언어학을 본격적으로 전공한 학자, 그것도 레알 엄청난 괴수 중에도 한글 예찬론자가 있다.

이것 자체는 기록이 다 남아 있고 출처 검증도 가능한 엄연한 팩트이므로 더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소수 민족에게 한글 보급"과 같은 급의 루머가 아니다.
또한, 창조과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천문학을 직접 전공하지 않은 타 분야의 공학 박사나 의사들이 민다고 까이는 반면, 한글 예찬론은 일부나마 실제 현업 언어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으니 성격이 좀 다르다.

시카고 대학교의 제임스 맥콜리 교수는 잘 알다시피 한글날은 전세계의 언어학계가 다함께 경축해야 하는 날이라면서 10월 9일엔 휴강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연세 대학교가 배출한 가히 세계적인 언어학 석학인 김 진우 교수도 학부 모교로 돌아와서 석좌교수 명목으로 잠시 강의를 하던 때엔, 2학기에 한글날이 낀 주엔 문자의 역사 강의를 했다. 내가 수업을 듣던 시절에도 종종 한글 감탄을 늘어놓았으며,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닌 것은 정말 통탄할 일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2011년, 아직 국경일이 아니던 시절에)

물론 꼭 그렇게까지 감흥을 느끼지는 않는 학자들도 있으며, 오히려 저런 식의 생각을 문화 제국주의니, 한글 쇼비니즘이니 뭐 이상한 꼬리표를 붙여서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역시 없지는 않다.
이런 와중에 미천한(?) 본인이 한글이 우수하네 어떻네 하는 오래 된 고리타분한 논쟁에 불을 추가로 지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관찰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분명한 팩트를 하나 지적하고자 한다.

"한글은 뭔가 천재들을 매료시키고 오덕질 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특성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한글이 한국어만 잘 표기해 내는 세계의 여러 평범한 문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의 언어학 석학 중에 한글 예찬론자가 나타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공 병우 박사처럼 언어와는 거의 관계 없는 전공이던 천재 공돌이 의학자가 갑자기 하필이면 한글 덕후 타자기 덕후로 돌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한글 자모나 한글 맞춤법 체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글을 외국어의 다른 음성을 표기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게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이 역시 주장자 중에는 이공계 박사나 의사 등, 스펙이 비범하긴 하지만 언어학만을 깊게 공부하지는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성· 음운론을 통달한 저명한 언어학자도 있다. 이 현복 교수 같은 엄청난 분도 그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비전문가 한글 덕후의 마이너한 재야 학설 정도로 마냥 치부할 문제도 아니다.

지금의 암호 같이 배배 꼬인 IPA 부호보다 더 체계적이고 알아보기 쉬운 음성 부호 체계가 한글의 제자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면 그건 나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단, 거기에는 여러 전제조건과 단서가 붙어야 하고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1.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지금 한국어를 표기하는 한국어 정서법(일명 한글 맞춤법)과는 완전히 별개로 따로 가는 체계가 되어야 한다. 한글의 표기 능력 같은 걸 떠나서 한국어에는 영어 F나 TH 같은 음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R과 L을 똑같이 ㄹ로 적는 이유는 한글을 모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한국어에서 음운론적인 변별 요소가 아니며, 고로 굳이 구분해서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조선어 학회가 무단으로, 혹은 심지어 일제와 결탁까지-_-해서 옛한글 자모를 없애고 훈민정음을 한글로 절뚝발이로 만들어 버렸다고 얘기를 하는 분을 보면.. 으음, 숨이 탁 막힌다. 나머지 뒷부분의 주장까지 신뢰성이 팍 깎이게 된다.

2. 옛한글 자모는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한국어에 없는 소리를 어떤 규칙대로 새로운 글자에다 대응할지.. 통일이 잘 돼야 한다. 허나, 국내에 계신 한글 확장 연구가들은 내가 알기로 제각각 정말 개성 넘치고 자기 지론과 고집이 강한 분들이다. 과연 호락호락 합의가 가능할까? 아래아의 음가조차도 정확하게 모르는 마당에 하물며 다른 글자들은.. 글쎄다.
또한 한글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모음이 풍부한 건 사실이지만, 발성 기관의 모양을 본뜬 자음과는 달리 모음은 기하학적인 수직· 수평선과 점뿐이다. 이런 제자 컨셉만으로 단순히 이중모음이 아니라 IPA의 온갖 이상한 모음들을 다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3. 알다시피 유니코드가 제정되고 BMP 영역은 마치 IPV4 주소만큼이나 사실상 고갈이 임박한 이 시점에서..
인제 와서 컴퓨터에서 예전에 없던 문자를 새로 만들어 통용하는 건 굉장히 부담이 큰 모험이다. 더구나 조합을 해서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한글 확장 부호가 겨우 PUA 영역에만 머무르는 듣보잡이 아니라 정식으로 등재되어 쓰이려면, 국가 표준이든 대중적인 표준이든 정말 갈 길이 멀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4. 새로운 한글 입력법을 같이 제안하는 분도 있다. 단, 이들도 PC에서의 표준 두벌식 글자판과 대놓고 싸우지는 않는다.
그나마 표준 두벌식 다음으로 인지도가 제2순위로 높고 모든 데스크톱 운영체제에서 이미 지원까지 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바로 공 병우 세벌식인데.. 이마저도 전체 사용자 수는 1%가 채 안 된다.

그러니 하물며 이것보다도 더 마이너들은 동일한 조건에서는 전혀 승산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 대신 다른 차별화 요소를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데, 크게 (1) 모바일, (2) 장애인 접근성, (3) 지금까지 얘기했던 외국어 표기를 위한 다른 정서법으로 나뉜다. 허나 내가 보기엔 이것들도 이젠 그 많은 연구자들이 아웅다웅 다투기에는 그릇 크기가 너무 작은 레드 오션이다.

마치 이족 보행 로봇이 창작물이 아니라 현실에 등장할 가능성만큼이나 이건 녹록치 않은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없는 정서법을 새로 만들려는 시도는 감히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성 부호 연구보다는 이미 있는 한글 체계에 대해서 세벌식 글자판 연구나 훨씬 더 중요하게 국가 차원에서 진행했으면 좋겠다. 한국어+한글 기성 체계만으로 domain을 한정하더라도 입출력 기술 쪽으로 한글의 고유한 특성을 활용해서 새로 개발해야 할 것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자세한 사항은 아직 기밀이다만.

각 사람들이 자기 오덕 기질과 똘끼를 발휘하여 한글을 응용한 솔루션을 내놓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시장의 선택을 받아서 채택되거나 도태한다면 나쁠 게 없는 현상이다. 허나 시장이라는 게 그렇게 건전하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고, 또 얼치기 한글 장사꾼이 나랏돈 타서 병크를 다 저질러 놓음으로써 나중에 동일 분야의 후학에게 돌아갈 혜택과 지원까지 막아 버린다면.. 이건 좀 큰 문제이고 비극인 것 같다. 이 문제를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된다.

한 줄 요약: 한글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고 충분히 우수한 문자인 건 틀림없다. 허나, 한글의 우수성을 살리고 싶다면 솔까말 음성 부호 연구보다는 지금 상황에서는 세벌식 연구가 훨씬 더 필요하고 절실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08 08:28 2015/06/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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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관련 생각들

또 오랜만에 우리말 관련 뻘생각들을 투척한다.

1.
여자의 멸칭 '년'은 한자어가 전혀 아닌데, 남녀를 싸잡아 부르는 멸칭은 왜 '년놈'이 아니고 '연놈'이라고 두음법칙이 과잉 적용돼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ㄴ 음가를 빼서 ㅇ으로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2.
'박다'와 '받다'에는 모두 다의어 명목으로 '충돌하다/부딪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둘의 차이가 뭘까? 표준 국어 대사전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박다 01
「9」머리 따위를 부딪치다.
받다 02
「1」머리나 뿔 따위로 세차게 부딪치다.

공식 석상에서 더 정확한 단어로 인정되는 것은 '받다'인 듯하다. '들이받다'가 있으니까.
그런데 <블랙박스로 본 세상> 같은 프로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박았다'라고 말을 하는데 자막은 온통 '받았다'라고 보정을 해서 나가는 게 본인이 보기엔 굉장히 어색했다.

차와 차가 부딪친 것은 '들이받다'뿐만이 아니라 '꼬라박다' 같은 말도 쓴다.
사전의 뜻도 비슷해 보이는데, 현실을 반영하여 '박다'와 '받다'에 대한 더 정확한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구어 말뭉치까지 분석을 해야 하려나?

3.
현재 사전에 '뱃속'이라는 단어는 오로지 다음과 같은 비유적인 의미만 풀이되어 있다.

‘마음01’(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

즉, 뱃속에 있는 것이 마음의 상징인 심장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뱃속은 마음과는 다른 뜻으로 훨씬 더 많이 쓰이며 이는 말뭉치를 분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뱃속의 아기", "뱃속에 들어간 음식" 등, 소화기관이나 자궁 용례가 더 많다. 배의 속에는 심장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국어사전이 반영해야 하지 않나 싶다.

4.
언어학에는 동사가 기술하는 동사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태'(voice)라는 개념이 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한자어에 접사가 붙어 동사가 되는 단어들을 보면, 태는 그 단어 자체의 의미에 의해 결정될 때가 있는가 하면, 그 접사에 의해 결정될 때도 있다. 이게 굉장히 뒤죽박죽이며, 국어사전은 이런 걸 딱히 명확하게 결정하지 않는 편이어서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 시키다: 남을 하게 함
  • 하다: 자기가 뭘 함(자동사), 남을 뭘 하게 함(타동사?)
  • 되다: 자기가 뭘 당함
  • 되어지다: (비공식. 마치 이중과거만큼이나 이중피동?)

단어마다 위의 태 매핑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지금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계시록을 통틀어 '소멸하다'라는 단어가 없다. '소멸되다'와 '소멸시키다'만 있다. 남을 없애는 건 '시키다'이고, 자기가 없어지는 건 '되다'로만 옮겨졌다.
'소멸하다'라고만 써 놓고 consuming fire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써 놓으면, 이게 꺼져 가는 불인지 아니면 다른 걸 태워 없애는 불인지 언뜻 봐서 분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인해 '오염'이나 '마취' 같은 단어도 동사가 될 때엔 '시키다' 아니면 '되다'만 붙지, '하다'는 거의 안 붙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국어사전의 공식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5.
(1) And의 처리 문제랑, (2) 정관사 the의 표현 문제, (3) 과거 시제를 "-니라"라고 뭉뚱그리는 건
우리말 성경의 번역에서 정말 영원한 아킬레스건으로 남지 싶다.
뭐 특정 역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어의 구조적인 한계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고 And it came to pass도 이거 번역하는 방법이 없을까?

6.
'장'은 page(페이지 수 단위)랑 chapter가 굉장히 헷갈리고,
'절'은 verse랑 clause(주어 술어가 갖춰진 안긴문장 단위)가 굉장히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말 순화를 연구하려면 괜히 잘만 쓰이고 있는 다른 외래어들을 다듬을 게 아니라 이런 것들부터나 좀 확실하게 구분하는 우리말을 만들어서 국립국어원 차원에서 밀어 붙였으면 좋겠다.

7.
"어머니께서 내게 과자를 만들어 주셨다"라는 문장을 길게 영작하면 My mother made cookies for me. 정도가 된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요건 그냥 My mother made me cookies. 라고 해도 된다. 중학교 영문법상으로는 전자와 후자는 각각 3형식과 4형식이다.

하지만, 맨 첫 예문에서 목적어가 me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길면.. 예를 들어 children who have never eaten anything since yesterday 정도 되면.. 영어는 길고 복잡한 덩어리는 뒤로 빼는 걸 좋아하는 언어이다. 오죽했으면 가주어 it까지 있을 정도이고.. 그러니 그때는 cookies for children who ... 이렇게 가는 게 훨씬 나은 작문이다. 또한 영어는 3음절 이상 정도 되는 긴 형용사는 비교/최상급도 -er, -est를 안 붙이고 more / most로.. 이것 자체도 형용사인데 부사로 임시로 품사통용이 된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길이에 대한 선호 편차가 한국어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예는 아마 긴 부정과 짧은 부정이지 싶다. '안'이 자연스럽게 붙을 수 있는 용언과, 그렇지 않고 '-지 않다'로 써 줘야 하는 용언의 차이를 규명하라고 하면 한국어 토박이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8.
우리말에서 품사 통용 때문에 헷갈리는 문법 요소 4천왕은 조사, 어미, 접미사, 의존명사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해 보았다.

  어미 (E*) 접미사 (X*) 의존명사 (NNB)
조사 (J*) 완전히 다름.
AND: 와/과/랑(조사) vs 고/며 (어미)
너희들(접미사) 다 안녕들(조사) 하신가? 너뿐(조사)만이 아니라 나도 그렇게 했을 뿐(의존명사)이었다.
어미   그림(명사 파생 접미사)을 잘 그림(명사형 전성어미). 이곳에서 산 지(의존명사)는 오래 됐지만 계속 여기서 살지(어미)는 모르겠다.
접미사     김 씨(의존명사)는 김씨(명사 파생 접미사) 집안의 자랑이다.

위의 표는 헷갈리기 쉬운 품사 위주로 둘씩만 비교했지만, 실제로는 한 단어가 셋 이상의 품사가 통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는 위의 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명사 파생 접미사도 되며, '들'에도 의존명사 의미가 있다.

9.
그리고.. 이건 아마 예전에도 했던 말일 텐데,
개인적으로 '다르다'와 '틀리다'는 반드시 구분해서 쓰도록 하고 국어사전에서도 different를 '틀리다'라고 쓴 것은 "'다르다'의 잘못"이라고 선을 그어 줬으면 좋겠다.
그 반면에 '서, 세, 석' 같은 단순 발음 편의를 위한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구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서 "'세'로 통일을 원칙으로 하되 '석 장'도 허용" 같은 식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맞다/맞는다'가 개판인 것, 그리고 '와/과'가 접속조사(and)뿐만 아니라 부사격조사(with)의 뜻도 있어서 굉장히 불편한 것 역시 이미 예전 글에 언급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05 08:42 2015/06/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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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글꼴 생각

1.
요즘 대세가 복고풍 타이포그래피인지? 옛날목욕탕체, 배달한나체가 정말 인기 많다. 영화 국제시장도 그 성격상 복고풍 서체로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옛날에는 복고풍 서체라 하면 정말로 궁서체와 휴먼옛체 정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런 분야에도 다양한 서체가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풍족해졌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라틴 알파벳과는 달리, 한글 서체는 주 사용 인구가 1억도 채 안 되는 내수 시장에서밖에 수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한글에 대해서 옛날 스타일 서체를 꾸준히 고집하고 있는 곳이 최소한 두 곳 떠오르는데
하나는 철없는 전직 부사장이 저지른 땅콩 회항 사건 때문에 이미지를 제대로 구겼던 대한항공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육사 부대 마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기 동체의 윗부분에 큼직하게 KOREAN AIR라고 써 놓은 거 말고, 앞부분 아래에 자그맣게 '대한항공'이라고 쓴 부분이 내게는 오래 전부터 인상깊게 와 닿았다. 저 한글 로고그래피는 대한항공이 지금과 같은 치약 하늘색 도색과 영문 CI를 도입하기 전부터 계속 써 오던 물건이다.

육사 부대 마크는 무려 1947년부터 써 오던 것이니 보수적인 군대에서 앞으로도 당연히 계속 쓸 테고.
대한항공이든 육사든, 한번 정한 서체는 자기 정체성을 걸고 안 바꾸고 계속 썼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지하철 초롱테크 지하철체.. 시각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데 무단으로 뜯어고치고 바꾸는 거 마음에 안 든다.
그나저나 옛날 철도 간이역 역명판 서체들도 디지털로 복원하고 싶다. 자료를 많이 모아야 할 텐데.

2.
요건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본 광고판이다.
이 정도면 복고풍 서체가 아니라 혹시 북한 서체이지 않나 싶어서 원전을 찾아보니..
ㅇ의 모양, 그리고 '교'의 모양이 북한 서체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가긴 한다.
하지만 첫인상이 여전히 서로 굉장히 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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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트남은 언어는 중국어와 비슷하게 성조도 있고 1음절 1형태소 1글자 고립어 형태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프랑스 선교사의 주도로 개혁을 해서 한자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라틴 알파벳을 쓴다. 그래서 분위기가 이색적이었다.
단, 성조를 표기하려고 알파벳의 위· 아래에 이상한 부호들이 많이 달려 있다.

그리고 베트남이 자체적으로 서체를 만들 만한 나라는 아니니, 간판들을 보면 다들 MS Word 95나 아래아한글 96처럼 10년, 20여 년 전부터 기본으로 내장돼 있던 듯한 1990년대 기성 서체들 위주이다.
Cooper Black을 정말 많이 봤고, 그 외에 Copperplate Gothic, Impact, Matura MT Script도 있었다.
그 글꼴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굉장히 참신한 디자인이긴 했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니까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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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이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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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A의 외곽 획이 활처럼 둥글게 휜 윗줄의 서체도 많이 쓰이는 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낯설다. 그 반면 아랫줄 서체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할 것이다.
바로 한미디어에서 개발하고 MBC가 2000년대 초까지 자사 CI에다 썼던 문화방송체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이 설마 한국산 서체를 썼을 리는 없으니 저것도 영문 원도가 따로 있는가 보다. 알고 보니 원조는 Banco라는 별도의 서체라고 한다.

4.
본인은 직접 써 본 경험은 전무하지만, 클래식 맥 OS에 대해 어느 정도 동경을 하고 있다. 특히 쟤네들의 기본 서체가 참 개성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래 그림에서 File, Edit 같은 메뉴, 그리고 System Tools/Folder를 표현하는 서체 말이다. 맥 OS의 Windows System 같은 서체나 마찬가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맥 OS의 서체 이름은 Chicago이다. Windows 95의 코드명인 그 시카고. 나중에는 비트맵뿐만이 아니라 윤곽선 글꼴로도 만들어졌다. 특히 V와 w 같은 글자의 모양을 보노라면 비트맵과 윤곽선 글꼴이 싱크가 잘 맞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고 보니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을 좋아하고 컴퓨터를 하드/소프트 독점 일체형으로 만들었던 애플에서는 OS가 이름이 없이 그냥 System이고 애플 전속 서체는 이름이 있었던 반면, 처음부터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뒀던 마소의 Windows는 프로그램이 이름이 있고 서체는 딱히 이름이 없이 그냥 System이다. 아주 재미있는 차이가 아닐 수 없다.

Windows쪽 얘기를 좀 하자면, 1과 2 시절에는 시스템 기본 글꼴이 고정폭이었다. 그러다가 3.0때부터 오늘날과 같은 가변폭 System이 도입되고 예전의 글꼴은 그 유명한 Fixedsys라는 이름으로 개명당했다. 모노크롬 시절에는 byte align이 힘들어서 성능 오버헤드가 더 크기도 했을 텐데 맥은 처음부터 과감하게 1.0때부터 가변폭 글꼴을 채용했다.

Fixedsys는 Windows 1.0 시절에 비트스트림이라는 유명한 서체 회사에 외주를 줘서 개발한 것인 반면, 오늘날의 가변폭 시스템은 마소에서 자기네 정체성을 담아 자체 개발한 글꼴이다. 그러니 System을 그 모양 그대로 윤곽선화해서 이름을 붙일 법도 했을 텐데 마치 현대 자동차에서 포니, 엑셀, 스텔라 같은 이름에 애착이 없는 것만큼이나 마소에서는 그 옛날 글꼴에는 더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미 구닥다리의 상징에, 시스템 리소스가 다 떨어졌을 때에나 나오는 fallback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서인 듯. 게다가 NT 계열 부터는 리소스 제약도 없어져서 더 볼 일이 없어졌다. -_-;; 동아시아 Windows에서 이상하게 MS Sans Serif 대신 System을 쓰던 구닥다리 Visual C++ 6.0 IDE가 마지막이다.

System, Fixedsys 같은 건 트루타입 글꼴이 개발되기 전부터 도입됐기 때문에 당연히 TTF 형태가 아니다. 그래도 운영체제에 완전히 하드코딩으로 박힌 물건은 아니고, 오늘날도 Windows\Fonts 디렉터리에서 vgasys.fon, vgafix.fon이라고 실물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는 '장치 독립적인 글꼴'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글꼴 이름이 저런 형태이다. 맥은 그 시절에 어떠했나 모르겠다.

뭐 그런 것과는 별개로, 본인은 한글 전산화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과거의 16*16 비트맵 조합형 글꼴들도 윤곽선 글꼴로 리메이크가 많이 됐으면 좋겠다. 이야기체나 둥근모 같은 것들. 가장자리를 동그랗게 혹은 적절한 곡선으로 복원해 주면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고풍 서체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10 08:27 2015/05/1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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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를 읽는 법

알파벳 X는 거시기, 삐리리~ 말고도..

  1. 대문자 단독으로는 글자 그대로 eks라고 읽는다. X-ray X-file, XP 미지수일 때는 소문자 단독도 있다.
  2. 종성에서 ks라고 발음되며 이게 가장 보편적이다. box, taxi, fax, tax 등.
  3. 초성에서는 그냥 z로 발음되는 편이다. 이런 발음을 의도한 고유명사도 많다. xylophone, Xaero, xenon, Xerox
  4. 단, 아시아권 언어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s나 sh로 발음되기도 한다. xi-, xu- 이렇게 시작하는 편.
  5. cross, Christ라고 읽기도 한다. X-mas, Jesus is X, No X-ing 하긴, X의 획이 서로 교차하는 형태이고, 그게 45도 기울인 십자가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이런 독음도 생긴 것이다. 수학에서 ×는 cross product라고 불린다.
  6. 로마 숫자를 의미할 때는 'ten'으로 발음된다. Mac OS X
  7. 그리스 문자를 표방할 때는 그냥 k라고 발음되기도 한다. LaTeX (뭐, 우리식 발음이라고 이것도 '라텍쓰'를 꿋꿋이 고집하는 분도 있다. 하긴, 옛날에 단재 신 채호 선생도 워낙 민족주의 의식이 강해서 세수할 때 허리를 안 숙이고, 이웃 네이버를 네이그후보어라고 발음하곤 했다.;; )

Y가 반자음도 되고 장모음, 단모음이 다 되는 것 이상으로 X는 발음이 굉장히 유동적인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여러 언어들에서 x의 발음은 제각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지금 도스/윈도 명령 프롬프트에 있는 xcopy라는 외부 명령에서도 x는 cross를 의미한다. 아마 서브디렉터리들을 드라이브간(between, inter-, cross-)에 그대로 통째로 복사하는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기존 내부 명령인 copy에는 없던 기능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3/08 08:42 2015/03/0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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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컴퓨터라는 물건이 발명된 지가 아직 100년도 채 안 됐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을 이렇게 완전히 180도 뒤바꿔 놓은 기계가 역사가 그렇게도 짧다니! 그 내력이 최소한 전화기나 자동차의 역사 정도는 될 법도 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긴, 텔레비전이 컴퓨터보다 약간 더 일찍 발명된 정도다.

오늘날의 컴퓨터와 비슷한 컨셉이라도 탑재된 물건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2차 세계 대전 이후이다. 전자식+2진법+튜링 완전+프로그램 내장형 같은 기본 중의 기본 단서만 추가해 줘도 시기는 더 늦어진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덩치와 성능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노트북과 스마트폰하고는 차마 비할 바가 못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컴퓨터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산물이라는 건, 다시 말해 단군의 후손들이 역사상 컴퓨터라는 걸 접한 시기는 오로지 '대한민국' 시대가 유일하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나 조선 시대엔 그런 거 없었다. 그러니, 세계의 컴퓨터 역사뿐만 아니라 그 컴퓨터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전산망을 개설한 선구자들의 전설의 레전드를 공부해 보는 것도 전산/컴공 전공자이든 비전공자이든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의 거장으로 성 기수 박사(1934-), 전 길남 박사(1943-)가 있다. 난 성 박사는 고등학교 때 어느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주 아주 대단한 분이라고 우연히 알게 됐다. 전 박사는 알지도 못하다가 대학에 진학해서야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학과에 소속돼 있는 만렙 명예교수 중의 한 분 정도로나 접하게 됐다.

두 분 다 업적이 워낙 전문적이고 비가시적인 곳에 있는지라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다. (2011년 10월에 1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와 데니스 리치의 대외 인지도의 차이를 생각해 볼 것!)
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약간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최근에 웹툰도 올라왔고 이게 각종 SNS에 퍼날라지면서 반짝 뜨곤 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1982년 5월 15일, 구미 전자 기술 연구소와 서울 대학교 사이에 국내 최초 원거리 컴퓨터 네트워크 교신에 성공. 이건 모뎀이냐 랜이냐 뭐냐? 무슨 물리 메커니즘으로? 으음...;;)

저분은 은퇴한 뒤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고, 게다가 저 웹툰을 보고는 작가에게 고증 오류 피드백까지 친절하게 해 주셨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저분의 배우자가 여성 운동가인 조한 혜정 교수라니 깜짝 놀랐다.

최근의 강연 내지 인터뷰에서 전 박사는 인터넷은 너무나 대중적으로 퍼진 만큼 앞으로는 좀 더 안전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적이 있다.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의 개발자로 유명한 카스퍼스키는 강력한 인터넷 규제와 신원 확인에 찬성하는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인데 그것과도 비슷한 맥락인가 싶었다. 초창기에 인터넷의 각종 규격을 설계했던 엔지니어들은 이 비싼 통신 인프라가 어중이떠중이가 다 쓰는 보편적인 물건이 될 거라고는 감히 생각을 못 했었을 것이다. 그러니 보안보다는 성능과 효율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지.

난 전산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네트워크, 보안 쪽은 제일 까막눈 문외한이다 보니..;; 저런 분을 보면 그냥 입 쩍 벌리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럼, 다음으로 성 기수 박사 얘기를 좀 하겠다.
이분도 완전 날고 기는 수재였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 박사를 3년 만에 뚝딱 마친 것은 오늘날까지도 유학생들 사이에 전설로 회자된다고 그런다. 원래 전공은 기계· 항공 공학 쪽이었으며 전자· 전산이 아니었다. NASA 같은 데에나 들어가서 우주선과 로켓 엔지니어가 됐을 분이 “아무래도 우리나라엔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신념 하에 한국으로 돌아와 KIST 전산실 실장을 맡았다.

전 길남 박사가 라우터 등 인터넷 기술을 자체 개발하여 우리나라를 인터넷 대열에 합류시켰다면, 성 기수 박사는 그보다 옛날에 우리나라의 행정, 은행, 병원, 철도 등 각 분야의 시스템 전산화를 이끌었다. 전산학이라는 학문이 국내 학계에 제대로 정립조차 되기 전인 초창기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넘나들며 우리나라의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워낙 옛날이기 때문에 구분이 별로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저분의 세부 관심사는 HW와 SW 중 어디에 가까웠을지가 궁금해진다.

2000년대 초반에 바둑 연구를 끝으로, 그 뒤부터는 저분은 언론에 보도되는 근황은 없이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계신 듯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성 박사의 일대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시선을 고정시키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더 전인 1970년, KIST 전산실에서 그의 주도하에 한글 전자 인쇄 장치를 개발해 냈다고 한다.
유니코드고 트루타입 글꼴이고 뭐고 하나도 없던 까마득한 옛날에 일종의 1세대 비스무리한 한글 기계화를 이룬 거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여기서 벌써 한글 입력 방식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글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다루는 시기가 굉장히 옛날이라는 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대상이 흔히 생각하기 쉬운 기계식 타자기가 아니라 컴퓨터라는 점이다. 물론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일반인이 간편하게 다룰 수 있는 오늘날의 개인용 소형 컴퓨터 얘기는 전혀 아니다. 저건 애초에 그런 범용(general-purpose) 컴퓨터도 아니다.

저 때보다 약간 전인 1969년 여름에 국가에서는 타자기용으로 네벌식 글자판을 표준으로 지정했다.
난 그 시절엔 두벌식이라는 게 전혀 없었고 그건 나중에 1980년대에 와서야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아니고 그 이전부터 두벌식과 네벌식이 모두 있었던 듯하다. 사료를 모두 종합해서 고찰해 보면, 1969년에는 “타자기는 네벌식, 전자 기기는 두벌식”으로 표준이 제정됐고 나중에는 네벌식이 공식 폐기뒨 후 “기계식 타자기까지도 받침 글쇠를 넣어서 두벌식”으로 바뀐 것 같다.

또한 같은 두벌식이라 해도 그때의 두벌식은 오늘날의 '바지들고서' KSX5002 26키 배열하고는 차이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나의 역사 지식에 오류가 있다면 수정 지적을 환영하는 바이다.

아무튼, 성 기수 박사가 한글 전자 인쇄기를 개발하던 당시에 국가에서는 이미 네벌식과 두벌식을 밀고 있었다. 그리고 성 박사는 자신이 개발하는 기계에 들어가는 한글 입력 소프트웨어를 별다른 고민 없이 두벌식 기반으로 설계했다.
그분도 그렇게 타자기 따로, 컴퓨터 따로 식인 글자판 표준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씁 어쩔 수 없지”였고, 그런 문제의식만으로 끝이었다.

기계식 타자기가 연극과 같다면 컴퓨터는 영화와 같은 매체이다. 기계식 타자기야 메커니즘이 복잡해서 어쩔 수 없지만, 컴퓨터에는 아무 제약이 없으니 글쇠배열은 가능한 한 간단할 수록 좋을 것이다. 자음의 초· 종성 구분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판단하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자동화가 되어서 좋고,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오토마타 이론을 구현하면서 자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과시할 수도 있어서 좋다..는 게, 컴퓨터쟁이가 한글 입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딱 전형적인 의식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았을까?

그 시절, 공 병우 박사는 안 그래도 나라에서 자기의 세벌식 글자판을 외면한 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랬는데 마침 한글 전자 인쇄기에 네벌식 대신 두벌식 글자판이 들어간다고 하자 책임자인 성 박사를 자기 집에 초대해서 로비(?)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공 박사는 그 시절에 이미 그야말로 억만장자가 된 60대의 안과 의사였고, 성 박사는 30대 중후반으로 공 박사의 아들 연배인 파릇파릇한 공학자였다. 물론 전공은 다를지언정 두 분 다 대한민국 0.1% 이내에 드는 천재들인 건 주지의 사실이다.

공 박사는 고급 외제차를 몰고 성 박사를 데리러 홍릉 KIST를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호화로운 자기 집에서 최고급 요리를 대접하면서 제안을 한 게.. “당신 같은 사람이 세벌식을 지지해 준다면 당신이 필요한 연구비는 내가 얼마든지 대 주겠소.”였다고. 여러분도 잘 아시잖는가. 공 박사는 기계덕후였으며 평생 젊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들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국가로부터 받는 예산만으로는 당장 연구실의 장비 내지 컴퓨터의 업그레이드조차 빠듯할 지경이었는데.. 그 제안에 성 박사가 귀가 솔깃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거 뭐 “KIST에 공 병우 박사의 기증으로 슈퍼컴퓨터가 한 대 도입되었다” 같은 역사가 쓰여질 수도 있었다!

허나 설득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공 박사의 입장에서 성 박사는 장래는 촉망되지만 한글이나 글자판에 대한 건전한(?) 소신이 없이 그냥 어용학자로 빠질 위험이 있는 인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 박사의 입장에서 공 박사는 그냥 자기 발명품만 꽉 껴안고 놓을 생각을 안 하는 고집쟁이 타자기 덕후로만 보였을 것이다. 늘어놓는 이야기가 서로 핀트가 안 맞았다.

성 박사는 공 박사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세벌식 한영 타자기를 한 대 선물로까지 받았지만, 세벌식 같은 덴 애착이 별로 안 갔으며 그건 곧 그걸 갖고 싶어하는 다른 후배에게 줘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두 '박사'간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저 사이트의 글도 “성 기수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반공병우파의 손을 들어 준 셈이 되어 버렸다.”라고 씁쓸하게 끝난다.

그래. 하버드에서 3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공돌이라고 해도 그 옛날에 타자기와 컴퓨터의 글자판 통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글자판 일체형 직결식 글꼴이 항공· 기계 분야하고 관계가 있지는 않잖아.

물론 공 박사도 의사 겸 의학자일 뿐, 언어학이나 타이포그래피를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그 분야에 학위가 있지는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분야의 식견에 관한 한은 더 옛날부터 이 극로 선생으로부터 감화를 받아서 한글덕후로 개조가 끝나 있던 공 박사가 더 앞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에서 덕후 타이틀만 무려 3개가 나왔군..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이트의 글에서는 꼭 공 박사가 성 박사를 무슨 불의한 일에 접대로 유혹하고 매수라도 하려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좀 유감스럽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하겠다.
이거 무슨... “통일교를 공인해 주면 내 사재로 IMF 빚 다 갚아 주겠다”도 아니고.. 뭐냐?

Posted by 사무엘

2014/08/13 08:35 2014/08/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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