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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언어 유희

1.
일본식 소주인지 청주인지.. 그런 술을 일본어로 '사케'라고 부른다. 그런데 술안주 중의 하나인 연어도 외래어 음차인 '사먼'뿐만 아니라 '사케'라고 한댄다. (단, 억양의 차이는 있음)
우리말에서 고장(region / out-of-order)이나 거리(distance / street)처럼 일본어에도 이런 유형의 동음이의어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저 섬나라 사람들도 술을 무척 좋아하는지.. 자국에서 개발한 공개 키 암호화 알고리즘의 이름도 SAKKE라고 붙였다. 고안자의 이름 같은 여러 단어들의 이니셜이긴 한데, 이어서 발음하면 저렇다.;;
하긴, 옛날에 일본 SEGA에서 개발된 황금도끼 게임도 몹들의 이름이 다들 술 이름이긴 했다.

2.
우리나라엔 '대성 나찌 유압 공업'이라고.. 대성 그룹의 계열사이면서 일본에 있는 '나찌-후지코시'라는 이름의 기업과 제휴해서 설립된 기업이 있다. (☞ 홈페이지)
독일 나치 NAZI도 아니고 일본 나치 NACHI라니..!! 대박이다.

하긴, 그 시절에 일본군보다야 독일군이 '때깔'이 더 멋있긴 했다.
검은 군복은 과거에 우리나라 박통의 참모이던 차 지철조차 흉내 냈을 정도이고, 로마 제국 스타일을 흉내 낸 팔 뻗는 경례도 그 자체는 간지 나잖아..

독일은 유보트, V1, V2, 티거 전차 같은 무기도 그렇고, 베를린 올림픽 때 이미 텔레비전 생중계까지.. 과학 기술도 세계 최강이었다.
열등한 인종 민족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다고 선 넘는 악행만 안 벌였으면 1차 대전 때처럼 그냥 평범한 패전국으로만 남았을 텐데.. 그건 교만으로 인한 패망이고 걔네들의 자업자득이 됐다.

3.
우리나라 현대로템은 '한국 철도 차량'이라고 처음에 상호를 정했는데.. 이게 영어 이니셜이 "KOROS 고로스"(일본어로 殺 죽인다)라고 읽히고 일본 거래처에서 기겁을 하는 바람에 다른 단어를 갖다붙여서 뭔가 스덕스러운 '로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난 일본어를 모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서유기 편에서 "1등 하는 놈을 증오로 죽인다~!"라는 삼장법사의 저주 대사를 통해서 '이치 ... 고로스'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같은 추축국 전범국이어서 그런지, '고로스'에는 민감하면서 어째 나찌라는 상호는 멀쩡히 남아 있나 보다.

4.
일본어 언어유희라는 분야의 끝판왕은 일본의 20세기 격변기를 풍미했던 히로히토 천황의 궁호(미야고)이지 싶다. 한자로는 迪宮인데, 일본어로 읽으면 '미치노미야'...=_=;; 였다.
이건 일제 시대 때 조선인들로부터 당연히 0순위로 '미친놈이야 히로히토'라는 언어유희와 놀림의 대상이 됐다. 순사 짭새들에 대한 멸칭인 '개/나리'만 있던 게 아니었다.

창씨개명이 행해졌을 때도 이 이름을 응용한 창작물이 많이 시도됐다. 그건 좋게 끝나면 등록이 거부되고 퇴짜 맞았으며, 나쁘게 끝나면 당사자가 경찰서로 끌려가서 코렁탕을 먹었다.
일본에서도 식민지 언어인 조선어에 대해 연구를 안 한 게 아니고 한때는 한글/조선어 독본까지 만들었을 정도인데.. 이런 언어유희를 모를 리 없었다.

요즘은 반일 감정에 편승해서 국내 언론에서 어지간해서는 그냥 일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1990년대 말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래로 우리나라가 외교 때 정식으로 사용하는 칭호는 여전히 원형 그대로 '천황'이다. 북괴의 수장도 꼬박꼬박 위원장이라고 불러 준다면 굳이 천황만 꺼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5.
옛날에 홍 사익이라고.. 조선 황실 출신이 아닌 평민으로서 일본 육사와 육대를 졸업하고, 일본군 육군 중장(한국군으로 치면 투스타 소장에 대응) 계급에까지 오른 유일한 개룡남 조선인이 있었다. 1889년 3월생으로 히틀러나 찰리 채플린과 거의 동갑내기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패전 이후에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서 사형을 당했다. 이 사람이 직접 전쟁을 벌이고 나쁜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에서 저질러진 대규모 연합군 포로 학대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군인 예우도 못 받았는지 총살이 아닌 교수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사형 판결을 받고 돌아와서는 지인들에게 "나 갑종 합격이야~!"라고.. 무슨 징병 신체검사 1급을 받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뭐 갑종...?? 아.. 교수라고..? 교수형??!!!" 일본어는 甲種과 絞首가 발음이 こうしゅ(코우슈)로 같아서 나름 개드립을 친 것이었다.

우리 한국어로 치면 "내 동생이 방금 대학 교수 임용에 합격해서 난 이제 교수형이지롱~" 이런 드립을 친 것과 정확하게 같았다.

진짜 악질 전범이었던 도조 히데키는 옥중에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부처님.. 나무아 '미타' 불...)에게 가는 기쁨이여~~" 이런 유언을 남긴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반면, 홍 사익은 옥중에서 기독교에 귀의했다. 참회와 회개의 고백인 시편 51편을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되뇌이고 들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사람은 뭐 독립운동 유공자로 예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친일 반민족행위자라고 낙인 찍고 지탄할 대상도 아니었다. 동족에게 막 적극적이고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며, 창씨개명도 안 하고 늘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일본군 내에서 인정받고 저 정도로 출세한 건 오히려 대단한 일이다.
그랬는데 결국 일본은 패망했고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이 전범이 되어 처벌 받았다니 저 사람 개인으로서는 무척 불운한 경우였다고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23 19:35 2021/10/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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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관찰

1. lose와 miss

의미와 심상이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가령, 목적어가 the chance라면.. 기회를 잃건 놓치건 그 말이 그 말인 것처럼 들린다. 버스나 열차를 놓쳐서 탑승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도 두 동사를 모두 쓸 수 있다.

그런데 lose는 ‘잃다/잃어버리다’를 넘어 승부에서 패배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즉, win의 반의어뻘 되는데..
miss는 뭔가를 향해 쐈지만 과녁을 빗맞히는 것, 빗나가는 것, 실수한다는 뜻 쪽으로 간다. lose하고는 다르다.

이렇게 의미가 분화된 두 단어는 나중에는 좀 생뚱맞은 뜻까지 갖게 된다. 먼저 miss는.. '뭔가가 없어서/뭔가를 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리워한다'라고.. 원래 뜻으로 인해 유래된 감정까지 나타낸다. I missed you so much.. 이건 의미가 분화된 과정은 이해가 되지만 심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뒤바뀐 게 이례적인 것 같다.

한편, lose는.. 도망을 잘 쳐서 자기를 쫓아오는 적을 멀리 따돌리고 떨쳐냈다는 뜻으로 쓸 수 있다. “Did we lose them?" 이건 우리말로 직역하기가 좀 그렇지만, "이제 저놈들 완전히 따돌렸지? / 우릴 안 쫓아오지?" 정도의 뜻이다. 그 특성상 영화 같은 데서 종종 쓰인다. lose가 일반적으로 손실, 패배 같은 굉장히 애석하고(sorry) 부정적인 뜻임을 감안하면 꽤 의외이지 않는가?

적을 싸워서 제압했다면 beat them일 것이다. win은 목적어 없이 단독으로 '이기다', 아니면 상(prize)을 타거나 경기(contest)에서 우승했다는 뜻으로는 쓰지만 경쟁자나 적을 목적어로 받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말과 차이가 있다.
lose 역시 단독 아니면 경기나 싸움이 목적어였다면 '지다'인데, 적을 목적어로 받으면 저렇게 따돌렸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되겠다.

2. 조동사

영어의 조동사들은 중학교 수준에서 배우고 넘어가는 기본 단어이다. 한국어에는 문법 형태만 따지자면 보조 용언이란 게 조동사와 비슷하지만, 영어 조동사의 의미를 딱 한 단어로 대체하는 물건은 없다.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해도 된다' 등등 덕지덕지 풀어서 써야 하다 보니, 이럴 때는 영어가 꽤 간편하고 부러워 보인다.

하지만 영어 역시 동일 단어가 뜻이 굉장히 다양하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요" 같은 지저분한 구석이 있어서 형태가 완벽하지만은 않다. 내가 영어 모국어 화자였더라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일단, may와 must를 생각해 보자. 얘들은 추측이라는 의미와 권한/의무라는 의미에 형태적인 구분이 없다.

  • MAY: 해도 좋다(허락) / 그럴 수도 있다(확률, 추측) + (문어체로 도치되어) .. 이렇게 하기를 (축복, 기원)
  • MUST: 반드시 해야 한다(강요) / 반드시 이럴 것이다(확률, 추측)

must의 경우, have to라는 대체제가 있다. 얘는 강요라는 뜻만 담당한다.
그리고 부정문은 must not과 do not have to가 모두 가능한데, 전자는 전체 부정(반드시 하지 말아야 한다)이고 후자는 부분 부정(꼭 할 필요는 없다)으로 의미가 나뉜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must는 다른 조동사들과 달리 과거형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고..

다음으로 can과 will을 생각해 보자.

  • CAN: 할 수 있다(가능. be able to)
  • WILL: 할 것이다(미래. be going to, be about to)

여기까지만 보면 별로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데.. 이것들이 과거형으로 바뀌고 의문문에 쓰이면 뉘앙스가 미묘하게 차이 나는 청유/부탁이 될 수 있다.
한국어는 보조 용언 '주다' 내지 '달다'(불완전)가 있어서 자기를 위한 부탁의 뜻을 꽤 분명하게 표시할 수 있는데, 영어에는 저런 조동사, 그리고 부사/감탄사 please가 붙어서 부탁의 뜻이 가미되는 셈이다.

조동사들 중에 제일 제멋대로 독고다이로 노는 놈은 단연 shall일 것이다.
요놈의 제일 기본적인 용도는 will보다 더 고전 문어적인 느낌으로 미래의 일, 다짐, 예언, 지침을 표현하는 것이다.

“Thou shalt not kill”은 “너는 살인하지 않을 것이다”가 아니고, 그렇다고 대놓고 명령조의 “살인하지 말라”도 아니며, “살인하지 말지니라” 정도가 적당한 번역일 것 같다. 영어 성경에 나오는 shall은 will과 비슷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must의 자리도 넘보니 will 그 이상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의문문에서는 거의 관례적으로 we에만 붙어서 “우리 ~할까?”라는 용도로 쓰이고, 대답은 let's ~로 끝난다.
그리고 과거형은 거의 must와 비슷한 강한 확신이나 명령이 되는데, have 완료형과 즐겨 붙어서 “~했어야만 했다” 이런 꼴로도 잘 쓰인다. 묽은 황산이 진한 황산으로 바뀌면 성질 자체가 좀 달라지듯이 shall은 이런 식으로 굉장히 므흣한 면모가 있다.

그나저나 let us go (우릴 가게 해 줘)와 let's go (우리 가자)가 차이가 나는 건 우리말로 치면 '도트, 네트'와 '닷, 넷'이 차이가 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3. 운율

성경에서 마 7:13은 그 유명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이다. 영어로는 우아하게 도치법이 적용되어 "...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way, that leadeth to destruction ..."인데..

난 이 문장을 읽으면서 뭔가 옛날에 유선 전화 송수화기를 들고 너무 오랫동안 지체할 때(대략 20~30초 이상..?) 흘러나오는 오류 메시지와 운율 면에서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dialing is too late, please call again. ...???... 다시 걸어 주십시오." 이거 말이다. 요즘도 유선 전화기에서는 들을 수 있으려나?

요즘은 개인적으로 유선 전화 자체를 접할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컴퓨터에서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만큼이나 보기가 매우 어려워져 있다.
그나저나 wide is the gate랑 dialing is too late를 생각해 보시길.. 좀 비슷한 운율이 느껴지지 않는가..? 영어에 rhyme이란 개념이 괜히 존재한 게 아닌 것 같다.

전화를 끊고 다시 걸라는 에러 메시지는 영어 문장 세 개, 그리고 우리말 문장 하나로 구성돼 있었다. 마지막 영어 문장은 1990년대의 내 영어 청취 실력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만.. 이런 건 딱히 구글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더라.

4. wake와 wait, a-변종

영어의 wake와 wait는 서로 발음이 비슷하면서 매우 간단하고 기본적인 동사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글쎄.. wake는 대부분 wake up이라는 명령 형태로만 쓰는 것 같다.
wait는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정도의 자동사가 기본이고.. 누구를 기다린다고 할 때는 반드시 wait for의 형태가 된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모두 앞에 a가 붙은 awake, await라는 변종이 존재한다.
await는 그냥 wait가 아니라 귀한 손님, 혹은 게임에서 최종 보스 같은 거물이 "너를 맞이할 것이다" / "귀하신 분이 납신다" 이런 뉘앙스가 들어간다. 게다가 완전한 타동사이기 때문에 for 없이 목적어가 바로 붙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녀와 야수 만화영화에서 tale as old as time을 앞두고 나온 대사 "Your lady awaits", 그리고 게임 퀘이크에서의 메시지 "Shub-Niggurath awaits you"가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으로 wake는.. awake뿐만 아니라 waken도 있다. 그리고 awake와 waken은 모두 동작이 아닌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도 된다. 그러고 보니 live(동사/형용사)와 alive(형용사)하고도 비슷한 관계인 것 같네..

어떤 동사는 한국어로 치면 '주다'와 '달다(다오)'처럼.. 주체나 객체가 특정 인칭(나 또는 타인)에 특화된 경우가 있다. wake의 변종들도 이런 경우인 게 아닐까?
여호와의 증인 간행물인 '깨어라'는 wake up이 아니라 awake라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10 08:36 2021/07/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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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어휘 관련 이야기들

1. 접두사

한국어에서 '반'이라는 접두사는 반대· anti라는 뜻이 있고(반작용, 반중력, 반물질, 반동..), half라 하더라도 반자동, 반원, 반계탕(...)처럼 뭔가 온전· 완전하지 않은 반쪽짜리라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반영구'는 어떨까? 이건 의외로 100점의 반대편인 0점이나 절반인 50점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무조건 100%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으니까 90, 99 내지 99.9%라는 뉘앙스를 담아서.. 저건 '거의 사실상 영구적인'이라는 뜻이다. "이 기계는 정비 없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합니다"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구, 영원'이라는 건 수학적으로 봤을 때 무한을 나타낸다. 그런데 무한대는 반으로 나눠 봤자 여전히 무한대일 테니, '반영구'도 뜻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겠다.
'반영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의아함을 느꼈던 단어가 영어에도 있는데.. 바로 depress이다.
de-에는 잘 알다시피 반대 역행(decode), 제거(defrag, deice..), 감소(decrease) 등의 뜻이 있다.

그러니 depress가 의기소침, 우울, 불경기, 불황 등의 뜻이 담긴 동사인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것 자체에도 press와 별 차이 없는 "버튼, 페달 따위를 누르다"라는 중립· 물리적인 뜻도 있는 것은 의외인 것 같다. 마치 반영구와 영구가 뜻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 운전석에서 특정 페달을 밟는 동작도 depress로 표현 가능하다.

re-가 붙어서 원래 단어와 별 차이 없거나 강조 뉘앙스가 담긴 다른 뜻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예: avenge-revenge, award-reward, plenish-replenish)
de-도 비슷한 작용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liberate - deliberate, light - delight도 둘이 서로 반의어 관계는 아니니 말이다.

2. 크다/작다, 많다/적다

'크다/작다'(대소)와 '많다/적다'(다소)는 직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언어 차원에서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은 개념이다.

(1) 먼저, 이산적이고 양자화되어 수효를 셀 수 있는 디지털 개체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많다/적다 many/few’가 쓰인다. 사람이라든가 자동차 등.. 영어라면 이런 개체가 하나만 존재할 때는 부정관사 a가 붙을 수 있다.

(2) 이와 달리, 단일 개체에 대해서 시각적인 size를 논할 때는 ‘크다/작다’가 쓰인다. 영어로는 large/small, big/little 같은 단어 쌍이 있으며, 이 외에도 great, huge, tiny 같은 단어도 있어서 표현이 다양하다. 사람의 키, 건물의 높이에 대해서는 tall도 쓰인다.

(3) 각각의 개수를 셀 수 없는 아날로그스러운 물질.. 가령 액체 기체 같은 유체에 대해서는 수가 아니라 양(부피)이 많거나 적다고 말한다. 한국어로는 표현이 동일하지만 영어는 잘 알다시피 much/little을 사용한다.
이거 경계가 좀 모호한 편이다. 고체의 경우,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쌀알, 콩알은 1자리 단위의 개수를 세는 게 무의미하고 양만을 측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many가 쓰이는 듯하다. 모래알이나 흙 정도는 돼야 much가 된다.

(4) 그리고 애초에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 근성, 노력 같은 건 당연히 셀 수 없는 개념들이다. 영어로는 응당 much/little이 쓰이지만.. 우리말은 둘의 구분이 막 엄격하지 않고 ‘많은 사랑, 큰 사랑’ 다 집어넣어도 말이 되는 것 같다. 하긴, 영어로도 great와 much를 생각해 보면 ‘크다’와 ‘많다’가 모두 가능한 듯하다.

(5) 끝으로, 많고 적음을 나타낼 때 숫자가 쓰이기는 하지만, 숫자의값 자체는 크거나 작다고 수식한다. 이것을 영어로는 great/little이라고 하며, 비교급은 greater/less이다. 이건 시각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2)와 표현은 비슷해도 관점은 약간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와 양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메롱인 상황에서는 ‘적다/작다’도 덩달아 헷갈리게 된다.
영어의 little은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에 대해서 뜻이 너무 다양하게 함축적으로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 심지어 little과 少에는 ‘어리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3. 동물 명칭

한국어에는 가축 급의 친숙한 동물 몇 종에 대해서..
말-망아지, 소-송아지, 개-강아지 이렇게 짤막한 총칭에다가 접사 '-아지'가 붙어서 그 품종의 어린 새끼를 가리키는 패턴이 존재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옛날에 원래는 '돼지'도 저런 관계였다고 한다. 돼지를 가리키는 총칭은 '돝'...;;; 이었고, 새끼돼지를 '도야지'라고 불렀는데.. '돝'이라고만 해서는 변별이 잘 안 됐나 보다. 나중엔 '도야지'가 돼지의 총칭이 되고 음운이 축약되어 오늘날의 '돼지'로 정착했다. 오늘날은 '도야지'는 돼지의 방언 내지 귀여운 별칭 정도로나 여겨지고 있다.

사실, '돝'은 너무 짧아서 돛도 아니고 dot도 아닌 것이 좀 난감하긴 해 보인다. 먼 옛날의 한국어에는 지금보다 모음 양 옆(음절초나 음절말)에 여러 미세한 자음들이 붙는 게 더 자연스러웠는가 보다.
'돝' 말고도 저렇게 짤막한 단어가 현대에는 더 길어지고 늘어난 게 내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럿 더 있다. 참고로 나무 열매 '도토리'도 '돝'에서 유래되었으며, 다람쥐뿐만 아니라 돼지 역시 도토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아울러,

  • '돝'에서 음운이 더 탈락해서.. 윷놀이에서 말을 한 칸만 움직이는 명칭인 '도'도 돼지의 흔적이다.
  • '-아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접사가 영어에는 '-ling'(저글링;;)이나 '-ette'(디스켓) 정도 있는데, 이들도 막 활발하게 생산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 영어는 소와 돼지에 대해서 해당 동물의 '고기'를 가리키는 단어가 별도로 존재한다. pork, beef... 그리고 몇몇 고양잇과 동물의 새끼를 총칭하는 cub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국어는 딱히 그에 대응하는 개념이 없다.
  • 닭의 새끼인 '병아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닭'하고는 관계가 전혀 억고, '-아지'하고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게 인상적이다.

4. 천둥, 번개, 벼락

천둥, 번개, 벼락은 동일한 기상 현상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모두 ‘-(내리)치다’가 붙을 수 있는 대상이다.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묘사하는 관점이 원래 서로 제각기 다르다. 마치 열차, 기차, 전철, 철도 등의 뒤죽박죽 단어처럼 말이다.

  • 천둥: 쿠구궁~~ 콰르릉 같은 엄청나게 크고 우렁찬 소리를 가리킨다(청각). ‘天動’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순우리말은 ‘우레’이다. 우뢰가 아님. 아마 한자 뢰(雷)의 영향으로 말이 바뀌는 것이지 싶다. 영어로는 thunder이다.
  • 번개: 구름과 구름, 또는 구름과 대지 사이에 전기 방전이 일어나서 번쩍이는 그 직선 모양의 불꽃을 가리킨다(시각). 번갯불, 번개 모양 아이콘/아이템 등의 형태로 쓰이며, 비유적으로는 몹시 빠르고 날쌘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영어로는 lightning이다.
  • 벼락: 번개와 비슷하지만.. 특별히 번개가 떨어져서 지면에 닿는 현상을 가리킨다(낙뢰?). 그러니 천둥 번개가 비교적 중립적인 심상인 반면, 얘는 “벼락 맞아 뒈지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인적· 물적 피해를 동반하는 부정적인 심상이 강하다. 청천벽력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다(벽력). 영어로는 thunderbolt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광속과 음속의 차이로 인해 번개 비주얼과 천둥 소리가 동시에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같은 현상에서 유래되었지만 언어 차원에서 둘을 더욱 분리해서 별개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다만, 번개와 벼락의 구분은 한국어에 좀 독특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접사 '호'

한국어는 선박을 여성형 대명사로 가리키며 모에화(...)하지는 않지만, 선박의 이름 뒤에 꼭 '-호'라는 접사를 붙이는 관행이 있다.

-호 (號) [접미사] 배· 비행기· 기차 따위의 이름에 붙여 쓰는 말. (표준 국어 대사전)


이건 받침 있는 사람 이름 뒤에 붙는 잉여 접사 '-이'(복순이, 갑돌이)하고도 물론 같지는 않지만 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순서를 나타내는 1호, 2호(의존명사) 내지 창간호 따위의 '호'와는 성격이 명백히 다름을 유의하시라.

옛날에는 사람이 타는 교통수단이란 게 매우 희귀하고 수가 적고 신기한 물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체가 이름이 붙고 고유명사화· 인격화되곤 했다.
과거의 우리나라 열차 이름 해방자호, 융희호 따위는 해당 열차 등급이 아니라 특정 차량의 명칭에서 유래됐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각각의 기체에다 만송호, 창량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을 정도였다. (꼴랑 세 기..)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작명 방식에도 한자어가 아닌 영어물이 들면서 이런 '-호' 관행은 쓰이지 않게 됐다. KTX호, ITX-청춘호 이러지는 않으니 말이다.
오로지 선박만이 각각의 선체에다가 이름을 붙이는 관행과 함께 '-호'가 여전히 현역인 것 같다. 심지어 거기는 외래어 명칭 뒤에도 '-호'가 잘만 붙는다.

스포츠 신문에서는 운동 선수들이 감독과 함께 한 배를 탔다는 걸 비유하고 싶어서인지 '히딩크호, 허정무호 순조롭게 출항' 이런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로호'는.. 열차도, 선박도 아니고 우주 로켓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호'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이 21세기에도 '-호' 네이밍이 완전히 죽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이런 저런 정황을 감안하다 하더라도 옛날에 태풍 이름에도 '-호'가 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다. 대표적으로 1959년의 그 악명 높았던 태풍 '사라호' 말이다. 태풍은 그냥 자연 현상일 뿐, 인간이 개발한 교통수단이나 발명품이 전혀 아닌데..?
그때는 태풍더러 좀 순해지고 피해를 덜 끼치라고 국제적으로 여성 이름이 붙던 시절이었다(1979년까지).. 이 '사라'는 실제 여성 인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뜻에서 '-호'가 추가된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27 08:34 2021/05/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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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멸 위기? 제주어

한 1990년대, 한국어에 대해서 우랄 알타이 어족 기원설이 유효했고 학교에서도 가르쳐지던 시절엔..
"바른말 고운말을 씁시다, 한글을 사랑합시다, 한자어와 외래어보다는 가능한 한 순우리말을 살려 씁시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를 순화합시다" 같은 계몽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국어학 교수 타이틀까지 거머쥔 전문가도 있었다.
심지어 이때는 "미래(21~22세기)엔 세계 언어들의 90% 이상이 사멸할 것이다.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국어도 외국어에게 잠식 당해 사멸할지 모른다"라고.. 거의

  •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북괴가 다시 남침해서 적화통일 될지 모른다,
  • 일본에게 나라를 다시 빼앗길지 모른다
  • 지금 이 상태로 문화건 농산물이건 영화건 공산품이건 시장을 확 개방했다간 다 빼앗기고 내수 시장은 망할 것이다
  • 한국은 UN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이다. (...!!)

이런 급의 괴담이 언어 분야에서도 나돌기도 했다.
지금은 교통· 통신의 발달과 함께 영어가 그야말로 넘사벽 급의 세계 공용어가 됐으며, 반대급부로 소수 민족 언어들이 야금야금 사멸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언어 순수주의에 입각한 계몽 운동에 대해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언어의 어휘와 문법 구조는 이미 사람의 생각과 정신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 문법 차원에서 단· 복수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언어, 성별 구분이 있는 언어, 높임법이 존재하는 언어.. 이런 것 말이다.

그러니 말과 글과 얼이 하나라는 말까지 나왔으며, 멀쩡한 자국어 어휘가 외국어에게 잠식 당하는 게 마치 자국 정신 세계의 영토를 침략자에게 빼앗기는 것과 비슷한 급의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구나 20세기 초중반 우리나라의 너무 처절하고 비극적이었던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런 식으로 투영되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여 년 전처럼 식민지 제국주의 군국주의가 횡행하는 시기가 전혀 아니며,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팎의 국력과 지위를 자랑하는 상위권 선진국이다.
극심한 저출산 때문에 미래가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인구가 소수 민족 수준인 것도 아니며, 한류다 뭐다 하면서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도 있다.

그러니 한국어는 듣보잡 소수 민족 언어와는 처지가 다르다. 예측 가능한 짧은 미래에 사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 언어는 절대 아니다.
또한 고유어나 외래어, 언어 순수주의에 대해서는 본인은 공감하는 것도 있고, 별 영양가 없으니 그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긋는 사항도 있다.

사실, 멀쩡히 잘 쓰이던 고유어가 외래어에 먹힌다기보다는 애초에 고유어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개념 내지 변별이 안 되는 개념 때문에 외래어가 쓰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예를 좀 들자면 로켓이나 제트 엔진 같은 건 도대체 무슨 수로 순화할 생각인가?

정말 순우리말을 살려 쓰고 싶으면 멀쩡히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컴퓨터, 인터넷 이런 말을 셈틀, 누리그물 따위로 바꾸는 것보다.. '장'이 너무 답답하고 변별력이 떨어져서 페이지/챕터라고 바뀌는 것부터 막는 게 '훨씬' 더 시급하다! 이건 뭔 한자 따위 동원한다고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너무 까다롭고 거추장스러운 호칭과 격식을 파괴하기 위해서 '너님', 심지어 극단적으로 '유님'(you)이라는 말이 생겨서 아무나 간편하게 가리키는 중립적인 2인칭 대명사로 통용된다면.. 그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누가 국어 파괴니 깐죽거리며 감 놔라 배 놔라 오지랖 부릴 수 없다.

글쎄, 그런 것 말고 붉은피톨· 말본 셈본· 넘보랏살 같은 순우리말 용어를 괜히 천하고 경박스럽다고 생각하고 한자어· 영어 용어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나조차 이미 의식 세계가 외국어 외세에 침략(?)을 당하고 세뇌 당하고 더럽혀진 결과인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침략을 당한 덕분에 초록(green)과 파랑(blue)을 언어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다면 그건 꼭 나쁜 침략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_=;;;;

본인은 이 주제에 대해서 저런 것 말고도 오랜 지론과 할 말이 많이 있다. 하지만 시간과 지면의 부족으로 인해 이 자리에서 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단어 수준이 아니라 언어 정체성 레벨에서 정말로 사멸을 걱정해야 하는 대상은 한국어 자체가 아니라 한국어의 방언 중 하나인 '제주어'인 것 같다.

저런 게 있다는 것,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해서 아래아가 쓰인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구사하는 걸 들어 보니 이 정도로 이질감이 큰 방언인지는 몰랐다. 차이가 더 벌어졌으면 북경어 vs 광동어 정도로 벌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푸른거탑 제주어 버전;)

천상천하 유아독존 고립어인 줄로만 알았던 한국어에도 이 정도로 편차가 큰 지역 바리에이션이 있었다니~! 이건 고대/중세 국어의 모습은 어땠을지에 대한 통찰도 제공할 수 있겠다.

예전에(2000년대쯤..) 제주어를 제대로 채록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서 아래아를 입력할 수 있는 한글 입력기가 있어야 한다고 '김 익두'라는 분이 인터넷 상으로 활동을 많이 하셨다. 본인에게도 문의를 하신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분이 지금은 뭘 하고 계시나 모르겠다.

2. 질적 저하? 사이소리

영어에 2음절 이상의 단어마다 악센트라는 게 있다면, 한국어에는 사이소리라는 아주 아주 기괴한 초분절요소가 존재한다.
이건 높임법만큼이나 한국어의 맞춤법과 발음법, 학습 난이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주범이다. 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 성과는 성꽈이고 결과는 왜 결과인지..?
  • 물고기는 물꼬기인데 불고기는 왜 불고기인지?
  • 비빔밥은 비빔빱인데 볶음밥은 왜 그대로 보끔밥인지?

이건 아주 작은 예일 뿐이다. 정말 도무지 원칙이 없고 답이 없다.
더 골때리는 예를 들자면.. 0, 1, 부터 9(영, 일, ..., 구)까지의 숫자 뒤에 '단, 단계, 반, 점' 같은 단위 접사를 붙여 보자. 6이야 받침이 ㄱ이니까 언제나 된소리화가 발생하겠지만 나머지 숫자들은 도대체 언제 사이소리가 들어갈까?

내 언어 직관에 따르면 ㄹ 받침인 1, 7, 8은 언제나 '딴계, 쩜'으로 바뀐다. 하지만 교실을 나타내는 '반'은 사이소리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러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습자가 뒷목 잡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이소리 정도는 꼬박꼬박 정확하게 넣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원어민 화자가 듣기에는 충분히 어색함과 이질감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렇게 사이소리가 불필요하게(?) 들어가서 된소리가 발생하고 어감이 강해지는 걸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경계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국어 교육 제대로 다시 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이미 1970년대에부터 신문에 실리곤 했다. 관심 있으신 분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된소리'라고 쳐서 검색 한번 해 보시라~~

라떼는 말이야 ‘간단하게’도 그냥 평범하게 ‘간단하게’라고 부드럽게 발음했는데 사람들이 어느 샌가 ‘간딴하게’라고 무슨 북괴가 ‘원수’를 ‘원쑤’라고 발음하는 걸 닮아 가고 있다고.. 이런 걸 방치하면 사람들 정서가 망가지고 심성이 병들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식이다.
저게 도대체 뭔 소리인가 싶지만, 저 때는 선풍기 괴담이나 일제 쇠말뚝 괴담 따위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저질 불량 만화 화형식도 하던 시절이었다.;;; 언어에 대해서도 이 정도의 순수주의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주류이긴 했을 것 같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방송 같은 데서 반드시 강조하는 게 뭐냐 하면 ‘효과’, ‘김밥’도 절대로 ‘효꽈’, ‘김빱’이라고 둘째 음절을 경음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단어들은 표준 국어 대사전에 발음이 경음화하지 않는 게 맞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방송 기자라는 사람들이 그 업계 입사를 위해서 KBS 한국어 시험 같은 건 머리 싸매고 준비했을 테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건 굉장히 어색하고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본인은 억지스러운 경음화 금지에 반대 소신이다.
‘짜장면’을 자장가 발음하듯이 억지로 자장면~~ 이러고, 영어에서 speak를 ‘스삐이크’ 대신 ‘스피이크’ 이러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마치 다르다/틀리다처럼 뭔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구분 원칙이 존재해서 그걸 근거로 이때는 경음화하지 말라고 한다면 따르겠는데..
앞서 얘기했듯이 한국어의 사이소리라는 건 그 어떤 날고 기는 국어학자도 규칙으로 예측과 통제를 해내지 못한 난감한 물건이다. 수학에다 비유하면 거의 '소수(솟수??)의 생성 규칙'만큼이나 말이다!!

어차피 아무렇게나 임의로 정하기 나름이고 익숙해지기 나름일 뿐인 사항이라면 그건 그냥 시장에게 맡기고 자유방임을 허용해야 한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언어 갑질 꼰대질에 난 공감할 수 없다.
심지어 반대 사례도 있다. 나는 ‘교통 체증’도 글자 그대로 ‘체증’이라고 오랫동안 발음해 왔지, 표준 발음이 반대로 ‘체쯩’인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병을 나타내는 ‘증’과 증명서를 나타내는 ‘증’에서 둘 중 하나는 경음화가 발생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영수증? 영수쯩?)

사이소리가 참 더럽고 구리게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몽땅 다 ‘원쑤’ 같은 부정적이고 잘못된 현상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이소리는 형태소 경계(파생어 접사와 어근!!)를 구분하고, 한자 동음이의어를 구분하고, 보통명사와 일반명사를 구분하려는 사람들의 매우 복잡미묘한 심리가 반영되어 들어간다.

한자어에서 사이소리를 최대한 표기하지 않는 쪽으로 찍어누르면서 맞춤법을 정했지만, ‘초점’(focus)의 발음은 지구가 멸망하는 일이 있어도 ‘초쩜’이지 ‘초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소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수점이랑 적은 수는 일말의 유사점이라도 있지만 prime number는 정말 아무 관계 없는 의미인데 표기를 저 따위로 해 놓으면.. 정말 답이 없다. 한자 아니면 영단어로 가야지..

이렇게 애초에 사이소리라는 게 한국어에서 없어질 수 없는 요소일진대, ‘효과’를 결과가 아닌 성과처럼 보고 ‘꽈’라고 주류 발음이 바뀌는 것은 그냥 취향의 변화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미래에는 하나님의 발음조차도 '하난님'으로 바뀔 수 있다. 사이소리라는 게 꼭 된소리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rule 기반으로 기술할 수 없는 사이소리야말로 다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연구할 필요가 생각한다.

성우 겸 배우 이 종구 씨는(1950년생) “오글거리게 효과효과 그러지 말고 평소대로 소신껏 효꽈라고 발음합시다”라고 이미 옛날부터 글 쓰고 홍보를 많이 해 온 걸로 유명하다. 이분 역시 우리말의 올바른 표현과 표준 발음 쪽으로 관심 많고 소신을 갖추신 분이다.

그런데 ‘간단하다’는 ‘간’과 ‘단’을 쪼개서 생각할 여지가 없고, 비슷한 형태의 다른 단어들을 생각해 봐도 정말로 굳이 ‘간딴’이라고 발음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한다. 그런데 왜 어쩌다가 경음화된 발음이 주류가 돼 버렸나 모르겠다. 옛날에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는데 진짜로 일제 말기와 6 25를 겪으면서 사람들 심성이 피폐해져서 ‘간딴’으로 바뀐 걸까..??? 이건 정말 의문이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06 08:34 2021/05/0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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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한글과 한자 문제는 정말 낡고 케케묵었고,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결론까지 도출된 주제이다. 본인 역시 나이 40이 임박한 지금까지 20여 년째 동일한 지론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이에 대한 생각을 또 복습해 보고자 한다.

"한글로만 쓰니까 무슨 단어 뜻이 분간이 안 되고 어쩌구저쩌구" 하는 불평들은 나도 하라면 한 트럭을 끄집어낼 수 있다.
"역전의 용사"는 지고 있던 전투를 운동 경기마냥 역전(?)시킨 용사가 아니라는 것,
정부 조직을 가리킬 때의 部와, 삼권 분립을 가리킬 때의 府가 다르다는 것 뭐 등등..
온갖 병신같은 교인이나 목사나 교회 욕하면서 나는 이래서 예수 안 믿는다, 교회 안 다닌다.. 이러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원리로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나~~~~ 한글· 한자 문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1. 쓰기: 문자는 그림보다 아라비아 숫자에 더 가까워야

"한글로만 쓰니까 무슨 단어 뜻이 분간이 안 되고 어쩌구저쩌구" 하는 불평은..
그 자체조차도 나머지 90%에 달하는 이미 잘 분간되는 어휘들을 한글로 정말 편하고 빠르게 잘 읽고 쓰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불평이다! 알겠는가?

할배가 민주주의를 유린한(? 한 5%쯤?) 독재자라고..??
그 독재를 비판할 수 있는 90~95% 민주주의 토대를 닦아 놓은 사람도 할배다. 그와 같은 이치이다. 자, 이 비유를 들면 좀 이해가 빨리 되려나?

한글이나 알파벳 영단어는 최소한의 문자 체계만 떼고 나면, 최소한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는 거 하나는 아주 수월 간결하게 할 수 있다. 어떤 단어로부터 기본형을 유추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며, 유한한 요소만으로 무한의 개념을 표현한다는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문자와 그림의 본질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허나, 한자는 그림 티를 좀 못 벗은 무한집합-_- 문자이다. 모르는 글자를 옥편에서 찾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부수, 획수..) 실패율도 얼마나 높을까?

게다가 읽을 줄 아는 것과 쓸 줄 아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컴퓨터조차 없던 시절에 "아 배고프다, 밥먹고 싶다" 이런 문장까지 백지 상태에서 한중일 어느 언어 방식이건 한자만으로 써야 한다면..?? 아 정말 끔찍하다.
설령 컴퓨터가 있다 해도 맨손에 펜만 있을 때보다야 쓰기가 편리해질 뿐이다. 다른 간편한 소리글자들도 동일하게 컴퓨터의 혜택을 받고 있다면, 한자는 이것들에 비해 입력하고 취급하기가 번거로우며 여전히 격차가 벌어진다.

2. 말하기/듣기: 글자가 아니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먼저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언어라는 건 말이 먼저지 글이 먼저가 아니다. 한자의 음은 기본적으로 왕창 옛날 중국어 음의 낡은 껍데기일 뿐이다. 한글로만 써 놓으니 분간이 안 되는 문제에 앞서, 말이 글자 그림을 봐야만 이해되는 지경으로 배배 꼬이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이 나의 굳건한 지론이다.

정말 단순하고 상식적인 것에서부터 먼저 의문을 품고 제기해 보자.
수수(授受)와 매매(賣買).
세상에, 지구상의 어느 미친 언어가 '주다'와 '받다'라는 정반대 뜻을 같은 소리로 표현하냐?
'팔다'와 '사다'도 마찬가지.
'방화'는 너무 유명한 예일 테고, 그리고 명왕성의 명(冥)은 '어두울 명'이다. '밝을 명'(明)만 있는 줄 알았지? ㄲㄲㄲㄲㄲㄲ

이건 한자로 적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네 타령을 하기에 앞서 말이 이상한 것이다.
형성자라는 건 알고 보면 굉장히 골때리는 제자 원리이다. 이건 글자를 생성하는 거지, 말을 생성하는 게 아니다.
(저 형성도 formation 形成이 아니라 形聲인 것쯤은 이과 출신인 나도 알고 있음)
이미 만들어지고 익숙해져 버린 명칭들은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더는 이런 식으로 조어를 하지 말고 청각 변별이 되고 잘 와닿는 쪽으로 말을 만들 생각,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중국어에는 성조라는 게 있어서 한국어보다는 한자 변별이 되는 편이다. 중세 땐 우리나라(조선??)조차 한자를 좀더 중국식으로 발음하려고 성조를 도입했던 것 같으나, 지금은 몽땅 사라졌다.
그런데 이 성조라는 게 노래를 부를 때는 전혀 표현될 수 없다. 한자의 발음들은 전부 문맥만으로 분별돼야 하며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알기로 중국은 자기네 가요 뮤직비디오에 자막을 반드시 넣어 줘야 된다.

일본은..? 한자를 청각적으로 최대한 변별하려다 보니 읽는 방식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져서 한자 위에 히라가나 토가 널리 쓰인다. 특히 이름 같은 생소한 고유명사의 한자는 이렇게 안 해 주면 거의 못 읽는다.
나는 이런 게 정상적인, 자연스러운 문자 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20년쯤 전부터 했던 생각이고 지금도 변함없다.

3. 결론: 국어 교육의 문제와 한글 전용의 문제를 서로 헷갈리지 말자

(1) 문자의 본질: 문자라는 건 말을 받아적는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림보다는 추상적인 '숫자'에 더 가까운 면모를 지니는 게 바람직하다.
한자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함축적이고 시각성이 뛰어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읽기'의 장점을 위해서 치르는 '말하기/듣기'와 '쓰기'의 대가, 단점을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2) 한국어의 실정: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와 달리 장단이고 성조고 훈독이고 뭐고 없다시피하며, 한자들을 정말 단순무식하게 한글 1음절로만 연결시켜 놓았다. 거기에다 한글이라는 문자도 자체적인 구조가 꽤 탄탄하며, 히라가나 카타카나 같은 한자 혼용을 전제로 한 보조용 문자가 아니다.
그러니 동음이의어 정리만 좀 해 주면 한글 전용을 하기에 매우 유리한 면모를 갖췄으며, 오늘날 실제로 그렇게 됐다.

(3) 문자 정책: 한글 전용을 전제로 하고, 마치 생소한 신조어를 드러내기 위해서 영어에서 하이픈이나 일부 음절 대문자화를 하듯이 가끔 괄호 안에 한자 병용만 하는 것으로 족하다.
개인적으로 일본식 한자어를 반대하는 소신은 아니다. 하지만 표기까지 몽땅 한자를 밝혀야 할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쓰는 것은 반대다. 민족 감정 때문이 아니라 언어학적,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다.

(4) 교육: 뭐든지 도둑질만 아니면 많이 공부하고 배워서 나쁠 건 없고 그건 한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겨우 말을 담는 껍데기 그릇을 공부하는 것 하나가 이렇게 어렵고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큰 문제이다. 한자는 한자어의 어원을 변별하고 의미를 정확하게 학습하는 용도로 쓰기가 아닌 '읽기' 위주로만 가르치면 된다.
국어 교육 문제를 한글 전용 문제로 돌릴 필요는 없다. 국어 교육을 똑바로 안 시키고 표기만 한자 병용을 하면? 한글 대신 헷갈려서 잘못 쓰인 한자들만 글에 가득해질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한글 전용을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더욱 잘 지켜서 글을 써야 한다. 그게 한글의 표의성과 시각성을 살려 주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4. 여담

(1) 성경조차 히브리건 그리스건 알파벳이건 소리만 받아적는 간결한 소리글자로 기록됐지, 뜻글자가 쓰이지 않았다.
또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최고존엄에 대해 다루고 있는 텍스트이지만 한국어 같은 복잡한 높임법 따위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도 you라고 바로 가리키는 언어로 기록됐다. 예수냐 예수님이냐 이런 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리는 것이다.

(2)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거에 일제가 총칼로 한국어 한글을 말살하면서 일본어를 강요했으니 그건 극심한 저항과 반발에 부딪혔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영국 미국 같은 나라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 한국어 대신 영어를 쓰면.. X나 골치아픈 호칭, 높임법 신경쓸 필요 없이 누구나 이름으로 부르고 you로 바로 가리킬 수 있어요~!!
  • 어려운 한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요~!
  • 세계의 석학들, 최신 지식 정보와 바로 소통할 수 있어요~!
  • 미개한 붓이 아니라 타자기로 아주 빠르고 편하게 글을 쓸 수도 있어요~!

이렇게 당근만 흔들면서 접근했으면.. 당시 지식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한국어와 한글의 운명이 어찌 됐을지 나는 장담을 못 하겠다. 이런 여건에서도 공 병우 같은 천재가 한글 타자기를 발명할 수 있었을까?
물론 저런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전후에 20세기 말이 돼서야 슬슬 등장했으니 이건 가정이 현실적이지 않은 뇌피셜일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14 08:37 2021/02/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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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용 코딩용 글꼴의 변천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Courier, Courier New

고정폭 타자기 스타일 서체의 원조이다. 16비트 시절부터 정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은 그만큼 너무 낡은 구닥다리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에 나온 프로그램 개발툴의 에디터들은 기본 폰트가 전부 Courier 계열이었다.

Courier는 비트맵 글꼴이고, New 버전은 트루타입 글꼴로 Windows 3.1부터 도입됐다. 동일한 크기에서 두 폰트는 모양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작은 크기에서도 New 버전은 또 전용 비트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모양이 아주 균형잡힌 편인데, 그건 비트맵이 아니라 힌팅의 결과이다.

2. Fixedsys

Courier는 알파벳/숫자가 정사각형에 가까운 납작한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꼴의 metric 기준으로 한글이나 한자를 찍으면 그런 글자는 가로로 너무 납작해진다.
그 반면 Fixedsys는 한글· 한자 같은 전각문자가 정사각형이고 영문은 반각 비율로 찍힌다. 다시 말해 얘는 전각문자와 같이 잘 어울리는 코딩용 비트맵 글꼴이다.

Visual C++ 4~6의 경우, 영문 Windows에서 설치하면 텍스트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Courier로 잡혔으며(New가 아님), 그리고 대화상자의 글꼴이 MS Sans Serif로 지정됐다.
그러나 한중일 Windows에서 설치하면 텍스트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Fixedsys가 됐고, 대화상자의 글꼴은 큼직한 System으로 지정됐다.

이것은 Windows 3.x 시절에 영문판은 프로그램 그룹의 텍스트가 System보다 더 작은 MS Sans Serif였지만 한중일에서는 동일하게 큼직한 System으로 지정됐던 관행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래식 Windows GDI 말고 WPF나 DirectWrite 같은 최신 UI/그래픽 엔진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는 트루타입 글꼴 말고 Courier이나 Fixedsys 같은 비트맵 전용 글꼴은 이제 사용하지도 못한다. (가령, Visual Studio 2010 이상)

3. 돋움체

2000년대 이후에 나온 Visual Studio들은 한국어판을 설치하면 텍스트 에디터의 기본 글꼴이 이걸로 설정된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뭐, 얘는 무난하긴 하지만 너무 개성이 없고 밋밋하다는 게 흠인 듯..

4. Lucida Console

한 Windows 2000쯤부터 추가된 것 같다. 납작한 Courier New의 대체제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5. Lucida Sans Typewriter

Lucida Console보다 세로로 더 길쭉해서 한글· 한자와 잘 어울린다. 전반적인 모양도 미려하면서 너무 튀지도 않고, 비트맵이건 ClearType이건 어느 힌팅에도 잘 맞고.. 개인적으로 이 폰트를 굉장히 좋아한다. 거의 15년이 넘게 Visual Studio의 텍스트 글꼴로 사용하고 있다.
단, 얘는 Windows에 기본 내장돼 있지 않다. MS Office를 설치해야 한다.

6. Consolas

Windows Vista에서 처음 도입된 깔끔한 글꼴이다. 얘는 힌팅이 오로지 ClearType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저게 없는 환경에서는 글자가 작은 크기에서 흐릿하게 뭉개지고 별로 보기 좋지 않다.
Lucida Sans Typewriter보다 납작하지만 그래도 Lucida Console보다는 길쭉하다.

7. Cascadia Mono/Code

언제부턴가 Windows 10에 요런 폰트가 추가돼 있더라. MS Office 번들은 아닌 듯..
모양을 튀게 만들려고 노력한 티는 나지만 개인적으로는 Lucida나 Consolas의 아성을 넘을 퀄리티는 아닌 것 같다. 9포인트는 너무 작고, 10포인트는 너무 큰 것도 아쉬운 점임.
다만, 꽤 다양한 굵기 바리에이션이 제공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여담

  • 요즘 코딩용 글꼴은 Courier 시절 같은 타자기 스타일을 탈피하여 불변폭이면서도 필기체 같은 느낌을 넣고, 한편으로 1 l I 같은 글자는 더 확실하게 구분 가능하도록 OCR용 폰트 같은 변화도 주는 것 같다.
  • '궁서체'도 한글은 좀 뜬금없지만 영문· 숫자는 의외로 타자기 자형과 비슷해서 코딩용 폰트로 쓸 만하다..;;
  • 그리고 맥OS에 있는 Monaco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Windows 동네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듯..

Posted by 사무엘

2020/12/19 08:33 2020/12/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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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시발이었을까

이 블로그에서 몇 번 다룬 적도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자국 생산 자동차 '시발'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좋은 뜻을 담았다고 해도 그렇지, 자동차 이름을 왜 비속어가 연상되는 '시발'이라고 지었을까 지금 우리로서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마치 극악의 저출산 때문에 고민인 지금의 관점으로는 과거에 정반대로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구호가 나오던 배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저 시절을 직접 겪은 옛날 분의 증언에 따르면.. 시발 자동차가 다니던 195, 60년대에도 한국어에 C-bal이라는 욕설 자체는 멀쩡히 존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의 언어 습관은 여러 정황상 말소리보다 한자 뜻을 훨씬 더 중요하게 따졌던 것 같다. 始發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오리진, 제네시스'나 마찬가지인 좋은 뜻만 가졌으면 됐지, 굳이 "C-bal이 연상되는데?"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마치 성에 대한 금기만큼이나 금기시됐던 것 같다. 천한 욕설은 공식적으로는 한국어에 존재하는 걸로 간주되지도 않는 어휘였다.

물론 공개 석상 말고 사석에서는 그런 고매하신 선비질 따위 없었다. 그러니 비단 시발 자동차 말고도, 한자로 뜻은 괜찮지만 소리가 이상해서 어린 시절에 흑역사급 별명을 달고 다녔던 사람이 많았다. 인명 외의 분야를 봐도 야동 초등학교도 있었고, 죽음(대나무 그늘) 마을도 있었다.

야동 초등학교의 경우, 인터넷으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개명을 해 버린....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고(단, 시골에 학생 수가 너무 적어져서 폐교 위기라고 함)... 후자의 경우 본인이 아주 어리던 시절에 TV를 통해서 봤는데, 노인들이 시골길에서 차에 치여 세상 하직하는 일이 잦아지자 불길하다면서 뒤늦게 개명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야동 초등학교야.. 학교 이름을 짓던 시절에는 야동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C-bal과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다.. ^^)

생각을 해 보라. '죽음'(竹陰)은 멀쩡하게 지명으로 썼으면서, 순우리말과 아무 관계 없는 한자 (중국어)와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다른 멀쩡한 숫자 4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기피했던 것이 한국의 언어 문화였다.
개인적으로 이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과 소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문자이지, 말이 문자에 끌려가서 꼭 뭘 봐야만 뜻이 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 아니다.

한글로만 쓰니까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네 하는 면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자면 말이 그 따위로 돼 버린 게 문제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서유럽· 미국 같은 나라는 표음문자 알파벳만 갖고도 넘사벽 급의 학문이고 사상이고 철학이고 과학 기술을 이룩했지 않은가?

본인 역시 그런 맥락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한글 전용 지지 소신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옥편 뒤지면서 듣보잡 벽자를 찾아내서 이 소리는 이런 뜻이라고 갖다붙이는 짓 대신, 온통 영어 외래어를 갖다붙이는 게 유행이 돼 있다. 어느 게 절대적으로 더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자가 차라리 전자보다는 더 나은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 뜻이 변별은 되니까 말이다..

2. and는 접속부사인가

그럼 다음으로 잠시 한국어와 영어를 좀 비교해 보겠다.
한국어에는 체언을 잇는 '과/와' 접속조사, 용언(=구, 절 모두)을 잇는 '며/고' 연결어미, 그리고 문장을 잇는 접속부사(그리고)가 전부 따로 논다. 그러나 영어는 전부 간단하게 접속사 and 하나로 끝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and는 접속부사로 취급되지 않았는가 보다. but, then, however, moreover, meanwhile 등은 명백히 영어의 접속부사이지만 and는 X and Y로만 쓰는 것을 정석으로 쳤던 듯하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말 그대로 이항 연산자. ㄲㄲㄲ and는 or과 같은 급이지, but과 호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 MS Word의 스펠링+문법 검사기도 문장을 And로 시작하면 틀렸다고 지적하던 게 내 10대 시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대신 "콤마+소문자 and"로 문장을 길게 이어야 했다. 왜 반드시 저래야만 하는지를 본인은 그 당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성경만 해도 And로 시작하는 문장이 부지기수이고, 특히 옛날 고전 텍스트인 KJV는 훨씬 더 많이 쓰였다. And 금기가 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글쎄, 이런 게 아닐까? 원래 '보다'는 조사이기 때문에 "A보다 B가 더 낫다" 형태로만 쓰는 게 맞는데.. 요즘은 그게 부사처럼 쓰여서 건방지게 앞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옛날에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하던 분들이 저건 잘못됐다고 번역투와 더불어서 왕창 지적했었다.
나도 굳이 '더'가 멀쩡히 있는데 '보다'를 일부러 바꿔서 쓸 필요는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제하고 지낸다.
대문자 And가 한국어로 치면 저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문득 든다.

한편, 뉴스 앵커 멘트에서 종종 쓰이듯이 "김 씨는 그러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처럼 접속부사가 문장 맨 앞이 아니라 주어와 도치(?)되는 것도 문법에 어긋난다고 얘기가 많다.
나 역시 어감상 어색해서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안 쓴다. 하지만 저걸 비문으로까지 간주하는 건.. 좀 문법 나치스러운 발상 같다. 영어로도 Mr Kim, however, denied the fact 처럼 콤마와 함께 접속부사를 중간에 잘만 집어넣는걸...

3. 동작상(動作相)

언어에는 제각기 동작상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어서 한국어로는 ‘죽었다’ 하나뿐이지만 영어로는 you died와 you are dead가 더 세분화돼 있다. (그리고 보통 전자보다는 후자로 번역되는 일이 더 많음)

‘죽다/죽었다’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용언 중에는 ‘맞다’처럼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굉장히 헷갈리고 동사 과거 시제가 사실상 현재 시제의 형용사처럼 돼 버린 물건이 좀 있다.
‘미치다’, ‘틀리다’도 생각해 보자. You are crazy/wrong이 “너 미쳤다/틀렸다”이지 않은가? “미친다/틀린다”는 동작상이 꼬여서 용례가 겉돌고 있으며, 그 와중에 ‘틀리다’는 ‘다르다’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범하는 중이다. 총체적인 무질서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영어 have는 동명사 내지 현재진행형인 having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가지다, 소유하다, 내게 있다’라는 1차 의미일 때는 현재진행형 시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독특한 규칙을 초등학교 영어 수준에서 배우게 된다. have가 현재진행형인 것은 좋은 시간을 보낸다거나 경험하는 등, 2차 파생 의미일 때에만 가능하다.

이런 것도 동작상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용례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원칙은 저렇지만 관계대명사 앞에서는 "~를 가진"이라는 뜻으로도 is having에서 is가 생략된 꼴이 잘만 쓰인다.;;;.

4.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난해함

  • -ㄹ수록: 의존명사 '수'(할 수 있다)를 떠올려서 그런지 '그럴 수록'처럼 띄어 쓰는 경우가 주변에서 많이 보인다. '-수록'은 뭐 다른 형태로 활용되는 게 전무하며 그 자체로 연결어미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붙이는 게 맞다. '그럴수록'
  • -ㄹ지: 역시 어미인데.. 문제는 얘는 좀 명사화 접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할지 말지가 문제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시 '지'를 의존명사처럼 인지하고 띄어 쓰려는 경향이 있다. 진짜 의존명사인 '줄'도 같이 떠올리는 것 같다. (너 그럴 줄은 몰랐다)
  • -ㄹ까 봐: 얘는 '할까 보다'라고 분할이 가능하기 때문에 '봐' 앞을 띄운다. "네가 사고라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도 다른 띄어쓰기에 비해서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한 띄어쓰기에 가깝다.
  • - 왜냐하면: 단독으로 부사이다. '왜냐 하면'이라고 띄울 필요가 없다.
  • - 못하다: "저는 그 일을 못 합니다" / "그렇게 되지는 못합니다"
    '못'은 부사이고 '못하다'는 동사, 형용사, 보조용언이 다 되는 정신나간(?) 단어이다.

영어 정서법에 비해 우리말의 한글 맞춤법이 더럽게 복잡하고 띄어쓰기가 어려운 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를 원론적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일단 (1-1) 한국어가 언어 구조적으로 어미 접사가 어간 뒤에 덕지덕지 복잡하게 붙는 걸 좋아하는 교착어이고 애매한 품사통용어가 많기 때문이다.
이 한 글자짜리 형태소를 접사나 어근이라고 보면 붙이고, 고유한 부사나 명사라고 보면 띄운다. 그런데 그 기준과 경계가 엿장수 마음대로가 되기 십상이다..;;.

가령, 본인은 내 개인 블로그 한정으로 성과 이름도 띄어 쓰고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띄어쓰기를 더 하면 더 하지 결코 덜 하지는 않지만.. '전세계'에서 '전'과 '세계'를 띄어야 하는 건 개인적으로 좀 납득이 안 된다. 全 정도면 그냥 접두사로 보거나, 쟤만이라도 거의 한 단어로 굳은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1-2) 게다가 띄어쓰기 말고 사이시옷도 말이다. 왜 '물고기'는 '꼬기'이고 '불고기'는 '고기'인가,
'볶음밥'은 '밥'이고 '비빔밥'은 '빱'인가,
그럼 '김밥'은 밥인가 빱인가 이런 거는.. 정말 랜덤이고 개연성이 없다. 규칙을 찾을 수 없다. 한국어가 원래 그런 언어다.

그리고 (2-1) 문자 차원에서는 역설적으로 모아쓰기 때문이다.
글자가 단독으로도 적당히 음절 경계 변별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띄어쓰기를 안 해도 알아보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띄어쓰기를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 단어로 붙여 쓰는 예외를 정하는 게 난감하고 띄어쓰기 규칙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2-2) 사이시옷은 말부터가 제멋대로인데 그건 음절 단위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 초분별 요소에 속하며 한글이라는 체계 하에서 표현하기가 몹시 난감하다. 사이시옷 규정이 캐 더럽고 구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자어의 경우 "숫자 횟수 곳간" 등의 몇 개만 예외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그냥 표기하지 않기로 정해 버렸다.

알파벳 같은 풀어쓰기형 문자를 썼으면 띄어쓰기는 약간이나마 더 쉬워졌을 수 있다. 체언과 조사도 띄우고 좀 헷갈린다 싶은 건 몽땅 띄우고, 좀 아쉬운 건 하이픈으로 연결하고.. 사이시옷이나 축약은 ' 점 하나 찍어서 해결해 버리면 된다.

다시 말해 모아쓴 한글의 덩어리 단위가 '초분절적 변별요소'까지 포함한 한국어의 형태소· 음운 단위보다 크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글의 큰 장점인 동시에 그로 인해 얻는 부작용인 셈인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여담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심지어 숫자와 단위 사이도 꼬박꼬박 띄운다. 100MB, 50kg라고 안 하고, 우리로서는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100 MB, 50 kg라고 쓴다는 것이다.
숫자와 알파벳 이렇게 문자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붙여도 전혀 모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는 단어와 띄어쓰기에 대한 인식이 서양 언어 문화권과 동양의 그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08 08:35 2020/12/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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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에 대한 생각

한국어에는 '단 하나뿐인 / 유일한'이라는 말이 있고, 영어에도 only one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수학이나 논리학 같은 데서는 one과 only를 더 엄밀하게 구분해서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둘은 서로 독립된 별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표현도 only one이 아니라 one and only가 된다. one은 이때 명사/대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임을 주의할 것.

only라는 속성을 지닌 유니크한 개체라고 해서 반드시 단수 형태여야 할 필요가 없다. 복수이고 집단이지만 우주를 통틀어 그 물건이 이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상황도 생기는 법이다.
이럴 때 영어는 the only 복수형 명사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그러나 only의 한국어 번역인 '유일한'에는 일(一)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버려서 그냥 only가 아니라 one and only라는 의미가 추가된다. 그래서 의미의 범위가 더 좁아진다.

이건 마치 "one of the ...-est(최상급) 복수형 명사"가 의미상 잘못됐다는 관점과도 비슷해 보인다. "1등이라면 하나뿐이지 웬 '가장 뛰어난 물건들 중 하나'.. 이딴 식이냐"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좁게는 공동 1위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저런 표현은 단순히 가상의 등급 하에서 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이 아니라 그냥 수능 1등급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하물며 only는 이것 말고 다른 건 없다는 뜻이므로 등수도 아니고.. 얼마든지 복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유이한 존재, 유삼한 예외, 이렇게 얼치기로 말을 만들 수는 없으니, '유일'은 글자 단위로 쪼개서 생각하지 말고 one을 배제한 only라는 의미만 생각해서 통용해야 할 것 같다.

'이름'이 full name과 first name이라는 중의성을 지니듯, '유일'은 only와 one and only의 뜻을 모두 지닌다는 것이다. 얼치기 같지만 이런 식의 다의 중의성은 영단어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man (남자 vs 사람)이나 day (낮 vs 날)처럼 말이다.
한국어에서 one and only를 꼭 강조하려면 앞에 '단일'을 추가해서 '단일 유일'이라고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성경에서 요 3:16 '독생자'가 영어로 어떻게 표현돼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하나이면서 또 다른 아들이 없음을 나타내야 하니 only begotten Son 내지 one and only Son이다.
일반적으로는 only son이라고만 해도 외아들이라는 뜻이 통하지만, one and only는 그걸 더 강조해 준다. begotten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났다는 의미를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다.
(영어는 씨를 준 아버지의 관점에서 누구를 낳은 건 beget이라고 표현하며, 씨를 받아서 아이를 실제로 출산한 어머니의 관점에서 낳은 것은 bare이라고 표현한다는 점 역시 생각할 사항..)

only와 관련하여 one 다음으로 살펴볼 단어는 if이다.
if A then B는 "A이면 B이다"라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도 매우 즐겨 등장하는 문장 구조이다. only if는 "A여야만, A일 때만" 정도와 대응한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학의 집합과 명제 시간에 다들 배우게 된다.

  • A^2=1 if A=1 (A=1이라면 A^2의 값이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1임. 하지만 A^2를 만족시키는 값 자체는 1 말고도 더 있음. 충분조건)
  • A=1 only if A^2=1 (A^2=1이라고 해서 100% 반드시 A=1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A^2의 값이 1이 아니라면 A가 1일 가능성은 전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조건)

그러므로.. 둘은 관점이 서로 다르다.

  • A=1은 A^2=1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A^2=1에 대한 정밀도가 100%이다.
  • A^2=1은 A=1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A=1에 대한 재현율이 100%이다.

이런 식의 포함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계약서 같은 법적 문서엔 including but not limited to (A를 하나 제시하지만 A만 맞다는 건 아니며, 다른 가능성도 있음) 라는 조건 문구가 즐겨 등장하는 것이다.
"A^2=1을 만족시키는 수를 하나 찾아 준다고 했지,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거나 전부 찾아 준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거짓말 안 했어요" 이런 식의 면피를 위해서이다.

if와 only if를 합쳐서 if and only if (iff)가 돼야만 두 명제가 완전히 필요충분 동치가 된다.

  • 정사각행렬 A는 판별식 값이 0이 아니다. if and only if Ax = O을 만족하는 열벡터 x가 trivial solution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iff는 우리말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이고 -이어야만 / -이고야만" 본격적으로 우리말로 학문을 하려면 뭐 이런 식으로 짤막하게 말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조건이 있는데 그게 여러 개체들 중의 한 인스턴스(!!)일 뿐인지, 아니면 이것밖에 없는 유일한 개체인지를 따지는 것은 언어의 저변 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0이냐 1이냐, 아니면 다수이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에는 정관사와 부정관사가 있고 단수와 복수도 깐깐하게 따진다. 한국어는 그런 관념은 딱히 없지만 '-가', '-는', '-만', '-도' 같은 조사들이 세밀하게 발달해 있으며,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여부를 영어보다 더 따지는 편이다.

한국어는 용언과 부사가 발달해서 no(없음)라든가 more(더 이어지는, 더 있는) 같은 개념이 관형어로 딱히 존재하지 않는 반면, '없다', '모르다' 같은 건 의외로 한 단어로 깔끔하게 존재한다.

only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할 것들이 있다는 게 이 글의 요지이다. '유일' 말고는 의존명사 겸 조사인 '뿐', 부사 '오직', 그리고 관형사 '단' 따위로 나뉘어 번역되는데.. '단'은 사실상 숫자 앞에서만 붙기 때문에 제약이 큰 편이다(단 두 개..). "단, 조건이 있다" 같은 접속사하고 헷갈리지 말 것.

Posted by 사무엘

2020/11/12 08:35 2020/11/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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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오묘한 면모

1. 청자를 배제한 1인칭 또는 2인칭

언어 의사소통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보니, 인칭대명사도 나와 너, 1인칭과 2인칭은 좀 특별하게 취급된다. I나 You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은 제3자, 말 그대로 3인칭이 되며, 영어에서는 3인칭 단수에 대해 현재 시제 동사는 뒤에 -s가 붙기도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1인칭이나 2인칭이지만, "청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내는 대명사 내지 동사 굴절(활용??)이 존재하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런 건 아무래도 주어 생략 눈치 100단과 높임법이 존재하는 한국어가 영어보다 더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예는 '우리'와 '저희'이다. 1인칭은 복수형이 되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저희'는 '우리'와 달리 (1) 화자를 청자보다 낮출 뿐만 아니라 (2) 화자가 속한 집단과 청자는 서로 관계가 없는 별개라고 선을 긋는다.

이런 구분이 영어 we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이건 가히 제4인칭이라고 보기도 한다. "저희나라는 틀린 말이니 우리나라라고 써야 한다??" 같은 성토가 존재할 수 있는 언어 자체가 한국어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2인칭의 경우 화자에게는 you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친근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 you가 청자를 의미하지는 않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한국어는 '당신'이 웃어른에 대한 사실상 3인칭 높임말인데..
이게 2인칭일 때는 그다지 높이는 의도가 없고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게 참 웃기는 짬뽕 같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처럼.. 같은 단어가 2인칭과 3인칭을 오락가락 하는 건 한편으로 독일어의 Sie와 sie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CCM 가사에서 "당신은 평강의 왕"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서 '당신'이 가리키는 대상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결국 통사가 아닌 화용 계층으로 가야만 분별할 수 있다.
뭐, 영어는 인칭 호칭이 한국어보다 훨씬 더 간결하니 하나님까지 you라고 서슴없이 가리키는 언어이다. 그나마 문자로 표기할 때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써 주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끝으로.. 한국어는 어휘 차원에서 청자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 '혼잣말'이 구분되는 굉장히 독특한 언어라고 한다. "그게 뭐였더라?"와 "그게 뭐였냐/뭐였니?"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둘 다 똑같이 의문문이고 굳이 따지면 전자도 문맥에 따라서는 남에게 답을 듣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골똘이 생각하면서 청자를 응시하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 후자처럼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에는 이런 세밀한 문법적 기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떤 언어로든지 청자를 배제하는 1/2인칭, 높임법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단· 복수만 구분하는 간편한 대명사가 존재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고 좋을 것 같다. 우리말 성경이 하나님이나 윗사람을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를 '너, 그대'라고 번역하지를 못해서 몽땅 '주, 왕' 등으로 3인칭화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지며 의미 왜곡까지 발생할 여지가 있는데.. 참 난감한 문제이다.

2. 용언들

한국어에서 활용되거나 접사가 붙는 양상이 좀 이상하게 꼬이고 있는 대표적인 용언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뭐, 수 년 전에 이미 언급한 적이 있는 식상한 아이템도 포함해서 말이다.

(1) 바라다
개인적으로 ‘바랐는데’까지는 원리원칙대로 쓰지만, '바라요', '바람'(명사화된 형태)는 도저히 입에 익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바램’과 '바래요'가 튀어나온다. wind 바람과 구분하려는 심리도 있고, 또 ‘자라다, 발하다’ 같은 유사 형태의 다른 용언들은 그런 파생 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도 된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바라다’는 “-(시)기 바랍니다”라는 형태로.. 평서문(통사)을 가장한 사실상의 정중한 명령문(화용)으로 쓰이고 있다. “-(시)면 고맙겠습니다/감사하겠습니다”는 명령에서 한 단계 내려가서 화용론상의 청유, 부탁에 가깝고 말이다.

(2) 날다
‘나는’이라고만 쓰면 체언+조사 형태와 구분이 안 되니 틀린 줄 알면서도 자꾸 ‘날으는’이라는 대체제가 쓰인다. 아니면 ‘하늘 나는’ 내지 ‘비행하는’이라고 말을 바꿔서 혼동을 줄여야 한다. UFO를 ‘미확인 비행 물체’라는 한자어 말고 순우리말로 도대체 어떻게 깔끔하게 설명할 것인가?

(3) 맞다
동사와 형용사의 경계가 완전히 난장판이다. 원래는 동사이지만 ‘알맞다, 걸맞다’ 같은 비슷한 형용사들이 용법에 영향을 주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반의어인 ‘틀리다’는 잘 알다시피 현재 과거 시제 경계가 완전 난장판이다. 이게 ‘다르다/틀리다’ 구분까지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4) 우습다
‘웃다’의 사동형 동사인 ‘웃기다’가 ‘우습다’라는 기존 형용사의 의미와 용법을 대체해 온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원래 있던 ‘우습다’가 더 격식 있는 점잖은 말투로 여겨지지만 그런 인식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건 옳다/그리다의 가치 판단이 필요한 현상일까? 내 역량으로는 정확하게 분석을 못 하겠다.

(5) 좋다/좋아하다, 싫다/싫어하다
good와 like의 관계, 그리고 "난 네가 좋다/싫다" 같은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생각해 보면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한국어는 영어와 달리 "덥다/춥다"(사람이 느끼는 결과)와 "뜨겁다/차갑다"(사람에게 느낌을 주는 공기, 물이나 다른 물체가.. 혹은 사람의 마음이)의 구분이 존재하는 언어이다. 저기서 "좋다/싫다"는 마치 "덥다/춥다"처럼 사람이 느끼는 결과 관점을 나타내는 형용사일 것이다.

(6) 모르다
내가 아는 언어들 중에 do not know가 타동사 한 단어로 딱 떨어지게 존재하는 언어는 모국어인 한국어 말고는 없다. 신기한 노릇이다.

3. 기억에 남는 단어들

  • 시력교정술인 '라식과 라섹', 폭염 속에서 발생하기 쉬운 '일사병과 열사병'. 요런 건 뭔가 비슷하면서 내부 디테일은 다른 용어쌍인 것 같다.
  • 충전은 일차적으로는 전기를 보충하는 것이지만 뭔가 리소스를 채운다는 뜻에서 교통카드 액수 보충, 휴식과 회복 같은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물론 한자가 다른 充塡도 있다.
  • 포장도.. wrap과 pave는 서로 완전히 다른 뜻이긴 하지만, 도로를 포장하는 것도 노반을 싸매고 꾸민다는(?) 뜻과 그리 심하게 이질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앞의 '충전'의 의미 확장과 비슷하게 말이다.
  • 大/小가 쓰였지만 크다/작다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이 좀 있다. 대학(고등교육) 대포(무기), 소설(문학..) 소포(우편물)

4.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종족별 나레이션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2020년은 옛날에 PC 통신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환상의 테란”에서 상상하고 묘사하던 미래 배경이기도 하다.

스타는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어 UI가 없었고 심지어 인게임 채팅창에서 한글 입력조차 되지 않았었다. Localization에 관한 한 불모지였다. 그러다가 스타 2라든가 리마스터 에디션이 나오면서 완벽하게 한국어로 번역되고 더빙까지 됐다.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이 더 향상되었으며, 또 잘 알다시피 한국에서 스타가 넘사벽 급의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스타가 로컬라이즈가 된 언어는 오히려 일본어였는데 그건 싹 묻혀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3종족의 아나운서 나레이션을 모두 다른 문체로 번역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자막은 합쇼체로 통일하더라도 음성 나레이션은 다르게 말이다. 몽땅 다 똑같이 합쇼체로 해 놓으면 너무 길기도 하고 종족별 개성이 살아나지 못한다.

  • 프로토스는 누가 봐도 점잖고 근엄한 분위기이니 디씨 같은 “핵 공격이 감지되었소. 파일런이 더 필요하오.”가 돼야 할 것이다.
  • 테란은 여성 부관이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형태이니, 유구한 군대 말투 다나까를 반영하여 지금처럼 “핵 공격이 감지됐습니다. 서플라이가 더 필요합니다.”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부관이 기계인간 사이보그인 걸 감안하여 무전 주고받듯이 뚝뚝 끊어서 “핵 공격 감지됨. 보급고 추가 요망”처럼 할 수도 있다.
  • 저그는 뭔가 공동체 같은 느낌이 드니 구어체 반말까지 생각할 수 있다. “핵 공격이 감지됐다! 오버로드를 더 뽑아야 돼.”

영어 원문은 주어가 다르다. 똑같이 미네랄이 부족해도 플토는 You’ve not enough minerals이지만 저그는 We require more minerals이지 않던가? 영어에 you와 we의 차이가 있다면 한국어는 합쇼체와 해라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합당하다.

스타크 세계관이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창작됐고 스타라는 게임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세 종족의 특성과 개성에 맞게 나레이션의 형태도 저렇게 달라졌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어에 기왕 복잡한 조사(체언)와 어미(용언)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을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번역을 할 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01 08:35 2020/08/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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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조(바탕체) 이야기

바탕체, 명조라고 불리는 한글 서체는 우리가 책의 본문에서 수십 년 동안 무수히 접해 온 친숙한 글꼴이다. 요즘이야 맑은 고딕, 함초롬바탕, 나눔명조 같은 여러 본문용 글꼴 때문에 존재감이 작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화면보다 더 보수적인 출판물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신명, 윤디자인, 산돌 등) 오리지널 명조가 여전히 본좌이다.

명조도 다 같은 명조가 아니다. 모니터나 프린터의 해상도가 낮고 컴퓨터의 메모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획 모서리의 세리프만 어설프게 흉내 내고 전반적인 자형은 굉장히 투박하고 엉성한 야메 명조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 한계가 없어지면서 디자이너의 아날로그 원도와 별 차이 없는 미려한 명조체를 볼 수 있게 됐다.

1. 한글

PC에서는 아래아한글 2.x(전문용)와 Windows 95를 통해 한양 시스템 신명조가 가장 널리 퍼졌었다.
1993년에는 아래아한글 2.1이 출시되었는데, 이때는 한양 시스템뿐만 아니라 휴먼 컴퓨터에서 개발한 서체들이 대거 도입되었다. 그 중 '휴먼옛체'는 워낙 개성 넘치고 큰 인기를 끌었던 서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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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샘체, 팸체, 안상수체처럼 한글에 가변폭 글꼴이 등장한 것도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1990년대에는 안상수체 같은 글꼴이 꽤 참신한 미래지향(?) 서체라고 각광받아서 간판이나 책 제목에 종종 쓰이곤 했다.
이런 것들을 PC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최초로 선보였던 아래아한글은 실로 대단한 일을 해냈었다. 비록 그 시절 물가로 거의 30만 원에 육박했던 전문용 에디션 한정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서체들에 비해, '휴먼명조, 휴먼고딕'은 아무래도 기존의 신명조, 중고딕(한양 서체)과 외관상 거의 분간이 안 되니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래도 한양 서체와 휴먼 서체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으며, 미세하게 차이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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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휴먼명조가 한양 신명조보다 '약간 덜' 미려하고 완성도가 낮았다. 하지만 어차피 깨알같은 본문용 글자의 크기와 해상도에서 그 차이는 일반인에게 거의 분간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휴먼명조는 그 대신 크기가 더 작고 래스터라이즈 부담이 더 적으며 저해상도 출력에도 더 최적화돼 있었다. 그래서 위의 그림에서도 작은 크기에서 휴먼명조의 '명, 조, 맥' 같은 글자가 한양보다 미세하게나마 더 깔끔하고 획이 균일하다.

애초에 한양 신명조는 한 글자씩 일일이 그린 완성형으로 2350자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면, 휴먼명조는 조합형 구조여서 한글 11172자 전체를 표현할 수 있었다. 똠 햏 뷁 같은 글자를 표현하려면 싫어도 휴먼명조를 써야 했다.
이 정도면 그 당시에 휴먼명조의 존재가 충분히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휴먼명조만 해도 Windows 3.1 시절의 투박한 바탕체(큐닉스..)에 비하면 훨씬 더 미려하고 외형과 성능을 모두 잡았었다.

그런데 1994년의 딱 아래아한글 2.5 (+ 어쩌면 그 다음 3.0까지도)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한양 신명조가 아예 빠져 버리고, '신명조'를 고르건 '휴먼명조'를 고르건 무조건 '휴먼명조'가 선택되곤 했다. 즉, 목록상으로는 두 글꼴이 모두 있지만 둘의 차이는 나지 않는 것이다.

둘은 외형도 비슷하고 모든 글자들의 폭도 어차피 동일하니 일반인들이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모를 것이다. 그 시절에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양 신명조와 휴먼명조는 다시 구분이 생겨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지, 한양 신명조가 잠시 누락된 적이 있었던 것은 본인의 기억에 확실하게 남아 있는 역사 팩트이다....라고 썼는데,

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물증이 있다.
아래아한글 2.5의 예제 문서를 열어 놓은 스크린샷이 굴러다니는데, 저 때는 아예 대놓고 '휴먼명조 = 신명조'라고 쓰여 있다! 내 기억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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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문

신명조에는 한글뿐만 아니라 그와 어울리는 영문 서체도 있다. 아래아한글에서 신명조, 그리고 Windows가 깔린 컴퓨터에서 '바탕'만 고르면 볼 수 있는 그 익숙한 서체 말이다.

그런데 얘는 미국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즐겨 쓰이는 서체는 아닌 것 같다. 걔네들은 책 본문은 Times Roman이 압도적인 본좌이며, 거기에다 Bookman, Century, Palantino (Book antiqua와 아주 비슷)가 가끔 꼽사리로 끼는 정도다. 그럼 '영문 신명조'는 원조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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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실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과거에 미국에서 여권을 발급받으면 이렇게.. “미합중국 여권만 있으면 (지구상에 못 가는 곳이 없고) 세계가 몽땅 님하의 것입니다!”라는 캐간지 안내문이 딸려 나왔다.
그런데 저렇게 천조국의 위상을 자랑하는 문구의 서체가 통상적인 유럽풍이 전혀 아니고 완전 빼박 한국 신명조 바탕인 적이 있다는 게 난 너무 신기했다. 바로 저거 말이다. 기울여 쓴 게 이탤릭도 아니고 오블리크다.. 설마 진짜 '바탕'을 써서 인쇄한 걸까? (지금은 딴 서체로 바뀐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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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1990년대 초반까지 옛날 미국 컴퓨터 잡지 같은 출판물을 보면 이런 신명조 풍의 서체를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었다.
본문 기사보다는 저렇게 광고 문구에 더 많았던 것 같다. 위의 그림은 잡지 제목은 기억 안 나고 워드퍼펙트가 Windows용으로 처음 출시됐다는 광고이니 시기가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영미권에도 저런 서체가 분명 있긴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게 한글 신명조와 pair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저건 누가 만든 무슨 이름의 서체일까? 본인은 아직 정보가 없고 궁금하다.
그 흔해빠진 명조 하나 갖고도 얘기할 게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23 08:33 2020/05/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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