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중에서 그나마 제일 희망적이고 살 만했던 시기는 1920년대였다.
3· 1 운동 덕분에 일제도 너무 놀라서 표면적인 억압을 좀 풀어 주고 '문화 통치'를 했을 때 말이다. 사실은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1920년대가 전반적으로 호황이고 살기 좋던 시절이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이때 '신여성'이라는 게 나타났다. 이건 MZ세대, X세대처럼 특정 시기의 특정 트렌드에 속하는 사람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여자도 대학교나 그에 준하는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나타나고, 심지어 자동차 운전사, 파일럿, 의사, 기자 같은 직업도 얻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인물로는 일단 여자 말고 남자.. 김 우진(1897-1926)이라고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희곡 작가가 있다. 희곡 쪽으로 유 치진보다도 더 선배격인 사람인데.. 보다시피 너무 일찍 요절했기 때문에 대표작은 <산돼지>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현대적인 형태의 희곡 작품을 남겼으며, 일본 유학파에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병사한 건 아니었다. 그는 동갑의 신여성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악가(소프라노!!)였던 (1) 윤 심덕과 같이 배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감쪽같이 사라지고 실종되었다. 시체도 못 찾았다.
그런데 문제는 김 우진은 당시에 이미 처자식 딸린 유부남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 당시엔 언론에서 저 지식인 유명인사 커플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서 나란히 대한해협 망망대해로 투신 자살한 거라고 대서특필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두 사람이 당시에 동반 자살을 할 이유가 사실상 없었으며, 애초에 두 사람이 불륜 커플이기라도 했는지부터 의심스럽다는 쪽으로 기존 통념이 반박되는 추세이다. 단순히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미화하고 덮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증거가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동반 자살이 아닐 뿐, 그럼 저 두 사람이 정확하게 언제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려진 건 아니다. 이건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김 우진이 남긴 외아들 김 방한(1925-2001)은 그래도 홀어머니 밑에서 잘 커서 비교언어학의 권위자가 되었고,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되었다. 천재적인 언어 기질을 아버지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이거 무슨 강 재구 소령의 외아들, 김 득구 선수의 외아들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여성 현대 소설가로 일컬어지는 (2) 김 명순(1896-1951)도 흥미롭게도 저 사람들과 거의 같은 연배인 신여성이었다. 이 사람도 일본 유학파에다 탁월한 글빨, 여러 외국어 구사까지.. 머리가 비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 너무 똑똑했던 데다 자유 연애를 추구한 것, 기생의 딸인 것, 왕년에 성폭행을 당한 이력이 있는 것이 합쳐져서 주변의 다른 유교 꼰대 성향의 남자 문인들로부터 온갖 시샘과 모함과 중상모략을 당했다. 행실이 방탕한 썅년 취급을 받으면서 비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소설가 김 동인이라든가 소파 방 정환 같은 유명인사들도 김 명순을 헛소문까지 퍼뜨리며 집요하게 비방했다. (어린이에게 그렇게도 파격 진보적이었던 소파 선생조차도 여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이었던 듯..)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치우고도 요조숙녀 행세하는 년.." 이건 뭐.. 성경의 요 4:18에서 모티브를 딴 걸까..?
또, 문학 글쟁이가 어떤 사람을 저격하고 골로 보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싫어하는 사람을 암시하는 주인공을 설정해서 그 주인공이 망가지거나 흑역사가 폭로되는 소설/희곡 따위를 써서 공개하면 됐다. (햄릿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오네..??)
김 동인의 <김연실전>이 바로 김 명순을 악의적으로 저격하는 소설이었다.
김 명순은 이런 저열한 인격살인에 시달리다가 몇 번이나 자살 기도도 하고, 끝내는 완전히 탈조선을 해서 일본에 정착해 버렸다. 해방 이후에도 돌아올 엄두를 못 냈다.
나이 쉰을 바라보는 미혼 글쟁이 여성이 미수교 적성국가 패전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녀는 가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건강 악화로 타지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현재 무덤도 없다.
그녀는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동족 남자 문인들이 내게 저지른 악행을 열거해 봤자 황무지에서 잡초 몇 포기 뽑은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조선아...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이걸 유언이라고 남겼다. 사나운 곳..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잔인한 곳' 정도 되겠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혼자 굶으면 굶었지, 그래도 반민족 친일 행위에는 생계형으로라도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 능력이 아까웠던 너무 안타까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째 이 작품은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전해질 수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김 명순과 굉장히 비슷한 유형의 지식인 여성으로 (3) 나 혜석(1896-1948)이 있었다.
이 사람도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대졸에 준하는 고학력자였는데, 전공은 미술이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시와 소설을 쓰고 여성 인권 내지 여성 해방..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페미니즘' 운동을 그 시절에 공개적으로 벌였다.
명절이 오로지 여자만 죽어라고 일을 하는 고통스러운 날이라고 지적을.. 무려 1930년대에 했다니 믿어지는가?
남편이 도를 넘게 술주정과 폭력을 일삼는다면 혼자 한없이 꾹 참으면서 골병 들지 말고 여자 쪽에서 과감히 이혼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오오~
1920년대는 세계가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사상의 자유도 누리던 시절이었다. 방 정환이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서 아동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면, 나 혜석 역시 일본 유학을 계기로 여성 운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다만, 김 명순은 평생 독신이었던 반면, 나 혜석은 부모의 강권 때문에 결혼 자체는 한 유부녀였다. 그래도 남편도 아주 부유한 능력자였던 덕분에 이들 부부는 1927~1928년 사이에 무려 세계 일주에 가까운 외국 여행을 즐기고 마침 역시 외국 여행 중이던 영친왕(!!!)을 알현도 했는데.. 그녀는 그만 외국에서 다른 조선인과 불륜 바람이 나 버렸다.
이 때문에 나 혜석은 이혼 당하고 사회적 평판이 정말 많이 깎이고, 빼도 박도 못한 썅년으로 낙인 찍히면서 인생이 불행해졌다. 자녀의 양육권도 뺏긴 채 불명예스러운 돌싱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나 혜석을 저렇게 나락으로 빠뜨린 불륜남은 그 뒤엔 그녀를 버렸는가 보다.
나 혜석은 대인기피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가족 없이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김 명순과 달리 한국 땅에서 잠들었다. 이 사람 역시 파란만장한 개인사와 대조적으로, 친일 노선으로 변절한 내력은 전혀 없었다.
나 혜석 다음으로 (4) 김 일엽(1896-1971)..;; 이 사람도 일본 유학파에다 미술이 주업이고 문학을 부업으로 활동한 동갑내기 신여성이었다. 본명은 김 원주라는데.. 그녀는 결혼과 이혼을 두 번이나 한 뒤 종교를 개신교에서 불교로 바꾸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 사람은 비록 나 혜석이니 김 명순이니 하는 위의 인물보다는 덜 유명하고 작품의 존재감도 훨씬 더 낮다. 하지만 남자들과 대등하게 예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여성의 자유와 개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는 여전히 지닌 인물인 셈이다. 이 사람은 종교에 귀의해서 그런지, 50대 나이에 객사하지는 않고 좀 더 오래 살기도 했다.
이상이다.
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서유럽 국가들도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여성도 고등 교육을 받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늘어난 시기가 있었다. 가사 노동의 부담을 덜어 준 냉장고나 세탁기나 가스레인지까지 갈 것도 없이, 공중 화장실이 설치된 것만으로도 여성의 실외 활동과 사회 진출이 늘어났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그 시기가 우리나라는 1920년대였던 셈이다. 그때의 각 분야별 신여성들의 행적이 어땠는지 더 알고 싶다.
그 다음 1930년대는 대공황에 전쟁 준비 때문에 세계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 시작됐으며, 한반도에서도 신여성 얘기는 쏙 들어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