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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대 세계 대전 비교

  • 1차 대전: 기관총, 참호전
  • 전간기~2차 대전: 항공모함, 무전기와 레이더, 뇌격기, 급강하 폭격
  • 2차 대전 말기에 개발된 것: 제트기, 로켓, 핵무기

육군에서 백병전이란 게 거의 사라지고 제식이나 총검술 따위는 그냥 보여주기 레거시가 되었듯.. 공중에서도 전투기끼리 도그파이트를 벌이며 처절한 기총사격 따위 하는 건 진작에 없어졌다. 육해공 모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날아온 미사일 맞고 그대로 끝난다.

  • 1차 대전: 영국에서 포탄이 불량인 게 많아서 애먹었다. 유대인 과학자가 포탄의 대량 생산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서 승전에 큰 공을 세웠다.
  • 2차 대전: 미국에서 어뢰가 불량인 게 많아서 애먹었다. 영국과 미국 모두 적국의 암호를 해독해 내서 승기를 잡았다.

  • 1차 대전 때는 일본이 연합국 승전국의 말석에 있었지만 그 뒤로 추축국 전범국으로 흑화했다.
  • 2차 대전 때는 중국이 연합국 승전국의 말석에 있었지만 요즘 하는 짓을 보면 다음에는 세계를 대적하는 악역으로 흑화할 것만 같다. 잠깐 일제의 피해자였다고 실드만 치기에는 갈수록 선을 넘고 있다.

  • 1차 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창립됐지만 제 구실을 못 하고 2차 대전을 막지 못했다. 이때는 민족자결주의가 제정되었다.
  • 2차 대전 이후에 연맹을 대체하는 국제연합, UN이 창립됐고 무려 세계 인권 선언이 제정되었다. 허나 미래엔 과연 얘도 무용지물이 돼서 국제연맹과 같은 길을 가게 될까?

2. 무기들의 변화· 발전 양상

탱크, 대포, 전함은 크기가 2차 대전 때까지 덩치가 왕창 커졌다가 그 뒤로는 다시 좀 작아졌다.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 그리고 항공기의 발달 덕분에 저런 형태의 무기가 기동성까지 희생할 정도로 지나치게 거대할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시절에 세계에서 제일 큰 탱크와 제일 큰 대포까지는 만들었다. 실험적으로나마 아음속 순항 미사일(V1), 초음속 로켓 기반 미사일(V2), 포신 150m짜리 장거리 대포(V3)..;; 이거 뭐 어떻게든 탄환을 멀리 쏘는 방법은 온몸으로 공돌이들을 갈아넣으면서 연구했었다.;;

하지만 항공모함을 만들거나 초대형 전함을 만들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1차 대전 때 지면서 해군이 몽땅 봉인 당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들었던 것도 다 빼앗겼고.. 그래서 바다에서는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에 목숨 걸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세계에서 제일 큰 전함을 만든 곳은 섬나라 일본이었다. 특히 야마토 전함은.. 뭔가 전함계의 임페리얼(자동차) 같다.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없으면서 무리해서 너무 큰 물건을 만들었다가 죽도 밥도 못 쑤게 돼 버렸다.

처음엔.. 이런 하찮은 싸움에 내보내기에는 가오가 안 서고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명목으로 봉인..
그런데 나중에는 이렇게라도 장렬히 산화하지 않으면 가오가 안 서는 신세가 됐으니.. 계륵 그 자체이다.

전투기, 잠수함, 항공모함은 저런 클래식한(?) 무기와는 반대로 천조국에서 현재 만들어진 물건이 세계 대전 때의 물건보다 더 크다.
특히 잠수함은 원자력의 혜택을 제대로 입었다. 동력원이 원자력으로 바뀌고 핵 미사일까지 발사 가능해지면서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가 돼 버렸다.

슬금슬금 몰래 잠입해서 배를 상대로 어뢰나 쏘고 튀던 옛날만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잠항 능력도 겨우 테란 고스트나 레이스에 가깝다가 이제는 플토 다크템이나 옵저버와 비슷해진 것이다.

그리고 탱크, 대포, 군용기들은 원래 보병을 화력 지원하라고 만들어졌지만, 결국은 유유상종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탱크는 탱크로 잡고, 포는 포 쏴서 잡고, 군용기 역시 전투기로 잡는 게 제일 낫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격수조차도 같은 저격수로 저격해서 잡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니 쟤들도 자기 코가 석 자가 되고, 원래 도입 목적이던 아군 보병 지원이라는 비중이 작아지게 된다.;;

3. 탱크

앞에서 다뤘던 무기 얘기의 연장선인데..
6 25 사변 당시엔 소련제 땅끄 242대(T-34)가 남한 땅을 짓밟았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수많은 러시아 땅끄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재블린 미사일을 맞고 훅 가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거대한 전함이 자그마한 어뢰나 항공모함 급강하폭격기의 밥이 된 것처럼, 탱크도 이제 예전 같은 만능 무기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다.

미사일 한 방 가격이 1억대라지만, 그걸로 50억~80억씩 하는 탱크를 박살내기 때문에 이거 굉장히 수지맞는 장사이다. 스커지로 사이언스 베슬 잡는 교환비를 아득히 능가한다.
예전에 팔레스타인 하마스인가 걔들이 쏘는 로켓의 단가는 n이지만,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의 단가는 10n인지 100n인지.. 그러던 게 떠오른다.

4. 과거의 전범국, 오늘날의 전범국

20세기 초에 독일은 정말 눈부신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법학, 예술 쪽도 세계를 이끌었다. 그리고 일본이야..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이면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력 주도 근대화에 성공해서 열강의 일원으로 등극했다.

이 정도 나라라면 국뽕에 빠져도 이상할 게 없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쟤들은 너무 자만하는 바람에 20세기에 세계를 상대로 사고를 거하게 치다가 자멸했다.
특히 소련 말이다. 독일은 독소 전쟁에서 소련과 대판 싸우다가 패배했고, 일본은 패망하기 직전에 소련으로부터도 선전포고를 받으면서 완벽하게 확인사살 당했다.

이 두 나라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가 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 포로 학살 같은 흉악 전쟁 범죄도 워낙 크게 저질렀기 때문에 전범국이라는 낙인이 제대로 새겨지게 됐다.
얘들은 그 댓가로 나라가 송두리째 멸망하는 것만 면할 뿐, 주요 산업· 군사 시설들이 몽땅 거세되면서 전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짜끄레기 농업· 경공업 국가로 전락할 뻔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되지 않았다.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이 냉전으로 인해 미국의 적성국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련에게 박살났던 두 전범국들은 소련을 견제하는 반공의 방패막이 명목으로 결국은 다시 지원받고 재건되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웃 한국의 6 25 사변 때 서플라이 디포 역할을 하면서 완전히 기사회생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냉전도 끝나나 싶었는데..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또 세계의 적으로 등극했다.

덕분에 과거에 소련에게 패했던 전범국들이 또 살 판 났다. 독일은 지난 70여 년에 달하던 봉인을 풀고 재무장을 하는 중이다. 일본은 이럴 때 국제 사회에게 잘 보이고 점수 따서 꿈에도 그리던 UN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으려 노력 중이다.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느낀다.

5. 전쟁/전투 관련 명언들

  •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 2010년경 미국 해병대 표어
  • 제군들은 조국을 위해 죽지 마라. 적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 조지 패튼 장군
  •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 태평양 전쟁 당시 윌리엄 홀시 제독
  • 북한/베트남/쿠바를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 커티스 르 메이 장군
  • 적의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 메이어 다간 (전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 나는 만년 전사다. 여러분도 전사가 되어라. -- 남 재준 (전 국정원장)
  • 이제 우리는 3천 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은 동맹을 얻었다(히틀러). / 그럼 이제 한 번은 질 때가 됐군.. ㅋㅋㅋ -- 2차 세계 대전 때.. 처칠
  • 네놈들 앞으로 하늘이 새까맣게 가려질 정도로 수많은 화살들이 날아올 것이다. / 그럼 우리는 그늘 아래에서 시원하게 싸우겠구만. ㅋㅋㅋ -- 영화 300

Posted by 사무엘

2022/03/24 08:35 2022/03/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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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세계는 러샤-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됐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저렇게 무식하게 쳐들어갈 줄은 몰랐다. 쌍팔년도나 1990년대도 아닌 2020년대에 유럽에서 전쟁이라니?
쪼~기 꾸진 동네의 정치 불안정한 듣보잡 신생독립국끼리 툭탁툭탁 싸우는 것도 아니고, 엄연한 강대국이 다른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를 침략하다니?

올해는 러샤가 연초부터 세계를 상대로 큰 사고를 연달아 치면서 체면을 구겼다.
쟤들은 약물 도핑 징계 때문에 동계 올림픽에서도 나라 이름을 걸고 출전을 못 한 상태였다. (그냥 위원회 내지 스포츠 협회 명의로만) 그랬는데 그 상태로 또 도핑 적발..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망신 개쪽 아니냐..?? 명색이 왕년에 미국과도 항공우주 분야 맞장을 떴던 초강대국이 이 2010년대 이후까지도 국가 차원에서 약쟁이나 양성하고 말이다.;;
덕분에 그 미성년자 아이가 떳떳하지 못한 피겨 공연을 했을 때는 중계진들조차 할 말을 잃고 침묵으로 대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저 나라는 명분 없는 침략 전쟁 때문에 나라와 대통령 개인이 몽땅 모든 분야에서 세계 왕따가 됐다.
빙상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경기들에 대해서도 국제 대회 참가가 아예 완전히 금지됐다.
저 나라 대통령에게 수여됐던 체육 분야 명예학위나 명예단증은 취소· 철회됐다.

예전에 혼자 갑질을 일삼으면서 영화 만들겠다고 교만과 망상에 빠져 난리를 치다가 몰락한 국내의 모 전직 코미디언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 사람은 업종이 그쪽이었으니 그나마 사업 실패하고 돈만 날리는 걸로 끝났지만, 러샤의 저 아저씨는 정치· 외교 분야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상, 과연 곱게 퇴임하고 편하게 죽을 수 있겠는지가 우려된다.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저씨가 왜 저러나, 늙어서 노망 들어서 저런 똥고집을 부리는가 싶을 정도다. 세계를 자국민들 통제하듯이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건지..??
요즘 UN이 아무리 무능한 허수아비라고 해도, 이 정도로 선 넘는 무식한 만행까지 그냥 용납하지는 않는다는 걸 입증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하다.

세계가 하나로 뭉쳐 특정 악에 맞섰던 게 10여 년 전의 소말리아 해적, 7~8년 전의 ISIL(이슬람 국가/다에시)의 사례가 있었다. 2차 대전 이래로 세계 강대국들의 군대를 제일 많이 밀집시킨 악역들인데, 지금은 쟤들은 그럭저럭 다 토벌된 듯하다. 하지만 이젠 저런 조무래기가 아니라, 2차 대전 승전국이었고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멀쩡한 강대국이 다음 악역으로 등극했다.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70여 년 전의 우리나라처럼 세계로부터 지지와 도움과 원조를 집중적으로 받으며 아직까지는 적의 공격을 근근이 막고 있다.
하지만 러샤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민간인 거주 지역에다가도 미사일을 날리면서 더 악랄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네 동맹국을 통해 병력을 더 동원하고 장기전 섬멸전을 꾸미는 것 같으니, 아직은 완전히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러샤와 우크의 관계가 중공하고 대만의 관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중공이나 러샤나 다 강대국이고,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그닥 발달해 있지 않은 나라이다. 특히 중공은 시차까지 전지역을 무식하게 단일하게 밀어붙일 정도로 one China를 고집하고, 대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걸.. 중공이 폭주하면 저런 식으로 대만과 전쟁 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 같다.

한편 북괴는..?? 쟤들도 폭주하다 뻘짓으로 장렬하게 자폭해서 한반도가 멸공 통일이 좀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만.. 그래도 그건 현실성이 높지 않다. 북괴는 아무리 깽판을 쳐도 자기 무덤을 팔 정도로 폭주하지는 않으며, 정말 최소한의 누울 자리는 살펴보고 다리를 뻗는 놈들이다. 자기가 중공· 러시아 같은 국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미국한테 개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2.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

세상엔 위안부 소녀상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소녀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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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게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주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치가 지금 전쟁 벌어져 있는 저 동네라는 것은 아주 최근에야 깨닫고 현타를 체험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인데 내가 다른 아르메니안, 아일랜드 학살인지 기근인지랑 지금까지 헷갈렸던 듯하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전 지구를 통틀어서 손꼽히는 비옥한 곡창지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소련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 1932~33년엔 극악의 기근을 겪으면서 300만 이상~1천 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희생자 수는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대등한 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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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사하라 사막에서도 모래 부족/품귀를 야기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더니,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창세기 파라오의 꿈에 나오는 야윈 암소 7마리처럼 말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인재인 건 기정사실이고, 단순히 "강철의 대원쑤가 고의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학살한 거다 / 고의 학살까지는 아니고 그냥 실책이다" 정도의 관점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해서 과거에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던 동네이다. 아, 대기근 얘기는 아니지만 체르노빌 원전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었다.;;;

3.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난했던 인간말종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시국에 내가 어지간해서는 국내 정치 얘기를 자제하고 싶다. 허나 이건 너무 빡쳐서 도저히 까고 씹지 않을 수 없다.
개전 초기이던 2월 25일 부근엔 침략자 러시아가 아니라 피해자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탓하면서 폄하한 미친놈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이딴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완전히 매장 당하는 게 확실시되니 말을 더 못 꺼내겠지만, 저 내뱉었던 발언에 대해서도 쟤들이 제대로 사과나 철회를 했다는 얘기를 난 못 들었다. 그저 오해라는 변명만 늘어놓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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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퀴들이 감히 얻다대고 '자극' 드립이냐? 아가리를 확 찢어 버릴라..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면 저 색히들 반응이 어땠을까..?? 저것들 중에 20여 년 전, 부시 시절에 이라크 후세인을 비판했던 놈은 한 놈도 없었을 것이다. 쟤들이야말로 미국을 '자극'하고 어그로 끌었다가 박살나지 않았는가?

우크가 한국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지구 반대편 나라랜다.
그럼 이라크나 아프간이야말로 우크보다는 훨씬 더 우리나라랑 관계 없는 나라 아니냐..??
그때는 니들 미국 비난 왜 했어? 우리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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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북한을 자꾸 자극했으니 6 25 남침을 당한 거고, 조선이 일제를 자극했으니 식민지로 먹혀도 싼 거겠지.
나영이는 조 두순을 자극했기 때문에 성폭행 당해도 싼 거고.
현직 우크 대통령이 이전까지 얼마나 무능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내 관심사도 아니다만.. 그래도 설마 거의 이 완용 급의 평화주의자 종전주의자 종북 공산주의자인 이 후조선 대통령보다는 더 제정신인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제아무리 러시아가 깡패라 해도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이 침략을 한 건 아닐 테니, 나도 변명이라도 제대로 들어 보고 싶어서 검색을 해 봤다. 이런 시각의 국내 기사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크도 국제법을 어기고 러시아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국의 친러 성향 사람들을 오랫동안 탄압하긴 했는가 보다. 좀 회의적 시니컬하게 보자면 마냥 우크라이나 대통령만이 일방적인 애국자 절대선이지는 않을 수 있으며, 겉만 번지르한 언플만 너무 늘어놓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약~간은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저런 무자비한 침략 전쟁이 정당화 가능한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저 이상한 사람들은 러시아의 입장을 제3자 입장에서 대변해서 옹호하기라도 한 것도 아니다. 젤렌스키의 잘잘못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냥 친중종북의 연장선으로서 친러 발언을 늘어놨을 뿐.. -_-

미국 대비 판단 일관성이 없는 게 본인이 열받는 제1의 이유이고, 그 다음 제2로.. 심지어 리 승만 할배 대통령에다 빗대면서 수도를 버리고 튀네 마네 하는 것도 본인을 심히 빡돌게 한다.

일단 남한 서울은 우크의 키이우보다 훨~~씬 더 적국 내지 국경과 가까이 있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 피난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 망명이 아닌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된다.;;
또한, 할배도 대비를 안 하긴 뭘 안 했냐 이 등신아..;;
이 시국이면 북괴가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대비해야 된다고 미국한테 진작부터 마르고 닳도록 경고하고 지원 요청을 했는데도 전쟁광의 헛소리 망상으로 치부되고 묵살당한 거구만..

그때는 미국도.. 지금 해군 기지나 싸드 반대하는 멍청이들하고 같지는 않아도 약간 비슷하게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로 세계적으로는 "이렇게 세계가 초토화됐는데 설마 근미래에 또 전쟁?"이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열악한 여건에서 긴장 대치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더는 못 버텨서 하필 장병들 모처럼 휴가 좀 잔뜩 보내 줬을 때 허를 제대로 찔린 거구만? (이발, 목욕, 농사 모내기..)

다리 끊고 도망갔다는 헛소리는 더 반박하면 입만 아프니 언급을 생략한다.
천안함 생존자들 보고 패잔병 드립 치는 놈, 부시 그렇게도 욕하다가 푸틴 앞에서 절대침묵인 놈..
아~ 정말 난 인간 취급을 하고 싶지 않다. 꼭 유 영철만 싸이코패스인 게 아니다.
종북좌빨에다가 친중, 더 나아가 친러는 역시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닌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앞뒤 문맥 짜르고 특정 표현만 갖고 침소봉대 왜곡 선동질 하는 걸 기본적으로 혐오하는 사람이다.
허나, 이 우크라이나 망언은 그저 일회적인 막말 독설 말실수가 아니다. 찢점명이라는 사람의 평소의 사상, 가치관, 인생관이 투영돼 나왔을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예전의 가천대 망언하고 본질적으로 통하는 게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나라'..
이건 "아.. 어쩌다 보니 이름도 모르는 지잡 대학원을 야간으로 다니면서 그냥 학위 땄다 / 가천대 석사학위 따위 없어도 되니, 여의찮다면 학위 걍 반납하겠습니당. 취소하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하셔요~"에서 거의 같은 심보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공인, 정치인이라는 색히가 할 말인가..??
저넘은 돈 권력 영향력 없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그저 자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이용 가치가 0으로)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저버리고 배신하고 잊어버리고 찢어 버릴 놈이다.

그러고 나서는 반발이 이니까 수습하는 꼬라지 보소.
전형적인 말 뒤집기, 거짓말 정신승리 합리화, 말단 꼬리만 잘라서 심하면 자살시키기.
그나마 인간이 시늉으로라도 제일 착해져야만 하는 후보일 때도 저런 인간말종 본성을 못 숨겨서 난리인데.. 대통령이 된다?
이런 색히가 러시아 같은 정도의 나라에서 권력을 쥐게 되면 지금 푸틴처럼 하게 된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력 쥐면..?? 저런 나라 꼬봉 정도로..

제발 검찰 공화국이나 됐으면 좋겠다. 하이고 경쟁자에 대한 최악의 멸칭이 겨우 검찰 공화국이니? 저쪽은 뭐..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07 08:35 2022/03/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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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 교육

1. 경제 원리

이 한국.. 아니 옛날 조선의 밥상머리 경제 교육이라는 건 이런 식이었다.
애가 밥을 남기거나 밥알 하나라도 흘리고 칠칠맞게 굴면 "쌀알 한 톨 생산하기 위해서 농부가 얼마나 땀흘리고 고생하고 노력하는데, 니는 음식 귀한 줄 모르냐~ 어쩌구저쩌구 -_- ㄲㄲㄲㄲㄲㄲㄲ" 이렇게 갈군다.

그러다가 현대에 와서는 농부 얘기는 예전보다 줄었다. 이번엔 밥 못 먹고 굶주리는 소말리아 애들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선비질 꼰대질의 레퍼토리가 달라지는 편이다. 정~~~말 고지식하기 그지없다.

아 물론 음식은 귀한 것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하고, 허투루 낭비하고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 자체는 맞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반세기 남짓 전까지만 해도 전쟁 폐허 속에서 못살고 굶주리던 시절이 있었으니, 비극적인 역사를 더욱 잊지 말아야 한다.

근데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고작 저게 전부라면...??
쌀알 한 톨 생산하는 것조차 그렇게 힘들어 갖고는 너무 겁나고 무서워서 밥 한 끼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농사를 짓는 게 그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우니, 현실에서는 한번 농사를 지을 때 최대한 대규모로 짓는다. 쌀을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왕창 많이 생산해서 쌀알 한 톨당 들어가는 고생을 1/n로 분산시킨다.

애들한테 음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얘기를 넘어, 저런 경제 원리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왕창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거대 자본 인프라가 필요하고, 또 인간의 노력을 줄이려면 기계도 필요하고 과학기술도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빈부격차와 편차가 어느 정도 있어야 다같이 발전하고 파이가 커질 수 있고.. 부와 세금은 모두 낙수효과가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것.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송하고 유통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거..
아껴 쓰고 저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도 필요하다는 거.
국가간의 통상에서도 수입 없이 수출만 잔뜩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 디플레가 인플레보다 안 좋다는 거(물가가 내려가는데도?).

공교육이 이런 관념을 애들한테 일깨워 줘야 하리라 여겨진다.
투기꾼 속물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도 않은 얼치기 지상락원 공동분배 이딴 것에 현혹되고 선동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교육에서 무슨 성경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즉 만족하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 이런 신앙 교리를 가르칠 수는 없을 테니, 최소한 worst로 가지는 않게 애들을 이끌어야 한다.

2. 정치인--후보건, 당선자 현직이건 불문--이 뿌리는 돈의 맹점

요즘은 정치판에 복지 포퓰리즘이 하도 유행이고 대세이다.
뭐,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재벌들 왕창 쥐어짜고 세금 왕창 걷어서 전국민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 1억씩 팍팍 뿌려 줄 수는 있다. 거짓말은 안 한다고 치자.

근데 누구나 1억씩 갖고 있으면 점심밥 한 끼 값도 1만을 넘어 10만이건 100만이건 반드시 오르게 된다.
왜냐고? 1억씩 갖고 있는데 예전처럼 7000원짜리 된장찌개, 8000원짜리 제육볶음만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모두 다 쏘고기 등심이나 마구로 뱃살을 먹으려 들면 값이 과연 어찌 될까?
결국은 각 개인이 가진 부의 실질적인 수준은 지금과 비슷하게 도로아미타불 평준화되게 돼 있다. 돈의 가치만 더 떨어질 뿐.

이런 부작용은 그 어떤 복지 포퓰리즘 신봉자들도 절대로 얘기해 주지 않을 것이다.
물가는 식품이건 석유건 부동산이건, 본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원자재의 값이 내려가야만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는 것뿐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걸 지금까지 상당 부분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 바로 과학기술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꾸준히 해 온 말이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 사재를 털어서 뿌리는 건 1950년대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의 사례도 있고 해서 아주 강경하게 금지하고 단속하고 있다. 뇌물이니 불법 향응이니, 선거법 위반이니 하는 죄목을 씌운다.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마을 잔치에 초대받아 가서 밥 한 끼 얻어먹고 싸구려 경품을 받았던 농부 할배까지 불러다 족칠 정도로 처절하게 응징한다.

근데, 자기 사재가 아니라 세금 풀어서 비슷한 짓을(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하면 이건 복지가 된다.
이 딜레마를 시스템적으로 분간해서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치판에 만연한 망국적인 모랄 해저드를 결코 근절할 수 없어진다. 정치판의 수준이 싹 다 하향평준화 타락하고 나라의 미래가 없어진다.

제아무리 우파 정당이라고 해도 표 얻으려고 대세를 따라 퍼주네 뭐네 헛소리를 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거 갖고 SNS에서 백 날 실망이네, 우리나라에 진정한 시장 경제 보수 우파가 없네 한탄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시스템이 이미 요따구가 됐는걸 니가 출마했다고 달리 처신할 수 있겠나?

학교에서 중등 과학 시간엔 열역학 이론을 동원해서 영구기관이란 건 존재 불가능하다는 걸 가르친다.
그것처럼 사회· 경제· 윤리 시간엔 비슷하게 다같이 공평한 부자인 세상이라든가 공산주의의 이상향 따위는 절대 존재 불가능하다는 걸 세뇌에 가깝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소말리아에서 애들이 굶주리는 게 당연히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잘못 때문인 건 아니다. 우리가 걔네들한테 괜히 '미안해하면서'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 -_-;; 이건 서울대나 의대에 합격한 애들이 자기 때문에 떨어졌을 이름 모를 경쟁자에게 '미안해하면서'(!!?) 다닐 필요는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지금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자연을 쥐어짜고 착취해서 식량 생산 자체는 모든 사람이 먹을 만치 풍족하게 하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근데 그게 분배가 안 되어서 소말리아 애들이 굶주리고 있으니, 탐욕스러운 다국적 기업 농장을 조져서 강제 분배해야 된다..??

이게 바로 사악한 공산주의가 교묘하게 친 함정이고 삼천포 결론인 것이다.
그 다국적 기업 농장들이 자기 이윤과 탐욕을 추구하기 위해 열나게 농산물을 생산하고 품종개량을 하고 밖으로 수출하지 않았으면 소말리아가 아닌 다른 굶지 않는 나라 국민들도 지금 같은 가격으로 밥을 먹는 게 과연 가능할까?? 분배할 거리가 생기기라도 할까?

그 함정에 속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생산성의 일을 했는데도 잘사는 나라에서 받는 급여의 가치와 못사는 나라에서 받는 급여의 가치가 왜 이리 차이가 나는가? 어째서 미국의 하루 생활비로 소말리아에서는 한 달을 사는 걸까?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개 취급을 받는 한이 있어도 왜 기를 쓰고 잘사는 나라로 들어가려 하는가?" 이 원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굶주리는 소말리아 애들을 구제하는 건 그 동네의 정치적 상황까지 감안해서 다른 관점에서 본질을 파헤쳐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껏 도와줘 봤자 성금이나 구호물자가 굶주리는 애들한테 애초에 가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열악한 도로로 세월아 네월아 실어 나르는 도중에 다 상하고 썩거나, 아니면 그냥 횡령되고 빼돌려짐)
이건 북한을 도와주는 문제에 대해서도 99% 이상 그대로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원리라 하겠다.

그나저나, 가정이 거짓인 명제는 무슨 결론이 나오든 무조건 참이라는 것은.. 듣보잡 군소후보의 공약집이 딱 정확한 예시인 것 같다. 허 경영처럼 말이다.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자기가 만약 당선된다면 전국민에게 1억씩을 뿌리든 10억을 뿌리든 얼마를 뿌리겠다고 말해도 알 게 뭔가?? 거짓말은 안 하는 거다.

그래도 3억인지 5억인지 출마 공탁금만은 전적으로 자기 사재여야만 되는가 보다. 세상엔 도대체 뭔 밑천으로 대선에 군소후보로라도 출마하는지 모를 사람도 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27 08:35 2022/02/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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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일본이건(태평양 전선), 영국/소련-독일이건(서부 전선) 각색해서 영화 만들 것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영화를 주목하며 독자 여러분께도 추천하고자 한다.

(1) 핵소 고지 Hacksaw Ridge (멜 깁슨 감독, 2016) -- 데스몬드 도스(1919-2006)의 일대기
(2) 언브로큰 Unbroken (안젤리나 졸리 감독, 2014) -- 루이스 잠페리니(1917-2014)의 일대기


보다시피 이 두 실존 인물은 거의 동갑내기였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적병이나 적함· 적기를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통상적 무공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초인적인 행적을 남기고 영웅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도 나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 출신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나름 기독교 색채를 집어넣었다는 것, 평이 꽤 좋다는 것이 일치한다.

1.
핵소 고지는.. 주인공이 제칠일안식교 신자였다. 무정부 반전 평화주의자는 아니어서 진주만의 복수를 하고 싶고 군 복무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집총은 거부하는 좀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항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차여차 해서 의무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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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전투에서 총 대신 구급상자를 들고 위험한 적진을 종횡무진하면서, 수십여 명의 부상병들을 혼자 구출해 냈다. 그들은 구출되지 못했으면 다들 그대로 죽거나 적의 포로가 됐을 것이다.
의무병은 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119 구급대원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보직인지는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박 동혁 병장이 다쳤던 걸 생각해 보시라.

이 공로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됐다. 동료와 상관들이 다 너를 얕잡아 봐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나중에는.. 레알인지 각색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네 소대는 왜 아직 진격하지 않는 거냐? / 아, 도스 이병의 기도가 아직 안 끝났지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까지 당당히 인정받는 지경이 됐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군 측 인물이 뭔가 말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

2.
다음으로 언브로큰은.. 주인공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흠 육상 선수라니 뭔가 에릭 리들 같은 느낌이..)
그는 그 다음 1940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하려 했지만 이제는 올림픽 경기 대신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 예정국이 아예 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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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격기 승무원으로 복무했는데.. 하루는 격추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정비 불량으로 인해 기체가 태평양 망망대해에 추락했다. 구명보트에서 무려 7주를 근성으로 버티다가 구조됐지만, 운 나쁘게도 아군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구조되어서 포로로 전락했다.

그는 일본 해군 수용소에서 2년 넘게 고생했다. 일본한테도 얼굴이 알려진 유명한 운동 선수여서 더 고생했다. 특히 수용소의 간수 일본군이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주인공이 혹독한 노동에 기진맥진했던 상태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땡볕에 서 있는 가혹행위까지 감당해 낸 것이다. (통나무를 떨어뜨리면 총살이라고 위협..) 주인공은 그 상태로 무려 40분 가까이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면서 간수를 노려보며 압도해 버렸다. 주 기철 목사 전기 영화라면.. 솟은 못 위를 맨발로 걸은 일화가 이 장면에 대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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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쟁이 끝난 덕분에 주인공은 해방되고 무사히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심신의 장애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적국인 일본을 용서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일본에서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1998년엔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학대했던 간수 등 일본군 출신 인물들은 짱박혀 숨어서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천조국은 "미드웨이" 같은 전투 분야에서도 짱이고, 저런 휴먼 드라마 분야에서도 그냥 짱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3 19:33 2022/02/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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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

(1) 외세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게 절대 아님
내가 정말 양심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야..
이 지구상에서 정말 중공만치 한국의 남북 통일을 온몸으로 반대하고 북괴 체제의 존속을 지지하는 악한 나라가 또 있냐..??
6 25 사변이 벌어졌던 시절이나, 그로부터 70여 년 뒤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말이다.

유엔군이 38선 넘어서 북진을 하니까 칼같이 개입해서 저지한 게 저놈들 아니었냐?
그걸 놔두고 도대체 무슨 염치로, 무슨 양심으로, 무슨 유체이탈 정신승리 화법으로.. 통일이 웬 얼어죽을 일본 미국의 반대와 방해 때문에 안/못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2) 이제는 남북 통일 한다고 해서 국력이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음
그리고 이 인간들은.. 남한 북한이 합쳐지면 한국이 순식간에 일본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 부자 나라가 될 거라고 진짜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까? 허 참..

남한과 베트남이나 필리핀이 합쳐지면 일본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남한과 독일 정도가 합쳐져야 이제 일본과 맞장뜰 만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북괴가 베트남· 필리핀보다 더 잘사는 나라이기라도 하나?? 어이구..

본인의 정치 성향이 마음에 안 드는 애들, 싫은 애들.. 그 누구든지 입이 있으면 말해 봐라. 변명이든 반박이든 해 보셔~ 도전장 날린다.
이래서 반일정신병은 정상적인 지능과 양심으로는 절대 걸릴 수 없는 병인 거다.

(3) 이제는 통일이 아니라 그냥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를 바라야 함
사실,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할 거면 쌍팔년도 이전의 할배나 원조가카 시절에 무력· 흡수통일 형태로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은 이제 사람들 세대가 바뀌어 버릴 정도로 장기화돼 버렸고, 북한 체제가 저절로 무너질 수 있던 기회까지도 다 놓쳐 버려서 이젠 때가 너무 늦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제는 무리하게 통일을 바랄 게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부터 먼저 바라야 한다. 사실,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북한 주민들에게 저걸 주는 것 말고 다른 의도가 없다.
북한을 평범하게 왕래할 수 있는 중국· 일본 같은 정상적인 외국으로라도 먼저 만드는 게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4) 북괴의 흉계
남조선이 멸공통일, 반공통일, 승공통일, 평화통일의 순으로 기조가 바뀌는 동안,
북괴는 전면 남침, 무장공비, 납치 폭파 테러이다가 그 다음으로 잠수함, 핵과 미사일로 기조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은 패전 후에 GHQ한테서 교육받고 군국주의 쫙 빼내고 나라 체제가 싹 개조되기라도 했다. 그 뒤 일부 소수 또라이들이나 되도 않은 독도 갖고 트집잡고 지랄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북괴는 진짜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림 반푼어치도 바뀐 게 없는뎁쇼..?? 과거의 망령이랑 현재의 적을 구분할 줄도 모르냐?

우리나라한테 저지른 짓에 대해 일본이 한 것만치라도, 영혼 없는 립서비스 사죄 보상이라도 한 것조차 단 1도 없고..
그렇게 퍼주고 평화 지랄해서 지금 북한 주민이랑 검열 없는 편지 왕래, 전화 통화, 북한 내부로 개방된 인터넷..
도대체 뭐 어느 거 하나 이뤄진 게 있나..??

민주당 간첩과 북괴 체제야말로 진짜 시대착오적인 애들일 뿐..
그나마도 아주 좋게 점잖게 신사적으로 말했을 때 시대착오적인 거고, 감정대로 현실대로 말하면.. 바로 가스실로 보내고 대가리에 총알 구멍 내야 될 애들이다.
굳이 목숨은 부지하고 싶거들랑 삼청이 아니라 오청 백청교육대라도 보내서 두뇌 구조를 개조시켜야 된다.

'공산주의' 와 '공산주의자'는 같지 않으며 '좌파'와 '종북'도 전부 다른 개념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다들 나쁜놈이거나 아니면 나쁜놈의 사상적 근간으로 오· 남용되고 있는 건 다 동일하다.

2. 사악하고 불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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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저런 상황에서

"자유라는 게 왜 중요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왜 피흘려 가며 이를 지켜내야 했을까요?"


이렇게 묻는 게 정상적이고 도덕적이고 인륜에 부합하고 올바른 질문이란다, 이 머저리 바보천치 등신아.
저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곧바로 민족 해방 항쟁이 미제 원쑤들에 의해 좌절됐다는 말 튀어나오겠지.

의병이고 독립군이고 싹 다 토벌되고 없어진 일제 식민지도 전쟁 없는 평화 상태였고,
학교에서 죄없고 약한 애가 양아치한테 고분고분 삥뜯기는 것도 싸움질 없는 평화 상태라구.. 안 그래, 이 사악한 위선자야?

3. 자살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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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한두 번만 있었으면 그냥 우연일 수 있겠지만.. 줄줄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정권에 반대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코렁탕 먹는다거나.. 심지어 장 준하, 최 형욱처럼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하는 사건이 민주화 이전 군사 독재 시절에나 있는 줄 알았지?

반세기 전 버전은 그나마 반공과 경제 개발을 위한 선한 독재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독재이다. 진짜 지들만 해쳐먹고 나머지는 다 거지 되는 진짜 악한 독재란 말이다.

차이점을 모르겠으면..?? 니들만 책임지고 고생하면 내가 이런 글 올리지도 않는다. 정상인들까지 싸잡아서 고생하게 만들지는 말라고..!!
반대편 야당 진영에서 허구헌날 이런 자살 릴레이가 터졌어 봐라.. 무슨 난리를 쳤을까..?? 이걸 생각하면 소름이 쫙 돋는다.

지난 5년?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지켜본 바로는..
선의 편,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딱 인상을 보면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저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애국이 하루아침에 매국으로 뒤집힌 거라면 차라리 내가 죄인이 되고 말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내 명령에 따르기만 한 부하들은 아무 잘못 없으니 건드리지 마라. 나는 또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동일하게 행동하고 처신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딱~ 이러니 가슴이 다 뭉클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어떤 사람은 그 어떤 변명도 없이 너무 순진할 정도로 고매하고 도도하게 “나는 애초에 죄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 결국 역사가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어차피 살 만치 다 산 인생인데, 구차하게 항소니 탄원이니 하는 것 자체가 적들이 짜 놓은 유죄 프레임에 말려드는 추한 짓이다” 이랬다.

그러나 그러나..
악의 편에 선 놈들은 정말 오로지 남 탓, 뭐시기 때문, 누구 때문.. 왜 나만 갖고 그래... 이었다. 그저 주둥아리로 말이 많고 변명이 많았다.

아니면 자살이나 싹 해서 책임 회피하고 수사를 흐지부지 시키고 혼자 도망가곤 했다. 아니면 자살 '당하거나' 말이다.
이건 정황상 결백 호소, 억울함 호소나 자기 명예 설욕을 위한 자결이라고도 절~~대로 간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각 사람들이 누군지는 차마 대놓고 얘기하지 않겠다.
올해 봄엔 대통령이 바뀔 예정이긴 한데.. 이번엔 제발 악의 무리가 아니라 정의와 선의 편에 선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멸공'이니 '우리의 주적은 북한' 같은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소리가 논란거리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이 좀 왔으면 좋겠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멸공을 외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 그럼 군대 갔다 온 대통령이 북괴를 옹호하는 건 말이 되고?
-- 그럼 일제 시대를 직접 겪지도 않은 사람이 반일 거리는 건 말이 되고?


멸공은 당연한 절대선이다.
멸공 갖고 전쟁 선동 지랄하는 건 절대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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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2/01/17 08:35 2022/01/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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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일본은 한반도에서 토지 조사 같은 것만 한 게 아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조센징들이 옛날에 무슨 찬란한 문화재 유물들을 만들었는지도 아주 면밀히 조사했다.
그래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跡圖譜)라는 총 15권짜리 방대한 도감을 1915년부터 1935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편찬해 냈다.

왜, 1910년대에 돌덩이가 다 무너진 폐가 흉가 수준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모습 사진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거 출처가 이 도감이다. 일본인들이 촬영해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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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제5권, 불국사는 제4권에 수록돼 있다.)

그리고 각종 역사 만화나 교과서를 보면, 북한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흑백 사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역시 일제 시대에 일본이 촬영한 저 도감의 옛날 사진을 인용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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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90년대부터야 냉전이 끝나고 남북 민간 교류가 잦아지고 정보 통신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북한의 현지 정보도 훨씬 더 풍부하게 얻을 수 있게 됐다(현대에 컬러로 찍은 사진도 포함..). 하지만 그 전에는 개성의 선죽교 사진조차도 일제 시대에 찍힌 흑백 사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구한말 조선/대한제국의 공권력으로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기록을 남긴 게 아니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나라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발굴되어 각종 훈장이 추서된 게 1962~63년, 원조가카의 집권 초기라면,
우리나라 네임드급 문화재들이 대대적으로 조사되고 사진이 처음으로 찍힌 건 1910년대 일제 시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저건 “식민지에 원래 이런 문화재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것들도 다 우리 일본 것이 됐다. 그러니 우리가 철저히 관리해야지” 그런 정치 행정적인 차원에서 조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걔들도 최소한 이상한 감정--심지어 조선에 대한 열등감까지!!!--을 갖고 “다 때려부숴 버려야지, 없애서 조센징들 민족 정기를 말살해 버려야지” 이러지는 않았다.

일제 시대의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뭐시기 하는 그 아저씨는.. 정치 쪽은 가혹한 헌병 무단 통치 때문에 우리 쪽에서 썩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의외로 불상 덕후에 문화재 덕후 기질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그게 일본 본토로 무단 반출되지 않게 하는 일에 나름 애쓰기도 했다.

일례로, 그 당시의 석굴암 복원 작업은 졸속 날림으로 진행된 게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최소한 악의적인 고의 훼손은 절대 아니었다. 폭탄 맞은 듯한 폐허 상태에 비하면 그 기술과 자금 하에서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든 거지, 악화시킨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석굴암이 저런 막장 상태가 되도록 수백 년째 방치한 건 숭유억불의 조선 왕조였으니 말이다.

석굴암이 옛 신라인들의 넘사벽 lost technology를 동원해서 만들어졌는데 왜놈들이 어설프게 콘크리트를 쳐발라서 망가뜨리는 바람에 습도 조절이 안 되고 내부 상태가 꼬였네 뭐네 하는 소리는 2020년대에는 좀 안 나와야 할 것이다. 걔들은 문화재를 진짜로 다 때려부순 중공 문화대혁명 홍위병이나 요즘 탈레반 집단보다는 정신 세계나 행정 시스템이 더 나은 애들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선 임금들의 초상화인 '어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 6· 25 사변 중에 소실된 것, 그리고 결정타로 부산 용두산 대화재 때 전부나 일부가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원본이 제대로 보존된 게 별로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순종을 비롯해 일부 왕의 어진은 2010년대에 그림을 다시 그려서 복원이 완료되기도 했다. 이때는 소실된 부분을 무엇을 토대로 유추해 냈을까?

바로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어진을 흑백으로나마 사진을 찍어 놓은 자료가 있어서 이를 참조해서 복원했다.
일부 소실인 경우, 색깔이야 불타지 않고 남은 부분으로부터 유추가 가능하니까 흑백 사진만 있으면 전체 복원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순종의 경우, 김 은호 화백이 어진을 그리는 모습까지 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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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저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자료인지, 아니면 다른 별개의 촬영 기록인지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여담: 문화재 관련 박물관

문화재 관리 얘기가 나왔으니, 이것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얘기도 같이 안 할 수가 없겠다.
박물관이야 워낙 분야가 다양하긴 하지만 무슨 국립 박물관이라 하면 일단은 상술했던 옛날 전근대 시절의 국보/보물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곳을 말한다. 역사 박물관이라든가 아예 미술관하고는 영역이 약간 겹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제 시대에도 한반도엔 총독부 박물관이니, 이왕가 박물관이니 하는 전시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국립 중앙 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주, 제주, 전주 등 10여 곳에 국립 박물관 에디션이 있긴 하지만.. ‘중앙’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박물관은 서울 에디션이다.

엄청 옛날에는 국립 중앙 박물관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고궁 안에 있었다. 198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에 입주하기도 했었으나, 훗날 그게 헐리면서 지금과 같은 용산 부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됐다. 전에는 거기가 미군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 여담: 과학관

다른 관련 주제를 하나만 더 열거하자면..
이런 옛날 문화재 박물관 말고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여러 지역에 ‘파생 에디션’까지 존재하는 또 다른 관람 시설은.. 바로 ‘과학 박물관’, 일명 과학관이다.

얘 역시 나름 일제 시대부터 전신이 존재했었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자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기존 건물이 ‘은사 기념 과학관’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해방 후에도 이름만 ‘국립 과학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는 와룡동, 혜화 역 근처 지금의 위치에 ‘국립 서울 과학관’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부지가 너무 좁기도 하고 나중에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기도 했으니 대전에 엄청 큰 과학관이 새로 건립되면서 얘가 ‘중앙’ 타이틀을 대체하게 됐다. 즉, 국립 중앙 박물관과 달리, 국립 중앙 과학관은 대전에 있다.

지금은 수도권의 과천을 포함해 대구, 부산 같은 몇몇 대도시에 국립 과학관이 몇 곳 더 있다. 기존의 서울 과학관은 ‘어린이’ 과학관으로 리모델링 됐으며, 이와 별개로 강북에 서울 시립 과학관이 추가로 더 개관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9 19:35 2021/12/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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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 태우

이 사람은 민주화가 이뤄지고 지금 같은 6공 체제(5년 직선 단임제)가 출범한 뒤에 최초로 선출된 5년 단임제 대통령이다.
이때 야당 후보들이 단일화가 제대로 못 돼서 여전히 군인 출신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게 특이한데.. 이 시기는,

  • 무연 휘발유와 유연 휘발유의 과도기 (1987년 7월 ~ 1992년 말. 대통령 집권 기간과 거의 일치)
  • 범죄와의 전쟁
  • 분당과 일산 신도시 개발
  • 각종 교통 인프라들 건설 시작: 판교-구리 고속도로 건설(현 수도권 1순환 고속도로의 먼 전신), 서해안 고속도로, 인천 공항, 경부 고속철...!!
  • 지방자치제 시행 (개구리 소년 사건이 벌어진 때가 이거 선거일..)
  • 북괴가 의외로 인명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의 유의미한 도발을 한 적이 없음

요런 게 인상적이라고 느껴진다. 제4 땅굴이 1990년 봄에 발견되긴 했지만, 이때는 군견만 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는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고 동독이고 차우세스쿠고 다 운지하던 시절이었으니.. 북괴도 몸 사렸던 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땐 남한과 북한이 나란히 UN에 가입했다(1991).

아울러, 이 시기에 미국-이라크 걸프 전쟁이 벌어졌던 것,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독립 국가 연합'이라는 선수단이 출전했던 것이 본인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7. 김 영삼: 많은 변화들

김 영삼은 우리나라 역사상 초대 할배나 마이너(윤 보선, 최 규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선거를 통해 군 출신이 아닌 민간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첫 사례이다. 별명을 괜히 문민정부라고 지은 게 아니었다.

지금은 매우 믿어지지 않지만, 이때는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대통령을 희화화하면서 "YS는 못 말려" 같은 유머 책까지 출간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사람 때 나라 분위기가 실제로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 금융실명제 시행
  • 대전 엑스포
  • 고속도로 통행료 후불제
  • 쓰레기 종량제
  • 행정구역 개편 (직할시가 광역시로..)
  • OECD, WTO 기구 가입. 슬슬 선진국 인증?

역사·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런 것도..

  • 군 내부 사조직이던 하나회를 전격 해체
  • 조선총독부 구 청사 철거
  • 전 두환과 노 태우 비자금 재판...;;;

이 사람 재임 때 있었던 북괴 관련 사건은 다음과 같다.

  • 김 일성 사망 1994. 7. 정말 최대 압권
  • 국군 포로 조 창호 중위의 귀환 1994. 10.
  • 이 철수 대위 귀순 1996. 5. 현재까지 최후의 전투기 비행 귀순자
  • 강릉 무장공비 침투 1996. 9. 현재까지 잠수함 공작원 기반의 최후 대남 도발 (알려진 것)

이것들도 벌써 30년 전에 가까운 과거가 돼 간다.
이제 흑백뿐만이 아니라 컬러도 4:3 종횡비의 VHS급 저화질 사진/영상은 희뿌연 과거의 역사 기록이 돼 간다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다.;;

8. 김 영삼: 대형 참사와 흉악 범죄들

그런데 1990년대 김 영삼 시절은 다른 면으로도 정말 판타스틱하긴 했다.

  •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1993. 3.
  • 아시아나 항공 733편 추락 1993. 7.
  • 서해훼리호 침몰 1993. 10. (1993년 한 해에만 육해공이 나란히..)
  • 성수대교 붕괴 1994. 10.
    (당시 대한뉴스에서는 조 중위 얘기만 다뤘고, 성수대교는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그 해 12월 말을 끝으로 폐지를 앞두고 있기도 했고, 사건 사고 보도는 이미 싸제 방송사들이 훨씬 더 신속하게 자세히 해 주고 있었으니까.)
  •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1995. 3.
  • 삼풍 백화점 붕괴 1995. 6.
  • 대한 항공 801편 괌 추락 1997. 8. (현재까지도 대한 항공 최후의 여객기 인명 사고!!)
  • 기업들 줄도산, **외환 위기 IMF** 1997. 12.

보다시피, 한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아시아나와 대한 항공에서 나란히 여객기 추락 사고가 났었다.
이것들이 당연히 당대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사고가 겹치는 빈도가 이때 유난히 너무 높았다. 무슨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만 경제가 성장하고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네 마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은 원칙이 없고 미개하고 부정부패 편법이 만연하다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우리 제발 좀 늙어 죽어 보자고 난리가 났었다. 우리나라는 저런 사건 사고들로부터 배우고 시스템을 개선해서 옛날에 비해 그나마 많이 나아지고 청렴해지고 안전해졌다.

그리고 이땐 대형 사고 참사뿐만 아니라, 흉악 범죄도 장난이 아니었다.

  • 부친 방화 살해 금수저 패륜아 박 한상 1994. 5. (사형 미집행)
  • 택시 강간 연쇄살인범 온 보현 1994. 9. (사형 집행)
  • 지존파 1994. 10. (사형 집행)
  • 부친 살해 패륜 대학 교수 1995. 3. (무기징역)

그나마 김 영삼은 1997년 12월 30일, 자기 집권 이전부터 확정돼 있던 사형수들을 몽땅 사형 집행을 하고 물러났다. 이게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후의 사형 집행이 돼 버렸다.
단지, 온 보현과 지존파는 당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흉악해서 예외적으로 1995년 11월에 바로 집행을 해 버렸다.

9. 김 대중: 행적에 대한 괴담

이 사람은 IMF 시기를 경험한 것, 북괴의 수괴를 직접 만나고 어쨌든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
시기도 새 밀레니엄 전환기이고 고속 인터넷에다 휴대전화가 막 보급되던 때였던 것으로 인해, 역시 중요도와 존재감이 크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의약 분업이 2000년 이 사람 집권 때 이뤄졌다.
그리고 서울 2기 지하철 전구간 개통, 인천 국제공항 개항, 서해안 고속도로 전면 개통도 덤..

그런데.. 이 사람은 유난히 노래와 관련된 괴담이 많이 나도는 경향이 있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금지시키고 6· 25의 노래조차 악의적으로 개사해서 원곡을 금지시켰다는데..
일단 내가 알기로 이것들은 사실이 아니다.

그때가 무슨 국가 공권력 차원에서 특정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게 가능한 시절은 아니었다. 물타기 된 불순한 6· 25 노래가 우연히도 그때 민간 차원에서 발표된 것은 맞지만, 나라에서 그걸 채택해서 강제로 밀어붙이지는 않았었다.
단지, 남북 정상 회담뿐만 아니라 신 한일 어업협정도 그 당시엔 엄청난 논란이 많았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 제2 연평해전 당시의 불리한 교전 수칙이 이 사람 집권 때 일부러 개정된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그 전부터 그랬다.

  • 1999년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함장이 종북세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정치 보복을 당했다는 썰 역시 내가 아는 바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박 정성 제독, 송 영무 제독. 내가 무슨 군 출신인 건 아니니 내가 잘못 아는 게 있다면 재반박 환영)

  • "북한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내가 책임 진다"라는 두고 두고 까이는 엄청난 발언도.. 2001년경의 발언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한은 의외로 정확한 최초 출처가 잘 나오지 않는다. 마치 6 25 개전 초기에 할배 대통령의 행적처럼 말이다.

  •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들을 적에게 몽땅 누설하고 와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 구체적인 증거는 잘 모르겠다.

주된 팩트와, 그 팩트 속에 교묘히 섞여 들어간 자잘한 과장 왜곡 주작은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저 세부 팩트가 그렇다고 해서 저 사람이 저런 오해가 불거지고도 남을 정도의 이상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적에게 퍼 준 거 하며,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날 태연히 축구 보러 일본으로 뜬 건 뭐.. 욕 먹어도 할 말 없다. 특히 그 세월호 7시간 갖고 지랄하던 그 잣대를 적용한다면 더욱 말이다.
더구나 백 보 양보해서 저 사람의 의도가 악의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물은 결코 좋게 나오지 않았다. 뭐 그건 그렇고..

* 총평과 여담

(1)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제일 많이 배출한 대학은 육사...;;;이다.
그런데 2021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서울대 출신 대통령, 그리고 유일한 노벨 상 수상자라고 하면 의외로 사람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라고 하면 할배, 아니면 반대로 고졸 출신이라고 하면 김 대중· 노 무현이라고 금방 떠오르는데, 저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2)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어째 재임 순서와 사망 순서가 완전 역순이다.. 무슨 스택도 아니고..
노 무현 09. 5.
김 대중 09. 8.
김 영삼 15. 11.
노 태우 21. 10.
그 다음 전 두환 21. 11. (후배를 따라 나란히 갔구나. 그래도 전직 대통령들 중 퇴임 후에 제일 오래 길게 살았음!!)

(3) 대전 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은 만들어진 지 30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최 규하 한 명밖에 없다.;; 그것도 역대 최단기, 제대로 재직하지도 못했던 대통령만..

Posted by 사무엘

2021/11/27 08:35 2021/11/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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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승만: 한강 인도교 폭파 관련 오해

할배의 집권 시기였던 제1공화국은 미국과 비슷한 4년 중임 간접 선거(나중에 헌법이 개정되어 다 바뀌긴 했지만)와 부통령, 청와대 대신 경무대, 단기 연호, 써머 타임, 화폐 단위가 원이 아니라 ‘환’, 아직 서울 특별시 외에 직할시 광역시 따위 없음.. 이렇게 시스템이 지금과는 다른 게 너무 많았다. 한국어와 한글, 태극기 같은 것만 같았다.

병역조차도 건국 직후 맨 처음엔 모병제였는데 6 25 사변의 트라우마가 생긴 뒤부터 징병제로 바뀌었다. 심지어 기간도 역대 최장인 3년이어서 박 정희 때 1 21 사태로 인해 연장됐던 최장 기간과 동일했다. 뭐 그건 그렇고..

할배의 집권 시절의 흑역사 중 하나로 6· 25 사변 초기의 한강 인도교 폭파가 즐겨 회자되고 있다. 이건 시간을 벌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긴 했지만, 너무 일찍 터뜨리는 바람에 진짜로 후퇴해야 할 병력과 피난 가야 할 시민들도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해서 곤혹을 치르게 됐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다만, 피난민들이 멀쩡히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뜬금없이 그 다리를 폭파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처럼 추락하고 꼬르륵..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쪽으로 역사 인식이 바뀌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누가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를 포함해 각종 위키에서도 한강 인도교 폭파 때의 자국민 인명 피해가 ‘군경 77명 사망’으로 고쳐졌다.

“그 큰 대교를 폭파하려면 비용은 둘째치고 폭파를 준비하는 데만 최소 몇 시간이 걸린다. 민간인 진입을 통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이 인도교 위에 있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엔 민간인의 피해는 없고, 군경 77명의 피해가 있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 나무위키. 얘는 일방적인 보수 우편향 사이트가 절대 아니다.


윤 서인 인라이트 역사 만화에서나 봤던 설이 위키에도 반영되어 들어가다니 놀랍다. 그런데 폭파 당시에 민간인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럼 그 군경은 도대체 그 시간에 무슨 일로 거기에 있다가 폭발과 함께 강물로 떨어져 순직한 걸까..?? 민간인을 다 통제시켜 놓고 위험한 곳에 있다가 죽은 거면 직무상 순직으로밖에 볼 수 없을 텐데?
그리고 77명이라니. 이거 무슨 경부 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수도 아니고, 숫자가 좀 인위적이어 보인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팩트를 더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한강 인도교 폭파는 관련 사진이 전해지는 게 전혀 없다. 1· 4 후퇴 때 평양에서 대동강 철교가 폭파되고 피난민들이 거기를 건너는 모습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거기에 오도되지 마시기 바란다.

  • 폭파 당시 말고 폭파 “후”에.. 다리에 대한 출입 통제가 제대로 안 돼서 피난민 행렬이나 차량이 추락한 경우는 좀 있었다. 이때는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은 한밤중이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끊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했어도 뒤따라 오는 행렬에 떠밀려서 다리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정말 보면 볼수록.. 별로 크지도 않은 이 쬐끄만 나라는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인 근현대사에 과장과 왜곡과 날조가 너무 많은 거 같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만 보면 사람마다 정반대의 사관을 갖게 되기에 딱 좋다.
김 구의 행적이나 독립군의 전과도 그렇고.. 저 한강 인도교 폭파도 그런 카테고리에 들겠구나.

2. 박 정희: 인상의 변화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기 집권을 한 양반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집권 중에 얼굴이 연식 때문에 삭아(?) 가는 모습도 종류별로 제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솔직히 할배만 해도 1948년에 취임 선서하는 모습이나, 12년 뒤에 4· 19 시위 부상자들을 문병하는 모습이나 내가 보기엔 인상이 거의 차이가 없이 똑같은 할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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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성명을 내는 모습 사진은 없는지..?? 이걸 못 구해서 딴 걸로 대신했다. 그래도 할배는 12년의 격차가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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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원조가카는.. 대외적으로 왼쪽 같은 인상이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오른쪽처럼 인상이 많이 삭기도 했다.;;;
그러니 원조가카를 존경하는 진정한 매니아라면.. 사진에서 이 아저씨 머리가 하얗게 샌 정도, 옆에 영부인이 있느냐 장녀가 있느냐 등등의 단서를 토대로 이게 60년대 중후반 모습인지, 70년대 중후반 모습인지 정도는 바로 알아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업적에 대한 시간 관념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월남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근로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경부 고속도로 개통, 10월 유신 정도는 시간 순 나열이 가능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거나 시험 문제로 좀 낼 것이지..
개인적으로는 새마을 운동이 1960년이 아닌 1970년대로 내 생각보다 나중이라는 것에 약간 놀랐다.

3. 박 정희: 일화들

아울러, 박 정희 대통령은 남과 대화를 하다가 대답을 센스와 재치 있게 잘 한 일화가 여럿 전해지는 사람이다.

(1) 미국의 어느 무기상과 거래를 하면서 비자금도 받았는데.. 박통은 이걸 받아서 그냥 쓰윽 하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하지도 않고.. “이 돈은 이제 내 껍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돈을 너한테 도로 줄 테니 그 액수만치 M16 소총을 더 갖다 주시오”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을 벙 쩔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건 정확한 출처와 일시가 검증 가능한 일화인지 모르겠다.

(2) 1970년대 초쯤엔가 지방 시찰을 갔다가 전주의 유명한 콩나물 국밥 식당 ‘삼백집’에서 전투력 최강의 욕쟁이 할머니를 대면했다. 그 할머니는 이 손님이 대통령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어 이눔 봐라? 네놈은 박 정희 대통령이랑 되게 닮았네? 옜다, 계란이나 더 쳐먹어라” 라고 서빙을 해 줬는데, 박통은 “내가 대통령을 닮은 게 아니고 대통령이 나를 닮은 게요~ ㅎㅎ”라고 점잖게 넘겼다고 한다.

(3) 1965년,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방문해서는(☞ 당시 대한뉴스 영상).. 나름 타국 원수 귀빈이 납셨는데 원하는 거 있으면 들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생도들 퍼레이드, 생도들에게 연설, 진귀한 선물 등.. 그런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지금 징계· 벌받고 있는 생도들이 있으면 다 사면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정말 뜻밖의 요청을 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사면령이 떨어지자 박통은 식사 중에 생도들로부터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 생도들은 졸업과 임관 후에 한국 파견 근무를 선호하는 친한파가 되었다.

아.. 박통은 생각이 깊고 정말 위대한 지도자였다.
학칙 위반 생도 사면은.. 이 사람이 좌빨들이 그렇게도 욕하는 일본 육사를 나오는 바람에 자신부터 군잘알, 사관학교 생도 생활 잘알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지 싶다. 군알못으로 출세한 사람이라면 어디 저런 답변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에서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부귀영화나 절대권력, 적장의 모가지 따위가 아니라 "백성들을 바르게 통치할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서 이쁨받았던 것과 비슷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이듬해의 린든 존슨 대통령 방한 환영 행사도 그렇고.. 1960년대에 원조가카가 미국으로부터 점수 따서 지원 많이 받으려고 이런 식으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4. 전 두환: 일반적인 행적, 치안 안정

1980년대 전땅크는..

  • 통금 해제
  • 컬러 텔레비전
  •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
  • 서울 올림픽 유치와 준비
  • 한강 종합 개발 사업과 올림픽대로
  • 정보화 시대: 삼성 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개발, 8비트 컴퓨터 개발, 1984년의 제1회 전국 퍼스널 컴퓨터 경진대회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으로 전땅크는 범죄 예방과 사회 치안 쪽으로도 다음과 같은 독자적인 선정을 베풀었다.

  • "아이가 죽으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이 윤상(1980), 원 혜준(1988) 유괴 살인 사건. 가해자는 대통령의 약속대로 바로 사형에 처해졌다. 각각 아직 4공이던 초창기와 6공 출범 직전 시기의 일이다.
  • 삼청교육대: 1980년, 4공 시절에 잠깐 있다가 말았던 엽기적인 군대식 교화 시설이다. 비록 강제 징집 때문에 오점이 남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 시절에 이런 거라도 있어야 했을 정도로 사회 기강이 개판이었다. 지방 조폭, 술 쳐먹고 행패 부리는 양아치들... 본인은 심지어 지금이라도 삼청교육대가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엔 7~80% 정도 동의한다.
  • 가정파괴범: 대한민국 역사상, 살인 없이 강도 강간 누범만으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됐던 때는 할배도, 원조가카도 아닌 전땅크 시절이 유일했다~!! (1985년 11월)

이런 건 서 정주 시인이 지은 오글거리는 송시에도 언급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전땅크는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무려 30년이 넘게.. 역대 대통령들 중 독보적으로 제일 오래 생존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건강하고 볼 일이다.

5. 전 두환: 악을 선으로 갚기

지난 1984년에 우리나라는 극심한 수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때 북한에서 구호물자를 보내 줬다.
이건 사실, 북한에서도 남한이 그걸 받을 거라고 기대도 안 하고 농담/조롱 반 진담 반으로 “안됐네.. ㅉㅉㅉ 우리가 도와줄까? 구호물자 좀 보내줘?”라고 떠본 것이었다.

그런데 전땅크가 그걸 덥석 물고.. “응~! 좀 도와주면 고맙겠..! 우리가 남이가”이라고 손을 내밀어 버렸다. 그러자 북한도 없는 살림에 구호물자를 갑작스레 챙기느라 혼쭐이 나야 했다.
북에서 급조해서 보내 준 쌀, 시멘트와 옷감 따위의 품질이야.. 이 글에서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허나, 남한에서는 답례로 그 받은 쌀과 시멘트와 옷감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전자제품 공산품들을 북한 근로자들에게 선물로 뿌려줘서 북측의 자존심을 콱콱 구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전땅크가 대북 심리? 외교전에서 압승을 거둔 셈이다.

참고로 이건 전땅크의 목을 노렸던 아웅산 폭탄 테러가 벌어진 지 겨우 1년 남짓밖에 안 됐던 시점의 일이었다. 훗날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 놓고 말이야” 이러는 것만 봐도.. 전땅크 역시 멘탈이 보통 멘탈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북괴는 이런 무식하고 야만적인 짓거리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규탄과 손가락질 받고 단교 당하면서 외교전에서 장렬히 자폭했다. 실드의 여지가 없는 몰수패를 당했다.
그랬는데 남한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유치하면서 승승장구 중이니, 남한을 어떻게든 방해하고 저지하면서 자기들도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니 초대형 릉라도 경기장을 건설하고 류경 호텔도 착공하고, 올림픽 대신 "세계 청년 학생 축전"을 유치하면서 별별 짓을 다했지만.. 대부분 돈만 날리는 뻘짓으로 끝나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24 08:36 2021/11/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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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나치 경례 거부

  • "주변에서 모두가 '예, 예' 할 때 혼자만 양심껏 소신껏 '아니요'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 생도 신조 중)

이런 것의 예시로 요런 짤방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많은 군중들이 오른팔을 뻗치면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있을 때 혼자 생까고 가만히 있었던 이 사람은 정체가 무엇일까?
그는 아우구스트 란트메서(1910-1944)라는 독일인이며, 사진은 의외로 전시가 아니고 히틀러의 집권 초기이던 1936년, 나치 독일의 모 군함의 진수식 때 촬영된 거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연은 검색해 보면 다 나오니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 않겠다.
핵심은 이 사람은 유대인 여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생겼는데 하필 거의 같은 타이밍 때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게 축객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저 군함을 제조한 조선소의 직원이었다. 그러니 진수식 행사엔 사실상 강제 동원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치 당에도 가입하긴 했지만, 유대인이니 정치니 이념 그딴 건 별 관심 없고 그냥 취업 때문에 가입한 것에 가까웠다.

그랬는데 나치 당에서 유대인들을 못 살게 굴기 시작했으며, 자기에게도 멀쩡한 아내를 버리라고 이혼을 종용한 것이다. 그러니 당이 좋게 보일 리가 없고 경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이 사람은 단순히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버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훗날 등장한 백장미단 조피 숄 같은 급으로 전시에 거창한 신념이나 소신을 갖고 나치 경례를 거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포즈로 대외 공개용 사진이 찍혀 버리자 나치 당에는 저 괘씸한 놈이 누군지 곧장 추적을 시작했고, 당사자 역시 신변의 위협을 진지하게 느끼게 됐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도피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발각됐다. 인종오염법으로 기소되어서 수용소 행..;;

아내는 전쟁 중에 여러 수용소에 끌려 다니다가 1942년쯤에 결국 살해당했다(아마 가스실에서). 저 사람은 살아서 풀려나긴 했지만 이미 비국민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어느 죄수 부대에 징집되었다가 1944년쯤에 전쟁터에서 실종 내지 전사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도 어린 딸 둘은 고아원 내지 친인척 집을 거치면서 다행히 살아남아서 자기 부모의 사연을 후세에 전해 줄 수 있었다. 저 사진도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1991년에 딸에 의해 공개된 거라고 한다.

2. 미국의 태평양 전쟁 참전 거부 (입법)

미국은 1941년 말에 일본으로부터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것으로 인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래서 새끼 빼앗긴 암곰을 능가하는 복수귀로 각성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엄청난 빡침이 담긴 대국민 담화인지 연설을 한 뒤, 의회로부터 대일 선전포고와 참전 승인을 받았는데.. 상원에서는 전쟁 개시 관련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러나 하원에서는 388:1로 반대가 딱 하나 있었다.

전미가 왜놈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눈이 시뻘개졌던 험악한 시국에서 홀로 반대표를 던진 용자는 바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여호와의 증인 급의 반전주의 소신이던 '지넷 랭킨(1880-1973)'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아줌마는 1차 대전부터 시작해서 2차 대전, 6 25 사변, 월남전까지 일체의 전쟁에 대해 자국이 참전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분위기에서 이런 아웃사이더가 당장 테러· 협박을 당하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나 나치 독일에서 누군가가 저런 반전 운동을 공개적으로 했다간 그 사람은 어찌 됐겠는가? (군중 속에서 팔 뻗어서 같이 경례 안 한 것만으로도 아까처럼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뒤끝이 뒤따랐거늘..)

하지만 천조국이라도 선 넘을 정도로 이상한 소신을 포용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 아줌마는 이를 계기로 소속됐던 공화당에서 퇴출되고, 정치판에서의 커리어가 통째로 끝장 났다고 한다.
결국 2차 대전 이후의 반전 운동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가로서 개인 단위로 진행됐다. 분야는 다르지만 개고기 반대하면서 이상한 똥고집 부리던 프랑스의 그 아줌마 생각이 문득 난다.;;

3. 곁가지: 미군의 일본군 시체 훼손

이건 참 경이롭고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1944년 5월, 미국의 어떤 아가씨가 남자친구로부터 웬 해골바가지를 선물로 받고는.. 잘 받았다며 감사 답장을 보내는 모습이 보도된 것이다.
남친은 해군에 입대해서 태평양 전쟁터에서 한창 고생 중이었는데.. 전사한 어느 적군 병사의 유해에서 두개골을 추출해서 여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전시이니 저 여친도 군수공장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저 때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그 당시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증오심은 일선의 병사들이 일본군 시체에서 해골바가지를 뜯어내서 장신구로 쓰고 연인에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극심했다.
최악의 증오스러운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데다, 억만 리 떨어진 망망대해의 섬에 상륙해서 밀림 속에서 전투를 벌이던 태평양 전쟁터는 환경도 최악의 생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본놈들도 상대방에 대해 "저놈들은 귀축영미, 항복했다간 무조건 죽음" 이딴 소리에 골수까지 세뇌된 괴물들이었다. (얼마나 세뇌됐으면, 훗날 전쟁이 끝났으니 귀환하라는 말조차도 안 믿고 섬에 틀어박혀서 거지꼴로 몇 년을 버틴 사람들조차 있었을 정도..)
같은 백인 코쟁이에 기독교 배경이 있고, 말과 문화가 일말의 통하는 구석이라도 있는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전쟁터에서는 최악의 조건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그야말로 인외마경이 펼쳐졌다. 그 살벌함은 포카혼타스 Savages를 아득히 능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을 해 보시라. 천조국 군인들이 차라리 평시에 군기가 빠져서 민간인을 상대로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있지만..
전시에 적군의 시체를 훼손해서 저렇게 갖고 놀고 그게 저 정도로 대대적으로 매스컴까지 탔던 건 남북 전쟁, 미영 전쟁, 1차 대전, 월남전, 이라크전 등등등을 통틀어서 저 태평양 전쟁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물론 군 수뇌부에서 이런 짓을 금지하고 단속하긴 했지만,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군인 개개인의 감정을 다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천하의 미군이니까 이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해골바가지만 득템해서 장식품으로 써먹는 정도의 짓밖에 안 한 것이다.
일본군은 뭐.. 연합군 포로들을 훨씬 더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대해서 다 죽이고, 100인 참수 경쟁을 벌이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대놓고 식인까지 했다.

이런 악랄한 경험으로 인해, 미국은 쟤들은 안 되겠다고 원자 폭탄까지 터뜨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훗날 전범 재판에서도 일제 전범들을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총살도 아닌 그냥 교수형을 집행할 것을 건의하게 됐다. 교수형은 군인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한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나치 독일 전범에 대해서는 독소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는 소련이 더 강하게 교수형 사형 집행을 요구했다.

4. 일본 전범의 사형 거부 (사법)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배와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뒤엔, 다들 잘 알다시피 일본의 군인 지휘관과 정치인 중에 전쟁 범죄자를 가려내어 단죄하는 재판이(극동 국제 군사 재판) 열렸다. 침략 전쟁을 벌이고, 전투 중에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민간인이나 포로를 고문하고 학살한 짓거리들 말이다.

그런데 이때 재판을 진행했던 연합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소련-- 판사들 중에 '라다비노드 팔'이라는 인도인은 유일하게 아싸 행세를 했다.
다른 판사들은 전범들을 처형하는 것에 다 동의했고 총살이냐 교수대냐를 갖고 논쟁하는 정도였던 반면, 저 인도인 판사는 혼자 강경하게 처형을 반대하면서 노골적으로 일본을 실드 쳤다.

그는 단순히 인본주의 박애주의자로서 사형 제도를 반대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족 감정상으로 엄청난 친일 성향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다가 법을 뒤늦게 끼워 맞춰서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 왜 일본에 대해서만 일관성 없이 가혹한 잣대를 적용하느냐, 연합국은 가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줄 아느냐, 너는 왜 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인제 와서 일본 탓을 하느냐" 등..
법리까지 거의 무시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일본을 적극 옹호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저 사람이.. 우리 한국으로 치면 후세 다쓰지--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던 일본 변호사--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극진한 예우와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야스쿠니 신사에 추모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진작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이 자국 인도를 식민지로 부려먹은 영국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저 사람도 '적의 적은 친구' 논리로 일본을 옹호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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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나치 독일이나 히틀러에 대한 국민 정서도 오늘날까지 굉장히 우호적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애 이름까지 ‘아돌프 히틀러’라고 지어서 Adolf Lu Hitler Marak라는 이름의 1958년생 정치인도 있을 정도이다~!
하긴 인도인들은 영국인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지 나치 독일에 의해 수용소 가스실로 끌려갔던 적은 없으니까.. 일면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1 08:35 2021/1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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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성의 독립운동가

(1) 최 재형(1860-1920)
요즘 이 이름은 ‘이 회창’처럼 감사원장을 역임한 대선 후보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한 유명 독립운동가 동명이인도 있었다.
그는 겨우 10대의 나이로 생활고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탈북하듯이 무작정 러시아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꽃제비처럼 쓰러져 굶어 죽을 뻔했는데.. 어느 선한 러시아인 선장 부부가 그를 구해 주고 양자처럼 공부도 시키고, 자기 상선(무역선)에 태워서 선원일도 가르치면서 잘 키워 줬다.

그는 러시아어에 능통해서 한국어와 통역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와 러시아 업주 사이에 중재를 잘 하고 일감 조율을 잘 한 공로로 러시아 황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이걸로도 모자라서 양부모로부터 한 밑천 물려받았는지 군수업을 시작해서 엄청난 부자까지 됐다. 알거지 빈털터리 상태에서 러시아에서 이 정도로 성공했으니 정말 역전의 용사 개룡남이 따로 없는데..

그는 러시아에서 자신 같은 불우한 처지에 놓인 동포들을 돕고 가르치는 일에 애썼으며, 조국 조선이 일제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항일 독립 운동에 자기 자산을 대부분 탕진했다. 그리고 안 중근 의사에게 권총을 사 주고 사격 훈련을 시켰다. 안 의사의 의거의 배후에 이 사람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중근이 아저씨 차 태식이라면, 저 사람은 문 달서 정도 되는 셈..

그는 훗날 1919년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정말 뼛속까지 애국자로 살았지만..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추적을 받기 시작했고 러시아 정부로부터도 밉보이게 되었다. 결국 1920년에는 일본군에게 잡혀서 그대로 총살 당해 순국했다.

(2) 함 태영(1872-1964)
생몰년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승만 할배와 거의 동연배이며 비슷하게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이 사람은 공부 잘하고 똑똑했는지, 20대 초반의 나이로 법관양성소를 수석 졸업하여 판사가 됐다. 갑오개혁으로 인해 등장한 근대식 법조인의 1호 원로 원조인 셈이다.

그래서 고종 황제 시절에 김 홍륙이 저지른 고종· 순종 독살 미수 사건(1898)을 재판했는데.. 먼 훗날, 대한민국에서 심계원(감사원)장과 제3대 부통령도 역임했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에서 모두 고위 공무원을 한 사람이라니,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일제 시대에도 전관예우를 받아서 계속 법조인으로 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거절하고 그 동안은 목사와 교육자로 살았다.

서 재필과 이 승만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그냥 반역자로 몰렸고, 일제 시대 동안엔 미국에 가 있었다. 함 태영은 저런 사람과는 굉장히 대조적이다.

(3) 서 재필(1864-1951)
이 사람도 최 재형 이상으로 근성의 개룡남이었으며, 함 태영 이상으로 머리 좋고 공부를 겁나게 잘했던 것 같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면서 과거에 급제했다. 하지만 개화물 먹은 뒤 갑신정변으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서 완전히 멸문지화를 당했다. 부모와 친형제, 아내까지 몽땅 사약, 자결, 피살 등의 방법으로 죽었다~!! 이때 심지어 어린 자식까지 죽고 말았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 당사자도 멘붕 자살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제 조선의 조 짜만 나와도 학을 떼는 골수 혐한 친일파로 돌아서지 않았을까?
그런데 서 재필은 일본을 거쳐서 미국으로 망명 가서는 빈털터리 상태에서 먹고 살려고 직싸게 고생하며 주경야독을 거듭했다. 물론 도와 주는 선교사 후견인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아직 인종 차별도 있던 살벌한 상태였다.

그는 그 여건에서도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대표 고별 연설을 하는 우등생 모범생이 됐고--(물론, 미국 토박이 동년배 고등학생들보다야 나이가 훨씬 더 많았음..)--, 자국도 아닌 미국에서 의사가 됐다. 친인척을 모두 잃은 알거지 역적 신세로 미국으로 망명 간 지 딱 10년 만에 미국 의사가 된 것이다.

다행히 고국에서도 갑오개혁을 계기로 갑신정변 주동자에 대해서는 사면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구한말 때 잠시 귀국해서 독립 덕후 활동을 하던 당시엔.. 그는 머리로 동포의 자주 독립은 지지하지만 가슴에 조선 자체에 대한 애정은 싹 사라진 상태였다.
조선 땅에서는 완전 코쟁이 미국인 행세를 하면서 "오우 노!! You Koreans들은 이래서 안 돼.. ㅉㅉㅉ" 삿대질을 하고.. 조선 백성들도 그냥 가르치고 계도해야 할 미개인 정도로 생각하면서 자기와 거리를 뒀다고 한다. 뭐, 인간적으로 이해는 된다.

서 재필은 한국이 배출했지만 한국이 제대로 키워 주지 못한.. 참 여러 모로 아까운 인재였다.
그의 유해는 1994년 3월경에 한국으로 돌아왔다(전 명운 의사의 유해와 함께). 공 병우 박사가 다른 관혼상제나 행사에는 좀체 참석을 안 했는데, 이 사람의 유해 봉환식에는 일부러 찾아가 참석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일본인

(1) 소다 가이치(1867-1962)
일본인으로서 기독교 선교사 겸 고아원 원장으로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105인 사건이나 3· 1 운동 때는 조선인들을 편들고 실드 쳤으며, 전후에는 자국을 상대로 전쟁 범죄에 대한 회개와 사죄를 촉구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정신을 잃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조선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났으며, 월남 이 상재 선생으로부터 기독교 전도를 받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호의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후세 다쓰지’ 만만찮은 대한 독립 유공자 일본인으로서 손색이 없으나, 정식으로 인정은 아직 못 받았다.

(2)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조선총독부 산림과에서 근무한 관료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없이 진짜 순수하게 학자 내지 덕후로서 조선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보였던 일본인이었다. <조선의 소반(밥상)>(1929)과 <조선도자명고(도자기 도예 관련)>(1931)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망우리 묘지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은 아니고 두 명 중 하나이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죽을 때의 유언도 “조선 식 장례로 조선 땅에 묻어 달라”였다고 한다.

3. 역관 출신

(1) 김 홍륙 (러시아어)
이 사람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함경도 출신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어부 생활을 한 덕분에 러시아어 회화가 가능했다.
마침 1880년대의 조선 정치판에서는 “친러가 살 길이다” 라인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잘하는 인재를 찾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런 시대를 잘 탄 덕분에 벼락출세길이 열렸으며 고종의 측근으로서 부귀영화를 엄청난 누리게 됐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쥐락펴락 하는 고위 공직자에 걸맞은 인품, 교양, 학식을 갖추지 못한 채 친인척까지 동원해서 부정축재와 학정을 일삼았다. 무능한 암군 소리를 듣는 고종이 보기에도 도가 지나쳤기 때문에 그는 결국 짤렸다(파직).

그런데 김 홍륙은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과 순종 부자를 통째로 암살, 독살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이 마시는 커피에다가 몰래 치사량의 아편을 탔는데..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한 걸 알고 곧바로 뱉었지만, 순종은 그걸 그대로 마셔 버려서 한동안 앓아누우며 고생했다.

이 어설픈 사건은 곧장 배후가 드러났는지, 김 홍륙은 곧바로 교수형을 당했다. 왕을 통째로 암살하려 했으니 이거야말로 10여 년 전 갑신정변 주동자를 능가하는 역적이었으며, 동시대의 중국이었다면 능지형을 당해도 쌌다. 그래도 갑오개혁을 계기로 연좌제가 폐지되고 잔인한 형벌도 금지된 덕분인지, 그는 김 옥균이나 서 재필 같은 급의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훗날 1919년, 고종은 식혜를 마시고 나서는 심한 복통과 각혈을 호소하다가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이거야말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고종의 붕어가 3· 1 운동의 강력한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도 명백한 팩트이고..

(2) 이 하영 (영어)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가난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랬는데 미국인 의료 선교사 알렌과 만나게 되고,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 실력만으로 고종 황제의 개인 통역관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인생은 정말 타이밍인 듯..

그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출세하고 성공하면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줄 잘 서고 기회 잘 잡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결국은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일제로부터 자작 지위도 받고, 조선 귀족으로서 떵떵거리며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더 옛날에 김 대건 신부도 똑똑해서 외국어를 몇 개씩이나 구사했다고 한다. 조선의 관료들도 그 실력이 아까우니 가톨릭 신앙만 버리면 당장 살려 주고 벼슬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남에게 없는 외국어 실력을 갖고도 이렇게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연 저렇게 산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이 하영의 손자 중 하나가 참 군인이라 일컬어지던 이 종찬 장군이다.

4. 이완용보다 더 부자 매국노

구한말에 나라를 팔아넘겨서 그 댓가로 호의호식했던 매국노는.. 그 뒤에 활동했던 생계형 친일파나 부역자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다. 전자가 후자보다 수가 더 적으며, 훨씬 더 부유하게 살았고 죄질도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매국노의 대명사야 뭐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의 교집합 그랜드슬램을 모두 찍은 이 완용이다. 하지만 재산으로만 따지자면 이 완용보다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 더 갑부, 더 억만장자가 된 반역자도 있었다.

  • 민 영휘: 남이섬이 바로 이 사람의 손자인 민 병도의 사유지라 해서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 시절에 그 정도 가격이면 한국 은행의 총재까지 역임했던 능력자 민 병도가 개인 연봉과 퇴직금만으로 마련할 수 있는 부동산이고, 딱히 친일의 댓가· 피 묻은 돈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상태이다. (참고로 국사학자는 이 병도이구나)

  • 윤 덕영: 지금의 수성동 계곡까지 포함해서 서울 옥인동, 인왕산 자락까지 그야말로 초대형 저택을 꾸렸던 미친놈이었다. 재산이 이 완용보다도 몇 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받은 은사금을 밑천으로 해서 각종 부동산이나 사업으로 재산을 더 불린 것도 생각해야 한다. (참고로 축구 선수 골키퍼는 홍 덕영..;;)

Posted by 사무엘

2021/10/29 08:35 2021/10/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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