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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국회 기도문

대한민국이 기도로 시작한 나라라는 걸 정치적으로 좀 우파 성향인 크리스천이라면 어렴풋이 들어서 알 것이다.
본인은 수 년 전, 우리나라 초대 겸 건국 대통령인 이 승만 박사의 옛 저서 Japan Inside Out의 번역판인 <일본 그 가면의 실체>가 국내에 출간됐을 때, 그 책을 통해서 저 기도문을 처음으로 접했다.

잠시 역사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대한민국의 제1대 국회인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첫 제정한 국회이며 1948년 5월 31일 구성되고 1950년 5월 30일까지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을 구성원으로 한 최초의 국회이다. (한국어 위키백과 설명)

그 당시는 우리나라에 국회 의사당 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광화문 근처의 옛 중앙청 홀--김 영삼 정권 때 헐린 그 튼튼한 건물--에서 국회의원들이 모였다.
국회의원들은 정확히 세 주 전에 열린 5· 10 총선거 때 선출된 사람들이다. 남한만 단독으로 총선거를 해 버려서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었다는 우려도 받았으나, 북한은 어차피 그 전에 이미 조선로동당 대회를 자체적으로 치렀으니 통일은 애초에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자, 그래서 1948년 5월 31일 아침 10시경이 되었다.

* 임시 의장 이 승만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 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 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 윤영 의원 기도 (일동 기립)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풀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이겨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 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 기도문은 이 윤영 목사가 원고를 미리 써 와서 읽은 게 아니라는 걸 유의하자.
이 승만 의장이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즉흥으로 요청을 해서 기도가 시작된 것이다. 즉, 이건 애드립이다. 텍스트는 속기사가 받아 적어서 만들어졌다.
이런 건 좀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문헌으로 좀 기재되어 있어야 할 텐데 국회 홈페이지나 위키문헌엔 없나?
<날개셋> 타자연습에는 저 글이 연습글로 수록되어 있다.

뭔가, 아폴로 8호 승무원의 창세기 낭독 사건 같은 걸 보는 느낌이지 않은가.
이런 거 읽을 때만큼은 제발 후천년주의니 정교일치니 그딴 삐딱한 시선은 잠시 집어치우고, 일단 감격하고 감사할 줄 좀 알자.
누군 뭐 국가나 정치와 관련된 성경적 입장을 모르는 줄 아나..?

한쪽에서는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 오늘 같은 날을 있게 하신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속히 오기를 축원하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이러면서 나라를 세웠다.

이 국회를 통해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공표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공휴일에서 빠진 국경일 제헌절이 이 날로 제정된 것이다.

그 반면, 반대편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인 북조선 로동당 2차 대회(1948년 3월 27일~30일)는 분위기가 아마 어땠을까? -_-;;
그때는 워낙 초창기이기 때문에 북한도 내부에 여러 파당이 있었으며 노골적인 김씨 우상화는 지금보다 덜했었다.
하지만 이미 인간성 말살이 시작되고 반대파 '반동'들을 비판하고 숙청하고, “동무들, 인민 해방을 위한 과업을 어서 완수하시오” “소련으로부터 지원 받아서 미 제국주의 남조선 원쑤들 다 쓸어버립시다” 이런 권모술수와 추악한 음모가 진행 중이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북한이 태극기 대신 자체적인 인공기를 제정해서 쓴 게 1948년 초쯤부터이고, 애국가도 자기네 애국가를 1947년 하반기부터 채택했으니, 이미 남북 영구 분단 고착은 그 무렵부터 예고된 귀결이었다. 쟤들은 소련의 군사· 경제력을 등에 업고 시민들은 공산주의 지상락원으로 선동하고, 서로 비판하고 감시하고 못 믿게 만들고 팀웍을 해체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꽉 장악해 갔을 것이다.

난 이걸 생각하면 소름이 확 돋는다.
어디 누가 누굴 보고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더럽게 시작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정체성을 부정하고 앉았는가? 괘씸한 놈들!

난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로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예배드리고 심지어 거리설교까지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던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자유는 정말 넘치도록 잘 보장되어 있었고, 극소수 있었던 부조리와 제약은 종북 불순분자 빨갱이들 빼고는 하나도 걸릴 게 없었다는 생각이 변함없다.

이 승만 전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 대통령으로 충분히 예우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것들은 잘한 것에 비하면 정말 사소하고 불가피하고 최소한 악의는 없었던 것들이다. 특히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친일파 드립은 내 눈에 띄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다 조직적으로 반박해 줄 것이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 주제만으로 또 블로그에다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정말 양심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물어 보고 싶다. 종북 빨갱이들조차 적으로 안 보이고 혁명가 투사로 보일 정도로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그렇게도 엿같고 개판이고 다 갈아엎어야 하고, 국민들에게 해 준 게 없는 나라인가?

Posted by 사무엘

2013/09/29 08:36 2013/09/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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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치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특이한 유튜브 동영상 몇 개를 좀 소개하겠다.

시 - 미친개 리명박패당을 무자비하게 징벌하리라 by 김 영남 (현재 북한 권력의 2인자인 그 사람을 말하는 건지?)

이것은 북한에서 만든 영상물이다.
철덕이라면 수 년 전에 <영상포엠 간이역>이라는 KBS 영상 다큐멘터리를 기억할 텐데,
그런 것과 비슷한 스타일로, 적절한 영상과 BGM을 곁들여 창작시를 낭송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 당시의 남조선 현직 대통령을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로 비방하고 저주하는 내용.

“력사앞에 민족앞에 천추에 용납못할 대죄를 저지른 깡패 리명박역적
...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최고존엄까지 감히 건드리며 도발의 한계선을 넘어섰으니
... 민족도 안중에 없고 인륜도덕도 줴버린 미친개 리명박패당무리들
... 특대형 죄악의 말로가 어떤것인지 지옥의 문어구에서야 알게 될 네놈들
... 썩은 눈깔로라도 제정신 들어 바로 보라
... 네놈들 흔적도 없이 태워 지구밖에 내던지리라”


이 명박 전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대북 정책 하나는 정말 잘 밀어붙였다는 걸 알 수 있는 동영상이다.
이 승만 이래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 저 정도로 북한으로부터 미움받고 능멸당한 사람이 있었을까? ㅋㅋㅋ

뭐 이런 퀄리티의 시가.. 북한에서는 무슨 케이블 방송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KBS뻘 되는 국영 공영 방송에서 작년 봄쯤에 버젓이 방영되었다.
진짜 딱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 같은 느낌이니, 웃으면서 보면 된다.
한국어와 한글을 쓰는 아담의 후손, 단군의 후손이 사상이 이상하게 박히면 저렇게까지 맛탱이가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시가 한두 개가 아니다. -_-;; 도대체 무슨 약을 빨면서 저런 시를 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낭송을 했을까?

쥐명박의 말로를 그린다 by 김 향일

“붓을 벗으로 삼고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골라 화판에 옮기는 나는 미술가
... 이 붓으로 나는 지금 이름조차 역겨운 쥐새끼를 그린다 (!!!)
... 쥐명박, 너는 아무리 뜯어봐야 볼꼴없는 늙다리 생쥐새끼” (대놓고 외모 디스 ㄲㄲㄲㄲㄲㄲ)


병사는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by 송 정우

“못 참아 못 참아 더 이상 못 참아
우리의 최고존엄을 또다시 건드린 리명박역도를 향해
병사는 총구를 겨눈다 병사는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 열두번도 더 뒈졌어야 할 네놈이 더 숨을 자리는 이하늘아래 없다”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리리라 by 류 명호

“명박이 쥐새끼무리들이 한줌도 못되는 그 쥐새끼들이
감히 우리의 신성한 하늘에 삿대질했더니
... 최고사령관 김정은장군의 명령이 내리는 순간 리명박쥐새끼무리들을 씨도 없이 죽탕쳐버리리라”


쟤들이 왜 저렇게 이 명박 전대통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는 간단하다.
김, 노 전대통령과는 달리 이 명박은 “돈 내놔 X끼야!” “드.. 드리겠습니다!”에 휘말리지 않고 북한을 상대로 소신껏 행동했다. 그래서 북에서는 진작부터 온갖 깽판을 부리면서 남조선 대통령 디스질을 하고 천안함도 침몰시키고 연평도 포격을 저질렀다. 딱 그림이 그려지잖아.

거기에다 2012년 4월 태양절(북한 김 일성의 생일) 즈음엔 이 대통령이 북한을 상대로 이런 말까지 했었다.
그렇게 김 일성을 신격화하고 핵무기 미사일 개발하는 비용이면 주민들을 수 년치 먹여 살릴 수 있으니 폐쇄와 고립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길을 가야 하지 않느냐고.
아니, 이 정도면 간접 디스가 아니라 돌직구를 날린 건가? ㅎㅎ 지극히 상식적으로 당연하고 건전한 말을 했을 뿐인데.

그랬더니 북한에서는 자기네 체제의 치부를 정면으로 찌른 이 명박을 부관참시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던 것이다.
저기서 관련 동영상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인민들을 시켜서 온갖 생 X랄을 떨었다. 이 명박 규탄 퍼레이드를 하고, 이 명박 인형을 만들어서 불태우고 돌팔매질을 하고 탱크로 깔아 뭉개고, 사격 훈련 과녁으로 삼고, 축시의 참배를 하고..

그런데 종북 좌좀들은 이것도 다 남북 관계 망쳐 놓은 이명박 새누리당 때문이라고 욕한다. ㅎㅎ
이 명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난 그런 주장에는 공감 못 해 주겠다.

퍼레이드 참여자의 인터뷰를 보면 쥐명박, 쥐새끼, 지능지수가 2MB밖에 안 되는 놈... 별별 욕지거리가 다 나온다. '죽탕치다', '쏠라닥질하다/쏠라닥거리다'라는 말을 난 처음 들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나랏돈을 저런 짓을 하는 데나 쓴 것이다.
그나저나.. 북한 로동자 계급 주민들은 컴퓨터라는 물건을 구경도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메가바이트'라는 정보량 단위의 의미를 알기나 하고서 2MB 드립을 친 걸까?

이 명박 대통령이 북한에서 그림으로 얼마나 능멸을 당했는지를 예를 좀 보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앞의 <쥐명박의 말로를 그린다>를 다시 보시라. 이건 저런 선전용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한 어느 화가가, 체제 충성심 경쟁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기고한 시인 것이다.
사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방부 장관과 합참 의장 같은 우리나라의 고위 군 관계자들도 실명이 거론되면서 북한의 매체에 의해 반통일 반동분자로 디스당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게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걸 유튜브로 편하게 보면서 마음껏 비웃어 줄 수 있는 건, 우리나라가 6·25에서 패배하지 않고 선조들이 나라를 피로써 지켜 낸 덕분임을 알아야겠다.
우리민족끼리 유튜브 채널은 몇 년 전에는 국내 접속이 차단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는 듯. 재미있는 자료가 많다.

여담이지만, 쟤들의 영상 자막에 등장하는 북한 서체는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바탕제목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도 적기는 두음법칙을 적용 안 하고 적어도, 실제로 발음을 할 때는 일일이 '리 명박, 력사'라고 안 하고 그냥 '이 명박, 역사'라고 읽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23 08:31 2013/08/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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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에 대한 팩트들

1. 옛날에는 6· 25사변, 동란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요즘은 그런 단어를 접하기 힘들다. 그리고 옛날에는 적군을 북한군 대신 괴뢰군, 공산군이라고도 많이 불렀다.

2. 6· 25는 선악 구도가 매우 분명한 전쟁이었다. UN이 창립 이래로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한 진영의 편을 들어서 반대편 진영을 군사력으로 퇴치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나라들이 한 작은 나라 편을 들었던 전쟁은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 성경이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 때는 많은 나라들이 똘똘 뭉쳐서 오로지 한 나라를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게 어느 나라인지는 이 자리에서 설명하지 않겠다.

3. 일요일 새벽에 감행된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한민국은 당시 제대로 허를 찔렸다. 모든 것이 열세였고 겨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허무하게 빼앗겼으며, 정부의 대처도 우왕좌왕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개전 직후에 타이밍이 어긋난 대국민 안내방송과 한강 다리 폭파는 정말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4. 그러나 다소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나라에서 정말 혹독하게 군 내부의 숙군 작업을 진행하고 빨치산들을 토벌해 둔 것은, 추후에 더 끔찍한 비극을 예방한 매우 다행스러운 선견지명 조치였다. 국군 내부에서조차 빨갱이가 우글거렸다면 얘들은 전쟁 났을 때 맞서 싸우기는커녕 지시를 어기고 적에게 모조리 항복하거나 이적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그런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선, 사상만 올바른 게 확실하다면 친일 경력 군경이라도 적극 채용해서 안 쓸 수가 없었겠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을 방해하고 원천 봉쇄한 건 북한이며 북한 역시 내부적으로 군경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친일 청산 안 한 건 마찬가지였다.

5. 중공군은 우리나라에 1· 4 후퇴를 안기고 멸공 북진 통일의 절호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 버린 원흉이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열받고 통탄할 일인데, 우리가 당한 악행에 '비해서'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반중 정서는 그만치 크지 않다.
1· 4 후퇴 당시에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한강이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얼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 앞에 피난민들의 발이 묶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 이산가족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6. 1951년 3월경에 남한이 서울을 재탈환한 뒤부터 전쟁은 휴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 38선 부근에서 국지전만 진행되었다. 38선이 지금의 휴전선으로 바뀌면서 영토 자체는 대한민국이 과거보다 더 많이 수복했다. 그러나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졌고 서해 NLL의 군사 긴장도가 더 높아졌다.
 
7. 흔히 '종북 좌파'라고 불리는 정권 시절에 <독도는 우리 땅>과 <6· 25 노래>가 금지곡이 됐다는 말이 떠돈다. 허나 검색을 해 보면 도대체 무슨 금지 조치를 당해서 언제 다시 풀렸는지가 분명치 않고 출처가 불분명하며, 이건 그냥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마치 “이 승만이 시민들한테는 피난 가지 말라고 속이고는 자기 고의로 혼자 튀었다” 같은 급의 거짓 중상모략이 될 수도 있으니 난 그 점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

하지만, 가사가 희석되고 변개된 심 재방 작사의 <신 6· 25 노래>는 정서상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그거야말로 개사의 저의를 의심하는 바이다.

오리지널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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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단조로 시작해서 장조로 끝나는 이 노래이다.
갓 태어난 가난한 신생 독립국이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정말 숨 막히고 섬뜩하고 처절한 가사로 표현했다. 6· 25를 직접 겪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가사이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를 불순한 의도로 변개한 놈들이 있다.
가해자의 정체와 전쟁의 근본 원인을 쏙 감춰서 “원수들이 내 조국을 짓밟던 날”을 “국토가 두동강 나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댄 날”로.. 오로지 결과만 부각되어 보이게 바꾼 新 6·25 노래가 만들어져 한때 보급되었었다.

이건 일본이 자기네 전쟁 범죄는 입 싹 씻고 사과도 제대로 안 하고 그저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로 얼버무리기만 하고, 자기들도 원폭 피해자일 뿐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진짜 똑같다.

잘 들어라. 난 분명하고 단호하게 내 이름과 명예를 걸고 선언한다.
6·25 노래에서 북한의 정체성과 그들의 범죄 행위를 제거하는 것은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묘사를 없애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없애고 동성애를 정죄하는 표현을 희석시키는 식으로 말씀을 변개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난 이런 짓을 조장하는 진영을 매우 싫어한다.
성경이 말하는 근본주의 교리를 믿고 절대적인 선과 악 관념과 내세관을 갖춘 신자라면 종북 좌빨의 영하고는 도저히 같이 상종을 할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3/07/25 19:23 2013/07/2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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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총 4개이다. 그리고 이들은 발견 순서대로 1(1974년)부터 4(1990년)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북한이 남침 땅굴을 판 사상적 근거로는 1971년 9월 25일 “하나의 갱도는 10개의 핵 폭탄보다 더 효과적이다”라는 김 일성의 교시가 제시되곤 한다. 뭘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비밀 스텔스 폐쇄국가인 북한이 땅 속을 두더지처럼 헤집으면서 한반도에 나이더스 캐널 네트워크를 깔아 놓는다면 무섭긴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보 기관들은 북한이 땅굴 발파 기계를 대량 수입했다는 첩보 하나만으로도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종북들의 눈엔 한반도에 땅굴이란 공식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땅굴처럼 생긴 건 다 자연 동굴일 뿐인가 보다. =_=;;
그러나 반대로 '땅굴 덕후' 기질이 있는 안보 연구가들은 우리나라에 이것보다 땅굴이 훨씬 더 많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대외 인지도와 신뢰도는 예수회/프리메이슨 세계 정복설이나 광주 5·18 북한군 개입설 급의 후덜덜한 수준이다. (긍정이나 부정이 아니라, 그냥 흠좀무스럽고 엄청나다는 뜻임.)

그런데, 오늘날 같은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에 '비해서' 남침 땅굴과 관련된 정보는 구글과 네이버를 총동원해도 이상할 정도로 잘 안 찾아진다. 내 느낌으로는 그렇다. 각종 위키나 백과사전에 등재된 설명도 너무 부실하다. 땅굴의 발견 경위, 작전에 참여한 부대의 신상 정보, 발견 과정에서 벌어진 위험 상황 등을 한데 열람하기가 너무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걸까?

단적인 예로, 한국어 위키백과에 '제n땅굴'이라고 땅굴마다 독립된 표제어조차 개설되어 있지 않은 걸 보고 본인은 정말 굉장히 놀랐다. (내가 써 넣을까ㅋㅋㅋ)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6·25 발발일을 기념하여, 평양 시내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글 어스를 이용하여 4개의 땅굴들의 입구를 찾아 보았다.

1. 제3땅굴(1978): 도라산 역과 도라 전망대보다 살짝 북서쪽으로

앞서 글을 쓴 적이 있듯이 이 땅굴은 서울 및 판문점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위협적인 놈이며 길이도 가장 짧다. 그리고 첩보를 바탕으로 의심 지대을 탐사하던 중에 발견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DMZ 내부의 의심 지대 곳곳에다 구멍을 뚫어서 시추봉을 집어넣고 동향을 살폈는데, 한 시추봉이 지하의 발파 충격으로 인해 튀어오르고 물이 솟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이다.

관광객은 도라산 역, 도라 전망대, 통일촌 일대의 안보 관광의 일환으로 이 땅굴을 방문할 수 있다. 출입구는 승강 전동차를 타고 가거나 그냥 도보로 왕래할 수 있는데, 전동차를 타면 요금이 몇천 원 더 비싸진다. 도보 출입구와 전동차 출입구는 서로 다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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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본인이 직접 갔다 와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구글어스에서 위치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방 한계선(좌측 하단의 선)이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땅굴을 이용하면 군사 분계선의 거의  200m 앞까지 지하로 도달한다고 한다.

2. 제2땅굴(1975): 토교 저수지보다 북동쪽으로 수 km

제1과 제2땅굴은 모두 DMZ를 경비하던 병사가 지표면에서의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 신고하여 조기에 발견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창기이다 보니 심도가 이후의 땅굴보다는 얕았던 편. 하지만 2땅굴은 1땅굴에 비해 터널 단면적이 더욱 커지고 대담해져 있었다.

2땅굴이 있는 곳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이다. (우리나라는 DMZ나 민통선 내부도 독립된 행정구역이 할당되어 있다) 이곳은 최근에 경원선 북쪽 끝에 생긴 역의 이름이 '백마고지'일 정도로 6·25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결국 우리나라가 수복해 낸 38선 이북 지역이다. 백마고지 역이라든가 38선 시절에 북한이 사용하던 로동당 청사 정도는 그래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월정리 역과 제2 땅굴까지 가는 건 패키지 관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곳은 본인이 아직 직접 가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땅굴 입구의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토교 저수지'를 먼저 찾은 뒤에 거기서 쭉 올라가 보면, 도로 위에 검은 아스팔트 덧칠이 덕지덕지 되어 있는 이 지역을 찾을 수 있다. 지상 사진은 내가 참조 목적으로 구글링을 통해 임의로 긁어 온 것임. 땅굴 입구 역시 여기 근처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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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땅굴은 탐사와 발견 과정에서 국군 장병의 인명 피해(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비극의 땅굴이기도 하다. 입구에는 희생자 위령탑이 만들어져 있다.

3. 제4땅굴(1990):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이현리

예전의 세 땅굴과는 다소 다른 위치와 시기에 발견되었다. 이로써 강원도 동부도 땅굴 안심 지대가 아님이 입증되었다.
지상의 이상 징후만으로 조기에 발견된 1, 2나, 첩보에 따른 수색에 의해 발견된 3과는 달리, 이 땅굴은 교본대로 평범하게 땅굴 탐사를 하던 중에 산지 아래의 지하 140m의 굉장히 깊은 곳에서 꽤 어렵게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땅굴은 발견 당시 남방 한계선 이남으로 이미 1km가 넘게 진행되어 있던 상태였다.

양구군 이현리를 찾은 뒤 북쪽으로 울창한 숲이 있는 곳으로 가 보면 땅굴이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도로 이름도 '땅굴로'이다. 땅굴 근처에는 '남침 분쇄'라고 적힌 기념탑이 세워진 광장이 있다. 이곳 역시 각종 전망대, 전쟁 기념관 같은 연계 관광 상품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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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땅굴은 길어서 그런지, 땅굴들 중 유일하게 땅굴 내부를 전동차를 타고 구경할 수 있다. (3땅굴은 출입구의 경사로에만 전동차가 다님) 제3궤조 집전식이라거나 한 건 아니고, 전동차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운행 후엔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땅굴은 탐사 과정에서 '헌트'라는 이름의 군견이 희생되었다. 화약 냄새를 맡고 지뢰를 찾도록 훈련받은 독일산 셰퍼드였는데, 물에 잠겨 있던 목함 지뢰를 밟고 그만 장렬히 산화했다. 그 대신, 10여 명의 분대원들이 당했을지도 모를 희생을 몸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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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하는 짐승이라지만 이것은 너무나 숭고하고 값진 희생이었다. 그래서 헌트에게는 소위 계급과 인헌 무공 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땅굴 입구에 '충견지묘'라고 적힌 무덤과 동상이 세워졌다. 누가 일계급 특진을 한다고 소위가 되지는 않으니, 소위는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군견에게 적절한 계급 포상인 것 같다. (고 한 주호 준위에게 소위 계급이 추서되지는 않았잖아?)

4. 제1땅굴(1974):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포춘리

가장 먼저 발견된 제1땅굴을 가장 나중에 소개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건 땅굴들 중 유일하게 입구가 남방 한계선 이북의 DMZ 내부에 있으며,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땅굴인 만큼 얘는 다른 땅굴들보다 훨씬 얕고 작고 소심한 규모이다. 사람이 서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터널 단면적이 작다. 단면이 아랫변이 더 긴 사다리꼴 형태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 봐도, 이 땅굴의 주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이게 유일하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남방 한계선 철책 근처에서 줌을 당겨서 촬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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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본인은 저게 아마 제1 땅굴의 입구가 아닌가 추정한다. 지상 사진과 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땅굴 입구의 위쪽 언덕은 나무가 없이 풀만 나 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주변에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이 될 만한 인공물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시청으로부터는 직선 거리로 약 60km가량 떨어져 있다.

우측 하단에 있는 경계선이 바로 남방 한계선이다. 그리고 땅굴 근처의 서쪽 상단에 있는 수직선은 군사 분계선은 아니며, 아마 GP 초소를 드나드는 길이지 싶다. GP는 아무래도 북한 땅을 내려다봐야 하는 곳이니, 언덕 위의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를 보면, 그저 학교 교과서나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존재에 대해 들었던 남침 땅굴이 더욱 현실성 있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땅굴들도 다 같은 땅굴이 아니라 제각기 특징과 개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본인이 캡처한 4장의 구글어스 사진들은 모두 같은 배율로 맞춰져 있다. 그리고 지도 화면에 남방 한계선이 같이 찍힌 땅굴은 1과 3 이렇게 둘이다. 1은 입구가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5~600m 정도 떨어져 있고, 3은 그야말로 코앞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땅굴을 의식하여 그 주변으로 우리나라의 군사 시설들이 배치되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땅굴 자체는 우리나라의 군사 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애들이 직접 만든 물건이다. 이 정도로 아주 간접적으로만 위치에 대한 힌트와 항공 사진을 노출하는 건, 설령 이북 간첩들이 본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게 아니며 안보면에서 그리 문제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3/06/25 08:29 2013/06/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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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보수, 우파'라고 하면 대체로 이런 성향을 싸잡아 일컫는 게 아닐까 싶다.

  • 역사· 이념적으로는 이 승만· 박 정희 전대통령에 대해 매우 옹호적이다. 이런 진영이 우리나라를 열악한 여건 속에서 비록 일부 과오도 저질렀지만 그건 위태롭던 시대 정황상 불가피한 것들도 많았고 전반적으로는 잘한 게 훨씬 더 많다. 폐허 속에서 경제 부흥과 자유 민주주의를 일군 대한민국 역사와 정체성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정치· 군사 방면으로는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고 그들의 안보 위협을 좌시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종북 좌익들의 선동 때문에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반사 심리로 북한 주민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 도덕· 윤리 측면으로는 동성애 반대, 사형제 찬성, 체벌 옹호 등 말 그대로 과거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존중한다.
  • 경제 쪽에서는 사유 재산과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정부의 규제나 개입이 최소화된), 작은 정부, 선별적 복지를 최대한 민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성장이 최선의 복지이다. 그리고 친기업 정책이 최선의 일자리 창출 방법이다.
  • 종교 쪽은 꼭 일치하라는 법은 없지만 어쨌든 대체로 친기독교 성향이고, 최소한 기독 안티는 아니다.

이런 것들을 보수라고 부른다면 나는 꼴보수이다. 그리고 이걸 우파라고 부른다면 난 극우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회 통념적으로 지극히 건전하고 바람직하며, 성경과 하나님 앞에서 한 치 부끄러울 게 없는 이념을 수꼴이라고 부른다면 난 기꺼이 수꼴이 돼 주겠다.

이런 방면엔 여러 유명 논객들이 있다. 저마다 프로필이 화려하며, 과거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자기 분야에 기여하고 국가를 발전시킨 이력들이 있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 중, 본인은 최근에 정 창인 박사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1. 북한으로 자유를 확산시켜 북한 동포를 억압적 독재 체제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바로 자유 통일입니다.
2.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건국 대통령 이 승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우리가 바른 의사 소통을 원한다면 한글만 쓰기를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우와! 블로그 소개글에 기재된 문장 하나하나가 지극히 공감되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박사님께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곧장 성사됐다. 내가 먼저, 그것도 오프라인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페친 신청을 하는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물다.

사실, 1940년대생에 육사 출신의 유학파 박사 군사 평론가라는 점에서 이분은 지 만원 박사와도 프로필이 비슷하다. 대북 강경론, 이 승만· 박 정희 빠, 한글 전용이라는 지론도 동일하다. 지 박사 역시 필요 이상의 한자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한글 전용을 지지한다는 것을 글로 표명한 바 있다. (왜냐 하면 보수 진영에 잘 알다시피 유명한 한자 혼용론자 논객도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박사는 '보수'가 지니는 여러 속성들 중 저 세가지 세부 분야를 더욱 특화하여 미시는 듯하다. 박 정희의 경제 성장보다 이 승만의 반공 이념 건국을 더 밀고, 특별히 한글 전용도 더 강하게 주장한다는 뜻이다. 본인과는 그런 세부적인 취향까지 일치한다. 그러고 보니 정치· 철학 박사이면 이 승만하고 전공 분야도 아주 비슷하다?

난 사실 거의 15년 가까이 전의 고등학교 시절에 한글 학회 소식지 <한글 새소식>을 통해서 이분에 대해 사실 먼저 알고 있었다. 1999~2000년 사이에 한글 전용을 강한 호소력으로 지지하는 글을 투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글 하나가 아니라 <한글 사랑은 곧 나의 사랑>이라고 아예 시리즈로 아주 길게 글을 연재하셨다. 물론 저 블로그에서도 글을 다시 볼 수 있다. 이제는 문자관뿐만 아니라 다른 이념까지 일치하는 분이 되었으니 더욱 존경스럽게 보일 뿐이다.

지금 정 박사의 블로그는 첫 화면부터 <백년 전쟁>이 거의 성경 변개나 황 우석 논문 조작 급의 저질 퀄리티라는 걸 낱낱이 까발리는 반박 자료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백년 전쟁이란 중세에 영국과 프랑스가 싸우고 잔 다르크가 활약한 그 전쟁이 아니라, 이 승만에 대해 완전히 있지도 않은 사실 왜곡과 날조로 인격 살인과 난도질을 해 놓은 쓰레기 영상물의 이름을 일컫는다. 유튜브를 통해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퍼 날랐다고 한다. 내가 이 승만을 좋아한다는 걸 아니 몇몇 좌파 성향(?)의 지인들이 나보고도 그걸 좀 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앞부분 조금만 봐도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던데, 저분은 실제 미국 유학 생활을 토대로 더욱 조직적으로 <백년 전쟁>을 어디서 내밀지도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반박해 놓았다. 이 사람들이 정말로 켕기는 게 있으니 이런 조잡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을 능멸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한다는 게 느껴진다.

여러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기에 본인 역시 어린 시절엔 민문연 같은 단체가 존재의 의미가 있고 뜻 깊은 일을 한다고 인정을 했었으나.. 이런 걸 보면 정이 완전히 확 떨어지고 만다. 군사 정권 시절 같았으면 모조리 빨갱이로 몰려서 대표가 사형 당했어도 할 말이 없고 자업자득이었을 것이다..

이런 엉터리들이 이 승만 박사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엉터리 영상물을 만들었다. 이 승만 박사가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다. 이 승만 박사의 신발끈을 맬 자격도 없는 놈들이 감히 이 승만 박사에게 막말을 하고, 그것도 있을 수 없는 인격 모독과 인격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저질들이 바로 민족 문제 연구소--그 소장은 임 헌영이며 이사장은 함 세웅이다. 그리고 4.9 평화 재단, 그 이사장은 문 정현이다--의 실체다. (본문 중에서)


(* 본인 주: 사실, 이 승만 박사는 지하가 아니라 지금 하늘에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4 08:27 2013/05/1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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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생이라면 페스카마 호 선상 반란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딱 한 달쯤 전인 1996년 8월경에 벌어진 참극이다.

페스카마 호는 원양어선이었다. 어업, 아니 선원 생활이라는 건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저기서 하는 일은 대규모 육체 노동이 그렇듯이 정교한 팀웍이 요구되며, 누구 한 명이 실수하면 큰 영업 손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원들 조직 내부엔 군대만큼이나 엄한 군기와 규율이 존재해 왔다.

그랬는데, 업무에 미숙하여 폭언과 인격모독--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쓴 표현--을 자주 당하던 조선족 선원들과, 한국인 선장 및 선원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그들은 나중에는, 옛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현혹되어 기업 무너뜨리려 위장 취업한 붉은 노동자들처럼, 업주가 정황상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임금과 복지를 요구하면서 태업과 꾀병을 일삼고, 정상적인 조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아무리 구슬리고 타일러도 말이 안 통하니, 선장은 참다못해 조업을 중단하는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인근의 항구에다 그들을 하선시켜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대로 말이다. 단,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손해들을 걔네들에게 청구하고, 그들을 앞으로 다시는 배를 못 타게 만드는 블랙리스트 낙인까지 업계 전체에다 찍으면서 말이다.

예상 외의 강경한 조치로 인해 돈이고 일자리고 다 잃고 인생이 송두리째 꼬이게 된 그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7명의 한국인 선원을 한 명씩 꾀어내어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하여 바다에 던지고, 자기네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조선족 1명, 그리고 범행을 우연히 목격한 인도네시아 선원 3명까지 추가로 살해했다. 총 11명. 그러나 항해에 필요해서 살려 둔 1등 항해사 한국인 선원이 목숨을 건 기지와 노력을 다한 덕분에 범행은 꼬리가 잡혔다.

선원들을 11명이나 살해하고 배를 탈취한 건, 오늘날의 소말리아 해적들도 차마 못 저지른 매우 극악한 범죄이기에 저 조선족 선원 6명은 전원 사형이 선고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존파가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들을 선량하고 불쌍한 동포라고 적극 변호하여 조직적이고 잔인한 살인극을 우발 범행으로 둔갑시키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키고, 그나마 수괴 1명만 최종적으로 사형 선고된 것조차 그 미만으로 크게 감형시킨 일등공신은 바로..

'독재자의 딸'(?)을 대신하여 지난 18대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뻔했던 유력 대선 후보였다.
덕분에 이때도 피해자는 싹 묻히고, 오히려 살인범 조선족들에게 국민 성금이 가고, 중국 내부에서까지 “한국에서는 중국인이 한국인을 죽여도 무거운 처벌 안 받는구나” 하는 인식이 퍼졌을 정도였다. 훗날 어민을 빙자한 중국 해적들이 한국 공권력을 아주 우습게 여기게 되는 데에도 이 사건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해석하는 건 좀 비약일까?

세상에 조선족 포함 외노자들이 사회적 약자이니 인권 보호하자고 외치는 배부른 사람들치고, 자기 바로 옆집에 외노자가 사는 걸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양심을 걸고 솔직하게 묻고 싶다. (오 원춘이 어디 출신이더라? ㄲㄲㄲ) 세상에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약자를 가장한 악인을 분간할 방법이 없으니 생기는 것이다. 주한 미군이 여성을 성폭행· 살해한 것하고 외노자가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언론에서는 절대로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피해자 인권은 없고 오로지 불쌍한 척 하는 놈, 가해자 인권만 챙기는 세상을 만드는 데만 열심인 사람이 정권을 잡아서 국정을 계속 그런 식으로 운영했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얼마나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막장으로 치달았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진다. 현 대통령이 발언한 취임사에서 언급되었던 상당수의 건전한 문장을 들을 수 없거나 정반대의 논조로 바뀐 채 듣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내 블로그의 옛날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본인은 정작 대선 기간 도중에는 정치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고 삼가 왔다. 오히려 그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71 작업하느라 바빴다.
겨우 신변잡기· 흠집내기 식의 신문 기사 한두 개를 근거로 특정 후보의 호불호 같은 내 정치관을 표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흥분도 좀 가라앉았을 테니, 빼도 박도 못할 검증된 심성, 팩트를 기반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표출해 보련다. 이번 대선 결과는 정말로 축복이고 다행이며, 우리나라가 국운이 최소한 몇 년은 더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여당이 예쁜 구석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라, 야당이 해도 해도 너무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4/27 08:43 2013/04/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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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지 만원 지은 <제주 4·3 반란 사건>을 읽고

난 어린 시절부터 근대로 갈수록 우리나라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임진왜란 이후로 우리 민족이 뭔가를 발명하고 정복하고 성공하고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식의 좋은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백성들은 탐관오리의 학정에 줄곧 고통받았으며 개혁은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기만 했다. 나중에는 좋든 나쁘든 한 나라의 왕비라는 사람이 외국 침입자에게 살해당하는 희대의 치욕을 당하기까지 하고, 궁극적으로 주권이 외세에 완전히 빼앗기는 것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끝난다. 빼앗긴 주권을 훗날 극적으로 되찾기는 하지만 이것도 우리 힘으로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며, 덕분에 이념 대립과 국토 분단, 동족상잔 같은 또 다른 비극이 이어진다.

그래도 알고 보니 우리나라 역사에는 비극만 있는 게 아니었고 지도자 복이 없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하늘이 내려 준 은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지도자가 그 가난하고 열악하고 위험하던 여건 속에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반쪽만이라도 필사적으로 막고 올바른 이념으로 국가를 세웠으며, 미국을 든든한 우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우리 민족은 기적적인 경제 성장까지 이뤘다. 이 정도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가관과 역사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기네 나라의 내력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있는 그대로 가르쳐지고 대대로 전수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는 불행히도 심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공이 과를 객관적으로 월등히 압도하는 지도자가,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후세에 의해 저열한 중상모략과 부관참시를 당하는 꼴을 본인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피아식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민간인 오폭이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로 와전되고, 반역자가 소위 민주화 투사로 둔갑하는 것을 보니, 이건 정치색을 떠나서 정말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과거 일제의 만행에 그렇게도 분노하던 사람들이 북한이 더 최근에 저지른 잔학한 테러, 무력 도발, 민간인 학살을 왜 그토록 쉽게 잊어버리는가?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도덕과 정신을 무참히 파괴하는 사악한 북한의 사회 시스템을 왜 그리도 만만하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인터넷을 하면서 북한 김 정은 정권을 비웃을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이고 무엇 덕분인지 혹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정녕 없는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 국민들이 사상이 글러먹어서 북한 정권을 직접 지지하기 때문이 결코 아닐 것이다. 단지, 가슴으로만 애국을 할 뿐 머리와 시스템적인 안목으로 애국을 못 해서 극소수 불순분자가 벌이는 역사 왜곡과 선전 선동, 시체 장사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을 예전처럼 무력으로는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남한의 정신 기강부터 먼저 무너뜨리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우리 사회의 치부만을 편파적으로 들추고, 정부과 국민 사이에 극심한 불신풍조를 조장한다. 국가에 몸바쳐 충성한 애국자를 수구꼴통으로, 반역자를 민주투사로 바꾸는 역사 왜곡은 덤이다. 이것은 남을 교묘하게 쓰러뜨리려는 모든 '악의 무리'들이 분야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취해 온 전략이다.

제주 4·3 사건도 그런 예에 속한다.
책의 저자는 이 사건을 조명하기 위해, 해방 직후에 한반도가 분단된 과정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아예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공산주의 사상이 처음으로 들어온 배경부터 면밀히 파헤쳤다. 그 내역을 보노라면 한반도가 공산화되느니 차라리 일제 치하에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왕 먹힐 거면 소련이 아니라 일본에게 먹힌 게 오히려 축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국· 일본 등 그 당시에 나름 선진국 축에 들던 나라들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던 소련 발 공산주의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프로파간다는 마치 이단 종교 교리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선동하기 매우 좋은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을 모른 채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하고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임을 이 책은 알려 준다.

한반도 본토에서 떨어져 있던 제주도를 공산주의 체제로 뒤엎으려는 계획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인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한 박 헌영은 6·25를 사주한 것 이상으로 4·3 사건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반역죄를 저질렀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이 좌익과 우익이 모두 연루된 처절한 피의 비극으로 끝난 데는 일차적으로는 '빨갱이'들의 교묘한 위장 전술과 잔학성, 피아식별의 어려움, 그리고 다음으로 상대편 진영에 대한 극심한 불신과 증오, 보복 심리라는 요인이 작용했다.

이 사건은 친북 세력이 일으킨 반란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그 어떤 좌편향 인사라도 감히 북한 쪽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성향의 정권 때 반란의 주동자가 명예가 회복되고 훈장이 추서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건의 피해자인 당시의 제주도민들조차도 이것은 불순분자가 일으킨 무장 반란일 뿐 남북 북단을 반대하는 항쟁(?)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사건이 그렇게 왜곡되어 재해석되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이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책을 왜 현업에 종사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응용수학을 공부한 시스템공학 박사가 썼을까? 이 책을 쓰기 위해 막대한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얼마나 많은 문헌들을 읽고 공부해야 했을까?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분야에도 이런 예가 종종 있어 왔다.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천재인 공 병우 박사는 안과 의사였고, 오늘날 흠정역이라고 성서 공회 성경보다 더 나은 우리말 성경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분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대 교수이다. 머리가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들이 맑은 영혼과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좁은 길을 먼저 간 덕분에, 다른 국민들도 더 똑똑해지고 삶이 더 윤택해져 왔다. 어느 분야든 그 맥이 부디 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적인 국가인 북한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더욱 궁금해졌다.
숙주가 완전히 죽어 버리면 바이러스 자신도 죽는데, 북한은 왜 하필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조차 가지 않은 최악의 길만 골라서 가 있을까? 북한도 처음에는 그래도 여러 당이 존재하고 주민들을 먹여 살릴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주민은커녕 군인들마저 못 먹여 살릴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북한 수뇌부들은 지금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렇게도 남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치색이 굉장히 강한 논객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사람마다 사상적인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분이다. 그러나 저자의 일부 극단적인 평론이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여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친일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프로필을 가진 멀쩡한 군사 평론가를 친일파로 몰고 가는 것은 여론 조작과 선동의 결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의 비열하고 집요한 대남 도발사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나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이것이 정면으로 뒤집히고 반박될 일이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없을 터이며 4·3 사건에 대한 기록도 그러할 것이다. 팩트가 정치색으로 매도되지 않으면 좋겠고, 저자에 대한 편견 하나 때문에 진실까지 가려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만에 하나 이 책이 정치색을 띠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정치색은 무슨 불확실한 음모나 들추고 국가에 대한 피해의식과 불신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감사와 애국심을 북돋우는 건전한 정치색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아직 지 만원 박사 같은 분이 있는 것은 과거에 조선이 러시아 대신 일제에게 먹힌 것보다는 훨씬 더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역사만 제대로 알아도 자부심은 충분히 생기며, 환단고기 같은 위서로 대리 만족을 얻어야 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책이 널리 읽혀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 세대에게 공산주의의 해악이 알려지고 자유와 안보의 소중함이 전파되고, 북한의 대남 도발사가 있는 그대로 폭로되며 내 조국은 이런 위태로운 와중에도 오뚝이처럼 굳게 일어선 나라라는 사실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13 19:26 2013/02/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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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국토 분단과 관련된 몇 가지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1. 우선, 38선과 오늘날의 휴전선은 다르다.
38선은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눠서 지배하기 위해,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지리적인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땅을 수평 분할한 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반면 오늘날 남한과 북한 사이의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휴전선은 6· 25가 휴전/정전으로 끝나면서 나중에 생겼다. 꼬불꼬불한 곡선 형태로 38선 시절에 비해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진 반면, 강원도 쪽 영토는 남한이 훨씬 더 많이 수복하여 속초와 고성이 남한 땅이 되었다.

휴전선은 일명 군사 분계선(MDL)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미터법이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유독 마일이라는 단위로 일컬어지는 흔치 않은 존재이다. (155마일)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2. 흔히 휴전선 하면 이런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최전방 GOP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하는 국군 병사들이 곁에 바싹 붙어서 순찰하고 정비하는 그 철조망은.. 한반도를 딱 반으로 가르는 그 '휴전선'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민족 대표 33인이 서울에서 벌인 3· 1 만세 운동과, 그 후에 유 관순이 음력 3월 1일에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벌인 만세 운동만큼이나 서로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다.

국군 병사들이 지키는 철조망은 휴전선 이남의 '남방 한계선'을 나타내는 철조망이다. 물론 북한 쪽에는 '북방 한계선'이 있다. 이것은 실제 휴전선과는 명목상 2km정도 떨어져 있으나, 그게 칼같이 지켜지는 건 아니어서 2km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남과 북의 군인이 동일한 단일 철조망을 공유하면서 진짜 코앞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피차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진영의 철조망을 갖고서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휴전선을 포함하여 남북 양쪽의 한계선 사이의 공간이 바로 천연 자연의 보고라고 불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비무장지대(DMZ)이다. 금강초롱과 끈끈이주걱까지 서식한다고 하나, 거기는 지뢰도 엄청 많이 묻혀 있는 위험한 지대이다. -_-

동쪽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DMZ는 첩첩산중 지형이 되지만 서쪽 경기도는 DMZ가 평지이다. 판문점이 있는 공동 경비 구역(JSA)은 DMZ에 속하며, 대성동 마을도 이례적으로 JSA 인근 DMZ 내부에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DMZ는 마치 뉴욕 한가운데의 UN 본사처럼 UN의 관할에 있는 땅이니, UN 본사를 판문점으로 옮기겠다는 허 경영의 공약(?)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닌 듯하다. -_-;;

남방 한계선과는 달리, 진짜 오리지널 휴전선(군사 분계선)은 극소수 육로로 월북이나 귀순을 하는 용자 말고는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시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간은 진짜 60여 년 전 휴전 당시에 만들어진 철조망이 시뻘겋게 녹슨 형태로 방치돼 있거나, 아예 애초에 철조망도 없이 낡은 표지판만이 남아서 여기가 군사 분계선임을 나타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컨대 남북의 군인들이 전방에서 매일 철통같이 순찰하고 정비하는 철조망은 휴전선이 아니라 거기에서 파생된 남방 한계선임을 기억하자. DMZ 내부까지 들어가는 병사는 JSA에서 근무하는 권총 든 헌병이라든가 GOP보다도 안의 GP 순찰병 정도밖에 없다.
이런 위험한 곳에까지 들어가는 병사는 체력 좋고 사상이 확실하게 건전한 사람만을 엄격하게 가려서 뽑는다.

3. 끝으로, 민간인은 남방 한계선까지라도 선뜻 갈 수 있는 게 당연히 아니다. 남방 한계선보다 더 수 km 남쪽으로는 드디어 민통선이라고 불리는 민간인 통제선이 있다. 민통선은 무슨 남방 한계선처럼 전구간이 살벌한 철조망이 둘러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동차 도로는 마치 청와대 근처처럼 헌병 초소로 가로막혀 있으며,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민통선 내부 구간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방문 신청을 하고 군인들로부터 신원 확인을 받는 등 여러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도라산, 제진, 월정리 역은 바로 민통선 내부에 있는 철도역이다. 그래도 여기는 DMZ와는 달리, UN 관할이 아닌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건 맞다. 휴전 직후에는 민통선 구간이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무려 10~20km가까이나 떨어져 있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다시 북쪽으로 많이 올라갔다. 통제가 완화되었다는 뜻이다.

※ 별첨

우리나라에는 현충원 같은 묘지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적군 묘지'도 있다. 스펀지 같은 데에 소개될 만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 55에 소재한 적군 묘지에는 6·25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죽은 북한군, 중공군, 무장공비, 테러범들이 묻혀 있다. 찾아와 줄 유족이 있을 리 없는데도!
1968년 김 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사살된 공비들,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 현희의 파트너(자살)까지 다 묻혀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자세한 건 링크 참고.

제아무리 제네바 협약 같은 게 있다지만, 적군에게까지 이런 예를 갖추는 우리나라는 정말 인심 좋은 나라이다.
하긴, 해방 직후에 일본 민간인들이 권력을 잃고 본토로 쫓겨날 때도, 한국인들이 폭동· 약탈 하나 없이 고이 보내 줘서 걔네들이 무척 감탄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데.. (그런데 저 나쁜놈들은 우키시마 호 폭침 사건으로 은혜를 끝까지 원수로 갚았고..)

그런데 더욱 경악할 만한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저 적군들은 그래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나름 자기네 나라로부터 명령을 수행하다가 순직/순국한 호국영령들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군인이 죽으면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유해를 찾아 오는 걸로 익히 유명하며, 한국도 나름 그 원칙을 수행하려 노력 중이다.

허나 북한은 한 번도 우리나라에 자국 병사의 유해 인도를 요청하거나 제의한 적이 없다. 특히 각종 지저분한 테러 공작의 경우, 공작원의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간 그 행위를 자기가 저질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로 안 한다.

인권이고 예우고 뭐시고 없는 북한 정권은, 이용 가치가 끝난 병사나 공작원은 자기네 인력이라도 철저히 무시하고 토사구팽하는가 보다. 남과 북이 사이가 좋던 시절에 판문점을 통해 쌀과 소와 관광객이 오고 가긴 했어도, 북한군 유해가 갔다는 소식은 여러분도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1996년의 강릉 잠수함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때 사살된 북한군의 유해는 북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자기들이 벌인 만행에 대해서 “유감 표명”까지 했을 정도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03 08:18 2013/02/0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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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때문에 달라지는 한국인의 정치 성향 스펙트럼을 분류해 보았다.
기본적으로 5단계인데 좌빨, 수꼴이라는 양 극단을 추가하여 총 7단계가 나왔다.
용어는 내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용어 명명 방식이 안 드는 분들은 그냥 레벨 숫자만 보시라.

## 좌빨: 월북을 하고 싶어 안달 났거나 광화문에서 인공기 흔들고 위수김동 외치고 싶어하는 부류. 법정에서 민족의 태양인 김씨 부자를 찬양한 걸로 매스컴 탄다. 바로 뒤에 나올 1이 본심이 드러난 형태이겠다. 그냥 답이 없는 부류.

1(종북): 이념을 초월하여 누가 봐도 레알 빨갱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등급. 대놓고 김일성교 신자 행세는 안 하지만, 북한 체제를 궤변으로 옹호한다. 북한이 핵 개발한 것은 미국을 견제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씨 부자는 지금까지 북한을 잘 다스려 왔는데 탈북자들이 변절자 죽일놈이며 오로지 미 제국주의만이 나쁜놈이다.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남한 정부인지 남조선인지 헷갈리고 6·25가 누가 먼저 저지른 전쟁인지가 헷갈린다. 지난 대선 때 이 정희에게 표를 주려고(사퇴 안 했다면) 진지하게 생각했다.

2(진보?): 북한 체제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나 그들의 추종 세력이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리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있는 반면, 그게 전적으로 수꼴 기득권층과 안보 장사꾼들과 외세 때문에 안 되고 있는 거라고 여긴다. 우리나라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큰 편이고, 더 나아가 근현대사에도 불만스러운 게 많다. 가령, 친일 얘기만 나오면 분노 게이지 급상승.
북한의 정권과 남한의 군사 독재 정권을 비슷하거나 같은 급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오로지 비판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사 심리로 진보 성향 정권을 아주 좋게 평가한다.

3(중도): 2만치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편파적이지는 않다. 북한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명백하게 군사적인 위협이라는 것과, 햇볕정책이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은 그런 정서를 감안하지 않고 오로지 비현실적인 평화· 공존만 얘기하는 자충수 때문에 노인들로부터 표를 빼앗겼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걸 인정한다고 해서 보수 정권만 좋아하고 진보 정권을 폄하하는 건 아니며, 이들이 균형이 잡히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진보 성향 진영이나 정권도 최소한 악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물리적인 군사 위협 이상으로 남한에 정신적인 위협이라고는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다.

4(보수?): 2~3보다 입장이 더욱 단호해진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모든 일을 망쳐 놓은 주범은 전적으로 북한이다. 종북을 논하지 않고서 친일· 독재를 논할 수는 없다. 통일도 외세 때문이 아니라 쟤들이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어서 못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옛날 같은 남침을 할 수 없으니, 남한을 상대로 종북주의자, 좌파를 심어서 체제를 부정하는 정신적 선동, 방해 공작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고 여긴다.
국가 체제에 피해의식이 없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들은 그래도 저 악독한 북한을 마주한 상황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잘 이뤄 냈으며,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게 훨씬 더 많다. 이 승만· 박 정희에 대한 평가가 후해지고, 민족 문제 연구소를 보는 시선이 불편해진다. 탈북자나 북한 정치범 수용소 인권 문제에 관심이 크게 늘어난다.

5(극우): 4에다가 북한, 심지어 진보 세력들까지 더욱 악하게 보는 음모론이 가미된다. 지금까지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불법으로 북으로 갔으며, 김 대중뿐만 아니라 노 무현까지도 “북한하고만 잘 되면 나머지는 다 깽판 쳐도 괜찮다”고 말한 간첩, 반역자, 빨갱이이다. 그에 반해 박 정희는 재임 중의 경제 개발뿐만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킨 것조차도 결과론적으로 김 일성의 2차 남침을 막은 애국 행위로 정당화된다.
1980년 광주엔 북한 특수부대가 실제로 가서 군경과 시민들을 이간질했으며, 지금도 온라인 여론을 선동하는 간첩이 한 1만 명은 있다. 시스템클럽에서 전하는 내용을 다 받아들이면 이 정도.

## 수꼴: 말이 통하질 않고 그저 단편적인 빨갱이 사고방식밖에 없다.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질 못하거나, 5를 애국이 아닌 자기 영달과 기득권, 감정 표출을 위해서 비상식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드러내는 등, 상태가 막장으로 치달으면 수꼴이다.

각자 자기는 어느 수준 정도인지 생각해 보시길. 성경에는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어떤 권력이든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니 너는 권력에 순종하고 세금이나 잘 내라는 식의 원론적인 권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도랍시고 오로지 3만이 무조건 성경적으로 가장 권장된다거나 바람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영적이지 않은 육신· 정치 문제도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이며, 그건 반역이 아닌 한 그냥 사람마다 양심껏 소신껏 판단하길 바랄 수밖에. (그런데 수꼴은 그냥 과격하기만 한 걸로 끝인 반면, 종북은 아무리 생각해도 반역인 것 같은데? 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3/01/23 08:20 2013/01/2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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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에 전쟁 기념관에서 열린 <북한 실상 바로 알기> 특별 교육 프로그램 시리즈 중 하나에서 강의를 들은 내용을 요약하고 나의 의견을 추가하였다.

0. 들어가는 말

- 전반적으로 신앙 간증 집회 분위기 반, 예비군 가서 듣는 안보 강연 같은 분위기 반이었다.
- 탈북자들이 하나같이 중국을 거쳐서 먼 길을 우회한 끝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당연히... 대놓고 휴전선을 넘어서 남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전투기 째로 휴전선 넘어서 귀순하든가)

1. 북한 내부 사회 구조

- 북한군은 병이 10년이고 간부는 그보다도 더 긴 어마어마한 의무 복무 기간을 자랑하는데, 군생활 동안 일반 정기 휴가가 없다... 캐안습. (포상 휴가만 있음)
- 북한에도 투표가 있긴 하다. 김 일성· 김 정일 얼굴 액자가 놓여 있는 투표소에 들어가는데, 투표 용지에다 투표자의 이름과 생일을 적고 투표를 해야 한다. ㅋㅋㅋㅋㅋㅋ 익명 비밀 투표 따윈 없다.
- 북한에서는 평양 거주 핵심 계층이 아니면, 통행증 없이는 시· 도도 못 드나든다. 비행기, 열차 같은 교통수단은 사실상 고위 간부 가족이나 외국인 전용이다.
- 김 대중· 노 무현 정권이 퍼 줬던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들은 전부 다 핵 실험 자금으로 간 건 아니겠지만, 군대로만 갔지 어쨌든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간 건 절대 아니라고 한다. (북한에는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물자를 시골 구석구석까지 보내 줄 도로 인프라도 없다.)
- 평민들은 총칼과 폭력으로 악랄하게 통제하고, 간부들끼리는 정치 장교를 둬서 서로 밀고와 배신이 가능하게(= 단합을 못 하게) 아주 마귀적인 시스템을 잘 갖춰 놨다고 한다. 북한이 내부 사정이 저렇게 막장인데도 호락호락 혁명이나 봉기가 안 일어나는 이유가 이것 때문임.

2. 북한 사람들의 심리

- 북한 사람들이 김씨 부자를 찬양하거나 애곡하면서 오버액션 하는 건 한 80%는 진심이고, 20%만이 생존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연기를 하는 거라고 한다. 남한이 자기네보다 잘 산다는 정보도 이미 퍼져 있지만, 뼛속까지 세뇌된 거짓 교리의 힘도 만만찮다고 한다.
- 당에서 하도 “미제를 죽입시다 미제는 나의 원쑤”만 세뇌시키니까 한 탈북자가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니에게 “왜 그래요? 미국 사람도 다 나쁘지는 않지 않나요?” 이렇게 진짜 궁금해서 질문을 했는데... 곧바로 귀싸대기가 날아오고 맞아 죽을 뻔 했다고-_-;;. 주체사상 앞에서는 천륜이고 뭐고 없다.
- 그래도 북한도 변화가 아주 없는 건 아니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몰래 한국 가요와 한국 드라마를 접하는 북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안 그래도 국가가 국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도 못하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당보다 나' 생각이 퍼지고 있고,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남한 사정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을 무척 불편하게 여긴다.

3. 대학 교육

- 북한의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진학하는 건 한정돼 있고, 먼저 군대나 직장 근무 후에 재교육 차원에서 들어가는 비중이 높다고 한다.
- 아무나 대학에 못 가고 출신 성분과 계급이 중요하지만, 김일성대 리과대학이나 김책 공업 종합 대학 같은 일부 이공계 대학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역시 공돌이는 어디서나 필요하니까 말이다. -_-;; 북한에서 핵 무기와 미사일을 연구하는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 일단 대학에 가면 개인이 떠안는 등록금 부담은 없지만, 거의 전원 기숙사 생활, 학급제, 모든 수업에 지정 좌석제 때문에 사실상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선이다.
- 학생들은 방학 때는 수시로 군사훈련이나 각종 행사에 동원된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교련 과목 따위와는 스케일이 넘사벽 급. 매스게임이나 90도 다리 꺾기 제식 훈련을 하는 애들도 군인만 있는 게 아니라 상당수가 학생들이라고.
- 학비 부담 없고 개인 자유도 없는 건 무슨 사관학교 같은 컨셉이다..? -_- 그럼 거기는 진짜 사관학교는 어떤지, 그리고 대학원 진학은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졌으나 분위기 상 연사에게 차마 더 물어 보지는 않았다.

4. 결론

- 나라 없는 설움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자유의 소중함도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은 정말 말 그대로 자유가 없는 나라이다(집회와 결사, 사상과 종교, 거주지 이동 등).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빨갱이' 종북주의자들을 보는 탈북자들의 심기도 편할 리가 없다.
- 연사들은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고 들으러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워하면서 관심을 호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북한의 현실을 알고 남에게 전해 주고 경각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 참석자 중에는 내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갖고 질문을 진지하게 하고 오후 강의까지 듣는 것을 대견스럽게 여기는 분이 계셨다.

5. 추가 잡설

- 6· 25뿐만이 아니라, 강화도 조약 이래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수난의 근· 현대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이든 일본이든 맨날 외세를 탓하고 원망만 해서는 아무 발전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과거사를 존재감 없이 묻어 두고만 살 수도 없는 노릇. 가끔 이렇게 옛날에 있었던 끔찍한 비극에 대해서 자극 충전을 받는 날도 필요하다.
- 그런 의미에서…
6· 25 이전부터 북한이 남한의 건국을 방해하고 좌익 불순분자들을 선동하여 온갖 추악한 난동을 저지른 건 싹 외면하고, 6· 25 때 미군이나 국군이 민간인을 일부 오인해서 죽인 것만 들추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불순한 부류들이 성경 변개자만큼이나 더욱 싫어진다. ㅡ,.ㅡ;;

Posted by 사무엘

2012/09/16 19:33 2012/09/1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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