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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기간 정산

1. 폭염과 열대야의 악몽

여름은 참 최악의 계절이다. 끝이 안 보이는 미친 날씨 때문에 차박(내 인생의 큰 낙), 등산(운동..;;), 거리설교(교회), 자전거 출퇴근(회사)은 오래 전부터 몽땅 올스톱 됐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도 끝까지 근성으로 교회에서 매주 거리설교 나가시는 분들은 완전 존경을..)

어떻게 자정~새벽 2시 한밤중에 기온이 이렇게 높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침 8~9시 무렵이면 이미 오후 2~3시처럼 덥다. 그나마 새벽 4~6시 사이가 가장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한 시간대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운 건 시간대를 불문하고 지하철 승강장이 너무 덥다는 것이다. 일단 차를 타고 나면 차 안은 시원하긴 하지만, 지하철을 기다리는 단 몇 분 동안에 이미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여름이 겨울보다 좋은 건 정전기 없고 손이 시렵지 않고(밖에서 놋붉 꺼내서 코딩할 때..), 아침에 피부가 트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전부 단점뿐이다. 다만, 워낙 더워서 그런지 8월부터는 그래도 모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적(바다)· 녹조(강) 소식이 예전만치 심하게 들리지 않았으며 차 송풍기의 냄새가 싹 사라진 건 일말의 다행스러운 점이다.

변변한 태풍 하나 없을 정도로 무더위와 가뭄이 심각했건만, 옛날처럼 언론에서 가뭄이다, 절수, 제한급수 이러면서 호들갑을 안 떤 것부터가 4대강 같은 전국적인 치수 사업을 잘한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여름은 절대로 그냥 못 지나갔을 텐데 말이다.

어디 지형적으로 유속이 느려지는 곳은 여전히 녹조가 생기긴 하지만 그건 4대강 때문이 아니라 4대강 덕분에 그것밖에 안 생긴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물 관리를 안 했으면 뭐 녹조가 없긴 했을 것이다. 그냥 바짝 마르고 쩍쩍 갈라진 강바닥만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화력 발전을 안 한 덕분인지, 고등어를 없애 버린 덕분인지 언제부턴가 미세먼지 얘기도 쏙 들어갔다.

이럴 땐 그래도 산기슭에 있고 중앙 냉방도 나오는 학교 연구실이 시원하고 좋다. 하지만 이제 수업 학점은 다 채웠고 학위논문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당분간 휴학을 하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학교에 차를 가져갈 수 없어서 접근성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다. 등록을 해야만 정기주차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학 기간엔 회사를 더 자주 나가고 특히 이번 방학 동안에는 한마음 미션에서 성경 강의도 뛰느라 학교엔 사실상 더욱 갈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집 근처 카페(낮과 저녁)와 패스트푸드점(심야)에 피서 가서 코딩을 하는 신풍조가 생겼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도 거기가 생각보다 집중 잘 되고 능률이 좋더라. 음료수값 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서해, 동해, 남해를 다 구경하고 오고 싶다. 시원하고 차 세울 수 있는 공터가 넘쳐나는 외지에서 차박을 실컷 하고 싶다. 자동차는 훌륭한 이동식 텐트이다.
가을 이후부터는 등산도 다시 계속할 것이다. 가야 하는 산들이 몇 개 더 남아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여권의 유효기간이 1년 남짓 남는 관계로, 마지막으로 여권에 도장을 하나 더 남기고 올 예정이다. 사증란이 아직 한참 남아 있는데.. -_-;;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나저나 자가용을 굴리고 나니 개인적인 철덕 기질과는 별개로 예전보다 열차를 확실히 덜 타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답사 다녀 왔을 수인선과 서울 9호선 연장 구간, 신분당선 이런 것들도 아직 못 가 봤다.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기도 하다만.

2. 코딩 드립

진실로 수확할 것은 많되 일꾼들이 적도다.
진실로 코딩할 것은 많되 체력과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도다.

코딩하고 싶은데 코딩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가 아니라 철덕은 코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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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야, 이거 재미있어.. 그래, 코딩이!
이전에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던 기능들이 새로 구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재미가 없을 리가 있나.
그래서 내가 코레일에도 안/못 들어가고 이 짓 하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예전에도 말을 한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
프로그램 짜는 거 자체보다도, 그 전에 제한된 시간과 지능 하에서 코딩을 무엇부터 어떻게 할지, 프로그램 짜는 절차를 먼저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굉장히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손발이 덜 고생하기 때문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 (다음 버전)은 대박 예감을 하고 있다.
아, 굳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다거나 수익을 많이 낸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내 기준과 논리 체계 하에서 구조적인 대박이 확실시된다는 뜻이다.

3. 여러가지 사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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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번 시원스레 잘 내린다. 한창 학교에 틀어박혀서 종합 시험(논문 제출 자격 시험) 공부를 하던 때의 풍경이다. 학교에서 외박을 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아직 장마철이어서 종종 비도 오고, 이른 아침엔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았었는데 얼마 못 가 날씨가 불지옥 급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본인이 이 사진을 찍고 있던 동안 여기서 40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중앙 도서관은 지하가 침수돼서 매스컴까지 타고 난리가 났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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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 말고도 '매봉산'이라는 아주 작은 언덕이 있다. 사실 이게 다른 공원들보다 지하철역에서도 더 가까이 있다. 얘는 높이나 면적이 강남구의 매봉-도곡 역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매봉산'과도 비슷해 보인다. 둘 다 산책용 근린 공원이 조성돼 있다.

단, 응암동 매봉산은 도곡동 매봉산에는 없는 시설이 있다. 바로 유류 저장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6년엔 매봉산 기슭에 석유 비축 시설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1978년엔 여기 근처에 난지도가 만들어졌다. 그 시절에 여기는 인서울이 아니며 민간인 거주를 의도하지 않은 완전 외곽 변두리로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난지도도 폐쇄되고 월드컵 경기장이 건설되자 여기는 민간인 친화적인 곳으로 탈바꿈했다. 석유 비축 시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더 쓰이지 않는 동그란 석유 탱크는 녹슨 채로 매봉산 등산객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제는 더 쓰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탱크들은 지금도 여전히 민간 지도의 항공 사진에 표시되어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탱크를 완전히 철거하고 거기 일대를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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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5호선의 종점인 마천 역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쭉 걸어가면 군부대가 나오고 남한산성 방면의 청량산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런데 거기서 북쪽으로 쭉 걸어가면 '천마산'이라고 봉화산보다도 더 아담한 언덕과 함께 근린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산의 건너편은 하남시.
지형이 흥미로운 것 같아서 여기도 한번 원정 산책을 갔다 왔다. 주차 공간도 있어서 접근성이 나쁘지 않았다.

4. 비행기 조종

교회 어르신 중에 공군 관계자가 계셔서..;; 올여름엔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 조종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한번 해 봤다.
씨러스 SR22 경비행기로 사천 공항에서 청주 국제공항 중간 기착 후, 김포 국제공항까지 날아가 봤다. 물론 시뮬레이터로. (세종 대학교 모의 비행 훈련 센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공 시뮬 게임을 해 본 거라고는 초딩 시절에 1990년도 LHX (공격 헬기)가 전부였다. 그 흔한 플심 같은 것도 전혀 안 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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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승 경비행기인지라 순항 속도 자체는 KTX와 별로 차이가 안 났지만 (1) 중간 정차 안 하고 (2) 지형 안 타고 직선으로 쭉 가고 (3) 가감속이 훨씬 더 민첩하기 때문에 정말 금방 이동했다. 우리나라가 땅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 지금 같은 경제력과 구매력으로 일본처럼 인구 1억에 국토 길이가 1천 km는 돼야 그나마 비행기가 국내선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 전동차의 마스콘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당겨서 가속을 하고 앞으로 밀어서 감속을 한다. 이게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 역할을 한다.
철도 차량과는 달리, 비행기의 엔진(스로틀) 레버는 앞으로 밀어서 출력을 올린다. 특별히 글라이더처럼 활강을 하는 게 아니라면 엔진은 자동차로 치면 오르막을 오를 때처럼 늘 켜져 있으며, 마치 송풍기 풍량을 조절하듯이 출력 강약을 조절할 뿐이다. 변속이나 엔진 브레이크(연료 공급이 아니라 바퀴 회전 관성 의해 엔진도 역으로 회전수가 덩달아 유지되는 것) 같은 건 없다.

비행기는 가만히 놔두면 내 예상 이상으로 뒤집히거나 자세가 불안정해지기가 쉬운가 보다. 시뮬레이터만으로도 그게 느껴졌다. 조종간 잡는 거, 그리고 착륙할 때 고도와 속도, 위치 잡는 거 꽤 힘들었다. 물론 착륙 테크닉은 기계화 자동화도 돼 있을 것이고, 자동차로 치면 마치 주차 테크닉처럼 많이 해서 경험이 쌓이면 실력이 금방 늘겠지만 아무래도 속도감이 잘 안 느껴지는 공간에서 기체의 위치를 원하는 대로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 안 움직인다 싶은데 좀 한눈 팔다 다시 아래를 보면 풍경이 싹 바뀌어 있다. 비행기 타는 경험이 그렇다.
시뮬레이터의 가격만 해도 시뮬 대상인 비행기 자체의 가격과 비슷한 어마어마한 고가이다. 단지, 한번 도입한 뒤에 유지비가 비행기 실물을 띄우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더 저렴할 뿐이다.

조종간, 브레이크, 플랩, 스로틀 레버 정도를 만져 봤고 나머지 계기는 정신이 없어서 머리에 경험을 못 담았다.
가이드를 해 주신 교관님은 밑에 지형을 척 보더니 여기는 어디쯤이고 저 멀리 있는 산은 무슨 산이고.. 남한 땅 지형 지리 정보가 머리에 다 입력돼 있으신 듯했다.
그야말로 자기 손바닥 안처럼 다 파악하고 계셨다. 20년 가까이를 전투기 몰고 전국의 하늘을 날아다니신 짬이 어디 간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 얘기· 군사 안보 얘기, 교회 얘기 등등도 많이 나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1 08:32 2016/09/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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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형차가 대형차를 추돌

요즘 자동차들은 안전 장치들이 워낙 발달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폐차 수준으로 박살 날 충돌· 전복 등의 사고가 나도, 탑승자는 벨트만 잘 매고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경상 수준을 넘지 않고 잘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런 발전하는 기술에도 불구하고, 소형차가 대형차를 들이받으면 여전히 십중팔구 중상· 사망 급의 사고가 난다. 당연히 소형차에서.

물론 차량의 덩치와 무게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 차체의 높이 차이로 인해 소형차가 범퍼와 엔진룸부터 충격을 받는 게 아니라, 앞유리와 A필러를 직통으로 거쳐(;;) 캐빈(탑승 공간)이 곧바로 박살나기 때문인 게 무척 크게 작용한다.
영화 <테이큰>에서도 공사장 차량 추격씬에서 이게 잘 묘사돼 있다. 브라이언을 쫓던 마지막 악당이 불도저의 블레이드 부분과 정면충돌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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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앞이 꽉 막힌 담벼락을 꼬라박는 것보다도 이런 유형이 더 치명적인 사고인 것이다. 저 악당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로등도 안 켜진 깜깜한 길가에 그것도 커브길에 불법주차된 대형 트럭을 뒤늦게 발견하고 들이받는 바람에 승용차 운전자가 골로 간 사고 사례가 종종 전해지곤 한다. 링크를 거는 이 사고에서도 탑승자 2명이 모두 숨졌다.

이런 유형의 사고의 극단적인 사례로는 지난 2014년 10월 28일, 호남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있다. 군 입대를 하는 친구를 배웅하러 애들이 5명이서 승용차를 렌트해서 달렸는데.. 과속 상태로 커브를 틀다가 균형을 잃고 갓길에 서 있던 4.5톤 트럭(도로 보수 차량) 후미를 들이받았다.
차가 트럭의 밑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딱딱한 트럭 짐받이가 딱 저렇게 캐빈을 강타했으며, 이 때문에 차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그리고 입대 당사자를 포함한 탑승자 5명은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당사자의 지인뿐만 아니라 여친까지 다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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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동차 회사들은 범퍼뿐만 아니라 앞유리와 A필러(앞유리+앞좌석 사이의 지지대)도 최대한 튼튼하게 만든다.
먼저 앞유리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리 충격을 받아도 금만 쩍쩍 갈 뿐 '와장창' 깨지지 않게 유리에다 온갖 첨가물을 섞어서 특수한 방법으로 제조된다.

다음으로 A필러도 단순한 금속 기둥이 아니며, 여기에도 자동차 회사들의 기술이 집약된다. 그래야 (1) 차량이 전복되거나 (2) 차량 위로 위험물이 떨어지거나, (3) 저렇게 차체가 높은 장애물과 충돌하더라도 차의 형체가 '최대한' 유지되고 캐빈 내부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1)과 (3)은 그렇다 치더라도 (2)도 적재 불량 화물차에서 뭔가가 떨어질 때 내지, 도로에 떨어진 이물질을 앞차가 밟으면서 튕겨 올라가서 뒷차를 강타할 때처럼 생각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돌발상황이다.
물론 이렇게 하고도 탑승자가 사망 혹은 중상으로 귀결되기 십상이지만 이것도 그나마 옛날 자동차보다는 생명을 많이 구한 결과이다.

평상시에야 A필러는 차량이 모퉁이에서 회전할 때 운전자에게 측면 사각지대를 만들어서 회전축 안에 있는 장애물이나 사람을 못 보고 부딪치게 만드는 위험 요소이다. 그러나 이게 사고 시에는 자동차 내부의 탑승 공간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꽤 중요한 안전 장치 역할을 한다. 이렇듯, <테이큰> 영화 한 장면으로부터도 자동차 안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2. 대형차가 소형차를 추돌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대형차가 소형차의 뒤를 추돌하면..
이것도 역시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하다. 소형차는 다 박살이 날 것이다. 특히 대형차가 엄청난 운동량을 이기지 못해 소형차를 깔고 올라타는 지경에 도달하면 제아무리 단단하게 만든 A필러라 해도 다 짓이겨질 것이고 탑승자는 전원 사망 확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9년 4월 23일의 서울 수유동 대형 관광버스 교통사고이다. 관광버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모두 하차시켜 주고 공차 회송 상태였다. 버스 기사는 모든 업무를 마쳤으며, 이제 차를 회사에다 세워 놓고 퇴근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이때 날벼락이 떨어졌다. 평소에도 정비 불량으로 인해 맛이 갈 기미를 보이던 브레이크가 4· 19 묘지 인근의 어느 내리막길에서 드디어 말을 전혀 듣지 않기 시작했다.

급발진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내리막이니 차량은 점점 속도가 붙었으며, 가로수와 승용차 몇 대를 들이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 한 대를 추돌한 걸로도 모자라 그 차를 밑에 깔고서 160미터 가까이를 밀고 갔으며, 더 앞의 승용차 7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전신주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승객이 탄 것도 아니고 빈 버스인데도 속도가 붙자 엄청난 파괴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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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게 깔린 채로 끌려간 승용차에는 계모임을 마치고 찻집으로 이동하던 학교 교직원들이 하필 7명이나 구겨서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차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그 어떤 알량한 안전장치라도 이 정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이렇게 끝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투신 자살하는 사람한테 깔려 죽는 것만큼이나 정말 운 한번 더럽게 없다.
듣기로는 2차를 가지 않고 먼저 귀가한 계 멤버 딱 한 명만 화를 피해서 살아 남았다고 전해진다. =_=;;;

이 사고로 버스 운전사, 버스 회사 사장, 버스의 정비 업체까지 줄줄이 경찰에 소환되었다. 너무 큰 피해가 났기 때문에 버스 운전사는 징역 2년 6월형을 받았다. (참고로 2010년 7월 3일, 인천대교에서 고장난 마티즈 CVT를 피하려다가 교각 아래로 추락해서 14명의 사망자를 낸 공항 리무진 운전자는 금고 3년형이 선고됐다. 1차 원인 제공자인 김여사는 금고 1년.) 그만큼 무거운 대형차 운전자는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고 또 안타까운 사고가 더 있었다. 2013년 12월 14일,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방면에서는 승용차 간의 접촉사고 때문에 후속 차량들의 정체가 시작됐는데, 이걸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또 4중 추돌 사고가 났다.
문제른 부딪친 차량들의 배열 순서였다. 맨 앞은 그랜저였고 그 뒤는 25톤 탱크로리. 그 뒤엔 벽돌을 가득 실은 25톤 화물차였는데.. 양 25톤짜리 대형차의 사이에는 승용차가 한 대 있었다.

25톤 화물차는 운동량을 주체하지 못하여 앞의 승용차를 그대로 짓눌렀고, 승용차는 양 대형차 사이에서 완전히 으스러졌다. 승용차에는 두 집에서 제각기 남편만 빼고 아내와 자녀 두 명이 타서 총 6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모두 끔살 당했다. 두 집의 가장들은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모두 잃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런 사고는 올해에도 계속됐다. 지난 5월 16일엔 남해 고속도로의 터널에서 대열 운행을 하던 관광버스들이 정체 구간 급정거로 인한 9중 연쇄 추돌 사고를 냈는데, 전후의 관광버스 사이에 끼여 있던 모닝 승용차가 다 짜부러지는 바람에 거기서만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7월 17일엔 영동 고속도로 봉평 터널 인근에서 관광버스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앞차를 네댓 댄가 연달아 들이받고 특히 바로 앞의 K5 승용차를 완전히 짓뭉갰다.

영동 고속도로의 사고는 대열 운행도 없었고 브레이크 고장도 아니었고 순수하게 운전 기사가 졸다가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낸 것이었다. 앞차엔 강원도로 피서 여행을 다녀 오던 20대 여대생 4명이 차를 꽉 채워 타고 있었는데 모두 남해 고속도로 사고처럼 비명 한 마디 못 지르고 전원 즉사했다. 운전자 남성 한 명만 중상.
이 글에서는 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이들 역시 잔해의 모습이 위에서 소개한 것들 만만찮게 처참했다. 소형차는 대형차의 곁을 달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럼, 이런 충돌 사고가 났을 때 꼭 대형차의 탑승자만 생존에 무조건 유리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2013년 8월 7일, 중부 고속도로에서는 운전 중 시비가 붙어서 한 승용차 운전자가 고속도로 위에서 차를 고의로 급정거하는 미친 짓을 했다. 시비가 붙은 차와 추가로 뒷차 3대까지는 급정거를 했지만, 다섯 번째로 달려오던 5톤 트럭은 제대로 정지하지 못하고 앞차를 모조리 들이받았다.

그런데 이 사고에서는 가장 큰 차를 몰고 가장 뒤에서 추돌한 트럭 운전자 한 명만 숨졌다. 트럭은 승용차와는 달리 전방에 엔진룸이 없어서 전방을 들이받으면 운전석이 곧장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고와 비극을 야기한 고의 급정거 운전자는 징역 7년 구형에 3년 6월형이 확정되는 엄벌을 받았다. 앞서 거론된 버스들의 사고보다 사상자 수는 적지만 죄질이 워낙 나쁘기 때문이다. 부디 길을 틀어막고 만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보복· 위협운전이 근절되기를.

3. 음주운전자가 낸 후방 추돌 교통사고

지금까지 차량 대파와 인명 사고를 야기하는 교통사고를 후방 추돌 위주로 살펴봤다.
후방 추돌은 정면 충돌보다야 충격량이 작을지 모르지만, 승용차의 경우 연료 탱크가 뒤에 있기 때문에 이걸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서 더욱 위험하다.

아무리 천천히 가더라도 멀쩡히 잘 가고 있는 앞차를 뒷차가 대놓고 들이받는 경우는 잘 없다. 시내 도로 교차로라면 신호 대기 중인 차를 뒤늦게 발견해서이고,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는 갑자기 정체 구간 또는 사고 현장이 나타난 걸 대처를 못 해서 사고가 나는 편이다. 대처를 못 하는 원인으로는 (1) 브레이크 고장 같은 대형차의 기술적인 사정뿐만 아니라 (2) 무리한 떼빙(좁은 간격으로 대열 운전), (3) 과로로 인한 졸음 운전이 있다.

이것보다 좀 더 어처구니없는 원인은 (4) 운전 중 스마트폰/DMB 조작하다 전방 주시 태만이 있다. 제일 죄질이 나쁜 건 두 말할 나위 없이 (5) 음주운전 되시겠다. 그래도 음주운전은 개인의 승용차 레벨에서 발생하지, 트럭 운전이 생계인 대형차 기사가 대놓고 겁대가리 상실하고 음주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지난 6월엔 이 지선 씨가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안면이 다 타고 일그러지는 중화상을 그 쌩고생을 해서 치료하고 피부 이식을 해서 복원한 게 겨우 저 모양이다. 16년 전인 2000년 7월경에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그분의 인생이 저렇게 달라진 것이었다. 그나마 얼굴이 그렇게 다 불타는 와중에 렌즈까지 끼고 있던 눈은 다치지 않아서 시력을 전혀 잃지 않은 건 기적적인 천만다행이었다. (그분 수기에 언급돼 있음)

2012년 6월 11일 새벽, 인천 공항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앞에 멀쩡히 가던 승용차를 거의 전속력으로 추돌했다. 이 때문에 피해 차량에서는 불이 났으며, 공항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가장을 포함해 일가족 4명이 기절한 채로 불타는 차에서 모두 몰살을 당했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게 없나 모르겠다. 2015년 2월 3일 새벽에는 고속도로가 아닌 구미 시내에서 만취 음주운전자가 외제차로 앞의 경차를 추돌했다. 아까와 똑같이 경차에서는 불이 났고, 운전자인 학원 선생과 여고생 3명,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다. 이것도 시속 100이 훨씬 넘게 밟으면서 급발진 급의 추돌 사고를 낸 것이니 차와 탑승자가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10일 밤, 인천 청라 국제도시에서는 또 음주운전자가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들이받아서 이번엔 불은 안 났지만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전~부 후방 추돌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탑승자 전원이 몰살이지만 가해자는 경상에 그치고 살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더욱 분통 터진다.

음주운전자가 추돌 사고를 낼 거면 아까처럼 세워져 있는 대형차나 들이받아서 자기 혼자나 죽을 것이지, 꼭 왜 저런 식으로 남까지 죽이는 사고를 내나 모르겠다. 글쎄, 가해자도 죽은 사고도 있긴 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따로 음주 측정을 안 해서 안 알려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음주운전자가 가로수를 들이받거나 고가에서 추락해서 그나마 민폐는 덜 끼치고 자기 혼자만 다친 사고 사례도 있긴 하다.

2014년 7월 20일 새벽에 대전에서는 (1) 한 음주운전자가 신호 대기 정차 중에 퍼질러 자 버려서 파란불이 됐는데도 출발 안 함. (2) 그 차량을 다른 음주운전자가 추돌해서 사고를 냈고, 덕분에 경찰 조사 과정에서 (3) 두 운전자가 모두 혈중 알코올 농도 0.1% 초과급의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둘 다 사이좋게 면허 취소됨.. 요렇게 음주운전자끼리 병맛스러운 팀킬을 벌인 일이 있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한 번 단속으로 일석이조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2016년 1월 26일, 청주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던 한 음주운전자가 경찰서의 순찰차 주차 구역에다가 제 발로 차를 몰고 와서 차를 당당하게 세우는 바람에 곧바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거기는 일반 주차 구역이 아니에요. 아저씨, 차 빼 주세요. → 어라? 아저씨 좀 술냄새가 심하게 나네요?"처럼 된 셈. 이건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귀여운 사례이다.
아무튼 술 마신 뒤에는 제발 운전대 좀 잡지 말자.

* 여담

교통사고에 대해서만 글을 잔뜩 썼다가 또 얘기가 부득이하게 옆길로 새게 됐다만.. 말이 나왔으니 이 지선 씨와 관련된 여담도 좀 늘어놓자면 이렇다.

- 정확한 시기와 발표 주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분의 개인 홈페이지는 2000년대 중반경에 어디선가 조사한 국내 개인 홈페이지들 중에 전체 트래픽/방문자수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참고로 1등은..? 시스템 클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_=;; )

- 교통사고 화재 현장의 화상뿐만 아니라 화공 약품 테러로 인한 화상도 끔찍한 사고 내지 사건이다. 앞서 이 지선 씨는 그래도 눈은 멀쩡히 남았지만, 1999년 5월 20일..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의 피해자인 김 태완 군은 전신 3도 화상에다가 실명까지 한 채로 7주간을 깜깜한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패혈증으로 숨졌다. 도대체 어떤 놈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못한 채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 2009년에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회사에 체납 임금 청구 소송을 벌였는데 악덕 업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한 모 여직원도.. 지금은 그나마 많이 회복됐고 이 지선 씨와 마찬가지로 사회 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마치 과거의 지존파 피해 여성처럼 가명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건 실명은 아니다. 어쩌다가 저런 블랙 기업에서 첫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이런 불행을 겪었는지가 안타깝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29 08:21 2016/08/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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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영화)

영화 인천 상륙 작전, 혹은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
일부러 날짜를 맞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6· 25 전쟁의 휴전이 타결된 날인 7월 27일에 개봉했다.
보는 내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사상이 본인의 내면과 잘 통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반대로 좌빨 매체에서 별 이유 같지도 않은 궤변 늘어놓으면서 이 영화를 왜 저렇게 못 물어뜯어서 야단인지가 적극 이해되었다. 북괴 치하에서 벌어지던 잔학한 공포통치, 세뇌, 인민재판, 숙청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그려 놨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유는 막론하고 전쟁은 그저 참혹한 거고(그 전쟁을 먼저 일으킨 쪽이 누군데?), 공산당도 알고 보면 사실 착한놈이고 미군 국군도 민간인 왕창 학살했어(민간인 위장해서 치사하고 비열하게 도발한 놈 얘기는 절~대로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은 남북 모두 책임이네 식의 메시지를 본인은 거의 부모 모독 패드립과 같은 급으로 정말 온몸으로 혐오한다. 저건 정말 천하에 듣기 싫은 불순하고 사악하고 마귀적인 사상이다.

이 영화는 요즘 각종 다른 매체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미 다 검증돼 있는 선악 구도를 괜히 비비 꼬고 비틀고 재해석(?)하고 절대악과 필요악을 교란하는 식의 전개가 없다. 그래서 참 건전하다.
스토리의 표현이나 묘사가 옛날 영화처럼 좀 진부한 건 일단 사상이 건전한 것에 비해서야 그리 큰 흠이 아니라고 본다.

특공대가 기차를 타고 적진으로 침투하는 건 김 재현 기관사(미군 딘 소장 구출 작전)의 이야기를 다룬 <미카 129>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1950년 7월에 있었던 일이니 시기적으로 인천 상륙 작전보다 2개월 전, 이제 막 대전을 빼앗겼던 시절의 얘기다. 그 시절엔 열차 객차들이 다들 저렇게 목재에 직각 의자로 돼 있었나 보다.

그리고 대원들이 흩어지기 직전에 서로 손목시계의 시각을 동기화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래야 시간 약속에 맞춰 정확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그 정도로 소형화된 손목시계는 굉장한 사치 고가품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해방 직후에 소련군이 들어와서는 민간인에게 행패와 약탈을 일삼았으며, 특별히 약탈한 손목시계들을 한 팔목에다 주렁주렁 차고 다녔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로부터 20여 년 전에 윤 봉길 의사가 김 구와 교환한 시계는 손목시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회중시계였다는 점도 같이 생각해 보자.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 영화에서 맥아더 장군 역을 맡은 배우는 잘 알다시피 그 이름도 유명한 리암 니슨이다. 테이큰에서 내가 완전 반해 버린 그 아저씨가 '군산, 원산, 인천' 등 한국의 지명을 발음하면서 맥아더 연기를 하다니 무진장 기쁘고 고맙다. 잘생겼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호의적이고 개인적인 품행과 사상이 건전한 배우인 것 같아 더욱 믿음직스럽고 호감이 간다. 아주 건전하고 뜻깊은 역사물 영화를 만든대서 여느 할리우드 영화를 찍을 때보다 훨씬 더 저렴한 출연료만 받고 선뜻 출연해 줬다고 한다.

이 사람이 전화통 붙들고 김 일성과 "난 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전쟁을 멈추고 철수하지 않으면 난 군대를 보내서 널 찾아내고 널 죽여 버릴 것이다." / "풋~ 잘해 보라우" 설마 이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영화엔 더 감격스러운 장면이 있었다.
팔미도 등대가 점등되었을 때, 그리고 선발대로부터 조명탄이 성공적으로 발사됐을 때.. 어둠 속에서 '빛'이 쫙~ 비친다. 맥아더도 이걸 보고는 감격한다. 작전 성공을 이렇게 묘사한 게 단순히 적진을 다 때리부순 장면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었다. 성경에서도 빛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심상이고 어둠은 절대적으로 부정적이고 나쁜 심상이다.

  • 어머니를 지켜 주고 싶어 군대에 자원한 이 정재 vs 이념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 범수
  • 부하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이 정재 vs 홧김에 부하를 쏴 죽이는 이 범수
  • 대통령 하고 싶어서 인천 상륙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은 반대 세력 vs 나라를 지킬 총과 탄약을 더 달라는 소년병의 군인정신에 감동해 반드시 이 전쟁을 이기겠다고 다짐한 군인 맥아더
  • 인민군 내부에서조차 림 계진과 박 남철은 서로 감시 vs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신뢰하는 맥아더와 장 학수

어느 게 선이고 어느 게 악인지, 어느 게 빛이고 어느 게 어둠인지를 이 영화는 단순하게 잘 대조해서 보여 줬다.
또한 러시아어를 읊조리는 북한군 애들은 "신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보이기나 해?" 이러지만 맥아더 포함 미군 장성들은 수시로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러는 것 역시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간호사로 출연한 진 세연은 여기서도 항거 대상이 일제에서 북괴로 바뀌었을 뿐, 각시탈의 오목단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 같다.

결말부로 가면 드디어 인천 시내에 시뻘건 저주받을 선전 구호들이 철거되고 시내가 태극기 물결로 바뀐다. 이건 그야말로 8· 15 해방과 동급의 기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걸 아미타불로 바꾼 원흉이 중공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미제 분단 식민지로 들어갈 게 아니라 김 구와 함께 김 일성 밑에서 무혈 통일 이뤄서 우리 민족끼리 행복하게 살았어야 했다" 요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인천 상륙 작전>은 감동적이면 감동적이지 불편할 내용은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괜히 표현이 식상하고 진부하네 이런 거 불평하기에 앞서 난 이런 역사를 다룬 귀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일단 고맙고 기쁘다.

이 영화에서는 일명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킨 소년병" 씬이 흑백 과거 회상 형태로 잠깐 들어갔다. 이건 문헌에 따라서 날짜와 대사가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한데.. 6월 27일 or 29일, 서울 영등포 or 흑석동.. 어쨌든 개전 초기 서울을 빼앗기기 직전 또는 직후에 서울 한강 이남 전선을 시찰하던 맥아더 장군이 통역 장교를 대동하여 어느 앳된 병사와 실제로 나눈 대화이다.

"후퇴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싸울 것입니다."
"원하는 건.. 딴 건 필요 없고 단지 총과 실탄을 좀 더 주십시오."


본인은 저 일화를 먼 옛날 시스템클럽 글을 통해서 진작부터 접했었다. 거기 운영자분이 맥아더를 굉장히 좋아하시기 때문에.

훗날 박 정희 대통령이 무슨 미국 무기 회사 임원과 청와대에서 몰래 거래를 하면서 "님이 내게 준 개인 비자금 100만 달러를 도로 님에게 줄 테니 이 가격만치 M16 소총을 더 주시오" 뭐 이랬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그건 솔직히 출처와 정확도를 확신을 못 하겠다. 그것과는 달리 맥아더 + 소년병 일화는 국내외 여러 군 관계자의 회고록에도 수록돼 있으며, 주작이 절대로 아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자. 비록 당장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모한 짓으로 보여도, 계속 항쟁과 의거가 벌어지니까 외국에서도 "조선은 정말로 일제와 한 뿌리가 아니며 독립을 원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됐다. 윤 봉길 의사가 폭탄 투척을 했을 때 장 제스가 얼마나 감탄했던가?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니 1940년대의 국제 여론은 구한말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일제를 쫓아낸 뒤 조선을 독립시키자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조선은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일제 식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로 선언에서 독립 보장이 명시되는 감격의 성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그것처럼.. 당장 자국민부터가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확연한 의지를 드러내니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맥아더 장군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역사를 바꾸게 됐다.

개전 초기에 국군은 전열이 무너지고 지휘 체계가 황폐화되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허둥대다 1개월쯤 뒤부터는 희대의 막장 조치인 즉결처분조차 시행할 정도로 암울한 지경에 도달했다. (군기가 얼마나 개판이었으면 상관의 '까라면 까' 명령에 불응하는 부하를 현장에서 재판 없이 바로 사살 허용..;; 부하란 굳이 병뿐만 아니라 초급 장교들도 포함이다. license to kill -_-)
게다가 맥아더는 채 병덕 같은 남한의 X맨 급인 무능한 수뇌부에 이골이 나 있기도 했다. (유 재흥은 전투 패배 후에 밴 플리트 장군에게 까였고, 채 병덕은 개전 초기부터 맥아더에게..)

그랬는데 그 타이밍에 마침 저런 모범 병사를 만난 것이다. 맥아더가 포레스트 검프에서 "이런 씨발. 내가 지금까지 들은 가장 훌륭한 대답이다. 귀관은 IQ가 한 160쯤 되는 천재임이 틀림없다!" 거의 이런 급으로 감탄했을지도 모르겠다.

66년 전에 거기에 있었던 그 소년병 당사자(고 신 동수 옹. 2013년에 작고)의 부인 되시는 분<인천 상륙 작전> 영화를 관람하고는 감격에 눈시울이 젖었다고 한다! "우리 남편이 살아서 같이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런데 기자 양반, 혹시 이 영화 비디오로 하나 살 수 없을까? 남편 얼굴이 가뭇가뭇할 때마다 보고 싶어서 말이야." 가슴 뭉클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분의 인터뷰가 보도되고 나자 주연 배우인 이 정재 씨가 직접 비디오 테이프와 꽃다발을 들고 그분을 찾아뵈었으며, 리암 니슨도 직접 이분을 칭송하고 격려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인천 상륙 작전은 평론가 평점 3점대 테러나 당할 작품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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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시 2:2-4라든가 계시록에서 여러 민족들이 한데 뭉쳐서 특정 한 민족을 대적하는 사건을 언급한다. 이것은 영적으로 명백하게 좋은 현상이 아니며, 사실은 UN조차도 앞으로 그런 악역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런 트렌드와는 반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들이 한데 뭉쳐 한 나라를 도왔던 6· 25 전쟁은 거의 전무후무한 사례이고 예외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미국이 개입했던 전쟁들 중 정당성 명분이 톱급으로 가장 큰 전쟁이었다.

뭐 괜히 쓸데없이 김치, 된장, 한복 이런 것보다야 차라리 한글이라든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시대를 너무 앞서 간 엄친아 괴수요 국제 정세의 달인인 어느 할배에 의해 미국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건국됐고, 저렇게 드라마틱하게 지켜져 왔다는 사실에나 좀 자부심 가졌으면 좋겠다. 과장 보태면 그런 건 좀 국뽕에 취해도 되겠구만, 왜 저런 정말 중요한 아이템엔 사람들이 관심이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6· 25 개전 초기에 남한 정부의 우왕좌왕 실책과 병크가 나온 것을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국내 관료들과 미국 정치인들이 그 할배의 선견지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받아들였다면 애초에 그 전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고 피해가 훨씬 줄어들 수도 있었다는 걸 먼저 감안해야 될 것이다.

그에 반해 김 구는 '그 할배' 같은 선악 관념이 없이, 남북 분단을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며 어떻게든 중재하고 막으려 했다. 이 사람이 덜컥 암살 당해 버리는 바람에 중재자가 없어졌고 남북 관계는 더욱 싸늘하게 식으면서 전쟁이 났다는 식의 해석도 있는데.. 그건 김 일성을 너무 착하고 순진하게 본 어리석은 생각이다.

김 구는 암살 당하지 않았고 계속 살았다면 최악의 경우 피아 구분을 못 한 채 적화통일 꼭둑각시로 이용당하면서 이 승만의 4· 19 부정선거 하야보다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더 악영향을 끼치고 더 추하게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잘해 봐야 그냥 전쟁 타이밍의 시간만 약간 더 버는 역할밖에 못 했을 것이다. 악한 힘은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고 견제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이런 북한이 <인천 상륙 작전> 영화를 좋게 평가했을 리는 만무하다. 대남 종북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신랄하게 디스했다. 지난 7월 29일자 보도를 보면 "남조선 괴뢰들이 지난 27일 그 무슨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에 대한 시사회 놀음을 벌리였다. 불가능한 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작전이니, 죽음을 불사한 이야기니 뭐니 하는 희떠운(분에 넘치며 버릇이 없는) 수작들을 늘어놓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나에게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새 기능을 코딩할 자유를 지킨 호국영령들의 은혜를 잠시 생각하며 감사한다. 이상.

Posted by 사무엘

2016/08/23 08:33 2016/08/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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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두리

GUI 프로그램에서 대화상자를 만들다 보면 단순히 글과 그림, 목록, 버튼 같은 것만 집어넣는 게 아니라 그 컨트롤들을 성격별로 분류하는 구획 경계선, 테두리 같은 걸 그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게 필요하면 static 컨트롤을 쓰면 된다. Visual C++의 리소스 에디터 상으로는 Static text와 Picture control이 서로 다른 항목으로 나뉘어 있지만, 둘 다 운영체제의 윈도우 클래스 이름은 동일하게 "Static"이다.

Picture 컨트롤을 삽입한 뒤 속성에서 Type을 Etched Vert으로 고르면 세로줄이 만들어지며, Etched Horz를 고르면 가로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Type을 Frame으로 지정하고 Color를 Etched로 지정하면 사각형 테두리를 만들 수 있다.
선을 단순히 단색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음각으로 파인 듯이 3D 입체 효과(?)가 나게 그리기 때문에 etched라는 단어가 자꾸 나온다.

그런데 Picture 컨트롤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잘 아는 Group box라는 컨트롤도 있어서 사각형 테두리를 친다는 점에서는 Picture하고 거의 같은 역할을 한다.
단, Group box는 테두리의 좌측 상단에 간단한 텍스트를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이 테두리 안에 속한 컨트롤들의 전체 제목이나 카테고리 이름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유용하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 Group box는 테두리의 윗변은 무작정 맨 위쪽이 아니라, 그 텍스트의 중앙 라인에 맞춰서 그어진다. 아래 그림을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있다. (크기가 서로 동일한 Group box와 Picture frame이 화면에 실제로 보이는 형태)

사용자 삽입 이미지

Group box는 말 그대로 한 그룹에 속하는 컨트롤들(특히 라디오/체크 박스)의 가로· 세로 경계선과 제목 텍스트까지 한큐에 표시해 주기 때문에 굉장히 유용하다. 그런데 프로그램들에 따라서는 static text 옆에다가 가로줄 하나만 추가해 넣어서 Group box의 간소화 버전인 일종의 Group line을 넣기도 한다. 이 역시 위의 그림에 형태가 묘사되어 있으며, 독자 여러분도 이런 GUI를 많이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본인은 새로운 대화상자를 디자인할 때 Group box를 쓸지 Group line을 쓸지를 종종 고민하곤 한다. 가끔은 line이 box보다 더 깔끔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line은 추가적인 좌우 여백을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공간 활용면에서도 좋다.

하지만 line은 group과는 달리, 텍스트와 가로줄을 서로 폭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그려 주는 컨트롤이 없기 때문에 만들기가 불편하다. static text 따로, 가로줄 따로 두 컨트롤을 일일이 만들어야 한다. 텍스트의 글꼴이나 내용이 바뀌면 가로줄의 위치와 길이도 프로그램이 수동으로 업데이트해야 하니 번거롭다.

개인적인 생각은 (1) 길쭉하게 만들어 놓은 static 컨트롤에다가 텍스트를 찍은 뒤 나머지 오른쪽 여백에다가는 글자 크기 기준으로 중앙에 etched 가로줄을 자동으로 그려 주는 옵션을 추가하거나, (2) 기존 group box 컨트롤에 사각형 테두리가 아니라 가로줄만 찍는 옵션이 좀 있어야 한다고 본다. group box를 크기를 줄인다고 해서 group line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마소에서 만드는 프로그램들도 대화상자를 Spy++로 들여다보면 Group line은 별 수 없이 텍스트+가로줄로 수동으로 구현돼 있다.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MS Office 제품 중에서 운영체제의 대화상자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GUI를 사용하는(너무 역사가 길어서) Word와 Excel은 서식 대화상자 같은 걸 보면 group line이 상대적으로 많이 쓰였고, PowerPoint, Access, Publisher처럼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된 프로그램들은 group box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내 심증은.. Word와 Excel은 한 개체만으로 간단하게 제목과 가로줄까지 group line을 표시해 주는 GUI 컨트롤/위젯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는 Excel과 PowerPoint의 '화면 확대 배율' 대화상자 스크린샷이다. PowerPoint는 진짜 운영체제의 static 컨트롤 가로줄이지만 Excel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가로줄의 색깔이 두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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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품 안에도 프로그램끼리 이렇게 미묘하게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고전 테마에서는 group box의 선 모양과 static 컨트롤의 etched 선이 저렇게 똑같지만, 다른 테마가 적용되고 나면 둘의 선 모양이 달라진다. XP 시절의 Luna 테마든, 그 뒤의 Aero든..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든 group box의 선이 통상적인 etched 선보다 더 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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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사실 group box는 윈도우 클래스가 Static이 아니라 Button이다. 이 정도로 Static 컨트롤과는 애초부터 기술적인 연결 고리가 없었다.
check나 radio 버튼은 비록 push 버튼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그래도 BN_CLICKED라는 이벤트를 날려 준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같은 버튼이라는 게 이해가 된다만.. group box는 포커스도 안 받고 이벤트도 없고.. 버튼과는 하등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static 장식품에 불과한데 도대체 왜 얘까지 Static이 아닌 버튼 소속인 걸까?

(더구나 라디오 버튼의 소속을 분류하는 것도 그 컨트롤들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WS_GROUP 스타일로 하지, 딱히 group box가 기여하는 건 없다. group box 안 만들어도 "1~3 중 택일, 4~7 중 택일" 같은 라디오 버튼들의 선택 영역 구분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Windows에서는 같은 버튼이라는 클래스인데 스타일을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서(BS_GROUPBOX) 외형과 동작이 완전히 다른 윈도우가 되는 것이다. 먼 옛날 1.0 시절에는 리소스가 하도 부족해서 기본 윈도우 클래스를 새로 등록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서 가능한 한 같은 클래스에다가 여러 기능을 구겨넣기라도 해야만 했는가 보다. 하지만 group box가 왜 버튼 출신이며 기존 etched 선과 괴리가 생겼는지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이해되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2. 버튼

말이 나왔으니 다음으로 버튼 얘기를 더 계속해 보도록 하자.
아래 그림은 평범한 라디오/체크/푸시 버튼과 탭 컨트롤을 고전 테마 기준으로 집어넣어 표시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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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라디오와 체크 버튼은 Button 출신답게 자기 자신도 버튼처럼 표시되게 하는 옵션이 있다. 바로 BS_PUSHLIKE 스타일. (BS_PUSHBUTTON은 윈도우의 동작 자체를 푸시 버튼으로 결정하는 스타일이니 혼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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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하니 라디오/체크도 푸시 버튼과 외형이 거의 똑같아진다. 그래도 키보드 포커스를 받았을 때 라디오/체크 버튼은 푸시 버튼처럼 테두리가 굵어진다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로 조작해 보면 푸시 버튼과는 뭔가 다른 게 느껴진다.
라디오와 체크 버튼은 자신이 클릭된 경우 자신이 눌러지고 선택된(체크된) 상태로 바뀌는 반면, 진짜 푸시 버튼은 선택된 상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눌러도 다시 도로 튀어 올라온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편, 위의 그림에서 나오듯, 사실은 탭 컨트롤도 경계선 없이 각각의 탭의 이름만을 버튼처럼 표시하는 옵션이 있다(TCS_BUTTONS).
탭 버튼은 라디오 버튼과 비슷하지만 키보드로 조작할 경우, 화살표 키만 누른다고 해서 선택이 바로 이동하지 않는다. Space를 눌러서 선택을 확인해 줘야만 바뀐다는 차이가 있다.

도대체 이런 기능이 왜 존재하나 싶겠지만, 이 물건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다. 먼 옛날, Windows 95의 작업 표시줄이 바로 탭 컨트롤에다가 이 스타일을 써서 구현돼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작업 표시줄은 독자적인 비주얼과 기능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진작에 자체 구현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푸시 버튼처럼 생긴 놈이 푸시 버튼 자체뿐만 아니라 최소한 세 종류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인데..
얘들도 테마를 변경하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Button들은 테마가 적용되어 버튼이 알록달록하게 바뀌지만 탭 컨트롤의 버튼들은 변화가 없다. 작업 표시줄 말고는 딱히 쓸 일이 없어져서 그런 듯하다. 글쎄, MDI 에디터 같은 데서 문서 탭을 나타낼 때 쓸 수도 있지 않으려나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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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버튼이 전혀 아니지만 클래스가 Button인 놈(group box), 버튼처럼 생겼지만 버튼이 아닌 놈(탭 버튼)을 모두 살펴보았다.
Windows XP~7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8~10까지 나온 마당에 이제 운영체제에서 고전 테마는 더욱 보기 어려워지고 마치 XP Luna만큼이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고전 테마는 단순하면서도 굉장히 철저한 원칙 하에 세심하게 디자인된 것 같다. 화면에 표시만 하는 놈은 회색, 사용자와 interation을 하는 부분은 흰색에다가 두꺼운 입체 테두리, 포커스를 받은 아이템은 점선, 실제로 선택된 아이템은 highlight 색 등등..

그렇게도 사용자 감성, 인터페이스를 중요시한다면서 애플 맥 진영은 옛날에 GUI가 어떠했나 모르겠다. 안 그래도 마소가 애플의 GUI를 베꼈다고 험담이 많이 나돌던데.
그렇게 고전 테마 때 일관되게 형성되었던 GUI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테마가 적용되면서,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비주얼은 더 화려해졌을지 모르나, 그런 질서가 좀 무너진 듯한 것도 보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고전 테마를 처음 만들던 때와 지금, 개발자가 세대 교체가 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나저나 group line은 세대를 초월하여 진짜로 운영체제 차원에서 기능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20 08:38 2016/08/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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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봉화산

서울 중랑구에 있는 봉화산은 둘레길만 따라 산기슭을 한 바퀴 도는 거리는 4km가 좀 넘고, 정상까지 높이는 해발 160m 정도 되는 작고 낮은 산이다. 인접한 산맥 능선이 없이 혼자 불쑥 솟아 있는 일종의 '독립구릉'인지라 예로부터 지리· 지형적인 이용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종착역이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어 있다.

본인은 혹서기에는 높은 산 대신 서울 곳곳에 공원 형태로 조성돼 있는 작고 낮은 산들을 틈틈이 답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는 봉화산 역 → 정상 → 중랑구청의 순으로 봉화산 북남 종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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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역 4번 출구로 나가서 산을 향해 계속 전진하니 일단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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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지나서 계속 산의 중심부 쪽으로 비탈길을 오르자, 길은 점점 좁아지고 흙길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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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출입구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굉장히 많이 나 있었다. 그래도 어느 걸 타도 적당히 중심부 쪽으로만 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길 잃을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산중턱에는 운동 기구들이 설치된 공터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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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송전탑과 매점(!)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자 정상이 나왔다. 정상에는 듣던 대로 봉수대가 있었다. 하긴, 산이 이름부터가 봉화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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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전체를 통틀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는 여기 하나뿐이었다. 곳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던 용마산과는 반대다. 봉화산은 육군 사관학교와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이 산에서 그쪽을 내려다볼 수는 있지는 않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위의 풍경은 중랑천과 천장산 방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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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봉화산 도당굿 보존 위원회' (서울시 무형 문화재 제34호) 이런 건물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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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청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뭐 이런 식이었다. 7호선 먹골 역 방면인 서쪽으로도 갈 수 있고 길이 그야말로 사방으로 뻗은 듯했다.
중랑구청은 봉화산의 남쪽 중에서도 약간 동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본인이 이 지점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도 아까 봉화산 역 방면의 북쪽과 마찬가지로 공원이 꾸며져 있으며, 여기 근처에서는 집으로 환승 없이 한 번 만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이로써 서울 지하철 4~6호선의 종점 근처에 있는 산들을 모두 가 봤다. 4호선 당고개(수락산, 불암산), 5호선 마천(청량산), 6호선 봉화산까지. 이제 7호선 도봉산만 남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8 08:35 2016/08/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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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름 밤엔 저녁에도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더웠다. 저 멀리 강원도에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데 시간 관계상 아직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 대신 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내 마음의 고향인 교외선 일대로 홀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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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역은 송추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얼마 안 지나서 장흥 유원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그런데 폐역 상태이다 보니 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무 표지판도 없었다. 그래서 다 와 놓고도 역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선뜻 찾을 수 없었다.

열차가 다니지 않고 인적도 끊긴 간이역 근처의 으슥한 골목에다 차를 세워 놓은 뒤, 저녁을 먹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책을 읽다가(가로등 불빛) 이동식 텐트 안에서 잠들었다. 새벽이 되니까 살짝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원하던 경험이 바로 이것이었다. 차를 아무 데나 세워도 될 정도의 한적하고 으슥한 시골에서 혼자 이렇게 자 보는 거. 정말 꿀잼이었다. 그것도 철도역 근처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물론 위의 사진들은 이튿날 새벽에 동이 튼 뒤에 찍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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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체가 아니라 HY울릉도라는 간판 서체 자체가 여기는 1990년~2000년대 이후로 시간이 정지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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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장흥의 서쪽 다음 역이며 교외선에서 그나마 가장 크고 최후까지 역무원이 상주했던 곳인 일영 역의 승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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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역은 밖의 마당(?)에 지붕만 있는 실외 광장 대합실이 있었다. 다른 철도역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한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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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송추 역은 건물 모양과 마당, 그리고 광장 대합실이 있는 것이 모두 일영 역과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영업이 중단되고 거의 폐역처럼 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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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추 역의 앞마당에 있는 광장 대합실.
요약하자면 일영과 송추는 형태가 비슷하고 장흥만 임시 승강장만 달랑 놓인 좀 간이역스러운 스타일이었다.
장흥이 아니라 송추나 일영의 저 앞마당에다가 차를 세워 놓고 거기서 밤을 보냈으면 또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날은 일단 교외선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왔지만, 가까운 미래엔 중앙선(양평)과 경춘선(가평)의 한적한 전철역 근처에도 가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리고 바다로도 가고 싶다. 강원도 동해, 그리고 김포-강화 쪽의 서해 모두. 언젠가 꼭 갔다 와서 여기에 사진과 여행기를 올릴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6 08:30 2016/08/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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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 공원 내부의 셔틀버스, 맹꽁이 전기차

서울 상암동에 있는 하늘 공원은 월드컵 경기장과 가까이 있으며, 역시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시기에 맞춰서 개장했다. 사실 얘는 인근의 평화의 공원, 노을 공원, 난지천 공원과 더불어 '월드컵 공원'이라는 단지를 구성하는 공원 중 하나이다. 요컨대 서울에는 올림픽 공원만 있는 게 아니라 월드컵 공원도 있다.

본인은 지난 10여 년 동안 여기를 교회 친구들이나 다른 지인과 함께 몇 번 가 봤다. 하지만 지하철(월드컵경기장 역)로든 승용차로든 월드컵 경기장 쪽에서 접근해서 하늘 공원으로는 걸어서 계단으로 직접 오르기만 했다.
하늘 공원 내부의 주차장에 직접 주차를 한 건 최근에 간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공원 꼭대기까지 도보가 아니라 '맹꽁이 전기차'라고 불리는 내부 셔틀버스를 타고 올랐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물론 무료는 아니다. (1인당 편도 2천, 왕복 3천원)

남산에도 전기 버스가 다니긴 한다만, 하늘 공원에도 이런 게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사실, 하늘 공원뿐만 아니라 옆의 노을 공원 캠핑장과 노을 공원 주차장 사이에도 동일한 전기차가 다닌다. 차량 한 대엔 10~12명 정도가 탈 수 있다.
이 전기차는 제3궤조나 전차선을 통해서 급전받는 건 아니고 배터리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차량이 한없이 쉬지 않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고 주기적으로 충전이 필요하다. 또한 차량의 덩치나 출력에도 응당 한계가 걸린다.

맹꽁이 전기차를 타는 느낌은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유적지 내부에서 툭툭이를 타던 느낌과 비슷했다.
사실, 우리나라 정도의 자본과 기술이 있는 나라이니까 전기차이지, 못사는 나라라면 이렇게 관광지· 공원 내부를 다니는 셔틀은 죄다 선진국에서 차령 경과로 폐차된 2행정 삼륜차 툭툭이 같은 차량일 것이다. 배기가스 처리도 제대로 안 하는 것들..;;
전기 자동차가 배터리 충전과 항속거리 문제만 잘 해결해서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에 실용화가 됐다면 얼마나 가볍고 조용하게 잘 달렸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식물 이야기

하늘 공원에 펼쳐진 푸른 억새밭과 꽃밭은 이번이 처음 구경하는 건 아니지만 다시 봐도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머리가 복잡할 때 기분 전환 효과가 탁월했다. 강 건너 멀리 빌딩숲이 아니라 들판만 바라보면 무슨 마라도 내지 Windows XP 초원 배경 같지, 인서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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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빨간 꽃은 양귀비이다. 모든 버섯이 독버섯은 아니며 모든 뱀이 독사는 아니듯, 모든 양귀비가 마약 성분이 든 품종인 것도 역시 아니므로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꽃밭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John Rutter라고, 찬송가 중에서도 좀 시편 8편스러운 창조 세계 찬양과 성탄 캐롤 분야 작곡이 전문인 영국의 유명한 음악가가 있다. 이 사람이 만든 성가 중에 Look at the world (바라보라 세상의 모든 일들)라는 불후의 명곡이 있는데..

Look at the earth: bringing forth fruit and flower
Look at the sky: the sunshine and the rain

Praise to thee, O Lord for all creation
Give us thankful hearts that we may see!
All the gift we share, and every blessing
All things come of thee.


곡중의 2절 가사가 떠올랐다.

꽃은 동물로 치면 일종의 생식기이다. 풍매화는 꽃가루를 단순히 바람에다 날리기만 하지만, 충매화는 예쁜 꽃과 달콤한 꿀을 만들어서 곤충을 끌어들인 뒤, 꽃가루가 덩달아 묻은 곤충들이 열심히 날아다님으로써 꽃가루+암술 교접과 번식이 저절로 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충매화가 풍매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생겼다. 풍매화는..?? 퀄리티가 "엥? 걔들도 꽃이 피긴 해?" 수준이다. 소나무나 벼가 꽃이 핀다고는 하지만 백합· 장미 같은 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옛날에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에서도 충매화에 대해서는 풍매화와 비교했을 때 정말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룬 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신자들은 신이 그렇게 만들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믿고, 그 다큐에서는 생명이 스스로 진화해서 그런 걸 만들었다고 얘기하니,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풍매화는 그냥 광고 찌라시 내지 스팸 메일을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살포하는 것이고, 충매화는 그래도 목적을 갖고 가게를 찾은 고객에게 사은품과 함께 자매품 광고를 같이 하는 것과 같다. 후자가 광고 효율이 더 높을 거라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기계공학적으로 봐도 풍매화가 그냥 글라이더 내지 증기 기관이라면, 충매화는 진짜 엔진 달린 비행기 내지 내연 기관 급의 혁신인 것 같다.

본인은 생물학하고는 완전히 담을 싼 배경이지만 이렇게 식물의 번식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자동차 운전과도 관계가 있다. 봄철에 나무 아래 그늘에다 차를 세워 놨는데, 나중에 보니 잎과 가지 정도만 위에 떨어진 게 아니라 차 전체가 뿌연 송홧가루 테러를 당해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그래도 차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게 의외로 멀리까지 퍼져 있었다. 하지만 송홧가루를 이렇게 많이 살포해도 가성비는 꿀벌이 나르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식물 중에도 곤충과 상생하는 게 아니라 아예 곤충을 잡아먹는 놈도 있고, 또 '라플레시아'처럼 거대하지만 지독한 악취를 내는 못생긴 꽃을 피우는 놈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것대로 꿀벌이 아니라 '파리'를 끌어들여서 꽃가루를 퍼뜨리려는 의도라니 참 이것도 걔네만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리고 하나 더.. 동물은 어지간히 이상한 예외적인 종을 제외하면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다. 식물은 반대로 비록 수분(가루받이) 자체는 다른 몸체의 것으로 하더라도 일단 한 몸체에 암술과 수술이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나, 이것도 예외가 있어서 동물 중에도 자웅동체가 있으며, 식물 역시 암그루와 수그루가 따로인 자웅이주(암수딴그루)가 있다.

자웅이주의 대표적인 예로는 살아 있는 화석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은행나무가 있다. 전세계를 통틀어 단 한 품종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언어 계통으로 치면 고립어처럼 다른 나무와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는 아주 유니크한 놈이라고 한다. 얘가 수분을 해서 열매를 맺었는데 그게 잘못해서 터지면 주변에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암그루와 수그루가 서로 만나지만 않게 배치하면 도시 가로수로서 다른 자질들은 다 훌륭한데 그 악취만이 문제라고..

그런데 묘목 수준일 때 이 은행나무가 암그루인지 수그루인지를 파괴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판별하는 게 과학적으로 꽤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여러 모로 나무들도 다 같은 나무가 아니고 침엽수와 활엽수, 상록수와 낙엽수 구분도 있는 등 굉장히 신기한 특성이 많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은 지금처럼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덕후가 될 여지는 없는 시절을 살았으니, 그 머리로 자연 속에서 완전 동식물 분류 덕후가 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왕상 4:33)

단백질인가 뭔가 하는 성분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똑같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질이어도 식물이 동물보다 보존성이 훨씬 더 뛰어나며, 부패하더라도 그 중간 과정(비주얼이나 악취)이 훨씬 덜 혐오스럽다. 식물의 씨 vs 계란, 두유 vs 우유 같은 식품의 차이점을 생각하면 명백하다. 꽃가루도 일반적인 환경에서 딱히 상하거나 썩지는 않는다고 하며, 꿀조차도 상한다거나 냉장· 냉동 보관 필수 이런 말은 내가 들은 적이 없다. 이것도 시사하는 바가 큰 차이점이라 여겨진다.

3. 풍경

갑자기 식물 얘기가 좀 길어졌다만..
하늘 공원에서는 아래에 있는 '난지 한강 공원'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하늘 공원이 고지대이고 식물들 때문에 산책로 위주로만 다녀야 한다면, 한강 공원은 말 그대로 한강과 더욱 가까이 있으며 잔디밭이 있어서 거기서 돗자리 깔고 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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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모든 사진은 스마트폰으로만 찍었다.

그나저나, 월드컵 공원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는 또 매봉산이라는 자그마한 언덕이 있다. 얘는 쓰레기와는 무관하고 진짜로 자연적인 산이다. 여기 산 속에는 1980년대까지 국가에서 석유를 비축해 놓던 기름 탱크가 남아 있는데, 요것들은 나름 국가 기간 시설인 관계로 민간 항공 지도에 표시되지 않고 가려져 있다.
이쪽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답사해 보고 싶다. 옛날에는 이 언덕 전체가 아마 민간인 접근 금지였지 싶다.

4. 쓰레기 매립지의 변천

하늘 공원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평범한 해발 100미터짜리 언덕이 아니다. 여기가 한때는(25~30년쯤 전) '난지도'라고 불리는 거대한 쓰레기 산이었다는 걸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올림픽 공원을 건설하던 부지에서는 몽촌토성 유물이 나왔지만 월드컵 공원의 부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쓰레기가 쌓여서 저 높이와 덩치의 산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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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난지도에서 '난'은 難이나 亂 같은 안 좋은 뜻이 절대 아니라 蘭, 즉, 난초라는 꽃을 뜻하는 아주 향기로운 이름이었다. 쓰레기 매립이 시작되기 전에 거기는 자연의 정취가 가득한 들판이었고 데이트 내지 심지어 신혼여행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는 원래 지금과는 정반대로, 홍수를 맞으면 종종 침수도 되는 저지대였다.
그랬던 곳이 한때는 서울 시민들이 배출하는 오물, 건축 폐기물, 하수 슬러지 등등을 한몸에 뒤집어쓰고서 온갖 해충과 악취를 내뿜는 죽음의 장소로 전락한 것이다. '달동네'만큼이나 예쁜 이름과 실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에 속한다.

이런 내력으로 인해 하늘 공원 곳곳에는 땅 속 쓰레기의 부패로 인해 발생하는 메탄 가스를 수집하는 시설이 있고 바로 옆엔 열병합 발전소인 지역 난방 공사도 있다. 일반 쓰레기들은 방사능 폐기물만치 위험하지는 않으며, 완전히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방사성 원소의 반감 붕괴 주기만치 길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양이 너무 많으니 처리하는 게 골칫거리이다.

하늘 공원의 이런 외형과 내력이 믿어지지 않거니와, 옛날에는 겨우 마포구 상암동 일대가 쓰레기 매립지일 정도로 서울 시내가 그만큼 작기도 했다는 것 역시 실감이 안 간다. 남산이 있는 곳이 벌써 서울의 남쪽 외곽으로 간주되었고 합정동 일대에 무려 화력 발전소가 있으며, 조선 시대엔 한강 모래사장에 아예 사형장(새남터)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에 거기는 서울 시내에서 완전히 떨어진 교외 변두리로 여겨졌음을 뜻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에 비해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고 시민 의식이 미개해서 교통사고 1위, 쓰레기 배출량 1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러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쓰레기 봉투 종량제와 쓰레기 분리 배출이 당연한 관행으로 잘 정착한 지 오래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도면 이제 세계적으로도 쓰레기나 하수 처리 같은 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게 선진적으로 잘하는 축에 든다. 육지뿐만 아니라 안산 시화호나 울산 태화강도 옛날에는 죽음의 호수, 죽음의 강 어쩌구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말이 딱히 없다. 오염 물질을 처리하는 기술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발달한 덕분이다.

난지도는 1978년부터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지만 1992년부터 매립이 중단됐으며(쓰레기가 너무 많이 쌓여서..), 국가에서는 이 쓰레기더미를 몽땅 흙으로 덮고 녹지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무슨 묘지 공원처럼 말이다. 돈이 한두 푼 든 게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거기는 다시 시민들의 휴식 공간과 데이트 코스로 잘 바뀌었다. 서울 안에 등산로도 아니고 그 정도 고지대이면서 그 정도로 넓은 녹지는 흔치 않다.

그 대신 1992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포함 수도권의 쓰레기 매립은 인천 서구 검단5동, 공항 철도 청라 역의 북쪽으로 경인 아라뱃길의 건너편에 있는 거대한 부지에다가 하고 있다. 거기엔 웬 뜬금없이 '드림파크'라는 이름의 골프장과 공원이 있는데, 거기는 이미 매립이 다 끝나고 휴양· 레저 부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기왕 골프장을 만들 거면 멀쩡한 산 깎고 환경 파괴하지 말고 쓰레기 매립장 위에 그럭저럭 잘 만든 것 같다.

드림파크보다 더 서쪽에 논밭이나 갯벌이 아니고, 재개발 부지는 아니어 보이고, 그렇다고 군사 보안 시설도 분명 아닌데 거대한 제방이 쳐져 민간인의 접근은 막힌 한 넓은 땅이 보인다. 거기가 바로 현재 쓰이고 있는 쓰레기 매립지이다. 과거의 난지도 시절만치 무식하게 쏟아붓고 파묻는 게 아니라, 분비되는 각종 부패 액체(침출수)와 기체(메탄..) 처리는 영글게 잘 하고서 매립한다.

거기가 옛날에는 행정구역상으로 김포군이었기 때문에 '김포 매립지'라고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행정구역이 인천으로 바뀌었다. 마치 김포 공항이 처음 지어지던 시절에는 김포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 강서구로 바뀐 것과 정확하게 같은 맥락의 변화이다. (김포 지못미)
한강의 상수도 취수 시설은 점점 상류로 이동해서 남양주까지 갔고,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는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서 성남(경부), 안산(서해안), 하남(중부)까지 갔다. 김포 공항도 서울의 관문으로 운용하기엔 너무 비좁고 혼잡해져서 저 멀리 영종도에다 인천 공항이 대신 만들어졌다.

이처럼 쓰레기 처리장도 세월이 흐르면서 저 멀리 인천 서쪽 끄트머리로 옮겨졌다. 하지만 쓰레기 처리장을 받는 지역의 입장에서는 마치 교도소나 시신 화장장만큼이나 땅값 떨어뜨리는 영 좋지 않은 시설이 오는 것이니, 이런 걸 호락호락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다 쓰레기 처리장을 유치하는 대신에 서울시에서는 우리를 위해 뭘 해 달라, 뭘 보장해 달라는 식으로 딜이 오가곤 한다. 어 이건..? 철도를 지하화하지 않고 지상으로 만드는 대신에 뭘 만들어 달라 이러는 싸움과 비슷한 분위기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3 08:36 2016/08/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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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퀴, 엔진, 문 등의 내부 배치가 특이한 놈

요즘 자동차들은 대형 고급 승용차가 아니면 트럭 정도만이 FR(앞쪽 엔진, 뒷바퀴 구동)이다. 중형 이하의 작은 승용차들은 다 연비와 공간에 더 유리한 FF(앞쪽 엔진, 앞바퀴 구동)로 물갈이됐고, 버스들은 1종 보통(대형이 아닌) 면허로도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10몇 명짜리 '봉고차'급이 아닌 이상, 공간 확보와 조향에 더 유리한 RR(뒤쪽 엔진, 뒷바퀴 구동)로 바뀌었다.

승용차는 대형이 FR인데 버스는 소형이 FR인 게 흥미롭다. 이를 종합하면 트럭이 아닌 승용· 승합차는 차량의 크기에 따라 FF-FR-RR의 형태로 엔진과 구동 형태가 바뀌기라도 하는가 보다. (뭐 외국엔 승용차도 경차 위주로 RR이 일부 있기도 하니, 이게 절대적인 경향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인해 대형 버스는 다른 차들과는 달리 엔진 소리가 뒤쪽에서 들리며, 엔진과 연결된 팬벨트가 돌아가는 것도 뒤쪽에 보인다. 대부분의 차량들의 앞면에 으레 붙어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버스의 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980년대까지는 국내의 대형 버스에도 전방 엔진 모델이 있었다. 본인도 초딩 시절에 시골에서 그런 버스를 탄 기억이 남아 있다.
전방 엔진 버스는 운전석이 있는 앞부분의 바닥이 유난히 높았고, 운전석의 오른쪽 중앙이 보다시피 뭔가로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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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맨 뒷좌석이 위로 봉긋 솟아 있지 않고 높이가 앞의 다른 좌석들과 동일했다.
요즘 버스들은 맨 뒷좌석은 위로 한두 계단 높이 솟아 있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이 버스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어릴 때도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비행기로 치면 보잉 사가 개발한 전무후무 유일한 삼발기인 727을 보는 느낌이다. 날개 밑에 엔진이 달려 있지 않은 게 신기함.

후방 엔진 버스에서는 맨 뒷자리가 폭도 좁은 데다 시끄럽기까지 한 최악의 폭탄 자리인 반면, 전방 엔진에서는 맨 뒷자리에 그 정도까지 페널티는 없을 듯하다.
반대로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버스는 무거운 엔진이 전방에 달려 있는 데다 옛날엔 파워 스티어링마저 없었을 테니 정지 상태에서 조향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하물며 주차는 완전 고역이었겠다. 지금처럼 후방 카메라나 경보 장치가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현대 FB(전방 엔진) 버스와 RB(후방 엔진) 버스는 외형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맨 뒷좌석의 높이를 보면 구분 가능하다. 대우 자동차도 BF105 같은 초기 모델은 전방 엔진 FR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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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대우(대우 자동차에서 버스 생산 부분만 계승한 후신)에서는 현대 자동차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전방 엔진 버스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전량 수출만 한다. 외국에 무슨 특별한 수요가 있어서 어째 수출 전용으로라도 생산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뭐, 이 글에서는 주로 전방 엔진 얘기만 했지만 잠깐 버스의 외형 얘기를 조금만 더 하고 넘어가겠다. 미국의 스쿨버스처럼 앞에 보닛이 달린 버스, 그리고 무슨 10~20톤 이상급 초대형 트럭처럼 뒷바퀴에 바퀴가 앞뒤로 두 줄이 달린 버스도 국내에서는 볼 수 없다.
화장실이 달린 버스가 달리기엔 우리나라는 국토가 너무 좁다. 철도계에서 열차의 주행 속도가 올라가면서 침대차가 사라졌듯이, 버스도 고속도로와 휴게소 인프라가 발달하면서 자체적으로 화장실을 내장할 필요는 없어졌다.

옛날 버스 중에는 앞쪽 출입문이 요즘 버스처럼 앞바퀴의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앞바퀴의 뒤에 달린 버스도 있었다.
물론 현대 카운티처럼(예전의 코러스/콤비.. 그러고 보니 전부 'ㅋ' 돌림 이름이네.) 중형 버스까지는 오늘날까지도 그런 형태의 차들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더 커 보이는 차가 그런 형태인 건 참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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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선보인 시발 자동차의 자매품 버스..;; '씨X 뒈X' 같은 욕설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리라. -_-;;

2. 동력원이 특이한 놈

바로 앞의 사진에서 버스의 앞면에 걸린 현수막 문구를 제대로 읽어 보면.. '국산 시발 디젤 버스'이다.
버스 같은 대형차는 만약 기름으로 달린다면 디젤 엔진 기반인 게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 그때는 디젤 차량을 국내에서 만들어 낸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라서 저렇게 써 붙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천연가스로 달리는 버스들이 1990년대 이후부터 야금야금 등장하기 시작했고, 다른 버스는 몰라도 최소한 대도시의 시내버스들은 거의 다 물갈이가 됐다. 천연가스 버스는 이제 특이한 놈이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주류이다. 석유 내연기관은 소형차용 휘발유와 대형차용 디젤로 나뉘는데, 어째 천연가스 엔진은 소형차(택시)와 대형차(버스)에 모두 쓰인다는 게 신기하다.

서울 시내의 공기가 시골에 비해 썩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천연가스 버스의 도입은 공기 질의 개설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디젤 차량은 선진국들에서 정말 찍어 누른다 싶은 수준으로 배기가스 규제를 걸고 있다.
과거의 디젤 버스들은 엔진이 달린 후면부에 매연 그을음도 시커멓게 잔뜩 묻어 있어서 몹시 더러웠다. 이건 단순히 흙먼지가 묻은 게 아니었다.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는 알고 보니 휘발유도 디젤도 아니고 진작부터 가스 전용이다. 그런데 웬 배기가스 규제를 받고 그것 때문에 차를 단종하네 마네 말이 있었나 모르겠다.

한편, 2010년대부터는 서울에서 남산 투어용으로 하이브리드도 아닌 순수 전기 버스가 다니고 있다. 요렇게 생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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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데 환경 보전을 위해 전기를 선택한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안 그래도 전기차는 배터리 문제 때문에 지금도 소형차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대형 버스가 그것도 배터리 집전 방식만으로 승객을 가득 싣고 에어컨 틀고 산길을 오를 수 있는지가 우려되기도 한다.
실제로 운행 개시 후 얼마 못 가 이런 애로사항이 잔뜩 제기되었다. 하지만 예전에 남산에 갔을 때도 버스가 다니고 있는 걸 보니, 문제점을 수정해서 운용은 계속하고 있는가 보다.

고질적인 배터리 충전+항속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 자동차에서는 몇 년 전에 수소 연료전지 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연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양산과 실용화 단계까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배기구가 있긴 하지만 그냥 수증기+물만 나온다고 한다.

외국에는 더 엽기적인 발상을 해서 버스 차체에다 배터리 대신 가공전차선을 장착한 '트롤리버스'라는 게 있다. 비록 바퀴는 궤도 위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노면 전차와 다르지만, 공중에 있는 전차선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궤도 교통수단이나 마찬가지이다. '무궤도 전차'라고 불리기도 한다.
뭐 그럴 거면 "조향을 아예 할 필요가 없는 노면전차나 경전철을 만들고 말지, 저딴 걸 왜 만들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위치가 좀 콩라인스러운 면모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버스의 입장에서는 정교한 레일을 만들 필요 없고 버스도 안에 간단한 집전 장치와 모터만 있으면 되고 배터리 충전 필요 없이 풍부한 전기를 팡팡 끌어다 쓸 수 있으니 나름 괜찮다. 얘도 아까 말한 전방 엔진 버스와 마찬가지로 맨 뒷좌석이 위로 툭 튀어나와 있지 않다.
외국에는 차선이나 하나 떼 낸 버스 전용 차선이 아니라 아예 버스 전용 고가 도로도 있다고 한다. 이것과 트롤리버스가 연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교통 평론가 한 우진 님의 블로그에 소개돼 있다.

전기 모터는 열과 폭발 뒷감당을 하는 내연기관보다 작고 조용하다. 냉각수나 엔진오일, 배기가스 촉매 변환 계통 따윈 없어도 되고 정비성과 유지보수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 때문에 차량 내구연한을 기름 차량보다 훨씬 더 길게 잡아도 된다.

당장 이북의 평양에도 트롤리버스가 있으며, 영화 <태양 아래>에서는 하필 퍼진 버스를 시민들이 밀고 가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버스가 가파른 비탈길을 매연 안 내뿜고 깨끗하게 오르기 위해서 재래식 케이블 전차와 더불어 트롤리버스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롤리버스라 하면 노면전차만큼이나 좀 낡고 꼬질꼬질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노인학대급 차량을 굴리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3. 외형이 특이한 놈

버스와 트럭을 정확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시내버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슈퍼 에어로시티는 길이가 거의 11미터에 달하며 엔진 배기량은 10리터, 엔진 최대 출력은 300대 초반 마력이다. 이 덩치에 얼추 대응하는 트럭은 8톤 초장축 정도 된다.
(1종 보통 면허로 사람이 많이 타는 버스는 15인승까지밖에 운전할 수 없지만, 트럭은 이 8톤보다도 더 큰 12톤 미만까지도 운전할 수 있다. 그러니 운전 면허라는 건 단순히 기술 수준보다는 법적 책임감을 두고 제정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버스 한 대의 덩치를 더 키우고 대당 수송력을 더 키우기 위해 두 가지 시도가 있었다. (1) 위로 층수를 더 늘리거나 (2) 버스의 앞뒤 길이를 더 늘이는 것이다. 그리고 선뜻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 두 종류의 버스를 생각보다 옛날에 서울에 도입하려 한 적이 있었다.

높이를 키우거나 길이를 키우면 대당 수송력은 일반 버스보다 확실히 1.몇 배가량 더 증가한다. 입석까지 감안하면 차 한 대에 100명 이상은 너끈히 탈 수 있다. 하지만 외제차를 소량 수입하는 것이다 보니, 수송력 대비 차량 단가는 일반 버스의 2배 이상으로 훨씬 더 증가하고 정비도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어서 가성비 문제 때문에 도입이 무산되곤 했다.

먼저, 2층 버스 얘기부터 하자면.. 얘 원조는 역시 빨간 2층 버스를 굴리던 영국이다. 유명한 런던 명물이니 사진 첨부는 귀찮아서 생략한다.
2층 버스는 여행객을(특히 외국인) 대상으로 굴리는 도시 관광버스 계열이 있는가 하면, 본격 노선 버스(일반 시내버스) 계열이 있다. 전자는 2층은 천장이 없이 뚫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일반 시내버스용으로는 국내에서 1991년 10월부터 2개월간 서울 시청 - 사당 - 과천 노선을 시범 운행한 적이 있다. 차종으로는 독일 '네오플란'이라는 메이커 수입차를 3대 도입했다. 본인은 그 당시 자동차생활 같은 잡지에서 이에 대해 흥미롭게 다뤘던 걸 본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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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버스는 딱히 회전반경이 걸리는 건 없겠지만 아무래도 무게중심이 높다 보니 커브를 돌 때는 특별히 조심해야겠다. 승용차보다 약~간만 차체가 높은 SUV만 해도 고속 회전 중에 전복 위험이 더 커지니 말이다.
또한 2층 버스는 당연한 말이지만 노선을 짤 때 중간에 높이가 4~5미터 남짓한 육교, 교량, 신호등 따위와 부딪치지 않는지를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2층으로 인해 같은 면적에 걸리는 하중이 증가하는 건 바퀴를 더 달면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승하차 시간이 길어지는 건 감안해야 할 문제 되겠다. 2층 버스의 구조에 맞는 복층 승강장과 출입문이라도 만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열차로 치면 승강장 길이보다 더 긴 열차가 들어와서 앞의 일부 출입문만 열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당시에 저 2층 버스를 베타테스트 해 봤다. 도로 주행에 딱히 문제는 없었지만, 총체적으로 볼 때 시내 대중교통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차량을 놀이공원 셔틀버스 부류로 용도변경 처분했다. 그 동안 오히려 철도에서 ITX-청춘이라는 국내 최초의 2층 열차가 등장했으나 얘는 아직 경춘선에서만 볼 수 있다.

2층 다음으로, 일명 아코디언 버스라고 불리는 굴절 버스 차례다. 철도 차량이나 트레일러 트럭처럼 중간에 꺾이는 부분을 만들어서 차체의 길이를 늘렸다(11미터 → 거의 18미터). 얘도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여름경에 서울 시내에서 스웨덴제인 스카니아-볼보 차량을 도입해서 테스트한 적이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유지· 정비 비용 같은 가성비 문제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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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묻혔던 굴절 버스는 그로부터 20여 년 뒤, 2004 서울 버스 대개편 때 다시 등장했다. 이때는 이탈리아 이베코 차량이 살짝 로컬라이즈와 원가 절감 디버프를 거쳐서 들어온 뒤, 470 같은 일부 파란 간선 버스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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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4자리 번호인 초록 버스와 3자리 번호인 파랑 버스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버스 개편 당시의 원래 의도는 둘을 훨씬 더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파랑 버스는 진짜 '대로'급의 간선에서 버스 전용 차선 위주로만 달리고 정거장도 적고 심지어 빨강 버스처럼 요금까지 더 비싸게 받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파란 버스에 굴절처럼 수송력이 큰 차량을 집어넣는다는 게 계획이었다.

얘는 탈 때 계단을 덜 올라도 되는 저상(1번. 내부 배치 특이)에다 엔진도 기름이 아닌 천연가스 기반이어서(2번. 동력원) 버스의 여러 분야에서 신기원을 개척했다.
운용하는 데 2층 버스만치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위험한 요소는 없지만, 주차나 회차는 좀 아슬아슬할 듯하다. 그리고 중간문이나 후문에서 운전사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한 불법 무임승차를 주의해야 할 것이다. 뭐 CCTV로 잡아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이면 잘 알다시피 저상 버스는 2000년대의 시즌 2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으며, 몇 년 못 가 시내 도로에서 사라졌다. 고장이 나면 국내 기술자들이 뒷감당을 할 수 없었으며, 디버프가 너무 심하게 됐는지 엔진 출력이나 냉방 조절도 기사 재량으로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기획예산처에서는 굴절 버스의 도입을 세금 낭비 돈지랄로 끝났다고 깠었는데, 이에 대해 한 우진 님은 그렇지 않다는 반박글을 썼었다.
이때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현대 자동차에서 국산 굴절 버스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베코 외제차가 보였던 냉방 같은 문제까지 해결해서 말이다. 하지만, 양산은 더 되지 않았다. 뭔가 포니 쿠페처럼 묻혀 버린 것 같다.

지하철에서는 6호선의 609편성 국산 인버터 지하철이 고장이 너무 잦아서 퇴출되고 다시 외제 인버터로 돌아갔는데.. 버스는 반대로 외제가 정비가 힘들어서 퇴출되고 다시 국산차로 돌아간 것이 특이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0 08:32 2016/08/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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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승용차의 종류

자동차에서 일반 서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최고급 승용차라고 하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말 그대로 롤스로이스, 마이바흐, 벤틀리처럼 대통령, 대기업 총수 등이 운전수를 부려서 타는 기함 계열이다. 차체가 크고 내부엔 온갖 편의 시설이 즐비하다. 뒷좌석에도 팔걸이 다리 받침대가 있고, 개인 모니터와 냉장고도 있다. 차 문과 트렁크는 스위치 조작으로 자동 개폐가 가능하다. 주행 중에도 워낙 조용하고 진동이 안 느껴져서 밖이 고속 주행 중인지 알기가 어렵다.

겨우 네댓 명이 타는 승용차 주제에 공차중량이 2톤을 넘으며, 5000~7000cc에 달하는 배기량으로 300~500마력짜리 출력을 내는 8기통짜리 엔진은 그 규모와 성능이 거의 대형 버스나 트럭과 비슷하다. 그것도 버스· 트럭과는 달리 디젤이 아닌 휘발유 엔진으로 그렇게 달린다. (그럼 연비가..;; ) 힘이 워낙 넘치기 때문에 변속기도 5~6단이 아닌 8단 이상급이며, 1000대 중반 rpm만으로 시속 100km쯤은 거뜬히 넘어간다. 에어컨을 켜도, 무거운 짐을 가득 실어도 고속도로쯤은 슬금슬금 적당한 경제 속도 주행일 뿐, 경차처럼 힘겨운 고rpm 주행이 아니다. 아, 나도 이런 차 몰고 싶다..

이런 차는 진짜 높으신 분들의 보안을 위해 장갑을 장착하여 방탄 의전 차량으로 개조되어 운용되기도 한다. 기관총 탄환은 물론이고 차 밑에서 폭탄이 터져도 어지간히 방어할 수 있다.
물론 장갑이 장착되면 차체는 무슨 군용차처럼 굉장히 무거워진다. 하지만 엔진이 원래부터 워낙 고성능이니 이 정도 부담이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크고 호화로운 차' 말고 다른 갈래로는 스포츠카 내지 슈퍼카 계열이 있다. 여기도 포르쉐, 부가티, 람보르기니, 페라리 같은 역사 깊은 메이커 계보가 있다. 이런 차들은 떡대와 갑빠, 안락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날렵함과 스포티함을 추구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게 높이가 낮고 정말 매끄럽게 생겼으며, 문도 대체로 쿠페형이다.
사실, 시속 300km 이상은 엔진 출력만 크다고 달성 가능한 게 아니라 속도에 비례해서 폭발적으로 커지는 공기 저항의 제어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같은 고급차여도 단순 호화로운 기함급과 스포츠카 차급의 디자인 철학이 달라진다.

이런 명품 스포츠카들은 너무 성능이 좋으니.. 오토바이도 아닌 것이 그냥 쑥 밟으면 단 몇 초 만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로 진입한다. 운전자는 관성 때문에 뒤로 확 밀릴 것이다. 이런 차를 일반 승용차 몰듯이 밟았다간 그야말로 급발진 사고에 준하는 큰일이 난다.

실제로 2012년 10월엔 이런 일이 있었다. 억대의 포르쉐 카레라 S 한 대가 차주의 경제 사정 때문이었는지 은행에 압류 당해서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차량은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자동차 안전 연구원(교통 안전 공단 산하)에 넘겨져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는데.. 일반 직원이 이 차를 몰고 시운전을 해 보다가 차가 폭주해 버렸고, 빗길에 미끄러져서 충돌 사고 발생.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으며, 차는 경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 나는 바람에 폐차 처분되었다..; 다시 말해, 압류 자산 값을 못 하고 허무하게 일생을 마쳤다.

호화형이든 스포츠형이든 대도시 시내 도로에서 이렇게 지나치게 고성능인 차들이 제대로 달릴 만한 공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엔 우리나라보다 땅이 넓은 나라도 많고, 자동차라는 게 남자의 재력 과시와 질주 본능이라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을 잘 충족하는 물건이다 보니, 저런 데에 집착하는 부자들이 꼭 있다.

그리고 이런 명차들은 한때는 다 수제 주문 생산을 했기 때문에 더욱 비싸고 희귀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한테나 팔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자본주의 규모의 경제 시대에는 아무리 명차 메이커라 해도 그런 방식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고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다른 자동차 대기업에 합병됐거나 마케팅 방식을 바꿨다. 옛날 같은 고자세를 버리고 돈만 주면 당연히 아무에게나 팔며, 고급차라 하지만 운전수가 태워 주는 구도뿐만 아니라 차주가 오너 드라이빙을 하는 것도 고려해서 뒷좌석만 너무 고급스럽게 꾸미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 자동차에서도 이런 이미지의 쇄신을 위해서 이례적으로 에쿠스라는 브랜드를 접고 제네시스 EQ 900을 기함으로 계승한 것이라 생각된다.

※ 국회의원들의 이동 수단

우리나라는 1952년, 아직 6· 25 전쟁 중이고 수도가 부산으로 임시로 옮겨져 있던 시절에 '부산 정치 파동'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간단히만 말하면 이 승만 대통령이 2선에서도 확실하게 당선되고 독재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기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연행하고 구속한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이 승만을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 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때 이 승만 정권이 국회의원들을 납치한 방식이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이야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회사원 월급쟁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돈 많이 벌고 온갖 예우를 세금으로 공짜로 받으면서 호화롭게 산다. 출퇴근 할 때도 당연히 '검정 고급차'를 끌고 다닌다. 과장 좀 보태면 "남들은 전부 외제차인데 나만 에쿠스예요" 이게 그 바닥에서는 겸손이랍시고 나오는 말일 지경이다. 덴마크의 국회의원들은 자전거로 통근하는데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너무 비교된다고 까는 글도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다. 마치 같은 폭설이 내렸는데 미군과 국군에서 간부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1952년 저 시절엔 우리나라가 몹시 가난했고, 게다가 나라가 전쟁 중이었다.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얄짤없었다. 무슨 공장 출퇴근하는 노동자마냥 한데 모여 통근버스를 탔었다. 그랬기 때문에 저 때는 검문을 핑계로 그 버스를 강제로 세운 뒤, 헌병대가 군용차를 동원해 버스를 통째로 코렁 시설로 끌고 가는 방식으로 야당 의원들을 간단히 연행할 수 있었다. (!)

지금 느닷없이 옛날 독재가 어떻고 세금값 월급값 못 하는 국회의원(놈)들이 어떻고 하는 골치 아픈 정치 얘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잠시 잊고, 단지 고위 정치인의 이동 수단에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이런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한번 생각해 봤다.

※ 1000마력짜리 스포츠카

세계의 명품 스포츠카/호화 고급 승용차들이 다들 세 자리 수 마력대의 성능을 내고 있을 때, 프랑스의 '부가티 베이론'이 8기통 엔진을 두 개 붙인 16기통 엔진에다 터보차저도 4개나 들여서 1000마력을 돌파했다. 그렇게 해서 최고 속도를 시속 400~430km까지 달성했다.
프랑스는 그렇잖아도 바퀴식 고속철도도 세계 최고 속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2007년, 574km/h!!!) 자동차까지.. 상상 이상의 속도 덕후 과학 기술 강국인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프랑스는 옛날에 콩코드 초음속기도 영국과 공동 개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콩코드와 마찬가지로, 속도가 올라갈수록 가성비는 정말 돈지랄에 가까운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엔진 두 개를 붙였다고 해서 속도도 기존 300대짜리 슈퍼카의 두 배에 준하는 시속 5~600이라도 나오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이런 엔진은 기름뿐만 아니라 공기(=산소)도 어마어마하게 소비한다. 세상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데 없어지는 연료가 다 어디로 가겠나? 다 같은 질량의 배기가스(혹은 기껏해야 + 물)로 바뀌어서 차 밖으로 나간 거다. 겨우 한두 명의 탑승자를 이동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속도가 얼마인지와 무관하게 연료를 태운 양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속도가 더 올라가는 건 진공의 우주 공간 속을 비행하는 우주선에서나 가능하지, 공기 속에서 움직이는 자동차나 비행기는 결국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더 속도를 올리기가 급격하게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건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가속이 더 어려워진다는 상대성 이론하고는 전혀에 가깝게 무관하며, 광속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저속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공기 저항, 타이어가 받는 마찰열 등..

하지만 비행기는 역설적으로 그런 공기 저항을 받아야 뜰 수가 있으며, 자동차는 지면 마찰이 어느 정도 있어야 바퀴를 굴려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뭔가 비선형적인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기술하려면 역시나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풀 줄 알아야겠다. 중등교육 수준의 물리 시험 문제에서는 '단, 공기 저항은 무시한다' 단서가 아무 생각 없이 나왔겠지만 대학 이후의 고등교육 전공부터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다루니까. 이 분야를 정밀하게 연구해서 자동차와 비행기의 엔진 성능을 더 끌어올리려면 풍동 실험실 같은 게 필요하고 기계공학 석박사 이상의 학력과 연구 경력이 필요하겠다.

※ 우리나라의 스포츠카 컨셉 차량의 역사

1976년에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 디자인과 일본 엔진으로 포니라는 고유 모델을 겨우 만들어 낸 우리나라에서 하루아침에 포르쉐나 람보르기니 같은 명품 스포츠카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술로나 경제력으로나 정서로나 모두.
그나마 쥬지아로가 같이 설계해 줬던 포니 쿠페조차도 "이런 디자인은 경제성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우리나라 정서와 미풍양속(?)과 맞지 않는다. 높으신 분들의 눈 밖에 나겠다"라는 이유로 양산되지 못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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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쿠페. 당시 포니의 개발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훗날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쿠페 모델이 컨셉트 카만으로 묻힌 걸 무척 아쉬워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쿠페형으로 스포츠카 비스무리한 물건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1990년에 출시된 현대 스쿠프이다. 엑셀과 비슷한 외형과 크기이고(동일한 하체 프레임, 엔진 배기량도 1500cc로 동일) 성능도 외국의 스포츠카에 비해서는 택도 없었지만, 엑셀에서는 선택사양이던 리어 스포일러가 기본으로 달려 있고 뭔가 날렵한 외형이 젊은 연령의 운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스포츠/경주용 자동차에 리어 스포일러는 그저 폼이나 장식으로 다는 건 아니고, 고속 주행 시에 차량에 발생하는 양력을 억제해서 주행 안정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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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스쿠프 1 (1990), 엑셀 X2 (1989. 뉴 엑셀 말고), 쏘나타 Y2 (1988)는 전방의 램프 모양이 서로 굉장히 비슷했다. 이 중에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중형차인 쏘나타 Y2이고, 얘는 조르제토 주지아로 디자인의 끝물을 본 작품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쏘나타의 디자인이 더 작은 차급인 스쿠프와 엑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다.
포니부터 시작해서 스텔라(쏘나타의 전신)와 프레스토(엑셀의 전신)까지 다 쥬지아로의 디자인인 반면, 당시 최고급 승용차이던 그랜저(1986)만은 쥬지아로가 관여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는 특징이 있다. 얘는 일제와 합작해서 만들어진 거니까.

스쿠프는 젊은 컨셉답게 유난히 파란색이 많았고 빨강도 심심찮게 보였던 것 같다. 무채색 중에는 차라리 검정. 드물게 하양도 있었지만, 스쿠프가 엑셀· 쏘나타 같은 평범한 승용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색 도색인 건 내가 본 기억이 없다. 여러 모로 독특한 차였다.

외형 다음으로 엔진을 논하자면, 그랜저가 1986년 처음엔 2000cc 엔진으로 시작했다가 2400cc를 거쳐 나중에 3000cc V6 모델을 출시했듯, 스쿠프도 처음에는 미쓰비시 오리온 엔진을 사용하다가 1991년 봄에 최초의 자체 개발 알파 엔진을 얹고, 그 해 가을에는 터보차저까지 얹는 식으로 성능을 끌어올렸다. 특히 최초의 휘발유 터보 엔진을 장착함으로써 스쿠프는 1500cc 배기량에서 엔진의 최고 출력이 세 자리수 마력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제로백이 10초 이내로 당겨졌으며, 최대 시속이 200km를 돌파했다.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스쿠프 이후로 스쿠프 2가 나왔고, 그 뒤 현대 자동차에서는 엘란트라를 시작으로 아반떼라는 준중형 승용차를 내놓았다. 스쿠프가 터보를 소개했다면 엘란트라는 DOHC 흡기 방식을 도입하여 고성능을 표방했다.
이 엘란트라의 후속 모델로는 잘 알다시피 아반떼가 나왔다. 1세대 아반떼는 가성비 최강에 그야말로 불후의 명차로 대접받았는데.. 이 아반떼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쿠프의 뒤를 잇는 스포츠 쿠페 후속 모델이 나왔다. 바로 티뷰론.

현대 자동차가 거의 1990년대 초부터 애지중지 연구했던 컨셉트 카로 HCD-II가 있는데, 그게 양산된 게 티뷰론이다. 마치 철도계에서 컨셉트카 HSR-350x가 양산된 것이 KTX-산천인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4분 30초짜리 티뷰론 광고 영화 동영상은... 뭐랄까 스케일 한번 참 거창하게 만들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보기엔 좀 중2병스럽기도 해 보인다.
악당들이 포르쉐를 탈취해 가는데 경찰들은 자기 경찰차로는 쟤들을 따라잡질 못함. 그런데 때마침 베일에 싸인 티뷰론을 수송하는 트레일러가 지나간다. 경찰들은 거기로 진입해서는 트레일러 운전사에게 신분증 제시하면서 "우린 경찰입니다. 좀 협조해 주시죠"..와 함께 그 티뷰론을 공권력-_-을 동원해 빌려 타고.. 쌩쌩~~

저게 고딩 시절에 거원 제트오디오 CD 안에 예제 동영상으로 들어있기도 했다.;; 사이버 가수 아담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말이다. ㅎㅎ
옛날에 엘란트라 아우토반 CF도 그렇고 현대차 관계자들은 자기 회사 차로 외국 스포츠카를 따라잡는 걸 그렇게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티뷰론 이후로 2000년대에는 '투스카니'라는 스포츠형 쿠페가 나왔다고 한다. 이제 현대도 기술이 많이 발달했고 차의 배기량도 2700cc로 뛰어서 그럭저럭 무늬만 스포츠카에서 레알 스포츠카로 진입하는 단계라는 소리를 들었다. 국내외로 평도 좋았다. 하지만 본인은 이 차는 정말 본 적이 없고 기억도 전혀 없다. 스쿠프만 해도 그 어리던 시절에 지방에서도 종종 봤던 것 같은데 얘는 왜 이리 생소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200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현대 자동차가 밀고 있는 스포츠형 쿠페는.. '제네시스 쿠페'이다.
에쿠스 다음으로 대형이던 후륜 세단을 베이스로 한 차량답게 얘 역시 후륜이다. 게다가 세단 제네시스와 동일한 3800cc 엔진도 얹혔는데, 세단과는 달리 저렴한 중형급의 2000cc 모델도 추가로 존재한다.
뭐 가격이 수억에 달하는 외국의 초고성능 슈퍼카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네시스 쿠페 정도면 제로백도 5초대까지 왔고 세계 어디를 가도 진정한 스포츠카 체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게 21세기에 와서야 달성된 것이다.

현대 자동차는 과거의 에쿠스 같은 호화형 차량에다, 고성능 스포츠카까지 최고급 승용차는 모두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려는가 보다.
또한 스포츠카의 포지션이 처음에는 엑셀과 비슷한 소형에서 시작했다가(스쿠프), 준/중형(티뷰론, 투스카니)을 거쳐 중/대형(제네시스 쿠페)로 점차 커져 온 것을 현대 자동차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 주행 시험장

우리나라에서는 현대 자동차가 기아 자동차까지 같은 계열사 안으로 흡수한 뒤, 그야말로 국내 톱급 규모의 자동차 제조사로 군림해 있다. 그래서 대졸 신입 사원의 연봉도 업계 최강인 것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풍족하다. 국내의 자동차 제조사들 중엔 유일하게 차량 수송을 위한 철도 차량을 자체 보유하고 있으며(울산-성북.. 아니 태화강-광운대), 또 기술 연구소 내에 자체적인 주행 시험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태화강 역 근처에 있는 현대 자동차 주행 시험장은 트랙에서 직선 도로의 길이가 1km가 채 되지 않아 다소 작은 감이 있다. 물론, 대도시에다 철도역까지 가까운 곳에 그 정도 시험장이라도 있는 게 감지덕지이겠지만..
화성시에 있는 남양 연구소의 주행 시험장은 트랙의 직선 길이가 2km 남짓으로 훨씬 더 길며, 그렇기 때문에 시속 200km급의 고성능 주행 시험도 그럭저럭 가능하다.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교통 안전 연구원의 주행 시험장도 인터넷 지도로 보면 크기가 그 정도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볼 때 움직이는 물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커지니, 슈퍼카의 성능을 안정적으로 테스트하는 데는 그 정도 크기로도 부족하다. 현대 자동차는 미국 모하비 사막에도 국내의 시험장보다 더 큰 주행 시험장을 건립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름하여 Hyundai/Kia Proving Grounds. 트랙 내부의 직선 도로는 거의 4km에 육박한다.
참고로 보잉 747을 연료 만땅 상태에서 이륙시키기 위해 필요한 활주로의 길이가 이미 2.5~3km에 달하며, A380이나 An-225급이라면 진짜 저렇게 4km 정도는 돼야 한다.

참고로 이 모하비 주행 시험장은 모하비 공항(겸 우주항)과 꽤 가깝다. 직선 거리로 10km 남짓 떨어진 건 미국의 땅 넓이를 감안하면 이웃집이나 마찬가지인 거리이고 무엇보다도 위도가 거의 같다. 모하비 공항은 세계에서 실려 온 노후 중고 항공기들의 보관소이며 민간 우주 왕복선이 뜨고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끝으로, 모하비 주행 시험장보다도 더 긴 유명한 주행 시험장은 독일에 있는 Ehra-Lessien test track인데, 트랙 직선 거리는 거의 9km에 달한다. 아까 언급되었던 부가티 베이론의 최고 속도는 이 시험장에서 측정되었다. 자동차의 속도가 극단적으로 빨라지면 모든 게 불안해지는데, 오버런 내지 커브 전복 사고를 안 내려면 최고 속도를 찍자마자 허겁지겁 감속을 해야 했을 것 같다. 물론 대형차가 아니니 그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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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속 자동차는 아예 정식 주행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하지도 못하고 얄짤없이 사막 모처로 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_-

Posted by 사무엘

2016/08/07 08:39 2016/08/0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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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력: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를 잔뜩 실어서 뜬다. 배가 물에 뜨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한 원리임. 비행선이나 기구는 둥실둥실 우아하게 뜨고 내릴 수 있으며 공중 정지가 가능하고 연료도 적게 들어서 좋다. 그러나 얘는 중량 대비 동체의 부피가 너무 커지며 비행 속도도 대단히 느려서 실용성이 떨어진다. 엔진이 꺼졌다고 바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피탄 면적이 너무 크기 때문에(가스가 새면?) 그게 안전 관점에서 안 좋다.

(2) 양력(고정익. 동체가 움직여서 생성): 고성능 엔진으로 공기+배기가스 혼합 가스를 내뿜어서 추력을 만들긴 하지만, 추력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그 뒤 날개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양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종이 까다로우며, 이착륙 시엔 매우 길고(가속) 넓은(날개 폭..) 활주로가 필요하다. 그래도 장거리 비행에 충분한 비행 속도와 경제성(항속거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 바로 이 방식이다.

(3) 양력(회전익. 날개 자체가 공기를 휘저어서 생성): 엔진으로 로터를 회전시키고 그걸로 직통으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고정익기보다 더 불안정하고 조종과 자세 제어가 까다로운 데다, 느리고 연비도 안 좋다. 하지만 활주로 없이 달랑 뜰 수 있고 공중 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전히 고정익기와는 별개의 활용 영역이 존재한다.

(4) 추력: 날개 없이 연료를 태운 배기가스를 내뿜는 반작용 추력만으로 뜬다. 날개도 없이 초기에 굉장한 고도와 속도를 얻을 수 있으나,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하여 연료와 중량 대비 항속 거리가 매우 짧다. 이건 비행기보다는 로켓이나 미사일, 우주선의 동력원으로 더 적합하다. 지구 중력을 탈출하려면 닥치고 위로 솟구쳐 올라가야 하며, 달이나 우주 같은 곳은 애초에 대기가 없어서 부력이고 양력이고가 전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가 없다는 말은 연료를 태울 산소도 없음을 의미하므로, 연료 자체를 산화제와 함께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

(2)의 원리로 날도록 만들어진 비행기/비행체라도 중량 대비 엔진 출력이 캐사기급으로 좋다면 제한적으로 (3)이나 (4) 같은 기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F-22 같은 최신 전투기는 무슨 로켓처럼 수직 상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이 안 타서 가벼운 무선조종 항공기 같은 것도 실속에 빠졌을 때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차라리 프로펠러가 있는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면.. 프로펠러가 마치 헬리콥터 로터처럼 돼서 비행기를 호버링 상태로 최소한 추락 사고는 안 내고 보전이 가능하다. 반쯤은 틸트로터 비행기처럼 운항 가능한가 보다.

물론 덩치 큰 여객기에게는 저런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동체를 수직으로 세웠다가는 곧바로 추락한다..;;

이런 기계들 말고 새와 곤충 같은 생명체가 공중에 뜨는 건 일단 (1)과 (4) 부력과 추력은 제끼고 시작한다. (1)은 크기 압박, (4)는 분출과 힘 압박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구현 가능하지 않다. 결국 남는 건 양력인데, 생물의 비행은 고정익과 항공익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지는 않아 보인다.

날개를 직접 퍼덕여서 상하 압력차와 양력을 만드니, 대놓고 고정익은 아니다. 게다가 어디서든 간편하게 떴다가 내릴 수 있으니 고정익의 한계를 갖고 있지 않다. 새가 무슨 활주로가 필요하다거나,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여서 온갖 요동을 치고 후폭풍을 일으키며 날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날개를 쫙 펴서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는 새도 있기 때문에 고정익 비행 원리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고정익 항공기를 발명한 선구자들이 새들의 날갯짓을 눈에 불을 켜고 관찰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새들은 하늘을 날기 편하라고 여느 육상 동물들보다 시력이 아주 좋으며, 덩치 대비 폐활량도 훨씬 더 우수하다고 한다. 뼈도 가볍고 공기구멍이 많다던데, 그럼 골다공증이 인간에게는 병이지만 새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보다.

지상에서 무려 9~10km 위인 어지간한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나는 철새들도 있다. 이들은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매 같은 새가 공중을 날다가 거의 8~90도로 급강하해서 지표면의 작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채어 가는 건 어지간한 전투기의 기동 뺨치는 스킬이다. 이런 기술은 절대로 그냥 저절로 생길 수가 없으니 '지적 설계'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큰 새가 아니라 벌새나 참새 같은 극단적으로 작은 새들은 활강 따위 없이 닥치고 죽어라고 날갯짓을 해야만 공중에 뜰 수 있다. 이는 헬리콥터의 특성에 더욱 가깝다. 날개를 퍼덕이는 횟수가 초당 수십 회에 달하기 때문에(분당 2~3천 회) 소리가 '퍼덕퍼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엔진 소리처럼 '부웅', 영어로는 droning이 된다.

이 때문에 요런 동물들은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며, 덩치 대비 식사량도 엄청나게 많다. 내연기관으로 치면 회전수가 왕창 높은 오토바이용 2행정 숏 스트로크 엔진 같다. 디젤 엔진과는 스타일이 완전 반대다.
새들은 그렇게 힘들게 공중에 떠 있다 보면 곧 지치기 때문에 착륙해서 쉬어야 한다. 옛날에 중국에서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운동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슨 무기를 쓴 게 아니라, 모조리 쭈욱 도열해서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쉬질 못하게 해서 비행 중에 지쳐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참새를 잡았다.

새 다음으로 곤충으로 가면.. 전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고 있는 동물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모기라고 한다. 곱게 피만 빨아먹고 꺼지는 게 아니라 나쁜 병원균을 같이 옮겨서... (그래도 모기 다음의 굳건한 2위는 사람이 맞댄다. ㄲㄲ)
모기는 비행체로서는 힘이 아주 부족하며 항속거리도 짧다. 지상에서 스스로 1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을 오르지는 못하며, 엘리베이터나 계단 복도 등을 타고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모기는 기동성은 최고이다. 공중정지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상하좌우전후 6방향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그나마 민첩하지 않아서 파리보다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게다가 피를 빨아먹은 뒤엔 무거워서 민첩성· 반응성이 더욱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잡힐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원하는 시뻘건 액체를 얻었으면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고 사라지는 게 사람과 모기에게 모두 좋을 텐데, 그런 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모기가 똑똑하지는 못하다. 게다가 모기의 '웨엥' 날갯짓 소리는 흡혈 이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쾌감과 모기에 대한 살생 충동을 부추기는 요소이다.

* 여담: 복엽기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발명한 비행기를 포함해 1910~1920년대까지의 비행기의 형태는 복엽기가 대세였다. 복엽기란, 날개가 위아래로 두 겹이 달린 비행기를 말한다. 그게 옛날 비행기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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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한눈에 봐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에어로다이나미컬'한 디자인은 아니어 보이는데.. 초창기에 비행기의 모양이 저랬던 이유가 무엇일까?
날개를 두 겹으로 배열하면 같은 속도에서 공기를 더 많이 부딪치고 양력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배까지는 아니어도 1.x배 정도는 말이다. 또한 이렇게 하면 한 날개에 걸리는 공기의 압력 오버헤드를 분담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옛날의 비행기는 100여 년 전의 열악한 엔진+날개 기술로 일단 어떻게든 공중에 뜨는 걸 목표로 했다. 속도는 일단 안정적으로 뜬 뒤에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던 것이다. 애초에 고정익기는 이륙할 때(양력)와 착륙할 때(제동) 모두 뒷바람이 아닌 맞바람이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금속으로 더 튼튼한 비행기 날개를 넣는 기술이 개발되고 엔진의 성능도 향상되면서 비행기의 트렌드는 단엽기로 바뀌었다.
헬리콥터로 치면 상하로 로터가 둘 달린 동축 반전 로터가 만들어졌다가, 나중에는 지금 같은 테일로터 방식이 주류가 된 것과 비슷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 여담: 라이트 형제에 대해서

세상을 바꿔 놓은 발명들이 일단 개발된 뒤에도 아무 탈 없이 곱게 정착하고 실용화된 건 아니었다.
자동차의 경우 영국에서는 잘 알다시피 멀쩡하게 잘 만들어 놓고도 적기 조례라는 규제 병크(기존 마차 운수업자들 보호..) 때문에 자동차 기술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뒤쳐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는 이제 유명인사가 되고 돈방석에 앉은 게 아니라... 자국 정부 기관으로부터는 외면받고, 비행 기술을 시샘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웬 표절 도용 소송을 당해서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됐다. 그 동안 정작 프랑스와 영국, 심지어 일본 같은 경쟁국에서는 라이트 형제를 VIP로 대접했으며, 한편으로는 비행기 제조 기술을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도 아니고 선진국에 엔지니어· 덕후의 천국인 미국이 그것도 자국 국민으로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발명을 한 라이트 형제를 당대에 그렇게 홀대했다는 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형인 윌버 라이트는 여기 저기 쓸데없는 소송에 말리면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으며, 1912년에 4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동생인 오빌 라이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 기술이 지금의 컴퓨터 기술만큼이나 가히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 뒤, 1948년에 죽었다. 1903년에 플라이어 1호를 띄우고도 40년이 넘게 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오빌과 윌버가 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조종한 건 1910년 5월 25일의 가족 비행이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는 여든이 넘은 친부가 "둘이서 한 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라도 나서 다 죽어 버리면 비행기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느냐? 그러니 연구 중에 비행기엔 반드시 한 명씩만 타고 다른 한 명은 땅에 있어라"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라고 함..;;

그리고 끝으로, 라이트 형제는 목사의 아들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평생을 비행기에 미쳐 사느라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살다가 갔다..;; 후세는 못 남겼지만 전세계인들이 영원히 기억하는 이름을 남겼다.
비행기를 발명해서 유명해지고 신문 기자로부터 혹시 결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 오빌: 형부터 결혼하면 그 다음에 나도 할 거예요.
  • 윌버: 비행기와 부인에게 둘 다 쓸 시간은 없습니다. (!!)

그래서 둘 다 독신이 됐대나 어쨌대나..;;

Posted by 사무엘

2016/08/04 08:38 2016/08/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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