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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이야기

본인은 철덕이다. 철도는 레일 위에서 앞이나 뒤로만 달릴 수 있고 차체가 스스로 조향을 할 수 없는 1차원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1차원 교통수단이 철도만 있는 건 아니다.
경전철 중에는 모노레일이 있다. 궤도가 2개(좌우 바퀴용)가 아닌 1개의 궤조로만 구성된 작은 교통수단을 일컫는데, 모노레일은 아래의 궤도를 붙잡고 위로 달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위의 궤도에 매달려서 아래로 달리는 놈도 있다.

모노레일 정도 되면 그 구조가 케이블카와도 상당히 근접하게 된다. 모노레일은 그래도 금속이나 시멘트로 된 단단한 궤도에 붙어서 다니지만 케이블카는 비록 금속이긴 해도 신축성 있는 '줄'에 매달려서 다닌다. 단, 케이블카는 여느 궤도 교통수단과는 달리 여러 량이 연결되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열차'의 범주에서는 다소 멀어진다.

케이블카는 줄만 깔아 주면 되기 때문에 궤도 관련 구조물이 주변 환경에 끼치는 여파가 덜하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서 봉우리를 빠르게 잇는 교통수단으로 즐겨 쓰인다. 물론 길고 무거운 줄을 '최초로' 부설할 때는 그 아래 환경에 대한 파괴가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줄에 매달린 차량은 위에 바퀴가 달려서 케이블 위에서 굴러가는 형태로 움직일 수도 있고, 발상을 달리하여 차량은 줄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데 기계실에서 줄 자체를 밀거나 당겨서 차량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전자는 엘리베이터에 가깝고 후자는 에스컬레이터에 가깝다.

스키장의 언덕을 오르는 용도로 운용되는 곤돌라/리프트는 보통 후자 형태이며, 얘는 그냥 좌석 달린 에스컬레이터나 마찬가지이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도 차량 자체에 무슨 범퍼카처럼 모터가 달렸다거나 선로에 제3궤조 같은 게 있지는 않다고 한다. 처음에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만 중앙 기계실에서 줄을 당겨서 차량을 끌어올려 준 뒤, 내려가면서 뱅글 도는 건 전부 무동력 관성 주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통 보존 차원에서 지금도 운행되는 노면전차도 차량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줄이 움직이더라. 가파른 언덕 때문인지 19세기 기술로는 줄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중앙 집권' 방식이 더 나았던 모양이다.

본인은 서울 남산은 맨 처음 걸어서 등산으로 정상까지 올랐고, 그 뒤엔 가족을 데리고 케이블카로도 가 봤다.
케이블카는 좌석 같은 건 없고 단칸방 같은 차량에 대형 버스와 맞먹는 45명의 인원이 꽉꽉 입석 밀착해서 탄다. 운행 시간도 3분 남짓밖에 되지 않으니 그냥 공항에서 탑승동과 비행기를 연결하는 그 단거리 입석 셔틀버스를 탄다는 기분으로 타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케이블카 차량은 딱 두 편성이 다닌다. 차량을 한 대 보내고 나서 뒷차가 올 때까지의 시간은 내 경험상 5~1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그러니 단위 시간당 수송 능력은 딱 답이 나올 것이다. 한번 차량이 도착하면 생각보다는 줄이 많이 없어진다.
그나저나 남산 케이블카는 의외로 국가가 아니라 민간 소유이더라. 마치 남이섬처럼 말이다.

산악용 같은 게 아닌 이상, 케이블카는 반드시 공중에 떠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급경사만 잘 넘으면 되니까 말이다. 구시대 철도에 존재했던 인클라인(강삭철도)도 개념적으로는 케이블카의 일종이다. 물론 얘도 한 량씩 끌어올려야 하니 무진장 불편하다.

궤도 위만 달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뭔가 줄을 붙잡고 달리거나, 줄에 매달린 채 움직이는 교통수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는 않다. 그래도 차체가 직접 선로 위를 굴러가는 것보다는 줄에 매달려서 움직이는 게 게 오르막 같은 걸 오를 때는 더 나은 면모가 있다. 엘리베이터는 아예 수직 강하를 해야 하니 구동 원리가 정확하게 이 범주에 속하긴 한다. (물론 교통수단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뭣한 물건이지만)

철도는 작은 마찰로 인해 수송 효율이 좋은 것과 별개로 오르막에는 매우 취약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보조가 과거에 더욱 필요했다. 케이블카나 곤돌라 같은 물건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교통수단의 구동 원리에 대한 안목을 더 넓힐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12 08:38 2017/07/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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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날개셋 한글 입력기 9.0과 타자연습 3.7이 나온 지 한 달 정도가 돼 간다.
다음 버전은 입력기 9.1과 타자연습 3.71 또는 3.8이 될 듯하다. 현재는 입력기보다 타자연습의 작업이 더 많이 진행되었으며, 타자연습의 다음 버전은 다른 변화는 없이 "게임 업그레이드"가 될 가능성이 높아져 있다. 그 구체적인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타자 게임의 체력· 방어력 시스템 개편

본인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여러 분야들 중 게임은 하는 것과 만드는 것 모두 별 소질이나 인연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게임 개발자 겸 기획자의 코스프레라도 한 경험을 말하자면 날개셋 타자연습의 게임을 설계· 개발한 이력을 내세우겠다.

날개셋 타자연습의 게임을 구성하는 현재와 같은 12개 레벨과 이들의 난이도· 컨셉, 그리고 엔딩까지 대략 20분에 달하는 플레이 컨텐츠는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더 고칠 필요가 없다. 특별히 4단 자리(맨윗자리)와 겹받침 글쇠를 집중 공략하는 레벨 9~11의 지옥훈련은 정말 세벌식 전용 타자연습이니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오타 페널티가 있는 놈(한별. 잠시 동안 타자를 할 수 없음), 그와는 정반대로 정확도가 100%가 아니어도 단어가 인식되는 놈으로(미르) 주인공을 차별화한 것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게임의 모든 시스템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각 레벨별로 더 다양한 색상의 배경을 넣었어야 했는데 레벨 3~5는 그 당시 뭔 생각을 하고 배경을 디자인 했는지, 하늘과 땅 컨셉을 너무 많이 우려먹어 있다.
그리고 배경에도 애니메이션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걸 구현하지 못했다. 가령, 레벨 2는 별들이 반짝이거나 '우주 여행' 화면 보호기처럼 쓱쓱 입체적으로 날아다니는 게 원래의 내 의도였다. 텍스처 비트맵 배경은 텍스처가 조금씩 스크롤되고, 다른 그러데이션 무늬 기반 배경은 허접한 팔레트 스크롤 같은 거라도 넣어서 움직이게 말이다.

그래픽 다음으로 음악은? 레벨별로 분위기를 고려해서 지금과 같은 여섯 곡을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선정했으며, 이 역시 큰 틀에서는 후회가 없다. 명곡이긴 하지만 다들 유행 지난 1990년대의 너무 오래된 곡인 게 문제일 뿐..
딴 걸로 교체하려 해도 mp3 음원이 대세가 된 요즘 세상에 미디 파일을 구하기란 몹시 힘들 듯하다.

그래픽이나 사운드 같은 외형적인 요소 말고 게임 메카닉 알고리즘 차원에서 내가 제일 문제 의식을 느끼고 우선적으로 고치고 싶었던 건 주인공의 HP와 방어력 시스템이다. 의도는 "오타에 취약해서 다루기 힘든 주인공에게 그에 상응하는 맷집을 더 줘서 어려운 레벨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한다."이긴 하지만, 체력(HP) 시스템이 주인공별로 쓸데없이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졌다는 게 오랜 세월 동안 느껴졌다.

타자 게임을 처음 만들던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의 방어력 업글 시스템에서 착안하여 지금과 같은 5단계 업글을 도입했었다. 게임을 첫 레벨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대략 레벨 8 무렵부터 방어력이 5단계로 풀업 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요 시스템을 갈아엎고, Doom/Quake의 시스템에서 착안한 armor(장갑/갑옷) 기반 방어력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세 주인공은 초기 체력과 최대 축적 가능 체력이 100으로 모두 동일하게 맞춰진다. 그리고 없애지 못한 단어로 인해 입는 대미지 역시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체력 회복 바이러스를 맞았을 때 늘어나는 체력의 양도 동일하다.
현재 아름은 시간이 흐르면 100까지 체력을 서서히 자동 회복하며, 한별은 레벨을 클리어 했을 때 체력이 50 미만이면 일부를 보상하는 기능이 있다. 한편, 미르는 점수가 일정 간격에 도달했을 때 체력을 보상하는 기능이 있다. 이런 보상 시스템은 괜히 복잡하고 게임에서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안 되어 보이는 관계로, 모두 폐지할 예정이다.

그럼 세 주인공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딱 하나, armor point가 있을 때의 작용 효과이다.
예전에 '방어력 n단계 업그레이드'라는 효과를 내던 바이러스는 'armor 보충'으로 바뀌며, 이때 armor는 언제나 100으로 '만땅' 상태가 된다.

armor가 있는 상태에서 대미지를 입으면 한별의 경우, armor는 (1) 현재 남아 있는 armor 양과 (2) 전체 대미지의 1/3 둘 중 최소값만치 깎인다. armor가 음수가 될 수는 없으니까.. armor는 자기가 깎이는 양의 3배에 달하는 대미지를 커버하고, 그 과정에서 체력은 그 전체 대미지의 40% 남짓만치만 감소하게 한다. 즉, 체력 대미지(5/12)와 armor 대미지(1/3)를 합해도 3/4이니, 전체 합이 원래 대미지보다 더 작다. armor가 몸빵에 굉장히 큰 기여를 하는 셈이다.

특성이 세 주인공의 중간에 속하는 아름은 armor와 체력이 그냥 정확하게 반반씩 깎이니 armor는 그야말로 추가적인 보조 체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르는 타자 편의가 가장 뛰어난 대신 armor의 운용 효율이 가장 떨어진다. armor를 먹어도 체력 방호 효과는 1/3 남짓에 불과하고, 체력 대미지와 armor 대미지를 합하면 1보다 크다. 오랜 고민 끝에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개편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날개셋 타자 게임에서는 방어력 업그레이드 단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게임을 하면서 hit(health) point뿐만 아니라 armor point도 마치 스타에서 미네랄과 가스처럼 이중으로 신경 쓰게 된다. 가스가 없으면 고급 유닛을 만들 수 없듯, 체력이 아무리 많아도 armor가 없으면 피격 때 체력을 훨씬 더 빠르게 급격히 잃게 된다. armor의 양은 체력 막대 밑에 노란식으로 표시된다.

어떤 주인공이든 대미지를 입었을 때 armor의 감소량은 체력보다 더 적으면 적지 많지는 않다. 하지만 armor 보충 바이러스는 체력 보충 바이러스보다 등장 빈도가 낮다. 그리고 armor가 아무리 많이 남아 있어도 체력이 0이 돼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고 게임 오버이니, 죽기 직전에 당장 더 중요한 것은 armor보다는 체력이다. 이렇게 게임의 양상이 이전보다 다채롭게 변할 것이다. 이 관계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체력 장갑
처음 시작할 때는 만땅(100)임 없음(0)
보충 바이러스 절반(50)씩, 하지만 더 자주 등장 단번에 만땅(100) 보충
맷집 장갑 없을 때 입는 대미지 양은 모든 주인공 동일 장갑의 방어력은 주인공마다 차이 있음
중요도 아무리 장갑이 많이 남아 있어도 체력이 0이 되면 게임 끝, 말짱 도루묵 optional. 하지만 장갑 없이 체력만으로는 상위 레벨에서 오래 버티기 힘듦

이전에는 주인공이 최고의 맷집과 방어력을 갖추려면 체력도 150이니 120이니 하는 최대치로 축적해 놓고 방어력 업그레이드도 여러 레벨들을 거치면서 5단계까지 해 놔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원래 체력 상태에서 'armor 보충' 바이러스 한 번만 받으면 이론적인 최대의 맷집과 방어력 상태가 갖춰진다. 아주 단순해진다.

물론 축적 가능한 체력의 절대적인 양은 예전 시스템 때에 비해 감소했다. 그 대신, 체력 회복 및 armor 보충 바이러스가 이전보다 약간 더 자주 등장하고, 회복시켜 주는 양도 이전보다 더 많다. 체력 회복은 세 주인공 공통으로 50으로, 전체의 절반을 그냥 준다. 축적에 의존하지 말고 그때 그때 바이러스에 의한 보급 뽀록에 의존하는 가중치가 더 커진다.
이렇게 시스템을 개편해 놓고 내가 몇 판 게임을 해 보니 끝탄을 깨거나 못 깨고 죽는 빈도는 그럭저럭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안 그래도 타자 게임은 또 건드리기가 민망한 굉장한 레거시 코드가 돼 있다. 내 게임이 사용한 DirectDraw, DirectMusic 이런 라이브러리도 완전 한물 간 레거시 기술들인 거 본인도 잘 안다. =_=;;
하지만 지난번 날개셋 한글 입력기 9.0에서 24픽셀 비트맵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먼지 쌓였던 타자 게임 쪽 코드를 오랜만에 건드리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동기와 자극을 받아 오랜 숙제로 남아 있던 체력· 방어력 시스템 개편을 해치웠다. 이건 그래픽· 사운드와는 무관하게 0순위로 꼭 갈아엎고 싶었기 때문이다.

2. 그 외의 게임의 변경· 개선 사항

(1) 150% (144dpi) 이상 배율에서 게임이 1024*768 해상도의 "전체 화면"에서 실행됐을 때, 화면이 정확하게 모니터 전체에 꽉 차지 않고 어중간하게 부분적으로만 차던 문제를 해결했다. 원인을 한참을 찾아 보니, 운영체제가 전체 화면 해상도까지 쓸데없이 high-DPI scaling을 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제멋대로 1024*768보다 약간 높은 해상도로 바꿔서 전체 화면을 들어갔었다.

기존 3.7의 경우, EXE 파일에 대한 속성 열어서 호환성 탭 - "높은 DPI 설정에서 디스플레이 배율을 사용하지 않음" 옵션을 수동으로 켜 주면 문제가 해결되고, 다음 버전에서는 이게 exe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적용되게 했다.
저 옵션 자체는 high-DPI scaling이 존재하지 않는 구닥다리 Windows 7에도 있던데, 이전 OS에서는 무슨 기능을 했는지 궁금하다.

(2) 이 기회에 비트맵 글꼴 말고 게임에서 출력되는 다른 한글 문장들의 글꼴을 너무 식상한 굴림 대신 '맑은 고딕'으로 바꿨다. 이런 것도 노력 대비 프로그램의 낡은 이미지의 쇄신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다만, 맑은 고딕은 잘 알다시피 같은 크기라 해도 상대적인 크기, 줄 간격이라든가 종횡비 같은 글꼴의 기본적인 metric이 굴림· 바탕류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불러들이는 글꼴 이름만 달랑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전반적인 문자 배치 방식도 다같이 보정하고 바꿔 줘야 했다.

3. 화면 키보드의 live preview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보조 입력 도구 중에는 '화면 키보드'가 있다.
얘는 단순히 현재 선택돼 있는 입력 항목의 글쇠배열을 static하게 보여주는 기능만 있다가, 2년쯤 전에는 실제로 눌러지거나 떼어진 글쇠를 시각적으로 highlight해 주는 옵션이 추가되었다. 그 뒤로는 큰 변화가 없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실제 입력 문자 표시'라는 꽤 재미있는 옵션이 우클릭 메뉴에 추가되었다. 얘는 글쇠의 입력이 끝날 때마다 글쇠배열들의 수식을 현재 변수값을 기준으로 재계산한다. 그래서 지금 이 글쇠를 눌렀을 때 실제로 입력되는 문자가 화면에 정확하게 표시되게 한다.

두벌식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중성을 입력하는 순간부터 자음들 모양이 초성에서 종성으로 바뀌며, 조합이 종료되거나 초성을 입력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초성으로 돌아온다. 세벌식 390의 경우 / 자리는 ㅗ를 입력 가능한 문맥에서는 ㅗ가 됐다가 다시 /로 돌아온다.

복벌식이나 신세벌식처럼 상황에 따라 여러 글쇠들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입력 방식을 쓰고 있을 때는 이 옵션을 켜고 화면 키보드를 사용하는 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인 왼손과 오른손에 세벌식과 두벌식의 자음이 모두 표시되어 있지만, 두벌이나 세벌로 타자가 시작되면 모든 글쇠배열이 두벌이나 세벌 기준으로 싹 바뀌며, 조합이 종료되면 배열이 다시 초기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런 기능의 필요성을 이미 수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보조 입력 도구 쪽 기능을 강화하기 시작한 이번 버전에서야 이 기능을 구현해 넣을 수 있었다.

입력기는 현재 이 아이템 하나만 작업이 됐다. 예전의 8.8 버전에서는 '빠른설정'이 하나 더 추가됐는데 다음 9.1에서는 새로운 '입력 도구'들이 여러 개 더 추가될 것이다.
보조 입력 도구는 먼 옛날 5.3~5.5x 버전 시기에 화면 키보드, 한손 입력기, 문자표, 부수 한자 입력 이렇게 4개가 추가된 이래로 지금까지 아무 변화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기능 추가와는 성격이 다른 분야에 모처럼 사용자의 입력에 시각적인 피드백과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들이 잔뜩 도입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9 08:30 2017/07/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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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자산 탐방기

본인은 올해 초에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 역할을 하는 서울의 서쪽 병풍인 봉산· 앵봉산을 다녀왔다. 그 다음으로는 서울과 하남시의 경계 역할을 하는 동쪽 병풍인 일자산을 다녀오겠다고 진작부터 계획하고 있었는데, 서쪽 답사 이후 70여 일이 지난 뒤에야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둘 다 서울 둘레길에 포함되어 있다.

봉산· 앵봉산도 해발 2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일자산은 최고 높은 곳이 150m가 채 안 될 정도로 더욱 낮은 산이다. 그러니 등산 대상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고, 그냥 교외의 고지대에 자리잡은 공원 내지 산책로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름처럼 꼭대기 능선이 一자 모양으로 수 km에 걸쳐 있기 때문에 걷기에는 좋다.

일자산의 존재감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선형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5호선은 잘 알다시피 강동 역을 끝으로 동쪽으로 더 직진하지 않고 상일동과 마천이라는 두 지선으로 갈라지는데, 일자산은 그 상일동· 마천 지선의 선형과 얼추 평행하게 동쪽 끝을 가로막고 있는 형태나 마찬가지이다.

천호대로를 타고 강동 역보다 더 동쪽으로 가면 서울 시가지가 끝나고 밭이나 화훼단지 농장 같은 거나 볼 수 있는 그린벨트 완충지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외곽순환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지난 뒤부터는 행정구역이 서울에서 하남으로 바뀐다. 일자산은 서울과 하남의 경계 역할을 하다가 북쪽 끝에서 천호대로와 만난다.

본인은 이런 지리 정보를 염두에 두고, 5호선 마천 지선의 첫 정거장인 둔촌동 역에서 내려서 일자산으로 접근을 시작했다. 둔촌동 역 근처에는 지은 지 꽤 오래 된 듯한 주공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전통 시장도 길 건너편 주변에 보였다.
그리고 여기 버스 정류장에는 서울 버스뿐만 아니라 하남시 내부로 들어가는 하남시 소속 마을버스도 일부 다녔다. 본인은 여기서 하남 마을버스 7번 또는 8번으로 환승해서 일자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훈 병원 내지 대순진리회 방면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버스는 평소에도 배차 간격이 20분을 넘고, 주말· 공휴일엔 45분까지 벌어지며 심지어 수틀리면 아예 운휴까지 하는 막장 버스였다. 아이고, 일자산 근처가 그렇게까지 오지는 아닌 것 같던데 이 무슨 낭패..
결국 산기슭까지 1.5km 정도 거리는 그냥 걸어서 갔다. 지하철 한두 정거장, 버스 서너 정거장 거리인데 어차피 도저히 못 걸을 거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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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 게 보였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의 동남쪽 말단 구간 중에는 경찰 병원도 있는데 보훈 병원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군인도 경찰도 아닌 다른 국가유공자를 위한 병원 같아 보이긴 하다)
5호선은 상일동 지선이 더 연장되어 검단산 기슭까지 갈 예정이라는데, 9호선이 동쪽 끝까지 연장되면 일자산을 찾아가기가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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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일자산 진입로를 발견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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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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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조금 걷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지가 나왔다. 예전에 망우산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던 거 생각이 났다.
당시 현장에서 눈으로 본 광경은 꽃과 풀 색깔이 어우러져서 색감이 이 사진으로 찍힌 것보다 더 밝고 알록달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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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지난 뒤에는 이렇게 잘 닦인 산책로가 이어졌다. 산악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도 될 법해 보이는데, 안전을 위해서 자제해 달라는 표지판도 곁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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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현대의 기준으로도 서울의 완전 끝자락인데 하물며 옛날에는 한양과 아무 관계 없는 깡촌일 뿐이었다. 일자산은 성곽 같은 역사 유물도 없고, 군사 시설도 없는 듣보잡 동네 뒷산 언덕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인 에피소드가 딱 하나 있었다.
둔촌 '이 집'이라고 고려 말(1300년대, 신 돈과 동시대)의 재야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말년에는 일자산 일대에서 속세를 떠나 살았다고 한다. 굉장히 옛날 인물이고 지금까지 본인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인데 아무튼.. 젊은 시절에 많은 독서와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서 저런 격언을 남긴 모양이다. 참고로 무덤은 서울이 아닌 성남시에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이라는 지명은 바로 저 사람의 아호에서 비롯되었다. 村이라는 글자가 있지만 의외로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 강서구의 등촌동과는 전혀 관계 없으니 헷갈릴 일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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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길은 계속 이어졌다. 서울 쪽보다는 하남 쪽이 전망이 더 좋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훨씬 더 시골 분위기였다. 그리고 워낙 낮은 산이니 딱히 전망을 볼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단, 북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주치는 등산객? 방문객이 갈수록 많아져서 아무도 없는 배경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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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산의 정상처럼 생긴 공터에 도달했다. 등산이라고 할 것도 없는 언덕인데 시계와 온갖 운동 기구와 벤치가 비치되어 있고, 사진에 안 나왔지만 근처엔 컵라면과 음료수를 파는 산장(?) 천막도 있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벤치와 탁자에 앉아서 쉬거나 음식을 먹는 일행도 많이 보여서 이거 무슨 꽤 높은 산의 정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자산의 산책로는 이것으로 끝이고, 그 다음으로는 내려가는 비탈길만 있었다. 하산은 그냥 5분이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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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니 앞에는 뭔가 초원/정원처럼 꾸미려고 준비 중인 듯한 넓은 공터가 보였다. 모래 뻘밭에다 인위로 심어 놓은 나무가 듬성듬성 놓여 있으니 무슨 사막 같다. 차나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은 포장되고, 식물이 있는 곳에는 잔디가 어서 심겨야 할 것 같다.
일자산은 출발 지점이나 도착 지점 모두 주차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차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편도 동선으로 인해 차마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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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둔촌동에서 출발해서 천호대로의 하남 초이동 근처 구간에서 일자산 산책을 마쳤다. 산에서 걸은 거리는 약 3km 정도 되고, 하산 후에 버스 정류장까지는 또 600m 정도 걸었다. 그러니 전부 합하면 최소한 5km 이상을 걸었다. 진짜 등산 매니아들은 이 정도는 약과고 10수 km 이상도 걷긴 하는데...

아까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 서울 강동구에는 일자산의 북쪽으로 명일 근린공원과 고덕산 같은 언덕 숲길이 더 있으며 이 역시 공식적으로 서울 둘레길의 일부이다. 한데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시내를 통과해야 하긴 하지만. 또한 둘레길은 아니지만 길동 생태 공원이 있고 일자산에도 산책로 말고 다른 공원이 더 있다. 인서울의 말석 외곽 위치여서 교통이 불편한 건 단점이겠지만 이런 거 하나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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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들이 굉장히 예뻐서 사진에다 몇 장 담았다. 여기는 경치 좋고 높고 유명한 산의 기슭이어서 등산용품 매점이나 식당· 유원지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법적으로 개발 제한 구역이다 보니 화훼단지나 주말농장 같은 것만 있다. 서울에서 이런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도 야금야금 그린벨트가 풀리고 개발되고 곳곳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으니, 이런 광경을 보는 날도 얼마 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자연의 정취가 있는 곳은 많이 돌아다녀야겠다. 평지는 자동차로 다니고, 산은 운동을 겸하는 등산으로 다니면서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6 08:37 2017/07/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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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언어 관찰 메모

1. '값'과 두 값의 '차이'

C/C++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두 포인터의 차이는 정수로 계산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를 보면 속도의 차이와 당장 지금 위치의 차이, 그리고 어떤 특정 값하고 두 값의 차이 같은 개념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쓰는 어휘가 많은 걸 알 수 있다. 수학으로 치면 전자는 f(x)의 값이고 후자는 도함수 f'(x)의 값과 얼추 비슷하겠다.
예전 글에서 이미 언급한 아이템도 있겠지만 그런 예들을 한데 다시 늘어놓아 보았다.

- 시각과 시간: 두 시각의 차이가 시간이다. "현재 시간은?"이 아니라 "현재 시각은?"이 맞다(What time is it now?). 그런데 일단 만능 세계어 영어부터가 time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 안 하긴 한다. time table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학교 '시간표'야 '9시부터 10시까지 1교시' 시간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숫자만 쭈욱 늘어서 있는 열차 운행 스케줄은 명백히 '시각표'라고 해야 맞다. "9시 정각 서울 발차, 9시 10분 영등포 도착, 9시 11분 영등포 출발" 같은 각각의 시각이 중요하니까..

- 빠름과 이름, 느림과 늦음: 현재 9시 10분인데 시계가 13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시계가 3분 이르다고 해야 원칙적으로 맞다. 빠른 건 그 시계의 무브먼트가 문제가 있어서 가만히 놔두면 1시간이 아니라 59분 30초 만에 1시간치 눈금이 흘러갈 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빠름'의 결과로 인해 시계의 표시 시각이 언젠가 '일러질' 수 있을 뿐, 빠름 그 자체는 지금 당장 시계 바늘이 어느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 수와 번호: 숫자는 수량을 나타낼 때도 쓰고 무언가를 그냥 식별할 때도 쓰인다. 영어로는 똑같이 number. 그래서 성경에서 짐승의 수 666이 수량와 번호 중 짐승의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숫자인지 알쏭달쏭할 때가 있다.

- 째와 번째: 일단 영어의 nth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우리말은 그냥 '째'이다. '번째'는 nth time이다. 허나 '째'라고만 하면 자꾸 단순 순서 이상으로 서열, 랭크의 느낌이 강해서 요즘은 앞에 '번'이 구분 없이 쓸데없이 자꾸 끼어 들어오는 것 같다.

- 음고와 음정: 두 음고(pitch)의 차이가 음정일 뿐이다. 음정을 영어로는 interval이라고 하니 이보다 명확할 수 없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에는 조를 높이거나 낮추는 버튼의 이름이 그냥 '음정 -+'이다. 음높이를 정확하게 맞춰서 노래를 못 부르는 음치를 보고 음정이 안 맞다고 그런다.
용어의 쓰임이 '시각'과 '시간'만큼이나 뭔가 좀 이상하다..;; 과학 실험에다 비유하면, "측정값이 안 맞다."가 아니라 "오차가 안 맞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두 백분율(퍼센트)의 차이는 퍼센트 포인트이다. 20%이던 것이 50% 증가하면 30%가 되지만, 50%포인트가 증가하면 70%가 된다. 훌륭한 액션 영화 테이큰에는 "Your arrogance offends me. For that the rate just went up 10%."라는 대사가 있는데, 상납금 요율이 진짜 1.1배 상승인지 아니면, 실제로는 10%에서 또 10%포인트가 상승한 20%를 가리키는지 문맥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20%로 협상이 마무리 되니까 말이다.

2. 힘은 빛을 만든다

'힘'이라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고 뜻의 표현 범위가 넓은 단어이다. 영어로 하면 보통 power, strength가 떠오르고, 과학에서 사용하는 질량 곱하기 가속도로서의 힘은 force이다.
이 힘은 찰나의 순간에 가속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힘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힘이 쌓인 거리가 곱해진 '일'인 경우가 많다. 마력수가 높은 엔진을 흔히 힘 좋은 고성능 엔진이라고 하는데, 마력이 괜히 단위 시간당 '일률'인 게 아니다. 마치 질량보다는 그게 발현된 형태인 무게· 중력이 더 친근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런데 이런 단어 말고 might도 평소에 동음이의어인 조동사로 하도 많이 쓰여서 그렇지 사실은 '힘, 세력'을 뜻하는 단어이다. mighty라고 '강한, 힘센, 힘 있는'이라는 형용사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마이티 마우스, 현대 자동차 트럭 마이티처럼.
유명한 왈도체 표현인 "힘 세고 강한 아침"도 Mighty fine morning인 거 잘 알려져 있다.

음절초에 파찰음이 없어서 딱히 힘 있게 들리지는 않지만, 얘는 마초 액션물에서도 은근히 종종 볼 수 있는 단어이다.
모탈 컴뱃의 격파 시험 Test your might!
그리고 둠 코믹스에서 Might makes light! "힘은 빛을 만든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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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문구인 독일어 Arbeit macht Frei에서 단어만 바꿔서 Macht macht Licht를 떠올리게 한다. 독일어는 공교롭게도 '힘' 명사와 '만들다, 행동하다' 동사가 동음이의어이다..;;

3. 형용사 no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 싶은데, 한국어는 부사와 용언(동사)을 좋아하는 언어이고 영어만치 명사를 이것저것 수식하는 관형어 쪽은 훨씬 덜 발달해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어는 영어로 치면 형용사 more, less, no 따위에 동일한 품사로 대응하는 어휘가 없다. 그래서 '더/덜'은 체언이 아닌 용언에만 붙을 수 있는 부사이고, '없다' 역시 용언이다. 이거 영어와 한국어 사이의 굉장히 큰 차이이며, 상호 번역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다. 단적인 예로 Oh no! More lemmings 같은 게임 타이틀을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시겠는가?

그래서 한국어는 None, nobody라든가 더 나아가 void 같은 단어도 한 단어로 대응하는 번역이 없으며 기껏해야 '없다'에다 명사형 전성어미가 붙은 '없음', 또는 한자어 無 접두사로 비슷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단, 반대로 영어는 '없다', '모르다' 같은 용언이 용언 형태로 딱 떨어지게 있지는 않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모르다'가 한 단어 동사로 존재하는 언어는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 모국어인 한국어밖에 못 봤다. 기억이나 지식이 없는 게 무슨 동작과 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구를 아는 것의 반대로 누구를 모른다는 상태를 타동사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편리한 점이긴 하다.

4. out of

하루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한국어로는.. "너그러운 자비의 마음을 베풀어서 자네에게 또 한번 살아남을 기회를 주겠다."라고 번역된 대사가 영어 자막으로는 "Now, out of the mercy of my heart, I will give you one more chance to live a long life."라고 번역된 걸 봤다.
out of라는 건 굉장히 뜻이 많고 추상적인 단어이다. 의미가 반대로 달라질 수도 있을 정도로 뜻이 많아서 문제이며, 성경 번역에서도 이거 의미가 왔다갔다 한다.

컴퓨터에서 out of는 '-없음, -부족'이라는 뜻으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나 역시 Out of memory라는 응용 프로그램 에러 메시지, Out of data in line xx라는 GWBASIC 에러 메시지에서 out of를 난생 처음으로 봤다. 그래서 '아오안'(out of 안중 = 관심없음) 같은 말도 있다.
하지만 out of는 저 영어 자막에서 보듯이 from, among 비스무리하게 뭔가 '출처, origin'을 뜻하기도 한다. "뭔가를 어떤 집단으로부터 밖으로 끄집어냄"에서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해석 방식이 달라진다. 저 문맥에서는 run 같은 동사가 앞에 붙어야 out of가 '고갈, 부족'이라는 뜻이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더는 나도 인내심이 한계가 있거든? 못 참겠거든?" 이럴 때도 당연히 out of patience가 쓰이니 말이다.

또한, out of가 인내심 같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물리적인 장소를 받을 때에도 '-밖에서', '-밖으로'가 다 되는 듯. 의외로 골치아프다.

5. die / be dead

한국어는 영어처럼 완료형· 수동태 같은 게 없거나 발달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사의 일반 과거형이 0에서 1로 바뀌는 그 움직임 자체뿐만 아니라 0에서 1로 바뀌어 있는 그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개가 죽었다"라는 말을 영작하면 "XXX died"가 아닌 경우가 많다. 십중팔구 "XXX is dead"가 맞는 번역이다. 당신이 밥숟가락을 놓았고 저승사자 내지 천사가 "넌 이제 죽었어. 나랑 같이 하늘로 가자" 이런 말을 한다면 당연히 "You are dead."이다.

초점이 숨이 끊어지는 동작이 아니라 현재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어도 '죽어 있다'라고 말을 풀어서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게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어로 "틀렸다"도 영어로는 it is / you are wrong이다. 한국어로 과거 시제 동사인 것이 영어로는 현재 시제 be 동사 + 형용사인 것이다. 하긴, 일상생활에서 '틀린다, 틀리게 된다'라고 저 동사를 현재 시제로 곧이곧대로 쓸 일은 매우 드문 것 같다. 그러니 '틀리다'의 현재 시제의 의미가 자꾸 '다르다'처럼 변질돼 가는 것일 테고.

그 반면, "고인은 2017년 몇 월 며칠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이 게임은 너무 어려워서 나도 다섯 번쯤은 죽은 뒤에야 깰 수 있었다" 이럴 때에는 영어로도 동사 died(혹은 그에 상응하는 경어체 동사)가 쓰인다. 관점의 차이를 아시겠는가?
또한 신학적으로는 예수님 역시 일회적인 죽으심을 나타낼 때 died이다. 그분은 한때 die 하셨지만 언제까지나 be dead는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찾다'라는 단어에도 존재한다. 한국어의 '찾다'는 찾는 동작 자체를 가리키는 seek/look for과, 그 동작의 결과로 인해서 무언가· 누군가와 실제로 연결이 성사되는 find에 대한 구분이 없다.
성경의 "seek, and ye shall find." 그리고 테이큰 대사"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를 생각해 보자. 이게 '죽다'로 치면 "Die, and ye shall be dead"와 비슷한 관계인 셈이다.

6. 그 밖에

(1) 가끔씩 본인은 총에 맞은 건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을 때에나 쓰는 게 맞지 않나(be struck) 생각한다. 날아오는 야구공에 맞듯이 "총알"에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총알이 아닌 총에는 "쏘였다"고(be shot) 말해야 맞지 않을까?
뭐, 한국어는 머리카락을 자른 것을 머리 자른다(!!!)고도 줄여 말하는 언어인데, 총에 맞는 것쯤이야.. 총알도 총의 연장선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다. 다만, 활의 경우는 내 언어 직관이 크게 이상하지 않은 한, 화살에 맞았다고 꼬박꼬박 말하지 활에 맞았다고는 잘 안 그러는 것 같다!

(2) abandoned이나 forsaken을 번역할 때는 '버려진'이라고 잘만 쓰면서 왜 lost를 번역할 때 '잃어버려진'이라고는 선뜻 표현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잃어버리다'는 피동형으로 잘 안 쓰는 게 기독교계 문서 사역 번역계에서 불문율인가 보다. 덧붙이자면, 난 개인적으로 번역투 피동형을 기피한답시고 given도 괜히 주어가 불분명한 능동으로 번역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 영어 같은 외래어가 국어로 들어오면, 원래는 다의어나 동음이의어이던 것이 토착화 과정에서 상상도 못 할 기괴한 방법으로 '구분'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도트(문자 그대로 픽셀 화소. 도트 프린터, 도트 노가다)와 닷(인터넷스러움), 네트(구기 종목 경기장에서 쓰이는 그물망;;)와 넷(역시 IT스러움) 같은 건 대표적인 예이고, 3D조차도 그렇다. '삼디'라고 읽으면 더럽고 어렵고 위험하다는 뜻이고 '쓰리디'라고 읽으면 왠지 삼차원 입체라는 의미가 된다. 물론 3D 업종를 '쓰리디 업종'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 어감상은 느낌이 좀 덜하다.

(4) '물 불 / 맑다 밝다 / 묽다 붉다' 이런 관계를 보면 한국어에도 꽤 오묘한 구석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말소리와 의미가 서로 아무렇게나 형성된 게 아니어 보이기 때문이다.
ㅁ과 ㅂ 계열 음운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대표적인 쌍은 어머니와 아버지(맘마 빠빠..)이다. 가장 발음하기 쉬운 축에 드는 입술소리인 데다 갓난아기가 본능적으로 거의 제일 먼저 구사하는 축에 드는 어휘이다 보니, 저 관계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세계 공통이다. 부/모, papa/mama 등..
그런데 엄마 아빠 말고 물과 불이 관련 심상까지 비슷하게 저렇게 한데 엮이는 건? 한국어 말고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3 08:35 2017/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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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등 상사 동상

한강대교는 한강철교와 더불어 한강의 교량들 중 제일 먼저 생긴 축에 드는 다리이다. 중간에 노들섬을 지나며, 북단에서 남단으로 가는 쪽의 도로 길가에는 이 원등 상사(1935-1966)의 동상이 놓여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분은 우리나라에서 그 옛날 1960년대에 미국까지 다녀오면서 양성된 특전사 소속 스카이다이버였고 낙하산의 전문가였다.
그런데 서울 한강 상공에서 공수 훈련 중에, 한 동료? 후임? 부하?가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추락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신속하게 그에게 접근해서 낙하산을 전개시켜 주기까지는 했는데...

일단 갑작스럽게 펴지는 동료의 그 커다란 낙하산에 맞아서 자기가 팔을 크게 다쳤다. 자동차에서 펼쳐지는 에어백에 맞아서 다치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더 큰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저분은 자기 낙하산을 펼치고 감속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한강 얼음판에 추락사로 순직했다. 1966년 2월, 엄청 옛날 일이다.

공수 훈련 중에 남의 낙하산을 펴 주는 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지상에 고정된 로프 없이 수영만으로 구해 오는 것 이상으로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자유 낙하하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하니 무엇보다 자기도 낙하산을 펴지 않고 일정 구간 자유 낙하하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우주선 도킹도 아니고.. 게다가 주어진 시간도 초 단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그냥 둘 다 죽기 십상인데 저분은 그래도 동료를 구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이분은 강 재구 소령과 비슷한 연배의 군인이고 순직 타이밍도(1965) 별로 차이가 안 나지만, 육사 출신 장교가 아니어서 그런지, 동상이 비록 다리 위나마 엄연히 서울 중심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 소령에 비해서는 훨씬 알려져 있지 않다.

동상이 하늘을 향해 엄지를 척 세우고 있는 포즈인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저것도 말소리로 소통이 안 되는 그쪽 업계에서 통용되는 제스처 은어라고 한다.
그리고 밑에는 고인이 다른 전우의 낙하산을 펴 주는 상황을 상상해서 그린 양각 부조 동판도 만들어져 있다.

연휴가 아니면 낮에 한강대교 건널 일이 좀체 없었을 테니, 본인은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사진을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1 08:34 2017/07/0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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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검증

*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도저히 어려운 주제이다 보니, 팩트폭격과 더불어 조금 거친 표현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1. 반미 반전 이런 구호나 운동 극혐

1950년 6월 25일 당일이 일요일이었는데 올해도 6월 25일이 일요일이구나.
2000년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불순불온한 진영이 없애라고 외쳐 온 공략 대상을 쭉 살펴보면 (1) 주한미군, (2) 국가보안법, (3) 국정원, 그 다음은 (4) 싸드로 정리된다.
(1)에 대해서 적을 이롭게 하는 사악한 선동질 한 동일한 놈들이 (2), (3)을 거쳐서 (4)에 대해 외치는 구호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외치는 구호일 리는 당연히 전혀 절대 만무하다.

저건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북괴의 입장을 100% 정확하게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놈들이 원하는 것의 정반대로 하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다. 북괴가 이런 쪽으로는 의외로 단순무식하게 일관성이 있다. 허나, 지구상에서 제일 반미 할 자격 없는 애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저 짓거리 하는 걸 보면 울화가 치미는 걸 억제할 수 없다.

배은망덕한 놈들, 광우뻥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로부터 배운 게 없는 미개한 놈들, 군복 차림에 가스통 들고 흥분해서 날뛰는 틀딱충 꼰대보다 더 사악한 놈들. 병역특례 부실복무나 하고서 안보 장사(?) 만화 그리고 있는 모 웹툰 작가보다도 더 위선적인 놈들.

이런 날 내 머리에 곧장 떠오른 성경 본문은 에스겔서 16장이었다.
남조선 인민들의 기구한 내력과 분에 넘치는 은혜, 그리고 병들고 썩어빠진 정신 상태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와 절묘하게 씽크되는 걸 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저 본문을 꼭 보고 두 번 보시길..
그리고 열왕기상 20장도 같이 보면 좋다. 자기의 적을 보고도 "그는 내 형제니라"(왕상 20:32) 이러는 멍청한 왕을 두면 그 밑의 백성이 얼마나 고생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전쟁의 반대가 평화인 건 자기가 힘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전쟁의 반대는 그냥 항복과 노예이다!
꼭 자기들이 전쟁을 하거나 평화를 유지할 선택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 본인은 굉장한 어이없음을 느낀다. 남조선이 무슨 스위스 같은 영구중립국이기라도 했냐? 일제 강점기에 6· 25를 겪은 게 100년도 채 안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저런 식으로 하냐? 하다못해 중· 고등학교에서 일진 양아치들한테 안 당하기 위해서라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건(혹은 최소한 힘이 센 것처럼 보이는 것) 너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반도에서 Imagine 가사나 읊어 대면서 반전 (반미) 평화, 서로 싸우지 맙시다, 남북이 서로 협력하고 화해합시다 이딴 소리 하는 놈들은 그냥 99%는 빨갱이 내지 걔네들에게 놀아나는 저능아들이다. 내 말이 기분 나쁘면 북괴 수뇌부 앞에서나 그런 평화타령 한번 늘어놓아 보든가.

그리고 내가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경험상 아동문학이 어떻고 사교육 주입식 입시교육 없는 세상, 대안학교.. 애들 참교육이 어떻고 이러는 부류 중에 사상 이상한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옛날에 TV로도 방영됐던 몽실 언니 작가도 보니까 참.. 죄송한 말이지만 불순한 분 같지는 않고 정말 순진한 건지...;;;
유언장 중에 한 대목이 이거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그게 당신이 원한다고 굶주리는 애들한테 가 지나? 어유..
누군 뭐 바보여서 자금줄 압박, 고립, 대북제재 하는 줄 아나?
우리나라도 못살던 시절엔 몽실언니 같은 불쌍한 애들 많았지. 사회 분위기도 반쯤 살벌한 병영 분위기에 약자 인권 훨씬 더 열악했던 것도 사실이지.

근데 애들이 그렇게 불쌍하면.. <태양 아래> 같은 영화는 본 적 있나? 거기 나오는 주인공 진미는 오늘 내일 굶어죽는 꽃제비도 아니고 평양 금수저 최상류층이다. 그런 애들조차 완전히 로봇으로 세뇌당하고 개조돼서 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보라는 부탁에도 바싹 긴장하고는 당령 읊어대고 앉았는데 걔들은 불쌍하다는 생각 안 드냐?

하이튼 절대악과 필요악 뒤섞어서 사람 속이는 건 도사들이야.. 썩을놈들이.
작정하고 사리분별 못하는 애들 오염시키고, 그리고 법조인들 차근차근 적화시키고. 통상적인 경제력과 병력만 빼고 체제 전복시키는 방법도 정말 치밀하다니까. 한 10대, 20대 나이 때까지는 사회 한쪽에서의 부조리 때문에 필요악만 나쁜 줄 알고 의분에 차서 무작정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딴 생각을 어떻게 30대 40대가 가도록 평생 무덤까지 가져갈 수가 있냐?

"나라가 이제 온통 용공사상에 오염되었다. 좋을 리 없어! 왜 우리는 국가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종북 빨갱이들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는거지? 내가 개인적으로 페북과 블로그에 맨날 이런 글이나 싸질러댄다 해도, 남조선은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 돼 버리겠나?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아, 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 뭐 패러디인지는 알아서 검색을..;; -_-;

2. 바퀴벌레가 극소수 한두 마리 좀 있어 봤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 종북 같은 게 어디 있냐?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과 경제력 차이가 서로 쨉이 안 되는데 극소수 '김 일성 만세' 이러는 또라이가 설령 있다 한들, 일부 병신 미친놈들일 뿐이지 나라에 무슨 위협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 교회식으로 비유하자면
콘스탄틴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 진짜로 기독교가 세상을 이기고 영적 승리를 쟁취한 줄로 안다거나,
요즘 세상에 사탄 마귀가 어디 있냐, 지옥 같은 거 없다 이렇게 생각한다거나 혹은
성경 변개라는 게 "너는 루시퍼를 숭배할지니라" 이렇게 고치는 게 전부인 줄로 아는 참 순진하고 한심한 분별력으로는 이념 쪽으로도 저렇게 naive하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만만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이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집 싱크대에 바퀴벌레 한두 마리가 주기적으로 대놓고 보일 정도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얼마나 우글거리고 있을까?
법정에서까지 극소수 "김 일성 만세" 외치는 미친놈이 있을 정도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빨갱이들은 도대체 몇 마리나 될까?
몇백 명이 먹는 급식 중 극소수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나 바퀴벌레가 한 마리쯤 나와 봤자 식당 위생은 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걸까?
이렇게 말이다.

굳이 핵이나 미사일 같은 비대칭무기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군사력과 경제력 차이가 제아무리 쨉이 안 돼도 이념 적화로 인해서 순식간에 나라 망하는 건, 아주 쬐그만 구멍 하나 때문에 댐이 무너지고 풍선이 순식간에 터지는 것만큼이나,
몇 년을 재부팅 없이 돌아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메모리 leak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뻗는 것만큼이나 아주 쉽게 가능한 일이다.

조잡한 폭탄으로 자그마한 구멍만 뚫어도 커다란 여객기가 공중분해될 수 있고(대한항공 858처럼), 비슷한 자그마한 결함으로 인해 컬럼비아 우주왕복선도 그냥 확 공중분해돼 버렸었다.
왜냐하면 댐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담겨 있었고, 비행기와 우주선 역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서 좀체 구경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시국에 대해서도 바로 저런 그림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볼까?
루시퍼의 죄와 아담의 죄(그리고 이전 세상과 현 세상)를 분간 못 하는 정도의 통찰력이라면, 그냥 나라 윗대가리들의 평범한 부정부패 비리랑 아예 적에다가 퍼주는 반역죄의 차이도 분간 못 할 수는 있겠다.
성경과 현 시국... 물론 분야는 다르지만 일관된 논리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3. 국정원의 여론몰이? 댓글 알바?

우리나라 같은 곳은 지나친 방종과 무질서, 안전불감증이 문제이지, 뭐 누가 검열을 하네, 민주주의가 죽었네 공안 통치네 뭐네 하는 건 정말 1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헛소리이다. 그런 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도 카톡 대신에 라인이나 ISIL이나 쓴다는 듣보잡 메신저들 잘 쓰고 계시나? 루머 괴담 하고는.. ㅉㅉ

요즘 같은 세상에 국정원 요원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얼굴 안 보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얼마든지 공작 활동을 한다. 그곳으로부터 지령이 대놓고 내려오고 유언비어 거짓 선동이 하도 많이 나돌고 불길처럼 퍼져 나가니, 저건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국정원에서도 자기 정체를 숨기고 맞불 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쉽게 말해 악에 대해 같은 악으로 맞서서 대응한 것뿐이다.

왜? 국정원은 세상 정부 소속의 방첩기관일 뿐, 무슨 신약 기독교회 같은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가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인 것만큼이나 거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니까 말이다.

흉악범들이 교수대에서 사형 당하는 걸 보고 동정하기에 앞서 흉악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를 훨씬 더 동정해야 하듯.. 국정원의 존재가 불편한 것보다 국정원 같은 기관을 필요하게 만드는 놈들의 존재가 훨씬 더 불편하고 거북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진짜" 검열과 공안 통치 같은 건 그나마 지금 국정원을 무너뜨리고 해체하자고 외치는 애들의 바람이 이뤄졌을 때에나 진짜로 찾아올 것이다.

물론 국정원 요원들이 무능해서 임무 수행이 실패하고, 정체가 들켜서 언론 타고 존재를 노출해 버린 것은 실드 칠 수 없는 흑역사이다. 옛날에 스파르타 애들이 훈련 중에 민가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가 잡히면, 도둑질 때문에 벌받은 게 아니라 병신같이 들키고 잡힌 것 자체 때문에 벌받았듯이 말이다.
저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걸 봐 주는 곳인 만큼, 평가 내지 비판할 때도 의도나 과정 같은 거 따질 필요 없이 오로지 결과만으로 냉정하게 하면 된다. 단순히 본연의 임무에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없는 간첩을 조작해서 무고한 사람을 조진 것만큼이나 욕해도 된다.

4. (잘못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말로는'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게 마치 결혼처럼 나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현실에서는 남과 북 체제 중 하나가 물리적으로 없어지지 않는 한 통일 그딴 거 저언혀, 네버 가능하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인권 같은 걸 기본적으로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신념에 따른 병역(집총) 거부자를 계속해서 실형으로 처벌해야만 하는 이유와도 정확하게 일맥상통한다. 유엔까지는 모르겠다만, 엠네스티나 EU 따위가 남의 나라 안보와 체제까지 책임지고 지켜 주지는 않는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을 최신식 국립호텔에서 1년 반만 살다 나오는 걸로 끝나게 해 주는 국가에서 사는 것을 매우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뭐, 그 뒤로도 몇 년간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에다 취업· 여권 발급 같은 데서 불이익이 뒤끝으로 더 따르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법조계도 장사를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니, 여증들 상대하는 건 이골이 나 있다. 판결문은 보통 "님들에게 대체복무 같은 시스템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구제책이 없고 사법부가 월권을 해서 그런 걸 마련해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실형 땅땅땅" 이런 식으로 나오는 편이다.

사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실용주의(pragmatism) 관점으로만 접근하자면야 지뢰 제거 내지, 군복무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왕창 힘든 사회봉사로 퉁치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와 사상이 성경 교리로나 사회 통념으로나 근본적으로 옳지 못하고 해롭고 잘못됐다는 것을 일깨우는 차원에서는 계속 실형 때려서 전과자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전국민이 동성애자이면 사회가 유지가 되겠으며,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전국민이 여증 신자가 된다면 남조선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유지가 되겠는가?

개인적으로 수혈 안 받는 거야 자유이지만, 자기 애한테도 수혈 안 시키고 심지어 자기가 의료인이 돼서 다른 환자한테까지 수혈 안 시키는 건 갈수록 죄질이 더 나빠지는 범죄이듯이 말이다. (이것도 성경하고 아무 상관 없음)
여증들은 수혈과 집총 거부하는 그 집념으로 술 같은 거나 거부했으면 어지간한 기독교인들 이상으로 더 좋은 평판을 얻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침략 전쟁을 전혀 지향하지 않으며 근본 이념이 철저하게 방어적이다. 방어를 위한 전쟁 대비조차 하지 말자는 애들은 진짜 온갖 악독한 욕을 들어도 싼 나쁜놈들이다.

5. 5· 18과 6· 25의 차이

뭐, 전대갈이 법이 규정하는 절차대로 곱게 권좌에 오른 건 아니었으니 5· 18은 일단은 누구 말마따나 의로운(?) 항쟁으로 시작했다고 치자. 그러나 나중에 누구의 거짓 선동이 있었건 뭐가 있었건 어찌 됐든 폭동으로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나중엔 결국 정치 항쟁으로 변질되었듯이.
그리고 투입된 군인들 역시 과잉방어건, 스트레스와 패닉 속에서 맛이 가서 그랬든, 잘못된 정보에 입각했든 어쨌든 민간인을 죽인 게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광주 5· 18은 제주 4· 3 사태만큼이나 일종의 쌍방과실이다. 앞으로는 그렇게 자국의 민· 관· 군 간에 비극적인 오해와 오사가 없게 진상을 규명하고 화해할 필요가 있다. 민간인 피해 보상은 해야겠지만, 어쨌든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목숨 바친 군경에 대해서도 명예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예우해야 한다. 그리고 정황상 둘을 이간질한 진짜 배후의 악한 제3자 세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이것도 꼼꼼히 연구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에 반해 6· 25는 빼도 박도 못하고 북괴의 고의성과 과실이 100%로 오래 전부터 입증된 침략 전쟁이다. 이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나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를 왜곡하는 사악하고 나쁜놈이 하는 짓이 뭐냐 하면.. 정말로 쌍방과실인 사건에 대해서는 오로지 국가 공권력만 일방적으로 나쁜놈으로 몰아가고, 100:0인 전쟁에 대해서는 '남북 공동 책임 반반씩' 이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빨갱이라도 6· 25를 무슨 남조선이 먼저 벌인 북침 이럴 수는 없으니, 그 대신 오로지 국군이나 미군 시행착오 저지르고 뭘 민간인 학살을 하고 잘못한 것만 부각시킨다.
그리고 미국놈들만 없었으면 이 모든 부작용(?) 없이 우리끼리 통일 이뤄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 말한다. 물론, 무슨 통일인지는 절대로 얘기 안 한다.
이런 쳐죽일 놈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서 김 정호 옥사설보다 더 해롭고 악질적인 역사 왜곡을 책과 교육을 통해서 퍼뜨리고 있는 한, 나는 일제의 역사 왜곡 같은 훨씬 덜 중요한 왜곡엔 제대로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전 두환 회고록이 무슨 히틀러의 <나의 투쟁> 같은 취급을 받고 어디서는 아예 출판 금지 신청까지 했다는데..
뭐 동의한다. 단, 이 승만에 대해서 거짓말 헛소리 잔뜩 늘어놓고 애들 정신건강 해치는 기존 불쏘시개들도 다같이 싹 회수· 폐기 처분해 준다면 말이다. 나도 역사 인식에 대해서 마음에 안 드는 걸 지적하라면 그들 만만찮게 많이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5· 18은 설령 폭동 없이 정말 의로운(?) 항쟁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4· 19보다는 격이 낮고, 4· 19는 6· 25 참전 용사 유공자보다 더 낮은 격으로 취급돼야 마땅하다. 겨우 이 승만· 전 두환 끌어내리는 데 실패했고 1공 4공 5공이 좀 더 오래 갔다 해도 남조선이 근본적으로 북한 꼴 날 일은 절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민주화? 직선제?는 되면 더 좋고 안 돼도 상관없거나 어쩔 수 없고, 북괴 같은 안보 위협만 없으면 굳이 난리 안 쳐도 더 쉽게 실현됐을 일이었다.
이것이 팩트다.

6.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치인 같은 건 없음 -- 위선이나 떨지 말길

요즘 맨날 나오는 말이 수저 계급론에 경제 민주화, 갑질 이런 것들이다. 물론 요즘 사회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아무리 사회가 빈부격차와 개인의 사리사욕을 인정하면서 발전한다 해도 그 격차라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게 저열한 시민의식과 결합하면서 계층간의 불만과 위화감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썩어빠진 부자들 기득권들에 대한 증오 부추기면서 세상을 바꾸자느니 적폐청산 하자고 떠드는 애들은 그들이야말로 이미 부자 기득권이며, 눈먼 나랏돈 말고 자기 재산을 남에게 기꺼이 기부하고 베풀어서 자기까지 그 평등의 대상에 포함시킬 생각이라고는 단 1도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입시 제도를 평준화시키더라도 자기 자식은 이미 외국 명문 사립학교 다 보낸 뒤에나 한다. 적폐청산? 정말 개뿔 헛소리다. 그냥 당장 입에 발린 거짓말로 우매한 민중을 선동질하는 라이온 킹의 스카 같은 나쁜놈일 뿐이다.

기업을 적대시하고 사업가가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이면 거기는 그냥 군경· 관료· 법조 공무원 같은 철밥통이 아닌 평범한 기술 스킬로는 부자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고 다같이 거지 되어 평등해지는 세상일 뿐이다. 기업만 부패하지 정부는 그럼 부패하지 않을 것 같냐?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점이 바로 이거다. 사람이 먼저 < "지 아들이 먼저, 북괴가 먼저" 이런 것 보고도 모르겠냐?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없는 건 가난한 서민을 위한 의적(?) 흉악범이 없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제아무리 주둥이로는 썩어빠진 부자들 기득권들 증오한다는 사회불만형 연쇄살인범 흉악범죄자들이 정작 현실에서 정말 죽여 줬으면 하는 놈들 죽이는 경우란 전혀에 가깝게 없다. 99.9%는 어차피 같은 서민이나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밖에 해치지 못한다! 옛날에 지존파도 그렇고 연쇄살인마 지 춘길도 그렇고 선례는 수두룩하다.

지가 국회의원이고 재벌이고 유명인사 죽이고 싶다고 해서 우주최강 철통보안 속에서 사는 그 사람들이 니 손에 선뜻 죽어 주겠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ㅉㅉㅉ 무슨 윤 봉길· 안 중근의 후예 나셨네. 근데 어쩌나, 그때는 그래도 CCTV 금속 탐지기라도 없던 시절인데.

흉악범죄자의 욕망이 절대 실현 불가능인 것만큼이나 "능력껏 벌어서 필요껏 나눠 쓰는 세상", "사람이 먼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이딴 구호들도 서로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차원에서 절대 실현 불가능이다. 저것들 전~부 기출문제들이니 앞으로 또 어떤 선전선동 구호가 문제로 출제될지 예상해 보시라.
그러니 헬조선을 조금이라도 헬이 덜 되게 하고 싶고 타락 속도를 늦추고 싶으면 그딴 망상보다 당장 북괴에다 안 퍼 주는 세상부터 만들려 힘쓰는 게 훨씬 더 현실성 있고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다.

부정부패 없는 세상, 군대가 필요 없는 세상 같은 거야 그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이룩할 수 없다. 그건 예수님의 재림 말고는 답 없는 거 맞다. 허나, 북괴에게 안 퍼 주는 세상,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수작' 하에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적과 내통하지 않는 세상 정도는 인간의 힘으로도 이룩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우리에겐 이것부터가 먼저다.

옛날에 잉카 황제가 스페인 군대에게서 황금을 댓다리 많이 퍼줘서 평화를 사는 게 성공했던가? 개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그런데 또 같은 사기를 치는 인간 악마가 결국 대통령까지 돼서 주한 미군 철수에 싸드 철회까지 밀어붙이니, 지금이 무슨 재벌 욕할 때이고 겨우 친일파 같은 걸 욕할 때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지금 정치판은 청렴하냐 부패했냐, 친부자냐 친서민이냐 같은 구도로 양 진영이 나뉜 게 전혀, 절대 아니다.
둘 다 부자 기득권들이고 둘 다 기회주의적이며 비슷하게 부패했다! 단지 한쪽은 그래도 국가관과 안보관이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정도까지는 아니고(병역비리 방산비리까지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대놓고 북괴가 대화 상대라고 사기를 치는 양의 탈을 쓴 이리요, 마음의 조국은 따로 있는 놈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최악과 차악 중에서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걸 그 숱한 시행착오로도 깨닫지 못하는 바보 병신이라면 손발이 직접 고생해 보고서 몸으로 깨닫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긴 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 포함 억울하게 피해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될 대로 되라고 무책임하게는 말 못 하겠다.
간첩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은 정치 성향 취향도 아니고 좌우 균형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영역이기 때문에 본인은 그 어떤 강경한 표현도 불사하면서 팩트 폭격을 종종 가할 것이며, 욕 먹거나 명성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28 01:44 2017/06/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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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동차계, 특히 자가용이 아닌 상용차 분야에 존재해 온 노인학대의 예를 꼽자면 새한 덤프 트럭이라든가 영운기, 제무시 트럭 같은 물건이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이 분야를 더 파고들어 보면 제무시 트럭보다 더한 무지막지한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먼 옛날에는 증기 기관차가 있었으며 북한에는 아직도 저게 현역으로 굴러다닌다. 일제 말기에는 연료가 부족하자 군부에서는 송진 등 별 희한한 폐급 물질을 집어넣어서 비행기를 띄우고 배를 굴리려 했다.

이런 것까지는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옛날 유물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일명 '목탄차' 되시겠다.
옛날에 물자가 부족하고 못살던 시절엔 자동차에 이런 동력원이 쓰이기도 했다는 걸 난생 처음 알았다. 이거 무슨 바이오 디젤 기술의 전신격인가? 완전 신기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상시에 자동차나 비행기 엔진에다 위스키 같은 독주를 부어서 연료로 썼다는 얘기는 본인도 들어 봤다. 그런데 자동차에 웬 나무라니?
참고로 증기 기관 얘기가 아니다. 증기 터빈 같은 외연 기관은 육중한 보일러 때문에 저런 덩치의 자동차에는 애초에 탑재할 수가 없다. 발전소나 선박급은 돼야 한다.

목탄차는 나무(또는 더 품질 좋고 잘 타는 숯)를 태웠을 때 같이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및 탄화수소 계열 기체, 일명 '목가스'를 수집 후, 이걸 폭발시켜서 힘을 얻는다. 그러니 고체 연료 기반이긴 하지만 엄연한 내연 기관이다. 하긴, 이 문맥에서는 '태우다'보다 '건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일산화탄소처럼 최소한의 연소 에너지가 있는 배기가스를 얻으려면 목재를 산소가 충분치 않은 곳에서 불완전 연소로 어째 잘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목가스.. 옛날에 아동용 과학책에서 산화와 연소 이런 단원에서 보고서 몇 년 만에 처음 보는가 모르겠다.
그럼 목가스 엔진은 휘발유 같은 점화 플러그 방식일까, 아니면 디젤 같은 압착 점화 방식일까? 자료가 부족해서 잘 모르겠지만 후자가 기술적으로 만들기 더 어려우니 아마 여느 휘발유나 LPG 차량과 마찬가지로 전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미국 차들은 옛날에 버스나 트럭조차도 쿨하게 휘발유 엔진으로 많이 만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 제조사들이 애초부터 목탄차 같은 가난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든 적은 없다. 목탄차는 처음에는 다 정상적인 석유 자동차로 만들어졌는데 차를 굴릴 석유가 없자 나중에 다 현지에서 목탄차 형태로 '개조'된 물건들이다.
안 그래도 넉넉한 짐받이 공간이 있는 트럭이 개조하기 제일 좋다. 물을 끓이지는 않으니 물탱크 같은 건 없고, 그냥 나무를 건류하는 아궁이가 마치 화물인 것처럼 짐받이 맨 앞쪽에 달린다. 그리고 조수 역할을 하는 화부(?)가 짐받이에 타서 매캐한 연기 마시면서 나무를 집어넣어 줘야 한다. 증기 기관에서부터 첨단 로켓 엔진에 이르기까지 어느 엔진이건 고체 연료는 연료 공급의 자동화와 적절한 화력 조절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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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차의 열악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떤 나무를 태우느냐에 따라 희든 검든 연기가 엄청 많이 올라올 뿐만 아니라 엔진 내부에서 재를 치우고 그을음을 닦아내는 정비도 자주 해 줘야 한다.
시동 거는 것도 핸들 옆의 차키를 깔끔하게 돌리는 형태는 전혀 아니고 192, 30년대 자동차처럼 조수가 뒤의 크랭크축을 죽어라고 돌려 줘야 걸릴까 말까다. 즉, 목탄차는 근본적으로 1인 운전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습한 건 성능이다..;; 겨우 저렇게 목가스를 박박 긁어 모아서 굴러가는 차가 정상적인 기름 차량처럼 매끄럽게, 힘 좋게, 빠르게 굴라갈 거라는 기대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에서는 1940년대에, 북한에서는 2000년대까지 돌아다닌 그런 소/중형 트럭급의 목탄차는 평지에서는 그냥 소 달구지보다 약간 빠른 정도로나 달릴 수 있었다. 평지에서 컨디션이 최고 좋아야 시속 3~40km, 약간 오르막은 10km안팎.. 그냥 달리기로 따라잡힐 수 있다.

잘 가다가도 언제 퍼질지 몰랐으며, 그나마 짐 가득 싣고 오르막 오르는 건...? 불가능이었다. 조수는 슬금슬금 오르던 차가 퍼져서 뒤로 밀려서 미끄러져 내려가지나 않게 뒷바퀴 뒤에다가 굄목을 얹을 준비를 해야 했다.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다같이 힘을 합쳐서 차를 밀거나.
물론 이건 목탄 엔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연료 탓이 더 큰 문제였다. 목탄차를 굴려야 할 정도인 가난한 동네에 나무라도 질 좋은 게 많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옛날 기록부터 살펴보자.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군용차에 쓰기 위해 이 땅에서 휘발유를 몽땅 착취해 가자 그 대용으로 등장한 목탄가스 자동차들은 광복을 맞은 직후까지 운행됐다. 당시의 목탄버스는 꽁무니에 달린 숯불 화통에 숯 두 포를 넣고 풀무질을 해 가스가 발생하면 그 힘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숯을 싣고 다닐 자리가 없어 시골버스 정류소에는 매일 오전 또는 오후에 한 번씩 숯 포대를 싣고 다니며 배급해주는 숯 배달 버스가 나타나기도 했다.

정류소에 도착한 버스는 손님이 내리고 탈 동안 조수가 꽁무니 화통에 숯을 가득 채우고 풀무질을 해 불을 벌겋게 피워 놓아야 다음 정류소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곡식자루 장보따리들을 가득 싣고 가다가 높은 고개라도 만나면 거북이 흉내를 내야 했는데, 이런 때 개구쟁이들을 만났다 하면 그들의 노리갯감이 되기 일쑤였다.

고개주변 마을의 꼬마들이 버스만 오면 뒤따라 올라가며 장난을 치고, 심지어는 화통의 가스밸브까지 열어 놓아 가스가 몽땅 빠지는 바람에 힘겹게 올라가던 버스가 서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부터 조수와 개구쟁이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일대 추격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1분 47초 이후 지점부터.

그나마 휘발유가 모자라 목탄이나 카바이트로 달리던 트럭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참나무 숯 한 포대를 트럭 위 보일러에 넣고서 엔진을 돌리면 눈물이 나도록 매운 시꺼먼 연기가 나고 크랭크 축에 연결한 쇠막대를 열심히 돌려야 시동이 걸리던 목탄차.
걸핏하면 고장 나서 산길 어디서든 수리를 해야 했던 그 털털이 고물 트럭이라 할지라도, 잘해야 소 달구지 정도 얻어 타거나 아니면 그저 걷고 또 걸어야 했던 시골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러기에 쌀 석 되 값을 추렴해 삼십 리 장터를 다녀오던 사람들은 흔들리는 트럭 짐받이를 꼭 잡고서도 자랑스러운 얼굴이었고 들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잠시 허리를 펴고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산허리로 가느다란 연기가 솟고 털털거리는 목탄차 소리가 나면 차를 향해 냅다 뛰었습니다.


이야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제무시 트럭도 1940년대부터 운용되었고 이건 힘이라도 왕창 좋아서 2000년대에까지 쓰인다지만 목탄차는 도대체 뭐냐..;;
그리고 남한은 그나마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일제 대신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아무리 늦어도 1950년대 이후로 목탄차 얘기는 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북에서는 이거 몰면서 개고생했던 탈북자의 증언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검색하면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다.

목탄차를 5년간 직접 몰았었다는 장 씨는 “목탄차의 원료로 가장 좋은 것은 참나무 숯인데 그 숯이 귀하다 보니 지름이 5cm 이상만 되는 참나무는 닥치는 대로 차량 연료로 사용하고 나중엔 그것도 구하기 어려워 알갱이를 털어낸 강냉이 속대를 목탄차 연료로 사용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 연료나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보니 툭하면 고장에다 평지에서는 소달구지보다 조금 나을 정도이고 언덕길에서는 타고 가던 사람이 내려서 밀어야 하는 게 목탄차”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차를 5년이나 몰았는지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야 석유가 부족해서 그거 대체제로 목탄차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목탄차마저 운용을 중단하는 추세라고 한다. 환경 문제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나무조차도 없고 산에 나무가 씨가 마를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목탄차를 굴릴 필요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목탄차조차 굴릴 여건이 안 되게 됐다는 뜻이다.

어느 나라든지 화석 연료가 대기를 오염시키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화석 연료가 나무를 보호해 주기도 하는 걸 느낀다. 남한만 해도 과거의 산림 녹화 사업이 석탄· 석유의 보급 시기와 잘 맞물린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고 말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바이오 디젤이 마냥 화석 연료의 대체제가 되기도 어렵다.

증기 기관차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기름 먹는 올드카도 아니고 나무를 저렇게 활용하는 기괴한 물건이 옛날에 있었다는 것이 심히 놀랍기 그지없다. 남북 공통으로 목탄차에 가장 좋은 연료가 '참나무 숯'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긴, 북한도 한동안은 목탄차 따위 안 굴리다가 병신짓 때문에 나라 내부 경제가 완전히 붕괴한 1980년대 이후부터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상, 서울 지리 역사에 이어 자동차 쪽의 역사 얘기를 늘어놓아 보았다.
이거 무슨.. 아이티(나라)에서는 가난한 서민들이 진흙 쿠키-_-를 먹는다는데 그거 자동차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자동차는 기계이니 수틀리면 저렇게 목탄차로 개조라도 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굶주리더라도 다른 가축이 먹는 풀이나 종이나 흙, 육식동물이 먹는 상하고 썩은 고기를 그것도 날로 먹을 수는 없다. 신체를 생화학적으로 개조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_-;;

Posted by 사무엘

2017/06/25 19:22 2017/06/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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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옛 모습

1. 한강 물줄기

난 옛날 조선 시대엔 서울이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는 것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좁게는 사대문 안 한정이고 제2권역으로 더 확장해도 지금의 내부순환로와 얼추 비슷한 성저십리 안이다. 그래서 남산이 지금의 관악산이나 청계산만큼이나 서울의 남쪽 끝이었으며, 한강 강변에는 이미 사형장(새남터, 절두산, 사육신묘), 발전소 같은 시설이 있을 정도였다.

오늘날 미군 부대가 들어서 있는 용산 부지는 예로부터 원래 병영이 있던 한양 외곽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거여· 마천 일대의 특전사 부대만큼이나 외곽인 셈인데 지금은 그 군부대조차도 신도시 개발과 아파트 건설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이전 예정이다. 더 남쪽으로 가면 지금의 김포 공항 같은 공항이 여의도에 있었다.

잠실엔 말 그대로 누에밭이나 있었고, 마장동에는 말을 키우는 시설이 있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이미 거기만 해도 서울 중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이었던 것이다. 20세기 이후의 현대와 같은 교통· 통신, 전기, 건축, 상하수도 인프라를 잣대로 옛날 도시의 규모 한계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그런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한강의 모양도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다는 사실은 본인이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고 굉장히 충격적이다.
옛날에는 한강물이 굉장히 맑고 얼추 바닷가 같은 모래사장도 있어서 사람들이 저기서 바로 해수욕 하듯이 수영을 했다는 것까지는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밤섬이 일부 폭파되고 여의도 부지가 개발되고, 1980년대 중반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서 올림픽대로가 닦이고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 온통 고수부지와 공원이 만들어진 것까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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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옛날 사진을 보니 한강이 원래는 지금보다 하중도가 더 많이 있었고 강폭과 수심이 지금보다 더 작고 얕았던 것 같다. 건축 용도로 한강 바닥의 모래를 많이 파내기도 했다고 들었다만..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난지도나 뚝섬은 여의도만큼이나 진짜 문자 그대로 한강의 지류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심지어는 잠실도 섬이었다. 세상에 '잠실島'라니! 무슨 대체역사물에 나오는 가상의 서울 모습도 아니고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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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제는 한강에다가 철교를 표함한 교량을 놓았으며, 철길이 나 있는 서쪽(서울 동남쪽의 산들을 피해서)으로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를 경성부에 편입시켰고 1920년대 을축년 대홍수를 한번 당한 뒤엔 저지대에 대한 치수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강의 물줄기를 뜯어고치거나 오늘날 강남이라 불리는 지역(그 당시 광주군)을 수도권 배후로서 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6· 25 전쟁 때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는 말도 지금처럼 도봉구부터 강동· 송파· 강서· 금천구 같은 거대한 영역을 몽땅 빼앗겼다는 게 아니라 그냥 한강 이북을 빼앗겼다는 뜻이었다.

지금과 같은 서울 개발은 1960년대 이후 박통 때부터 시작됐다. 휴전 이후 서울이 안 그래도 북괴와 더 가까워져 버렸는데 북쪽에는 또 북한산이라는 거대한 장애물도 있으니, 북쪽으로 서울을 확장하는 건 도저히 안 되겠고 한강 이남을 서울로 편입시켜서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저런 하중도들은 확실하게 섬도 내륙도 아니면서 교통이 불편하고 장맛비만 맞으면 침수되니, 개발 효율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좋은 땅이 아니었다. 그래서 땅을 리모델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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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 사업 같은 걸 바다가 아닌 하천 버전으로 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그래도 그렇지 인간의 토목 기술은 한강 같은 큰 강의 물줄기도 저렇게 마음대로 바꿔서 지도의 그림까지 송두리째 달라지게 하는구나.
석촌 호수가 그냥 생긴 게 아니라 바로 옛날에 한강의 본류(섬의 남쪽)가 지나던 흔적이라고 한다. 여러 모로 흥미롭다.

2. 강북의 옛날 버스 터미널과 운동장

그럼 다음으로 교통 쪽 얘기로 넘어가겠다.
부산에 지금과 같은 김해 공항이 있기 전에 수영 비행장(지금의 센텀시티 부지)이라는 게 있었듯, 서울도 김포 공항이 생기기 전엔 무려 여의도에 민· 군 공용 비행장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서울의 덩치가 커지면서 공항은 저 서쪽 끝으로 이전했다. 김포 비행장은 시작은 공군 기지였는데 완전한 싸제 민간 공항으로 바뀐 것이다.

공항처럼 철도 역시 도시가 커짐에 따라, 혹은 복선전철화 개량을 하는 과정에서 역과 선로가 외곽으로 이설되거나 지하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서울, 영등포, 청량리 같은 역은 그래도 일제 강점기에 처음 생겼을 때의 위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1920년대 초에 진짜 서울 역이던 서대문 역이 없어지고 그 앞의 남대문이 서울/경성 역할을 하게 된 변화는 있지만, 그건 여느 외곽 이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굳이 따지다면 대구 역과 동대구 역의 변화 양상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볼 만하다.

그러면 육상 교통수단인 고속버스 내지 시외버스 터미널은 어떨까?
일단 지금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은 1970년대 후반부터 건설이 시작되어서 1981년에 개장한 것이다. 1970년대엔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과 함께 고속버스 시대가 열리긴 했는데, 서울 여기저기에 고속버스 회사와 터미널이 난립하기 시작한지라 이것들을 이용하기 쉽게 통합하고 이 참에 강남 지방을 육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동서울 터미널은 이보다도 더 늦은 1990년은 다 돼서야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중부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좋은 곳에 버스 터미널을 더 만들어서 경부 고속도로의 수요를 분산하는 게 목표이다. 앞으로 평창 동계 올림픽 덕분에 강원도 쪽의 철도 접근성이 좋아지면 시외버스의 위상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그래도 철도로 최전방까지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이 터미널은 군인들이 여전히 많이 먹여살릴 것 같다.

강남 고속과 동서울 터미널이 서울의 고속· 시외버스들을 평정하기 전에는 서울에 용산, 신촌 등 여러 곳에 버스 터미널과 정류장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것들을 통합할 목적으로 1969년엔 아마 곧 완공될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을 염두에 두고 그 당시로서는 마장동, 지금은 용두동의 동대문구청 부지에 '마장 터미널'이라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만들어졌다. 이건 20년간 운영되다가 1989년, 동서울 터미널의 개장에 즈음해서 없어졌다.

이건 당시 철도의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해 봐도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경춘선 철도가 지금이야 중앙선 망우 이후 구간에서 시작되지만 옛날에는 광운대(성북) 역에서 드리프트를 해서 뻗어나갔고, 더 옛날 완전 초창기에는 성동이라는 자체적인 시점을 갖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 역의 2번 출구와 그 북쪽이 옛 경춘선 선로 겸 경춘선의 시점인 '성동' 역이 있던 자리였다.

그랬는데 1971년에는 경춘선의 서울 시내 시점이던 성동-성북 구간이 폐선되고 그때부터 경춘선은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성북에서 분기하는 것으로 형태가 바뀐 것이다. 경춘선에는 화랑대와 신공덕 역뿐만 아니라 훨씬 더 전에 사라진 역이 있다.
제기동에서 용두는 직선 거리로 600미터가 채 안 된다. 비슷한 시기에 한쪽에서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생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도가 없어진 셈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동대문 운동장 vs 잠실 경기장도 이런 동마장 터미널 vs 강남 터미널 같은 관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동대문 운동장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역사 깊은 체육 시설이지만 서울 올림픽 때는 딱히 쓰이지 않다가 벌써 10년쯤 전에 철거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4호선 지하철역 승강장은 벽면에 온통 호돌이가 그려져 있어서 여기가 올림픽 시설이기라도 했는지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더라.

3. 서울 톨게이트

그럼, 서울의 관문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글을 맺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의 사진을 검색해 보면 완전 옛날에 그냥 발로 만든 듯한 서체이던 시절, 그리고 HY울릉도체를 쓰던 시절(2000년대 말까지), 그 뒤로 지금의 서울남산체를 쓰는 시절 이렇게 셋으로 크게 나뉜다.

서울 톨게이트도 처음에는 양재 IC 이남에 말 그대로 서울의 남쪽 끝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7년 10월에 쿨하게 청계산 기슭의 달래내고개를 건너서 저 남쪽 성남 궁내동으로 톨게이트를 옮기고 폭도 크게 확장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저 시기는 공교롭게도 대한항공 858편 사고가 터지기 얼마 전이었다. 당시 계획을 잡아 놨던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의 건설까지 염두에 두고 톨게이트를 넉넉하게 남쪽으로 옮긴 듯하다.

예전에 서울 톨게이트가 있던 자리는 잘 알다시피 '만남의 광장 휴게소'가 돼 있다. 서울 방향은 죽전 휴게소가 마지막인데, 부산 방향은 어째 서울을 벗어나기 전에 이런 휴게소가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하긴, 1980년대 초에는 원효대교도 민자로 건설된 관계로 잠시 통행료를 걷던 시절이 있었다. 다리 자체는 4차선밖에 안 되어 마포나 한남에 비해 아주 작은 주제에 다리의 남단은 폭이 꽤 넓은 편인데, 이게 바로 과거에 톨게이트가 있었던 흔적이다. 그러다가 얼마 못 가 다리가 국가 소유가 되면서 이내 무료로 바뀌었다.

2020년대에는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가 없어지는 걸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면 서울 톨게이트 주변에 차들을 수용하느라 필요하던 방대한 공간들도 필요 없어지고 용도가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형태로 바뀔 것이다. 물론 통행료 과금 체계를 최첨단으로 바꾼다는 말이지, 톨게이트의 제거가 고속도로의 무료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개방식에서 구간내 무료였던 곳도 그때부터는 단 1km를 이용했어도 기본요금이 부과되게 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23 08:35 2017/06/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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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관련 노래

6· 25 전쟁은 그로부터 40년 전의 경술국치와 거의 동급으로, 단군의 후손과 대한민국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돼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박 두진 작사, 김 동진 작곡의 main OST가 만들어져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그 곡 말이다.

박 두진이라 하면 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듯이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시조가 떠오르지만, 동일 인물이 그로부터 겨우 2년 뒤에 6· 25 노래의 가사도 썼다. (<해>는 1949년에 발표되었으니, 아마 해방의 감격을 해에다 비유했을 것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1.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 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 노래는 휴전 후가 아니라 아직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만들어지고 발표되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전국토가 쑥밭이 되고 공산당 빨갱이들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꼴을 생생히 목격한 그 트라우마가 가사에 담겼다.
단순히 나와 다르니까 적군이 아니라 상대방은 도덕적으로 완전 불의하고 천벌 받아야 마땅하며 인간으로서 상종 못 할 역적패당 인간말종임을 적절하게 잘 표현해 놓았다. 2, 3절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곡도 잘 썼다. 슬프고 엄숙한 느낌이 나는 E단조풍으로 시작했다가 그래도 희망적인 G장조 분위기로 끝난다.

북괴 얘기는 쏙 빼고 6· 25가 무슨 남북 공동의 책임인양 가사를 굉장히 이상하게 바꿔 놓은 “신 6· 25 노래”가 한때 나돌았는데 본인은 그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지옥'을 삭제하는 변개와 동급으로 극도로 저주하고 혐오한다.

이것 말고 승리의 노래라는 것도 있다. 다만, 제목이 고유명사 같지 않으며, 요즘은 그런 문구로 검색하면 찬송가가 더 많이 튀어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가사 첫 줄로 검색하는 게 변별력이 훨씬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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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
2. 쳐부수자 공산군 몇 천만이냐 / 우리 국군 진격에 섬멸뿐이다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얘 역시 1951년작이며, 위의 그림은 작사 내지 작곡자가 1951년 1월 11일에 자필로 직접 쓴 악보의 복사 이미지라고 한다. 서울을 도로 빼앗긴 1· 4 후퇴로부터 겨우 1주일 뒤의 일이다. 이 곡은 작사자는 잘 모르겠고 작곡자 권 태호가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라 물고요" 동요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위의 두 노래는 북한군을 공산군 괴뢰군을 넘어 오랑캐라고 일컬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도 비슷하니 6· 25 전쟁이 벌어지던 그 시절엔 진짜 그런 표현이 쓰였는가 보다. 우리 어머니도 “무찌르자 오랑캐”에 맞춰서 고무줄 놀이 하시던 추억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더라.
<멸공의 횃불>보다 훨씬 더 수위가 높고 적개심이 강한 군가풍의 노래가 민간에까지 널리 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1953년 8월,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 된 거의 직후에는 반공 정신 투철한 학생들이 “이렇게 전쟁을 어영부영 끝낼 수는 없다. 반드시 멸공 북진 통일을 완수해야 한다”이러면서 행진을 했는데, 북괴 빨갱이들을 아래와 같은 징그러운 괴물로 묘사하면서 신랄하게 디스를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휴전 회담에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자.

more..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짓거리가 저 괴물의 묘사만치 간악하고 비열했기도 했고, 또 전쟁이란 게 기본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지금도 북괴는 공산주의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이 문제이다. 오늘날 종북 용공분자들은 저런 괴물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양의 탈을 쓰고 평화, 대화, 우리민족끼리 이런 타령이나 늘어놓으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불평 불신풍조 조장하면서 체제 전복 공작을 벌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6월 25일엔 국가 차원에서 기념식을 열어서 6· 25 노래를 부르면서 “이 날을 죽어도 절대 잊지 말자 뿌드득” 그랬다. 그리고 70년대까지는 우리나라를 구해 준 UN도 고맙다면서 UN 창립일까지 공휴일로 지키곤 했다.

저 때에 비해 지금이야 세월이 참 많이 흘렀고 북괴로부터 적어도 재래식 병력에 의한 전쟁 도발 가능성은 0에 가깝게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통일은 무슨 외세나 반통일 수구꼴통들 때문에 못 하는 게 아니라, 99.99% 북괴의 잘못된 주체사상 대남적화 통치 이념 때문에 못 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헌법이 아무리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한들, 북괴가 저런 체제인 한 평화적인 통일은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이다. 둘 중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난 개인적으로 빨갱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며, 빨갱이는 빨갱이라고 적극 부를 것이다. 걔네들의 성품에 잘 어울리는 멸칭이다.
빨갱이 소리 들어서 제아무리 기분 나쁘다 한들, 그게 설마 “6· 25 남북 공동 책임론” 이딴 소리보다 사람 더 열받게 하고 기분 더 잡치게 할까?

아직도 웬 케케묵묵은 반공 타령이냐고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괴가 1950년대나 지금이나 케케묵은 이념이 하나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북괴가 대남적화 이념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을 입증할 생각은 안 하고 오로지 자국 정부가 반공 빌미로 잘못한 것밖에 내세울 줄 모르는 애들은 백 날 떠들어 봐도 내 생각을 절대로 반박하거나 바꾸지 못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잠자코 조용히 있기 바란다.

이상, 6월 25일을 며칠 안 남기고 든 생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20 19:32 2017/06/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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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 며칠 전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 9.0과 함께 공개된 타자연습 3.7의 경우, 명목상 변화 사항은 (1) 프로그램 명칭 표기의 변경과 (2) 144dpi 24픽셀 글꼴 지원이었다. 프로그램 UI가 전반적으로 적절하게 150% 확대될 뿐만 아니라 이때는 게임도 잘 알다시피 640*480이 아닌 1024*768 해상도에서 실행되게 했다.

이것 말고 프로그램 기능의 변화는 전무하다. 그러니 타자연습 3.7은 입력기에 적용된 변화를 그대로 같이 수용한 것만이 전부가 될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작업을 마친 후 타자연습을 테스트를 해 보니, 굳이 직전 버전에만 국한되지 않는 여러 잡다한 문제들이 보였다. 그래서 6월 13일 정식 공개 후에도 불가피하게 프로그램을 몇 차례 고쳐서 재업로드를 해야 했다. DirectDraw 구동하는 낡아빠진 코드를 도대체 얼마 만에 재복습을 한 건지 원...;;

과거 Windows 7 이하 시절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Windows 10 기반의 4K~5K 대형 모니터 컴에서 타자 게임을 전체 화면에서 돌려 본 결과, (1) 점수와 HP가 출력되는 화면 아랫부분이 의도했던 흰색이 아니라 그냥 시꺼멓게 칠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창 모드에서는 이상 없음.
이 문제는 뭐 텍스트를 찍고 색칠을 하는 방법을 바꿔서 해결했다.

그리고 이건 좀 심각한 문제인데, (2) 전체 화면으로 게임 진행 중에 Alt+Tab, win 등으로 프로그램 창을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끔 오류가 발생했다. 소실했던 surface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Windows 7 이하에서는 가끔 배경 화면이 다시 그려지지 않던 것이 Windows 10부터는 그냥 씨크하게 곧장 오류와 crash로 이어졌다.
이 문제도 단순 실수로 추정되는 코드 몇 줄을 정리하고 나니 바로 해결되었다.

끝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괴이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기존의 640*480 해상도는 어느 모니터에서나 그럭저럭 화면이 꽉 찬 형태로 실행되었으며, 요즘 같은 와이드 화면에서는 좌우에만 모니터 차원에서 사용되지 않는 검은 사각형 영역이 생겼다.
그러나 1024*768은 그렇지 않더라. SetDisplayMode로 분명히 1024*768을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비디오 카드 차원에서는 (3) 1280*960 정도로 추정되는 더 큰 화면이 설정된다. 그리고 게임 화면의 오른쪽과 아래에 흰 여백이 불필요하게 생기는 것이었다.

단순히 제어판의 디스플레이 설정에서 1024*768로 맞췄을 때는 이렇지 않고 화면이 꽉 찬 채로 저해상도로 바뀐다. 그런데 DirectDraw를 통해 1024*768로 맞추면 왜 저렇게 되는지, 다른 구형 게임들도 다 저런지 잘 모르겠다.
예전엔 이런 현상을 본 적이 없었는데 최신 운영체제에서 새로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다. 위의 세 이슈 중 (3)만은 이렇다 할 원인과 해결책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뜻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타자연습의 작업량이 예상보다 더 많아졌다.
그 밖에 혹시 타자연습을 오래 많이 써 보신 분은 경험적으로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는데..
오타를 낸 뒤 그 뒤의 한글을 조합하다가 그대로 home, ctrl+왼쪽 화살표 등으로 cursor를 급격하게 앞으로 옮기면 앞, 또는 조합 중이던 글자에 대한 오타 처리가 일시적으로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문제도 이 기회에 같이 해결했다. 이래저래 한글 입력기뿐만 아니라 타자연습도 나름 의미심장한 버전업을 달성했다.

2.
아래 그림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옵션들을 모두 사용했을 때 backspace 글쇠가 동작하는 방식을 순서도로 나타낸 것이다. 로직을 이런 식으로 그림으로 표현할 생각을 지금까지 안 하고 지냈는데, 한번 그려 보니 굉장히 그럴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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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순서도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정신승리법"처럼 뭔가 병맛스러운 절차를 기술할 때에나 개그 목적으로 참 안습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만.. 이것도 나름 20세기 중반쯤에 국제 표준 규격이 제정되어서 전세계에서 동일하게 통용되는 물건이다. 대표적으로 둥근 사각형은 단말(시작과 끝), 직사각형은 처리, 마름모는 분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재래식 순서도는 한눈에 봐도 참으로 GWBASIC의 GOTO스럽게 생겼다. 그래서 NS 흐름도라고 스파게티 코드 분기를 지양하고, 열고 닫고 갔다가 되돌아오는 거.. 코드로 치면 들여쓰기를 그대로 시각화해서 구조화 프로그래밍의 논리 순서를 더 깔끔하게 그릴 수 있게 한 물건도 있다.

그래도 어느 것이든 튜링 기계로서 계산 능력은 서로 동등하다. 종료 조건이 실행 중에 결정되는 분기가 가능하고, 포인터(메모리 어느 값을 읽고 쓸지를 또 메모리로부터 읽어서 결정할 수 있는..)를 구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3.
맥용으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최소한의 핵심 엔진 엑기스만 포팅해서 만들어진다면..
보조 입력 도구나 방대한 제어판 GUI, 비트맵 글꼴 기반 텍스트 에디터 같은 건 몽땅 제낀다.
시스템 계층과 편집기 계층도 빼고 ist 파일을 불러들여서 '한 입력 항목'의 입력기 계층만 제공하는 간단한 macOS용 한글 IME부터 시작하게 되지 싶다. 범위를 이렇게까지 좁혀도 Windows에 특화돼 있는 미세한 키보드 조작 제어라든가 타이머 같은 건 어떻게 구현할지 아직까지는 답을 모르겠다.

게다가 Windows와 맥(그리고 어쩌면 타 OS도)은 가상 키코드 체계도 서로 완전히 다르다. 기본 입력 스키마의 글쇠배열이야 가상 키코드에 구애받지 않는 절대적인 문자 글쇠만을 인식하니까 상관없지만, 추가적인 글쇠 인식 옵션이나 고급 스키마는 가상 키코드를 직통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보정할지 생각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입력 설정 파일의 메타데이터 내지 헤더에 이 가상 키코드의 문맥 정보도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4.
예전에도 몇 차례 글로 밝힌 적 있지만, 본인은 이 바닥을 판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며 이 바닥 사정을 그럭저럭 잘 안다.
한글에 대해서, 한국어에 대해서 그리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비현실적인 환상은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미군 철수와 대남적화를 걱정하게 생긴 와중에 한글이 감히 무슨 세계 언어를 받아 적는 문자로 등극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넘사벽급의 돈줄과 연구 인프라, 학술용어와 정보 데이터를 갖추고 있는 국제어 영어의 지위와 인지도를 타 언어가 흔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미국이 경제· 군사적으로 몰락한다 해도 영어만은 아마 몰락할 일이 없지 싶다. 정작 언어학자· 전공자 전문가들은 민감한 사항이라면서(문화 상대주의? 언어 제국주의?) 이런 언급을 금기시하고 꺼리긴 한다만,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라틴 알파벳과 영어는 여타 언어들에 비해 구조적으로 더 기계 친화적이고, 덜 지저분하고 경쟁력 있고 더 우수한 구석이 있다고 본다.

기왕 우리는 영어를 외국어로서 힘들게 학습해야 하는 처지로 태어났고, 국제어 영어와는 구조가 너무나 다른 군소언어를 쓰는 문화권을 갖게 돼 버렸는데 그럼 이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결국 어설프게 남을 따라가고 뒤쫓는 연구만 해서는 절대 남을 앞설 수 없다. 안 그래도 시작점도 다르고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도 쨉이 안 되는데 무슨 승산을 바라는가? 결국 남과는 완전히 다르고 이 처지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고 개척해야 한다.

우리는 알파벳처럼 쭈욱 글자를 있는 대로 늘어놓기만 하는 풀어쓰기 문자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낱자 구분과 음절 경계 구분이 있고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 같은 문자를 쓰게 됐다. 그리고는 그런 특성이 있으니 한글이 참 우수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단순히 모아쓰기를 기계적으로 구현해 주는 한글 오토마타만 만들어 넣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런 경계 구분 계층이 있고 IME라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걸 괜히 거추장스러운 부담, 오버헤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기왕 그런 게 있다면 이를 이용한 더 창의적이고 편리한 활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글쇠배열 연구나 언어 사전 자동 완성 같은 방법론은 타 언어를 기준으로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것이니 한글의 구조만을 이용한 고유한 improvement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진짜 창의적인 기능을 넣으려면 결국 궁극적으로 두벌식이 아닌 세벌식 글자판을 써야 한다. 이미 1950년대에 공 병우 박사라는 희대의 천재가 기계식 타자기를 기준으로 한글 기계화의 큰 물꼬를 터 놨다. 세벌식이 타자기에서는 직관적인 입력과 기계간 글자판 통일을 실현했다면, 컴퓨터에서는 단순 모아쓰기 입력을 넘어서 동시치기와 더 수월한 입력· 수정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일관된 개발 이념이다. 괜히 한글 갖고 타 언어나 문자에다 오지랖을 부리는 건 내 관심사가 아니고, 그저 우리가 자국어를 입력할 때부터나 make the most out of를 하자는 것이다.
이런 게 있으면 아무리 현실에서 영어가 더 중요하더라도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게 존재하는 게 그저 거추장스러운 잉여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고 뭔가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이 좁아터진 나라와 민족 정체성에 대해서도 일말의 자부심이 더 생기지 않을까?

5.
전국민이 개인 전화기 겸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오늘날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겠지만.. 1990년대까지는 증명 사진을 하나 찍으려 해도 사진관에서 일단 사진을 찍은 뒤, 화학 반응을 수반하는 필름 인상(현상)이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방문해서 사진을 찾아 가야 했다. 무슨 세탁소에 빨래를 맡겼다가 찾아 가듯이 말이다. 그리고 사진관들 출입문과 쇼윈도에는 'xx분 만에 초고속으로 사진 완성' 이런 문구가 적혀 있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어딨냐..;; 사진관에서도 필름을 구성하는 감광 물질에다 화학 반응을 가해서 상(像)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생성된 전자 디지털 이미지 정보를 그냥 고급 종이에다가 고해상도 컬러 인쇄를 해 줄 뿐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develop이라고 하지만, 생물학에서 말하는 '발생'도, 사진의 '인화'도 develop이라고 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세포 분열이 일어나고 사진에 상이 쓰윽 생기듯이 개발 완료에 스르륵 근접하는 중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7/06/18 08:34 2017/06/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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