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을 다 보낸 근황

강원도 여행기가 5부작으로 올라오는 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서 8월이 다 지났다. 말복과 입추를 넘어 광복절도 지났지만 폭염과 열대야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적어도 서울· 수도권 한정으로는 심한 태풍이나 폭우 없이 여름이 무난히 지나간 것 같다. 그렇다고 가뭄도 아니고, 2주에 한 번꼴로 잊을 법하면 비가 내리기도 했으니 참 다행이다. 전력 부족 사태도 없었다.

이 글에서는 본인이 강원도 여행 이후에 8월 동안 개인적으로 행한 여가 생활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1. 호박 호박 호박..!

8월 12일, 올해 갓 수확된 호박이를 가락시장에서 드디어 입수했다. ^^ 바로 며칠 전에 물건이 들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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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제 캠핑의 동반자까지 생겼다.
얘는 한두 달쯤 뒤, 동네 채소 가게에 더 큰 아이들이 들어올 때까지 관상과 힐링용으로 놔 뒀다가 죽을 쒀서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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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호박은 아무 상표나 포장지도 안 붙었고 원산지 표기도 없고 철 지나면 그냥 끝난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유통 과정이 정말 날것 그대로인 듯하다. 단호박이나 애호박하고는 취급되는 방식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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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번 물난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호박, 그리고 거기에다 또 새로 심은(...!) 호박은 그럭저럭 다시 잎을 내며 잘 살고 있다. 심지어 꽃도 한 송이 다시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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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 달 정도밖에 못 살 듯하지만, 서리 맞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잘 자랐으면 좋겠다. ^^ 무럭무럭 자라서 저 잡초들을 잎으로 몽땅 뒤덮어 버리길..!

2. 호박 할머니

일본에 '쿠사마 야요이'라는 설치 예술가가 있는가 보다. 고령에다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본인은 아주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사람.. 정말 열혈 호박 매니아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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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애교가 있고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성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있는 생에
대한 환희의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이야.. 백 남준에다 낸시 랭, 러버 덕을 합친 똘끼인 듯..
정신세계가 좀 특이한 할머니 같다만, 개인적으로 완전 마음에 들어 버렸다. 바로 그거야!!!
앞으로 존경해 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시의 일본어 원문을 좀 보고 싶다.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철도에 미친 작곡가였고, 쿠사마 야요이 할머니는 호박에 미친 예술가이다.

3. 서울 북부 교외의 계곡

올해 본인은 성남, 광주, 철원, 화천, 양구, 고성 등.. 동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그러나 그래도 폭염이 그칠 줄 모르니 지난 8월 18~19일 사이엔 양평· 남양주가 아니라 북쪽으로 짤막하게 피서 여행을 다녀왔다.
캠핑은 조용하고 넓은 공터 있는 일영 유원지에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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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는 물이 더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송추 계곡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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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했더니 정말 대박이었다.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
며칠째 열대야에 고통 받다가.. 모처럼 텐트 창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시원한 곳에서 캠핑이라니..
텐트 안에서 호박 쿠션은 머리에다 베고, 진짜 호박은 팔로 껴안고 잘 잤다.

집에서 막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원도 급으로 먼 것도 아니니 가끔 잊을 법하면 다녀와도 될 것 같다. 일영 유원지에서도 더 깊숙히 상류 쪽으로 가면 일영 계곡이라는 게 나오는구나. 거기도 나중에 가 봐야겠다.
그리고 저기 말고 폐역된 교외선 역 구내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짱박하고 싶기도 하다. 가령, 일영이나 송추 같은 역에서. 그건 겨울에 시도할 만하겠다.

물놀이야 뭐.. 더운 낮에 했으면 훨씬 더 시원하고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도 많고 주차도 훨씬 더 힘들어지니 그것 때문에 가성비가 깎인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도 물놀이는 얼마든지 가능하니 이렇게 잠깐 들렀다 가는 게 더 나았다.

4. 지하철 정기권

올해 8월부터 서울시의 버스 요금이 크게 올라서 지금의 조조할인 요금이 인상 전의 평소 요금과 대등해졌다.;;
그런데 지하철은 나중에 더 찔끔찔끔 오를 예정인지라, 현재는 버스의 기본 요금이 지하철의 기본 요금을 추월한 상태이다.
이를 기념하여 본인은 요 한 달은 지하철 정기권을 결제하고 지하철과 노예 계약을 맺었다.

55000원으로 한 달 동안 회사와 교회를 오가는 교통비를 몽땅 해결하고도 남는 대신.. 버스 환승을 못 한다.
가락시장에서 저 늙은 호박을 사 올 때도 버스 없이 지하철만 갈아타고 많이 걸으면서 좀 애썼다.;;
지하철역에서 교회까지도 1km 남짓 되지만.. 이제 버스 없이 걸어야지.

9월에는 하순에 추석이 껴 있어서 정기권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지금 정기권의 기한이 다한 뒤에는 그냥 일반 교통카드를 쓰다가, 10월에 지하철 요금도 오르기 직전에 또 정기권을 써 보면 어떨까 싶다. 여름이 지나면 폭염도 없어지고 슬슬 걸을 만해지니까.
그럼 올해 하반기도 파이팅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30 08:36 2023/08/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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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합성

대변은 소변과 달리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배설물이 아니라는 건.. 뭐 초· 중학교 수준의 상식이다.
그 뒤 생물에 대해서 공부를 쪼금 더 하면.. 동물이 아닌 식물에 대해서도 직관적이지 않은 의외의 사실을 하나 배우게 된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이산화탄소(+ 빛, 물)를 흡입하고 산소와 양분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 산소 O2는 이산화탄소 CO2를 구성하던 산소가 아니라는 거. 물을 구성하던 산소이다.

길바닥에 채일 정도로 널리고 흔해 빠진 잉여 잡초라 할지라도, 초록색 잎이 달린 놈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작용을 하는 최첨단 생체 기계이다. 물과 공기(이산화탄소)와 햇볕만으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 주는 생체 기계가 없다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당연히 생존할 수가 없다.
물론 잡초는 그 생산량 규모가 거의 자가생존이나 가능한 정도이고, 농작물 대비 극히 보잘것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식물의 잎이 누렇게 시드는 건 그 첨단 생체 기계가 녹슬고 고장 나서 광합성을 못 하게 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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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은 명반응과 암반응이라고 나름 프론트 엔드와 백 엔드의 구분까지 있다. 프론트 엔드에서 물과 빛이 쓰이고(산소 생성), 백 엔드에서 이산화탄소가 동원된다(포도당.. 탄소 고정!). 백 엔드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프론트 엔드의 결과물(ATP, NADPH)이 필요하다.

암반응의 구체적인 원리는 무려 20세기가 돼서야 규명됐고, 특별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신학의 칼빈주의...가 아니고 '칼빈 회로'라고 불린다.
글쎄,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 중에서 디젤만이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것처럼.. 광합성은 프론트와 백 중에서 백 엔드에 대해서만 사람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열기관 쪽에서는 '카르노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한데.. 순환이건 회로건 영어로는 똑같이 cycle이다.

암반응 원리를 규명한 멜빈 캘빈은 그 공로로 196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바로 이듬해 1962년에 왓슨과 크릭이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걸 생각해 보자. DNA 구조 발견하고서 10여 년 만의 일이다.

통상적으로는 물을 전기 분해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가, 그 부산물로 나온 수소가 내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소는 그냥 천연가스처럼 석유를 캐면서 덤으로 얻는 지경이며, 수소 연료전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를 탈피했다고 보기도 민망하다. (종이 빨대가 친환경적인 것만큼이나??ㄲㄲ)

그런데 식물은 물을 증발만 시키는 게 아니라 '광분해'를 통해 어째 아예 분자 차원에서 산소-수소로 분해까지 시키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 메커니즘을 기계의 동력원으로 바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탄소 고정은 광합성 암반응을 통해 녹색 식물이 보편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질소 고정은 아무 식물이나 못 하기 때문에 식물도 생장을 위해 일부 특수한 박테리아나 비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학창 시절에 지리 역사를 얼마나 싫어했는데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철도 때문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생물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_<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호박 때문이다. ^^

2. 식물에게 물 잘 주는 요령

-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물이라는 건 식물의 광합성에서 암반응이 아니라 명반응 때 쓰인다. 이를 감안하면 물은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나 낮에 주는 게 좋다.

- 흙의 물기가 마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찔끔찔끔 자주보다는.. 적당히 간격을 뒀다가 한번 줄 때 많이 주는 게 좋다. 이러는 게 식물이 물기를 찾아 뿌리를 내리는 동기도 부여하고 좋다.
식물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원칙은 식물 주변의 흙이 바짝 말랐다 싶으면 주면 된다.

- 다만, 일단 줄 때는 무식하게 끼얹지 말고 넓은 면적에 살포시 주는 게 좋다. 물뿌리개라는 물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게 사람이 음식 먹는 것에다 비유하면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는 것과 같다.

- 자연에서 내리는 비는 자연재해급의 폭우가 아닌 한, 위의 두 원칙에 충실한 기상 현상이다. (한번 내릴 때 많이, 내릴 때는 살포시) 식물에 물 주는 것도 비가 더 자주 내려 주는 것과 비슷하게 수행하면 된다.

- 특별히 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녀석들 말고 일반적인 육상 식물은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로 익사할 수 있다.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물을 너무 많이 줘 버리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서 죽는댄다. -_-;; 아니면 축축한 거 좋아하는 곰팡이가 도져서 병충해를 입기도 한다.
직업 농사가 아니라 취미로 식물 가꾸는 사람들은 물을 안 줘서가 아니라 물을 너무 많이/잘못 줘서 식물을 죽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 식물이 잎이 축 늘어지고 기공을 닫고 있는 건 체내의 물이 부족해서 물을 증발시키는 걸 중단했다는 뜻이며, 이는 광합성을 못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는 당연히 물을 줘야 한다.
근데 내 경험상 그냥 낮 기온 30도 이상으로 너무 더울 때도 이러고 있기도 한다. 이때는 물을 더 줘도 별 소용 없다. 축 늘어져 있는 게 언제나 죽기 직전 위급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저녁이 되면 다시 잎이 살아난다.

- 그리고 물을 줄 거면 뿌리 부위에다 직격을 하는 게 좋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잎이 물을 맞아서 잔뜩 젖으면.. 물방울이 돋보기처럼 햇볕을 한데 모아서 잎을 미세하게나마 태우고 상처를 낸다. 그리고 그런 물기가 잎에 흰가루 같은 곰팡이성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댄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잎을 젖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릴 때는 뙤약볕이 내리쬐지는 않으니 저런 문제가 없다. ㄲㄲㄲㄲㄲ

식물은 햇볕이 너무 강할 때 동물처럼 자외선 맞아서 표면이 타고 조직이 상하는 건 없나 궁금했는데.. 저런 사정이 있구나.;;;
사람도 너무 덥고 맹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물놀이를 하면, 물이 더위는 식혀 주지만 자외선은 더 잘 투과시켜서 피부를 태운다고 어디서 봤던 거 같다.

-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예전에 가뭄이 너무 심했을 때 아침 11시부터 저녁 5시인가 대낮에 집 잔디밭에 물 주는 걸 금지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단속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매겼다고..
그 시간대엔 물을 줘 봤자 곧 증발해 버리고 물 낭비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 절약을 위해서 저런 고육지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3. 호박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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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자라게 하는 건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한 햇볕과 충분한 비.. 요 둘인 것 같다.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상당히 더워진 5월 말쯤부터 내가 키우던 호박들이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거의 괴물 수준으로 잎이 커지고 줄기가 굵어졌다. 길이가 30~40cm에 달하는 잎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리고 이제 좀 덩굴이 옆으로 길게 뻗으려는 기미가 보였다.
종자나 모종을 따로 구매해서 심은 게 아니라, 늙은호박을 사 먹고 안에 있던 씨를 파묻었을 뿐인데.. 심은 지 50일 남짓한 기간 만에 참 많이도 컸다. ^^

호박은 (1) 힘줄 같은 굵직한 흰 줄무늬가 그려진 잎, (2) 가시인지 털인지 까칠까칠하게 난 줄기, (3)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열매가 매력이다. ^^
다만, 한 줄기에서도 줄무늬가 있는 잎과 없는 잎이 동시에 돋는 것 갈다. 그리고 줄기도 처음에는 아무 특징이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저렇게 털이 돋고 까칠해지고 확 굵어진다. 그러다가 나중에 뿌리 부근의 줄기는 뭔가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기도 하는 것 같다. 성장 양상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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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호박잎을 먹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면.. 이런 흰 힘줄이 없어지는 것 같다~! 표면이 다 시퍼래진다.)

호박을 그저 자라는 비주얼만 볼 게 아니라 열매를 제대로 얻을 목적으로 키우려면.. 뭔가 잘라내고 없애는 것도 적절히 해야 한댄다.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 처음에 싹이 너무 조밀하게 많이 났을 때, 가망 없는 것들은 솎아내야 한다.
  • 그리고 줄기랄지 순이랄지.. 이것도 마냥 방치하지 말고 어떤 거는 잘라내야 한댄다.
  • 잎만 무성하게 너무 많이 자라면 그것도 잘라내야 한다. 내 경우, 위의 다른 잎들에 가려져서 어차피 햇볕을 많이 못 받는 것 위주로 잘라서 데쳐서 먹곤 했다.

잎이 광합성을 위해서 필요하기는 한데, 너무 많으면 이것도 잎이 소모하는 영양분이 잎이 만들어 내는 영양분보다 더 많아져서 효율이 떨어진댄다. 도대체 어떻게 수위를 조절해야 '적당히'인지.. 이게 참 알기 어렵다.
호박을 마냥 영양성장만 하게 놔두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생식성장을 해야 작은 덩치에서도 꽃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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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영양분이라도 너무 진한 액기스를 희석 없이 직통으로 내리꽂는 건 동물· 식물을 막론하고 좋지 않다. 그건 오히려 식물을 말라죽게 만든다. 소변을 식물에게 바로 뿌리는 게 이래서 좋지 않으며(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동급), 비료는 식물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줘야 한다.
그에 비해 호박은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고, 처음에 심을 때 아예 퇴비에 파묻은 채로 심기도 한다는데.. 다른 식물들보다는 이런 데에도 더 강한 것 같다.

4. 나머지 얘기들

(1) 육지의 아마존 밀림보다도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바닷말들이 산소 생산에 기여하는 게 더 많다고 한다. 어떻게 측정한 것이고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바닷말은 엽록소가 있고 광합성을 함에도 불구하고 식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는데 말이다.
그렇게 산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녹여서 보관해 줌으로써 온실효과를 억제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라는데.. 이거 고삐가 풀려서 지구가 불지옥 행성으로 바뀌는 상황을 가정한 SF물이 벌써 15년 가까이 전에 발표됐던 만화 "호텔"이다.

(2)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주변이 물바다가 된 것 같은데,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 기껏 떨어졌던 빗물이 삽시간에 증발해서 도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지구에서 물의 순환이란 걸 생각하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물이 '열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버퍼, 매체로서 지구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막대하다.

그나저나 그늘은 양지 100% 대비 태양열 몇 %만 받고 햇빛은 몇 %만 받으며, 식물의 생장 효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지 궁금하다. 수성은 태양에서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데도 뒷면 등짝은 -100도대까지 내려간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거기는 수증기나 공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온도가 널뛰기하는 거다. =_=;;

(3) 사람이 없어도 2~3일 간격으로 알아서 옆의 식물에다 물을 뿌려 주는 타이머 물컵 같은 거.. 역시 검색해 보니 없을 리가 없다. ^^ 애완용 식물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 이런 게 장사가 될 것 같다.
실내 말고 실외 텃밭에서도 쓸 수 있게.. 기능은 좀 적어도 좋으니 더 싸고 많이 도입할 수 있고 악천후 속에서 신뢰성이 더 강한 녀석이 있으면 좋겠다.

(4) 동물 쪽은 곤충, 식물 쪽은 잡초..가 정말 인류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연 발생설을 믿게 만든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

Posted by 사무엘

2023/06/15 08:36 2023/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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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먹고 키우는 근황

지난 4월 중순쯤에 호박 근황을 올리고서 40일 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막간을 이용해 또 짤막하게 본인의 호박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이젠 호박이 내 인생과 내 자아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 같다~~ ^^

1. 6개월 만에 먹은 마지막 호박

집에 비축해 놓고 있던 늙은 호박들을 4월 말~5월 초 사이에 드디어 모조리 먹어치웠다.
늘 보기만 해도 든든하던 큼직한 늙은 호박이 전혀 없으니 허전하고 서운하다. 이제 늙은 호박을 구경하려면 올해의 첫 수확분이 시장에 나올 때까지 3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할 듯하다. (8~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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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겨 놨던 호박은 지름 26cm짜리 큰 놈, 그리고 지름 18cm짜리 약간 작은 놈.. 이렇게 둘이었다.
얘들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작년 10월~11월쯤에 사 놓은 것이었다. 그걸 그냥 실내 상온에다 무려 6개월 가까이 방치하고는 이듬해 4월에야 먹었다.
한 2월쯤에 먹으려 했지만, 그때는 다른 호박들 중에 물러지려는 게 있었다. 그걸 먼저 처분하느라 쟤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먹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팎으로 그 어떤 변질이나 부패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물러지거나 연해지는 부위가 없었고 모든 부위가 탱탱했으며, 과육의 상태도 양호했다. 한 달쯤 더 놔 둬도 됐을 것 같지만.. 이젠 날씨가 워낙 더워지고 있어서 상태를 더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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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서 그런지 큰놈은 상태가 그때 그 포천 우수 호박보다는 못했다.
속이 건조하고 과육은 단맛이 덜하고, 씨앗들이 곳곳에서 오발아해 있었다. 그래도 꿀 좀 넣어서 죽을 무난하게 쑤어서 먹었다.
작은놈은 덩치는 작아도 속이 꽉 차 있고 씨앗들도 굵고 튼실해서 상태가 더 좋은 편이었다.

세상에 오로지 호박만이 단순히 '삭았다, 익었다'가 아니라 폭삭 늙었다는 영예로운 칭호가 붙는 채소이다.
동글동글 납작납작 쭈글쭈글.. 게다가 세상에 어느 채소가 저렇게 상온에서 반 년을 버티겠는가? 수박? 오이? 같은 호박이라도 제대로 익지 않은 아이는 당연히 저렇게 놔 두지 못한다.

내가 이래서 호박을 사랑한다. 비주얼과 특성이 모두 매력덩어리이기 때문이다. ^^ 올해의 햅호박을 어서 만나고 싶다.

2. 다시 키우는 호박

오징어 게임에서 오 일남 할배는 "게임을 관람만 하는 것보다 직접 참가하는 게 더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호박도 마찬가지다. 사 먹을 뿐만 아니라 직접 키워도 봐야 직성이 풀린다.
4월 초쯤 언제 심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호박씨 수십 개를 퇴비와 함께 흙 속에 파묻고 물을 줬다. 그랬더니 그 달 하순엔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싹이 나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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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맑고 햇볕 나고 더워지니 이제 애들이 좀 제대로 자라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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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같은 떡잎 딱지를 떼고 그 특유의 허연 힘줄이 그려진 본잎이 쑥쑥 돋아나는 걸 보니 몹시 기쁘다. 씨앗 껍데기는 탯줄의 식물 버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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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다 돼서야 싹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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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중· 하순이 되니 이제 잎이 제법 커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씨 뿌리고 나서 40~50일 정도 걸린 것 같다.

너무 조밀하게 싹이 많이 난 걸 어찌할지가 좀 고민이다.
몇 개를 옮겨 심어 봤는데, 뿌리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그래도 이게 식물에겐 상처와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것 같다.
내 경험상 옮겨 심지 않은 애들보다 발육이 훨씬 더 늦어져 있다. 자동차로 치면 전속력으로 직진으로 달리다가 한번 커브를 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씨앗은 주변에 물기가 좀 있어야 싹이 튼다는 건 초딩 자연 시간에 강낭콩을 갖고 실험을 하며 배웠다.
쌍떡잎식물은 그물맥(대부분의 식물들 같은 넓적한 잎), 외떡잎식물은 나란히맥이라는 건(파처럼 길쭉한 잎) 중딩 과학 시간에 다 배웠던 건데.. 이제 와서야 다시 복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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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다음 근황 때는 더 길어진 덩굴 줄기와 꽃, 심지어 수분된 열매 사진까지 올라오기를 기대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23/05/27 08:35 2023/05/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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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 근황 -- 호박

2023년 올해도 벌써 1/4이 지났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긴 했지만 지난 3월 하순부터는 갑자기 5~6월 수준으로 너무 더워졌다. 이건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전례가 없던 이상 고온이었고, 덕분이 벚꽃도 예년보다 훨씬 일찍 폈다.

그리고 비가 너무 오랫동안 안 와서 난리였다. 뭐, 건조하니 빨래가 아주 잘 마르고, 바람 불 때나 그늘 안이나 밤이 됐을 때 금세 시원해지는 건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산불이 너무 많이 나고 물 부족 때문에 농사에도 애로사항이 꽃폈다. 인왕산과 예봉산이면 본인이 수 년 전에 오르기도 했던 산인데.. 거기까지 산불이 덮쳤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전, 식목일을 전후해서 정말 반가운 단비가 내렸다.
비의 양 자체는 여느 평범한 봄비를 웃돌았고 적은 게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뭄이 워낙 너무 심했기 때문에 완전한 해갈까지 바라기에는 이마저도 부족했다고 여겨진다.
이러다가 여름에는 또 반대로 미친 듯한 폭우 물폭탄 때문에 난리 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요즘은 지구에 물의 분배에 양극화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아무튼;;

본인은 지난 2월말 이후로 개인적인 근황엔 별 변화가 없다. 그래도 호박 관련 얘깃거리들이 여럿 수집됐으니 이것들을 엮어서 늘어놓도록 하겠다.

1. 포천에서 구한 최우수 호박

지난 2월엔 SNS 지인과 함께 포천의 어느 식당에서 늙은 호박을 2덩이 사 왔었는데, 그걸 이 달 초에야 모두 죽 쒀서 먹어치웠다.

이 두 아이는 크기와 외형과 무게는 비슷했지만 내부 상태는 서로 꽤 달랐다.
먼저 먹은 녀석은 2월 말에 벌써 꼭지 부분이 물렁해지기 시작해서 황급히 어서 처분해서 죽 쒀 먹었다. 물렁해진 부분을 여럿 도려내야 했다.
쪼개 보니 내부는 지저분한 편이었고, 씨가 저절로 싹이 터서 콩나물처럼 된 것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과육이 별로 맛이 없어서 설탕과 꿀을 많이 보충해 넣어야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주나 뒤에 먹은 나중 녀석은 정반대.. 가히 최상의 상태에 최우수 품질을 자랑했다.
처음 호박을 두 동강 내서 개방할 때의 포스부터가 달랐다.
마치 성경 복음서에서 어느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리듯이, 향긋한 호박 내부 냄새가 온 방에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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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육은 선명한 주황색이요, 일체의 병충해나 변질의 조짐이 없었다. 그리고 죽의 맛은 아주 달콤했다.
내부는 너무 마르지도 젖지도, 휑하지도 않고 적당히 촉촉했다.
씨는 내부에서 오발아한 것 없이 깔끔하게 가지런히 박혀 있었다.

지금까지 쪼개 본 늙은 호박들 중에서 정말 역대급으로 훌륭했다...!!! ^^ 그래서 여기서 좀 자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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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은 좋은 호박이었습니다~~~^^)

바로 이 아이. 지난 5주 동안은 내 방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서 비주얼만으로 나에게 정신적인 만족과 평안과 힐링을 선사했다.
동글동글 납작 쭈글쭈글한 자태를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평안해지고 좋아진다.
죽으로 바뀐 뒤엔 이 아이는 거의 2주 동안 내게 달콤한 맛과 영양을 선사하게 주었다.

  • 두 동강 내서 씨 제거하는 데 10분
  • 옴푹 들어간 주름을 따라 칼로 써는 데 30분
  • 껍질 까는 데 40분
  • 더 잘게 깍두기 모양으로 써는 데 30분

혼자서 다 분해하는 데 2시간이 덜 걸렸다. 세상에 어느 채소가 처리하는 데 이 정도로 손이 들까?
먹을 갈듯이 꾸준히 인격 수련하는 마음으로 호박을 썰고 껍질을 벗겼다. ^^
호박을 많이 다뤄 보면 이것들이 다 같은 호박이 아니며 상태의 좋고 나쁨에 대한 감이 생기긴 하더라.
호박을 도축하는 데도 요령과 매뉴얼이 생기고 속도도 더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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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박의 내부 상태를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게 참 묘하다.

2. 키운 호박

호박을 사 먹기만 하면 심심하니 2~3월에는 계속해서 실내에서 호박을 키웠다.
지난번 근황글에서는 1월 말에 수분된 단호박을 하나 소개했었는데, 그 뒤로도 2월 중순, 그리고 3월 중순에 수분 성공한 열매(2개)가 더 생겨서 단호박을 총 3개 얻었다. 일단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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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겨울 동안 실내 호박 농사는 작년에 비해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다.
겨울에 춥고 바깥 바람을 제대로 못 쐬어 주긴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시꺼먼 진딧물과 흰가루병이 유난히 너무 심했다. ㅠㅠㅠ 재사용하고 있는 흙이 문제인가?

이 때문에 잎들이 제대로 마음껏 자라지 못하고 다들 병들어 죽었다. 기껏 생겨난 잎들을 몽땅 뜯어내야 했는데, 새로 생긴 잎에도 병이 자꾸 도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한 달에 1개꼴로 수분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기껏 맺힌 열매가 더 커지지 못했다. 더 커지지 않는 정도를 넘어, 이미 있던 열매도 쭈글쭈글 오그라드는 기미가 보였다~!!
그러니 열매가 겨우 귤이나 주먹만 한 크기밖에 안 되지만 바로 따서 먹어야 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낙과’이다. 낙태의 식물 버전..
호박이 애써 키우고 있던 자기 열매를 포기하고 떨굴 정도이면 이건 영양이 엄청나게 부족하거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뜻이 아닌지..?? 안타까웠다.

그래도 날씨가 따뜻해지니 지금은 흰가루병이 예전에 비해서는 퍼지지 않는 것 같고, 호박이 그때보다는 더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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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룻밤 사이에 새싹이 고개를 빼꼼 든 모습이다. (같은 놈임)
호박 덩굴이 뻗어 나가는 모습은 뭔가 국수 면발 같기도 하고 뱀 똬리 같기도 하고.. 사랑스럽게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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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덩굴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시라~~
이제 집에서 화분 상자에 담아 키우던 호박들을 밖에 갖다 놓고, 야외 아지트에다가도 호박을 더 심었다. 식목일은 이제 나무를 심는 날이 아니라 호박을 심는 날인 듯..??
아무쪼록 올해는 재작년 같은 호박 대박이 다시 재현되었으면 좋겠다. 겨우내 황량해져 있던 땅을 호박 덩굴로 잔뜩 replenish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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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러운 호박들.. 인터넷 아무 데서나 퍼 온 사진임. 내 밭 아님)

3. 호박 품종

내가 생각하는 호박의 매력 포인트는 이런 것들이다.

  • 정말 크고 무거움
  • 수박 등 다른 박과와 달리, 납작하고 쭈글쭈글함. 평범한 공 모양이 아님
  • 색깔도 누렇게 변하고 흰 가루가 앉음.
  • 그래서 단순히 익었다, 삭았다고 하지 않으며, 늙었다고 표현함

호박은 품종이 워낙 다양한지라,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늙은 호박은 영어권에서는 long island cheese pumpkin 내지 Chinese tropical pumpkin이라는 품종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에 비해, 단호박은 kabocha squash 또는 Japanese pumpkin이라고 불리며..
길쭉한 애호박은 zucchini라고 불린다. 그런데 주키니도 다 같은 주키니가 아니다.

서양 주키니는 거의 가지나 심지어 오이처럼 극단적으로 길쭉한 애호박이다. 우리말로는 그냥 ‘돼지호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애호박은 그것보다는 통통하고 약간 타원처럼 생기기도 했다. 이건 Korean zucchini, 또는 그냥 aehobak이라고 통용되어서 나름 한국 브랜드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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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은 더 통통하고 색도 더 옅은 반면, 주키니-돼지호박은 거의 오이 급으로 더 홀쭉하고 색깔도 더 짙은 듯..??)

애호박, 늙은호박, 단호박에 각각 한중일 국가 정체성이 각인돼 있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 하긴, 중국식 늙은호박 중에 쭈글쭈글한 걸 '맷돌호박'이라고 하고, 더 통통하고 표면이 매끈한 건 아예 '조선호박'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
그리고 서양 주키니에는 웬 뜬금없이 '돼지호박'이라는 별칭이 있다. 얼마 전엔 이 호박의 일부 품종이 미승인 유전자 조작 논란 때문에 뒤늦게 잔뜩 반품되고 폐기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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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덕방은 외형부터 첫인상이 아주 좋고 마음에 든다. ^^
들르는 모든 고객들에게 딱 맞는 부동산 매물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듯이" 딱딱 굴러 들어오기를 축원한다.
호박은 둥글둥글 큼직하고 복과 덕이 담겨 있는 채소이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3/04/18 08:35 2023/04/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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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다음으로는 오랜만에 호박 차례이다. 호박 호박, 호박~~~ 호~~~~~박..!!
사 먹은 거, 직접 키운 거, 그리고 호박에 대한 보편적인 얘기들을 차례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1. 먹은 호박

늙은 호박이 제철이던 작년 가을엔 그냥 집 근처 채소 가게에서도 지름이 35cm를 넘는 거대한 호박.. 무게가 거의 10kg, 개당 2~3만 원에 달하던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집에 두 달 정도 놔 두다가 잘 쪼개서 먹어 치웠다. 과육과 씨 모두 상태가 양호하고 맛도 달콤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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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건 지난달 말과 이 달 초에 먹은 호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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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이 초록색, 속이 주황색인 호박은 품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단호박도 아니고..;;
초록색 호박은 일반적인 누런 늙은 호박보다는 내구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보관한 지 3개월쯤 되니 꼭지 부위부터 물러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즉시 도축을 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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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품종에 따라서 과육과 죽의 색깔도 살짝 차이가 나더라. 무슨 물감 같다^^
맛은.. 초록색 말고 누런 늙은 호박의 노란 죽이 더 달콤하고 좋았다.

뭔가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심정으로 호박을 쪼개고,
서예에서 먹 갈듯이 인격 수양하는 마음으로 호박 껍질을 깠다.
호박죽이 완성되는 건.. 뭔가 끓는 물에 돌아가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한 라면교 교주를 영접하는 순간 같다~~ ㅋㅋㅋㅋㅋ

2. 키운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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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작년 10월 말.. 날씨가 추워져서 야외에서 개인적으로 키우던 호박들이 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수분돼서 맺히던 열매를 따서 먹은 것이다. 아주 파릇파릇한 애호박이니 열매 내부에 씨는 거의 생겨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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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지난 1월 말에 수분이 성공해서 실내에서 맺히기 시작한 단호박이다. 수분된 지 1주일 정도 지난 모습인데, 지금은 이때보다 색깔은 더 짙어졌지만 크기는 별 차이가 없다. 귤 내지 양파 정도 크기가 됐다.
그 반면, 오른쪽은.. 암꽃이 피긴 했지만 하필 주변에 수꽃이 없어서 수분되지 못하고 그냥 떨어진 호박 씨방이다. 아까비~~~

암꽃이 꽃가루를 받지 못하면 꽃이 시든 뒤에 씨방도 쭈글쭈글 말라 비틀어지고 떨어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얘를 미리 잘라서 씨방 위에 붙어 있던 꽃잎을 떼어내니, 암술은 여전히 붙어 있다. 이거 무슨 기계 부품을 분리한 것 같다.. ^^

호박 씨방이 요렇게 된 모습도 볼 일이 매우 드물 것이다.
아아~ 저 노란 암술 소켓에다가 수꽃 수술의 꽃가루를 묻혀 주면.. 꽃가루에 담겼던 유전자 정보가 저 씨방 안으로 전달된다..!!
수많은 정자 중에 단 하나만 난자와 합체를 하는 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중에 암술과 꽃잎 같은 부속품은 몽땅 떨어지고 없어지지만, 저 씨방은 그대로 부풀고 자라서 먹음직스러운 호박이 된다. ^^ 호박에서 북극의 꼭지 말고, 아래 남극의 배꼽 같은 부위는 과거에 꽃과 암술이 붙어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호박은 충매화에 속씨+쌍떡잎식물이고 씨방이 꽃잎의 안이 아닌 밖에 있고,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덩굴식물이다.
살다 살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검색해 보게 됐다.
20여 년 전, 철도가 내게 학창 시절에 정말 싫어했던 역사· 지리 과목에 통찰을 주었다면..
호박은 학창 시절에 과학 과목 중에 제일 싫어했던 생물-_-에 통찰을 주고 있다. ^^

오른쪽의 저 씨방이 암술이 수분됐으면 왼쪽처럼 됐을 것이다.
피지 못한 왼쪽 씨방도 썩혀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엔 아까우니 내가 생걸로 그냥 꿀꺽 먹어 버렸다.
쟤도 콩알 같은 애호박이나 마찬가지이니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회사 이름을 애플이라고 안 짓고 펌킨이라고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_=;;;; ^^

3. 벌레

애호박 말고 누렇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은 내부 중심부가 막 깔끔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축축하고 걸쭉한 주황색 펄프들이 가득하고, 거기에 씨들이 매달려 있는 게 무슨 저그 건물 내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_=;;

그런데 호박이 그 상태로 오래 방치되면 씨들이 그 내부에서 스스로 싹이 나 버리기도 한다.
적당히 따뜻하고 축축하고 주변에 양분이 많다는 조건이 맞아서 발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은 온통 깜깜한 암흑천지일 것이고 뿌리 내리고 잎을 낼 만한 곳은 없다.
그러니 그 싹튼 줄기는 허연 콩나물 신세를 면치 못하며, 얼마 못 가 죽어 버린다. 흠..

어째서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걸쭉한 주황색 펄프로도 모자라서 씨가 콩나물처럼 돼 있는 모습도 약간은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내부 발아한 호박씨보다 더 징그러운 건.. 호박 내부에 구더기들이 들끓는 것이다.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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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표면에 아직 초록색이 남아 있고 표면이 유난히 오돌토돌한 게 좀 독특했는데.. 썰어 보니 ‘호박과실파리’ 구더기들 수십 마리가 중심부를 점령해 있었다.
이놈은 박과의 식물의 암꽃 안에다가 알을 까는가 보다. 그러면 열매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중심부는 애벌레들이 파먹으면서 차차 변질되고 썩는다. 그래도 얘의 경우, 겉의 과육에는 그닥 피해가 없어서 대부분의 부위는 여전히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구더기에게 점령당한 호박 파편은 곱게 땅에 파묻기만 하는 식으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걔네들이 정상적으로 번데기를 거쳐서 성충으로 자라 버릴 테니, 번거롭더라도 불이나 펄펄 끓는 물로 파편을 처리해서 유충을 박멸해야 한다.

4. 보석 호박과의 오해

흔히 늙은 호박은 출산 후 붓기의 해소에 좋다고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산후부종의 호박과 남과의 오용에 대한 문헌고찰" (안 상영 외, 한국 한의학 연구원) -- 대한한의학 방제학회지 제17권2호, 2009
요 논문에 따르면, 출산 후 붓기를 해소하는 데 효능이 있는 약재로 전통적으로 알려진 것은 늙은 호박이 아니라...;; 동음이의어인 보석 호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훗날 채소 호박으로 와전된 거라고.. 엥...????
이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현직 한의사가 건강 칼럼을 언론에다가 기고한 것도 몇 건 검색되어 나온다.

일단 동의보감에는 채소 호박이 절대 등장할 수 없는 게.. 그때는 조선에 호박이라는 채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최소한 널리 보급되고 효능이 검증되기 전이다.
그런데 송진을 굳힌 보석 호박은 먹기는 어떻게 먹는 거냐..?? 달여서 먹나..?? 헐?? 좀 의외다.

5. '후박'과의 오해

울릉도에서는 오징어와 호박엿이 유명하다.
근데 이것도 호박엿이 아니라 원래는 후박엿이다. =_=;;
울릉도에 후박나무라는 게 많이 났다. 이 나무의 진액과 열매가 무슨무슨 효능이 있는 한약재이고, 이걸 넣어서 엿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박씨 성을 나타내는 친숙한 한자 朴도 저 '후박나무 박'이다~!! 큼직한 과채류 박꽈 할 때의 박이 아니다. 그 박은 한자가 없는 순우리말이다.
근데 이게 소리가 와전돼서 호박엿이 돼 버렸고.. 이제는 울릉도에서도 원래 만들던 후박엿 대신, 진짜 호박을 집어넣은 호박엿을 팔게 됐다고 한다. 마라도에서 웬 뜬금없는 계기로 짜장면 장사를 하게 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_=;;

뭐든지 호박으로 와전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호박이 들어간 엿 말고 떡이야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 호박 많이 사서 관상용으로 놔두고, 먹기도 많이 먹자~!! ^^
꼭 저런 게 아니어도 호박은 그냥 보기에 좋고 몸에도 좋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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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보너스.
이건 요 최근에 포천에 있는 '왕뎅이선생'이라는 한정식 식당에서 너무 반가운 아이들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음식과 별개로 식당 주인이 호박 농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인맥이 있는가 보다. 난 지름신이 당연히 강림하여 두 덩이를 사 왔다. ^^

호박이 폭삭 늙어서 색이 누래진 걸로도 모자라서 표면에 흰 가루 같은 것까지 앉는 건 아주 좋은 징조이다. 이래서 호박한테만 '늙은'이라는 수식어를 쓰는가 보다. 이건 사람의 흰머리만큼이나 영예로운(?) 변화이다.
그 반면, 파릇파릇 초록색이어야 할 호박 잎에 흰 가루가 끼는 건 병이며,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이런 차이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25 08:34 2023/02/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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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캠핑

2022년 올해가 저물어 간다.
2022년은 21세기 이래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새 버전 소식이 한 번도 없었던 최초의 시기이다.
일종의 휴양· 요양을 한 셈인데.. 거듭 말씀드리지만 개발 중단은 절대 아니고 개발할 것 리스트가 한가득 쌓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다시 일을 할 예정이다.

전쟁 때문에 에너지와 식자재 물가가 많이 올라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세계적으로 적지 않을 것이다. 내 블로그를 구독하시는 모든 방문자께서 편안한 잠자리에서 따뜻한 밤을 보내시기를 개인적으로 기원한다.
그러나 만약 아직 그리하고 계시지 못한다면 나처럼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

유난히 따뜻했던 11월이 지나고, 지난 11월 30일부터는 밤 기온이 서울 기준 -5도 아래로 떨어지면서 기습 한파가 찾아왔다.
그 날 밤에 본인의 무장은 텐트, 두꺼운 담요, 패딩 잠바, 침낭 두 겹이었다.
밖엔 강풍이 휘몰아치고 물병에 담긴 물이 꽁꽁 얼었지만, 이불 속 침낭 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따뜻했다.
"추위가 뭐야? 먹는 거야?" 생각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너무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하게 잘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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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잘 잤냐 하면.. 밤 11시쯤 눈 감았다가 뜨니 새벽 5시 반이었다. 피로가 싹 가시고 정신이 맑아져 있었다.
내 경험상, 무장이 부족하면 새벽 2~3시쯤 깨거나, 하체 쪽이 추위에 떨게 된다. 특히 발가락 말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 절대적인 무장 자체가 부족: 날씨 예측 실수, 또는 자전거 타고 멀리 나간 상태여서 무장을 충분히 많이 실을 수 없었음
  • 처음 잠들던 때는 별로 안 추워서 무장을 안 하다가 나중에 추워져서 무장이 뚫림

그러나 저 때는 작정하고 처음에 잠들 때부터 중무장을 했기 때문에 밤중에 무장이 뚫리는 일도 없었다.
따뜻한 공간에 여유가 있어서 이불 속에다 노트북과 호박 한 덩이까지 같이 보온을 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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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기습 한파의 바로 전날 밤은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10도를 훌쩍 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고가도로 아래의 공원 벤치에서 이렇게 잤었다. 보온은 별로 필요 없고 비만 피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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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같은 시간대의 기온이 전날 대비 15도가 넘게 곤두박질쳤으니.. 날씨도 고삐 풀린 듯 급발진과 급제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입을 돌아가게 만들려면 동장군이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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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건.. 날씨도 따뜻하고 비도 안 와서.. 그냥 공원 풀밭에서 텐트도 안 치고 자연을 즐기며 잤을 때의 모습이다. ^^
나는 1년 중 과반.. 6~70%는 늘 밖에서 자고 이걸 지난 수 년 동안 반복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매뉴얼이 있다.

1. 대원칙
일단 밖에서 자기로 했으면 친환경 최소주의 이념에 입각해서 텐트와 침낭과 담요로 간단하게.. 100% 내 체온과 근성만으로 자연을 즐기고 쉬었다가 돌아오는 게 좋다.
온갖 장비빨에 살림살이를 통째로 옮기는 듯한 캠핑은.. 내가 보기엔 그닥 바람직한 캠핑이 아니다.

  • 자고로 보일러라는 건 몸을 씻을 물을 데울 용도로만 사용하는 거다. 실내에서 단순히 공기나 바닥을 데우는 건 낭비다.
  • 자동차의 기름은 무조건 차를 가게 하는 데만 쓰여야 한다. 차 시동을 걸어서 엔진을 공회전시키면서 히터를 튼다니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캠핑을 못 하는 조건은

  • 열대야: 그냥 집에서 선풍기· 에어컨 틀고 자는 게 나음
  • 나쁨 이상 수준의 미세먼지: 야외 공기가 너무 안 좋음

그 반면, 무조건 반드시 밖에 나가는 조건은 기록적인 강추위 또는 폭우이다.

3. 밖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자고 나서는 텐트를 싹 걷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야 된다. 누가 여기에 텐트를 치고 갔다는 티를 안 내는 게 정상이다.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는 안 치우는 놈, 텐트를 안 걷고 알박기 하는 놈들은 캠핑계의 상도덕을 모르는 몰지각 몰상식한 또라이들이다. 정말 공개적으로 거듭 거듭 씹고 욕과 비방을 퍼부어 줘야 된다.
이런 애들 때문에 훌륭한 캠핑 장소들이 다 출입금지 주차금지 걸리고 유료화되고 인심이 야박해지는 거다.

4. 개인적으로 제일 김빠지고 힘빠지는 소식은..
텐트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도대체 난방을 왜 하냐..??
그냥 자기 체온만으로 버티면 절대로 저렇게 될 일 없다.

5. 과거 기억에 남는 캠핑은..

  • 호우경보가 내려졌는데 출입 통제를 무시하고 안에 들어가서 강가에서 텐트. 수위가 내가 있는 곳에 근접할 정도로 굉장히 올라가서 흥미진진했음. 당연히 아무 탈 없이 무사 귀환.
  • 한겨울 -15도. 꽁꽁 얼어붙은 강물과 눈 위에다 텐트 치고 캠핑. 폰과 노트북은 다 퍼지고 차 시동도 제대로 안 걸렸음. 딴 덴 다 괜찮은데 발가락이 정말 시렵고 따가웠음.
  • 산속 군용 벙커에서 캠핑.
  • 600m 남짓한 높이의 산 정상에서 캠핑. 야간 산행을 하는 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상에 올라왔다가 텐트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내려간 듯했음.
  • 어느 무덤 옆에서 캠핑. 평평한 풀밭이 있어서 텐트 치기 좋았음.

세상에 신학, 목회 권유도 받고 기인 엽기 유튜브 권유도 동시에 받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_-;;
글쎄.. 이 나이에 결혼이나 해서 곱게 가정을 꾸려도 시원찮을 판에 혼자 튀는 짓을 비디오로 찍어서 유포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난 아무도 유튜브 안 하던 시절, 무려 2008년에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영상을 독보적으로 올리긴 했었다.
마치 컴퓨터과학자 도널드 커누쓰 할배가.. 무려 1970년대에 이메일이라는 걸 썼고 정작 1990년대 이후부터는 안 쓰는 것처럼... 나도 유튜브 동영상을 비슷한 시기와 방식으로 활용했던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2/12/07 08:35 2022/12/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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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근황 -- 호박

올해 2022년도 벌써 10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난 9월까지는 늦여름이 오래 지속되면서 낮 기온이 20도 후반까지 치솟았는데.. 얼마 전 개천절에 비가 한바탕 내린 뒤부터는 이제 진짜 여름이 끝나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아이고, 한글 입력기 개발을 너무 오랫동안 쉬긴 한 것 같다.
이미 버그 신고도 몇 개 받은 게 있고, 편집기에 UI를 자잘하게 고치고 새 기능을 넣은 것도 있다. 이 일을 내려놓거나 포기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계속 호박-_-, 캠핑, 연애 등 다른 개인사를 직장과 병행하느라 올해는 날개셋 새 버전이 없이 지나갈 가능성이 좀 높아졌다. 2022년이 거의 안식년처럼 됐다.

오늘은 이런 근황을 글과 사진 기록으로 좀 남겨 보았다. 써 놓고 보니 또 대부분이 호박 이야기이고, 한 달 전에 올렸던 호박 근황과 비슷한 패턴이 돼 버렸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호박 이야기부터 좀 하겠다.

1. 내가 키우는 올해의 마지막 호박

올해는 내 개인 농사는 6월 말과 8월 초, 두 번이나 터진 폭우와 그에 따른 대규모 침수 피해 때문에 별 재미를 못 봤다.
조금 아슬아슬한 곳에 심은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테러를 당해서 뽑혔고..=_=;;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안정된 곳에 심었던 아이는 사람 대신 강물이 휩쓸어 가 버렸다.

그래서 열매를 만진 건 쬐끄만 애호박 몇 개, 그리고 실내에서 CD 크기 남짓한 늙은 호박 하나 만든 게 전부가 됐다.
작년에는 폭우 같은 단절이 없었다. 덕분에 11월에 호박들이 모두 얼어 죽은 마지막 순간까지 열매를 수십 개나 구경하고, 열매를 도둑맞은 것만 10여 개는 됐을 것 같은데.. 올해는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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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아이들은 8월 폭우 이후, 8월 중순쯤에.. 열매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고 그냥 10월까지 2개월 시한부 인생을 전제로 하고 또 심은 것이다.
그래도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덩굴이 이렇게 뻗어 나간다.

내 경험상 밤 기온 5도가 마지노 선이다. 이 정도 되니까 호박이 못 견디고 잎이 슬슬 냉해를 입더라. (새카맣게 변하고 말라 죽음)
그리고 기온이 내려가면 호박들이 성장 모드를 영양에서 생식으로 바꿔서 갑자기 막 암꽃 씨방을 무리해서 짜내서 만들어 피우기 시작한다.

밤에 이 호박들을 비닐 씌우고 뿌리 주변에다 핫팩 같은 거라도 던져주고 싶은데.. 이 짓을 겨울 내내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_=;;
한두 포기 정도 스티로폼 화분에다 옮겨 담아서 따뜻한 실내로 가져오지 않는 한, 얘들을 더 살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런 온도로 인한 제약이 없더라도, 호박은 반 년 이상 살고 수명이 간당간당해지면 자연스럽게 잎들이 누래지다 못해 갈변하고 시들고 빠지면서 앙상한 줄기만 남는 것 같다. 사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는 줄기도 평소처럼 초록색에 털이 북슬북슬 난 게 아니라, 반쯤 나뭇가지 같은 누런 갈색이다. 그렇게 그냥 죽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상태로 아주 오래 놔둬 보면 그 줄기 마디에서 또 초록색 새순이 자그맣게 돋을 때도 있다. 자기들도 나름 살려고 최대한 노력은 하는데.. 그게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갈지? 이러는 시기와 조건은 전적으로 해당 식물 마음대로인 것 같다.

2. 남이 키우는 호박

집 주변에서 남이 키운 큼직한 호박이 하나 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우왓~ 잘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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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집뿐만 아니라 본인의 직장 근처 근린공원에도 누군가가 호박을 몰래 심어서 키웠었다. 점심시간 때 산책하러 나가서 얘들 꽃 핀 걸 보는 게 낙이었는데.. 얘는 딱히 암꽃이나 열매는 못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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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0월쯤 되니 이 두 곳 모두 호박 덩굴을 걷어내는 것 같았다.

3. 남이 파는 호박

8월 중순쯤엔 갓 수확한 늙은 호박이 도매 시장에 처음으로 올라오더니, 9월부터는 늙은 호박이 제철을 맞이했다.
이제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아도, 가락시장까지 멀리 원정 가지 않아도.. 집 근처 재래시장과 채소 가게에도 큼직한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몹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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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의 형태로 판매되는 '조선호박/일반 호박'은 수요가 마이너하다 보니 수입산이란 게 없고 100% 국산이다. 농가의 입장에서는 늙은 호박은 수입산으로 인한 가격 변동이 없다는 메리트가 있는 셈이다.

그 반면, 단호박은 1년 내내 아무 마트에서나 파는 친숙한 채소가 된 관계로, 국산만으로는 수요 대처가 안 된다. 여름에는 국산이 유통되지만, 겨울에는 남반구 국가 수입산이 공급된다. 국내에서 힘들게 비닐하우스 만들고 난방 때서 호박 키우는 것보다, 그냥 사 오는 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4. 내가 산 호박

지난 8월에 산 4.5kg짜리 호박은 본인의 바깥 나들이와 산책, 캠핑, 심지어 데이트 때도 수시로 따라 다니며 바깥 바람을 쐬었다.
한참을 들고 다니다가 의자에 앉아서 짐을 내려놓으니 팔이 후들거리고 아~ 이제 좀 살 거 같았다.
단독 군장 행군 생각이 나더라. >_< 운동을 너무 게을리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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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얘를 들고 다니다가 노트북 가방을 들어 보니..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순간적으로 "어, 내가 가방에 노트북을 안 넣고 나왔나??" 착각을 했다. =_=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
지름이 40cm를 훌쩍 넘고, 무게가 11.5kg에 달하는 역대 제일 크고 무거운 호박을 동네 채소 가게에서 득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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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하단의 작은 호박이 이미 지름이 25cm에 달하는데.. 좌측 상단의 큰 호박들은 덩치가 얼마나 될지 짐작해 보시라. 우측 상단의 호박은 무게가 13.5kg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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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트에 앉은 아이 셋의 무게를 합하면 거의 30kg이나 된다. =_=;;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그 가녀린 덩굴에서 이렇게 크고 무거운 열매를 만들어 낸다는 게 경이롭기 그지없다.
수시로 꺼내서 아이의 주름을 쓰다듬으니까 훈훈하고 기분이 좋다.

5. 내가 먹은 호박

이렇게 호박들을 갖고 놀다가.. 요 며칠 전엔 제일 먼저 구매했던 8월자 늙은 호박 하나를 도축해서 오랜만에 죽을 쑤어 먹었다.
호박의 멋을 즐기는 기간은 한 달 이상이지만, 호박의 맛을 즐기는 기간은 길어야 1주일 남짓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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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에는 애호박과 호박잎이 들어가고, 옆에는 늙은 호박 호박죽도 같이..
인간에게 큰 이로움을 주는 호박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한편으로.. 이 4.5kg짜리 자그마한 호박 하나도 껍질 까고 써느라 이 정도로 애 먹었고, 죽이 이만치 많이 나왔는데..
나중에 13kg짜리 거대한 호박은 어떻게 분해하지..?? 벌써부터 ㅎㄷㄷ한 생각도 들었다;;.

6. 여담: 호박 모양 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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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할로윈 시즌이랍시고 쿠션/베개도 이렇게 생긴 물건이 만들어져 있구나.. 완전 내 취향 저격이다..!! ^^
할로윈용 서양 펌킨보다는 식용 늙은 호박 고증에 충실한 모양이었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호박은 호박이니 이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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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쿠션 호박이고, 오른쪽은 진짜 호박이다. ㄲㄲㄲㄲㄲㄲ

요즘 밖에서 자기 정말 좋은 시기이다.
텐트는 바람을 막아 주고 침낭은 추위를 완벽하게 막아 준다.
요즘 날씨를 표현할 형용사로는 '아름답다, 원더풀' 같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17 08:34 2022/10/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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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 몇몇 생각, 여행 등

1. 환절기

이번 주쯤부터 날씨가 갑자기 확 급변해서 굉장히 시원해졌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고, 밤에는 20도 초까지 기온이 내려가니.. 폭염과 열대야가 싹 사라지고 정말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캠핑을 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 갖춰졌다.

자정 무렵까지만 해도 찬물을 바로 끼얹거나 냉탕에 바로 뛰어들어도 될 것 같았는데
새벽이 되니 급 싸늘해져서 텐트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이라도 덮어야 할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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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호박호~~~박~~ 행복행복행....복 ㅎㅂㅎㅂㅎㅂ~~!!
텐트 문을 여니까 곧바로 강물이 비쳐 보인다. 내 마음과 멘탈도 힐링힐링.
호박에 대해서는 별도의 근황글에서 추가로 다룰 것이다.
여름이 가는 건 좋지만.. 점차 추워져서 밖에서 호박을 키울 수 없는 시기도 다가오는 건 아쉽다.

2. 잠시 정치 얘기

우리나라가 정권이 바뀐 지 3개월, 100일이 넘었다.
나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 정권의 씻을 수 없는 양대 죄악인 "탈원전과 탈북자 북송"을 딱 정확히 공략하여 수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고 현 정권이 선출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화이팅이다, 힘내라~!!

그 새X는 절대로 편하게 뒈지게 해서는 안 되고, 어서 국립호텔로 보내야 한다. 하루속히 정의가 구현됐으면 좋겠다. 뭉 다음으로는 찢 차례다.
현 법무부 장관은 사상 건전하고 말빨과 실력도 정말 장난이 아닌 인재이던데.. 5년 뒤에 현 대통령의 후임으로나 등극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았다는 건 얼마 전에 북괴도 인증해 주었다. "남조선의 대북 정책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 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
와~~ 개인적으로는 현웃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긴, 진짜 훌륭한 대통령이라면 북괴가 암살하려고 암살조도 보내고 폭발물도 설치하고,
역적패당이라고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붓고 자기들 선전용 그림 속에서라도 갈갈이 찢어 죽였을 텐데.. 북괴가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점잖아진 듯하다. 아니면 윤이 아직 그 정도로 훌륭한 행적은 못 남겼거나..

10여 년 전에 MB 각하만 해도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셨는가?
그때 개척해 놓은 원전이고 천연가스고 4대강이고.. 나중에야 빛을 발하고 재평가 받고 있다.
이런 분이 아직도 감방에 가 있다니.. 우리나라는 아직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윤의 재임 중에 하루속히 사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MB 이후로 북괴가 남한 대통령에 대해 대놓고 험악한 말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레카는 여자여서 선을 안 넘은 듯하고.. 다음 뭉은 만만한 개호구니까 무시와 하대만 했지, 굳이 저렇게 저주하고 싫어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윤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끝으로.. 젊은 이공계 엘리트 출신 정치인이라고 기대했던 그 사람은 왜 이렇게 추태 부리면서 몰락하고 망가졌나 모르겠다. 이 정도면 도저히 지지하거나 편 들어 줄 수 없다. 뭐 정치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3. 경주 감포 해수욕장

본인은 올해 하계 휴가는 7월 말, 그리고 광복절 연휴 이렇게 두 번에 나눠서 다녀왔다.
글쎄, 직장 동료들 중엔 한여름 성수기를 피해서 9~10월 초가을에 작정하고 제주도나 외국을 다녀오는 식으로 휴가를 쓰기도 하던데.. 본인은 그냥 더울 때 물놀이를 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휴가를 쓰는 걸 선호한다.

7월 말엔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 영종도를 다녀오고, 8월엔 고향인 경주를 방문했다. 그래서 올해는 나름 황해와 동해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작년에는 어쩌다 보니 동해 바다에는 못 갔는데 올해 이 한을 풀었다. 그 대신, 올해는 양평· 남양주 쪽에는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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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포의 '나정 고운모래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한 뒤, 바닷가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잠도 잤다.
경주에 해수욕장이 여럿 있긴 한데, 여기가 국도 4호선의 시점 바로 옆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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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도 계곡 물처럼 가슴까지 차는 깊이에서 밑바닥의 내 발등까지 다 뚜렷이 보일 수가 있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물이 이렇게 맑다니!!
(이 사진은 가슴까지 차는 깊이는 아님. 그 깊이까지는 겁 나서 폰을 못 들고 감ㅋㅋㅋㅋㅋ)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황해 해수욕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수질이다.

거기서는 물이 초록색이고 수중에선 과장 보태면 팔을 뻗어도 손끝이 안 보일 지경이었는데.. (참고로 1950년대 런던 스모그는 물이 아닌 공기가 그런 상태였..)
또한 특유의 비리비리한 바다 냄새도 여기 동해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해수욕장은 바닥의 재질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진흙이 아니라 자잘한 자갈 위주여서 더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가 아니라 계곡에 더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괜히 저 멀리 동쪽으로 원정 가는 게 아니구나.
한번 눈이 높아지고 나면, 이젠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해수욕장에서는 물놀이를 못 할 것 같다.

이 나이가 돼도 물놀이를 하니까 노무노무 좋았다.
원래 하루는 계곡, 하루는 바다에 가려 했으나.. 그 당시에 남부 지방은 가뭄 때문에 계곡 물이 깡그리 말라 있었다. 그래서 계곡에서는 놀지 못하고 바다에만 다녀왔다.
뭐 얼마 안 있으면 추석 때문에 또 고향에 가게 될 텐데, 그때는 물이 좀 살아 있기를..

4. 양동 마을

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경주 양동 마을에 이번에 드디어 처음으로 다녀왔다.
경주는 아무래도 신라와 관련된 옛날 문화재가 넘쳐나는 곳이지만, 양동 마을은 의외로 조선과 관련이 있는 양반 집성촌이다. 애초에 위치도 서라벌이니 반월성이니 오릉이니 하는 전통적인 신라 도읍 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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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선 왕조는 이상한 유교 전통에 선비질, 노비 등 온갖 악습과 병신 무능한 관행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나온 그나마 선한 것, 대단한 것, 유의미한 것, 한때의 구닥다리 레거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살아서 이어지는 것, '유네스코'라는 국제 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고유 문자 한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됐으며, 유네스코에서는 1989년부터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이라는 것을 제정해서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상과 상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안한 상 명칭과 취지, 권위를 저기에서 승인해 준 것이고, 상금은 우리나라 정부에서 재원을 마련해서 지급한다.

(2) 조선 왕조 실록: 쬐끄만 나라가 500여 년 동안 역사 기록 하나는 굉장히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있는 그대로' 잘 남겼다. 이건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됐다.

(3) 수원 화성: 1700년대 말의 작품이니 별로 오래되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다 파괴된 걸 재건했을 뿐인 보잘것없는 성곽에 지나지 않는데.. '화성성역의궤'라는 건설 매뉴얼 덕분에 재건된 레플리카도 원본과 동일한 권위를 인정받았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기록 유산이 아니라 그냥 유산..

그리고 경주 양동 마을은 여느 민속촌이나 '육영수 여사 생가'처럼.. 당사자들은 떠나 버리고 후대에 재현해 놓은 단순 한옥 껍데기가 아니다. 현재까지도 족보 조작질 없이 진짜 조선 양반 후손들이 문화재급 한옥에서 계속 살고 있다. =_=;; 한국 민속촌이나 안동 하회 마을은 이런 조건까지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양동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통째로 등재됐다. 그냥 단절된 과거 레거시가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덕목을 잘 충족하는 세계 유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매우 우수한 사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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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 봤는데.. 처음엔 한옥을 보다가 나중에는 호박만 찾아 다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밭의 곳곳에서 호박이 많이 잘 맺히고 있어서 반갑고 기뻤다.
자.. 이번엔 기승전..철이 아니라 기승전..호 기승전..박이 됐다. =_=;;

Posted by 사무엘

2022/08/26 08:35 2022/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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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근황

1. 애완용 늙은 호박

오랜만에 또 호박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먼저, 애완용 및 식용으로 도입한 늙은 호박 완제품 자랑부터 짤막하게 한 뒤, 그 다음에 키우는 호박 얘기를 늘어놓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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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 애호박, 심지어 수박은 1년 내내 아무 동네 마트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늙은 호박은 그렇지 않다.
그런 다른 '박'들보다 더 크고 무겁고 비싼 데다, 취급하기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호박의 상징은 커다랗고 누런 늙은 호박이 아니겠는가? =_=;;
본인은 작년 겨울에는 대체로 인터넷 주문으로 늙은 호박을 조달하며 지냈다. 그러다 제일 최근엔..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가락시장에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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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지하의 채소 가게를 뒤져 보니, 역시 늙은 호박을 오프라인 대면으로 금방 구매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 동글동글한 놈도 있고, 아예 약과처럼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놈도 있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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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3~4월 동안은 얘를 잘 갖고 놀았다. 겨우내 보관을 잘 했는지 동글동글한 게 아주 단단하고 야물고, 표면이 매끈하고 상태가 좋았다.
밖에 캠핑 갈 때도 늘 데리고 다니다가 때가 되면 쪼개서 죽을 쑤어 먹었다.

2. 실내 재배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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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얘는 지난 2월 중순쯤에 수정이 성공해서 맺히기 시작한 열매를 얼추 1주 간격으로 관찰한 모습이다. 세상에 이런 시퍼런 동글이가 삭아서 저런 누렇고 단단한 늙은 호박이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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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2주 정도 뒤, 이 아이는 이 정도로 살이 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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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꽃, 심지어 중도 낙과한 열매 등.. 식물의 원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부산물들은 그대로 놔 두면 놀라운 속도로 시들고 물러지고 말라 비틀어지고 분해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특히 꽃의 경우, 폈다가 져서 하루~이틀만 지나면 이미 생명을 잃었는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저절로 떨어진다.

그런데 완성품인 늙은 호박만은 어째 상온에서 몇 달을 멀쩡히 버티는 걸까? 오히려 냉장고의 저온에 놔두면 더 빨리 상한다니..?? 참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분이 성공해서 호박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동그란 씨방이 갈수록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암꽃이 피던 시절에는 씨방이 위로 빳빳하게 들려 있다가 얼마 못 가 무거워서 아래로 쳐진다. 사실, 암꽃은 열매의 무게를 견디라고 줄기부터가 수꽃 줄기보다 훨씬 더 굵직한 상태이다.

열매가 언제까지나 동그란 전구 모양이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공 모양이 아니라 표면이 각지고 쭈글쭈글해진다. 수박은 그렇게 되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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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덩굴에서 맺힌 이 아이도 수분 성공 직후에는 동글동글 전구 모양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렇게 납작한 모양이 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암꽃은 달린 케이블(줄기..)부터가 수꽃보다 훨씬 더 굵다. 열매에다 꾸준히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 하고, 열매의 무게도 견뎌야 하니 말이다.

3. 실내 재배의 한계

이렇게 실내에서 호박 암꽃과 수꽃을 직접 수분시키고 호박 열매를 구경하니 본인은 지난 겨울이 더욱 훈훈하고 기뻤다.수술을 암술에다 부비는 그 느낌이란.. ㅎㅎ
하지만 호박을 더 오래 놔둬 보니 실내 재배의 한계랄까, 그런 것도 좀 느껴졌다. 1덩굴당 1열매 이상은 무리인 듯.. 열매가 하나 생긴 뒤부터 호박들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자라지 않기' 시작했다.

  • 단순히 수명이 다해서 그런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큼직한 잎들은 대놓고 시들지는 않는데 온통 노란 반점으로 뒤덮혀서 곰보가 됐다.
  • 또한, 새순이 나려다가도 다 시들고, 꽃도 잘 안 핀다. 특히 암꽃은 씨방이 맺히려는 것도 생기다 말고 다 누렇게 시들어 떨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작년에 제철에 야외에서 심었던 호박은 관리를 더 안 해 줘도 큼직한 열매가 잘도 맺혔던데..;;

실내에서는 온도, 물, 비료는 가까이에서 훨씬 더 자주 잘 챙겨 줄 수 있지만, 햇볕과 통풍(자연풍)은 아무래도 야외를 따라가기 곤란할 것이다.
야외는 그런 메리트 대신에 일교차가 더 크고 가혹한 기상 조건과 병충해에 더 크게 노출되며.. 뭐 흙도 갑갑한 화분보다는 더 많이 있겠지만 흙의 품질이 딱히 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야외가 실내보다 더 나은 여건이어서 큼직한 열매가 잘도 열렸던 것 같다. 심지어 인공수분조차 해 주지 않았는데도 꿀벌까지 날아와 주고 말이다..!!
지인 말씀에 따르면.. 이렇게 실내 재배로 제조한 호박은 맛도 더 없을 가능성이 높댄다. ㅎㅎ

작년에 야외에서 키우던 호박들은 가을(10월쯤)에 날씨가 갈수록 추워지자..
자기 최후가 임박했음을 알았는지, 곳곳에서 미친 듯이 그 귀한 암꽃 씨방을 만들어 냈다.
뭐,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걔들은 여름이 돼서야 너무 늦게 심은 놈들이기도 했었다. 3~4월에 일찌감치 심었던 호박이 그때까지 살아서 활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때 본인은 호박이 추위에 얼어죽지 않고 물과 영양을 끝없이 공급해 주면 언제까지 사는지 궁금했다. 실내에서 실제로 그렇게 해 보니 호박이 내 기대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작년 11월 이후로 심은 지 3~4개월쯤 됐는데 쟤들이 벌써 자연 수명이 다한 건지?
아니면 이번엔 온도나 물, 영양 문제 대신, 진짜로 햇볕, 통풍, 뿌리 내릴 공간 부족이 문제인 건지?
이 문제만 해결되면 호박 잎이 노란 반점 없이 더 건강하고 더 오래, 꽃과 열매를 더 많이 맺을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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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진 꽃, 앞으로 필 꽃이 동시에.. 그나마 수꽃이 가까운 데서 많이 폈던 시절의 모습)

특히 물은 도대체 어느 정도 얼마나 어떻게 줘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실내에서 한여름 같은 땡볕도 절대 없는데 낮에는 호박 덩굴들 잎이 힘없이 축 쳐져 있었다. (색깔은 누래진 것 없이 여전히 정상적인 초록색)
이건 수분 증발을 막으려고 잎들 기공을 닫고 양분 생산도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팍팍 많이 주고 싶은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실내 식물은 물을 안 줘서 죽는 경우보다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썩어서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네..;; 그래서 물 주는 걸 주저했다.
그래도 호박이 잎과 덩굴이 저렇게 거대한데, 평범한 꽃이나 고무나무보다는 물을 더 많이 줘야 할 것 같아서 매일 덩굴당 한 컵 이상은 준 게 지나친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로 물을 주고 나면 시들었던 잎이 30분쯤 뒤에 기립했기 때문이다. 겨울에 실내가 굉장히 건조한 것도 감안했다.
또한, 식물에 물을 줄 때는 무슨 자동차 워셔액 보충하듯이 바가지로 끼얹지 말고, 물뿌리개로 살살 주는 게 흡수 관점에서 좋다. 빗물만 해도 얼마나 살살 가늘고 길게 내리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게 식물에게 좋은 급수 형태이다.

"알았어! 이것 때문에 호박이 안 맺히는 거야!" / "이렇게 해 주면 괜찮을 거야!" 이러는 게 마치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안 오잖아 가정교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쪼록.. 호박은 재배가 까다롭지 않으면서 수박보다 좋은 영양 더 많은 열매를 남겨 주고, 열매가 동글동글 큼직하고 꿀단지처럼 생겼고, 뭔가 시골 인간미가 느껴지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채소이다.
그래서 본인은 지금은 컴퓨터의 배경 그림도 작년에 찍었던 호박밭 내지 호박 열매 사진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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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정도가 아니었으면 평생을 자동차나 컴퓨터, 심지어 열차 같은 기계류를 좋아했던 본인이 이 나이가 돼서야 자연과 농사에도 재미를 붙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보물찾기 하듯이 밭을 뒤지니 큼직한 호박이 눈에 띄는 게.. 정말 엄청난 희열을 안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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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호박은 언제쯤 따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 같아서는 박제하고 영구보존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깔끔하게 꿀꺽 할 예정이다.
초록색 열매도 꼭지에 가까운 쪽, 햇볕을 받은 쪽이 색깔이 먼저 짙어지더라. 반대편은 그냥 옅은 연두색일 뿐..

4. 나머지 소감

(1) 옛날에는 호박은 음식물 쓰레기나 심지어 인분을 파묻은 구덩이에다가 대충 심어서 키웠다고 한다.;;
식물이야 원래 태생적으로 동물이 더 처리하지 못하는 유기물 폐기물을 밑천으로 자란다고 하지만.. 거기서 같이 죽어서 썩어 버리는 것과, 그리하지 않고 그걸 영양분 삼아서 싹을 내고 크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라 하겠다.

동물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온갖 부패균이 식물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점이다. 반대로 호박잎의 반점 병은 동물에게 영향이 없으니까.. 종간 장벽이라는 게 있다.

(2) 호박은 기온이 5도쯤 밑으로 내려간 추위에 밤새도록 노출되니, 더는 못 견디고 화상을 입은 듯이 잎이 시커매지고 쭈글쭈글해지면서 죽더라.

그런데 호박 말고 다른 화초 중에는 겨울에 잎이 일부가 빨개지는 건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상추나 시금치 말이다.
검색해 보니 마그네슘 부족 아니면 역시 온도나 수분과 관련된 에러(...)라고 한다.

식물에도 겨울잠 비스무리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겨울에 시들었다고 해서 다 죽은 건 아니고, 봄 되면 살아나는 게 있다고 한다. 하긴, '한해살이풀, 여러해살이풀'이라고 단수-복수의 개념도 있다.
단지, 호박은 한해살이풀이다. 그리고 굳이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도, 심은 지 충분히 오래되고 열매 몇 개 맺고 나면.. 더 안 자라고 잎이 숭숭 빠지고, 꽃과 열매를 한없이 맺지는 못하고 기력이 다해 죽긴 하는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01 08:35 2022/04/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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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연초 근황

지난달 말쯤부터는 캠핑, 호박, 코로나19 얘기와 함께 개인 근황을 전하는 게 패턴이 된 듯하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으로 최신 소식을 알리고자 한다.
그런데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다. 그래서 호박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다른 소식들부터 먼저 전하도록 하겠다.

1. 건강

바야흐로 2022년, 본인도 나이가 벌써 4학년이 임박했다.;;
4학년 진입을 앞두고 20년 전과 지금의 건강 상태를 비교해 보면 대략 이런 것 같다.

  • 구내염(입술), 편도선염(목), 몸살감기 같은 자잘한 잔병치레가 없어졌다. 환절기 감기?? 마지막으로 걸린 때가 몇 년 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실수로 입 안을 깨물어 버리면 옛날 같았으면 상처가 곧장 구내염으로 도져서 한두 주 고생했을 텐데.. 요즘은 그 정도 실수를 한 뒤에도 양치 하고 한숨 자고 나면 의외로 그대로 낫기도 한다.
  • 체열은 확실히 후끈후끈하다. 침낭과 담요 덮고 -10도인 밖에서 아주 따스하게 잘 자고 있다. 잠뿐만 아니라 식욕도 아직까지는 아주 왕성하다.

다만..

  • 예전에 비해 몸이 무겁다는 게 느껴지고 유연성이 더 떨어졌다. 절대적으로 체중이 더 늘기도 했지만, 뭔가 똑같이 엉덩방아 찧거나 삐끗 하더라도 대미지를 예전보다 더 크게 입겠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 특별히 수분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어도 동일한 컨디션 때 소변 색깔이 더 진해져 있다.
  • 다쳤을 때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딱지 하나 뜯어서 피 약간 났다 하면 휴지 한 조각을 시뻘겋게 다 적실 정도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출혈이 겨우 멎는다.
  • 머리를 감으면 빠지는 머리카락이 예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난 평생 내 사전에 불면과 탈모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설마...?
  • 글쎄,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가거나 스틱 없이 산 내려가는 게 아직까지는 아무 불편 없고 가능하다. 근데 지금 이러면 늙어서 관절이 다 나간다는 말이 있어서 좀 자제하는 중. 사실인가염?
  • 이제 학창 시절처럼 밤새워 가며 무슨 공부나 작업은 절대 못 한다. 자는 시간을 줄일 수 없다.

이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 속도도 느려진다. 시간과 체력은 부족한데 작업해야 하는 것도 점점 어려운 부분밖에 안 남으니까..;;
2년마다 버전이 1.0씩 올라가는 것도 이젠 나가리다~~ 건강 관리 해야겠다..

2. 캠핑

-10도짜리 새벽 한파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매우 고맙고 귀중한 선물이다. 이걸 헛되이 낭비하여 날려 버리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2월이면 이제 이런 추위를 즐길 수 있는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본인은 어김없이 텐트 들고 바깥 아지트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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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겨우 -5도밖에 안 되면 귀찮아서 안 나가고 그냥 집에서 잘 생각이었는데, -10 부근까지 내려간대서 일부러 나갔다. ^^

텐트를 친 직후에는 주변이 너무 따뜻해서 정말로 -10도가 맞는지 의구심과 자괴감이 들 정도인데.. 누워서 가만히 있으니까 슬금슬금 추워진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 바닷물이 스며들듯이 냉기가 곳곳에서 새어 들어온다. 손은 완전 따뜻한 상태인데 전화기나 컴퓨터를 만져 보면 어째 이렇게 차가운지 놀란다.

결국은 준비해 간 담요 두 장, 여름 침낭과 겨울 침낭을 총동원해서 얼굴까지 덮고, 늙은 호박도 다 덮어 준다. 이제야 열평형이 이뤄져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채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잠들 수 있다. 아무리 오래 있어도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햐~ 요 맛에 밖에서 잔다니까.?? 이거 정말 중독성 있다.

그런데.. 이 겨울에 상도덕을 모르는 몰지각한 캠핑족이 여전히 있는가 보다. (☞ 뉴스 링크)
강변의 널찍한 공원에서 캠핑카도 아니고 텐트를 쳐서 아예 살림살이를 차렸다. -_-;; LPG 까스통에다 애완견 집까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본인처럼 밤에만 잠깐 텐트 치고 자고 아침에 사라지는 텐트족도 같이 욕 먹는다.
공공장소에 장기간 무단 방치된 자동차나 텐트에 대해서는 더 강력하게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우한 폐렴 시국

코로나19가 퍼지는 속도가 참 가관이다. 매일 전국에서 수백~수천을 찍더니 기어이 만 단위가 돼 버렸고, 이제는 10만으로 넘어가네 마네 한다. 이제는 본인의 주변에도 SNS 지인, 직장 동료 중에 확진자가 나오는 지경이 됐다.
예전에 나랏님이 했던 우려대로라면.. 기존 방역 체계는 진작에 다 붕괴된 거다. 어설픈 방역이나 거리두기 따위로 예방하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서 미묘한 점은.. 저 수만 명에 달하는 확진자들이 다 무슨 좀비 바이러스 에볼라 에이즈 같은 죽을병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미크론은 병세가 예전보다 '가늘고 길게' 가는 형태로 바뀐 변이이다. 거의 계절 인플루엔자처럼 되긴 했는데.. 그렇다고 단순 감기 수준의 만만한 병인 건 아니어 보인다. 직접 걸려 보거나-_- 걸린 사람을 곁에서 구경해 본 적도 없으면서 과소평가를 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경증과 중증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본인은 도 넘는 수준의 백신 음모론자가 아니다. 이렇게 높은 접종률 덕분에 바이러스의 위력이 좀 너프되긴 했을 가능성은 일단 인정한다.
하지만 유의미한 확률· 빈도로 부작용도 발생한 것은 별개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간 이상, 이제는 말이다..

어디서 확진자 좀 나왔다고 해서 2년 전 버르장머리처럼 동선 추적하면서 역학조사네 뭐네, "교회 발, 학원 발, 어디어디 발 코로나" 이 X랄 마녀사냥하고,
백신 미접종/불완전 접종자를 무슨 잠재적 보균자, 페스트 보균자나 나병 환자 취급하는 짓거리는 제발 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건 이제 정말 아닌 것 같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이제는..
"마스크만 잘 쓰고 다니십쇼~ 백신은 고령자 위중증자 위주로만 맞으시고 더 강요 안 합니다.
그러다 증상 있으면 걸리신 분만 그냥 혼자 집에서 푹 쉬십쇼.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과도한 차별과 불이익은 그만~~ (혐오범죄-_-)"
이런 홍보 캠페인이나 하는 게 순리이지 않을까?

사실은 이제 무슨 운동경기 스코어 중계하듯이 확진자 수 보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결핵이나 독감 감염자 수를 일일이 중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4.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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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난 2월 4일에 송 현 선생님(1947-2022)께서 별세하셨다는 것이 장례가 다 끝난 뒤에야 유족을 통해서 차츰 알려졌다.
본인은 공교롭게도 선생님을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1월 중순쯤에 인사차 뵈었다. 그러고 저녁도 같이 먹은 뒤에 헤어졌었는데.. 그게 선생님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본인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이 쟁쟁해 보이셨고, 책을 쓸 것이 한 트럭인 상태이셨다.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니 1분 1초가 아깝게 일생을 책과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아아 이렇게 가 버리시다니..

고인은 대한민국이 1960년대 말, 한글 기계식 타자기의 표준 글쇠배열이 네벌식으로 졸속으로 제정됐던 시절에 공 병우 박사와 함께 온몸으로 반대하고 투쟁했다.
더 나은 세벌식이 민간에 이미 보급돼 있는데, 글자 모양이 좀 덜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소탐대실인 방식을 굳이 또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벌식은 타자 행동이 매우 효율적이며 타자기와 컴퓨터가 동일한 방식으로 치는 것도 가능하다. 나머지 다른 방식들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첫단추를 잘못 끼우니 5공 시절에는 컴퓨터용 두벌식 자판이 또 만들어져야 하게 됐다. 컴퓨터에서 굳이 복잡한 네벌식 배열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타자기는 컴퓨터용 두벌식의 변종으로, 받침은 매번 shift를 눌러 놓고 쳐야 하는 이상한 괴작으로 바뀌어 버렸다.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삽질 때문에 세금이 낭비되고 후손들은 컴퓨터에서도 한글을 입력할 때 shift를 매번 누르지 않는 대신, 도깨비불 현상을 당연한 듯 일상적으로 보고 지내게 된 것이다.

물론 모바일에서는 세벌식이 컴퓨터/타자기에서만치 우위를 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기는 애초에 타자를 오래 길게 하지 않는 환경이며, 도깨비불 현상 존재 여부라는 본질적인 차이는 어느 기기에서나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송 선생님은 공 병우 박사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셨던 역사 증인이고, 들어 볼 옛날 이야기와 회고들이 무궁무진한 분이셨는데.. 더 자주 뵙고 이것들을 전수받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고인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버전(아마 올해 상반기 중? 버전 10.5 정도?)은..
도움말의 ‘감사의 글’란에 공 병우 박사에 이어 송 현 선생님에 대한 추모 문구도 추가로 들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본인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면 있는 인물..
말씀 보존 학회의 설립자인 이 송오 목사도 비슷한 시기인 1월 28일에 소천했다.
단, 본인은 KJV 유일주의나 세대적 진리 같은 신학 노선이 약간 비슷하지, 이분과 개인적인 인연은 전무하다. 진영도 한킹이 아닌 흠정역 쪽을 선택했었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KJV 진영의 수장들도 앞으로 이런 식으로 한 분씩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송오 목사는 이 바닥에서 공과 과가 명확하게 갈리는 분이었다. 성경 번역하고 교회 세우고 성경적인 교리를 세우는 등의 기여를 분명 했다. 그러나 초창기 1990년대에 기성 교계를 상대로 조금만 더 처신을 잘했으면.. 국내의 KJV 진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단합하고 커졌을 것이며, 타 교계로부터 이단 소리도 훨씬 덜 듣고 자기들 뜻을 더 널리 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이 개인적으로 못내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21 08:35 2022/02/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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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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