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체계 대통령 대수 대통령 개헌 내력 북괴
미군정 존 하지   소련정
1공 (1948) 1 이 승만 제헌헌법, 대통령 4년+1중임, 부통령, 간선 김 일성
2 1차, 대통령 직선제 (부산 정치 파동, 발췌개헌)  
3 2차, 초대에만 중임 제한 폐지 (사사오입) 8월 종파 사건 (정적 숙청)
2공 (1960) 4 윤 보선 3차, 의원내각. 최초의 졸속 아닌 합법적 개헌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4차, 1공 시절 잔재 청산??  
3공 (1962) 5 (vs 윤 보선) 박 정희 5차, 대통령 중심제로 회귀. 지방자치 사실상 사문화  
6 (vs 윤 보선)    
7 (vs 김 대중) 6차, 3선 개헌  
4공 (1972) 8 단 7차, 유신, 대통령 6년+무제한 중임, 간선 주체사상 명문화 (자가신격화)
9 독
10 출 (1979) 최 규하    
11 마 (1980) 전 두환    
5공 (1981) 12 8차, 대통령 7년 단임  
6공 (1988) 13 노 태우 9차, 대통령 5년 단임, 직선; 지방자치제 부활  
14 김 영삼   김 정일, 고난의 행군 (경제 파탄)
15 김 대중    
16 노 무현    
17 이 명박  
18 박 근혜  3공과 6공 그 어떤 선거 때보다도 많은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탄핵소추 파면 김 정은

대한민국, 남한이라는 이 나라는 다음과 같은 점들로 인해 여느 나라들과 같지 않은 독특한 현대사를 보유하고 있다.

  • 20세기 중반에 주변 나라들과는 달리 매우 이례적으로 공산화되지 않았다.
  • 일본의 덴노 같은 정신적인 지주나 중심점이 있지 않으며, 그나마 있던 것도 조선이 망하면서 싹 사라졌다.
  • 미국처럼 초대 대통령이 2선만 하고 깔끔하게 물러났다거나, 쿠데타 한 번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어 오지 않았다. 미국은 도중에 중임 관련 규정만이 살짝 바뀌었을 뿐, 대통령의 임기 체계 자체가 우리나라 헌정사 같은 급의 큰 변화나 굴곡을 겪은 적은 없다.

본인은 노 태우 대통령 내지 서울 올림픽 시기가 스스로 경험한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가장 먼 과거이다. 그 이전은 기록을 통해 간접 체험만을 한 선사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5공 시절을 직접 경험한 기억이 없다. 노 태우의 바로 전임까지만 해도 대통령을 5년마다 한 번씩 뽑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치 체계가 완전히 달랐다는 얘기가 대단히 충격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그땐 도대체 선거를 어떻게 했기에 이 승만이나 박 정희는 1~3대, 5~9대로 대통령을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굳이 왜 기간과 대수를 나누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각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야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런 들쭉날쭉한 자국의 헌정사 자체는 역덕후에게 뭔가 유사점과 차이점을 정리하고 분석할 만한 좋은 아이템인 것 같다.

가장 먼저 미군정부터 생각해 보자. 미군정은 기간이 짧고 존재감 없는 과도기여서 잘 부각되지 않지만, 알고 보면 단군의 후손들이 거의 전무후무하게 백인(미군정 사령관인 존 하지 장군)의 통치를 받은 시절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하다. 마치 신미양요가 분단 이전에 단군의 후손이 무려 미국과 군사 교전을 벌인 전무후무한 사건인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가 됐을지언정 제국주의· 군국주의에 입각한 서양 백인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나라이다. 영국이라든가 스페인이라든가... 대한민국 역사상의 미군정은 저런 이념에 따른 지배는 아니었다.

그 뒤 우리나라 역사상 통치 기간이 가장 길었던 대통령 톱 3(쓰리)는 이 승만, 박 정희, 전 두환이다. 이 승만은 선출은 선거를 통해 무리 없이 됐지만 훗날 장기 집권을 위한 꼼수 개헌을 했으며, 박 정희는 쿠데타에다가 장기 집권 개헌을 모두 자행한 인물이다. 마지막 전 두환은 집권을 위한 쿠데타만 저질렀으며 임기 만료 후에는 군소리 없이 물러나긴 했는데.. 이것도 전국민적 저항이 없었으면 물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있긴 하다.

초대 제헌헌법이 규정하는 대통령 체제는 보다시피 완전 미국 스타일인 걸 알 수 있다. 이 승만은 1~3대 대통령을 역임했는데,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매번 헌법을 자신의 당선에 유리하게 약간씩 뜯어고쳤다. 직선제는 그 자체는 나쁠 것 없는 선거 제도이지만, 아마도 꼴보기 싫은 야당 의원이 아니라 무지몽매한 민중을 돈과 서커스로 꾀어서 직접 투표를 시키면 여당에게 더 유리할 것 같아서 도입한 듯하다. 그래도 2선 때는 우리나라가 아직 전쟁 중인 관계로 정서적으로 어지간해서는 집권 여당을 바꾸지 않으려고 하니 이 승만의 당선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3선 이상까지 하는 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심지어 롤모델 국가인 미국에서도 대공황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같은 사례 말고는 찾기 어렵다. 그러니 단순한 정치깡패 동원이나 부정선거만으로는 안 되고 또 헌법을 고쳐야 했다.

다른 대통령도 아니고 초대 대통령이 벌써 저런 짓을 하면 얼마나 안 좋은 선례가 남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그 고령에 그 검소한 구두쇠 대통령이 다른 돈과 권력, 명예를 탐해서 저런 짓을 한 건 아니고, 그냥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내가 꽉 붙들지 않고 야당에게 정권을 선뜻 넘겨 줬다간 남조선이 또 공산당 손에 넘어갈 것 같다."라는 자격지심 똥고집 때문에 저렇게 된 것 같다. 그게 아무 근거 없는 황당한 망상도 아닐 뿐더러 인의 장막은 그 기질을 더욱 부추겼을 테고. 게다가 신 익희(1956), 조 병옥(1960) 같은 야당 라이벌 정치인이 알아서 없어져 주기까지 한 덕분에 3선과 4선은 더욱 수월하게 넘겼다.

허나 도를 넘는 부정선거가 폭로되면서 12년 독재를 참다못한 국민들로부터 전국적인 혁명이 일어나자, 이 승만은 현실을 직시하고 하야를 선택하게 됐다. 제1 공화국은 자신은 부정부패와 독재를 저지르면서도, 참 아이러니하게 국민들에게는 국민학교에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오히려 자신을 무너뜨릴 만한 사상적인 기반을 듬뿍 마련해 줬다. 비록 현실이 시궁창이었을지언정 최소한 방향만은 올발랐던 셈. 이로 인해 남한과 북한은 서로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이 승만 얘기가 갑자기 좀 길어졌는데, 그 다음 출범한 제2 공화국은 우리나라 헌정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인 의원내각제 정부이다. 군부나 독재자의 입김이 개입하지 않고 나름 최초로 합법적(?)인 절차로 개헌도 이뤄 냈다. 이게 제대로 시행됐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 승만 시절과는 굉장히 딴판인 나라가 됐을 수도 있지만 박 정희 군사정권으로 인해 송두리째 뒤집어엎어지면서 이건 정말 짧고 존재감 없는 흑역사 헌정 체제가 됐다.

2공이 계속 유지되는 배경을 설정해서 대체 역사물 소설이나 영화가 충분히 나올 법해 보이지 않는가? 아예 조선이 망하지 않아서 입헌군주제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보다야 더 현실적일 것 같지만.. 그래도 현실에서는 고종· 명성황후가 장 면· 윤 보선보다 존재감이 더 크고 대중적인 인기가 더 좋다.

2공은 '장 면 내각'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장 면은 국무총리였고 대통령은 엄연히 윤 보선이었다. 이때 행해진 4차 개헌은 친일 반역자..는 아니고 1공 시절의 정치 깡패나 부정 선거 주동자 같은 반민주(반민족이 아님) 행위자를 처벌하고 청산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개헌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과거의 행위를 새로운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니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그때부터 있었다. 4공 시절 박통의 긴급조치 중 3호만은 그리 정치적이지 않고 생뚱맞은 민생 분야인 것과 비슷하게 4차 개헌은 나머지 개헌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 다음으로,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의 주인공인 박 정희가 등장한다. 그는 대통령 선출은 훗날 전역 후 민간인 신분으로 된 것이고, 쿠데타 직후에 아직 군인 신분일 때는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도 역임했었다.
이때는 아직 나라가 워낙 못살고 사회 기강이 불안하고 6· 25 시즌 2가 또 벌어질지 모르는 지경이었기 때문에 "다 갈아엎자" 식의 군사혁명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지지를 많이 받았다. 지금처럼 길거리에 뛰쳐나와 촛불 들고 "민주주의가 죽었습니다" 이럴 상황이 아니었다. 전땅크의 쿠데타 때와는 달리 박통의 쿠데타 때는 누가 막 심하게 저항하거나 죽지도 않았다.

박통은 차근차근 자본을 유치하고 경제 개발을 해 나갔다. 경부 고속도로도 3공 시절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겨우 한두 대만으로는 임기가 너무 짧았다. 온갖 공작으로 야당 후보를 간신히 이겼는데 3선을 하자니 진짜 이 승만 시절의 사사오입 개헌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헌법을 또 날치기로 고쳐야 하게 됐다. 그리고 나중에는 헌정 체계를 전반적으로 다 자기 독재에 맞게 뜯어고치는 유신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4공 체제에서는 단독 후보가 혼자 출마해서 꼭둑각시 의원들의 만장일치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지만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앞서 언급했듯이 긴급조치라는 필살기도 내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 제도가 이렇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건 정치적으로 엄청난 모험이었기 때문에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경제 개발, 민생 안정, 굳건한 반공 안보, "우리식 민주주의" 등 뭔가 좋은 명분을 만들어서 '유신'이라는 브랜드명(?)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세뇌를 시켜야 했다.

박 정희가 암살당하지 않았으면 이 4공 체제가 도대체 얼마나 갔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가 9대 대통령의 예정 임기만 다 마쳤어도 이미 1984년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에서 5~8호선뿐만 아니라 3호선 양재-수서와 4호선 당고개도 시기적으로는 2기 지하철에 속하듯, 10대 최 규하와 11대 전 두환도 시기적으로는 이런 4공 체제에서 선출된 것이다. 그러나 박통 당사자 말고 다른 정치인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독재 헌정 체제를 받아들일 리 없었으므로 이내 쿠데타가 일어났고 헌법도 업데이트 됐다. 그래서 4공 중에서 8~9대는 유신 시대이지만, 10~11대는 "국가보위 비상대책 위원회"라는 기구 휘하에 있었다.

박통이 암살 당한 뒤에도 1980년 서울의 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독재자가 물러났다고 해서 군대가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대통령 임기와 관련된 개헌은 그 당대의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가히 "신의 한 수" 소급 적용 금지 조항이 5공 시절 8차 개헌 때에야 드디어 추가되었다. 뭔가 "자백만이 형사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라면 그 자백은 인정되지 않는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법 개정만 소급 적용되고, 불리한 것은 적용되지 않는다"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우여곡절 시행착오를 겪은 뒤,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6· 29 선언이 이뤄졌으며, 박 정희 유신 시절 이래로 없어졌던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5년 단임제가 정착했다. (5공 12대 대통령 선거도 유신 시절 같은 노골적인 단독 출마만 아니지, 주요 야당 후보들은 감금당한 채로 관제야당 후보들이나 참여한 답정너 선거였기 때문) 당장 13대 때는 후보 단일화 실패로 인해 또 전 두환의 육사 후배인 노 태우가 당선됐지만, 14대 이후부터는 순수 민간인 대통령이 나오고 있다.

이 1987년 9차 개헌이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10년 넘게, 아니 30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는 헌정 체계이다. 과연 이 상태에서 헌법이 부분 또는 전면 개정돼서 7공화국이 나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총평

1. 본인은 위와 같은 내력을 감안하고도 이 승만과 박 정희 대통령을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전자는 0에서 1을 만든 사람이고 후자는 1에서 100을 만든 사람이다. 그 절망적인 가난과 시궁창인 국민 의식, 북괴의 위협 속에서 그만치라도 이룬 게 용하고, 그 정도 독재는 막 잘했다고 칭송할 수는 없어도 이해와 수긍이 된다. 지금 역으로 의회와 언론의 막장 횡포를 생각하면, 옛날에 그 상황에서 그 정도 의회· 언론의 통제와 독재 없이 적화통일을 어떻게 막고 경제 성장이고 민주주의고를 어떻게 이룰 수 있었을까? 독재 정권이 뭘 그렇게까지 망쳐 놓을 게 있었는지 이상한 피해의식 선동에 공감하지 않는다.

2. 물론 경제 성장을 이룬 뒤에 이 정도 국민의 희생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이룬 것 역시 그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역사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군사 정권이 잘한 것을 실드 치더라도 그들의 쿠데타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고 싶지는 않다(장 태완 같은).
하지만 오늘날은 민주화라는 게 그냥 별 명분도 없이 그저 권위에 대항하고 반역하는 걸 합리화하는 데 쓰이고 국가 체제를 부정하고 필요악을 없애자고 하고 더 심하게는 반정부 종북 세력에게 선동되고 이용당하는 추세가 명백하여 본인은 이를 경계한다. 옛날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운동꾼들도 태극기를 들고 나오곤 했는데 요즘 어떤 사람들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싫어하는 것 같다.

3. 북괴의 존재로 인해 대한민국은 무슨 분야든 천천히 여유롭게 발전을 할 수가 없어졌다. 여기서 우리나라 20세기 중후반의 대부분의 비극이 시작됐다. 또한 북괴 같은 저질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수준까지 하향평준화되었음도 명백히 사실이다. 뭔 무능과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최소한 안보관· 사상 자체가 썩었거나 대놓고 북괴에다가 퍼주고 교류하자, 말만 번드르하게 포장해서 공산주의 하자는 놈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이건 우리나라 정치판의 고질병으로 남거나, 아니면 진짜 나라가 망해서 고생해 봐야 해결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28 08:33 2017/05/28 08:33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364

본인의 국적인 대한민국의 건국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알다시피 두 개의 극단적인 평이 있다.
엄친아 이 승만의 영도력으로 그 어렵고 열악하고 위태롭던 여건하에서(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무슨 권리가 있는 전승국도 아니었다!) 중국도, 소련도 아닌 미국을 끌어들여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한반도에다 기적적으로 세웠으며, 더구나 초대 대통령이 크리스천이었던 덕분에 제헌 국회 때 감사 기도까지 올렸더라...;; 이건 밝은 면만 본 것이다.

이 국가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 굉장한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굳이 여기서 또 설명하지는 않겠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 상에 이 승만을 칭송하는 글의 양하고,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글의 양의 비율이 어떻게 되던가? -_-

그런 것처럼, 미국의 태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건국 이념이 담긴 메이플라워 서약에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이 들어가고 지폐에 “In God We Trust”가 들어간 기독교 국가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기독빠가 있는가 하면,
사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의 건국 공신들의 상당수는 그저 이신론(deism)을 믿었을 뿐이며 성경의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주장까지 있다..;;
또한, 과거의 흑인 노예라든가 인디언들 학대 문제 같은 흑역사를 들추면서 미국을 까는 사람도 있다.

뭐, 미국이 아무리 기독교 냄새가 짙다 해도 미국의 국교가 기독교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라도 한 건 아니며, 독일처럼 목사가 아예 공무원이기라도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 냄새가 옅어지고 있고, 이를 미국 내부의 크리스천들은 배도와 타락-_-이라고 표현한다.

본인은 개인 신념상의 친미와 반미 중 하나만 고르라면 명백하게 친미이다.-_-;;;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오지랖을 떨면서 잘한 것도 있고 병크를 저지른 것도 다 있겠지만, 미국이 지금까지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에 기여하고 유익을 끼친 것이, 잘못한 것을 월등히 압도한다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한다. 소련·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세계 패권 국가였다고 생각해 봐라. 미국보다 훨씬 더 나쁜 짓 많이 했겠지..
특히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반미 할 자격이라고는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나마 국민 의식이 선진적인 덕분에, 저렇게 많은 자유가 있으면서도 나라가 그 정도나마 질서가 유지되고 잘 돌아간다. 부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낫고, 기부나 상속에 대한 문화도 더 낫다. 국민 대다수가 그냥 시골에서 자영업이나 농업에만 종사해도 집과 차 장만하고 심지어 호신용 총까지 장만해서 잘 산다. 그러나 소수 똘똘이 엘리트들은 그야말로 세계를 호령한다.

미국은 9· 11 테러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역사상 자국 영토가 적의 침략을 직접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한반도는 역사상 침략을 몇 번 받았다더라? -_-) 미국의 현충일인 재향 군인의 날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나가서 남을 위해 싸운 자국 군인을 기리는 날이다.
이 뿐이던가?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선거로 뽑힌 국가 원수가 지정된 임기 동안만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정 대통령제를 시행했다. 200여 년의 역사 동안 비록 대통령의 암살은 있었을지언정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없고 정권이 비교적 평화롭게 잘 교체되어 온 것도 한국의 현대사와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 미국의 주요 전직 대통령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봤다. 미국 시민권 득템 시험을 통과하려면 이런 거 달달 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스티브 유 씨도 공부 열심히 했을 것이고. -_-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본인은 “기독교인은 무조건 기독교인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 주의가 절대 아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글 중에 나오는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대체로 이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문장을 “김 용묵도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이 미국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로 확대 해석해서 받아들이지도 말기 바란다.

조지 워싱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 당시 국가 원수로서의 주변의 비교 대상이 왕밖에 없다 보니, 아직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3인칭 '짐'-_-이라고 부르고 왕처럼 행세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훌륭한 본도 충분히 보였다.
그는 미국의 당시 국력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이미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에, 연봉을 안 받고(요즘도 뭐 연봉 1$ CEO들이 있으니까^^) 대통령 직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 중에도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례를 남기려고 연봉을 받았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는, 후세에 독재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며 2선까지만 한 후 깨끗이 물러났다.(물론, 이 양반은 어차피 권좌에 안 있어도 워낙 잘 살았고 아쉬울 게 없던 처지이기도 했지만. ㄲㄲ)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도 애초에 부카니스탄 같은 막장 정부를 수립한 게 아니었던 이상, 딱 3선까지만 하고 스스로 물러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주위의 아부꾼들이 자꾸 부추기니까, 진짜 국민이 원하는 줄 알고, 고스톱으로 치면 스톱을 안 하고 쓰리고 포고 하다 피박 나서 딥다 바가지 썼다. -_-;;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이 단일 국가라기보다는 아직 array/set of States에 가깝고(united가 아니라!) 껀수만 생기면 얼마든지 서로 찢어질 수도 있던 시절... 남북 전쟁이라는 비극까지 벌어지던 시절에 미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연합한 국가로서의 미국의 근간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이다.
링컨 하면 노예 해방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그렇다고 해서 흑인을 백인과 완전히 동등하게 대우하고 동등한 권리를 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박애주의자는 물론 아니었다. 그때 아직 시대가 어느 시대였는데..
또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 같은 기독교 서적까지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은 평생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신앙면에서 무척 회의적으로 지냈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래서 골수 남부 백인 출신인 피터 럭크만 같은 성경학자는, 링컨 대통령이 사실 구원 받았다는 증거조차도 없다고까지 그를 깐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끼리라 해도 정치 성향이 일치할 수는 없는 모양.

시어도어 루스벨트: 20세기 초에 상당히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쯔라-태프트 밀약을 승인한 정권의 수뇌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는 없을 듯. “미국이 보기에도 조선이라는 듣보잡 나라는 식민지로 좀 먹혀도 이상할 게 없는 미개한 나라인 반면, 러일 전쟁에서 당당히 이긴 너희 일본은 본격 선진국 강대국 인증. 일본이 조선을 갖도록 하고, 나 미국은 필리핀을 사이좋게 나눠 갖겠다.”
그 당시는 이런 합의가 힘의 균형이요 세계 평화와 국제 사회의 질서로 간주되었으며, 이런 거 중재를 잘 한 게 아예 노벨 평화상감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샤바샤바가 몰래 되고 나니까, 이 승만 같은 사람이 나중에 뒤늦게 미국을 상대로 아무리 조선 독립을 호소하며 외교 로비를 해도, 얘기는 이미 다 끝났으니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우드로 윌슨: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하고 국제 연맹을 창설한 저명한 대학 교수 겸 정치인.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에게 박사 학위를 준 지도 교수이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정세상 조선의 독립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에 낙담한 이 승만이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아무리 배워 봤자 결국 세상은 법과 원칙이 아니라 강대국 꼴리는 대로만 돌아가니 아무짝에도 쓸모 없군요. 내가 낸 등록금 다시 돌려 주세요”라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윌슨은 미국에서, 이 승만은 한국에서 각각 현재까지, 박사 학위를 소유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명예 박사 말고) 쉽게 말해 최고 고학력자라는 뜻.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정책을 밀어붙인 걸로 유명한 사람이고,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12년이나 대통령을 한 합법적 독재자이다. 그때까지 미국 헌법에 중임 제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긴 했지만, 통상 대통령은 많아야 2선까지만 하고 제 발로 물러났었는데, 이 사람은 덥석 4선까지 해 버린 것. 그래서 대공황과 훗날 2차 세계 대전의 진주만 폭격 사이엔 기간이 꽤 긴 것 같은데, 이례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동일 인물인 것이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탄 것으로 유명하다. 종전을 앞둔 1945년에 돌연사했다. (뇌출혈로 인해 왕하 4:19의 장면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서거 후에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헌법으로 추가로 명시되었다.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을 하다가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양반. 대통령이 되자마자 194~50년대에 세계의 역사를 바꾸고 한국의 운명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먼저 일본에다 원자폭탄의 투하를 승인함으로써 본격 2차 세계대전 종결자로 등극하였으며, 6· 25 때는 반대로 맥아더 장군의 과격한 행동거지를 견제하고 오히려 그를 해임하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맥아더를 오로지 민족의 은인으로만 아는 반공 진영에서는 트루먼을 싫어하는 편이나, 맥아더도 당시에 하극상을 벌이면서 너무 무모한 작전을 강행하기도 했었다.

리처드 닉슨: 풍채 좋고 업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양반이다만, 워터게이트 사건 하나로 이미지 다 말아먹었다. 결국 탄핵 당하기 직전에 사임했으며,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를 다 못 채우고 굴욕적으로 자방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았다. (본진 털리고 엘리 당하기 직전에 겨우 gg 치고 먼저 나갔다 -_-)

존 F. 케네디: 아주 유명한 대통령. 40대 초반의 상당히 젊은 대통령이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다. 케네디의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 배출'을 위해서 자녀들끼리 극성스러운 경쟁과 엄친아 스펙 쌓기 스파르타식 교육이 행해졌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는 교회 헌법상 국적이 둘이다(다른 하나는 바티칸-_-). 이 때문에 케네디는 대선 후보 시절에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만약 미국의 국익과 바티칸 시국의 국익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같은 낚시성 질문까지 주변으로부터 받았다고.
종교가 천주교라는 점, 취임 선서 때 무엄하게도(?) 성경에 손을 얹지 않은 점, 게다가 공립 학교에 비치돼 있던 십계명을 철거하고 성경 공부· 기도 시간을 없앤 점들 때문에 미국 내부의 크리스천들로부터는 나라의 기강을 싹 말아먹었다고 정말 축시의 참배급으로 가루가 되도록 폭풍처럼 까이고 있다.

잘 알다시피 케네디는 상당히 괴이하게 암살당했다. 그런데 그 암살범도 이내 암살을 당해 버려서 케네디의 죽음은 각종 음모론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무명 병사의 군대 의문사도 아니고 한 대통령의 죽음에 왜 이렇게 의혹이 많나? ㄲㄲ

로널드 레이건: Reagan이라고 적혀 있어서 '리건'이라고 낚이기 쉬운데, great처럼 이때 ea는 '레이건'이라고 발음된다. ㄲㄲ 1980년대, 우리나라의 5공 시절을 풍미했던 대통령으로, 70대의 상당한 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했고 퇴임 후에도 90세가 넘게 장수했다.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처한 온갖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저 작은 책 안에 다 들어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조지 부시: 이 사람과 관련해서는 걸프 전쟁밖에 생각 안 난다. 이 사람 자신은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출신.
듣자 하니 대선 시절엔 경쟁 후보를 상대로 사형 제도 드립을 시전하여 지지율을 뺏어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세상에,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범에게도 사형 집행을 반대하겠다니, 이런 반인륜적인 불온사상의 소유자가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ㄲㄲㄲㄲㄲ” 나도 크리스천으로서 사형 제도를 적극 지지한다만 저건 말장난스럽고 좀 유치하다.. -_-;;

빌 클린턴: 스캔들 하나 때문에 탄핵 위기까지 갔던 양반. 닉슨과 마찬가지로 스캔들 자체보다도 그걸 무마하려고 거짓말을 한 게 그의 입지를 더욱 위협했었다. 문란한 사생활에다가 예수회 소속의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의 보수-_- 기독교 진영에서는 그를 무척 싫어했지만, 대통령으로서 행적에 대한 세속 평가는 좋은 편이다.

조지 W. 부시: 젊었을 때 방황도 하고 좀 '놀기도' 했다가 나중에 기독교 신앙으로 교화되고 정신을 차린 케이스이며, 예일대도 사실 가문빨로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정말 친절하고 온화하며, 클린턴과는 달리 사생활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치인으로서는 좀 띨띨.. -_-;; 이 양반에 대해서 뭐 전쟁광이네 어쩌네 하는 모함에는 난 별 관심이 없다만, 진짜 어눌했던 건 사실이다.
그나마 신앙빨 하나 내세워서 재선까지도 아슬아슬하게 성공함. 부자가 나란히 대통령이 된 사례로 미국 역사상 둘째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사람들 말고도 미국 역사를 공부해 보면 재미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성경의 열왕기처럼 누가 왕이 돼서 죽을 때까지 실컷 나라를 통치하다가 또 자기 아들에게 왕위 물려주는 패턴이 아니라,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해서 지정된 임기 동안만 통치를 하게 하는 나라의 내역은 색다르지 않을 수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24 08:45 2011/06/24 08:4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1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530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19/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264727
Today:
364
Yesterday:
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