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 승만 할배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서 0에서 1을 만든 거인 위인 초인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20세기 초 젊은 시절에 가츠라 테프트 밀약을 당하는 걸(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제 식민지가 승인됨) 직접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 자기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미국이 울나라를 버리고 싶어도 못 버리게 나라 틀을 짰다.

생각을 해 보셔, 해방 직후부터 용산에 주한 미군 기지가 있었으면 6· 25 당시에 겨우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겠냐?
친서방, 시장 경제 자유 민주주의, 농지 개혁, 독도 평화선, 주한미군, 반공포로 석방, 한미 상호방위조약, 학생들한테도 민주주의 교육, 국비 유학 장학생 양성..
폐허 속에 붕괴 직전이던 집을 정말 초인적인 인맥 빽 동원해서 무너질 일이 없게는 만들어 놨다.

뭐, 큰 고비를 넘긴 뒤, 인의 장막 속에서 서서히 자기과시와 흑화 조짐이 보인 것은 사실이다.
곳곳에 할배 동상이 세워졌다. 1950년대 후반 몇 년간은 3월 26일인가 할배 탄신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지폐에 할배 얼굴은 진작부터 들어가 있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생존 현직 대통령이 이 정도로 라이브로 떠받들어졌던 건 저 1공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하다.

그래도 이때는 한국인들이 대통령이란 걸 처음으로 경험해 보고, 조선 왕정 시대와 일제 시대의 관념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도 꼴랑 10년 남짓이었다.
할배는 조선 황실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박대했는데 그래도 늘그막에 자기가 왕 같은 대접은 좀 받고 싶어한 것 같다. 그러니 할배 주위에 아부꾼 간신배들도 끊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배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압도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할배가 진짜로 악의적인 독재자였으면 애초에 젊은 애들한테 민주주의 교육을 안 시켰을 것이다. 4 19 따위는 그 시절 북괴나 동구권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관총과 탱크로 유혈진압 하면 그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긴 말 하지는 않겠지만, 리 승만이 악의적인 분단의 원흉이라니(!!) 친일파 득세 원흉이라니, 리 승만 대신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그거는 정말 일고의 가치가 없는 소리이다.

2.
자, 저렇게 리 승만 할배는 항일 독립운동으로나 훗날 울나라 초대 대통령으로나 워낙 큰 족적을 많이 남겼다. 공도 있고 과도 있으며, 그거 갖고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편이다. 과는 공에 비하면 그야말로 자릿수가 다를 정도로 쨉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아, 오해하지 말라. 리 승만이 정치인으로서 실책을 저지르고 잘못한 것이 작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잘한 것이 정말 너무 넘사벽급으로 엄청나다는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디즈니 뮬란의 끝부분 대사처럼 말이다. "뮬란, 자네는 제멋대로 가출해서 입대해서 자기 상관을 속이고 궁궐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온갖 사고를 치고는.. 우리 국가와 민족을 구해냈다" 할배의 공과 과가 이런 관계라는 얘기다.)

이런 할배에 비해 서 재필은 그 정도 임팩트가 없어 보인다. 해방 후에 국내에서 정치를 하지를 않았으니 실책이나 악행, 과오를 깔 것도 없다.
그러니 서 재필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냥 미쿡인이었음. 한국어도 다 까먹고 고국과 동족을 깔보고 무시했음. 미국으로 돌아가서 지 한몸 편하게 잘 살았음. 친일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애국애족 한 것도 아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무덤에 누워 있던 서 재필이 저 말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뭐가 어쩌고 저째?”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지 싶다. 그 사람이 왜 미국인 행세를 했는지 생각은 해 보셨는가?

서 재필은 20세 청년 나이로 벌였던 갑신정변이 실패하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려서 정말 참혹한 멸문지화를 당했던 사람이다. 자기 부모, 와이프, 심지어 자기 아들, 양아버지, 형.. 집안이 몽땅 싸그리 몰살당했다. 처형, 자결, 노비로 강등..

우리의 고종은 갑신정변 잔당들을 해외로 자객까지 보내서 집요하게 제거했다. 가령, 김 옥균은 중국 상하이에서 피살당한 뒤, 목이 짤리고 머리가 한양 시내에 내걸렸다. (시체를 방부 처리해서 한국으로 운구해 와서는 일부러 저런 짓을)
서 재필은 목숨 부지하려고 일본을 거쳐서 미국까지 도망치게 됐다. 이 모든 게 무슨 고대 근대 중세도 아니고, 1880년대에 구한말 한반도 땅에서 벌어졌다!!

서양에서는 아예 왕을 암살한 반역범이라 해도 가족한테까지 저런 보복을 하지는 않았다. 저 때로부터 수백 년 전에도 말이다. 당사자야 사지 찢기고 내장 끄집어내진 채 죽었을지언정, 가족은 추방이나 신분세탁 정도로 끝났다. 한 마디로 조선이 미개했거나 최소한 고종이 엄청난 암군 폭군이었다. (+ 민씨 일가도)

서 재필은 영어의 영 짜도 모르던 상태에서 인종차별도 쩔던 미국 한복판에 알거지 상태로 내던져졌다. 그러니 생존하려면 이를 악물고 정말 미칠 듯이 주경야독 공부,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만학도 신분으로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졸업생 대표 연설), 미국 시민권을 받고 거기서 의대를 나와서 의사까지 됐다! 박 정희가 신분 상승을 위해 외국 나가서 만주군 장교가 됐다면, 서 재필은 더 먼 외국에 나가서 저렇게 출세한 것이다.

그는 미국 간 지 12년 만에 성경의 요셉과 비슷한 급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조선 땅에 돌아오게 됐다. 독립협회 세워서 자기 고국을 청나라 간섭 없는 나라, 미국 같은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만들려고 말이다.

이런 그가 자기 가족을 절멸시켜 버린 애증의 고국에서 “헤이, my name is 필립 제이슨. // 오우 노!! 코리아는 이래서 노 답!! ㅉㅉㅉ” 이렇게 미국인 행세를 한 거는 정말 정말 소심한 복수이자 귀여운 애교인 거 같은데 말이다. 미국인 행세를 해야 자기가 미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남들이 자기를 함부로 해코지를 못 하지 않겠는가?

그는 진짜로 자기 고국이 싫어졌으면 박 중양처럼 신념형 친일파가 됐거나, 미국에 틀어박혀서 평생 병원이나 경영하면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현실의 서재필처럼 살았겠냐?
정말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소릴 듣는다.

더 코미디 같은 건.. 이런 서 재필조차도 리 승만의 업적을 가리고 존재를 지우는 대타 용도로는 잘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_=
왜, 미국에 세계 각국 영사관에는 각 나라의 국부들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기에도 리 할배 대신 서 재필 동상이 있는 식으로 말이다. (영화 건국전쟁 참조) 정말 썅소리 나오지 않을 수 없다.

3.
할배는 대통령으로 선출은 합법적으로 됐는데 장기 집권을 하려고 법을 고쳤던 반면..
박 정희는 첫 시작부터가 군사정변이고 집권 중에도 유신 쿠데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치적인 사고를 제일 크게 쳤고 제일 오래 집권했지만, 그 규모에 비해서 자기를 내세우려 한 정도는 덜했다. 과묵하고 뚝심 있는 편이었다.

박 정희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에 명예박사 학위가 전혀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딴 요식행위 다 쓸데없다고 거절하고 안 받았다.

  • “학생 여러분은 내일의 주인공이지 지금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좌익분자들한테 선동돼서 반정부 데모질 시위 하지 말고 조용히 공부나 하기 바랍니다)”
  • “내가 벌이는 일이 지금은 잔뜩 욕 먹을지 모르지만 평가는 후세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할 겁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면 나중에 내 무덤에다 침이나 실컷 뱉으시오.”

쿨하고 씨크하고.. 뭔가 미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암살당하지 않았으면 과연 언제까지 대통령을 했을까? 9대 임기가 끝나는 84년쯤에 자체개발 핵무기 공개하고 90년대 올림픽 유치까지 마치고 나서 퇴임했을까?
저 사람은 제 명에 죽었다면 자기 무덤도 성대하게 꾸미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지 싶다. 지금 같은 왕릉처럼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박 정희는 영부인이 역대 제일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영부인이 소록도까지 찾아가서 위문했던 것 때문에 오죽했으면 2012년도 대선 때 그 동네가 7시 지역에서 '유일'하게 레카 표가 뭉괴 표보다 더 많았었다.

그리고 더 여담을 보태자면..
박 정희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그걸 절대로 넘기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 설욕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질 하다가 일본인 교사들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만주국 장교가 돼서 돌아와서 걔들을 데꿀멍 시켰으며,
가난한 놈팽이라고 장인어른으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나라를 뒤집어엎고 대통령이 돼서 장인으로부터 사과까지 받았다.;; 무섭지 않은가?

또 저 사람 가문은 부친, 당사자, 아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아들을 40~50 나이가 돼서야 얻었다. 대를 이은 노산 가문인 게 인상적이다. 박 정희가 1917년생인데 아들 박 지만의 막내아들이 2014~2015년생이니.. 그래도 박 지만은 요즘 세상에 아들만 넷인 애국자 집안이 됐다.;;

4.
이런 박 정희에 비해.. 후임 전땅끄는 좀 더 '촐랑촐랑' 경박한 이미지인 것 같다. =_=;;
자기를 드러내고 쑈맨십 내세우는 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이때 '땡전뉴스'라는 게 있었다. 심지어 영부인도 남편이랑 같이 어디서 환호를 받으면 같이 손 흔들면서 화답도 했다.
"인간 전두환",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된 답정너 대통령"...;;

박 정희 때는 5 16이나 유신 쿠데타 시절에도 언론이 이 정도로 치켜세우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ㅎㅎ 리 승만 시절과는 좀 다른 형태의 아부꾼이 등장했다.
왜, 옛날에 미국 맥아더 원수도 쑈맨십 있고 언론을 적절히 잘 구워삶던 사람이지 않았던가?
인물 사진, 풍경 사진 한 장을 언론에 내보내더라도 이 구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거 말이다. 전땅끄에 대해서도 그런 기질이 느껴진다.

그 과시욕이 어딜 가지 않아서 제주공항 신설 활주로 준공식에 참석하러 갈 때도 군용기까지 악천후에 무리해서 의전용으로 띄웠다가 날려먹은 적이 있었다.
땅끄는 평생 사는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정치질의 달인이 됐고, 그 기질이 나중에는 "카메라들이 나만 좀 삐딱하게 찍어. /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내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놓고"라는 희대의 멘탈갑 명대사로 이어졌다.

전땅끄는 할배나 박 정희와 달리,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내력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래도 저 사람도 권좌에 오르는 과정이 좀 에바였지, 일단 대령통으로서 재임 중의 뚝심 있는 행적은 괜찮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도 죽을 때는.. 북한 땅 보이는 전방에 이름없이 묻어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지금 장지를 정하기는 했나? 어디 묻혔나? 참 궁금하다.

※ 나머지 여담

(1) 백범 김 구에 대해서 '킬구'라는 별명이 나도는데.. 이건 당사자의 성깔과 행적을 감안하면 마냥 터무니없는 별명이나 멸칭이 아니었다.
소싯적에 일본인 민간인을 린치해서 죽였던 ‘치하포 사건’뿐만이 아니라, 그는 임시정부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수틀리면 테러와 암살을 종종 사주했기 때문이다. 변절한 안 중근의 아들을 암살하려 했고, 김 립 같은 생사람을 밀정이라고 의심해서 죽여 버리기도 했고.. 뭔가 주토피아 땃쥐 “Ice them!” 같은 인상이다.
그랬는데 그도 결국은 암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2) 할배와 박 정희 사이에 잠깐 대통령을 했던 윤 보선은.. 권력욕이 있었는지 2공 시절 대통령을 퇴임하고도 3공 시절에 대선에 ‘또’ 출마를 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1960~61년 사이 윤 보선 시절에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뀌고, 형무소가 교도소로 용어가 바뀌었다.

(3) 할배는 “대통령은 n회 이상 중임할 수 없다. 단, 초대 대통령은 예외로 한다”라고 정말 속내가 노골적으로 뻔히 보이는 개헌을 추진했었다.
그 뒤 전땅끄는 선례가 선례인 관계로 옛날 같은 독재 장기집권을 대놓고 추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국가원로 자문회 운운하면서 대통령 위의 ‘상황’ 자리를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꼼수 보소.. 그 흔적이 현행 헌법에까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사문화된 지 오래다.

(4) 대한민국 역사상 범죄자를 길거리에다 조리돌림 시켜서 망신 준 건 1961년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했다.
한편, 살인이 아니라 강간 절도 범죄 누범만으로 무려 ‘사형’이 집행된 건 1985년 즈음, 전땅끄 시절의 가정파괴범 처벌이 유일했다.

(5) 박 정희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빡쳐서 북괴를 상대로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일갈했었다.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오너라!)
김 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중앙청 건물 철거를 강행하면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7 19:35 2025/06/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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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승만: 한강 인도교 폭파 관련 오해

할배의 집권 시기였던 제1공화국은 미국과 비슷한 4년 중임 간접 선거(나중에 헌법이 개정되어 다 바뀌긴 했지만)와 부통령, 청와대 대신 경무대, 단기 연호, 써머 타임, 화폐 단위가 원이 아니라 ‘환’, 아직 서울 특별시 외에 직할시 광역시 따위 없음.. 이렇게 시스템이 지금과는 다른 게 너무 많았다. 한국어와 한글, 태극기 같은 것만 같았다.

병역조차도 건국 직후 맨 처음엔 모병제였는데 6 25 사변의 트라우마가 생긴 뒤부터 징병제로 바뀌었다. 심지어 기간도 역대 최장인 3년이어서 박 정희 때 1 21 사태로 인해 연장됐던 최장 기간과 동일했다. 뭐 그건 그렇고..

할배의 집권 시절의 흑역사 중 하나로 6· 25 사변 초기의 한강 인도교 폭파가 즐겨 회자되고 있다. 이건 시간을 벌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긴 했지만, 너무 일찍 터뜨리는 바람에 진짜로 후퇴해야 할 병력과 피난 가야 할 시민들도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해서 곤혹을 치르게 됐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다만, 피난민들이 멀쩡히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뜬금없이 그 다리를 폭파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처럼 추락하고 꼬르륵..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쪽으로 역사 인식이 바뀌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누가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를 포함해 각종 위키에서도 한강 인도교 폭파 때의 자국민 인명 피해가 ‘군경 77명 사망’으로 고쳐졌다.

“그 큰 대교를 폭파하려면 비용은 둘째치고 폭파를 준비하는 데만 최소 몇 시간이 걸린다. 민간인 진입을 통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이 인도교 위에 있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엔 민간인의 피해는 없고, 군경 77명의 피해가 있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 나무위키. 얘는 일방적인 보수 우편향 사이트가 절대 아니다.


윤 서인 인라이트 역사 만화에서나 봤던 설이 위키에도 반영되어 들어가다니 놀랍다. 그런데 폭파 당시에 민간인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럼 그 군경은 도대체 그 시간에 무슨 일로 거기에 있다가 폭발과 함께 강물로 떨어져 순직한 걸까..?? 민간인을 다 통제시켜 놓고 위험한 곳에 있다가 죽은 거면 직무상 순직으로밖에 볼 수 없을 텐데?
그리고 77명이라니. 이거 무슨 경부 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수도 아니고, 숫자가 좀 인위적이어 보인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팩트를 더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한강 인도교 폭파는 관련 사진이 전해지는 게 전혀 없다. 1· 4 후퇴 때 평양에서 대동강 철교가 폭파되고 피난민들이 거기를 건너는 모습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거기에 오도되지 마시기 바란다.

  • 폭파 당시 말고 폭파 “후”에.. 다리에 대한 출입 통제가 제대로 안 돼서 피난민 행렬이나 차량이 추락한 경우는 좀 있었다. 이때는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은 한밤중이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끊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했어도 뒤따라 오는 행렬에 떠밀려서 다리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정말 보면 볼수록.. 별로 크지도 않은 이 쬐끄만 나라는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인 근현대사에 과장과 왜곡과 날조가 너무 많은 거 같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만 보면 사람마다 정반대의 사관을 갖게 되기에 딱 좋다.
김 구의 행적이나 독립군의 전과도 그렇고.. 저 한강 인도교 폭파도 그런 카테고리에 들겠구나.

2. 박 정희: 인상의 변화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기 집권을 한 양반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집권 중에 얼굴이 연식 때문에 삭아(?) 가는 모습도 종류별로 제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솔직히 할배만 해도 1948년에 취임 선서하는 모습이나, 12년 뒤에 4· 19 시위 부상자들을 문병하는 모습이나 내가 보기엔 인상이 거의 차이가 없이 똑같은 할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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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성명을 내는 모습 사진은 없는지..?? 이걸 못 구해서 딴 걸로 대신했다. 그래도 할배는 12년의 격차가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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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원조가카는.. 대외적으로 왼쪽 같은 인상이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오른쪽처럼 인상이 많이 삭기도 했다.;;;
그러니 원조가카를 존경하는 진정한 매니아라면.. 사진에서 이 아저씨 머리가 하얗게 샌 정도, 옆에 영부인이 있느냐 장녀가 있느냐 등등의 단서를 토대로 이게 60년대 중후반 모습인지, 70년대 중후반 모습인지 정도는 바로 알아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업적에 대한 시간 관념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월남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근로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경부 고속도로 개통, 10월 유신 정도는 시간 순 나열이 가능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거나 시험 문제로 좀 낼 것이지..
개인적으로는 새마을 운동이 1960년이 아닌 1970년대로 내 생각보다 나중이라는 것에 약간 놀랐다.

3. 박 정희: 일화들

아울러, 박 정희 대통령은 남과 대화를 하다가 대답을 센스와 재치 있게 잘 한 일화가 여럿 전해지는 사람이다.

(1) 미국의 어느 무기상과 거래를 하면서 비자금도 받았는데.. 박통은 이걸 받아서 그냥 쓰윽 하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하지도 않고.. “이 돈은 이제 내 껍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돈을 너한테 도로 줄 테니 그 액수만치 M16 소총을 더 갖다 주시오”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을 벙 쩔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건 정확한 출처와 일시가 검증 가능한 일화인지 모르겠다.

(2) 1970년대 초쯤엔가 지방 시찰을 갔다가 전주의 유명한 콩나물 국밥 식당 ‘삼백집’에서 전투력 최강의 욕쟁이 할머니를 대면했다. 그 할머니는 이 손님이 대통령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어 이눔 봐라? 네놈은 박 정희 대통령이랑 되게 닮았네? 옜다, 계란이나 더 쳐먹어라” 라고 서빙을 해 줬는데, 박통은 “내가 대통령을 닮은 게 아니고 대통령이 나를 닮은 게요~ ㅎㅎ”라고 점잖게 넘겼다고 한다.

(3) 1965년,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방문해서는(☞ 당시 대한뉴스 영상).. 나름 타국 원수 귀빈이 납셨는데 원하는 거 있으면 들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생도들 퍼레이드, 생도들에게 연설, 진귀한 선물 등.. 그런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지금 징계· 벌받고 있는 생도들이 있으면 다 사면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정말 뜻밖의 요청을 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사면령이 떨어지자 박통은 식사 중에 생도들로부터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 생도들은 졸업과 임관 후에 한국 파견 근무를 선호하는 친한파가 되었다.

아.. 박통은 생각이 깊고 정말 위대한 지도자였다.
학칙 위반 생도 사면은.. 이 사람이 좌빨들이 그렇게도 욕하는 일본 육사를 나오는 바람에 자신부터 군잘알, 사관학교 생도 생활 잘알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지 싶다. 군알못으로 출세한 사람이라면 어디 저런 답변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에서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부귀영화나 절대권력, 적장의 모가지 따위가 아니라 "백성들을 바르게 통치할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서 이쁨받았던 것과 비슷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이듬해의 린든 존슨 대통령 방한 환영 행사도 그렇고.. 1960년대에 원조가카가 미국으로부터 점수 따서 지원 많이 받으려고 이런 식으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4. 전 두환: 일반적인 행적, 치안 안정

1980년대 전땅크는..

  • 통금 해제
  • 컬러 텔레비전
  •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
  • 서울 올림픽 유치와 준비
  • 한강 종합 개발 사업과 올림픽대로
  • 정보화 시대: 삼성 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개발, 8비트 컴퓨터 개발, 1984년의 제1회 전국 퍼스널 컴퓨터 경진대회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으로 전땅크는 범죄 예방과 사회 치안 쪽으로도 다음과 같은 독자적인 선정을 베풀었다.

  • "아이가 죽으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이 윤상(1980), 원 혜준(1988) 유괴 살인 사건. 가해자는 대통령의 약속대로 바로 사형에 처해졌다. 각각 아직 4공이던 초창기와 6공 출범 직전 시기의 일이다.
  • 삼청교육대: 1980년, 4공 시절에 잠깐 있다가 말았던 엽기적인 군대식 교화 시설이다. 비록 강제 징집 때문에 오점이 남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 시절에 이런 거라도 있어야 했을 정도로 사회 기강이 개판이었다. 지방 조폭, 술 쳐먹고 행패 부리는 양아치들... 본인은 심지어 지금이라도 삼청교육대가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엔 7~80% 정도 동의한다.
  • 가정파괴범: 대한민국 역사상, 살인 없이 강도 강간 누범만으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됐던 때는 할배도, 원조가카도 아닌 전땅크 시절이 유일했다~!! (1985년 11월)

이런 건 서 정주 시인이 지은 오글거리는 송시에도 언급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전땅크는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무려 30년이 넘게.. 역대 대통령들 중 독보적으로 제일 오래 생존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건강하고 볼 일이다.

5. 전 두환: 악을 선으로 갚기

지난 1984년에 우리나라는 극심한 수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때 북한에서 구호물자를 보내 줬다.
이건 사실, 북한에서도 남한이 그걸 받을 거라고 기대도 안 하고 농담/조롱 반 진담 반으로 “안됐네.. ㅉㅉㅉ 우리가 도와줄까? 구호물자 좀 보내줘?”라고 떠본 것이었다.

그런데 전땅크가 그걸 덥석 물고.. “응~! 좀 도와주면 고맙겠..! 우리가 남이가”이라고 손을 내밀어 버렸다. 그러자 북한도 없는 살림에 구호물자를 갑작스레 챙기느라 혼쭐이 나야 했다.
북에서 급조해서 보내 준 쌀, 시멘트와 옷감 따위의 품질이야.. 이 글에서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허나, 남한에서는 답례로 그 받은 쌀과 시멘트와 옷감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전자제품 공산품들을 북한 근로자들에게 선물로 뿌려줘서 북측의 자존심을 콱콱 구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전땅크가 대북 심리? 외교전에서 압승을 거둔 셈이다.

참고로 이건 전땅크의 목을 노렸던 아웅산 폭탄 테러가 벌어진 지 겨우 1년 남짓밖에 안 됐던 시점의 일이었다. 훗날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 놓고 말이야” 이러는 것만 봐도.. 전땅크 역시 멘탈이 보통 멘탈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북괴는 이런 무식하고 야만적인 짓거리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규탄과 손가락질 받고 단교 당하면서 외교전에서 장렬히 자폭했다. 실드의 여지가 없는 몰수패를 당했다.
그랬는데 남한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유치하면서 승승장구 중이니, 남한을 어떻게든 방해하고 저지하면서 자기들도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니 초대형 릉라도 경기장을 건설하고 류경 호텔도 착공하고, 올림픽 대신 "세계 청년 학생 축전"을 유치하면서 별별 짓을 다했지만.. 대부분 돈만 날리는 뻘짓으로 끝나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24 08:36 2021/11/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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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은 안 중근 의사가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쓰러뜨린 날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70년 뒤, 1979년 10월 26일은 박 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 재규의 권총에 맞고 절명한 날이다. 10.26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이후 역사를 크게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박통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1961년부터 시작된 18년간의 군사 독재가 이제 좀 끝이 나는가 싶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게 아니었던 것만큼이나 이것도 시민의 힘으로 직접 독재 정권을 끌어내린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박 정희가 남긴 뒷자리는 그의 심복이던 전 두환이 냉큼, 날름, 덥석 차지하게 됐다. 어차피 사람만 바뀌었지 또 다른 군사 독재인 건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더 늘어놓아 보겠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통은 삽교천 준공식을 마치고서 서울로 돌아와서 피로도 풀 겸 궁정동 안가에서 회식을 했다. 최측근 참모들과 더불어 20대 중반의 어여쁜 여대생,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잘나가던 여자 가수까지 데려 와서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회식은 누가 박통에 대해 험담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사치스럽고 음란방탕한 자리는 아니었다. (저걸 갖고 험담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여자와 관해서 일체의 난잡한 면모가 없었고, 극도로 근검절약 검소했으며 회식 자리에 기생이 아니라 각자 자기 부인을 데려 오게 한 전직 대통령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어차피 아니다.)

박통은 알다시피 수 년 전에 영부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뒤부터 멘탈이 많이 피폐해졌다. 곁에서 쓴소리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자제력을 잃고 예전보다 점점 더 과격 고집불통 폭주끼도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어 보인다. 박통은 육 영수 여사를 두고 "지금 내 옆에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골수 야당 총수가 있소" 이런 농을 치기도 한 바 있다.

이 와중에 암살 가해자인 김 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경호실장이던 차 지철과 박통에 대해서 쌓인 앙금이 많은 상태였다. 그러다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이 패거리들을 오늘 회식 자리에서 해치워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 그래도 권총까지 챙겨 가서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식 자리에서 차 지철과 박통은 합심해서 김 재규를 코너로 몰아 넣었다. "야당이며 반대파들이 이렇게 정권에 대항하면서 날뛰고 있는데 중정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좀 더 강하게 짓밟아 버리지 못해?" 이렇게 갈구고 있으니 김 재규가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을까?

결국 김 재규는 차 지철과 박통을 권총으로 쏘고 말았다. 그에게서 지시를 미리 받은 그의 부하들은(박 선호, 박 흥주 등) 총소리를 듣고서 주변의 경호원들을 사살해서 궁정동 안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김 재규는 사살 계획 자체는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해서 결국은 성공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른 뒤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멘붕· 당황· 우왕좌왕 하고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는 차 지철이 하극상을 벌여서 원조각하를 살해했으며, 자기는 이를 저지하다가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를 사살했을 뿐이라고 얼~~마든지 의심 안 사고 조작과 은폐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위장과 조작의 달인인 중앙정보부의 최고 수장이었으니 말이다. 왜 저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정말 제1의 미스터리이다.

그리고 더 따지고 보면, 박통은 암살 안 당했으면 대통령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 먹었을지도 궁금해진다. 이건 제2의 미스터리이다. 할 거 다 하고, 1990년대에 수도 이전과 올림픽 유치까지 다 해 놓은 뒤, 7· 80대 나이쯤 됐을 때 물러나겠다고 증언한 기록도 있다고 하는데 출처는 지금 기억이 안 난다. 뭐 어쨌든..

김 재규는 일을 저지른 뒤 상황을 자기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서는 자기 휘하의 남산 중정으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보안을 위해서는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중정 대신 육본으로 가는 일생일대의 패착을 뒀다. (정확히는 현장에 같이 초청했던 정 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제안을 별 생각 없이 따른 것)
그는 누가 각하를 죽였는지 대놓고 거짓말은 차마 못 한 채, 어영부영 나라가 위기에 빠졌다고 계엄드립만 늘어놓다가 군 수뇌부 앞에서 탈탈 털렸다.

원조각하의 죽음이 확인되고 더구나 이게 북한이 아닌 내부 소행임이 확실시되자, 군 내부에서는 평소에도 월권과 하극상을 일삼던 차 지철의 도발을 먼저 의심했다. 그리고 혹시 군 내부에 다른 차 지철 파 쿠데타 세력이 있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입막음을 당부받았던 김 계원 비서실장이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김 재규의 단독 범행(= 중정 말고 군 내부에 다른 배후 세력은 없는)을 정 승화 장군에게 몰래 실토하는 바람에, 김 재규는 그대로 인생 운지하고 말았다.

김 재규의 패착은 북한에서 6·25 전쟁을 조장했던 박 헌영의 패착과 거의 동급 수준이었다.
사건을 제대로 은폐하지 못한 채 저런 허술한 행동에 뜬금없는 기승전 계엄 얘기만 한 걸로 미뤄 보면, 그는 대통령을 살해한 와중에도 일말의 국가 안보 걱정은 최우선으로 한 듯하다. 다만, 무슨 민주화를 위해서 각하를 쐈다는 말은.. 글쎄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사건 당일엔 차 지철에 대한 증오심이 더 컸지, 그런 거창한 이념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을 것 같다.

갑자기 철권 독재 대통령이 없어지고 경호실장과 정보부장까지 없어지니 나라에는 엄청난 통치 공백이 생겼다.
이 와중에 최 규하는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 존재감 없는-_- 대통령으로 기록됐지만, 한편으로 정당 활동이 없이 학자와 관료 테크만 거쳐서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대통령에 오른 유일한 사람이다. 덩치 크고 엄청난 학식과 인품의 소유자이고.. 그는 스펙은 참 훌륭했지만 국가 지도자로서는 지지 기반이 너무 없고 우왕좌왕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김 재규의 요청대로 전국에 계엄이 선포됐다. 그리고 10.26 사태의 수사권을 쥔 군부가 사실상 권력의 실세가 됐다. 미우나 고우나 군부 말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
정 승화가 계엄 사령관이 됐고, 그 밑에 육사 동기들 중에 제일 잘나가던 전땅크가 10.26 수사본부장이 됐는데... 그는 이 엄청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히 활용하여 뒤통수를 쳤다.

"어? 정 승화 저 사람도 그때 현장 근처에 있었다면서 왜 김 재규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거나 신고하지 않았을까? 혹시 이 사람도 쿠데타 가담 세력 아냐? 김 재규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린 당사자라지만 좀 냄새가 나는데?"
이렇게 어거지를 씌운 게 12.12 군사반란의 본질이다. 군대 인사 발령이 끝나고 10·26 사건에 대한 수사도 끝나 가던 12월 12일이 사고 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시는 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범이 다른 멀쩡한 사람을 도리어 쿠데타범으로 몰아 가다니.. 역사적으로 정치판 싸움은 이런 식의 암투로 진행된 듯하다. 선배고 후배고, 내 부대 네 부대 구분 따위도 없었다.
제5 공화국 드라마의 명대사인 "야 이 반란군놈의 새X야! ... 내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 버리겠어!"(장 태완 장군)도 정 승화 참모총장이 반란군에게 억류 당해 있을 때 나온 대사이다.

전대갈· 전땅크, 29만원 아저씨는 독재(?)를 했다지만 전임인 이통, 박통에 비해서야 존재감이 덜하며 우파로부터도 그 전임들만치 긍정적인 평판은 못 받는 전직 대통령이다. 군대를 장악한 뒤에 정권도 장악하고(5· 17 쿠데타) 최 규하 대통령까지 완전히 사임시키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2016년 1월 현재 일단 생존 중인 최고 오래 된 전직 대통령이다. 몸 관리 잘한 군인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1920년대생인 백 선엽 장군도 아직 살아 있다!) 그는 역시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전한 저택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천수를 누리다 갈 것으로 예상된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말이야" 드립을 칠 정도의 여유와 멘탈갑 센스-_-도 갖추신 지 오래다.. 저 기백과 배짱을 보라. 그러니 하야· 암살과는 차원이 다른 가성비를 얻었다.

전땅크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아저씨는 권좌에 앉기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지, 일단 대통령이 된 뒤에는 7년 단임만 하고 진짜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집권 도중에 장기 통치하려고 헌법을 뜯어고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1987년의 6월 항쟁도 개헌을 통해 '5년 단임 직선제'라는.. “후임 대통령의 선출 방식”을 민주화하기 위한 시위였지, 전땅크의 장기 집권 자체를 규탄하는 시위가 아니었다.

독재자 타이틀이 있는 전임들의 행적과 비교하면 이렇다.

  • 이 승만: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자체는 적법하게 됐지만, 2대· 3대에 4대까지 연임하는 과정에서 사사오입 개헌에다 야당 정치인 탄압 등 지저분한 짓거리가 끼어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12년 동안 1~3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 시기를 헌정 시스템 기수로는 제1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은 하야 후 명목상 노환으로 자연사하긴 했지만 타지에서 최후를 맞이했으며, 귀국이 좌절되면서 더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 박 정희: 정말 통 크게 해 먹었다. 집권 때도 그 당시에는 혁명이라고 불린 5· 16 쿠데타를 일으켰고, 집권 중엔 유신 헌법 버프를 자가발동하여 총 무려 18년 가까이 집권했다. 5~9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제3과 제4 공화국을 새로 썼다. 대한민국의 헌정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말년엔 잘 알다시피 부하에게 피격 당했다.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 그리고 전땅크: 이 승만과는 반대로 집권 과정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집권 중에는 다른 뻘짓 없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아주 해피하게 살다가 갈 것으로 예상. (쿠데타 , 장기 집권 목적 개헌 ×)

(어느 나라건 독립 운동가 출신 초대 대통령은 독재자로 흑화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어떻게 해서 이룬 독립이고 어떻게 해서 세운 나라인데, 불안해서 선뜻 후임에게 놔 주고 싶지 않은 심정을 본인도 나이가 드니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처음부터 2선만 딱 하고 물러난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참 이례적인 대인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렇게 XO, OO, OX를 거친 뒤에야 현재의 대통령들은 일관되게 XX가 유지되고 있다.
뭐, 전땅크는 명목상 11, 12대 대통령이지만, 중간에 연임을 해서 두 대가 커버된 건 아니다. 집권 초기에 헌정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에 대수가 올라간 것이다. 5공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은 12대가 전부인 게 맞다.

박통에서 전땅크로 넘어간 과정을 살펴본 본인의 생각은 이러하다.
10.26 사태는 남한 내부에 정말 심각한 수준의 권력 공백과 혼란을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야기했다. 이 승만이 하야하던 시절보다도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Windows API에다 비유하자면 ExitProcess와 TerminateProcess의 차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틈을 노려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정치 불안으로 인해 상황이 얼마든지 더 나빠지고 혼세마왕 강림 급의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나마 피해가 저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은 쿠데타(?)로 그럭저럭 내부 수습과 권력 이양이 된 것도 무척 다행이다.

이 시절에 벌어졌던, 일부 반공을 빙자한 인권 유린은 당연히 욕 쳐먹어야 하고 두고두고 까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 중 최악의 흑역사는 영화를 능가하는 병맛을 자랑하는 수지 킴 간첩 조작 사건이 아닐까 한다. 어휴..;; 성경에서 다윗이 아무리 성군이었다 해도 우리야의 유족에게는 석고대죄해야 할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전땅크 정권도 특정 개인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땅크를 비롯해 5공 주역들이 일차적으로 근본적으로, 민생을 생각하고 여전히 경제를 일으키는 독재를 했다는 건 감사할 점이다. 5공 시절의 물가 안정과 경제 호황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우리나라가 뭐 언제부터 그렇게 성숙한 민주주의를 시행해 왔다고.. 군부 말고 무슨 탄탄한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들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뭐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반대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치명적으로 유린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정치 체계는 높으신 분들이 뭐 어떤 방식으로 다스리든 별 상관 안 한다. 일단 독재자의 개막장 자기우상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이므로.).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옛날에는 지금처럼 대통령을 5년마다 한 번씩 뽑는 게 아니었다. 군사 독재가 횡행했다. 반공을 빌미로 억울한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서 고초를 겪었다." 이런 말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위생이 안 좋아서 집집마다 머릿니를 잡고 쥐를 잡아서 꼬리를 할당량 채워서 학교에다 제출해야 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결핵이나 천연두, 콜레라 같은 후진국형 질병이 횡행했다. 서민이 해외 여행을 하기도 훨씬 더 어려웠다. 사회· 조직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험악하고 폭력적이었다." 이런 말하고 하등 전혀 다를 바 없다.

과학 기술 없고 돈 없고 못 살던 시절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는가?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고, 공산주의자의 흉악한 이간질에 서로 믿을 수가 없고, 한두 사람의 잘못이나 악행 때문에 집단 전체가 망하게 생겼는데 언제까지나 신사적이고 인간적으로만 사람을 대할 수가 있었겠나? 그땐 어쩔 수 없이 그랬고 일부 부작용도 있었지, 그 시절의 정치 행태가 그~렇게까지 이를 물고 비관할 정도가 아니었다는 게 본인의 지론이다. 원래부터 현실이 시궁창이었지, 뭔가 잘되려는 걸 누가 망쳐 놓은 게 아니라는 거다.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장 준하만 대통령 됐으면 민주주의가 뭐 어떻고, 친일 척결만 잘했으면.." 이런 식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건 정치 제도이고, 정치 제도는 생각보다 아주 상대적인 개념이다. 까놓고 말해 세종대왕 급의 아주 유능한 1인 독재자가 있으면 굳이 n년 주기로 대통령을 힘들게 새로 뽑아야 할 필요가 있겠나.. =_=;; 하다못해 지금도 이 사회 시스템으로는 답이 없으니, 확 다 갈아엎고 강력한 독재자가 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물며 그 못살던 시절에는 어떠했겠는가.
대통령 직선제라는 건, 뭐 이뤄낸 건 잘한 일이다만, 이게 무슨 북괴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거나 5천 년 가난을 물리친 것만치 그렇게까지 위대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면 독재 미화 발언처럼 들릴지 모르는 말이나, 세계 역사에서 '진짜 악의 악질적인 독재자'가 하는 짓거리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면 저건 절대로 근거 없는 실드가 아니다. 정말 작정하고 몇천~몇만 명 이상 짓밟아 버리면 민중 항쟁, 시위? 그런 건 애초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북한과 캄보디아를 생각해 보아라. 우리나라가 저 상황에서도 예외적으로 복 받은 거 맞다. 함부로 여기나 북한이나 똑같다는 소리 하지 마라.

10여 년 전에 MBC에서 방영했던 제5 공화국 드라마는 지금 다시 봐도 굉장히 고퀄로 잘 만들어지긴 했다. 실제로는 5공보다 여전히 4공 시절 이야기가 더 많긴 하다만..
또한, 논조가 그냥 일방적으로 전땅크와 신군부를 병크 저지른 것, 잘못한 것만 부각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정말 객관적으로 그 시절의 역사를 다룰 의도라면 최소한 1983년의 아웅산 테러라든가 이 윤상 군 유괴 사건도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괴범은 듣거라. 아이가 살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라는 대사를 이 덕화 씨가 읊었으면 재미있지 않았겠는가?
그럼 다음 잡설들을 추가로 늘어놓으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난 박통의 최종 계급이 투스타인 걸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전역 직전에 명목상 포스타로 쾌속 진급을 한 뒤에 전역했다. 이건 전땅크, 심지어 후임 노 태우도 마찬가지. 다 예비역 대장이다.
이러니 김 영삼이 자기 정권 코드 네임을 '문민정부'라고 지었겠다 싶다. 군인 출신이 아니라 순수 민간 정치인이 정권다운 정권을 역사상 처음으로 잡았다고 말이다.

몇 달 전에 고인이 된 김 영삼 전대통령은 교회 장로여서 그런지 이 승만에 대해서는 좋게 말한 반면, 직접적으로 자기를 탄압했던 박 정희에 대해서는 늘그막까지도 혹평과 악담 스탠스를 바꾸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박통 말기에 이 정권은 얼마 못 가 무너질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무너질 거라고 저주를 내리기도 했다.
보통은 둘 다 좋아하거나 둘 다 싫어하고, 하나만 고르라면 차라리 박 정희를 이 승만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 영삼과 같은 성향은 좀 흔치 않아 보인다.

(2) 이 승만, 장 면, 윤 보선, 최 규하, 노 태우는 다 영어를 작살나게 잘한 정치인이었다. 학구파 기질이 있었다. 거기에다 지금 레이디 가카도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에 반해 전땅크는 공부 타입은 아니고 체력, 리더십, 인맥 연줄, 사회성처럼 사업가나 정치인에게 어쩌면 더 필요한 아날로그스러운 자질이 충만했던 타입이다.

(3) 전땅크는.. 좀 얄미운 구석은 있다만, 그래도 대통령으로서 인사 배치와 리더십은 나쁘지 않았다. 군인이던 시절엔 1.21 사태 때 큰 전공 세우고 나중에 그의 주도하에 제3 땅굴까지 발견했다. 그리고 아까도 잠시 언급했지만, 집권 중에 이 윤상 군 유괴 사건을 잘 해결하고 사형 집행 잘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한 것도 잘한 점이다.
잘한 건 잘한 거다만.. 돈 많은 거 알고 있다, 선고받은 뇌물 추징금은 빨랑 뱉어라. -_-;;

Posted by 사무엘

2016/01/29 08:44 2016/01/2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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