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다음으로는 오랜만에 호박 차례이다. 호박 호박, 호박~~~ 호~~~~~박..!!
사 먹은 거, 직접 키운 거, 그리고 호박에 대한 보편적인 얘기들을 차례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1. 먹은 호박

늙은 호박이 제철이던 작년 가을엔 그냥 집 근처 채소 가게에서도 지름이 35cm를 넘는 거대한 호박.. 무게가 거의 10kg, 개당 2~3만 원에 달하던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집에 두 달 정도 놔 두다가 잘 쪼개서 먹어 치웠다. 과육과 씨 모두 상태가 양호하고 맛도 달콤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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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건 지난달 말과 이 달 초에 먹은 호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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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이 초록색, 속이 주황색인 호박은 품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단호박도 아니고..;;
초록색 호박은 일반적인 누런 늙은 호박보다는 내구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보관한 지 3개월쯤 되니 꼭지 부위부터 물러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즉시 도축을 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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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품종에 따라서 과육과 죽의 색깔도 살짝 차이가 나더라. 무슨 물감 같다^^
맛은.. 초록색 말고 누런 늙은 호박의 노란 죽이 더 달콤하고 좋았다.

뭔가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심정으로 호박을 쪼개고,
서예에서 먹 갈듯이 인격 수양하는 마음으로 호박 껍질을 깠다.
호박죽이 완성되는 건.. 뭔가 끓는 물에 돌아가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한 라면교 교주를 영접하는 순간 같다~~ ㅋㅋㅋㅋㅋ

2. 키운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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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작년 10월 말.. 날씨가 추워져서 야외에서 개인적으로 키우던 호박들이 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수분돼서 맺히던 열매를 따서 먹은 것이다. 아주 파릇파릇한 애호박이니 열매 내부에 씨는 거의 생겨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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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지난 1월 말에 수분이 성공해서 실내에서 맺히기 시작한 단호박이다. 수분된 지 1주일 정도 지난 모습인데, 지금은 이때보다 색깔은 더 짙어졌지만 크기는 별 차이가 없다. 귤 내지 양파 정도 크기가 됐다.
그 반면, 오른쪽은.. 암꽃이 피긴 했지만 하필 주변에 수꽃이 없어서 수분되지 못하고 그냥 떨어진 호박 씨방이다. 아까비~~~

암꽃이 꽃가루를 받지 못하면 꽃이 시든 뒤에 씨방도 쭈글쭈글 말라 비틀어지고 떨어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얘를 미리 잘라서 씨방 위에 붙어 있던 꽃잎을 떼어내니, 암술은 여전히 붙어 있다. 이거 무슨 기계 부품을 분리한 것 같다.. ^^

호박 씨방이 요렇게 된 모습도 볼 일이 매우 드물 것이다.
아아~ 저 노란 암술 소켓에다가 수꽃 수술의 꽃가루를 묻혀 주면.. 꽃가루에 담겼던 유전자 정보가 저 씨방 안으로 전달된다..!!
수많은 정자 중에 단 하나만 난자와 합체를 하는 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중에 암술과 꽃잎 같은 부속품은 몽땅 떨어지고 없어지지만, 저 씨방은 그대로 부풀고 자라서 먹음직스러운 호박이 된다. ^^ 호박에서 북극의 꼭지 말고, 아래 남극의 배꼽 같은 부위는 과거에 꽃과 암술이 붙어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호박은 충매화에 속씨+쌍떡잎식물이고 씨방이 꽃잎의 안이 아닌 밖에 있고,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덩굴식물이다.
살다 살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검색해 보게 됐다.
20여 년 전, 철도가 내게 학창 시절에 정말 싫어했던 역사· 지리 과목에 통찰을 주었다면..
호박은 학창 시절에 과학 과목 중에 제일 싫어했던 생물-_-에 통찰을 주고 있다. ^^

오른쪽의 저 씨방이 암술이 수분됐으면 왼쪽처럼 됐을 것이다.
피지 못한 왼쪽 씨방도 썩혀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엔 아까우니 내가 생걸로 그냥 꿀꺽 먹어 버렸다.
쟤도 콩알 같은 애호박이나 마찬가지이니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회사 이름을 애플이라고 안 짓고 펌킨이라고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_=;;;; ^^

3. 벌레

애호박 말고 누렇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은 내부 중심부가 막 깔끔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축축하고 걸쭉한 주황색 펄프들이 가득하고, 거기에 씨들이 매달려 있는 게 무슨 저그 건물 내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_=;;

그런데 호박이 그 상태로 오래 방치되면 씨들이 그 내부에서 스스로 싹이 나 버리기도 한다.
적당히 따뜻하고 축축하고 주변에 양분이 많다는 조건이 맞아서 발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은 온통 깜깜한 암흑천지일 것이고 뿌리 내리고 잎을 낼 만한 곳은 없다.
그러니 그 싹튼 줄기는 허연 콩나물 신세를 면치 못하며, 얼마 못 가 죽어 버린다. 흠..

어째서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걸쭉한 주황색 펄프로도 모자라서 씨가 콩나물처럼 돼 있는 모습도 약간은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내부 발아한 호박씨보다 더 징그러운 건.. 호박 내부에 구더기들이 들끓는 것이다.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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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표면에 아직 초록색이 남아 있고 표면이 유난히 오돌토돌한 게 좀 독특했는데.. 썰어 보니 ‘호박과실파리’ 구더기들 수십 마리가 중심부를 점령해 있었다.
이놈은 박과의 식물의 암꽃 안에다가 알을 까는가 보다. 그러면 열매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중심부는 애벌레들이 파먹으면서 차차 변질되고 썩는다. 그래도 얘의 경우, 겉의 과육에는 그닥 피해가 없어서 대부분의 부위는 여전히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구더기에게 점령당한 호박 파편은 곱게 땅에 파묻기만 하는 식으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걔네들이 정상적으로 번데기를 거쳐서 성충으로 자라 버릴 테니, 번거롭더라도 불이나 펄펄 끓는 물로 파편을 처리해서 유충을 박멸해야 한다.

4. 보석 호박과의 오해

흔히 늙은 호박은 출산 후 붓기의 해소에 좋다고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산후부종의 호박과 남과의 오용에 대한 문헌고찰" (안 상영 외, 한국 한의학 연구원) -- 대한한의학 방제학회지 제17권2호, 2009
요 논문에 따르면, 출산 후 붓기를 해소하는 데 효능이 있는 약재로 전통적으로 알려진 것은 늙은 호박이 아니라...;; 동음이의어인 보석 호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훗날 채소 호박으로 와전된 거라고.. 엥...????
이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현직 한의사가 건강 칼럼을 언론에다가 기고한 것도 몇 건 검색되어 나온다.

일단 동의보감에는 채소 호박이 절대 등장할 수 없는 게.. 그때는 조선에 호박이라는 채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최소한 널리 보급되고 효능이 검증되기 전이다.
그런데 송진을 굳힌 보석 호박은 먹기는 어떻게 먹는 거냐..?? 달여서 먹나..?? 헐?? 좀 의외다.

5. '후박'과의 오해

울릉도에서는 오징어와 호박엿이 유명하다.
근데 이것도 호박엿이 아니라 원래는 후박엿이다. =_=;;
울릉도에 후박나무라는 게 많이 났다. 이 나무의 진액과 열매가 무슨무슨 효능이 있는 한약재이고, 이걸 넣어서 엿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박씨 성을 나타내는 친숙한 한자 朴도 저 '후박나무 박'이다~!! 큼직한 과채류 박꽈 할 때의 박이 아니다. 그 박은 한자가 없는 순우리말이다.
근데 이게 소리가 와전돼서 호박엿이 돼 버렸고.. 이제는 울릉도에서도 원래 만들던 후박엿 대신, 진짜 호박을 집어넣은 호박엿을 팔게 됐다고 한다. 마라도에서 웬 뜬금없는 계기로 짜장면 장사를 하게 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_=;;

뭐든지 호박으로 와전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호박이 들어간 엿 말고 떡이야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 호박 많이 사서 관상용으로 놔두고, 먹기도 많이 먹자~!! ^^
꼭 저런 게 아니어도 호박은 그냥 보기에 좋고 몸에도 좋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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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보너스.
이건 요 최근에 포천에 있는 '왕뎅이선생'이라는 한정식 식당에서 너무 반가운 아이들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음식과 별개로 식당 주인이 호박 농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인맥이 있는가 보다. 난 지름신이 당연히 강림하여 두 덩이를 사 왔다. ^^

호박이 폭삭 늙어서 색이 누래진 걸로도 모자라서 표면에 흰 가루 같은 것까지 앉는 건 아주 좋은 징조이다. 이래서 호박한테만 '늙은'이라는 수식어를 쓰는가 보다. 이건 사람의 흰머리만큼이나 영예로운(?) 변화이다.
그 반면, 파릇파릇 초록색이어야 할 호박 잎에 흰 가루가 끼는 건 병이며,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이런 차이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25 08:34 2023/02/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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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소출

1. 기름

땅이 영양분이 많아서 식물이 잘 자라고 농사를 짓기 좋은 상태이면 우리는 그걸 '비옥하다' 내지 '기름지다'라고 묘사한다. 여기서는 기름지다는 게 진짜로 미끌미끌 oily하다는 게 아니며, 마치 '젖과 꿀이 흐른다'와 같은 비유적인 의미이다.

그러나 식물은 포도당만 만드는 게 아니라 문자적인 기름인 식물성 지방을 생산해 낸다. 그러니 땅콩 같은 기름기 자르르한 견과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식물 씨앗들로부터도 기름을 추출할 수 있다. 물론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엄청 많이 빡세게 짜야 하지만 말이다.

나무 중에서는 소나무가 유난히 기름이 잘잘 흐르는 녀석인가 보다. 송진을 가공해서 송근유나 타르 같은 것도 만든다. 소나무는 이런 특성으로 인해 불에도 특별히 활활 아주 잘 타며, 다른 나무들보다 산불에도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고 한다.

음식 맛을 돋구는 양대 속성이 '짜고 기름진 것'인데, 짠 건 식물과 완전 상극이지만 기름진 건 식물에서도 그럭저럭 찾을 수 있는 특성인 것 같다.
단, 지방을 넘어서 단백질은 콩 같은 특수한 작물에서나 더 제한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건 진짜 동물성 고기를 먹어야만 제대로 섭취 가능할 듯하다.

2. 마약

요즘은 우리나라가 과거 같은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유명인사와 일반 서민을 불문하고 마약 사범이 늘고 있으며, 외국에서 교묘하게 몰래 들여오려던 마약이 세관을 통해 적발되는 양도 갈수록 증가 중이라고 한다.

가성비 좋은 국산 대체품이 흔해 빠져서 외국에서 많이 사 올 필요가 전혀 없는 물건인데 왜 이렇게 많이 사 오는지를 의심해서 뜯어 봤더니 안에 마약 가루..;;
심지어 커피믹스.. 뜯었다가 다시 봉인한 흔적이 미세하게나마 보여서 재개봉하니 안에 역시 마약 가루..

어떤 마약 수송책은 마약 가루를 콘돔에다 넣어서 아예 삼켜 버린 덕분에 안 들키고 한국에 무사히 들어왔다. 그러나 그 뒤에 콘돔이 체내에서 터지는 바람에 급성 마약 중독으로 사망해 버리기도 했다.
하긴,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장거리 국제선 여객기에서는 어떤 승객이 기내식을 별 이유 없이 거부하고 안 먹으면 요주의 인물로 올리고 살짝 관찰까지 한다고 그런다. 마약을 삼킨 사람은 기내식을 절대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약을 밖에서 밀수하는 게 아니라 아예 국내에서 대마나 양귀비 같은 마약 원료를 몰래 재배하는 게 걸리기도 한다.
어째 마약은 다들 식물로부터 유래되는 걸까..?? 아예 100% 인공적으로 합성한 화학 마약이 아니면 식물성이지, 동물성 마약이라는 건 내가 아는 한 들은 적이 없다.

어떤 조직은 드론· 항공 단속을 피하기 위해 대마를 아예 실내에서 재배한다고 한다.
하늘이 안 보이는 실내에서 빛과 온도와 습도와 환기를 전부 인위로 조절해서 농사를 지으려면 비용이 정말 장난 아니게 많이 들 텐데..;;

그런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게.. 마약은 정말 평범한 식량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영화 <아저씨>에도 나오는 오 명규 사장의 유언.. "이 속의 필로폰만 정제하면.. 니랑 내랑 평생 먹고 산다~! 엉??"
품질 좋고 약발 강한 마약 가루는 같은 무게의 금의 가격에 필적하고 심지어 더 비싸기도 하댄다. 오 사장의 말은 거짓· 허세· 빈말이 아니며 레알일 가능성이 높다.

호박 심어서 몇 달을 공들여 키워서 늙은 호박 한 덩이를 만들어서 팔아 봤자, 개당 남는 이윤도 아니고 그냥 소비자 가격이 몇천 원에서 1만 몇천 원밖에 안 하는데.. 마약은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 싶다.. ^^ 저런 설비 투자 비용 정도는 우습게 건지고도 남기 때문에 저렇게라도 무리해서 대마나 양귀비를 키우는 거다.

식량도 아니고 마약을 만들려고 실내 농사 시설을 구축하다니.. 참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식용이 아니라 할로윈 장식 전용 호박 품종을 개발해서 잔뜩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3. 마무리: 호박 예찬

처음엔 호박이 아니라 식물에 대한 보편적인 얘기로 시작해서 글을 썼는데 결국은 또 기승전...호박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호박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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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데 이런 할로윈 호박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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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수감사절 호박을 보는 게 사람 정신건강에 훨씬 더 좋을 것이다. ^^
추수감사절 관련 일러스트 중에 늙은 호박이 안 들어간 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수감사절의 원조인 천조국에서는 칠면조가 이 날의 상징일 것이다. 하지만 울나라는 그런 문화가 없고, 그렇다고 칠면조 대신 치킨을 넣기도 그러니.. 호박이 자연스럽게 상징이 된다.

늙은 호박은 그 크기와 모양과 색깔을 보면 가을과 '추수 감사'라는 컨셉에 아주 잘 부합하는 수확물이다.
우선 엄청 크다..!
물론, 속이 과육만으로 꽉 찬 건 아니다. 중심부는 씨앗과 걸쭉한 펄프만 가득한 빈 공간이 되기 때문에 열매가 무슨 풍선 불듯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래도 크기가 크니 때깔과 비주얼이 간지난다.

동글동글을 넘어서 쭈글쭈글 납작하고 색깔도 저렇게 단풍처럼 붉게 변하고, 겉과 속의 색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시골 감성에 동심을 마구 자극하지 않을 수 없다. 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우리말은 '낡음'은 집, 차, 기계 같은 무생물에게 쓰는 말인 반면, '늙음'은 생물에게 쓴다는 미묘한 어감 차이가 존재한다.)

늙은 호박은 정말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채소이다.
호박은 도깨비 귀신 얼굴 새기는 용도가 아니라, 가을 정취를 즐기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죽 쒀서 먹으라고 있는 채소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늙은 호박을 많이 드시고 가을과 겨울을 든든하게 보내시길 바란다.
내 개인적으로는 호박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여친에게 프러포즈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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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2/12/14 08:35 2022/1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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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에 대해서

1. 호박의 유래

우리나라에 그냥 박이나 오이는 삼국시대의 기록도 존재할 정도로 오래되었고 친숙하다. 다음으로 수박은 고려 시대 원 간섭기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호박은 1600년대 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정도가 최초이다. 다른 박꽈 식물들에 비하면 생소하고 역사가 짧은 축에 든다. 하긴, 쭈글쭈글한 열매의 모양 하며, 누렇게 변하는 때깔도 기존의 여느 박과는 사뭇 다르다.. ^^

그래서 얘는 그냥 박이 아니라 쭝궈 오랑캐 박이라는 뜻에서 '호'짜가 붙어서 '호박'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호박 호박 호~~~박~~!!!
호박의 전래 시기는 고추 내지 담배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김치는 맨 처음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시뻘겋지도 않았다는 건 다들 아실 테고.. 아울러, 녹말 덩어리 구황 작물인 감자와 고구마는 1700년대 이후로 도입과 등장이 더 늦었다.

그런데 호박 중에 더 작고 쭈글쭈글 주름은 덜하고 고구마 같은 맛이 나는 변종인 '단호박'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일본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단호박은 1950~60년 엄청 옛날엔 왜호박이라고 불렸으며, 기존의 일반 호박에는 조선호박이라는 역설적인 명칭이 붙기도 했다. 지금이야 민족 감정 없는 중립적인 명칭인 '단호박'이 잘 정착했지만 말이다.

원래 호박죽은 늙은 호박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요즘은 단호박으로도 호박죽을 많이 만드는가 보다. 가령, 죽 전문 체인점인 '본죽'의 경우, 늙은호박 죽과 단호박 죽을 따로 파는 것 같더니 요즘은 단호박 죽만 취급하는 듯하다.
하지만 두 호박은 죽의 맛이 서로 차이가 있으며, 특히 단호박은 껍질까지 같이 들어갈 수 있다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껍질이 들어가면 죽의 색까지 좀 더 시커매진다.

2. 호박의 영양

수박은 여름에 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맛이야 있지만, 성분 대부분이 그냥 물과 당분이다. 오이는 뭐.. 물과 섬유질 덩어리나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그러나 호박은 다른 박꽈 식물들에 비하면 비타민 A를 비롯해 각종 영양분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어있다. 제철 늙은 호박이 가을 보약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괜히 쥐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열매만 먹는 게 아니라 씨와 잎, 심지어 꽃까지도 식용 가능하다.

이러니 호박은 사람에게 매우 이롭고 고마운 채소이다. 아무렇게나 심어도 그럭저럭 알아서 잘 자라고, 재배 난이도가 높지 않고, 그러면서 과육의 영양분은 많고 상온에서 몇 달씩 오래 보관도 가능하고..
그저 누렇게 쭈글쭈글 삭는 외형 때문에 못생겼다는 놀림만 받기에는 억울한 감이 많다~!! 세상에 호박 말고 누렇게 쭈글쭈글 삭으면서 영양분은 더 많아지는 매력만점 채소가 또 어디 있을까?

그나저나 호박은 무슨 품종(애/단/늙은)의 무슨 부위(열매/잎)를 먹든지 가열을 해서 먹는다. 삶거나 쪄서 먹지, 생으로 먹지는 않는 듯하다. 그래서 생으로 먹는 수박은 과일인 반면, 호박은 채소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3.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잎, 나무, 열매

(1)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꽃은 ‘라플레시아’라고 하는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식물이다. 꽃 단독으로 지름이 1m대에 무게가 10kg이 넘는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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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얘는 왕창 크기만 하지, 한눈에 봐도 꽃잎이 그다지 예쁘지 않을 뿐더러.. 비주얼보다도 냄새가 거의 상한 고기 썩는 냄새 수준이라고 한다. 식물 주제에 무슨 암모니아라도 보유하고 있나?
얘는 꿀벌이 아니라 더러운 파리를 꼬이게 해서 꽃가루를 전달시킨다. 식물 중엔 파리를 잡아먹는 식충식물도 있는데 말이다.. 신기한 노릇이다.

(2)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는 ‘자이언트 세콰이어’.. 천조국의 서부에서 서식한다는 그 나무이다. 지름이 6~8m에, 키는 무려 85~100m에 달한댄다.;; 도대체 뭘 먹고 이렇게 커진 걸까..??
이 정도면 산불이 나도 속이 완전히 다 타지는 않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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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에서 잎이 가장 큰 식물은 육상 중에서는 '군네라 마니카타'라는 브라질 원산지의 작은 나무이다.
수상 중에서는 '아마존 빅토리아 수련'이다. 둘 다 길이/지름이 3m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어지간한 사람이 위에 올라타도 잎이 찢어지거나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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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열매는 바로 호박이다~!
세상에 그 어떤 과일이나 박꽈의 과채류도(조롱박, 수박, 참외, 오이..) 무슨 400kg짜리, 심지어 1톤짜리 열매를 만들지는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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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에스골 시내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잘라 두 사람이 막대기에 메고” (민 13:23)
글쎄, 성경에는 포도송이를 무슨 멧돼지 잡아서 막대기에 거꾸로 매달아서 오듯이 수송했다는 얘기가 있다. 포도가 저 정도였으면 호박은 얼마나 더 거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유사품: 동아? 동과? 동아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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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얘는... 동아? 동과? 동아호박? 헐~ 이런 박도 있었어?
게다가 최소 고려 시대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나라 토종이라고? (☞ 보도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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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호박 말고도 어지간한 호박보다 더 크고 무거운 열매가 맺히는 박꽈가 또 있다니 굉장히 신기하다. 일단 크면 개인적인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
누렇게 삭지는 않는 듯하지만, 허연 가루가 앉는 건 호박과 비슷하구나. 단, 얘는 2차원적으로 납작해지는 게 아니라 1차원적으로 길쭉해진다.

호박 매니아로서 이런 것에도 관심이 간다. 요리해서 먹어 보고 싶다.
얘는 전라도 순창, 제주도, 그리고 저 동영상에서 나오는 천안까지.. 나름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되고는 있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인지도가 너무 마이너하다.

우선 동아인지 동과인지.. 동아호박인지.. 명칭부터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우리말에서 '동아'는 동아시아 東亞로 너무 굳어져 버렸으니, 그냥 동과라고 안 할 거면 동아박이나 동아호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쟤도 생물학적으로 호박의 범주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아줄이 여기서 유래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밧줄은 바+줄인데..??
그리고 동아줄이라는 줄은 왜 하필 해님 달님 전래동화에서만 나오는지도 의문이다.

수세미는 오이와 비슷하게 생긴 박과이고, '울외'도 이 동아호박처럼 길쭉하고 굵고 약간 무 같은 느낌도 드는 채소이다.
박이 오이, 참외, 조롱박에다 호박만 있지는 않더라. ^^

5. 유사품: 가시박

호박의 유사품 중에는 저 동아호박처럼 다른 매력이 있는 아이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고 잡스러운 짝퉁에 가까운 유사품도 있다.
다음 사진을 보자. 강변이나 각종 공원, 황무지 따위에서 굉장히 눈에 많이 띄는 녀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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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잎 모양이 호박과 좀 비슷하지만 호박이 아니다. '가시박'이라고 하며, 국내에서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박멸 대상이다.
덩굴 주제에 무서운 번식력으로 주변 가로수고 뭐고 다 감싸고 타고 올라가고 잎으로 뒤덮어 버려서 아래의 식물을 말려 죽인댄다.

얘는 큼직한 박처럼 생긴 열매를 맺지는 않는다. 설마 누가 이런 데에다가도 호박을 몰래 심었나 싶었는데 그럴 리가..
유사품에 주의하자~!! 소리쟁이와 더불어서 잡초에 대한 정보가 내 머리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상이다.
또 글이 길어졌는데..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도 10월에 가을 보약인 호박을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란다.
좀 민망한 비유이다만.. 인간의 항문은 출력용이지 입력용이 아니다. 그것처럼 늙은 호박은 식용이지, 이상한 도깨비 귀신 얼굴 조각용이 아니다.
이제 이 홈페이지의 첫 화면 대문에다가도 내 취향을 정식으로 당당히 써 놨다.
'좋아하는 것'이 철도에 이어 하나가 더 추가됐다. ^^

Posted by 사무엘

2022/10/29 08:35 2022/10/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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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근황 -- 호박

올해 2022년도 벌써 10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지난 9월까지는 늦여름이 오래 지속되면서 낮 기온이 20도 후반까지 치솟았는데.. 얼마 전 개천절에 비가 한바탕 내린 뒤부터는 이제 진짜 여름이 끝나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아이고, 한글 입력기 개발을 너무 오랫동안 쉬긴 한 것 같다.
이미 버그 신고도 몇 개 받은 게 있고, 편집기에 UI를 자잘하게 고치고 새 기능을 넣은 것도 있다. 이 일을 내려놓거나 포기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계속 호박-_-, 캠핑, 연애 등 다른 개인사를 직장과 병행하느라 올해는 날개셋 새 버전이 없이 지나갈 가능성이 좀 높아졌다. 2022년이 거의 안식년처럼 됐다.

오늘은 이런 근황을 글과 사진 기록으로 좀 남겨 보았다. 써 놓고 보니 또 대부분이 호박 이야기이고, 한 달 전에 올렸던 호박 근황과 비슷한 패턴이 돼 버렸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호박 이야기부터 좀 하겠다.

1. 내가 키우는 올해의 마지막 호박

올해는 내 개인 농사는 6월 말과 8월 초, 두 번이나 터진 폭우와 그에 따른 대규모 침수 피해 때문에 별 재미를 못 봤다.
조금 아슬아슬한 곳에 심은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테러를 당해서 뽑혔고..=_=;;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안정된 곳에 심었던 아이는 사람 대신 강물이 휩쓸어 가 버렸다.

그래서 열매를 만진 건 쬐끄만 애호박 몇 개, 그리고 실내에서 CD 크기 남짓한 늙은 호박 하나 만든 게 전부가 됐다.
작년에는 폭우 같은 단절이 없었다. 덕분에 11월에 호박들이 모두 얼어 죽은 마지막 순간까지 열매를 수십 개나 구경하고, 열매를 도둑맞은 것만 10여 개는 됐을 것 같은데.. 올해는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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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아이들은 8월 폭우 이후, 8월 중순쯤에.. 열매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고 그냥 10월까지 2개월 시한부 인생을 전제로 하고 또 심은 것이다.
그래도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덩굴이 이렇게 뻗어 나간다.

내 경험상 밤 기온 5도가 마지노 선이다. 이 정도 되니까 호박이 못 견디고 잎이 슬슬 냉해를 입더라. (새카맣게 변하고 말라 죽음)
그리고 기온이 내려가면 호박들이 성장 모드를 영양에서 생식으로 바꿔서 갑자기 막 암꽃 씨방을 무리해서 짜내서 만들어 피우기 시작한다.

밤에 이 호박들을 비닐 씌우고 뿌리 주변에다 핫팩 같은 거라도 던져주고 싶은데.. 이 짓을 겨울 내내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_=;;
한두 포기 정도 스티로폼 화분에다 옮겨 담아서 따뜻한 실내로 가져오지 않는 한, 얘들을 더 살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런 온도로 인한 제약이 없더라도, 호박은 반 년 이상 살고 수명이 간당간당해지면 자연스럽게 잎들이 누래지다 못해 갈변하고 시들고 빠지면서 앙상한 줄기만 남는 것 같다. 사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는 줄기도 평소처럼 초록색에 털이 북슬북슬 난 게 아니라, 반쯤 나뭇가지 같은 누런 갈색이다. 그렇게 그냥 죽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상태로 아주 오래 놔둬 보면 그 줄기 마디에서 또 초록색 새순이 자그맣게 돋을 때도 있다. 자기들도 나름 살려고 최대한 노력은 하는데.. 그게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갈지? 이러는 시기와 조건은 전적으로 해당 식물 마음대로인 것 같다.

2. 남이 키우는 호박

집 주변에서 남이 키운 큼직한 호박이 하나 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우왓~ 잘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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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집뿐만 아니라 본인의 직장 근처 근린공원에도 누군가가 호박을 몰래 심어서 키웠었다. 점심시간 때 산책하러 나가서 얘들 꽃 핀 걸 보는 게 낙이었는데.. 얘는 딱히 암꽃이나 열매는 못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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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0월쯤 되니 이 두 곳 모두 호박 덩굴을 걷어내는 것 같았다.

3. 남이 파는 호박

8월 중순쯤엔 갓 수확한 늙은 호박이 도매 시장에 처음으로 올라오더니, 9월부터는 늙은 호박이 제철을 맞이했다.
이제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아도, 가락시장까지 멀리 원정 가지 않아도.. 집 근처 재래시장과 채소 가게에도 큼직한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몹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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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의 형태로 판매되는 '조선호박/일반 호박'은 수요가 마이너하다 보니 수입산이란 게 없고 100% 국산이다. 농가의 입장에서는 늙은 호박은 수입산으로 인한 가격 변동이 없다는 메리트가 있는 셈이다.

그 반면, 단호박은 1년 내내 아무 마트에서나 파는 친숙한 채소가 된 관계로, 국산만으로는 수요 대처가 안 된다. 여름에는 국산이 유통되지만, 겨울에는 남반구 국가 수입산이 공급된다. 국내에서 힘들게 비닐하우스 만들고 난방 때서 호박 키우는 것보다, 그냥 사 오는 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4. 내가 산 호박

지난 8월에 산 4.5kg짜리 호박은 본인의 바깥 나들이와 산책, 캠핑, 심지어 데이트 때도 수시로 따라 다니며 바깥 바람을 쐬었다.
한참을 들고 다니다가 의자에 앉아서 짐을 내려놓으니 팔이 후들거리고 아~ 이제 좀 살 거 같았다.
단독 군장 행군 생각이 나더라. >_< 운동을 너무 게을리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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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얘를 들고 다니다가 노트북 가방을 들어 보니..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순간적으로 "어, 내가 가방에 노트북을 안 넣고 나왔나??" 착각을 했다. =_=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
지름이 40cm를 훌쩍 넘고, 무게가 11.5kg에 달하는 역대 제일 크고 무거운 호박을 동네 채소 가게에서 득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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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하단의 작은 호박이 이미 지름이 25cm에 달하는데.. 좌측 상단의 큰 호박들은 덩치가 얼마나 될지 짐작해 보시라. 우측 상단의 호박은 무게가 13.5kg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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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트에 앉은 아이 셋의 무게를 합하면 거의 30kg이나 된다. =_=;;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그 가녀린 덩굴에서 이렇게 크고 무거운 열매를 만들어 낸다는 게 경이롭기 그지없다.
수시로 꺼내서 아이의 주름을 쓰다듬으니까 훈훈하고 기분이 좋다.

5. 내가 먹은 호박

이렇게 호박들을 갖고 놀다가.. 요 며칠 전엔 제일 먼저 구매했던 8월자 늙은 호박 하나를 도축해서 오랜만에 죽을 쑤어 먹었다.
호박의 멋을 즐기는 기간은 한 달 이상이지만, 호박의 맛을 즐기는 기간은 길어야 1주일 남짓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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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에는 애호박과 호박잎이 들어가고, 옆에는 늙은 호박 호박죽도 같이..
인간에게 큰 이로움을 주는 호박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한편으로.. 이 4.5kg짜리 자그마한 호박 하나도 껍질 까고 써느라 이 정도로 애 먹었고, 죽이 이만치 많이 나왔는데..
나중에 13kg짜리 거대한 호박은 어떻게 분해하지..?? 벌써부터 ㅎㄷㄷ한 생각도 들었다;;.

6. 여담: 호박 모양 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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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할로윈 시즌이랍시고 쿠션/베개도 이렇게 생긴 물건이 만들어져 있구나.. 완전 내 취향 저격이다..!! ^^
할로윈용 서양 펌킨보다는 식용 늙은 호박 고증에 충실한 모양이었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호박은 호박이니 이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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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쿠션 호박이고, 오른쪽은 진짜 호박이다. ㄲㄲㄲㄲㄲㄲ

요즘 밖에서 자기 정말 좋은 시기이다.
텐트는 바람을 막아 주고 침낭은 추위를 완벽하게 막아 준다.
요즘 날씨를 표현할 형용사로는 '아름답다, 원더풀' 같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17 08:34 2022/10/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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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이 키우는 호박

누가 자기 집에다가 이렇게 호박을 키우고 있는 걸 우연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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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하늘을 향해서 줌까지 당기면서 찍다 보니 역시 폰 카메라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화질은 메롱이지만 호박은 대롱대롱.
저렇게 호박을 잘 키운 사람이 부럽다. 구경하는 사람까지 힐링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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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3월 말쯤에, 얼어 죽지 말라고 아직 비닐에 싸여 있던 그 가녀린 호박 모종은..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호박 덩굴로 변모해서 주변 흙과 담장을 몽땅 뒤덮어 버렸다. 아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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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까지 일반 호박이건 단호박이건, 탁구공이나 구슬처럼 생긴 동글동글한 씨방 정도만 봐 왔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훨씬 더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그 '정통 늙은 호박'은 씨방부터가 저렇게 납작하고 쭈글쭈글 주름이 져 있는가 보다.
이런 건 남이 키우는 호박을 통해서 접하게 됐다. ㄷㄷㄷㄷ

2. 내가 키운 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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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집 건물 근처의 화단에서 몰래 키운 호박으로, 생후 10일 남짓일 때의 모습이다.
모처럼 화단에서 암꽃이 폈는데, 그 당시엔 하필 주변에 수꽃이 핀 게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아까 저 남이 가꿔 놓은 호박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큼직한 수꽃을 긴급 수송한 뒤, 인공수분을 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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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암술은 표면이 매끈한데, 암술이 누런 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수술처럼 보일 정도로 수술을 비벼서 꽃가루 범벅을 만들어 줬다. 그래서 수분이 성공하고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귤 크기를 넘어가고, 사과 내지 배와 비슷한 크기가 됐다.
바닥이 흙바닥에 직접 닿지 말라고 아래에다가는 스티로폼 그물을 깔아 줬다.
위에다가는 여기에 호박 열매가 맺히고 있는 걸 숨기기 위해 다른 호박잎을 덮어 줬다.
그게 마치 요를 깔고 이불을 덮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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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키우던 장소의 사정으로 인해.. 생후 2주 남짓 만에 따게 됐다.
생후 2주짜리 애호박과, 예전에 본인이 득템한 생후 2개월짜리 자가재배 늙은 호박을 나란히 늘어놓아 보았다. 자르니 내부 단면이 서로 이렇게 차이가 난다.
둘을 나란히 도축해서 각각 조림과 죽을 만들어 먹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신선하고 상태가 아주 좋았다.

사실, 저 늙은 호박은 따고 나서도 거의 3주를 놔 두면서 애지중지 갖고 놀았다. 교회에 갈 때도 가져갔다. 너무 만져서 표면이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쟤를 한없이 놔둘 수는 없고 떠나보낼 때가 됐으니 이렇게 처분을 하게 됐다. 사실 더 오래 놔둬도 됐을 것 같지만.. ^^

사람이 겉에서 호박 뿌리에다가 물과 비료를 주고 잎에다가 햇볕을 마음껏 쬐어 주고, 암꽃에다 꽃가루를 묻혀 주면.. 호박은 열매를 맺어서 사람이 먹을 수 있고 재귀적으로 자가생산까지(=씨) 가능한 신비로운 물건을 3D 프린팅해 준다~!!
아담한 싸이즈이지만 과육 두툼하고 씨앗도 있고 늙은 호박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호박죽 딱 두 그릇 분량이 나왔다.

3. 이상한 호박

요즘 비 한번 줄기차게 많이 내리는구나~
근데 세상에 이런 꽃도 피네.. 호박꽃의 플러그가 이렇게 생겼을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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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이 일반적인 수꽃처럼 하나가 아니라, 암꽃처럼 여러 갈래이다. 그리고 꽃가루가 묻은 짹과 그렇지 않은 짹이 저렇게 섞여 있다.
이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뒷부분에 씨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얘는 전체적으로는 암꽃이 아니라 수꽃이긴 하다.
혹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게이의 꽃 버전인 건가?? =_=;;

참고로 햇볕 내지 영양이 부족하고 땅이 안 좋아서 제대로 못 자란 호박에서는.. 꽃가루가 없다시피해서 고자나 마찬가지인 수꽃이 피기도 했었다.
식물에도 동물과 얼추 비슷하게 이런 성 관련 속성이 존재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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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한 뿌리에서 암꽃 수꽃이 저렇게 따로 핀다마는,
은행나무는 아주 이례적으로 자웅이주라고 하지?? 아예 뿌리 차원에서 암놈 숫놈이 따로 있는..
그래서 열매 악취가 안 나려면 암나무 숫나무를 가까이 섞어서 심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린 묘목 상태일 때는 성별 구분이 의외로 어렵다고 그런다.

4. 소생하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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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 덩굴은 한때 꽃까지 여러 송이 피울 정도로 한동안 잘 자라고 있었으나, 어느날 밑동만 남고 줄기가 몽땅 잘려 버리는 테러를 당했다. 살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져서 혼자서만 측은히 여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고 열흘 남짓 지나니 그 짤막한 밑동에서도 아주 자그마한 초록색 새 생명의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우와.. +_+

굵직한 밑동과 뿌리가 죽지 않으니 이렇게 살아나기도 하는가 보다. 가슴이 다 뭉클했다.
다만,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비를 너무 많이 맞거나, 침수돼서 흙탕물에 파묻히면 밑동이 연해지면서 말라 죽기도 하더라. 호박이 천하무적은 당연히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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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6월 말, 강가 둑에 심겼다가 폭우 침수 때문에 진흙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그 와중에도 곳곳에서 새순을 만들어 내며 살려고 몸부림쳤던 호박의 흔적이다. 이 진흙은 물만 끼얹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어서 않아서 일일이 다 씻어낼 수도 없다. 흙투성이가 된 잎들은 그냥 서서히 말라죽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 호박은 며칠 뒤 더 심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전부 물에 휩쓸려 내려가 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여기는 다시 잡초들로 뒤덮이고 언제 홍수가 있었냐는 듯이 녹색 천지로 바뀌었으니 야생 자연이라는 건 참 오묘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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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도 저 폭우 때 침수 피해를 입어서 잎과 줄기의 상당수가 흙에 파묻혔다. 하지만 심긴 지점이 강에서 상대적으로 멀고 높았던 덕분에 완전히 죽지는 않고, 최소한의 덩굴과 잎 몇 포기만 겨우 건졌는데..
그로부터 한 달 남짓 만에 얘는 덩굴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왕창 성장하고 부활 소생에 성공했다.

5. 내가 구매한 호박

우리나라는 8월 중순쯤이면 국내 재배된 늙은 호박이 처음으로 수확되고 시장에 나오는가 보다. 단호박도 아니고 늙은 호박을 딱히 수입해 온다는 얘기는 없으니까..

(1) "노지에서 재배한 늙은 호박이 첫 출하됐다. 서울 가락시장에는 전남지방에서 생산된 늙은 호박이 가을을 알리는 듯 출하돼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호박죽 호박떡 호박진액을 만드는 늙은 호박의 가격은 2000원부터 1만원까지다."
-- 2001년 8월 10일 (☞ 보도 자료)

(2) "경남 하동군은 고품질 맷돌호박이 본격 출하하기 시작했다고 9일 밝혔다.
‘늙은 호박’으로도 불리는 맷돌호박은 지난 8일 첫 수확을 시작으로 10월까지 수확이 이어질 예정으로 올해 하동군에서는 70여 농가가 330여t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8월 9일 (보도 자료)


그래서 본인은 8월 중순쯤 가락시장을 다시 찾아가서.. 꿀단지처럼 생긴 늙은 호박 두 덩이를 득템했다. 하나 무게가 거의 4kg에 달한다. ㄷㄷㄷ
가을 내내 집과 차와 텐트에 비치해서 갖고 놀다가 도축해서 죽 쑤어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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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이니 해남이니 강진이니.. 남부 지방이 햇볕이 많이 내리쬐어서 그런지 호박이 많이 생산되는가 보다.

호박은.. 꼬불꼬불 덩굴도 예쁘고, 꽃도 예쁘고.. 동그란 씨방도 예쁘고,
푸르딩딩 동글동글 애호박도 예쁘고, 쭈글쭈글 납작한 누런 늙은 버전은 더 예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평범한 공 모양이기만 했으면 내가 호박에 결코 이 정도로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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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참외 모양의 애호박도 있지만 말이다. 이건 시장에서 사온 것..ㄲㄲㄲㄲㄲㄲ)
그런즉 애호박, 단호박, 늙은 호박은 언제까지나 인간과 함께 있을 것이로되, 그 중에 제일은 늙은 호박이니라.

Posted by 사무엘

2022/09/11 08:36 2022/09/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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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 몇몇 생각, 여행 등

1. 환절기

이번 주쯤부터 날씨가 갑자기 확 급변해서 굉장히 시원해졌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고, 밤에는 20도 초까지 기온이 내려가니.. 폭염과 열대야가 싹 사라지고 정말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당연히 캠핑을 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 갖춰졌다.

자정 무렵까지만 해도 찬물을 바로 끼얹거나 냉탕에 바로 뛰어들어도 될 것 같았는데
새벽이 되니 급 싸늘해져서 텐트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이라도 덮어야 할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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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호박호~~~박~~ 행복행복행....복 ㅎㅂㅎㅂㅎㅂ~~!!
텐트 문을 여니까 곧바로 강물이 비쳐 보인다. 내 마음과 멘탈도 힐링힐링.
호박에 대해서는 별도의 근황글에서 추가로 다룰 것이다.
여름이 가는 건 좋지만.. 점차 추워져서 밖에서 호박을 키울 수 없는 시기도 다가오는 건 아쉽다.

2. 잠시 정치 얘기

우리나라가 정권이 바뀐 지 3개월, 100일이 넘었다.
나도 저 사람이 하는 일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 정권의 씻을 수 없는 양대 죄악인 "탈원전과 탈북자 북송"을 딱 정확히 공략하여 수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고 현 정권이 선출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화이팅이다, 힘내라~!!

그 새X는 절대로 편하게 뒈지게 해서는 안 되고, 어서 국립호텔로 보내야 한다. 하루속히 정의가 구현됐으면 좋겠다. 뭉 다음으로는 찢 차례다.
현 법무부 장관은 사상 건전하고 말빨과 실력도 정말 장난이 아닌 인재이던데.. 5년 뒤에 현 대통령의 후임으로나 등극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았다는 건 얼마 전에 북괴도 인증해 주었다. "남조선의 대북 정책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 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
와~~ 개인적으로는 현웃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긴, 진짜 훌륭한 대통령이라면 북괴가 암살하려고 암살조도 보내고 폭발물도 설치하고,
역적패당이라고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붓고 자기들 선전용 그림 속에서라도 갈갈이 찢어 죽였을 텐데.. 북괴가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점잖아진 듯하다. 아니면 윤이 아직 그 정도로 훌륭한 행적은 못 남겼거나..

10여 년 전에 MB 각하만 해도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셨는가?
그때 개척해 놓은 원전이고 천연가스고 4대강이고.. 나중에야 빛을 발하고 재평가 받고 있다.
이런 분이 아직도 감방에 가 있다니.. 우리나라는 아직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윤의 재임 중에 하루속히 사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MB 이후로 북괴가 남한 대통령에 대해 대놓고 험악한 말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레카는 여자여서 선을 안 넘은 듯하고.. 다음 뭉은 만만한 개호구니까 무시와 하대만 했지, 굳이 저렇게 저주하고 싫어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윤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끝으로.. 젊은 이공계 엘리트 출신 정치인이라고 기대했던 그 사람은 왜 이렇게 추태 부리면서 몰락하고 망가졌나 모르겠다. 이 정도면 도저히 지지하거나 편 들어 줄 수 없다. 뭐 정치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3. 경주 감포 해수욕장

본인은 올해 하계 휴가는 7월 말, 그리고 광복절 연휴 이렇게 두 번에 나눠서 다녀왔다.
글쎄, 직장 동료들 중엔 한여름 성수기를 피해서 9~10월 초가을에 작정하고 제주도나 외국을 다녀오는 식으로 휴가를 쓰기도 하던데.. 본인은 그냥 더울 때 물놀이를 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휴가를 쓰는 걸 선호한다.

7월 말엔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 영종도를 다녀오고, 8월엔 고향인 경주를 방문했다. 그래서 올해는 나름 황해와 동해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작년에는 어쩌다 보니 동해 바다에는 못 갔는데 올해 이 한을 풀었다. 그 대신, 올해는 양평· 남양주 쪽에는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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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포의 '나정 고운모래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한 뒤, 바닷가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잠도 잤다.
경주에 해수욕장이 여럿 있긴 한데, 여기가 국도 4호선의 시점 바로 옆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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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도 계곡 물처럼 가슴까지 차는 깊이에서 밑바닥의 내 발등까지 다 뚜렷이 보일 수가 있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물이 이렇게 맑다니!!
(이 사진은 가슴까지 차는 깊이는 아님. 그 깊이까지는 겁 나서 폰을 못 들고 감ㅋㅋㅋㅋㅋ)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황해 해수욕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수질이다.

거기서는 물이 초록색이고 수중에선 과장 보태면 팔을 뻗어도 손끝이 안 보일 지경이었는데.. (참고로 1950년대 런던 스모그는 물이 아닌 공기가 그런 상태였..)
또한 특유의 비리비리한 바다 냄새도 여기 동해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해수욕장은 바닥의 재질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진흙이 아니라 자잘한 자갈 위주여서 더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가 아니라 계곡에 더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괜히 저 멀리 동쪽으로 원정 가는 게 아니구나.
한번 눈이 높아지고 나면, 이젠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해수욕장에서는 물놀이를 못 할 것 같다.

이 나이가 돼도 물놀이를 하니까 노무노무 좋았다.
원래 하루는 계곡, 하루는 바다에 가려 했으나.. 그 당시에 남부 지방은 가뭄 때문에 계곡 물이 깡그리 말라 있었다. 그래서 계곡에서는 놀지 못하고 바다에만 다녀왔다.
뭐 얼마 안 있으면 추석 때문에 또 고향에 가게 될 텐데, 그때는 물이 좀 살아 있기를..

4. 양동 마을

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경주 양동 마을에 이번에 드디어 처음으로 다녀왔다.
경주는 아무래도 신라와 관련된 옛날 문화재가 넘쳐나는 곳이지만, 양동 마을은 의외로 조선과 관련이 있는 양반 집성촌이다. 애초에 위치도 서라벌이니 반월성이니 오릉이니 하는 전통적인 신라 도읍 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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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선 왕조는 이상한 유교 전통에 선비질, 노비 등 온갖 악습과 병신 무능한 관행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나온 그나마 선한 것, 대단한 것, 유의미한 것, 한때의 구닥다리 레거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살아서 이어지는 것, '유네스코'라는 국제 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고유 문자 한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됐으며, 유네스코에서는 1989년부터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이라는 것을 제정해서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상과 상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안한 상 명칭과 취지, 권위를 저기에서 승인해 준 것이고, 상금은 우리나라 정부에서 재원을 마련해서 지급한다.

(2) 조선 왕조 실록: 쬐끄만 나라가 500여 년 동안 역사 기록 하나는 굉장히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있는 그대로' 잘 남겼다. 이건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됐다.

(3) 수원 화성: 1700년대 말의 작품이니 별로 오래되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다 파괴된 걸 재건했을 뿐인 보잘것없는 성곽에 지나지 않는데.. '화성성역의궤'라는 건설 매뉴얼 덕분에 재건된 레플리카도 원본과 동일한 권위를 인정받았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기록 유산이 아니라 그냥 유산..

그리고 경주 양동 마을은 여느 민속촌이나 '육영수 여사 생가'처럼.. 당사자들은 떠나 버리고 후대에 재현해 놓은 단순 한옥 껍데기가 아니다. 현재까지도 족보 조작질 없이 진짜 조선 양반 후손들이 문화재급 한옥에서 계속 살고 있다. =_=;; 한국 민속촌이나 안동 하회 마을은 이런 조건까지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양동 마을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통째로 등재됐다. 그냥 단절된 과거 레거시가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덕목을 잘 충족하는 세계 유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매우 우수한 사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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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 봤는데.. 처음엔 한옥을 보다가 나중에는 호박만 찾아 다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밭의 곳곳에서 호박이 많이 잘 맺히고 있어서 반갑고 기뻤다.
자.. 이번엔 기승전..철이 아니라 기승전..호 기승전..박이 됐다. =_=;;

Posted by 사무엘

2022/08/26 08:35 2022/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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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호박 재배 근황 -- 열매

1. 단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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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아침에 핀 단호박 암꽃이다. 주변에 꿀벌이 돌아다니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의 수꽃으로 인공수분을 또 해 줬다. 아침 6시 반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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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노란 꽃잎은 완전히 시들어 떨어졌지만, 씨방은 부풀어 차차 커지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없던 단호박 특유의 주름도 생기기 시작했다. 6월 15일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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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성공하고 착과된 씨방은 처음에는 그저 동글동글한 채로 풍선 부풀듯이 커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종횡비"가 달라져서 더 납작해진다. 수박이나 조롱박이 아닌 호박 모양을 갖춰 간다.
이게 수분 성공 자체와는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건 6월 2x일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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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7월 1일.. 폭우 때문에 텃밭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주변 환경 사정상 이 호박은 더 놔 두고 키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호박을 더 키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땄다.
길이 대략 12.5cm, 무게 710g짜리 단호박이 착과된 지 거의 3주 만에 이렇게 만들어졌다. ^^
대견스럽다. 표면에 코를 대면 비누 냄새 비슷한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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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은 이렇게 쪄서 껍질째로 잘 먹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호박 내부에는 저렇게 씨앗들이 많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좀 오래 놔 두면서 주변에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딴 지 겨우 이틀 만에 처분했다. 좀 갖고 다녀 보니 표면 곳곳이 금세 물렁물렁해지고, 비누 냄새도 살짝 역겨운 느낌이 들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리해 보니 먹는 데는 다행히 문제가 없었고, 먹은 후의 뒤탈도 없었다.

이렇게 이 호박은 자기 임무를 다 수행하고 본인의 추억에만 남게 됐다.

2. 일반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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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하는 이 아이는 실내에서 재배한 놈이다. 지난 5월 2일경에 요렇게 암꽃이 활짝 펴서 인공수분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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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은 성공적으로 잘 됐음이 어린이날 즈음에 최종 확인됐다. 씨방은 요렇게 부풀어 오르면서 열매로 바뀌기 시작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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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에서 가까운 쪽이 색깔이 아주 짙어졌다. 전형적인 동그란 애호박처럼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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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같은 호박이 이렇게 됐다는 게 믿어지시는가?
색깔이 꼭지 주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더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열매의 외형과 종횡비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때는 이미 5월 말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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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 중순쯤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언제까지나 푸르딩딩할 것 같던 열매가 초록색이 걷히고 조금씩 누래지더니.. 풋호박이 폭삭 늙은 호박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사과나 고추는 익으면 겉이 시뻘개지는데 호박은 그냥 살색이나 주황색 살구색으로 바뀐다. 단풍이랑 비슷한 걸까..??
묽은 황산이 진한 황산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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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 7월 9일.. 수분된 지 65일 이상 뒤에야 잘 익은 늙은 호박을 따게 되었다.
지름 13.5cm 남짓에 약 750그램으로, CD보다는 약간 더 커졌다. ^^
실내에서 키우느라 햇볕과 통풍에 큰 핸디캡이 있었던 녀석이다. 덩굴의 줄기부터가 막 크고 굵지는 않았으니 열매도 막 크게 맺히지는 않았다.

얘 역시 꼭지가 더 시들고 완전히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놔 두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따게 됐다.
그러고 보니 늙은 호박이 정말 오랫동안 많이 삭아서 고인물 썩은물 수준이 되면.. 표면에 허연 가루 같은 것도 앉는다는데, 얘는 그 경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본인은 얘를 자그마한 종이 가방에 넣어서 내내 갖고 다녔다.
데이트 갈 때 가져가서 여친한테도 자랑하고, 교회 갈 때도 가져가서 주변 성도들에게 자랑하고..
누나와 여친은 보더니 기겁을 하면서 이딴 걸 도대체 왜 들고 다니냐고 난리를 쳤다. =_=;;
길거리에서 자기 아는체 하지 말라고.. 언제부터 그렇게 농부가 됐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호박을 첫 암꽃과 씨방 시절부터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 감흥을 모를 수도 있겠지.. 내돈내산...이 아니라 내꽃내받이인가?
3D 스캐너 같은 거 있으면 요 3D 모델을 스캔해서 저장하고 싶구만. 이런 열매를 많이 많이 모으고 싶다.

얘는 아직 먹지 않았다. 속이 어떻게 생겼을지, 전을 만들어 먹을지 죽을 쑤어 먹을지 고민된다.
이 늙은 호박은 내부 구조가 잘 안정화돼서 그런지 표면에 아무 냄새도 없고... 따고 나서 수 주 이상 한참 지나도 아까 그 단호박과는 달리, 상태에 아무 변화가 없다. 늙은 호박다운 연륜이 느껴진다. ^^

며칠 전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식물은 잎, 줄기 등 어지간한 부위들은 뿌리가 달린 본체에서 잘려 나가면 신속하게 말라 죽는다. 특히 잎은 본체에 붙어 있더라도 수명이 다하거나 뭐가 부족한 등 갖가지 이유가 생기면 저절로 정말 잘 말라 죽고 떨어진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맺혀서 안정화된 호박 열매는...?? 본체에서 잘려 나가도 상온에서 몇 달을 버틴다. 오옷~
심지어 같은 박과여도 수박 열매는 상온에서 이렇게 호박처럼 절대로 못 버틸 것이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이상이다.
호박은 큼직한 잎도 매력적이고 무슨 뱀 같은 꼬불꼬불 덩굴도 매력적이고, 노란 꽃도 매력적이고 쭈글쭈글 열매도 매력적이고.. 온통 매력덩어리이다.
본인은 10대 때부터 자동차와 컴퓨터, 열차처럼 인간이 발명한 기계류에 꽂혀 지냈다. 그러다가 등산과 캠핑을 거쳐 다음은 농사.. 나이 40이 다 돼서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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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사진. 본인의 개인 신상과는 무관함!)

전국 방방곡곡에 호박이 많이 심기고 가꿔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8~9월이면 올해 수확한 늙은 호박이 시장에 올라오겠지? 큼직한 늙은 호박을 사 먹어 보고 싶기도 하다.

※ 여담: 호박 열매가 많이 잘 맺히려면..??

누구는 구덩이 파고 호박씨를 심을 때, 처음에 밑거름으로 퇴비를 한 번만 잔뜩 집어넣고 나서는 딱히 농약 비료 안 주고 별로 관리 안 하고 방치했는데도 늙은 호박이 큼직하게 잘 맺혔다고 자랑을 하더라.
이건 본인에게는 "누구는 딱히 학원 안 가고 사교육 과외 없이 학교 교과서 공부에만 충실했더니 서울대 합격했다" 부류의 말처럼 들린다. =_=;;;

종합 영양 알비료를 주니까 꽃이 더 피고 새순이 더 빠릿빠릿 나는 등 효과가 분명 있더라.
그런데 호박은 예전에도 글로 썼듯, 자기 몸집을 키우는 모드하고.. 몸집이 작아도 꽃과 열매부터 우선적으로 만드는 모드가 따로 존재한다. 어느 모드로 갈지는 진짜 호박 마음대로인 듯..

영양이 부족하면 호박이 힘들어서 씨방이나 열매를 떨궈 버리고 수분이나 착과가 잘 안 된다고 그러는데,
또 한편으로는 초창기부터 영양이 너무 풍부하면 호박이 자기 몸집만 키우고 잎만 무성해지지 암꽃 잘 안 피고 열매 안 맺힌다고 한다.
그리고 암꽃이 피려면 온도가 좀 낮은 게 좋은 반면, 착과된 열매가 잘 익으려면 더운 햇볕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참 복잡다난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2/07/26 08:35 2022/07/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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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지난 5월 이후로 오랜만에 본인의 반려식물 얘기를 좀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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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싹이 트면 처음에는 이렇게 동그란 떡잎 두 장부터 나온 뒤, 그 가운데에서 좀 더 예리한(?) 속잎이 나오고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어린 아기한테 성인용의 음식을 갑자기 먹일 수 없듯..
이런 연약한 싹 내지 모종한테도 갑자기 강한 햇볕을 오래 쬐거나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못 버티고 죽는다고 한다.
옮겨 심는 것도 어류에게 어항 물갈이와 마찬가지로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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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잎에 허연 힘줄 같은 게 많이 그려져 있는 일반(?) 호박, 그렇지 않고 잎 표면이 반들반들한 단호박 두 종류로 크게 나뉘는 것 같다.
싹이 난 호박은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위로만 솟으며 잎을 낼 것 같지만..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미친 듯이,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덩굴을 길게 뻗으며 주변을 뒤덮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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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덩굴은 길게 꼬불꼬불 뻗는 게 마치 뱀 똬리 같다. 경이롭지 않은가? =_=;;
우주발사체에다 비유하면 이렇다. 이게 지표면에서는 저속으로 수직 상승을 하는 것만 보이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아득한 고고도에서부터는 옆으로 누워서 수평 이동을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초고속으로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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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컨디션이 좋은 호박은 영양성장 최적화 모드가 돼서 줄기가 확 굵어지고 잎 크기가 왕창 커진다. 이 파릇파릇한 잎들을 보소.. 벽이나 줄을 타고 올라가지 않고 땅 위에 퍼지면 잎이 우산 같은 역할을 하면서 아래의 어지간한 잡초들을 다 가리면서(햇볕 차단..) 쳐발라 버린다.

호박들도 홀로 있는 것보다는 곁에 같은 패거리가 여럿 있으면 시너지를 일으켜서 더 잘 자라는 건가 모르겠다.
주변에 높고 큼직한 타 식물이나 잡초가 많아서 호박이 세력이 약하면.. 반대로 쟤들이 retard돼서 풀이 죽고 시름시름 못 자라기도 하더라. 성경의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못 자라고 죽는 식물의 예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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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호박은 잘 자라다가 때가 되면 덩굴에서 펜촉 같은 게 생기고 노~란 꽃이 한두 송이씩 피기 시작한다. 노란색 오각형이 꼭 별 같다.
꽃이 일찍 많이 피는 것과 자기 덩굴의 덩치가 크고 굵어지는 것은 별개의 현상이다. (영양성장, 생식성장) 그렇기 때문에 덩치가 비리비리하고 작은 놈, 척박한 환경에서 제대로 못 큰 놈이 번식이라도 하려고 꽃을 더 적극적으로 일찍 많이 피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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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박은 잎뿐만 아니라 꽃잎도 이렇게 더 둥글둥글한 놈, 오각이 뾰족뾰족한 놈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은데..
일반 호박과 단호박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내 느낌상으로는 단호박이 더 둥글둥글, 일반 호박은 뾰족뾰족인 것 같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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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활짝 피어 있으면 보는 나까지 완전 황홀해진다.
덩굴이 영양이 풍부해서 큼직하게 잘 자랐으면 꽃도 아주 큼직하고 수술에 꽃가루가 흠뻑 넘치도록 묻어 있는 편이더라. 주변에 암꽃이 좀 있어서 이 꽃가루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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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봉오리가 제대로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꿀벌이 두 마리나 비집고 들어가서 꽃가루를 잔뜩 묻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당시 시각은 새벽 5시 반쯤이었고, 비가 내리다 그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꽃가루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 걸까..?? 꿀벌도 개미 만만찮게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가뭄에다 꿀벌 전멸 같은 흉흉한 소식이 적지 않았는데.. 단비와 꿀벌 모두 반가운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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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덩굴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암꽃이 그것도 둘이나 폈다.
내가 많이 봐 온 씨방은 그냥 구슬처럼 동글동글한 형태였다. 단호박은 아무 무늬가 없는 초록색 단색이고, 일반 호박은 좀 얼룩덜룩 무늬가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런데 얘는 씨방 모양부터가 납작한 게, 진짜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그 늙은 호박으로 자랄 녀석처럼 보였다. 이런 씨방은 처음 봤다.
한 덩굴에서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면.. 수꽃이 먼저 활짝 피고 암꽃 봉오리는 더 늦게 펴지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암꽃이 수꽃보다 피우기 더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아울러.. 이렇게 암꽃이 가까이서 여럿 피면.. 서로 팀킬을 벌이기도 하는 것 같다.
한 덩굴/줄기에서 두세 개의 씨방이 생기고 암꽃이 폈는데, 하나가 수분이 되면 그거 하나만 살고 나머지 암꽃들은 급속히 시들고 쪼그라든다.
평범하게 꽃가루를 못 받은 암꽃은 좀 더 오래 있다가 씨방이 떨어지는데, 얘들은 더 빨리 떨어지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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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위의 암꽃도 둘 중 하나만 수분이 성공해서 딱 저 단계까지 잘 갔다.
꽃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글이 이미 많이 길어졌다. 열매 얘기는 다음에 계속하도록 하겠다.

참고로.. 위의 사진들만 보면 본인이 올해 호박 농사가 이미 대풍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밝힌다.
실내와 실외 여기저기 자투리 땅에 호박씨를 많이 뿌려 봤는데, 올해는 수난=_=이 좀 많았다. 저 사진에 찍힌 호박들이 상당수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밖에서는 잘 자라고 있던 덩굴을 누군가가 그냥 뽑아 없애 버리기도 했으며, 결정적으로 강둑 모처에다 잔뜩 심었던 아이들은 지난 6월 말에 엄청난 폭우 때문에 회복 불능의 침수 피해를 입었다. ㅠㅠㅠ 몽땅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거나 진흙을 뒤집어쓴 채 쓰러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진흙이 말라붙은 건 물만 뿌려 준다고 해서 호락호락 씻겨 없어지지도 않았다.;;

작년에는 재작년이나 올해와 달리 둑이 한 번도 침수되지 않았다. 덕분에 그때는 올해 정도로 호박을 꼼꼼히 관찰하고 관리하지 않았고, 인공수분 따위도 전혀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물찾기 하듯이 수십 개에 달하는 호박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둑의 호박들이 잘 자라고 있으면 지금쯤 열매도 많이 맺히고 있을 텐데 안타까운 노릇이다. 올해가 운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작년이 이례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 여담

(1) 호박은 박과의 덩굴식물이어서 그런지 내 경험상 다른 식물에 비해 생체 반응이랄까 피드백이랄까 그게 더 활발하게 온다. 한 마디로 말해 '다이나믹'하다는 점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선인장 같은 여느 관상용 식물과는 다르다.

덩굴이 돋는 속도도 장난이 아니고, 금세 축 늘어졌다가 물 주면 금세 살아나고..
뿌리로부터 단절되거나 뿌리가 통째로 뽑히면 정말 순식간에 잎이고 뭐고 다 쪼그라들고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 죽는다.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면 헐떡거리다가 죽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꽃 안 피고 가만히만 있는 것 같아도 현상유지만으로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뜻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또 새순이 뻗고 잎이 돋고 꽃도 피고.. 그러더라. 이놈의 식물 성장 알고리즘이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 물난리 후에 무려 7월이 돼서야 호박을 또 심은 것도 있다. 하지만 얘는 실질적으로 키울 수 있는 기간이 2~3개월밖에 안 되는 시한부 인생이니 큰 열매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착과가 돼야 그때쯤 늙은 호박을 구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집으로 들여다놓을 수 없을까?
난 더운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걸 생각하면 여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이다.

(3) 호박이 깔끔히 삭제 당하고 온갖 식물 잔해와 쓰레기로 뒤덮였던 강둑은 그로부터 두세 주가 채 지나기 전에 또 시퍼런 잡초들로 점령당했다.
얘들은 홍수 이후에 생겨난 것들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건지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같은 식물이어도 세심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농작물과, 아무렇게나 잘 자라는 잡초는 생태 특성이 달라도 서로 너무 다르다. -_-;;

(4) 호박이나 수박뿐만 아니라 오이도 '박과'이다. 오이는 덩굴 모양은 호박을 닮았지만, 잎은 깻잎을 더 닮은 것 같다.
그리고 참외는 '참 오이'라는 뜻으로, 역시 오이의 친척뻘인 박과 채소이다.;;;

(5) 호박을 최대한 오랫동안 키우기 위해서 새싹과 모종은 아직 추운 3~4월에 실내에서 미리 키우다가 나중에 밖으로 내놓는 기법이 쓰인다.
이건 스타크의 저그 진영에서 익스트랙터 짓다가 취소하는 식으로 드론을 하나 더 늘리는 기법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2/07/23 08:35 2022/07/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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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호박 근황

1. 실내에서 얻은 마지막 1세대 호박

지난 2월 중순쯤에 인공수분 시켜서 착과됐던 호박 열매 중, 제일 크고 2개월 가까이 제일 오래 남겨 놨던 호박을 드디어 땄다. 언제부턴가 줄기가 부러진 게 보여서 그대로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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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딴 다른 호박들은 애호박 상태로 따서 껍질째로 국수 고명을 만들어 먹은 반면, 얘는 최대한 오래 남겨서 누렇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실내는 일조량이 부족하니 야외에 비해서는 익는 속도가 훨씬 더 느리긴 했다. 봄이 되어서 실내가 더워지고 햇볕이 강해진 뒤에야 호박이 뭔가 익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꼭지가 초록색 기운이 싹 없어지고 말라 비틀어졌으며, 호박 껍질도 노랑을 넘어 꼭지 주변 한정으로 붉은색까지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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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정도 놔둔 뒤에도 호박을 따 보니 껍질은 말랑말랑하고, 과육은 늙은 호박보다는 여전히 애호박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과육 부위는 국? 조림?을 만들어서 먹었다. 과육이 그래도 초록색보다 노란색에 더 가까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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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호박은 최대 길이 17cm, 무게 1.5kg 남짓이었다. 줄기의 굵기에 비해서 호박이 막 크고 무겁게 맺히지는 못했다. 야외에서 잘 키워서 호박의 컨디션이 더 좋았으면 열매도 저것보다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써 작년 11월 중순쯤에 심어서 올해 2월경에 착과한 1세대 호박들의 열매를 모두 자가소비 처분했다.

2. 최후의 새순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만.. 저렇게 올해 2월경에 착과해서 열매를 하나씩 배출했던 호박 덩굴들은 그 뒤에는 착과 이전 시절만치 왕성하게 자라지 못했다.
무성하던 큼직한 잎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슨 곰보처럼 누런 반점으로 뒤덮이면서 시들었다. 이건 평범하게 수명이 다해서 시드는 게 아니라 병에 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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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물 주고 거름 주고 돌보고 있으니 얘들은 완전히 죽지는 않고 여기저기 새순이 돋으면서 살려고 몸부림 발버둥은 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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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걸로도 모자라서 번식까지 또 하려고 잎뿐만 아니라 꽃대도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심지어 암꽃 씨방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것들은 콩알 크기보다 더 커지지는 못하고 시들고 떨어져 버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물과 영양이 분산돼서 그런가? 순을 더 쳐 줘야 되는지? 좀 궁금하다.

3. 2세대 호박

한쪽에서 저렇게 1세대 호박을 놔두고 있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지난 3월쯤에 실내에 심은 2세대 호박도 재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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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호박을 보소~ 상태가 제일 좋은 이 녀석은 열매가 아닌 잎의 최대 길이가 거의 30cm까지 치솟았다. 표면이 동물로 치면 무슨 근육 핏줄이 울끈불끈 하는 것 같다.
하긴, 열매는 세제곱으로 커지지만 잎은 그냥 제곱으로 커지니 길이가 늘어나는 게 더 부담없을 것 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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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충분히 따뜻해지니 노외 재배도 시작했다. 실내에서 먼저 모종을 키워 놓은 것을 옮겨 심기도 했다. 하지만 4월 중순까지도 밤에는 10도 아래로 기온이 내려가서 호박이 견디기에는 추운 것 같았다. 호박이 밖에서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기간은 거의 4~10월 사이의 반 년 남짓이라고 봐야 할 듯?

예전에는 호박이 냉해를 입어서 잎이 시커멓게 변하고 죽더니만.. 어린 잎은 허옇게 변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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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식물을 잘 키우려면

(1) 지난 반 년 동안의 개인적인 호박 재배 경험에 따르면,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은 흙이나 물, 영양, 일조량뿐만 아니라 통풍도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저렇게 잎이 큼직하고 상태가 아주 좋은 2세대 호박은 열린 창문에 제일 가까이 있는 녀석이었다.
바람 하나 안 부는 실내에서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는 식물은 광합성이 잘 안 되고 에너지 축적이 안 되어 약해지고 병충해에도 더 취약해진다고 한다. 영양이 부족해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동물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굳이 물 반 고기 반의 양식이 아니라 어항에 금붕어 두세 마리를 달랑 키우더라도 수조 안에 펌프를 가동해서 공기를 퐁퐁퐁 계속 쏴 줘야 한다. 동물만 그런 게 필요한 게 아닌 듯하다.
비닐하우스 농사라면 대형 환풍기를 돌려서 공기를 강제 순환시키며, 심지어 이산화탄소를 일부러 쏴 주기도 한댄다.

이러니 기후에 구애받지 않는 실내 공장형 농업은 구현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물과 비료와 광원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공기도 순환시켜 주고, 꽃가루받이도 곤충 없이 사람이나 기계가 해 줘야 하고, 실내 화분이라면 수조 물갈이를 하듯이 분갈이도 해 줘야 하고..
공짜로 공급되고 있는 자연 환경을 인공적으로 저렴하게 재현하고 대체하는 길은 멀고도 힘들다.

(2) 아마 호박에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니어 보인다만..
식물에게 주는 거름(퇴비? 두엄?)은 처음 심을 때 미리 넣어 주는 밑거름이 있고, 나중에 식물이 성장할 때 지면에서 또 보충해 주는 윗거름이 따로 있는가 보다.
전자는 식물 자신이 자라기 위한 영양성장에 필요한 질소 위주이고, 후자는 꽃과 열매를 맺는 생식성장을 위한 칼륨과 인 위주로 주면 좋다고 한다.

영양성장에 특화된 비료만 너무 많이 주면 호박이 좋은 물과 온도 여건을 이용해서 옳다구나 자기 덩굴과 잎만 잔뜩 무성하게 자랄 뿐.. 열매를 별로 맺지 않게 된댄다.
그런데, 이런 호박이라 해도 가을이 되고 밤 공기가 차가워지면.. 자기 명이 얼마 안 남은 걸 인지하고 성장 알고리즘을 바꾼댄다. 뒤늦게 번식하려고 무리해서라도 씨방을 만들고 암꽃을 피운다.

난 그래서 10월쯤에 호박들이.. 동그란 씨방 달린 암꽃을 뜬금없이 잔뜩 피운 것을 작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고, 인제 수분이 된다고 해도 어느 세월에 씨가 제대로 달린 열매를 맺으려고..?? 그 전에 서리가 내리고 다 얼어 죽을 텐데?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로도 작게나마 과육이 있고 통째로 먹을 수는 있기 때문에 방울토마토 먹는 기분으로 방울애호박을 요리해 먹긴 했었다.

하긴, 호박은 주변 성장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더위, 물 부족, 순이 자꾸 잘려 나감) 스트레스를 받아도 자기 몸통을 키우는 건 포기하고, 무리해서 꽃을 더 피운다고 한다. 다만, 이러면 잎도 작고 꽃도 작고 꽃가루도 빈약하고.. 수분해 봤자 열매가 못 맺히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 다들 어떻게든 생존하고 번식하려고 눈물겹게 투쟁한다..

말 못 하는 짐승을 넘어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이라 해도 생명체는 기계류와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고 이런 섬세하고 이타적인 면모가 있다. 동식물을 하나 직접 키워 보는 건 게임에서 이상한 몬스터를 죽이고 부수기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향을 사람 정서에 끼치는 것 같다. ㅠㅠㅠ

5.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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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본인은 지난 3월 말에 봤던 길거리 호박을 다시 찾아가 봤다.
이제야 비닐은 벗겨졌으며, 호박이 담벼락에 많이 자라서 잎이 무성해져 있었다.
호박은 굳이 밭 만들 필요 없이 아무 시골 자투리 땅에서나 덩굴을 늘어뜨리는 식으로 재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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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을 찾아가서 지난 2월에 들렀던 같은 가게에서 늙은 호박 두 덩이를 또 장만했다. ^^ 두 주 남짓 동안 갖고 놀다가 죽을 쑤어 먹었다.
역시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그때보다는 늙은 호박 재고가 훨씬 더 줄어들었고 찾기 힘들어져 있었다.
작년 여름~가을에 딴 늙은 호박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오래, 언제까지 보관 가능할까? 정말 궁금하다.
이제 올여름만 지나고 8~9월쯤이면 새로 수확한 늙은 호박이 나오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12 08:35 2022/05/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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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이제 슬슬 호박/농사 관련 카테고리를 추가해야 되나 고민된다. ㄲㄲㄲㄲㄲㄲㄲ

1. 실내에서 수확한 애호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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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약 8.5cm, 무게 260g짜리 단호박. 더 커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제일 먼저 땄다. 밖에서 구입한 늙은 호박으로 호박죽을 쑬 때 같이 넣어서 먹었다. 단단하게 아주 잘 익었고 속에 씨도 많이 들어있었고 고구마 같은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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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파릇파릇한 일반 호박의 풋호박/애호박이다. 껍질째 채썰어서 국수 고명을 만들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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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1kg가량의 무게에 길이도 약 15cm에 도달한 약간 큰놈이다.
과육은 풋호박이지만 껍질은 이제 질겨서 먹기가 난감하고, 속은 제법 누렇게 늙은 호박처럼 숙성이 진행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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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위의 파릇파릇한 놈보다는 좀 더 삭았지만, 아래의 것보다는 그 정도가 덜한 애호박이다.;; 과육이 많고 탐스러워 보인다.
호박 열매의 내부 인테리어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식으로 바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호박은 속 중심부를 전부 다 파내 버리고 겉의 얕은 부분만 먹는데 어떻게 먹을 게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부피는 길이의 3제곱임을 생각하면 좀 납득이 된다.

호박 한 덩이쯤이야 애건 늙은이건 단돈 몇천 원이면 바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몇 달간 직접 심고 키워서 호박을 얻어 보니, 사기만 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큰 정신적 만족과 감화, 교훈(!!!)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
내가 심고 암· 수술 수분도 하며 "실내에서 키운 호박"에서 드디어 열매와 다음 세대 씨가 나와서 몹시 기쁘다.

2. 주변에서 본 호박 재배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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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3월 말쯤에 집 근처 한적한 길가에서 본 풍경이다.
도로의 옆에 인도가 있고, 그 옆엔 가파른 비탈과 함께 담장이 쳐져 있다. 담장 너머는 놀고 있는 듯한 사유지 공터.
그런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담벼락 아래에다가 일정 간격으로 뭔가를 심었다. 그리고는 보온을 위해 비닐까지 씌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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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호박이려나?
이 장소의 작년과 재작년치 네이버 지도 로드뷰를 보니, 호박이 맞는 듯했다~! 땅 주인이 매년 이렇게 호박을 심은 것 같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광경을 보니 정말 훈훈하고 흐뭇하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접근하기도 어려워서 몰래 뭔가를 심기에는 아주 적합해 보이더라~

자라는 식물 위에다 비닐을 씌우고 며칠 지나 보면, 식물의 증산작용이란 게 어떤 건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비닐 표면이 물기로 흥건히 젖는다.
저 비닐도 너무 뿌얘서 안에 무엇이 있는지 가까이에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3. 식용 호박과 전시 진열 전용 호박

호박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열매를 맺을 뿐만 아니라, 같은 종 내부에서 열매의 모양과 색깔과 크기 바리에이션도 가장 다양한 정말 흥미로운 식물이라고 한다. (☞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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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 같은 호박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늙은 호박, 애호박, 단호박이 전부가 절대 아니군..)

이 때문에 미국에서 호박은 먹는 게 아니라 비주얼만 감상하려고 장식· 전시용으로도 엄청나게 많이 재배된다고 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pumpkin이라고 하면 주황을 넘어 거의 다홍색에 가까운 뻘건색에 주름 없이 동글동글한 그 특유의 호박이 가장 먼저 연상된다. 한국에서는 거의 구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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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박 역시 식용이 아니며, 그냥 할로윈 재꼴랜턴 만드는 용도이다. 오로지 외형에만 최적화 품종개량됐기 때문에 쪼개 보면 과육은 그냥 멀겋고 맛이나 영양은 하나도 없댄다.
미국에서는 식용이 아닌 이런 “빛 좋은 개살구” 잉여 호박도 수요가 많기 때문에 매년 정말 겁나게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하긴, 사격 과녁으로도 멀쩡한 수박을 부수지 말고, 어차피 식용이 아닌 이런 호박을 쓰면 될 것 같다.

반대로 죽이나 통조림을 만드는 식용 호박으로는 미국에서도 역시 쭈글쭈글하고 살색에 가까운 동양식 클래식 늙은 호박이 쓰인다. 영화에서 쓰이는 깨지는 유리창/유리병이랑 현실의 유리창/유리병이 동일한 재질이 절대 아닌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또한, F1 경주용 자동차를 정작 일반 도로에서 자가용으로는 거의 굴릴 수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4. 호박의 성장 동영상

역시 유튜브에 이런 게 없을 리가 없다. 호박이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가 생기는 과정을 거의 10만 배 이상의 속도로 초고속 재생한 영상 말이다. 3개월 분량의 변화를 1분으로 축약하려면 비율이 거의 저 정도가 된다. 감상해 보면 무척 흥미롭다~! pumpkin time lapse라고 검색하면 된다.

  • 요건 호박 덩굴 하나를 굉장히 섬세하게 잘 관찰했다. 이 상태로 열매가 맺히고 자라는 모습까지 같이 나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건 없는 게 아쉽다.
  • 요건 야외에서 해가 떴다 지고 그림자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까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열매가 부푸는 게 무슨 고무 풍선이 부푸는 것 같다.
  • 요건 호박밭과 특정 호박 개체를 번갈아가면서 다룬다. 단호박 열매가 부푸는 모습도 잠깐 나온다.
  • 요것도 한 덩굴 위주로 실내 촬영을 깔끔하게 잘 했는데.. 역시 열매가 자라는 모습이 없는 게 아쉽다.
  • 요건 야외 화단을 오랫동안 CCTV로 촬영한 것 같다. 덩굴이 급격히 불어나는 모습, 열매가 맺혀서 커지는 모습도 나오긴 하지만 특정 개체 클로즈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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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라는 속담은 호박씨를 심는 게 아니라 먹는 걸 뜻한다더라. ㄲㄲㄲㄲ
  • 호박 줄기의 일부 구간을 흙에 도로 파묻으면 거기서 뿌리가 돋는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인터넷 뒤지다가 처음 들었다. 오~ 그렇게 하면 물· 영양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09 08:35 2022/04/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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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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