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근황

1. 애완용 늙은 호박

오랜만에 또 호박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먼저, 애완용 및 식용으로 도입한 늙은 호박 완제품 자랑부터 짤막하게 한 뒤, 그 다음에 키우는 호박 얘기를 늘어놓도록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호박, 애호박, 심지어 수박은 1년 내내 아무 동네 마트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늙은 호박은 그렇지 않다.
그런 다른 '박'들보다 더 크고 무겁고 비싼 데다, 취급하기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호박의 상징은 커다랗고 누런 늙은 호박이 아니겠는가? =_=;;
본인은 작년 겨울에는 대체로 인터넷 주문으로 늙은 호박을 조달하며 지냈다. 그러다 제일 최근엔..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가락시장에 가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기 지하의 채소 가게를 뒤져 보니, 역시 늙은 호박을 오프라인 대면으로 금방 구매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 동글동글한 놈도 있고, 아예 약과처럼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놈도 있고.. ㅎ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지난 3~4월 동안은 얘를 잘 갖고 놀았다. 겨우내 보관을 잘 했는지 동글동글한 게 아주 단단하고 야물고, 표면이 매끈하고 상태가 좋았다.
밖에 캠핑 갈 때도 늘 데리고 다니다가 때가 되면 쪼개서 죽을 쑤어 먹었다.

2. 실내 재배 열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으로.. 얘는 지난 2월 중순쯤에 수정이 성공해서 맺히기 시작한 열매를 얼추 1주 간격으로 관찰한 모습이다. 세상에 이런 시퍼런 동글이가 삭아서 저런 누렇고 단단한 늙은 호박이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그로부터 2주 정도 뒤, 이 아이는 이 정도로 살이 쪘다.. ㅋ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잎, 꽃, 심지어 중도 낙과한 열매 등.. 식물의 원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부산물들은 그대로 놔 두면 놀라운 속도로 시들고 물러지고 말라 비틀어지고 분해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특히 꽃의 경우, 폈다가 져서 하루~이틀만 지나면 이미 생명을 잃었는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저절로 떨어진다.

그런데 완성품인 늙은 호박만은 어째 상온에서 몇 달을 멀쩡히 버티는 걸까? 오히려 냉장고의 저온에 놔두면 더 빨리 상한다니..?? 참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분이 성공해서 호박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동그란 씨방이 갈수록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암꽃이 피던 시절에는 씨방이 위로 빳빳하게 들려 있다가 얼마 못 가 무거워서 아래로 쳐진다. 사실, 암꽃은 열매의 무게를 견디라고 줄기부터가 수꽃 줄기보다 훨씬 더 굵직한 상태이다.

열매가 언제까지나 동그란 전구 모양이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공 모양이 아니라 표면이 각지고 쭈글쭈글해진다. 수박은 그렇게 되지 않는데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른 덩굴에서 맺힌 이 아이도 수분 성공 직후에는 동글동글 전구 모양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렇게 납작한 모양이 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암꽃은 달린 케이블(줄기..)부터가 수꽃보다 훨씬 더 굵다. 열매에다 꾸준히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 하고, 열매의 무게도 견뎌야 하니 말이다.

3. 실내 재배의 한계

이렇게 실내에서 호박 암꽃과 수꽃을 직접 수분시키고 호박 열매를 구경하니 본인은 지난 겨울이 더욱 훈훈하고 기뻤다.수술을 암술에다 부비는 그 느낌이란.. ㅎㅎ
하지만 호박을 더 오래 놔둬 보니 실내 재배의 한계랄까, 그런 것도 좀 느껴졌다. 1덩굴당 1열매 이상은 무리인 듯.. 열매가 하나 생긴 뒤부터 호박들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자라지 않기' 시작했다.

  • 단순히 수명이 다해서 그런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큼직한 잎들은 대놓고 시들지는 않는데 온통 노란 반점으로 뒤덮혀서 곰보가 됐다.
  • 또한, 새순이 나려다가도 다 시들고, 꽃도 잘 안 핀다. 특히 암꽃은 씨방이 맺히려는 것도 생기다 말고 다 누렇게 시들어 떨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작년에 제철에 야외에서 심었던 호박은 관리를 더 안 해 줘도 큼직한 열매가 잘도 맺혔던데..;;

실내에서는 온도, 물, 비료는 가까이에서 훨씬 더 자주 잘 챙겨 줄 수 있지만, 햇볕과 통풍(자연풍)은 아무래도 야외를 따라가기 곤란할 것이다.
야외는 그런 메리트 대신에 일교차가 더 크고 가혹한 기상 조건과 병충해에 더 크게 노출되며.. 뭐 흙도 갑갑한 화분보다는 더 많이 있겠지만 흙의 품질이 딱히 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야외가 실내보다 더 나은 여건이어서 큼직한 열매가 잘도 열렸던 것 같다. 심지어 인공수분조차 해 주지 않았는데도 꿀벌까지 날아와 주고 말이다..!!
지인 말씀에 따르면.. 이렇게 실내 재배로 제조한 호박은 맛도 더 없을 가능성이 높댄다. ㅎㅎ

작년에 야외에서 키우던 호박들은 가을(10월쯤)에 날씨가 갈수록 추워지자..
자기 최후가 임박했음을 알았는지, 곳곳에서 미친 듯이 그 귀한 암꽃 씨방을 만들어 냈다.
뭐,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걔들은 여름이 돼서야 너무 늦게 심은 놈들이기도 했었다. 3~4월에 일찌감치 심었던 호박이 그때까지 살아서 활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때 본인은 호박이 추위에 얼어죽지 않고 물과 영양을 끝없이 공급해 주면 언제까지 사는지 궁금했다. 실내에서 실제로 그렇게 해 보니 호박이 내 기대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작년 11월 이후로 심은 지 3~4개월쯤 됐는데 쟤들이 벌써 자연 수명이 다한 건지?
아니면 이번엔 온도나 물, 영양 문제 대신, 진짜로 햇볕, 통풍, 뿌리 내릴 공간 부족이 문제인 건지?
이 문제만 해결되면 호박 잎이 노란 반점 없이 더 건강하고 더 오래, 꽃과 열매를 더 많이 맺을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고 진 꽃, 앞으로 필 꽃이 동시에.. 그나마 수꽃이 가까운 데서 많이 폈던 시절의 모습)

특히 물은 도대체 어느 정도 얼마나 어떻게 줘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실내에서 한여름 같은 땡볕도 절대 없는데 낮에는 호박 덩굴들 잎이 힘없이 축 쳐져 있었다. (색깔은 누래진 것 없이 여전히 정상적인 초록색)
이건 수분 증발을 막으려고 잎들 기공을 닫고 양분 생산도 중단한 상태라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팍팍 많이 주고 싶은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실내 식물은 물을 안 줘서 죽는 경우보다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썩어서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네..;; 그래서 물 주는 걸 주저했다.
그래도 호박이 잎과 덩굴이 저렇게 거대한데, 평범한 꽃이나 고무나무보다는 물을 더 많이 줘야 할 것 같아서 매일 덩굴당 한 컵 이상은 준 게 지나친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로 물을 주고 나면 시들었던 잎이 30분쯤 뒤에 기립했기 때문이다. 겨울에 실내가 굉장히 건조한 것도 감안했다.
또한, 식물에 물을 줄 때는 무슨 자동차 워셔액 보충하듯이 바가지로 끼얹지 말고, 물뿌리개로 살살 주는 게 흡수 관점에서 좋다. 빗물만 해도 얼마나 살살 가늘고 길게 내리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게 식물에게 좋은 급수 형태이다.

"알았어! 이것 때문에 호박이 안 맺히는 거야!" / "이렇게 해 주면 괜찮을 거야!" 이러는 게 마치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안 오잖아 가정교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쪼록.. 호박은 재배가 까다롭지 않으면서 수박보다 좋은 영양 더 많은 열매를 남겨 주고, 열매가 동글동글 큼직하고 꿀단지처럼 생겼고, 뭔가 시골 인간미가 느껴지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채소이다.
그래서 본인은 지금은 컴퓨터의 배경 그림도 작년에 찍었던 호박밭 내지 호박 열매 사진이다.;; 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박 정도가 아니었으면 평생을 자동차나 컴퓨터, 심지어 열차 같은 기계류를 좋아했던 본인이 이 나이가 돼서야 자연과 농사에도 재미를 붙일 일이 없었을 것이다.
보물찾기 하듯이 밭을 뒤지니 큼직한 호박이 눈에 띄는 게.. 정말 엄청난 희열을 안겨 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내 호박은 언제쯤 따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 같아서는 박제하고 영구보존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깔끔하게 꿀꺽 할 예정이다.
초록색 열매도 꼭지에 가까운 쪽, 햇볕을 받은 쪽이 색깔이 먼저 짙어지더라. 반대편은 그냥 옅은 연두색일 뿐..

4. 나머지 소감

(1) 옛날에는 호박은 음식물 쓰레기나 심지어 인분을 파묻은 구덩이에다가 대충 심어서 키웠다고 한다.;;
식물이야 원래 태생적으로 동물이 더 처리하지 못하는 유기물 폐기물을 밑천으로 자란다고 하지만.. 거기서 같이 죽어서 썩어 버리는 것과, 그리하지 않고 그걸 영양분 삼아서 싹을 내고 크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라 하겠다.

동물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온갖 부패균이 식물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점이다. 반대로 호박잎의 반점 병은 동물에게 영향이 없으니까.. 종간 장벽이라는 게 있다.

(2) 호박은 기온이 5도쯤 밑으로 내려간 추위에 밤새도록 노출되니, 더는 못 견디고 화상을 입은 듯이 잎이 시커매지고 쭈글쭈글해지면서 죽더라.

그런데 호박 말고 다른 화초 중에는 겨울에 잎이 일부가 빨개지는 건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상추나 시금치 말이다.
검색해 보니 마그네슘 부족 아니면 역시 온도나 수분과 관련된 에러(...)라고 한다.

식물에도 겨울잠 비스무리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겨울에 시들었다고 해서 다 죽은 건 아니고, 봄 되면 살아나는 게 있다고 한다. 하긴, '한해살이풀, 여러해살이풀'이라고 단수-복수의 개념도 있다.
단지, 호박은 한해살이풀이다. 그리고 굳이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도, 심은 지 충분히 오래되고 열매 몇 개 맺고 나면.. 더 안 자라고 잎이 숭숭 빠지고, 꽃과 열매를 한없이 맺지는 못하고 기력이 다해 죽긴 하는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01 08:35 2022/04/01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004

1.
본인은 이 달 초에 호박 실내 농사 후기를 블로그에다 올렸었다. 그 이후로도 호박 덩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이 정도까지 커졌다. 흙이 부족하고 뿌리를 충분히 깊게 내리지 못했을 텐데 잘 자라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전 사진에는 덩굴이 오른쪽 끝까지 뻗은 상태였다. 허나 그 덩굴은 더 길어져서 오른쪽 끝에서 방향을 돌려서 왼쪽 끝까지 돌아왔고, 거기서 또 방향을 돌려서 오른쪽을 향해 중앙 정도까지 갔다. ㄷㄷㄷㄷ

야외의 텃밭 흙바닥에다 덩굴을 넓게 늘어놓으며 키우면 이런 복잡한 줄과 받침대가 없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비좁은 실내에서 창가의 햇볕을 최대한 쬐어 주는 모양을 만들다 보니, 덩굴을 받치는 구조물도 덕지덕지 필요해진 것이다. ㄲㄲㄲ
호박의 주거 형태가 단독 주택 대신 아파트로 바뀐 것 같다. 면적을 줄이는 대신, 높이를 키웠으니 말이다.

2.
그리고.. 이 호박 덩굴은 몸집만 커진 게 아니라 암꽃도 폈다. 첫 수꽃이 핀 뒤 2주 이상이 지나서야 첫 암꽃이 폈다.
수꽃은 네댓 그루 남짓한 덩굴에서 매일 서너 송이씩 꾸준히 펴서 지금까지 수십 송이가 피고 졌다.
그러나 같은 덩굴들에서 약 3주 동안 암꽃이 핀 건 딱 일곱 송이가 전부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암꽃이 피기 전 / 폈을 때의 모습)

동그란 씨방이 달린 암꽃 봉오리 자체는 이보다 더 많이 맺혔다. 그러나 그것들이 전부 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양이 부족한지 중간에 시들어 떨어진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기 직전의 노란 꽃봉오리까지 생겼는데 그 상태로 차마 피지는 못하고 떨어지는 놈도 있었다.
호박의 입장에서 암꽃은 수꽃에 비해 영양 소모가 많고 피우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근처에서 직접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3.
실내에는 꿀벌이 날아오지 않으니, 본인은 주변 다른 덩굴의 수꽃을 잘라서 거기 수술을 암술에다가 직접 꽂아서 비벼 주는.. 일명 '인공수분'이라는 걸 최초로 시행해 봤다. 붓이고 뭐고 없어도 되고, 그냥 수술 작대기 직통이 제일 속 편했다. 암술을 꽃가루로 범벅을 만들어 줬다.
수꽃 하나만으로 암꽃 무려 세 송이를 수분시킬 수 있다고는 한다만, 현실에서 수술이 암술보다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랬더니, 죽은 줄 알았던 씨방은 아주 서서히 부풀고 커지면서 본격 열매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3~4일 정도는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
내가 중매를 서 줬던 암꽃 수꽃이 이렇게 맺어졌다니.. 무슨 로켓 쏴서 인공위성을 궤도에 드디어 안착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ㅠㅠㅠ

수분이 성공하고 나면 씨방이 부풀 뿐만 아니라 내 경험상, 무게도 확실히 달라진다.
암꽃 시절에는 위로 빳빳하게 솟아 있던 씨방이 며칠 뒤에 꽃은 시들고 그 대신 씨방이 부풀어서 아래로 축 쳐진 걸 보면.. 참 감격스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흘 간격으로 동일 사과와 동일 호박을 거의 동일한 구도로 크기 비교..)
저 호박은 덩치가 더욱 커져서 자두, 방울토마토, 양파를 넘어 사과의 크기까지 추월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적-록.. 뭔가 어울리는 보색 배합인걸?
식물이 열매를 뭔가 3D 프린팅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줄기는 단자· 케이블이고..

4.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 아이는 인공수분 후에도 며칠째 크기나 색깔이 변함없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정체는 단호박이었으며, 수분의 성공이 최종 확인되었다. 야호~!
위와 아래의 사진 네 장은 개화일 기준으로 각각 D-3, -1, +3, +5일 때의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호박은 씨방이 무슨 완두콩 같은 매끈한 초록색 구슬 모양이어서 일반 호박의 씨방보다 더 예뻤다.
수분 후에는 세로로 줄무늬가 생기고 더 납작해지고, 색깔도 더 짙어지면서 우리가 아는 단호박 모양이 되어 갔다.
나로서는 줄무늬가 정상적인 생장인지, 아니면 시들어서 쭈글쪼글해지는 징조인지를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수술 꽃가루가 단호박/일반호박을 가리지 않고 아무 암꽃과 호환은 되는 듯하다.
열매가 생성되는 단자의 모양도 일반호박이랑 단호박은 좀 차이가 있다(꼭지 부분ㄲㄲㄲㄲ).

5.
이런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게 많았다.
가장 먼저, 호박 열매는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조건들이 다 맞아떨어져야 생긴다는 것, 호박 덩굴은 한둘, 두세 그루만 있어서는 안 되고, 네댓 이상은 한꺼번에 같이 키워야 암꽃이 하나 폈을 때 수분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수꽃이 상시 존재하겠다는 것 말이다.

게다가 이들 꽃의 유통기한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겨우 몇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 뒤엔 꽃이 바로 져 버리며, 암술· 수술의 생식 능력이 상실된다.
암꽃이 피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수분을 해 준다고 해서 100%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본인의 경우, 암꽃 7송이 중에서 확실하게 성공한 것 셋, 실패한 것 셋,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것 하나로 결과가 나뉘었다.

도대체 이 꽃가루라는 게 뭐길래..? 무슨 금가루마냥 극미량의 이 가루의 정체가 뭐길래 암술에 묻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씨방이 큼직한 호박으로 자라느냐, 아니면 그냥 시들어 떨어질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걸까??
지금까지 야외에서 저절로 맺혔던 호박 열매들은 전부 꿀벌이 알음알음 찾아와서 수분을 해 줬기 때문에 맺힌 것이야 그럼? 우와~

하긴 학창 시절에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에서도 충매화라는 건 식물이 번식을 위해서 동물(곤충)과의 윈윈 공생을 선택한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사례라고 극찬했던 걸 본 게 생각난다. 물론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창조된 거라고 안 하고 그렇게 똑똑하게 진화한 거라고 얘기하지만.. ㅋㅋㅋ

6.
이렇게 수분 성공한 열매가 생긴 뒤부터는.. 호박이 자라는 방식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줄기가 뻗어가고 잎이 자라는 게 둔화되고, 새순과 기존 암꽃조차 누렇게 시드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 추가로 꽃이 핀 암꽃은 씨방도 예전의 암꽃보다 더 작더라. 영양이 열매 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심증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거라고 한다.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자라는 게 아니었네~~
식물은 자기 자신의 잎과 줄기 위주로 자라는 영양성장, 그리고 꽃과 열매 위주로 자라는 생식생장이라는 두 모드가 존재한다. 오.. 나름 state machine이었던 것이군.

한창 자라야 할 때 온도 수분 영양 상태가 부실하면 생존의 위기를 느낀 식물체는 영양성장을 포기하고 무리해서라도 꽃과 열매를 많이 맺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것만 올인하다가 식물 자체도 더 일찍 시들고 죽는다.
반대로 초기에 거름과 물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특히 질소 비료) 식물 자신의 영양생식만 엄청 벌어지면서 꽃은 안 피고 열매는 금방 낙과한다고 한다.

확실히 우리 호박도.. 한창 영양성장을 하다가 생식성장으로 모드가 바뀌긴 한 것 같다.
열매를 많이 보고 싶으면 호박을 심은 초기에 어미순인지 아들순인지 뭔지를 많이 잘라 주라고 그러던데..
본인의 경우는 아무 조치 없이 그냥 방치했다.
그렇게 방치해도 내가 느끼기에는 암꽃도 생길 때가 되니 생기고, 이 정도 열매가 맺히기는 한다. 야외도 아닌 실내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그리고 열매가 맺히고 있는 덩굴에서는 다른 암꽃이 피더라도 씨방이 예전보다 작게 달리며, 낙과 확률도 더 높아진다.
열매를 만드는 건 영양 부담이 굉장히 크니 광합성을 위한 물과 햇볕, 그리고 비료로 인과 마그네슘 같은 무기물 영양분 공급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댄다.

역시 큼직한 늙은 호박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농사도 알면 알수록 공부해야 할 게 정말 많다.
도난 걱정, 추위 걱정 없는 실내에서 최선을 다해 호박을 가꿔서 덩굴은 자연사할 때까지, 열매는 누렇게 익을 때까지 원없이 놔둬 보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 지붕이나 담벼락에 호박 덩굴이 놓여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24 08:35 2022/02/24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91

겨우내 호박 먹고 호박 가꾼 소감

1. 호박 예찬

하루는 인터넷을 돌아댕기다가 '농민 신문'의 재작년 가을 보도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했다.

“호박은 버릴 게 없어요.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작물이죠. 생긴 것도 푸근하니, 방에 놓으면 복이 온다고도 하잖아요.” (☞ 링크)


우왓~~~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귀농해서 모친과 같이 호박 농사를..)
호박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말 100% 정확하게 그대로 사이다처럼 잘 대변해 줬다~!!!! ^__^

"넓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작물.
외형부터가 푸근하고 복스럽게 생겼다."


아아~ 나도 딱 저게 딱 느껴져서 그게 좋아서 진작부터 방에다 호박을 놔 두고 지내 왔다구!
밖에서 텐트 치고 잘 때도 늙은 호박을 갖고 나가고, 운전할 때도 차에 싣고 다니고..
동승자 없는 단독 운행일 때는 조수석에다 호박을 얹어놓고 다닌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위의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정물화임..!! 출처는 여기..)

재배가 까다롭지 않고, 어지간한 악조건 속에서도 덩굴을 미친 듯이 길게 뻗으면서 알아서 잘 자라고,
큼직한 열매뿐만 아니라 잎과 씨도 먹고 꽃도 먹고 심지어 꼭지조차 물에 달여서 마실 게 있다.
동글동글하고 큼직하고 무거운 늙은 호박은 그냥 서늘한 상온에 놔두기만 해도 엄청 오래 보관 가능하고..

다른 어떤 채소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감성이 호박에는 있더라~~!
다른 사람의 글을 또 소개하도록 하겠다. ♥♥

어릴 적 호박에 대한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맘때면 농촌에 무성하게 자란 호박 줄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옥토는 다른 농작물에게 다 뺏기고 농사짓기 어려운 밭두렁, 가장자리 자투리땅, 담장 밑 또는 비탈진 언덕이나 버려진 땅이 호박 차지다.

우거진 풀잎 속 호박 줄기는 언제 보아도 기세가 당당하다. 호박잎 속에 감추어져 노랗게 핀 아침 호박꽃은 더없이 청초하다. 꽃 중에 꽃으로 꼽히는 장미꽃처럼 화려하거나 향기롭지 않지만 장미에 돋친 가시가 없다. 피었다 지면 그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참 좋은 선물을 안겨준다. 호박꽃은 농민과 가장 친근한 꽃이다.

(...)
호박은 무더운 여름철 가뭄에 강하며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무공해 식품이다. '늙은 호박은 가을 보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야말로 호박은 만병통치 건강식품이다. 이렇게 좋은 호박을 온 국민이 많이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호박을 돼지, 메주와 함께 못난이의 대명사처럼 여기다니 호박은 억울하다. 못생긴 것에 비유하거나 부정적으로 쓰이는 속담도 많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호박꽃도 꽃이냐?’ 호박이 수박보다 훨씬 사람에게 이롭다. 호박꽃에는 장미꽃에 있는 가시도 없는데 말이다.

허나 호박은 못난 게 아니다. 최대의 행운을 의미하는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하며 노래 '물레방아 인생’에서 모나지 않고 원만함을 이르기도 한다. 호박은 결코 못난 게 아니다. (☞ 링크)


2. 호박 구매

본인은 이번 겨울 동안 늙은 호박을 꾸준히 많이 사 먹었다. 호박 한 통을 죽 쒀서는 혼자서 다 먹는 데 거의 1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리곤 했다.

자그마한 단호박이나 애호박과 달리, 늙은 호박은 너무 크고 무겁고 양이 많은 데다, 먹을 수 있는 부위만 추출하는 작업도 만만찮다. 그래서 어지간한 마트 레벨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재래시장이나 인터넷 주문에 의존해야 하더라.
수박조차 축소판인 애플수박이라는 개량종이 나오는 와중에, 늙은 호박은 도시 1인 가구와는 안 어울리는 면모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늙은 호박은 딱히 수입산이 존재하지도 않는 같다. (단호박은 겨울에 남반구 지역 수입산이 있음는데 말이다)

하지만 호박이라는 고유한 상징성과 정통성에 가장 충실한 매력적인 아이는 뭐니뭐니해도 이런 맷돌호박의 늙은 형태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본인은 얘를 애용했다.
그 중에는 지름이 32.5cm에 달하고, 무게는 거의 6.5kg에 육박하는 엄청 큰 놈이 하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본인이 실물을 직접 보고 만진 적 있는 역대 호박 중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놈이었다. 작년에 텃밭에서 재배해서 수확한 호박도 제일 큰 게 30cm에 근접하는 길이에 4kg대가 한계였지, 저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얘는 외형도 아주 납작하고 주름이 쭈글쭈글한 전형적인 한국형 맷돌호박.
허연 가루에 흙까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게, 호박계의 최고 짬밥을 자랑하는 백전노장처럼 생겨 있었다.
이런 게 정통 늙은 호박이 아니겠나?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흐뭇흐뭇~~~~^^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호박을 왜 못생김의 상징이라고 여기는지 좀 알 것 같았다. 누렇고 납작하고 쭈글쭈글하니까..;;
딱~ 시골 할아버지 같은 심상이 느껴져서 그런 걸까..?? 에휴~ 그걸 못생긴 게 아니라 아까 예찬 글에 나온 것처럼 푸근함, 복스러움으로 풀이해야 할 텐데 말이다. ^^

본인은 이 호박을 최하 한 달 이상, 이번 겨울 내내 장난감으로 삼아서 머리맡에 두면서 갖고 놀고 싶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에 호박을 놔뒀던 자리를 보니 주변이 누가 무슨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뿔싸.. 호박이 바닥이 살짝 금이 가고 갈라져서 내용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헐~ 내가 호박을 받자마자 호박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자가 젖어 있지는 않았고 호박이 처음부터 저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배송 과정에서 충격을 좀 받았나?
이 때문에 이 호박은 오래 놔두지 못하고 받자마자 곧장 분해해서 죽을 쑤어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내부 상태는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화와 은화 --- 단호박과 일반 호박. ^^
이렇게 씨앗 숫자가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게 세포 분열의 위력이구나.
동화에서는 호박으로 마차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고, 케이크를 잘랐더니 금화가 쏟아져나온다.
그러니 호박을 잘랐더니 금화가 쏟아져나오는 상상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봤던 계몽사 세계 명작 동화의 유명 삽화가 떠올랐다. ^__^

3. 호박 재배

오징어 게임의 오 일남 영감이 게임을 관람만 하니 재미가 없어서 게임에 직접 참가도 했듯..
본인도 호박을 사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재배를 시도해 봤다.
작년에 텃밭에서 한번 해 본 뒤, 올겨울엔 내년 4월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하니 실내에서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박은 열매만 매력적인 게 아니다. 호박잎의 가장자리는 프랙탈 무늬를 연상케 한다.
호박 줄기는 털이 북실북실한 게 무슨 동물 같으며, 동글동글 덩굴손은 뭔가 동화 속 마법 같은 느낌이 든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여러 덩굴 중 한 놈이 정말 미친 듯이, 독보적으로 무섭게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공중에 매달린 위쪽이 햇볕을 잘 받아서 그런지 잎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커지고 그야말로 살판 났다. 마치 신나서 날뛰기라도 하는 것 같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도 끝이 아니어서 왼쪽으로 한번 더 꺾어 들어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때로부터 약 20일 전(3주)까지만 해도 그냥 막대기 하나를 타고 오를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놈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저렇게 됐다는 거다. 동일한 빨간 막대기를 견줘 보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더 전, 약 40일 전에는 막대기조차 필요하지 않은 평범한 상태였었다~!
그랬는데 이제 덩굴의 길이는 2미터는 확실하게 넘었고, 쫙 펼쳐 놓으면 2미터 중후반 정도는 되지 싶다. 더구나 가냘프던 줄기가 언제 이렇게 굵어지고 털도 났는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초기에 어디 어디 순을 잘라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100% 자연 방치한 상태이다. 몹시 기쁜 한편으로 우려도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밑동에서도 계속해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고.. ㄷㄷㄷ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동안 잎이 무성하고 수꽃만 여러 송이 피더니, 드디어 씨방 달린 암꽃도 슬슬 맺히기 시작했다. 제일 큰 씨방은 이제 쌀알과 콩알 크기 정도는 넘어섰다.
지름이 1cm가 채 안 되는(아마 4~5mm??) 동글동글한 씨방이 자라고 또 자라서 저런 거대한 호박이 된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수꽃과 암꽃이 동시에 펴서 인공수분을 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도둑 걱정 없는 실내에서 사과나 배 크기의 애호박을.. 더 나아가 주름진 늙은 호박까지 구경하고 싶다. ^^

자료를 찾아보니 호박은 저온 단일(短日).. 기온이 적당히 낮고 선선하고, 밤에 광공해 없이 어둠이 좀 길게 지속돼야 암꽃이 많이 맺힌다고 한다.
아~~ 작년에 한창 쌀쌀해지고 호박 농사 시즌의 끝이 임박했던 10월 중· 하순에 그 희귀하다는 암꽃들이 갑자기 잔뜩 많이 폈던 게 이런 특성 때문이었구나! 이제 납득이 된다.

호박은 기온이 낮아지면 암꽃이 더 잘 맺히는데, 사람은 날씨가 추워지면 예전보다 소변이 잦아지는 것 같다. -_-;;
본인의 오랜 경험상, 겨울에 야외에서 텐트 치고 자면 생리 현상 때문에 중간에 깨는 빈도가 그냥 집에서 잘 때보다 훨씬 더 높아지더라. (추워서 깨는 게 아니며, 실제로 이뇨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진다고 함) 거 참 흥미로운 상관관계인 것 같다.

4. 영단어 window의 의미

끝으로, 호박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주제이다만..
window라는 단어는 창문, 창구, 더 나아가 컴퓨터 화면의 GUI 요소를 가리키는 쉬운 단어이다.
그런데 얘는 의외로 '기회, 여유 시한' 같은 뜻도 있다. 호박 농사와 관련된 영어 자료를 읽다가 이런 용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Both male and female flowers open at dawn and close by the end of the day. The WINDOW for pollination is short!
(호박은 수꽃과 암꽃이 모두 새벽에 펴서 저녁에 집니다. 수분 가능한 시간대가 그리 길지 않아요~!)


공교롭게도 영화 테이큰 1 대사 중에도 window의 이런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Based on the way these groups operate, our analyst says you have a 96-hour WINDOW from the time she was grabbed.
To what?
To never finding her.
(놈들이 활동하는 패턴대로라면 걔가 납치당한 이후로 골든타임은 딱 96시간이야.
그 뒤엔?
영영 못 찾아.)


buy가 '사다, 구입하다'에서 확장되어 거의 agree, accept의 뜻이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I don't buy that..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어를 학습하는 외국인 화자들은 입김을 후후 불고 악기를 부는 blow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 웬 뜬금없이 '죄를 자백하다'라는 뜻이 동음이의어도 아니고 다의어 수준에서 들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식의 의미 확장이 한국어나 영어 등 어느 언어에나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출처의 자료는 단위도 변환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기분이 참 묘했다. 호박 덩굴은 극단적으로 길게 자라면 무려 30피트(거의 9미터)까지 뻗을 수도 있댄다. 하긴, 여객기의 비행 고도는 거의 한계까지 올라가면 3만 피트를 넘긴다고 하니까..
항공이 아닌 우주까지 가야 킬로미터 같은 SI 단위가 통용되기 시작한다. 인공위성의 고도 같은 것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6 08:35 2022/02/06 08: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83

호박 이야기

1. 늙은 호박의 모양 분류

하루는 퇴근길에 집 근처 채소 가게를 보니, 호박이 좀 있었다.
단호박들이 상자에 담겨서 여러 개 진열돼 있고, 그 옆에 농구공만 하게 생긴 큼직한 늙은 호박도 '딱 하나' 외로이 놓여 있었다. "날 데려가 주세요~" 같은 눈길...

그렇잖아도 그 당시엔 호박죽이 없이 한 주를 보낸 상태였으니 이 아이를 사서 집에서 곧장 쪼개고 동지와 크리스마스용 호박죽을 쑤었다.

표면에 상처 같은 게 보여서 혹시 속에 썩은 부위가 있지 않나 염려도 했지만.. 분해해 보니 내부엔 그런 조짐이 다행히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전의 호박들과 달리, 속에는 여전히 초록색 껍질층이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죽의 색깔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내가 지금까지 실물을 봤던 늙은 호박들 중에는 제일 공처럼 둥글고 주름이 별로 없고, 별로 납작하지 않고 종횡비(?)가 괜찮았다. 무게는 3.7kg 정도 나가더이다. 모양이 저러니 속을 파내서 잭꼴랜턴 만들기에도 적합할 것이다.

(1) 저렇게 동글동글하고 주름도 별로 안 보이는 놈
(2) 그리고 적당히 납작하면서 주름도 적당히 보이는 놈
(3) 거의 약과나 타이어 모양이 떠오를 정도로 제일 납작하면서 주름도 아주 깊게 패여 있는 놈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래도 뭔가 (3)이 통상적인 맷돌호박의 범주에 가장 정확히 부합하는 놈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걸로는 대체로 (2)만 접했다. 그리고 (1)은 이번에 처음 봤다.
(1)을 조선호박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잭꼴랜턴을 만드는 데 쓰고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에 모티브도 제공한 호박도 (1)형이며, 얘 역시 서양식 호박이다. 종류가 좀 헷갈린다.

늙은 호박은 여느 작은 채소· 과일들과 달리, 상표 붙이고 포장하거나 수박처럼 손잡이 달린 그물줄로 싸서 팔지 않는 것 같다. 수박조차도 1인 가구 증가에 맞춰서 반 통씩 팔거나, 더 작게 개량된 애플수박 같은 품종으로 개량되어 팔리는 형국인데, 늙은 호박은 혼자 취급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고 취급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작은 단호박이 더 각광받고 있고, 늙은 호박은 end user 대상뿐만 아니라 즙이나 죽 형태의 가공용으로도 많이 팔리기는 것 같다.

2. 호박의 품종과 상태 분류

호박의 명칭은 품종 명칭과 상태 명칭이 섞여 쓰이는 게 개인적으로 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보통 애호박 아니면 늙은 호박으로 구분하는 편인데, 이건 품종이 아니라 상태(색깔)에 따른 분류이다. 품종으로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하다.

앞서 1에서 언급했던 둥글둥글 커다란 전통적인 호박은 '맷돌호박'이라고 불리는 편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1)~(3)을 모두 통틀어서 '일반호박'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얘는 열매가 커다랗게 맺힌 뒤에도 밭에서 여름과 가을 햇볕 쬐며 오래오래 누렇게 삭혀서.. 단풍 들듯 '늙은 호박'이 된 뒤에 수확하곤 한다. 그러면 단맛도 느껴지고 영양가도 많다. 얘는 죽을 쑤어 먹는 게 제일 일반적이다.

어지간히 잘 자라서 늙은 호박은 무게가 수 kg 이상이 넘어간다. 몹시 단단해서 잘 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수박처럼 자르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상태로 사과처럼 껍질을 도려내고 속의 내용물을 긁어내야 하니.. 해체하는 난이도를 과장 좀 보태 표현하면 무슨 가축 도축에 맞먹는다. 뭔가 느리고 시골스럽고 억척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도 늙은 호박은 그런 단단한 껍질 덕분에 상온에서 수 개월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어둡고 통풍 잘 되는 곳, 5~15도대의 서늘한 온도에서 땅이나 다른 호박에 직접 닿지 않게 보관하는 게 제일 이상적이다. 너무 온도가 낮아도 좋지 않으니,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다.

맷돌호박 말고, 오이나 가지처럼 길쭉하게 생긴 호박은 서양호박 내지 주키니 호박이라고 불린다. 늙은 호박 중에도 서양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서양호박이라는 명칭도 좀 부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얘는 그냥 초록색일 때, 즉 '애호박/풋호박' 상태일 때 얼른 수확해서 해체 따위 없이 몽땅 통째로 먹는다. (껍질이나 씨가 제대로 형성되기 전이어서 몽땅 꿀꺽 가능~)

탁탁 썰어서 조림· 볶음을 만들기도 하고, 된장국에 넣거나 국수 고명으로 쓴다. 얘를 주 재료로 삼아서 호박국을 만들기도 한다.
걸쭉한 죽으로 바뀌는 늙은 호박보다는.. 애호박이 자기 원형을 더 유지하는 형태로 먹히는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의 통념과 반대로 맷돌호박이 시푸르딩딩한 풋호박인 모양은 평소에 매체에서 구경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 상태로는 상품으로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직접 개인 텃밭에다 호박을 심어서 가꿨는데, 심기를 너무 늦게 심어서 누렇게 익기 전에 부득이하게 호박을 따 버렸을 때에나 볼 수 있다.

얘도 애호박의 일종이기 때문에 먹는 덴 아무 문제 없다. 단지, 늙은 호박만치 비싸게 팔 수 없고, 결정적으로 덩치는 큰 주제에 늙은 호박처럼 간편하게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 즉, 식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문제될 뿐이다.

또한, 주키니 호박도 오래 놔두면 저렇게 누렇게 변한다.
하지만 기왕 제일 오래 삭힐 거면.. 덩치가 왕창 커지고 양이 많아지는 맷돌호박이 더 수지맞으니 '늙은 주키니'는 보기가 힘든 게 아닐까 싶다. 이런 건 말 그대로 외국에서나 볼 수 있다.

* 단호박은 시간과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이 글에서 언급을 생략하였다.;;

3. 자이언트 호박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아프리카코끼리(육상)와 대왕고래(해상)라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열매를 맺는 게 가능한 식물은 호박이다. 수박만 해도 호박 같은 급의 슈퍼/자이언트(..) 에디션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호박은 식용으로 키운 일반적인 열매만 해도 저런데, 품종과 재배 환경 마개조를 통해 닥치고 제일 크고 무거운 호박을 만드는 게 신기록 분야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는 경남 의령에서 호박 농사를 짓는 양 재명이라는 분이다.
보도 자료를 검색해 보면 2010년에 113kg짜리 호박을 키웠고(☞ 링크),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0년엔 465kg짜리 호박을 만들었는가 보다(☞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호박을 만들려면 좀 특수한 방법으로 심고 물과 영양 공급과 온도 조절을 아주 세밀하게 최적화해 줘야 된다.
그리고 얘는 크기만 엄청 클 뿐, 맛이나 영양은 별로 없고 그냥 수분뿐이기 때문에 사람이 먹을 물건은 못 된다고 한다. 그냥 장식· 관상용인 셈이다. 보면 색깔부터가 빠져서 허옇다..;;

F1 경주용 자동차는 시동 걸고 운전하는 방법이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정작 일반 공도는 제대로 주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주 특수한 용도에 너무 맞춰져 버려서 범용성이 떨어진 셈이다.

4. 멧돼지에 의한 피해

멧돼지가 밭에 침입해서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사건이야 전국적으로 한두 번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보통은 고구마나 옥수수의 피해가 많은 것 같으나.. 보도자료를 검색해 보면 나무에서 열리는 사과, 여름 과일인 수박, 심지어 벼나 콩까지도 당하는가 보다.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시 호박은..??? 멧돼지가 호박도 먹을까?
유의미하게 검색돼 나오는 건 아마추어 개인용 텃밭에서 발생한 다음 두 건인 것 같다. (☞ 2020년, 2021년) 호박밭이 멧돼지한테 털리면 대략 이런 꼴이 나는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라니는 그 단단한 늙은 호박을 저렇게 깨 부숴서 먹지 못한다. 그러니 저건 빼박 멧돼지의 소행이라고 한다.
2021년자 블로그의 경우, 근처의 다른 글을 보면 심지어 진흙 목욕을 한 흔적까지 있다고 하네.. ㄲㄲㄲㄲ

애호박도 아니고 그 껍질 단단한 늙은 호박을 주둥이의 엄니로 부숴서 잘 쳐먹었는가 보다. 변두리의 과육 부위보다는 중심부의 씨앗과 펄프 면발을 먹은 건지..?

5. 호박 내부 발아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호박 열매는 시퍼런 풋호박 애호박 상태일 때 따면 열매를 몽땅 다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잘 익은 늙은 호박은 껍질이 단단해지고 중심부에 딱딱한 씨앗들도 형성됐기 때문에 통째로 먹을 수 없다. 요리하려면 껍질을 벗기고(가죽) 속을 긁어내서(내장) 가장자리의 과육 부분만 추출해야 한다.

호박 열매가 익으면 중심부는 과육이 아니라 뭔가 펄프(?), 촉수 같은 축축한 재질로 바뀌면서 그 공간에 씨앗이 들어선다.
호박을 잘라서 단면을 보면.. 씨가 들어있는 중심부는 생각보다 징그럽게 생겼다. 뭔가 저그 건물의 입구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수박과 달리, 씨가 있는 구획과 과육이 있는 구획이 구분되어 있으니 인간의 입장에서 먹기는 더 편하다.

3kg 남짓한 늙은 호박 한 덩이 안에 씨앗은 거의 200개에서 500개 가까이 들어있다고 한다. 어쨌든 수십 개는 절대 아니고, 수백 개 단위이다. 세포 분열의 위력이 이런 것이군..

늙은 호박은 단단한 껍질 덕분에 상온에서도 몇 달 정도 보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오래 보관 가능한 건 아니다. 겉의 과육이 아니라 축축한 중심부부터 곰팡이 피고 상하고 썩을 수 있다고 한다. 내부가 썩는 주된 징조 중 하나로는 열매의 내부와 연결되어 있는 꼭지-줄기의 연결이 갑자기 끊어지는 거라고 한다. 마치 낙과될 때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심지어는.. 호박 안에서 호박씨가 스스로 싹이 터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수분과 영양소가 있으니 여기가 땅 속이라고 판단했는가 보다.
하지만 싹을 틔워 봐도 호박 안은 어두컴컴 암흑천지일 뿐이니, 천상 콩나물 수준으로밖에 자라지 못하고 그걸로 아웃이다. 뭐, 그래도 이런 일은 매스컴을 탈 정도로 극히 드물게 발생한다.

그 가녀린 호박 덩굴 줄기의 말단에서 벌어지는 일은 참 오묘하기 그지없다. 식물은.. 씨앗도 그렇고 수확된 열매도 그렇고 산 거랑 죽은 것 경계가 참 애매한 거 같다...;;
그리고 호박은 영양과 온도 같은 환경적인 한계가 없으면 이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으며, 덩굴이 몇 미터 길이까지 뻗을 수 있을까..?? 이것도 노무노무 궁금하다.

이상이다.
호박은 꼬불꼬불 덩굴과 노란 꽃, 둥글둥글 꿀단지처럼 생긴 열매가 참 매력적인 채소이다. 겨울 동안 다들 호박 많이 드시기 바란다. ^^ 본인은 무슨 호박 농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다.
검증된 실험까지는 아니지만.. 요 한 달간 체중이 약간 줄고 살이 빠진 게.. 아침과 저녁에 호박죽을 먹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Posted by 사무엘

2022/01/09 08:34 2022/01/09 08:3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73

연말 근황과 소감 -- 호박과 백신

2021년이 벌써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는 호박에 멧돼지에, 여친 등.. 내 관심사가 여기저기로 너무 분산돼 있었다. 그래서 정작 직장은 그리 심하게 바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 속도는 역대 최저를 찍었다.
그러다 뒤늦게 허겁지겁 코딩이 진행 중이고 이 달 말쯤.. 성탄절쯤에 다음 버전 10.4를 공개하려 한다.

오늘은 그 전에 올해의 마지막 근황, 일상, 생각을 한데 모아서 남기도록 하겠다.
글을 정리해 보니 호박 얘기와 우한 괴질 백신 얘기로 주제가 요약됐다. 서로 완전 무관하고 이질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글을 분리하기는 귀찮기도 하고, 또 2021년 12월경의 내 일상이라는 일말의 공통점이 있으니 한데 남겼다.

1. 일상

겨울이 되니 개인적인 호박 농사는 완전히 끝났다. 직접 키워서 수확한 호박도 이미 다 먹어치운 지 오래다.
하지만 호박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어서 이젠 인터넷으로 늙은 호박을 몇 개 더 구입했다. 그걸 혼자 운전할 때도 갖고 다니고, 캠핑 때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든든하다. 이 호박 한 덩어리가 내 노트북 PC보다 더 무겁다.
이렇게 한두 주 동안 갖고 다니다가 그 뒤엔 월동 몸보신용으로 죽 쑤어 먹곤 했다.

더 오래 신줏단지처럼 내 곁에 놔두고 싶지만.. 그러다 속이 언제 상할지 몰라서 한없이 오래 놔 두지는 않았다.
지금 호박 내부가 아직 멀쩡하고 더 놔둬도 되는지, 아니면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이 됐으니 당장 쪼개서 먹어야 되는지를.. 초음파나 X선 같은 장비로 비파괴 검사를 통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 몸 속도 산 채로 들여다보는데 호박의 내부야 기술적으로는 당연히 가능하지 않겠나?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월 말까지 꽤 춥더니만 정작 12월 초에는 낮 기온이 10도 부근까지 올라가고 밤에도 기온이 꽤 높고 포근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예전 같은 시원한 냉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이런 밤엔 당장 텐트를 들고 바깥 아지트로 가서 심야 연구실을 꾸몄다.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서.. 이렇게 세팅하니 확실히 덜 외롭다. ^^;;

2. 호박죽

드디어 멧돼지 잡는 날..;; 아.. 아니, 호박 잡는 날이 찾아왔다.
내 방, 내 텐트, 내 차에서 한동안 본인과 같이 지내던 호박이 드디어 맛있는 호박죽으로 바뀌어서 주인님의 배 속에 들어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같이 있어서 그동안 즐거웠단다. 속에 씨들은 고이 보관했다가 또 밭에다 뿌려 주마~~ ^^;;
새마을호, 지하철 같은 철도 이후로.. 내가 이 나이 돼서 또 이 정도로 꽂히는 게 생길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여러분도 단호박 애호박 늙은 호박 등등.. 호박을 많이 많이 사랑하고 드셨으면 좋겠다~! ^___^

이제는 성경의 하박국서조차 다시 보게 된다. (호박국... ㅋㅋㅋㅋㅋㅋㅋ)
마침 공교롭게도 이 책은 끝부분에 자기 농사가 싹 다 망하더라도 하나님 생각하며 즐거워할 거라는 찬양도 있다.

호박죽은 불그스레 누런 게 카레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침 꽃도 노랗네..
온통 초록색이다가 어쩌다가 여러 박들 중 호박만 저렇게 붉거나 누렇게 변하는지 모르겠다. 그 노란 성분이 체내에서는 비타민 A로 바뀌어 흡수된다고 한다.

단, 애호박 말고 늙은 호박은 단단한 껍질 덕분에 상온 보관성이 좋은 대신, 먹기 위한 분해 처리가 좀 손이 많이 간다. 커다란 호박의 표면에서 저렇게 일일이 껍질을 벗기는 게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내가 앞부분에서 괜히 동물 잡는 것에다가 비유한 게 아니었다.

이 때문에 요즘은 늙은 호박보다 더 작고 부담없이 까서 먹을 수 있는 단호박이 건강 식품으로서 더 인기라고 한다. 죽도 단호박을 쑤어 먹는다. 2000년대 이후로 늙은 호박은 재배와 생산량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사실, 호박을 좋아하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늙은 호박은 뭔가 시골, 노인스러운 느낌이 많이 든다. ^^

3. 호박 2세

올해 본인에게 풍성한 수확을 안겨 준 호박을 기억하며.. 실내에서 호박씨를 몇 개 심어 봤다. 이 계절에 호박을 밖에서 키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랬는데 역시 싹이 났다. 몇 주 놔두니 떡잎은 사라지고 본잎이 쭉쭉 돋아나는 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가녀린 줄기가 자라고 또 자라서 그 호박을 생성하는 덩굴이 된다는 게 참 실감이 안 간다.
실내는 따뜻하고 관리하기 쉬운 건 장점이지만.. 야생만치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없고 뿌리를 한없이 깊고 많이 낼 수 없으니 다른 단점도 많을 것이다. 이 상태로 얼마나 어디까지 자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꽃이 필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꽃이라도 피면 꽃가루받이는 수동으로 해 줘야 할 듯하다.

4. 백신 패스

그나저나, 우한 괴질이 전세계에 창궐한 지도 만 2년이 돼 간다. 그런데 이놈은 끊임없이 자가 변이하면서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신규 확진자 수가 지난 11월 중순쯤엔가 3천 명 돌파했는데, 11월 2x일쯤엔가 4천 명을 넘어섰다.
11월 말~12월 1일엔 5천 명 돌파. 거의 1주일 간격으로 1000명씩 증가해 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이번 주엔 설마 6천 명을 찍으려나, 설마 더 증가할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이번엔 7천을 넘겨 버린 거다. 경이롭다. >_<

지난 7월에 델타 변이 때문에 낙관적인 분위기가 쏙 들어갔던 것처럼, 11월부터 슬로건으로 내걸던 'with 코로나 - 일상 회복' 이 말도 어느 샌가 쏙 들어가 버렸다.
지하철 새벽 1시 연장운행도 재개하는 거 같더니 또 버로우 탔나 보다.

이 정도면 진짜로 기약 없는 전선 고착 장기전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100여 년 전, 1차 세계 대전 때만 해도 장병들은 "이 해(1914년)가 가기 전에 전쟁이 끝나고 우린 따뜻한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랬으니 말이다. 참호전 같은 걸 상상이나 했겠냐..?

허나, 인제 와서 예전처럼 또 무식하게 다 틀어막고 교회 예배 인원 제한 이 짓을 하기엔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크고 가오도 안 설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으니 나라에서는 10대 어린애들한테도 반강제로 백신 접종을 밀어붙이고, 백신 미접종자를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차별하려는 것 같다.

1년 전쯤엔 "어서 백신이 개발되어서 질병이 종식되고 예배가 회복되길" 이게 교회에 따라서는 공동 기도 제목이기도 했었다. 기억하는 분 계신가?

본인은 백신 무용론자 반대론자가 아니다. 무슨 백신 666이니 제약회사의 음모니 따위의 소리에는 지금까지 전혀 동조한 적이 없었다.
허나, 백신을 2차까지 다 맞은 사람이 전국민의 80%에 달하고.. 사회활동 하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다 맞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부작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도 돌파감염이니 확진자 수가 저 지경인 것은, 명백히 백신이 위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까지 백신 안 맞은 사람을 탓하고 족칠 일이 아니어 보인다~!

그래서 백신을 옹호하는 최후의 변명이 "(집단 면역 효과가 미미해서) 괴질에 걸리더라도 위중증으로 안 가게 하고 사망률을 낮춘다"인 걸로 난 알고 있다.
그 말이 맞다고 치자. 그건 결국은 주변 사람을 위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자기한테 좋다는 얘기잖아?
자동차 보험으로 치면 필수인 '대인 대물'이 아니라, 옵션인 '자차'의 영역이라는 거다.

그럼 자기한테 좋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이 더 무서워서 난 못 맞겠다, 특히 어린 10대 애들한테는 불안해서 접종 못 시키겠다" 이런 선택도 존중해 줘야 된다는 것이다.
이건 의약학 바이오 보건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라고 생각된다.

요컨대 우한 괴질 백신이라는 건 효과가 만능이 아니고 심지어 여느 백신의 개발 프로세스만치 오랫동안 충분한 실험과 검증을 거쳐서 만들어져 나온 건 아니다. 물론 사람 몸 속에 들어가는 약품이니만큼 최소한의 안전도 충족되지 않는 막장 상태도 아니긴 하지만, "10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도로 신중하게, 모든 뒷감당을 국가가 몽땅 책임진다는 퀄리티로 접종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한 괴질이 저렇게 변모하고 있으니, 그에 대응하는 백신도 무슨 컴퓨터 소프트웨어처럼 계속해서 업데이트 받아야 하는 형태가 돼 간다.;; 백신을 여러 차례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질병이 우한 괴질만 있는 건 아니니 이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의 불신이나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거기까지도 본인은 수긍을 한다.

하지만 우한 괴질이 이 정도로 치명적이고 위험한 병인지, 이 정도로 완성도가 2% 부족한 백신을 꼭 다 맞게 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병인지는.. 난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실감을 잘 못 하겠다. 백신 맞으라고 다그치는 방역 당국 관계자와 걔네들 가족부터 공개적으로 백신 꾸준히 맞는 걸 인증해 보이기라도 해야 의혹과 불신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09 08:35 2021/12/09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62

호박 재배 후기

올해는 지난 오뉴월쯤부터 11월 초까지 반 년이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텃밭의 호박들이 본인에게 굉장한 기쁨과 행복과 위안과 애틋함을 선사해 주었다. 등산, 캠핑, 그 다음으로는 농사라니.. 원예가 사람의 정서와 심성에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호박 농사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이 블로그에서 개인 근황을 전할 때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마지막 근황글 이후인 10월부터 있었던 일만 추가로 전하도록 하겠다.

10월 초까지 늦더위가 계속되고 비도 종종 내리니 호박은 계속해서 잘 크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월 중순, 드디어 기온이 뚝 떨어지고 기습 초겨울 한파까지 찾아오자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금까지 밭에서 영글고 있던 호박들을 몽땅 한꺼번에 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이 아이들이 올해의 사실상 마지막 텃밭 소출이다.
다들 길이 20cm 부근, 무게 2~3kg대의 고만고만한 놈들이었다. 4kg이 넘는 우량아 내지 누렇게 변한 놈은 딱히 없었다.
주변 잡초들의 끊임없는 겐세이-_-, 물과 영양, 날씨(계절이 바뀌어서 예전만치 따뜻하지 않음) 등 여러 변수 때문에 열매가 지난 9월 동안만치 쑥쑥 자라지는 못한 것 같다.

호박들을 심은 시기가 균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7월부터 10월까지 거의 30여 개의 호박을 얻었다. 그 중 1/3 정도는 단호박이고, 나머지는 일반 호박이었다.
딸 때 줄기/꼭지 부분을 길게 남겨 두는 게 뭔가 뿔처럼 멋있어 보인다.

제일 먼저 심은 놈은 열매를 좀 맺더니 9월쯤부터 이미 잎이 많이 시들고 빠지고 비실비실해지면서 수명을 다해 죽었다. 최후까지 남은 건 앙상한 덩굴 줄기뿐.. 아 그래서 호박을 '한해살이풀'이라고 부르는구나..;; 얘는 차라리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호상(?)을 맞이한 셈이었다.

하지만 호박 열매는 기대하지 않고 잎만 따 먹을 생각으로 여름에 늦게 추가로 심었던 애들이 문제다. 아직 꽃도 피고 잎도 시퍼런 편인데 계절이 바뀌면서 고생하게 됐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이젠 벌도 안 날아오고 새로 생기는 잎이나 새로 피는 꽃이 크기가 확 작아졌다. 심지어는 예전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꽃이 신속하게 져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생장이 전반적으로 느려지고 작아지고 위축됐다.

정말로 아무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거면 별 미련이 없는데.. 그래도 일부 암꽃 아래의 동그란 씨방 부위가 좀 부풀어 있는 건 어째 살릴 수 없을지, 잎과 줄기에다가 핫팩(!!) 같은 거라도 얹어서 좀 따뜻하게 할 수 없을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이 바닥에다 비닐하우스 온실 같은 걸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통 호박 암꽃은 수꽃보다 훨씬 드물게 등장하는데.. 가을이 되자 호박들이 더욱 종족 보전의 욕구가 생겼는지, 이렇게 씨방과 열매가 5개씩이나 맺히는 경우도 있었다.

10월 기습 한파를 겪은 직후에는 호박들이 말로만 듣던 냉해라는 것을 입었다. 잎이 평범하게 누렇게 혹은 붉게 시들고 말라 죽는 게 아니라, 짙어지고 시커매지는 건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동상의 식물 버전인 듯..;; 그래도 그 전부터 상태가 안 좋고 어차피 수명이 다해 가던 잎이 그렇게 되는 것의 비중이 컸다. 그 뒤에 기습 한파는 11월 중순에 또 찾아와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한여름에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갔을 때는 얘들도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가 밤이 돼서야 다시 탱탱해지는 것 같더니..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바뀐 것이다. 더위도 괴롭고 추위도 고생스럽다.;;
물론, 일반적으로 냉해라고 하면 봄에 농사 초기에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추위를 가리킨다. 늦게 심은 한해살이풀이 저온장해를 당하는 이런 상황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온도와 관련해서 본인을 추가로 의아하게 한 것은 식물의 생장뿐만 아니라 수확한 열매의 보관이었다. 본인은 완전 식물알못 농사알못이기 때문에 과일· 채소 같은 건 무작정 냉장 보관하는 게 왜 좋지 않은지를 잘 몰랐다.

수확돼서 줄기에서 잘려 나온 열매는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부적으로 호흡을 하고 반쯤 생체 같은 면모를 여전히 지닌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저온이면 열매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품질이 안 좋아진다고..

이런 이유 때문에 바나나는 냉장고에 놔 두면 껍질이 시꺼멓게 변한다고 한다.
귤은 시퍼럴 때 따 놓으면 유통되는 과정에서 알아서 누렇게 변하게 된다. 호박 역시 조건이 잘 맞으면 수확된 뒤에도 알아서 늙은 호박으로 바뀌어서 장기 보관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없는 채로 수확된 호박은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가 1~2주 내로 빨리 먹어야 한다.

어떤 원리로 저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단풍만큼이나 신기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애초에 식물은 종자라는 것부터가 영락없이 무생물처럼 생긴 주제에 땅에 심으면 자동차 시동 걸리듯 싹이 난다. 파의 경우, 시장에서 파는 걸 사 와서 뿌리 부분을 화분의 흙에다 꽂아 놓으면 쭉쭉 자라기도 한다.

물론 그런 씨앗을 굽거나 쪄 버리면 완전히 죽어서 발아 능력을 상실하겠지만.. 식물은 “당장 동물 같은 물질대사를 하지 않지만 살아는 있는 상태”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무슨 바이러스도 아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박을 한꺼번에 수확한 뒤, 본인의 집에서는 며칠 동안 호박 파티가 벌어졌다. 찜, 전, 볶음/조림, 국, 죽 등 별별 형태로 요리해서 다 먹었다. 잎도 잔뜩 따서 고기와 함께 쌈 싸 먹었고.. 30여 개의 호박 중에 딱 하나만이 1개월이 넘도록 누렇게 장기 보존 숙성 중이다.

이 시점에서 이런 의문이 문득 들었다.
다른 과일이나 채소에는 내가 이 정도로 끌리지 않았는데 왜 하필 호박에 대해서만 이런 애틋한 감정까지 갖게 된 걸까? 호박이 뭐길래..?? 스스로 생각한 답은 이렇다.

(1) 열매가 큼직하고 묵직한 한편으로, 정감있고 귀여운 모양이어서 동심(?)과 잘 어울린다. 꿀단지처럼 생기기도 했고 다른 박과는 달리 누렇게 익기도 하고.. 왜 애꿎은 호박이 못생긴 얼굴의 대명사가 됐나 모르겠다.
수박은 그냥 단순한 공 모양이고 일반 박은 말 그대로 바가지 같은 모양인데, 호박은 납작하게 옴푹 패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모양이 또 있다.

(2) 호박은 여느 나무나 풀과 달리 덩굴이 길쭉하게 마구 솟아난다. 특유의 노란 꽃도 그렇고, 다른 채소들과 달리 그 커다란 열매가 누렇게 익는 것도 뭔가 시골 같은 느낌이 든다.
자그마한 단호박이 아니라, 시골에서나 보던 저런 커다란 맷돌호박이 텃밭에서 직접 열리는 걸 보고부터 개인적으로 눈이 뒤집힌 것 같다.

(3) 호박 덩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나면.. 이놈을 처음에 심어서 뿌리가 있는 지점이 어딘지도 제대로 모르는 지경이 된다. 물을 줘도 뿌리 쪽에 집중적으로 주고 싶은데 이거 참...
그리고 열매가 도대체 어디에 맺힐지 알 수 없다.
덩굴을 뒤지다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구석에서 큼직한 열매를 짠~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집앞 편의점까지 모험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자기 텃밭에서 과장 좀 보태면 "심봤다"가 가능한 작물이 호박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사랑스러운 호박들은 자기가 심긴 곳에서 묵묵히 자라서 신이 내려 주신 본능인 “생육하고 번성하라”를 최선을 다해 이행했다. 그렇게 인간에게 유익한 호박 과육을 남겨 주고, 속에는 또 번식을 위한 씨를 잔뜩 박아 넣었다. 아아~ 잘 익은 늙은 호박 한 덩어리 안엔 씨가 몇십 개 정도가 아니라 최하 100개 이상.. 거의 200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니.. 죽은 덩굴이나 낙과한 열매는 무덤 만들어서 묻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호박 xx호, 한날 한시에 열매 맺고 주인에게 큰 기쁨을 준 뒤 xx월 xx일 여기 잠들다 / 잠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다”

호박뿐만이 아니다. 겨울철에 멧돼지도 얼마나 배가 고프고 힘들었으면 민가까지 내려와서 헤매다가 다치고 죽는 걸까?
사람이 돈 벌기 힘들고 애 낳고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런 동식물들도 성경의 롬 8:22가 말하는 고통과 신음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나도 불평하다가도 일말의 감사와 사랑이란 걸 느끼고, 이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까지 받는다.
올해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토대로 내년에는 기회가 된다면 더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호박을 키워 보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캠핑 갈 때도 우리 귀여운 아이들을 종종 챙기기 시작했다. ㅎㅎ 작업 도구도 아니고 보온 장비도 아니면서 무게만 7kg 가까이 차지하는 payload이지만.. 그래도 옆에 이렇게 두니까 좋아서 말이다. 저 늙은 호박 한 덩어리가 노트북 컴터보다 더 무겁다.. ㄲㄲㄲ)

올해의 경험을 정리해 보니, 호박 정도면 까다롭지 않고 아무 데서나 금방 잘 자라고 지력 소모도 심하지 않으니 키우기 쉬운 편에 든다. 단지, 큼직한 열매를 많이 수확하려면야 잔가지와 잎을 치고 잡초 없애는 정도의 관리는 해 줘야 한다. 그리고 타 식물에 비해 이상 기온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듯.. 30도 이상의 고온이나 한 자릿수대의 저온에는 노출되지 않게 해 주는 게 좋아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5 08:36 2021/11/15 08:36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54

1. 외국을 나타내는 한자 접사

한(韓 한복, 한류, 한식, 한옥, 한의원... 3인칭)이나 국(國 국악, 국궁, 국어, 국사, 국산... 1인칭)은 뭔가 우리 것, 고유한 것을 나타내는 접사 역할을 한다. 어떨 때 '한'이 붙고 어떨 때 '국'이 붙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원칙이 없는 것 같다. 또한, 요즘은 알파벳 K도 K방역, K팝... -_- 이런 식으로 비슷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이와 달리, 나라 이름과 별개로 외국을 나타내는 한자 낱글자도 있다.

(1) 양(洋): 우리 전통 문물이 아닌 서양 문물을 포괄적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양복, 양놈-_-, 양잿물, 양주, 양담배, 양말, 양동이 같은 여러 파생어들이 존재한다.
참고로, 양말 할 때 '말'은 '버선 말'(襪)인데, 한국어에서 사실상 양말에서밖에 쓰이지 않는 굉장히 생소하고 난해한 한자로 보인다. 마치 '가방/구두'가 외래어라는 관념이 거의 없어졌고 '무덤/주검'을 '묻/죽+엄'이라고 쪼개서 생각하는 관념이 거의 없어진 것처럼.. '양말'은 '양+말'이라고 쪼갤 여지가 거의 없어져 있다. '양복-한복'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2) 왜(倭): 일본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시대의 트라우마가 워낙 심한 관계로 왜색, 왜놈, 왜구 등의 부정적인 심상이 압도적이다. 단, 일본 음식은 어째 나라 이름이 붙어서 '일식'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3) 호(胡): 중국 중에서도 특히 청나라를 가리킨다. 호떡, 호주머니 같은 의외의 단어가 원래 중국물 출신이어서 그런지 호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채소 '호박'은 한반도 유래 시기와 경로를 추적해 보건대 胡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단, 이 어원이 국어사전에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호빵'은 호떡이나 胡와 관계 없는 상표명이다.

2. 어휘

난 개인적으로 덩굴채소 박이 '朴'에서 유래된 한자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수박'의 수는 명백히 水일 테니 '박'도 한자어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그러고 보니 덩굴 채소를 글자로 표현하려면 부수가 草 계열이어야지, 木이 배당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채소 '박'은 순우리말이고, 보석 호박 amber만이 한자로 등재돼 있다(琥珀). 걔는 보석이니 글자의 부수는 다들 玉이다.
보석 호박과 늙은 호박이 모두 주황색 계열인 건 꽤 흥미로운 우연인 것 같다.

그 대신 朴은 '후박나무'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울릉도의 유명 특산물로 오징어뿐만 아니라 호박엿이 전해지는데.. 이것도 '후박엿'이라는 전혀 다른 재질의 엿이 잘못 전해진 거라고 한다. 호박으로 죽은 쑤어 먹지만 웬 엿까지 만드는 걸까..??

그런데 원래 존재하지도 않던 호박엿이 워낙 유명해지니, 울릉도에서는 뒤늦게 진짜로 호박 성분이 들어간 엿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라도에 뜬금없이 짜장면집들이 잔뜩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3. 성경의 용례

난 어떤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생기면 이에 대해서 어학 사전과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관련 최근 신문 기사를 찾아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성경에 비슷한 용례가 있는지도 찾아본다.

성경에는 덩굴 뻗는 박 종류 채소 gourd가 딱 두 번 나온다.
먼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그늘을 제공해 줬다가 싹 걷어가서 현타를 선사하는 교보재로 사용하신 그 덩굴이 대표적이며.. (욘 4)
열왕기하 4장에서 국을 끓여 먹었다가 사람들이 배탈이 났고 엘리사가 정체불명 마법의 가루를 넣어서 해독한 채소도 요런 야생박이다. (왕하 4:39-4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담으로, 성경에서 그냥 돼지(pig, swine) 말고 야생 멧돼지(boar)는 딱 한 번 나온다. 흥미롭다. "숲에서 나온 멧돼지가 그것을 피폐하게 하고 들의 들짐승이 그것을 먹어치우나이다" (시 80:13)
멧돼지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작물을 파헤쳐 먹으며 민폐 끼치는 짐승이었는가 보다. 저기서는 타겟이 포도나무이다.;;

vine은 덩굴이라는 큰 뜻이 있으면서 통상적으로 더 좁은 포도나무(grapevine)라는 뜻을 갖는 것 같다.
earth (땅 - 지구), man (사람 - 남자), day (날 - 낮)처럼 영어에는 이런 다의어가 여럿 있는 것 같다. 한국어는 '이름'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성명 full name 또는 성을 뺀 first name만).

4. 품종

사람이 어떤 물건이나 분야에 덕질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생기는 변화가 뭐냐 하면, 종류를 세밀하게 분간하는 눈썰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가령, 다 똑같은 자동차나 열차, 총기 따위가 아니다. "요런 건 언제쯤 어느 제조사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드라마에 등장하는 건 고증오류이다, 저 장면에서는 요런 게 들어가는 게 맞다" 어쩌구저쩌구를 논하게 된다.

그런 것처럼 호박은..?
작고 짙은 녹색인 (1) 단호박이 있고, 초록색에 가지처럼 길쭉한 (2) 애호박류가 있다. 얘들은 누렇게 변색되지 않는다.
그 반면, 제일 큼직하고 납작 둥글고 누런 늙은 호박으로 바뀌는 그 일반적인 호박은 (3) 맷돌호박 또는 청둥호박이라고 불린다.
본인은 이 개념이 최근에야 제대로 정립됐다. 그리고..

(1) 맷돌호박은 단호박 애호박과는 달리, 열매가 맺힌 뒤에도 한참을 놔둬서 늙은 호박으로 누렇게 숙성된 뒤에 수확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맛도 좋고 무엇보다 개월 단위로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어쩐지 맷돌호박은 그 모양으로 초록색인 모습 사진은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좀체 나오질 않는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돌호박이 제 모양이 형성되기 한참 전에, 아직 시퍼렇고 작고 동글동글 단지처럼 생겼을 때 미리 따기도 하는가 보다. 얘는 '풋호박'이라고 한다. 내가 올해 땄던 대부분의 일반 호박(?)은 이런 풋호박 형태였던 셈이다.
풋호박은 빨리 생산되긴 하지만 늙은 호박보다 유통기한이 훨씬 짧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풋호박은 뭐고 애호박은 뭔지 관계가 헷갈리는 편이었다.

(3) 끝으로, 똑같이 누래지는 일반 호박이라도 동양계와 서양계는 외형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서양 호박은 동양 호박보다는 덜 납작하고 가로 세로 종횡비가 좀 더 정사각형에 가까운 것 같다. 매끈한 공에 좀 더 가까우며 사람 머리통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얘에다가 눈코입 구멍을 내서 Jack-o'-lantern이라는 것도 만들 수 있다. pumpkin이라는 영어 단어는 바로 이런 호박을 가리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박의 세계란 게 이런 것이구나..
그래도 개인적인 생각은 사랑스러운 호박 갖고 하필 괴물 얼굴이나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2 19:34 2021/11/12 19:34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53

올해의 초가을 근황 PART 1/4 -- 호박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일교차가 커서 심야와 아침에는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여전히 덥고 반팔 차림이 유효하다. 그래도 9월 말이 아니랄까 봐, 이제 낮기온이 30도를 넘어가지는 않고 밤 기온은 확실하게 20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은 심한 기복이 없이 무난히 잘 지난 것 같다.
덥긴 했지만 2018년 폭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초여름 장마가 너무 메롱이었던 게 아쉽지만, 그래도 잊을 법하면 비가 종종 내려 줘서 도저히 못 견딜 가뭄을 겪은 것도 아니었다.

또한, 장마건 태풍이건 작년 같은 정신나간 물난리도 전무했다. 이 정도면 올해는 날씨 하나는 확실하게 무난한 평타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올해는 신이 인간에게 전염병 재해와 날씨 재해를 동시에 한꺼번에 내리지는 않으신 것 같다.

추석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 가니, 앞으로는 몇 차례에 걸쳐 소소한 근황과 관심사 얘기, 그리고 추석 때 다녀온 곳 얘기를 늘어놓도록 하겠다. 호박이랑 돼지 얘기, 텐트 얘기 등이 나올 것이다. 특히 취미로 알음알음 시작한 호박 농사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쏠쏠해서 이 얘기부터 먼저 하고자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티로폼 상자에서 외로이 자라던 호박 덩굴을 모처의 텃밭에다 옮겨 심고, 물 주고 거름 주고 친구들도 더 붙여 줬다.
그랬더니 언제부턴가 잎과 줄기만 생기는 게 아니라 꽃이 쓱 피었다. 밤에는 펜촉 같은 꽃대가 삐죽 솟더니만 그게 아침엔 활짝 피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아침마다 꿀벌도 날아와서 꽃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 뒤 암꽃이 진 자리에 호박 열매도 하나 둘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따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만 10여 개가 넘으며, 낙과는 그보다 더 많았다.
심지어 좀 서글픈 일이지만 서리· 절도로 잃은 것도 최소 대여섯 개는 된다. 이건 그래도 자연재해 내지 병충해로 식물 자체가 통째로 소실되거나 죽은 것보다는 나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냥 동그란 양파, 사과, 배 크기를 넘어 진짜 둥글동글하고 윗부분이 살짝 패인 호박 특유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다. 저 줄기는 무슨 전자 기기의 케이블도 아닌데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서 열매가 부풀어오르고 커지는 걸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대 길이가 14cm 남짓하던 놈이 1kg을 좀 넘더니, 18cm 정도인 얘들은 2kg을 훌쩍 넘어서 2400g쯤 한다.
근래에는 최대 길이가 27cm에 달하고 무게가 4.7kg이나 되는 대박 월척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다.
잘 자라 줘서 고맙다~! ^^ 호박이 채소 호박이 아니라 보석 호박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본인이 딴 호박들의 길이(cm)-무게(g) 상관관계를 그래프로 그려 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박은 유전자 조작.. 없이도 지구상의 식물들 중 가장 거대한 열매가 맺히는 게 가능한 식물이기도 하다. 수백 kg에 달하는 슈퍼호박도 있으니까..

식물은 그저 물과 비료와 햇볕만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꽃가루도 묻혀 줘야 열매가 맺힌다는(충매화) 너무 당연한 원리를 비교적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꽃가루를 묻혀 주는 작업의 효율 면에서 곤충을 능가하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호박꽃에 암꽃과 수꽃이 차이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됐다. 그리고 그냥 암수가 아니라, 뿌리가 다른 덩굴/그루 출신의 암꽃과 수꽃이 수정돼야 열매가 맺힌다는 것도..

9월이 되니 식물들이 날씨가 추워지고 자기 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끼고 더 열심히 열매를 맺어서 씨를 남기려는 것 같다. 한여름일 때보다 호박이 훨씬 더 많이 맺힌다.
단, 여름엔 좀체 볼 일이 없던 흰가루병 같은 병충해도 더 늘어난 것 같다. 밤에 날씨가 쌀쌀해져서 그런지, 잎들이 수명이 다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평범한 누런색이 아니라 이상한 색깔과 형태로 말라죽는 잎이 심상찮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나저나 수박은 시뻘건 내부 중심 위주로 먹고, 껍질은 전혀 먹을 수 없어서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호박은 반대로 씨가 들어있는 중심은 못 먹고, 껍질을 포함한 가장자리 위주로 먹는다는 차이가 있다.

부모님이 요리를 하시는 걸 보니, 호박은 상태에 따라 요리해 먹는 형태가 다양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작은 단호박은 노란 가장자리를 쪄서 고구마 먹듯이 먹는다.
  • 1kg 후반대 정도의 덩치는 돼야 중심부까지 살이 좀 차고, 썰어서 국이나 전처럼 초록색 과육이 보이는 형태로 요리 가능한가 보다.
  • 그러다가 누런 늙은 호박은 단맛이 나서 그런지, 그 이름도 유명한 호박죽이라는 노랗고 걸쭉한 즙을 만드는 데 즐겨 활용된다.

이런 바리에이션들이 전부 같은 품종인 채소의 상태 차이로부터 유래된다는 게 솔직히 지금까지 별로 실감이 안 갔었다. 그러고 보니 동그란 전통 호박도 있고, 가지처럼 생긴 길쭉한 서양 호박도 있는데 걔들은 식품으로서 어떤 차이가 있는 거지..??
뭐, 늙은 호박은 누런 주황색으로 바뀌니 색깔이 얼추 '호박색'과 비슷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28 08:35 2021/09/28 08: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937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659316
Today:
552
Yesterday: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