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합성

대변은 소변과 달리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배설물이 아니라는 건.. 뭐 초· 중학교 수준의 상식이다.
그 뒤 생물에 대해서 공부를 쪼금 더 하면.. 동물이 아닌 식물에 대해서도 직관적이지 않은 의외의 사실을 하나 배우게 된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이산화탄소(+ 빛, 물)를 흡입하고 산소와 양분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 산소 O2는 이산화탄소 CO2를 구성하던 산소가 아니라는 거. 물을 구성하던 산소이다.

길바닥에 채일 정도로 널리고 흔해 빠진 잉여 잡초라 할지라도, 초록색 잎이 달린 놈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작용을 하는 최첨단 생체 기계이다. 물과 공기(이산화탄소)와 햇볕만으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 주는 생체 기계가 없다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당연히 생존할 수가 없다.
물론 잡초는 그 생산량 규모가 거의 자가생존이나 가능한 정도이고, 농작물 대비 극히 보잘것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식물의 잎이 누렇게 시드는 건 그 첨단 생체 기계가 녹슬고 고장 나서 광합성을 못 하게 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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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은 명반응과 암반응이라고 나름 프론트 엔드와 백 엔드의 구분까지 있다. 프론트 엔드에서 물과 빛이 쓰이고(산소 생성), 백 엔드에서 이산화탄소가 동원된다(포도당.. 탄소 고정!). 백 엔드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프론트 엔드의 결과물(ATP, NADPH)이 필요하다.

암반응의 구체적인 원리는 무려 20세기가 돼서야 규명됐고, 특별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신학의 칼빈주의...가 아니고 '칼빈 회로'라고 불린다.
글쎄,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 중에서 디젤만이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것처럼.. 광합성은 프론트와 백 중에서 백 엔드에 대해서만 사람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열기관 쪽에서는 '카르노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한데.. 순환이건 회로건 영어로는 똑같이 cycle이다.

암반응 원리를 규명한 멜빈 캘빈은 그 공로로 196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바로 이듬해 1962년에 왓슨과 크릭이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걸 생각해 보자. DNA 구조 발견하고서 10여 년 만의 일이다.

통상적으로는 물을 전기 분해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가, 그 부산물로 나온 수소가 내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소는 그냥 천연가스처럼 석유를 캐면서 덤으로 얻는 지경이며, 수소 연료전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를 탈피했다고 보기도 민망하다. (종이 빨대가 친환경적인 것만큼이나??ㄲㄲ)

그런데 식물은 물을 증발만 시키는 게 아니라 '광분해'를 통해 어째 아예 분자 차원에서 산소-수소로 분해까지 시키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 메커니즘을 기계의 동력원으로 바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탄소 고정은 광합성 암반응을 통해 녹색 식물이 보편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질소 고정은 아무 식물이나 못 하기 때문에 식물도 생장을 위해 일부 특수한 박테리아나 비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학창 시절에 지리 역사를 얼마나 싫어했는데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철도 때문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생물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_<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호박 때문이다. ^^

2. 식물에게 물 잘 주는 요령

-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물이라는 건 식물의 광합성에서 암반응이 아니라 명반응 때 쓰인다. 이를 감안하면 물은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나 낮에 주는 게 좋다.

- 흙의 물기가 마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찔끔찔끔 자주보다는.. 적당히 간격을 뒀다가 한번 줄 때 많이 주는 게 좋다. 이러는 게 식물이 물기를 찾아 뿌리를 내리는 동기도 부여하고 좋다.
식물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원칙은 식물 주변의 흙이 바짝 말랐다 싶으면 주면 된다.

- 다만, 일단 줄 때는 무식하게 끼얹지 말고 넓은 면적에 살포시 주는 게 좋다. 물뿌리개라는 물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게 사람이 음식 먹는 것에다 비유하면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는 것과 같다.

- 자연에서 내리는 비는 자연재해급의 폭우가 아닌 한, 위의 두 원칙에 충실한 기상 현상이다. (한번 내릴 때 많이, 내릴 때는 살포시) 식물에 물 주는 것도 비가 더 자주 내려 주는 것과 비슷하게 수행하면 된다.

- 특별히 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녀석들 말고 일반적인 육상 식물은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로 익사할 수 있다.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물을 너무 많이 줘 버리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서 죽는댄다. -_-;; 아니면 축축한 거 좋아하는 곰팡이가 도져서 병충해를 입기도 한다.
직업 농사가 아니라 취미로 식물 가꾸는 사람들은 물을 안 줘서가 아니라 물을 너무 많이/잘못 줘서 식물을 죽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 식물이 잎이 축 늘어지고 기공을 닫고 있는 건 체내의 물이 부족해서 물을 증발시키는 걸 중단했다는 뜻이며, 이는 광합성을 못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는 당연히 물을 줘야 한다.
근데 내 경험상 그냥 낮 기온 30도 이상으로 너무 더울 때도 이러고 있기도 한다. 이때는 물을 더 줘도 별 소용 없다. 축 늘어져 있는 게 언제나 죽기 직전 위급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저녁이 되면 다시 잎이 살아난다.

- 그리고 물을 줄 거면 뿌리 부위에다 직격을 하는 게 좋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잎이 물을 맞아서 잔뜩 젖으면.. 물방울이 돋보기처럼 햇볕을 한데 모아서 잎을 미세하게나마 태우고 상처를 낸다. 그리고 그런 물기가 잎에 흰가루 같은 곰팡이성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댄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잎을 젖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릴 때는 뙤약볕이 내리쬐지는 않으니 저런 문제가 없다. ㄲㄲㄲㄲㄲ

식물은 햇볕이 너무 강할 때 동물처럼 자외선 맞아서 표면이 타고 조직이 상하는 건 없나 궁금했는데.. 저런 사정이 있구나.;;;
사람도 너무 덥고 맹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물놀이를 하면, 물이 더위는 식혀 주지만 자외선은 더 잘 투과시켜서 피부를 태운다고 어디서 봤던 거 같다.

-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예전에 가뭄이 너무 심했을 때 아침 11시부터 저녁 5시인가 대낮에 집 잔디밭에 물 주는 걸 금지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단속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매겼다고..
그 시간대엔 물을 줘 봤자 곧 증발해 버리고 물 낭비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 절약을 위해서 저런 고육지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3. 호박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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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자라게 하는 건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한 햇볕과 충분한 비.. 요 둘인 것 같다.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상당히 더워진 5월 말쯤부터 내가 키우던 호박들이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거의 괴물 수준으로 잎이 커지고 줄기가 굵어졌다. 길이가 30~40cm에 달하는 잎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리고 이제 좀 덩굴이 옆으로 길게 뻗으려는 기미가 보였다.
종자나 모종을 따로 구매해서 심은 게 아니라, 늙은호박을 사 먹고 안에 있던 씨를 파묻었을 뿐인데.. 심은 지 50일 남짓한 기간 만에 참 많이도 컸다. ^^

호박은 (1) 힘줄 같은 굵직한 흰 줄무늬가 그려진 잎, (2) 가시인지 털인지 까칠까칠하게 난 줄기, (3)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열매가 매력이다. ^^
다만, 한 줄기에서도 줄무늬가 있는 잎과 없는 잎이 동시에 돋는 것 갈다. 그리고 줄기도 처음에는 아무 특징이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저렇게 털이 돋고 까칠해지고 확 굵어진다. 그러다가 나중에 뿌리 부근의 줄기는 뭔가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기도 하는 것 같다. 성장 양상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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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호박잎을 먹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면.. 이런 흰 힘줄이 없어지는 것 같다~! 표면이 다 시퍼래진다.)

호박을 그저 자라는 비주얼만 볼 게 아니라 열매를 제대로 얻을 목적으로 키우려면.. 뭔가 잘라내고 없애는 것도 적절히 해야 한댄다.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 처음에 싹이 너무 조밀하게 많이 났을 때, 가망 없는 것들은 솎아내야 한다.
  • 그리고 줄기랄지 순이랄지.. 이것도 마냥 방치하지 말고 어떤 거는 잘라내야 한댄다.
  • 잎만 무성하게 너무 많이 자라면 그것도 잘라내야 한다. 내 경우, 위의 다른 잎들에 가려져서 어차피 햇볕을 많이 못 받는 것 위주로 잘라서 데쳐서 먹곤 했다.

잎이 광합성을 위해서 필요하기는 한데, 너무 많으면 이것도 잎이 소모하는 영양분이 잎이 만들어 내는 영양분보다 더 많아져서 효율이 떨어진댄다. 도대체 어떻게 수위를 조절해야 '적당히'인지.. 이게 참 알기 어렵다.
호박을 마냥 영양성장만 하게 놔두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생식성장을 해야 작은 덩치에서도 꽃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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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영양분이라도 너무 진한 액기스를 희석 없이 직통으로 내리꽂는 건 동물· 식물을 막론하고 좋지 않다. 그건 오히려 식물을 말라죽게 만든다. 소변을 식물에게 바로 뿌리는 게 이래서 좋지 않으며(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동급), 비료는 식물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줘야 한다.
그에 비해 호박은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고, 처음에 심을 때 아예 퇴비에 파묻은 채로 심기도 한다는데.. 다른 식물들보다는 이런 데에도 더 강한 것 같다.

4. 나머지 얘기들

(1) 육지의 아마존 밀림보다도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바닷말들이 산소 생산에 기여하는 게 더 많다고 한다. 어떻게 측정한 것이고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바닷말은 엽록소가 있고 광합성을 함에도 불구하고 식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는데 말이다.
그렇게 산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녹여서 보관해 줌으로써 온실효과를 억제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라는데.. 이거 고삐가 풀려서 지구가 불지옥 행성으로 바뀌는 상황을 가정한 SF물이 벌써 15년 가까이 전에 발표됐던 만화 "호텔"이다.

(2)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주변이 물바다가 된 것 같은데,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 기껏 떨어졌던 빗물이 삽시간에 증발해서 도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지구에서 물의 순환이란 걸 생각하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물이 '열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버퍼, 매체로서 지구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막대하다.

그나저나 그늘은 양지 100% 대비 태양열 몇 %만 받고 햇빛은 몇 %만 받으며, 식물의 생장 효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지 궁금하다. 수성은 태양에서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데도 뒷면 등짝은 -100도대까지 내려간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거기는 수증기나 공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온도가 널뛰기하는 거다. =_=;;

(3) 사람이 없어도 2~3일 간격으로 알아서 옆의 식물에다 물을 뿌려 주는 타이머 물컵 같은 거.. 역시 검색해 보니 없을 리가 없다. ^^ 애완용 식물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 이런 게 장사가 될 것 같다.
실내 말고 실외 텃밭에서도 쓸 수 있게.. 기능은 좀 적어도 좋으니 더 싸고 많이 도입할 수 있고 악천후 속에서 신뢰성이 더 강한 녀석이 있으면 좋겠다.

(4) 동물 쪽은 곤충, 식물 쪽은 잡초..가 정말 인류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연 발생설을 믿게 만든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

Posted by 사무엘

2023/06/15 08:36 2023/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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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뿌리

  • 식물이 무슨 건물이나 기계라면, 덩굴 줄기는 케이블이고 열매는 뭔가 3D 프린팅 결과물인 것 같다. 꽃의 암술과 수술은 무슨 짹/단자 같다. 그리고 땅 속 뿌리는 응당 지하의 엔진 내지 기계실에 대응하지 싶다.

  • 뿌리 주변의 흙 알갱이에다가 색소를 칠해서, 식물 뿌리가 주변의 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관찰해 보고 싶다. 물과 비료를 준 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흡수되는지, 주변의 흙은 성분이 어찌 바뀌는지 같은 게 궁금하다.

  • 농사를 새로 시작하려고 밭을 다 갈아엎는 건 밭이라는 디스크를 포맷하는 것과 개념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 사람이 일상적으로 식물의 뿌리를 직접 볼 일은 거의 없다. 농사가 끝난 식물을 수확하거나, 아니면 시들고 죽은 식물을 뽑아내서 버리는 마지막 순간에야 뿌리 부위를 잠깐 볼 뿐이다.
    이건 마치 하드디스크를 버리기 직전에 뚜껑을 열어서 돌아가는 내부 상태를 보며 마지막으로 시한부로 잠시 써 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그 하드는 이제 먼지와 배드 섹터가 쌓이면서 완전히 작살 남)

  • 광합성이라는 건 인간이 개발한 그 어떤 기계/엔진 부류로도 재현하지 못하는 경이로운 화학 반응이다. 글쎄, 인공 광합성이라는 게 연구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마치 인공 강우(비)나 인공 배양육(고기)만큼이나 기존 자연의 산물을 완전히 대체할 수준은 당연히 못 되니 말이다.

2. 온도 한계

(1) 식물에게 닿는 물이나 공기의 온도는 식물에 어떤 영향을 줄까? 너무 차거나 뜨거운 물은 어떤 영향을 주나? 궁금하다.
일단, 식물은 동물 같은 단백질 기반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 몸체와 같은 화상이라는 개념은 없다. 건조한 상태에서 불이 붙어서 새까맣게 타면 탔지, 고기 굽듯이 구워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식물은 효소 기반의 물질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동물과 같은 체온이라는 개념도 없다.
강한 햇볕에 고온다습은 인간 같은 동물에게는 최악의 불쾌한 환경인 반면, 식물한테는 광합성에 최고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ㄲㄲㄲㄲ

하지만 식물 역시 지나친 고온이나 저온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그리고 식물도 자외선을 너무 강하게 오래 맞으면 세포가 죽고 탈이 날 텐데 그런 거 영향은 없는지, 오존층이 파괴된 뒤에도 강한 직사광선을 계속 맞아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2) 한편으로, 물이 꽁꽁 얼어서 부피가 늘어난다면야 당연히 세포 조직이 다 터지고 박살 날 것이고 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든 생체가 공통이다. 그러나 물이 얼 정도는 아닌 저온에서는 메커니즘에 장애가 발생하는 걸까? 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었는데 까먹은 건지, 아니면 그런 것까지 배운 적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 본 호박을 기준으로 관찰 경험을 얘기하자면..
10~11월이 되어 날씨가 갈수록 추워지면 호박은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씨방을 만들고 생전에 보기 힘들던 암꽃을 피우면서 영양성장(길이와 굵기 같은 자기 덩치 키우기) 대신 생식성장(꽃과 열매)을 선택한다. 자기 덩치가 볼품없더라도 무리해서 꽃을 피우더라. 식물한테 그 정도 지능과 알고리즘이 있다.

밤 기온이 0~4도 사이를 오르내리면 꼭 물이 얼지 않더라도 이미 미세하게나마 부피가 커지고 밀도가 낮아지는데.. 이때쯤이면 호박이 못 견디고 냉해를 입었다. 잎이 시꺼멓게 변하고 조직이 물렁물렁해지면서 죽었다.
그리고 냉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멎은 듯이 뭔가 상태 변화가 없고, 생존 반응이 느려졌다. 꽃이 피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꽃이 폈다가 진 지 며칠이 지나도 금세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고.. 수분되지 못한 씨방도 말라 비틀어져 떨어지지 않고, 그 상태로 있으면서 색깔도 진해지고.. 여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3. 절단 한계

식물은 아무래도 동물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잘 키우고 있던 열매라든가 줄기나 잎이 갑자기 쓱 잘려나가면 식물은 어떤 심정을 느낄까? 그냥 동작 중인 컴퓨터에서 랜선이 뽑히거나 USB 메모리를 제거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래도 쟤들도 스트레스는 느끼고, 생존에 위협을 느껴서 성장 방식을 바꾸는 정도의 지능은 있다는데..

그리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한 거.. 쟤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잘리거나 불타고도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동물은 목이나 심장 같은 급소가 있는데 식물은 뿌리가 급소인 건가..??
식물은 동물과 같은 동작이나 소리 형태의 생존반응이 없다는 게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4. 물

동물과 식물은 모두 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영양 공급이 끊겼을 때보다 물 공급이 끊겼을 때 더 빨리 죽는다는 건 동일하다.
다만, 식물에게 뿌려 주는 물은 동물이 마시는 물과 같은 급으로 깨끗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애초에 흙 속 뿌리를 통해 흡수되니 흙탕물 따위는 아무 상관 없고, 상한 우유를 헹군 물 같은 것도 식물한테는 수분과 영양분 관점에서 땡큐일 뿐이다.

동물의 입장에서 배탈· 설사· 피부병 등을 일으키는 더러운 부패 세균, 기생충, 수인성 전염병 따위가 식물한테는 종간장벽에 걸려 먹히지 않는다. 식물은 식물한테만 적용되는 병충해가 따로 있을 뿐..
물론 식물도 그런 더러운 물질 자체를 그대로 흡수하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서 걔들이 완전히 부패되고 분해되고 난 결과물--거름, 퇴비--을 흡수하는 것이다.

어쨌든 식물은 동물이 배설한 쓰레기를 다시 흡수해서 양분을 만들어 내는 셈이니, 자연의 섭리 물질의 순환에 기여하는 신비롭고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기체(이산화탄소)로나 고체(거름)로나 모두 말이다. 사람이 직접 먹을 수 없고 별 영양가도 없는 일개 잡초라도 최소한 저런 기여는 한다는 것이다.

5. 소금

다만, 식물이 물과 관련된 입력 면에서 마냥 천하무적 만능은 아니다.
저렇게 평범하게 흙이나 더러운 유기물이 좀 섞인 물이 아니라, 바닷물 같은 소금물은 식물에게 그냥 독극물 급이다.

식물은 염분이 흡수되면 성장이 저해되고, 원래 있던 수분을 쭉쭉 빼앗기면서 말라 죽는다. '소금에 절인 채소'처럼 되는 건데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기 때문에 바닷물에 쩔었던 땅에서는 소금기를 빼내지 않는 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고등한 동물은 그래도 생존을 위해 매일 적게라도 일정량의 소금을 섭취해야 하며, 소금이 너무 부족해도 죽을 수 있다. 그 반면, 동물이 먹이로 삼는 식물은 그런 특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염분과는 그냥 상극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인간이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나 퇴비로 재가공할 때 반드시 수반되는 전처리 중 하나도 염분 제거라고 한다.

아~ 그래서 옛날엔 전쟁 중에 적국의 땅을 황무지· 폐허로 만들려고 소금을 뿌리는 관행이 있었고 그게 성경에도 기록돼 있을 정도이다(삿 9:45; 신 29:23).
그 시절에 그렇게도 비싸고 소중했을 소금을 괜히 땅에다가 퍼붓는(?) 게 아니었다. 한자에도 별도의 부수로 鹵(소금밭/짠밭)라는 글자가 따로 있을 정도이고..

그게 지금으로 치면 무슨 화학 물질 오염이나 방사능 오염 테러와 비슷한 짓이었던 것이다.
(뭐.. 옛날에 학교 운동장 흙바닥에다가 주기적으로 굵은 소금을 살포했던 건 소독이나 흙먼지 방지, 물기가 얼어서 땅이 굳는 것 방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애초에 운동장은 식물 심어서 농사 짓는 곳도 아니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식물에게 소변을 직통으로 싸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인해 좋지 않다.
소변 성분은 곧바로 식물에게 영양분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며, 발효되고 삭아야 된다. 그리고 그 성분이 희석도 많이 돼야 한다. 안 그러면 바닷물이 해를 끼치는 것과 동급으로 식물이 말라 죽는다고 한다.

그러면 육상이나 민물식물 말고 해초나 해조류는 바닷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염분을 걸러내는 필터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어류들이야 물 밖으로 꺼내면 아가미로 호흡을 할 수 없어서 질식해 죽는데 이런 해초류나 수상 식물은 물 밖으로 꺼내면..?? 광합성을 못 하나? 그냥 말라 죽나? 이런 것도 문득 궁금해진다.
육상 식물은 뿌리가 너무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으면 반대로 호흡을 못 해서 죽으니 말이다.

확실히 수중 동물은 딱히 풀 뜯어먹는-_- 초식이란 게 없긴 하다. 굳이 따지자면 뿌리를 내린 식물이 아니라 떠 다니는 플랑크톤 중에 동물성도 있고 식물성도 있는데.. 이거 무슨 기름도 아니고 어떤 기준으로 동식물성이 분류되는지 의문이다. (그냥 광합성을 하는지의 여부인 듯함..)

Posted by 사무엘

2022/12/11 19:34 2022/12/1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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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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