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ife 생명 or 삶

life라는 영어 단어는 잘 알다시피 생명· 목숨뿐만 아니라 삶· 인생이라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치 heart의 의미가 심장에서 더 나아가 마음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동사 live vs 명사 life"는 한국어로 치면 "그리다 vs 그림"과 비슷한 호응 관계인데, 같은 맥락에서 "살다 vs 삶, 일생, (한)살이"가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배추흰나비의 한살이"처럼 '한살이'라는 단어도 있었는데 요즘도 쓰이나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 보니 아예 곤충의 일생 변태 과정만을 일컫는 전문 용어처럼 기재돼 있네..

생명을 갖고 있는 동안 누리게 되는 것이 삶· 인생이니 둘은 분명 별개의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동일 개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용어임이 틀림없다.
본인의 언어 직관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목숨· 생명은 '하나'뿐이라고 말하고(개체, 개수),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기간, 횟수).

기독교는 사후 세계와 혼의 불멸을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니면 지옥에서 시작되는 life after death라는 말도 있다. life가 오로지 이 세상에서의 생물학적 생명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런 용어가 모순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잠 4:23 issues of life를 좀 의학· 생물학적인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지금 흠정역 성경 번역처럼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 들어온다. 그러나 인문· 사회학적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인생의 온갖 얘깃거리 이슈들'...;;이라는 뜻도 들어오게 된다. 뭐, 그래도 저건 다의어 관계이지, 무슨 동물 염소와 원소 염소 같은 동음이의어까지는 아니겠다.

약 4:14에서 말하는 '한낱 수증기나 다름없는 너희 life'도 그런 중의성을 지닌다. 일단 저기 문맥은 "실컷 잘 먹고 잘 살아도 죽어 버리면 말짱 헛일이다"라는 마 16:26, 눅 12:19-20과 비슷하다. 혼과 직접 대응하는 건 생명이지만, 정말 수증기· 이슬처럼 짧고 덧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상으로는 인생이 적합해 보인다.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거듭나고 새로운 life를 얻는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찬송가 쌍이 존재한다.
하나는 그 유명한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다. 얘는 life를 생명· 목숨이라고 봤다. 작사자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의 작사자이기도 한 이 호운이며.. 작곡자는 오빠 생각, 제헌절 노래 등의 작곡자이고 포항제철 초대 회장과는 동명이인인 박 태준이다.

다른 하나는 “주님 품에 새 생활 하네”(John W. Peterson)이다. 얘는 아까 전자와 달리 외국곡 번역인데, 가사 내용을 보니 어째 life의 대응으로 '생활'이 쓰였다. 두 곡 다 과거의 죄악된 삶을 청산했다는 말과, "옛 것은 지나고 새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 인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전자는 관점이 관점이어서 멜로디가 좀 웅장하고 감격스럽고 씩씩한 느낌인 반면, 후자는 그 뒤의 지속적인 생활(지구력)을 강조해서 그런지 평안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2. 순우리말

뭍(육지 land), 얼개(structure), 고장(기계 고장 말고, 지역 region), 연모(도구), 까닭(이유), 미련하다, 미쁘다...
내가 초딩 꼬맹이였을 때 책에서 봤던 단어들인데, 21세기에 태어난 애들은 저런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안 쓰이고 사라지는 순우리말이 좀 더 있는 것 같다. 멸종 위기 동물처럼..

한국어에서 '짜장'은 짜장면의 재료가 아니라.. 원래 지금으로 치면 'indeed, 레알'에 가까운 부사였다! {... 그것은 짜장 그 손에 넘는 짓이니, “아 웬 궐련은 이래.” 하고 슬쩍 눙치며, “성냥 있겠나?” 일부러 불까지 거 대게 하였다.} 김 유정의 소설 <만무방>(1935) 중에서..
하지만 이제 짜장은 '자장면'의 현실화 표기로 바뀌었다. 부사 '짜장'은 '바이'(전혀 never)만큼이나 사어가 된 셈이다.

'물매'는... 내 기억이 맞다면 정말 의외로.. 정석 책에서 한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로 끝.. 다시는 출판물에서 저 단어를 접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일본 책 베꼈다는 논란이 있는 교재에서 만약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래도 번역 로컬라이징은 최소한의 신경을 썼다는 뜻이 되겠다.

참고로 '거리'도 순우리말은 street이고 한자어는 distance이다. 뭐, '거리'는 멸종 위기는 아니다.
'구조'는 structure과 rescue 모두 한자어임.
한편, '지레', '도르래' 같은 물리 장치는 어째 한자어 없이 순우리말이 정착해 있다.

3. 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말 중에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가 있다.
이 말의 진짜 의미가 대외적으로 심하게 왜곡됐다는 식으로 얘기가 많은데.. 이 글에서는 그런 뉘앙스 말고 단어와 관련된 얘기만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위의 말의 영어 원문은 1% inspiration과 99% perspiration이라고 한다. 즉, 1%가 99%보다 먼저 언급되며, 후자도 직접적인 의미는 노오오력이라기보다는 땀이다. (뭐,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또한, 한국어 번역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두 단어가 -spiration이라는 라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땀이라 하면 sweat밖에 모르는 본인 같은 사람에게 perspiration은 좀 생소한 단어이다.

말이 나온 김에 관련 썰을 좀 더 풀자면..

  • : ‘포카리스웨트’는 마치 애니콜처럼 영어권 본토인이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명이라고 한다. 맑고 시원한 이온 음료의 이름에다가 하필 더럽고 찝찝한 느낌이 드는 땀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말이다. 교회의 이름이 누룩 교회,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이름이 버그 소프트, 블루스크린 시스템즈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ㅡ,.ㅡ;;
  • 영감: 내가 지금까지 들은 영감이라는 단어를 들은 곳은 (1) 저 에디슨의 격언, (2)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우사미짱이 눈깔 모양이 변하면서 쿠마키치를 범죄 용의자로 잡아내는 영감, 그리고 (3) 딤후 3:16이 말하는 성경의 영감 정도이다. ㄲㄲㄲㄲ

4. 영어 어휘

다음으로, 영어에서 좀 므흣하게 느끼는 면모를 개인적으로 발견한 걸 더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학창 시절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toward와 towards의 차이는 과연 뭘까? 신기하다. 하는 일은 거의 같고 어감상의 차이만 존재하며, 비슷한 예로는 upstair / upstairs 쌍도 있다! 마치 한국어에서 도트와 닷이 나뉘는 것 같은 현상이 영어에서 저런 게 아닐까 싶다.
  • gold는 그 자체가 금속 명사와 금색/금 재질이라는 형용사가 되지만, golden이라는 말이 또 따로 있다. silver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황금도끼 고전 게임이 golden이라는 단어를 크게 대중화시켰다. 방향에도 east+ern, north+ern 같은 형용사 바리에이션 쌍이 존재하는 게 인상적이다.
  • behalf, sake 같은 단어는 for the sake of, for one's sake 이런 식으로만 쓰이는 게 한국어 문법 용어로 표현하자면 영어의 의존명사나 다름없는 물건으로 보인다.
  • shall은 뭐.. should/will과 비교했을 때 고어체로 치부되면서 거의 죽어가는 게 확실하고.. 현재로서는 shall I/we 같은 의문문에서나 쓰이는 불완전동사처럼 돼 간다.
  • behind는 '바하인드'라고 읽히는 경우가 굉장히 잦은 것 같은데 사전에 딱히 반영돼 있지는 않아 보인다. 정관사 the는 굳이 모음이 아니어도 '더'가 아닌 '디'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다른 언어를 공부해 보면 영어처럼 정관사가 더/디 바리에이션 정도밖에 없는 건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양반이란 걸 알 수 있다.

5. company

영어로 '기업, 회사'를 나타내는 단어 company는 "빵(pany) 을 함께 나누다(com-)"라는 어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알 만한 분들은 아실 것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이스트 인디아 컴퍼니 등..

쉽게 말해 저 com은..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코뮤니스트, 베트'콩',
경성 '콤'그룹(일제 말기 때 만들어졌던 공산주의 성향 항일 비밀결사 단체) 할 때 그 '콤'과도 같은 어원이다.

난 컴퍼니의 어원이 저렇다는 것을 먼 옛날에 오 성식 생활영어 교재에서 처음 접했다.
'빵'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저분이 원래 외대 포르투갈어 전공 출신이기도 하니 어원이 더욱 쉽게 눈에 들어왔지 싶다.
지금처럼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으로 넘쳐나지 않던 옛날엔 그런 소소한 팁이나 유래 잡학, 외국 경험담도 희귀했었다.

상표명인 '꼼빠니아'는 동일 어원의 단어를 스페인어식으로 읽은 것인데, 회사뿐만 아니라 영어로 companion에 가까운 '동반자'라는 뜻도 있다. 저 상표가 의도한 의미는 '동반자'이다.

성경에 행 2:42,46을 보면 회사가 아니라 초대 교회 지체들이 company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게 한 빵을 떼어서 같이 나눠 먹었다고 나온다. 본문의 주변 문맥을 보면, 이때는 공교롭게도 교회도 일면 사회· 공산주의스럽게 재산을 전부 한데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이건 체제 전복 혁명 과업, 인민 해방 이러는 흉악한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건이었다.

아무튼, 인류 역사에서 회사· 기업이라는 조직의 첫 시작과 취지· 이념은 교회나 공산주의 만만찮게 "함께 빵을 나누는 조직"이었다. ㅎㅎ 한국어의 '식구'와 비슷한 개념이다.

6.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구분하지 않는 것

  • give vs 줘/내놔: 강도가 피해자를 털 때는 "돈 내놔"라고 하지, "돈 줘"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전자는 더 적극적으로 강압적으로 빼앗겠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 wear vs 입다 쓰다 신다 끼다 착용하다: 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한국어로는 다 똑같지만 영어로는 먹는 독 poison과 동물에게 물려서 주입된 독 venom을 구분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화상을 입어도 불에 데이는 burn과 물에 데이는 scald를 구분해서 표현한다.

7. 외래어

집에서 바깥과의 경계가 벽이 아닌 난간으로 구성돼 있고, 장판이 아닌 타일이 깔려 있고 집안이라기보다는 반쯤 바깥인 그 공간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베란다와 발코니가 정말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는 것 같다. 원래는 둘은 어묵과 오뎅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념을 가리키는데 말이다. 발코니가 더 영어에 충실한 단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베란다가 더 자주 들었고 더 친숙하다.

하긴, 가방· 담배· 구두조차도 원래는 외래어라는 게 놀랍기 그지없다. 껌은 영어 어원이 분명하니 외래어라는 인식이 있지만, 비슷한 단어인 빵은 외래어라는 인식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외래어라는 것도 의외로 별것 아니고 정하기 나름인 개념일 뿐인 건지도 모르겠다.

8. 틀리기 쉬운, 혹은 틀린 채로 굳어져 버린 외래어 표기

  • algorithm: 어쩌다가 '-듬'이 '-즘'이라고 바뀌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음악 용어 리듬을... 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 basic: 원어 발음엔 Z 소리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스펠링 그대로 '-식'이 맞는데 현실에서는 '-직'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 message, sausage: 스펠링이 A여서 좀 혼동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만.. '-세-'가 절대 아니고 '-시-'가 맞다. 메시지, 소시지.
  • super-: 원어 발음엔 반모음이 들어있지 않다. 슈퍼마켓, 슈퍼맨..이 아니라 원래는 그냥 수퍼마켓, 수퍼맨이 맞는데 저건 흠..
    비슷한 예로 비젼이 아니라 비전, 캡쳐가 아니라 캡처, 쥬스가 아니라 주스(juice), 죠스가 아니라 조스(jaws)이다.

자음이 ㅈ 소리로 바뀌는 구개음화라는 건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일본어는 더해서 TR 소리조차 츄리닝 츄레라 같은 식으로 바뀌어 왔다.
쿵 퓨리에서 히틀러가 "전화기 내놔" 이럴 때 give me the phone을 "더 폰"이 아니라 "저(ze!!) 폰"이라고 발음하던 게 생각난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0/05/20 08:35 2020/05/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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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언어, 시력 이야기 등

1.

  • "즉시 그(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그가 곧 시력을 받으니라. 그가 일어나 침례를 받고" (행 9:18)

요즘 scale이라고 하면 크기, 규모라는 뜻이 더 와닿지만 scale에는 비늘이라는 뜻도 있다. (동음이의)
구약 성경의 율법에서 포유류는 굽과 되새김질 여부가 식용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면, 어류는 비늘과 지느러미의 존재 여부가 그 역할을 한다.
아울러, 사전을 찾아보면 피부병 딱지, 갑옷의 미늘, 물통 안에 낀 물때 같은 것도 다 저 scale이다.

치아 스케일링은 치아 주변에서 저런 비늘처럼 덕지덕지 붙은 치석을 떼어낸다는 뜻이다. 무슨 크기 조절과 관련된 뜻이 아니다.
그러니 사실 descale이라고 해야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컴퓨터 저장 장치에서 defragment, 비행기에서 deicing처럼 말이다. 뭔가를 제거하여 정리한다는 뜻의 단어에는 대체로 접두사 de-가 붙어 있다.
다만, void/be devoid of, press/depress 이런 관계를 생각해 보면 de-가 언제나 뒤의 어근을 없애거나 부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2.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성경을 더 찾아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중에 눈먼 사람에게 시력을 되찾아 준 것이 여럿 나온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중에는 남이 뱉은 침을 맞는 극도의 치욕· 모욕이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도 침을 뱉으신 적이 있다. 두 번인데.. 모두 다 맹인의 눈을 고치실 때이다. 치과 다음으로는 안과 얘기네..

  • "그분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잡고 그를 고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그가 무엇을 보는지 그에게 물으시니" (막 8:23)
  •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분께서 땅에 침을 뱉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 눈먼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며" (요 9:6)

모욕하고는 억만 광년 떨어진 정반대 일을 하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구약 외경 중에 토비트.. 개역성경식 외래어 표기법이라면 아마 '도빗' 정도 됐을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이 사람은 놀랍게도 공중에서 떨어진 새똥(정확히는 참새의..)을 눈에다가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눈에 막 같은 게 끼고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결말부에서는 물고기의 쓸개를 환부에다 발라서 눈을 치료받는다.

눈 영양제 '토비콤'의 이름이 혹시 토비트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안국 약품의 창업주나 중역 중에 혹시 가톨릭 신자가 있나.. 라고 나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추측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03 08:34 2020/05/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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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출과 사용

Windows API 중에는 IsBadWritePtr이라고 해서 주어진 포인터가 가리키는 메모리가 올바른지를 되돌리는 함수가 있다. 하지만 이 함수는 모든 경우를 맞게 판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코드에서 처리해야 하는 exception을 가로채서 다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올바르지 않은 포인터가 발생했을 정도라면 이런 부류의 함수를 갖고 성공 여부를 어설프게 간보는 게 애초에 별 의미도 없다. 그 즉시 깔끔하게 뻗고 프로그램을 종료시키는 게 차라리 더 안전하며, 문제의 원인을 탐색하는 데도 더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과거에 the old new thing 블로그에서는 IsBadWritePtr should be called XXXX..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본인은 제목의 진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한동안 멈칫했다. 함수 이름 다음에 be called가 나오니 이 함수의 호출과 실행, 다시 말해 프로그래머가 이 함수를 사용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는 제목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의 실제 의미는 그게 아니다. "IsBadWritePtr은 실제로는 XXX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어야 한다. 하는 일이 '요게 잘못된 포인터인지 판단'이 아니라 그냥 '프로그램을 랜덤하게 뻗게 하라'이기 때문이다." 요게 제목의 의도이다.
하긴, Windows API 중에는 이름이 좀 므흣하게 지어진 게 내 기억으로 몇 가지 있다. 가령, IsDialogMessage는 동사가 Is가 아니라 Translate가 되는 게 훨씬 더 적절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call이 '명칭 부여'라는 뜻도 있고 '실행, 사용'이라는 뜻도 있다. 옛날에 GWBASIC의 Illegal function call이라는 에러 메시지가 한국어로는 "기능호출 사용이 잘못되었읍니다"라고 호출과 사용을 모두 넣어서 번역됐던 게 떠오른다.

2. 목적어가 자체 포함된 타동사

정확한 출처와 문맥은 기억이 안 난다만.. 본인은 어느 프로그래밍 라이브러리 문서에서 "The XXXX function does not return." 형태의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 함수가 실행이 끝나지 않고 무한루프에 빠진다는 말 같지만, 거기서의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저 함수는 그냥 리턴 타입이 void, 즉 리턴값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건 영어에서 마치 이런 식의 의미 차이를 보는 것 같다.

  • I can't read. 난 문맹이다. (시력이나 조명에 문제가 있어서 못 읽는 게 아니라)
  • XXXX is a word. 스크래블 게임 같은 데서, XXXX는 아무 글자 나열이 아니라 스펠링이 맞는 정식 단어이다.

read가 단독으로 '글을' 읽는다라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고, word라고만 해도 자동으로 '올바른' 단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사실, 이건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dream, design, sleep 같은 다른 동사도 마찬가지이며 얘들은 아예 명사도 된다. 심지어 dream a dream, design a design, sleep a sound sleep 같은 말도 의도적으로 쓰인다.

옛날 영어에서는 심지어 kill/slay, send 같은 타동사도 목적어를 생략한 채로 쓰였다는 것을 예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니 굳이 murder이라고 안 쓰고 thou shalt not kill이라고만 해도 "살인하지 말지니라"가 된다.
return도 그런 식의 유도리 용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한국어와 영어의 재귀 구조

한국어는 주어, 보어, 목적어, 부사어 등의 격이 체언 뒤에 달라붙는 온갖 조사들에 의해 구분된다. 어순에 의존하지 않고 격조사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순의 도치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종결어미가 들어있는 서술어는 예외이다. 절대적으로 무조건 마지막에 와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문장도 종결어미가 등장해서 말을 완전히 끝맺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 보지 않으면 뭔 말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스펙터클한 반전 언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내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소식이 나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 앞서 언급되었던 내용들이 막판에서 순식간에 전면 부정되거나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막장 어순을 영어로 실시간 동시 통역해야 한다면 통역자의 멘탈에 얼마 못 가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이런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SVO형 언어답게 보어건 목적어건 객체를 문장의 뒤에다 꽝 찍은 뒤, 그 객체를 수식하는 문구들이 관계대명사와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즉,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앞의 문맥을 더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성경으로 치면 롬 8:1처럼 말이다. 그들은 정죄가 없는데 그들이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걷는 자들이고, 그런 자들은 육체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걷는다.. them, who가 말을 쭉쭉 이어 준다.

한국어는 저런 영어의 특기를 그대로 따라하기가 난감하다. 관형어가 체언의 뒤가 아니라 앞에 등장하며, 길이가 한없이 길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말을 저렇게 만들면 십중팔구 번역투가 돼 버리니.. 문장을 둘로 나누거나 어순을 재배치한다든가 해야 한다. 한국어에 가주어 it 같은 개념이 있지도 않으니 말이다.

한국어는 인용문 안에 또 인용이 등장하는 식으로 문장을 n중으로 안았다면 안은 문장을 끝내는 종결어미도 n중으로 역순으로 스택 pop 하듯이 나와 줘야 한다. 그래서 성경에도 “... 있나이다, 하라, 하고” (창 32:18) 같은 문장이 종종 등장한다.

영어는 그런 제약이 없다. 지금 문장이 몇 중으로 깊게 인용돼 있건, 끝나는 건 인용이 없을 때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는
if() for() for() while() ...;
if() { for() { for() { while() { ... } ... } ... } ... }
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혹은, 전자는 굳이 스택을 사용하지 않는 선형적인 최적화가 가능한 tail recursion 구조인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은 느낌?

지금까지 별 잡생각이 다 튀어나왔는데, 정리하고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한국어와 영어는 말을 길게 이어 나갈 때 화자의 관점 내지 사고 전개 방식이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구조적으로 더 나은지 굳이 우열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트 배열 순서(엔디언)나 함수 인자 전달 방식에 절대적인 우열이 존재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단지, 언어간에 이런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외국어 학습이나 자연스러운 번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차이점들을 프로그래밍 언어의 특성과 연계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게 이 글의 요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24 19:35 2020/04/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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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 숫자

전세계가 말과 글은 서로 달라도 숫자만은 아라비아 숫자로 사실상 완전히 통일되어 있다. 문자도 아닌 숫자야 무슨 민족 정체성이니 뭐니를 논할 여지 없이, 편리한 것만 냉큼 받아들여서 쓰면 그만이다. 자릿수마다 번거롭게 일일이 새로운 기호를 도입하지 않고 숫자 자체만 쭉 늘어놓는다는 점, 그리고 0을 사용한다는 점이 정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아라비아 숫자 없이 수학이란 학문이 지금처럼 발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전에 동양에서 쓰이던 한자 숫자, 그리고 서양에서 쓰이던 로마 숫자는 실용적인 용도로는 완전히 도태했다. 하지만 예스럽고 간지 나고 권위 있어 보인다는 점 덕분에 책에서 제일 큰 단원(챕터)의 번호, 그리고 아날로그 시계의 숫자 같은 용도 정도로는 아직도 쓰이고 있다. 또한 저작권 문구 같은 데서 MCM 어쩌구 하는 것도 19xx하는 연도 숫자이더라. 로마 숫자 자체가 사실상 천 자리까지만 표현 가능하기도 하니까..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 사이를 상호 변환하는 알고리즘은 꽤 재미있는 코딩 주제이다. 뭔가 100원, 500원, 1000원 등 다양한 화폐로 특정 액수를 표현하는 문제 같기도 하다. 그리고 로마 숫자와 한자 숫자를 비교해 보면 이런 표기법조차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게 느껴진다.

가령, 동양은 세로쓰기, 서양은 가로쓰기이다. 이 때문인지 1~3도 한자는 가로줄이지만 로마 숫자는 I가 반복되는 세로줄이다. 그리고 동양은 10000 단위로 끊지만 서양은 언어 차원에서 1000 단위가 보편적이다.

2. 숫자: 수량 또는 번호

숫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기계에서 똑같이 숫자를 입력하는데 계산기와 컴퓨터 키패드는 글쇠배열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789 456 123 순인 반면, 전화기나 도어록의 버튼은 123 456 789의 순이다.

이런 차이는 역사적인 사연 때문에 생기긴 했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 숫자라는 게 사칙연산의 대상인 수량을 표기할 때 쓰이지만, 그런 의미가 전혀 없이 그냥 문자의 연장선으로서 식별 번호를 표기할 때도 쓰이기 때문이다.
789 456 123은 전자용이고 123 456 789는 후자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자는 0과 1이 가까이 있는 반면, 후자는 9와 0이 가까이 있다.

컴퓨터는 계산기의 연장선으로서 발명된 기계이다 보니, 키패드의 숫자 배열은 응당 계산기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반대 방식의 숫자 배열이 혼재해 있으니 좌측· 우측통행만큼이나 사용자에게 혼동을 주는 것 같다.
더구나 컴퓨터도 키보드의 1줄짜리 숫자 배열은 수학 친화적이고 문자 코드의 배당 순서와도 일치하는 012..789가 아니라, 번호 지향적인 123..890이다! 엄밀히 말하면 키보드와 키패드의 배열 원칙이 서로 다른 셈이다.

회계· 경리처럼 다량의 숫자를 취급하는 업종에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전자 숫자보다는 후자 숫자를 취급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내 타자연습 연습글 중에도 원주율 소수점을 입력하는 숫자 전용 연습글이 있는데.. 이걸 숫자 전용 패드로 입력한다면 123 방식이 더 익숙할지, 789 방식이 더 자연스러울지 궁금해진다.

요즘은 안 그러는 것 같다만.. 옛날에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외래어를 순명조 같은 별도의 튀는 글꼴로 표기하고, 성경에서도 인명· 지명 고유명사는 고딕 같은 별도의 글꼴로 표기하곤 했다.
그 정도의 관행이라면 숫자도.. 산술 연산 수량용 숫자와 번호용 숫자를 글꼴을 달리하여 구분 표기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번호용 숫자는 숫자계의 고유명사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수 666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영어 nuumber는 두 의미가 모두 포함돼 있다.

하긴, 숫자 단독 나열에 대해서는 고유명사라는 관념이 희박하다 보니 과거에 80486 같은 CPU 이름은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인텔에서는 펜티엄, 코어 같은 별도의 작명을 하게 되기도 했다. 영화 제목인 300이나 1987은 또 어떨까?
고유명사 기능을 하는 숫자는 여느 숫자와 달리, 억· 만 같은 자리수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한 자리나 두 자리씩(특히 영어) 각 숫자를 끊어서 읽는 경향이 있다.

그 외에..

  • 라틴 알파벳이야 W와 I 같은 글자의 특성 차이로 인해 가변폭 글꼴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런 글꼴도 숫자까지 0과 1의 폭을 달리하는 가변폭으로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적어도 본문용 글꼴이라면 말이다. 숫자도 가변폭인 글꼴은 아주 특이한 장식용 한정인 것 같다.
  • 3579 같은 홀수는 아래로 삐치고, 2468 짝수는 위로 삐치게 만든 글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위 아래로 들쭉날쭉 삐침이 있는 라틴 알파벳 소문자와 그럭저럭 어울리는 참신한(?) 시도인 것 같다. Constantia라는 글꼴은 모든 56789만 저런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3. 수사(數詞): 명사 또는 관형사

숫자 말고 언어의 수사 얘기를 하자면.. 영어는 한 숫자를 읽는 방법이 정말 오로지 원 투 쓰리 등 한 가지밖에 없어서 매우 단순하고 편리하고 직관적이다. 파생형으로는 몇 째를 나타내는 1st, 2nd, 3rd, -nth 바리에이션이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 반면, 한국어는 숫자를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모두 읽을 수 있으며 그 원칙에 일관성이 없다(두 시 삼십오 분). 게다가 순우리말은 모든 숫자에 대한 대응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1~4는 명사일 때(하나, 둘, 셋)와 관형사일 때(한, 두, 세) 형태가 달라지기까지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뒤에 붙는 의존명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서/석/세' 같은 쓸데없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지저분한 난장판이 따로 없다.
저건 '다르다/틀리다' 같은 유의미한 구분도 아니고.. 종이가 세 장이건, 석 장이건 세상이 달라질 게 무엇인가? 구분이 문란해져도 아무 상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4. 사병

군대에서 장교나 부사관 같은 간부가 아니고, 수가 제일 많고 계급이 제일 낮고,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받기만 해서(what) 훈련받은 대로(how) 수행하는 군인을 병(兵)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글자로만 써 놓으면 질병(病)과 구분이 잘 안 되니, 앞뒤에 다른 글자를 붙여서 사병, 병사, 졸병 등으로 부르는 편이다.

이들에 비해 '병'이 들어가지 않은 '군사'는 좀 옛스러운 말 같다. "군사 정권", "그리스도의 군사" 이런 말밖에 안 떠오른다.
soldier를 가리키는 한자어에서 '사'는 모두 士이다. 장기에서는 兵과 卒이 한 칸씩밖에 못 움직이고 후퇴는 못 하는데, 士는 한 칸씩밖에 못 움직이고 궁궐 안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병이건 사건 졸이건 이동 능력은 비슷하게 최하이고 말이다..;;

그런데 '사병' 같은 단어에서 私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건 오늘날의 PMC 내지 일부 막장 국가에서 존재하는 군벌, 혹은 과거의 지방 호족, 영주들이 거느리는 싸제 군대에 소속된 병사를 가리킬 때에나 쓰일 법하다. 국가 소속의 정규 상비군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일치이기라도 한지, 영어로도 이병/일병은 private이다. 그래서 私가 더욱 잘 연상되는 것 같다.
같은 일을 하는 조직이어도(기업, 학교 등..) '사'보다는 '공'이 붙은 게 더 안정적이고 뽀대 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래서 영어의 private은 public과 반대로 '사사로운, 사적인'뿐만 아니라 '평민 양민인, 급이 제일 바닥인'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common은 '공통의, 공공의'라는 아주 public스러운 뜻이 있는데 거기서 부정적인 뉘앙스가 가미되어 '속된, 품위 없는, 졸렬한'이라는 뜻도 있다. private하고는 방향은 다르게 시작했는데 파생 의미가 비슷한 방식으로 꼬여서 형성된 것 같다.

5. 영어 이니셜

세상엔 영어 이니셜들이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는데...
(1) 먼저, 영어 단어들로 구성되었지만 영어 어순대로 배열되지는 않은 이니셜도 있다. 어째 표준과 관련된 이니셜들이 그런 편인데.. ISO와 UTC가 대표적인 예이다. 영어 어순대로라면 각각 IOS와 CUT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ISO는 그나마 국제 표준화 기구라는 한국어 어순과 맞는 편이지만, UTC는.. 조금 므흣하다.

(2) 명칭의 이니셜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훗날 바뀌었지만, 이니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오히려 새 단어를 이니셜에 맞춰 어거지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영상 매체의 이름인 VHS, DVD처럼 말이다.

(3) 또한, 이니셜이 자음-모음 순으로 어째 읽기 쉽게 배열되어서 그 자체가 연달아 읽는 단어처럼 되어 버리기도 한다. UNICEF, UNESCO 같은 국제 기구 명칭, 그리고 레이저, 레이더 같은 과학 기술 용어가 그 예이다.

6. 기관과 기관장의 명칭

동사무소는 한때 주민센터이다가 행정복지센터라고 더 복잡하게 이름이 바뀌었는데, 여기를 대표하는 최고 수장은 동장 또는 읍장, 면장이다.
시청/군청부터는 건물 뒤에 '청'이 붙기 시작한다. 시를 대표하는 최고 수장은 비교적 직관적인 '시장'이지만, 군의 최고 수장은 군장이 아니라 '군수'이다. 어감상 말을 따로 저렇게 만들었는가 보다.

그리고 도청의 최고 수장은 '장'도 '수'도 붙지 않고 '도지사'이다. 다들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 없고 참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전국구라면 시 의원과 시장은 지역구 개념인 거겠지? (지방자치)
그럼 국무총리는 뭐고 의전 서열이 어떻게 되는 건지.. 중학교 사회 공부를 다시 해 보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12 08:32 2019/07/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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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언어의 간결함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세상에 생명의 기원보다도 더 알 수 없는 게 바로 언어의 기원이다.
먼 옛날, 최초의 언어가 어떠했는지는 문헌 기록도 음성 녹음도 없고, 아예 문자조차 없으니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이런 게 저절로 우연히 생겨날 수는 없다고 믿어 버리면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고 그냥 개인 신념의 영역이 된다.

언어별로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대체로 고대 언어는 현대의 언어보다 문법이 더 복잡하고 불규칙도 더 많고, 사용되는 음운도 더 다양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반대로 옛날 언어가 어휘나 표현이 더 간결한 것도 있었다.

(1) 예를 들어.. 영어 고어에는 before보다 더 짧은 ere(air, heir와 같은 '에어')가 있고.. enemy보다 더 짧은 foe가 있다. 그리고 뻔한 문맥에서 목적어 같은 걸 생략도 많이 했다. 아래의 KJV 구절을 살펴보자.

  • Abimelech king of Gerar sent, and took Sarah. (창 20:2)
  • Bring these men home, and slay, and make ready. (창 43:16)

'사람을 보내어'인데 그냥 sent를 자동사인 듯이 썼으며
'가축을 잡아서'인데 그냥 slay 한 단어로만 씨크하게 표현했다.

(2) 그런데 영어 이전의 성경의 언어였던 히브리어· 그리스어 레벨에서는 이런 자비심 없는 축약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KJV 영어 본문에서 이탤릭체 처리된 단어들을 찾아보면.. 없으면 단순히 문법적으로만 어색하거나, 아까 사람 내지 가축처럼 어렴풋이 유추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들도 있다.

시 12:5 끝부분의 "I will set [him] in safety [from him that] puffeth at him."에서 []로 둘러싸인 부분이 전부 이탤릭이다. 도대체 히브리어 원어 원문은 얼마나 암호처럼 짧게 기록됐길래 영어에서 저런 목적어와 수식어를 창작해서 집어넣어 줘야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물론 KJV 외의 타 성경들도 동일하게 저렇게 번역했음)

(3) KJV는 they라는 짤막한 단어를 3인칭 복수 대명사로도 쓰고, people 같은 '일반적인 사람' 용도로도 쓴다. 이것 자체는 현대 영어에서도 존재하는 관행이지만, KJV는 중의성· 모호성이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they를 즐겨 쓰는 감이 있다.
왕하 19:35를 보면.. "they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they는 모두 죽은 송장이 되어 있었더라"처럼..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they가 쓰인다.

출 20:13 "살인하지 말라"도 타 성경들은 murder 정도를 넣었지만 KJV만은 그냥 짧은 kill이다.

(4) 영어를 비롯한 성경 언어 쪽 얘기가 길어졌는데, 반대편의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훈민정음 서문이라든가 이 윤탁 한글 영비 같은 걸 보면.. "영한 비라. 거운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라" 말이 굉장히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요즘 같으면 못해도 "이것은 신령한 비입니다. 이 비를 무너뜨리는 사람은 재앙을 당할 것입니다" 정도로는 풀어서 쓸 텐데? 띄어쓰기가 없는 고어체를 감안하더라도 주어 생략에다 '거우다?'라는 짤막한 단어.. 뭔가 현대 한국어의 화자는 알지 못하는 옛 한국어의 면모인 것 같다.

2. 의존명사

한국어에는 의존명사라는 게 있다. '리', '수' 같은 건 분명 고유한 뜻과 뉘앙스가 있긴 한데,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난감하다. 얘들은 '-ㄹ' 꼴로 활용된 용언으로부터 수식을 받은 바로 다음에만 등장하며(그럴 리, 할 수..), 특히 '리' 다음에는 '없다'만 쓰인다.

어처구니, 어이 같은 단어는 그런 통상적인 의존명사에 속하지는 않지만.. 뒤에 붙는 용언이 답정너 너무 뻔하고 다른 형태로 쓰이는 일이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어이없다, 어처구니없다'가 그냥 한 단어로 인정될 지경이다. '쓸데없다'처럼 말이다.

한국어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너무 어렵고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원성이 자자하지만.. 한국어가 단어와 형태소의 경계를 구분하는 게 그만치 어렵다. 이것 때문에 사전 편찬자와 국어 문법학자들도 고충이 많다. 용언에 극도로 제한된 뻔한 형태로만 활용되는 불완전동사가 있는 것만큼이나(더불다, 가로다, 달다) 체언에는 아주 제한된 형태로만 쓰이는 의존명사 같은 물건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된 형태, 관용구 형태로만 쓰이는 명사가 영어에도 있는 것 같다. 유익· 편의라는 뜻인 sake 내지 behalf 같은 단어 말이다. 얘들은 오로지 one's sake, ?n behalf of .., for the sake of 형태로만 쓰이고 단독 내지 다른 형태로 쓰이는 일이 없다. 이것 말고 다른 예도 있지 싶다.

3.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혼돈의 카오스

(1) 외래어 표기법의 노답 문제

  • 자음 음절 경계: 플룻 플루트 로보트 백 태그..;; 답이 없다. ㅡ는 음가가 참 불분명한 모음이다.
  • 장모음: 윈도우 보우 리모트 보트 스노우.. [ou]라는 영어 장모음은 u를 무시하고 '오'로만 표기하는 게 원칙이지만 snow나 window 같은 단어는 여전히 '우'까지 표기한 형태가 더 익숙하다.
  • 모음 경계: washer는 와셔일까, 워셔일까? ㅏ~ㅓ, ㅗ~ㅓ 경계가 의외로 헷갈린다.

(2) 한글 맞춤법 및 발음에서 노답 문제

  • 사잇소리와 사이시옷: 비빔밥/볶음밥 중에서 왜 전자만 밥이 '빱'으로 바뀔까? 물고기/불고기 중에서 왜 전자만 '꼬' 소리가 날까? '김밥'의 발음은 밥과 빱 중에 무엇이 더 바람직할까?
  • 띄어쓰기: 한자어 복합명사들의 띄어쓰기부터가 아주 모호하다. 또한, 순우리말 중에도 '잘 만 듯 못' 요런 어절들은 단어도 되고 접사도 되기 때문에, 뒤에 '+하다' 같은 게 이어질 때 띄어쓰기 여부가 아주 구리다.

4. ㅐ와 ㅔ의 발음

이건 한국어 음운 체계에 남아 있는 희대의 미스터리이다.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만큼이나, I와 you를 구분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소리였는데 어쩌다가 요즘 사람들이 절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소리의 쌍으로 전락했나 모르겠다. 서로 다르게 발음도 못 하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장음· 단음 구분이 망가진 것처럼 말이다.

요즘 통용되는 그 소리는 원래의 ㅐ도, ㅔ도 아닌 중간의 소리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영어나 일본어에서도 쓰이는 보편적인(?) 소리인 건지도 모르겠다.
ㅐ/ㅔ뿐만 아니라 ㅒ와 ㅖ의 구분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ㅙ/ㅞ/ㅚ도 서로 변별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덕분에 재련과 제련, 결재와 결제, 제제와 제재 같은 한자어의 표기도 굉장히 헷갈리게 되었다.

한글이 처음 창제되던 당시에는 저 모음들이 어떻게 구분되어 발음되었는지.. 몇백 년 전 사람을 만나서 물어 보고 싶기라도 한 심정이다.

5. 사라져 가는 순우리말

까닭(이유), 달걀(계란), 뭍(육지, 땅) 같은 순우리말 단어는 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방송과 도서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단어였는데 갈수록 용례가 줄어들고 있는 게 보인다. 특히 '뭍'의 경우, 옛날에 전래동화 책에서 봤던 기억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단어로 전락했다.

이런 식으로 '미덥다, 미쁘다, 미련하다' 같은 단어도 사라지는 것 같다. 어째 다 '미'짜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콩팥은 신장에 밀려서, 허파도 폐에 밀려서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세대는 알아듣기라도 하지만 다음 세대 애들한테는 완전히 듣보잡이 되겠지?

Posted by 사무엘

2019/04/03 08:35 2019/04/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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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언어유희 관찰

1. '아' 다르고 '어' 다름

  • 이건 번역이 아니라 반역이다.
  •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 저놈들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소탕의 대상일 뿐.

음운 하나만 바꾸니 긍정· 중립적인 심상이 확 부정적인 심상으로 바뀜.
이런 맛깔나는 개드립을 만들 수 있는 예가 또 뭐가 있나 궁금하다.

ㅐ와 ㅔ도 '한대', '한데', '한 데' 모두 다름.
'매다'와 '메다', '결제'와 '결재' 의외로 구분하기 아주 어렵다.
"사랑해 보고 싶다", "사랑해. 보고 싶다"가 다른 것만큼이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2. I sawed the demons

Doom 1 게임의 배경 음악 중에 제목이 "I sawed the demons"인 곡이 있는 걸 보고는 표현의 기발함에 빵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국산 영화 중에 "악마를 보았다"가 있는데.. saw가 아니라 sawed이다. 핑키데몬 패거리를 훌륭한 대화수단인 전기톱으로 쓱싹쓱싹 썰어 죽였는가 보다.

이런 식의 말장난들을 수집하면 자료가 잔뜩 모이지 싶다. 하긴, 레밍즈의 레벨 이름 중에도 "No problemmings!" 같은 게 있었고 말이다.

3. 중의성

난 벡터의 외적이라고 하면 당연히 3차원에서만 정의되고 결과값으로 역시 벡터가 나오는 그 연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키백과를 보니.. 내적이 행벡터(한 줄짜리..)와 열벡터(한 칸짜리)의 곱으로서 스칼라이듯이, 외적은 반대로 열벡터와 행벡터의 곱으로서 행렬이 나오는 연산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아는 그 외적은 '벡터곱'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하더라.

자동차 기계에서 '로터리 엔진'도 이와 비슷한 중의성과 혼동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모든 행정이 피스톤의 상하 왕복 없이 태생적으로 곧장 회전으로 바뀌는 엔진을 뜻하지만, 한편으로 실린더가 불가사리 팔처럼 달려 있는 '성형'(별 모양 같은.. 星形) 엔진도 로터리라고 불리는가 보다. 내가 아는 로터리 엔진은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반켈' 엔진이라고 부른다.

'반켈'을 자음 역행 동화까지 반영해서 '방켈'이라고 적는 건 내가 알기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허용돼 있지 않다. 그래도 이런 음운 변화가 한국어에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영어로도 같은 접두사가 correct의 반의어는 in-correct이지만, possible의 반의어는 im-possible이다~!

4. 마술사와 마법사

magician sorcerer wizard. 마술사 요술쟁이 마법사.
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셋 다 등장하며, 별다른 구분이 없이 공평하게 다소 부정적인 심상으로 쓰였다. 출 7:11, 단 2:2처럼.

오늘날의 용례를 따라 좀 구분하자면, M은 영국 신사 검은 모자 검은 정장 차림으로 흰 장갑을 끼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그 사람을 가리킨다. 즉, 전적으로 기술과 트릭만으로 마술 쇼를 선보이는 직업 엔터테이너이다.
유럽에서는 단두대를 작동시키는 사형 집행관이 경찰· 군인 제복 차림이 아니라 저런 마술사 같은 정장 차림이기도 했다. 나름 전문직임을 표방하고 사형수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S는 마법사 중에서도 좀 사악한 마법사.. 과학자로 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똑같은 뱀도 snake 대신 serpent, 돼지를 pig 대신 swine이라고 부르는 듯한 그 느낌이다.
각종 동화와 게임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마법사는 전부 이 칭호가 붙는다. 알라딘과 페르시아 왕자에 나오는 Jafar처럼 말이다.

W는 소매가 치렁치렁 내려오는 군청색 계열 robe 차림에다 비슷한 색깔의 고깔도 쓴 백발 할아버지 마법사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딱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참고로 위저드의 여성 버전이 바로 witch(마녀..!)이다. 얘는 옷차림은 남자와 비슷한데 코가 툭 튀어나왔으며,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를 통틀어 wizard라는 단어의 용례를 크게 바꿔 버린 이력이 있다. 자기 컴퓨터 프로그램 UI 요소 이름을 '마법사'라고 붙였기 때문이다. '다음', '다음' 누르면서 몇 가지 선택만 하면 나머지 작업은 마치 컴퓨터가 마술을 부리듯이 짠 알아서 해 준다고..;;
그거 원조가 1994년 Word 6.0에서 도입된 문서 작성 마법사(정확히는 문서· 양식마당 같은 기능)이다. Visual C++에서도 초기 프로젝트를 세팅해 주는 기능의 이름이 AppWizard이다.

5. 토마토와 감자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즐겨 보는 Doom 2 플레이 동영상 시리즈 채널이 있다. 중계를 하는 아저씨가 말을 참 찰지게 잘했다. replenish the ammo (탄약을 보충) 이런 말도 하길래 지금까지 성경에서 문어체로만 보던 replenish가 현대에도 구어에서 저렇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양반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시뻘건 둥근 몬스터 Cacodemon을 토마토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big red tomato랜다.. ㅋㅋ 카코데몬이 토마토라니.. 완전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리고는 비슷한 계열의 갈색 몬스터인 Pain Elemental을 감자라고.. potato라고 불렀다. 한국어 내지 한글 표기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영어로는 감자와 토마토가 묘하게 롸임이 잘 맞는 단어들이다. =_=;; 유전공학에서도 괜히 pomato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니다.

하긴, 스타크래프트에도 비슷한 예가 있으니, 바로 템플러 두 기가 합체한 아콘이다. 빨간 공(다크 아콘), 파란 공(그냥 아콘) 둘을 싸잡아서 전구 러쉬라고도 하는데 꼭 리버처럼 특정 동물이나 벌레를 닮지 않은 아닌 유닛도 이렇게 애칭이 존재하는가 보다.

6. 어휘 병렬

난 초월번역 때문에 퍼진 이런 유행어들을 좋아한다. '찢고 죽인다'(rip and tear), '크고 아름다운', '힘세고 강한'(mighty fine...??)..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는 딱히 초월번역은 아닌 것 같다.
awe는 성경에서도 fear와 비슷하지만 좀 더 놀라움과 존경(대단하게 여김)의 뉘앙스가 가미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유의어를 대구· 병렬해서 의미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성경에서 문학서 위주로 즐겨 쓰이는 수사 기법이다.
우리말에서는 기도할 때 많이 쓰이는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이것도 비슷한 용례일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해 주술 호응이 어법상 좀 안 맞긴 하지만 말이다.

병렬과 대구는 유의어로 할 수도 있고 반의어로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수학을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수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 계열 과목을 덩달아 좋아하고 잘한다면 그건 뭐 뼛속까지 이공계 적성일 것이다. 이런 건 일종의 유의어 병렬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이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도 덩달아 갖고 있는 격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수학을 좋아하는데 극도의 추상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그 다음으로 철학이나 신학(...)으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파스칼은 대표적인 예이며, 아이작 뉴턴도 물리뿐만 아니라 저 바닥으로도 사상이 장난 아니게 심오하고 책도 많이 쓴 사람이었다.
이런 건 반의어 병렬인 걸까? 미국인이 호주나 일본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7. 영화 대사

(1) 범죄도시 영화에 나오는 '진실의 방'과 '전 변호사'
이말년 씨리즈에 나오는 '존대말 학습기'
가혹행위 고문 도구일 뿐인데 쓸데없이 병맛 고퀄의 이름을 붙여 놓은 예가 또 뭐가 있을까?
이런 거 나오면 재미있다. 범죄도시에 나오는 '휘발유와 경유'는 둘리에서 '핵폭탄과 유도탄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배우는 언어 예절은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When someone says 'hi,' it's usually polite to say 'hi' back. (테이큰.. 끝날 때 다 돼서)
  • You forgot to say 'please'. (터미네이터 2 첫부분..)

정말 기가 막히게 대사를 쓴 것 같다.. ^_^
특히 후자의 경우, 그 마초 아저씨는 자기에게 대뜸 "오토바이, 재킷, 구두 좀 내놔"라고 요구하는 벌거벗은 청년에게 담배빵까지 선사하면서 참교육을 시도하지만, 상대는 터미네이터인지라 교육이 통하지 않고 자기가 쳐발렸다..;; (아 그나저나 벌거벗은 남자에게 담배빵이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과 비슷한 장면이네..!! ㅋㅋㅋ)

(3) 내가 타이타닉 호 내지 영화 타이타닉 얘기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걸 언급한 적이 없었구나. 칼의 집사이며 흥신소 탐정 출신의 '러브조이'는 악역인데 왜 이름을 하필 성경적인 심상이 굉장히 강한 '러브조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는지 궁금하다.
갈 5:22가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 첫째와 둘째가 바로 사랑, 기쁨(love, joy)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peace, longsuffering 등이 이어진다.

영화를 본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본인은 오로지 칼만이 속물 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원리 원칙대로라면 타이타닉은 음행을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정당화· 미화하는 색채가 짙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칼은 싫지만 칼의 다이아몬드 선물은 싫지 않았던 로즈의 행동도 역시 비판받을 점이다. -_-;; "과속 칼치기 vs 차로 안 지키기"만큼이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관점이 약간 바뀌었다.

8. 나머지..

  • '자급자족'과 '자업자득'은 용도와 뉘앙스가 굉장히 다른 사자성어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의외로 구분이 쉽지 않은 게 느껴진다...;;
  • 망치와 마치, 갯벌과 개펄.. 이렇게 원래는 발음이 미묘하게 다르고 뜻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구분이 없어져 버린 말의 예가 더 있을까? 돌과 돐도 비슷한 경우이겠다.
  • 동물 중에도 이리와 늑대(wolf), 부엉이와 올빼미(owl) 같은 건 구분이 꽤 애매하다.
  •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안에 있는 놀이공원이고, 반대로 롯데월드는 놀이공원인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포함한 복합 시설의 총칭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둘을 섞어서 아무 명칭이나 놀이공원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2 08:31 2018/01/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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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순의 차이

성경 용어만 해도 ‘그리스도 예수’랑 ‘예수 그리스도’는 용례와 의미가 서로 미묘하게 다르고 kingdom of heaven과 heavenly kingdom (딤후 4:18)은 다르다.
수학에서 '제곱근(=루트) 2'는 그냥 1.414...로 시작하는 양의 무리수 하나이지만, '2의 제곱근'은 말 그대로 방정식 x^2=2의 근을 모두 나타내므로 양수와 음수를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도 예전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듯이, C++에서 new operator와 operator new는 다르다.
전자는 말 그대로 객체나 배열을 heap 메모리에 동적 생성할 때 사용하는 new 연산자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두 단어의 순서를 바꿔서 ‘operator new’라고 하면, new 연산자가 메모리 할당을 위해 내부적으로 호출하는.. C로 치면 malloc 같은 함수를 가리키게 된다.
또한 function template이라고 하면 클래스 템플릿과 달리 함수 형태로 선언된 템플릿이고, template function은 그 템플릿에다가 템플릿 인자가 주어져서 실제 코드가 생성된 함수를 뜻한다.

이런 예가 언어학에도 있다. isolating language는 형태 구조상의 고립어를 말한다. 중국어 같은 언어. 영어도 이제 굴절이 하도 무뎌졌다 보니 이 정도면 많이 고립어처럼 된 거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그 반면 language isolate는 계통 분류상으로 유사 언어를 현재로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고립어, 언어계의 ‘은행나무’ 같은 특이한 유아독존 언어를 말한다.

그리고 한국어가 그런 유별난 위치를 차지하는 것에 우리 반도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도록 하자. =_=;; ‘우랄 알타이 어족/제어’처럼 한국어도 공통 조상이 있고 타 언어들과 같이 분류 가능할 거라는 가설은 현재로서는 근거 부족으로 인해 부정되고 있는 추세이니까.

물론, 일본어도 굉장히 유별나긴 하지만 걔들은 화자가 많고 여러 지역에 바리에이션이 있기 때문에 작게나마 자체적인 ‘어족/언어군’을 형성할 정도는 된다.
한국어는 그 정도까지 안 되지만 그래도 남한이 선진국 말석 정도는 차지하는 강소국이고, 다른 모든 소수 고립어 화자들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화자를 보유하고 있는 특이한 고립어이다.

끝으로, 우리나라 지명에도 어순 장난의 끝판왕이 대전에 있다. 서대전네거리역, 서대전역네거리, 서대전네거리..;;;가 모두 서로 다른 장소이고 버스 정류장 이름이기도 하다.

2. 고속버스 터미널

지금으로부터 1년 남짓 전인 2016년 8월경에 서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의 공식 명칭이 터미 “날”에서 “널”로 드디어 바뀌었다.
고속버스 타고 서울 올 때마다 굉장한 옛날 스타일의 간판 글씨체와 더불어 ‘날’이 참 압박스럽긴 했는데, 이제야 손을 봤나 보다.

그런데, 저기 말고 여전히 ‘날’이 활발히 쓰이는 곳이 있긴 하다. 바로 맥도 “날” 드.
원어 발음상으로는 둘 다 동일한 소리이다.
ㅓ와 ㅡ 사이의 미묘한 그 어눌한 중모음, 모음 삼각도에서 정중앙에 위치한 일명 ‘슈와’이다. 이마저도 워낙 약하게 발음되기 때문에 사전에 따라서는 이탤릭으로 표기하거나 아예 생략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실제 발음은 상관없이 스펠링이 A니까 ‘날’이라고 적었던가 보다.
사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이 처음 생겼던 1980년대는 컴퓨터조차도 ‘콤퓨타’ 이러던 시절이었다. 배터리 같은 것도 없고 ‘밧데리’가 있을 뿐이었지. 지금으로서는 ’-읍니다’ 만큼이나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3. 어휘를 구성하는 글자

어떤 개념을 나타내는 두 글자짜리 한자어가 있는데, 그 개념을 더 실질적으로 가리키는 글자는 둘 중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원소 '유황'(sulfur). 흔히 '황'이라는 글자 자체가 저 원소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황'은 그냥 '노랑'이라는 뜻일 뿐으로, 동음이의어 변별을 위해 덤으로 붙은 말에 가깝다. 금을 '황금'이라고 수식해서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원래는 '황' 대신 앞의 '유'(硫)가 진짜 sulfur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H2SO4라는 용액도 옛날에는 '황산'이 아닌 '유산'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황'이 '유'를 완전히 대체한 상태이다. 다만, 유황은 황산이나 황금과 달리 황이 앞에 붙지 않았는지는(황유..!) 잘 모르겠다.

그리고 본인이 꽤 재미있는 예를 또 찾은 것은 '명령'(command, instruction)이다.
"어명이오~!" 할 때는 '명'에도 명령이라는 뜻이 있으며, 이는 국어사전에도 '준말'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명령의 뜻을 가진 것은 뒤의 '령'(令)이다. 법령, 시행령, 포고령 등..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로 유명한 태조 왕건 80회 장면을 보면.. 궁예의 명령대로 신하를 죽이는 '금대'라는 장수가 하는 말이 대본상으로는 "폐하의 명이시니라. 눈을 감아라"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TV에 방영은 "폐하의 영이시니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갔다. 흥미롭지 않은가?

command는 명령으로, instruction은 지령으로, direction은 지시 정도로 번역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 어차피 일본식 한자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령'을 내리는 주체도 이상한 곳인 경우가 참 많다 보니 '동무, 인민'만큼이나 쓰기가 참 민망해져 가고 있다.

4. 며칠, 너머 등

우리말에는 '맞다'가 동사· 형용사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부사· 명사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단어가 좀 있다. 대표적인 예는 '모두'이고, '서로'(상대방), '스스로'(자기 자신)도 좀 비스무리하다.
멀쩡한 부사 단어를 명사로 써서는 안 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는 국어 운동가 내지 연구자도 있지만 썩 먹혀들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넘다'라는 용언에 연결어미 '-어'가 붙은 활용형 '넘어'는 이게 통째로 명사로 쓰이기 때문에 사전에도 소리 나는 대로 풀어 쓴 '너머'가 등록되어 있다. "저 산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저 강 건너에는 뭐가 있을까?"처럼 다른 유사 동사를 갖다붙여서는 말이 되지 않으니, '넘다'에만 저렇게 독특한 바리에이션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들 사망과 관계가 있는 단어이긴 하다만, 무덤(묻다), 주검(죽다).. 그리고 '설거지'(설겆다)도 어원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있다. '굳다', '붓다', '웃다', '눋다' 등 다른 단어들을 살펴봐도 '-엄'이 붙은 활용례를 도통 찾을 수가 없으니.. 저건 생산성을 상실한 죽은 단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들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을 그냥 귀차니즘이나 맞춤법의 퇴화라고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단어는 언제까지나 합성어 형태로 남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더 쪼개지지 않는 형태소인 것처럼 간소화도 돼 있어야 그게 또 다른 합성어의 부품으로도 쓰일 수 있고, 더 복잡한 개념을 나타내는 데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킬로그램조차도 너무 복잡하다고 "머리 자른다", "20키로" 이러는 게 인간이다. '머리카락'이 '멀칼' 이런 식으로라도 굳어졌다면 굳이 "머리 자른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합성어를 '게센', '프레스테' 제멋대로 잘도 짜르는 걸로 유명하며, 영어권에서도 로봇은 그냥 bot으로, 애플리케이션은 app으로 잘만 짤라서 AppStore 같은 단어도 만들어서 쓴다.

띄어쓰기(한 번, 한번 같은..)와 저런 표기 방식(넘어, 너머)이 한글 맞춤법에서 참 어려운 떡밥인데..
'며칠'은 '몇 주, 몇 개월'과는 달리, 통념상 한 단어로 굳어진 듯하다는 이유로 붙여 쓴다. '큰코다치다'를 한 단어로 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품사(너머)나 뉘앙스(한번) 같은 거 따질 필요 없이 '몇 일'을 쓸 것을 기계적으로 '며칠'이라고 대체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5. 사이시옷이 아닌 표기

한글에서 받침 ㅅ은 한국어의 사잇소리를 표기할 때, 그리고 외래어에서도 음절말 D, T 발음 같은 걸 적당히 표기할 때 굉장히 즐겨 쓰인다. 그런데 이런 관행에만 너무 익숙해지면, 단어의 최소한의 어원을 생각하지도 않고 ㄷ 받침 소리를 몽땅 ㅅ으로 잘못 표기하기 쉽다.

  • '옛다'가 아니라 '옜다'가 맞다. 굉장히 의외이고 본인도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 이 단어는 '예'(yes? old?)라는 형태소와는 전혀 관계 없이, 단순히 "여기 있다"의 준말이기 때문이다. ㅆ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있다'를 생각하면 된다. '옜'은 안 그럴 것 같지만 나름 KS X 1001 완성형에도 포함돼 있는 문자이다.
  • '반짇고리'도 무슨 '반지+고리'의 합성어가 아니라 '바느질'이 줄어든 형태이기 때문에 ㅅ 받침이 쓰이지 않았다. '숟가락'이 '술+가락'의 축약· 합성어이기 때문에 '숫가락' 대신 '숟가락'으로 적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그나저나 반지와 고리.. 영어로 둘 다 ring인 게 흥미롭다.

6. 기타 표기

  • 개인적으로 '소시지'가 맞는지 '소세지'가 맞는지 종종 헷갈리곤 했다. 최근에는 안 헷갈리는 노하우를 터득했는데, 그건 바로 '메세지'가 아니라 '메시지'라는 걸 떠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똑같이 i 발음이다. 본인은 '메시지'는 혼동한 적이 없다.
  • 영어로 된 흑인영가 찬송가를 하나 듣고 있었는데.. 웬 "길르앗에 폭탄?" 이게 무슨 말이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알아봤더니.. 아~ BOMB이 아니라 BALM이었다. '길르앗의 향유'는 성경에서 유명한 물건이다. (렘 8:22, 렘 46:11)
    발음은 [ba:m]으로 둘 다 동일한데, 각 단어가 제각기 B, L이라는 기괴한 묵음도 있고 철자가 이상하다.
  • 그러고 보니 형용사화 접미사 -al이 붙은 영어 단어에서 끝의 L만 빼서 고유명사를 만든 예가 한국과 일본에 하나씩 있다. 기아 자동차 포텐샤(Potentia), 그리고 버추어(Virtua) 파이터. 어째 이런 것도 우연인가 싶다.

그리고, '브로더번드'라고 먼 옛날에 그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배급했고, 그것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배너매니아(BannerMania)를 개발· 판매하기도 한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있다. 지금도 회사가 살아는 있는 모양이다.
얘는 영문 표기가 Broderbund이다. 뭔가 '브라더'스러운데, 실제로 저 이름은 "band of brothers"에서 어순과 어감을 적당히 변조한 신조어라고 한다. (이거 무슨 SK 브로드밴드도 아니고..)

단, 더 정확한 공식 표기는 그냥 o가 아니라 사선이 쳐진 ø이다. 스펠링까지 미묘하게 이렇게 바꿨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컴퓨터 키보드로 치기 어렵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o를 쓰기도 하며, 초창기엔 발음조차도 '로'냐 '루'냐 혼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래아한글은 공식 명칭 표기에 컴퓨터에서 입력하기 쉽지 않은 옛한글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편의상 '한글'이나 '한/글'이라고 이름을 표기하기도 했으며, 공식 명칭을 '혼글', 심지어 '훈글'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었다. 브로더번드의 경우 라틴 알파벳 문화권에서 딱 그런 현상을 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11/12 08:35 2017/11/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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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평소에는 15년 넘게 개발하고 있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에 대부분의 역량이 집중되기 때문에 타 유명 프로그래머 고수들에 비해 타 플랫폼· 언어· 최신 프로그래밍 기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덜한 편이다. 뭐, 자주 언급을 안 할 뿐이지 직장에서는 아무래도 갑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무엇이건 업무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맛보기 정도는 한다. 다만 그런 생소한 분야는 본인이 특장점이 없이 그냥 여느 평범한 프로그래머 A, B의 역량과 다를 바 없다.

먼 옛날에 Windows API와 MFC, Visual C++를 처음으로 공부할 때 그러했고, macOS나 안드로이드 개발을 처음으로 익힐 때도 마찬가지이다. 코드와 리소스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감을 잡는 게 참 어려웠다. 이건 그야말로 프로그래밍 언어뿐만 아니라 각 플랫폼별 바이너리 실행 파일(DLL/EXE)의 구조, 개발툴의 기능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리소스(대표적으로 대화상자/화면 레이아웃)의 기술을 위해 XML을 쓰는 요즘 플랫폼에 비해, Win32 API의 rc 파일은 정말 구닥다리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resource.h와 R.java처럼 개념상 일말의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도 있다(개발툴이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리소스 ID 리스트).

또한 안드로이드의 경우, 굉장한 뒷북이긴 하다만 Eclair니 Froyo니 하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개발 환경이 몇 년 사이에 정말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이클립스를 쓰는가 했더니 Android Studio라고 전용 개발툴로 진작에 갈아탔으며, 무엇보다 에뮬레이터도 x86과 arm이라는 엄청난 CPU 구조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속도가 꽤 빨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구글 내부에서 안드로이드 OS에만 달라붙어 있는 세계구급 날고 기는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며, 이들이 매일 생산하는 코드의 양은 또 얼마나 될까?

2010년대 이후에나 등장한 IDE가 copyright이 왜 엄청 옛날인 2000부터 시작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이건 그 옛날부터 개발되어 온 타 회사의 IDE를(이클립스 말고) Google이 인수해서 자체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으음..

이럴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인데, 새로운 문물이나 지식을 아주 빨리빨리 잘 익히고 남에게 가르치는 것까지 가능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부럽다. 난 굳이 말하자면 애초에 남이 안 하는 짓을 골라서 하는 일에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정보 올림피아드도 공모 부문에서만 입상하고, 코딩과 논문으로 그럭저럭 지금까지 지내 왔다.
그게 아니라 남과 똑같은 조건에서 뭔가를 빨리 달달 외우고 응용하는 능력이라면 본인은 남들 평균보다 못하면 못하지 결코 뛰어나지는 않다.

컴퓨터 쪽에 우글거리는 수많은 고수 괴수들 중에.. 김 상형 님이라고 한때 winapi.co.kr 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했고 지금은 '소프트웨어 공학'을 일본어 스타일로 축약한 '소엔'이라는 사이트로 여러 유용한 프로그램 개발 정보를 무료로 공유 중인 대인배가 계신다.
사이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한때 이분의 전문 분야는 Windows API였다. 텍스트 에디터를 그냥 C++만으로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고, 그 테크닉을 소스까지 통째로 책을 출간한 바 있다..;;

한 분야의 기술만 통달하기에도 벅찬데 이분은 안드로이드, HTML, 자바스크립트 등 온갖 분야를 다 탐독해서 책을 쓰고 학원 강사로 뛰고 있다.
그냥 위에서 내려오는 회사 업무나 감당하기 위해서 여러 기술들을 찔끔찔끔 서바이벌 수준으로 익히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남을 가르치고 책을 쓸 정도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혼자서 도대체 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한 걸까? 비결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강의와 저술만으로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분들은 굳이 회사 들어가서 조직에 매일 필요가 없다. 물론 프리랜서는 월급쟁이보다야 소득이 훨씬 불안정하고 복불복이 심하다. 보통은 자기 친구들에게도 "걍 회사에서 월급 받으며 지내는 게 짱이야, 아무리 엿같은 동료나 상사가 있더라도 어지간해서는 거기서 절대로 뛰쳐나올 생각 마라" 이렇게 권유를 할 정도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엄청난 능력자라면 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면서 자유롭고 편하게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가 나왔으니 영어도 빠질 수 없다.
지금보다 자료 접근성이 훨씬 열악했던 옛날에 독학으로 이를 악물고 영어를 마스터해서 198, 90년대에 이미 유명 영어 교재의 저자로 등극한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 은경 어린이 영어, 오 성식 생활 영어/pops English, 김 인환, 정 철 ... 그리고 최근에는 Arrow English로 유명한 최 재봉 이런 분들.

난 무슨 영문과 교수나 영어 교사, CNN 리포터-_-;; 이런 거 지향하는 게 아닌 이상, 국내에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는.. "반도 토박이치고는 뭐 그럭저럭 하네" 딱 그 정도까지만 영어가 된다. 자막 없이 영화를 다 알아듣거나, 토익 만점 이런 경지는 아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나이는 자꾸 먹고 있는데 영어를 당장 쓸 일은 없으니 감이 점점 쇠퇴-_-하는 중이다.
도무지 들리지가 않는 것, 그리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독해 속도를 도저히 더 올릴 수 없는 건 그냥 내 머리의 한계인 것 같다.

영어를 잘하려면 뭐 영어식 사고방식과 어순 감각을 익혀야 되고 무슨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은 그냥 기초가 없고 첫 단추부터 완전 잘못 끼운 생짜 영어 포기자한테는 꽤 유효한 조언일지 모른다. 영어 점수 2~30점을 6~70점으로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90점을 95점으로 올리는 건 무리임. 저런 기초적인 문법과 어순 감각은 이미 다 갖춰져 있고, 거기서 상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 가려면 그냥 닥치고 영어라는 빅데이터에 수시로 많이 노출돼서 감을 유지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외국 어학 연수는 개나 소나 아무나 가는 게 아니라 딱 이 정도 기초가 갖춰진 애들이 가야지 효과가 높아진다.

그런데, 저런 여러 영어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영어 마스터 비결은.. 학창 시절에 영어 교과서 텍스트들을 몽땅 통째로 암송· 암기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언어에는 굉장히 무작위하고 arbitrary하고, 그냥 문맥이 곧 용례를 결정하는 그런 정보가 많다. 암송· 암기는 학습자에게 괴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거 효력은 확실한가 보다.
나도 테이큰의 전화 통화 대사 40초 분량은 통째로 줄줄 외우고 있긴 하다만.. -_- I don't know who you are ...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같은 거.. 그런데 영어를 잘하려면 그런 거 암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일본은 개개의 국민들이 다 영어를 못 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번역을 엄청 많이 잘 해 놨다고 그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들이 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번역을 깔끔하게 잘한 것도 아니니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끝으로, 어려운 과목의 끝판왕인 수학이 있다. 수학은 영어와 달리 유행을 별로 안 탄다. 한편으로는 노력한 만큼 그대로 결과가 나오는 참 정직한 과목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타고난 머리 지능빨을 타니 불공평한 면모가 느껴지기도 하는 과목이다.
수학에는 '정석' 책 하나로 그야말로 억만장자가 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 있다. 물론 이분 역시 머리가 공부벌레 괴수급이었으며, 굳이 책 안 쓰고 학원과 과외 강사료만으로도 그 옛날에, 겨우 20대 나이로도 왕창 잘나갔을 정도로.. 비범했다.

그런 정석의 저자가 말하는 수학 잘하는 비결은.. 수학은 처음에 느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계산해 보고 손으로 일일이 쓰면서 감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감이 생겨 있지 않은 사람이 눈으로만 보고 넘어가서는, 그리고 덥석 해설과 풀이를 봐서는 진짜배기 수학 실력이 절대 늘 수 없다고.. 참 너무 원론적이고 당연한 조언을 한다. 그건 게임으로 치면 그냥 무한 맵에 치트키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저 말을 프로그래밍에다가 적용하자면.. 일일이 직접 코딩해 보고 돌려 봐야 실력이 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 점은 본인 역시 적극 동의한다.
아무 감도 없는 사람이라면 노가다 코딩이라도 해 봐야 된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해 봐야 노가다 코딩을 왜 '노가다'라고 부르는지 그것부터 좀 알게 된다.

개발자, 프로그래머로 먹고 살려면 솔까말 트리 구조 순회 같은 재귀호출을 스택 배열로 직접 구현하기, 포인터 조작으로 연결 리스트의 원소 배열을 역순으로 바꿔치기 정도는 머릿속에서 로직이 어느 정도 암산이 돼야 하고, 굳이 컴퓨터가 없이 화이트보드 앞에서도 의사코드를 쓱쓱 적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실, 유수의 IT 업체들이 학-석사 급의 엔지니어를 뽑을 때 코딩 면접도 딱 이 정도 수준의 난이도가 나온다. 무슨 "B+ 트리를 구현하시오, 동영상 압축 알고리즘의 모든 과정을 설명하시오"가 아니다. 그리고 크고 유명하고 재정 넉넉한 기업일수록 당장 현업에서 쓰이는 HTML5니 자바스크립트니 언어 문법 지식보다는 저런 미래의 잠재성과 응용력, 새로운 기술을 더 본다. 능력 함수에서 현재의 f(x) 값보다 도함수 f'(x)를 말이다.

다시 말해, 최신 자바스크립트나 HTML5 API 지식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당장 그런 걸 모르는 사람도 OK 하고 뽑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입사했더라도 현업에서 그런 것쯤은 30분 만에 즉석에서 공부하고 숙달될 능력이 있으니까 뽑는다는 뜻이다. 요구 사항이 훨씬 더 고차원적이다.

컴공과 수학의 관계는 어떨까? 물론 완벽하게 동치는 아니다. 기하 알고리즘을 구현하고 있는데 삼각형 넓이나 세 점의 방향을 구하는 공식, 3차원 공간에서 두 벡터에 대한 나머지 기저를 구하는 세부적인 외적 공식 같은 거야 당연히 까먹을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이 안 나면 당장 검색이라도 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될 것 없다.

단지, 수학은 그렇게 문제를 쓱쓱 풀어 나갔던 경험, 단 한 가지 경우라도 놓쳐서는 안 되고 논리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그 관념이 나중에 프로그램을 짜는 데 낯설지 않은 정신적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관념이 오로지 반드시 학창 시절의 수학 문제 풀이를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기본적인 머리가 있고 필요를 느끼면 결국은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적응은 하게 돼 있다.

어휴.. 나도 말은 이렇게 써 놨지만.. 당장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어려운 문제를 대면하면 이게 도대체 지금까지 수업 시간에 배웠던 기본 수학 공식이나 법칙과 무슨 관계가 있고 무엇부터 적용해야 할지 막막한 게 많다. 맨날 이런 기억과 경험만 쌓이다 보면 그 누구라도 수학이 싫어질 수밖에 없고 수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_-;; 세상에는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던 시절에 그런 문제를 생각해 내고 '만든' 사람도 있구만.. 참 자괴감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22 19:35 2017/10/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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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언어 관찰 메모

1. '값'과 두 값의 '차이'

C/C++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두 포인터의 차이는 정수로 계산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를 보면 속도의 차이와 당장 지금 위치의 차이, 그리고 어떤 특정 값하고 두 값의 차이 같은 개념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쓰는 어휘가 많은 걸 알 수 있다. 수학으로 치면 전자는 f(x)의 값이고 후자는 도함수 f'(x)의 값과 얼추 비슷하겠다.
예전 글에서 이미 언급한 아이템도 있겠지만 그런 예들을 한데 다시 늘어놓아 보았다.

- 시각과 시간: 두 시각의 차이가 시간이다. "현재 시간은?"이 아니라 "현재 시각은?"이 맞다(What time is it now?). 그런데 일단 만능 세계어 영어부터가 time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 안 하긴 한다. time table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학교 '시간표'야 '9시부터 10시까지 1교시' 시간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숫자만 쭈욱 늘어서 있는 열차 운행 스케줄은 명백히 '시각표'라고 해야 맞다. "9시 정각 서울 발차, 9시 10분 영등포 도착, 9시 11분 영등포 출발" 같은 각각의 시각이 중요하니까..

- 빠름과 이름, 느림과 늦음: 현재 9시 10분인데 시계가 13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시계가 3분 이르다고 해야 원칙적으로 맞다. 빠른 건 그 시계의 무브먼트가 문제가 있어서 가만히 놔두면 1시간이 아니라 59분 30초 만에 1시간치 눈금이 흘러갈 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빠름'의 결과로 인해 시계의 표시 시각이 언젠가 '일러질' 수 있을 뿐, 빠름 그 자체는 지금 당장 시계 바늘이 어느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 수와 번호: 숫자는 수량을 나타낼 때도 쓰고 무언가를 그냥 식별할 때도 쓰인다. 영어로는 똑같이 number. 그래서 성경에서 짐승의 수 666이 수량와 번호 중 짐승의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숫자인지 알쏭달쏭할 때가 있다.

- 째와 번째: 일단 영어의 nth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우리말은 그냥 '째'이다. '번째'는 nth time이다. 허나 '째'라고만 하면 자꾸 단순 순서 이상으로 서열, 랭크의 느낌이 강해서 요즘은 앞에 '번'이 구분 없이 쓸데없이 자꾸 끼어 들어오는 것 같다.

- 음고와 음정: 두 음고(pitch)의 차이가 음정일 뿐이다. 음정을 영어로는 interval이라고 하니 이보다 명확할 수 없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에는 조를 높이거나 낮추는 버튼의 이름이 그냥 '음정 -+'이다. 음높이를 정확하게 맞춰서 노래를 못 부르는 음치를 보고 음정이 안 맞다고 그런다.
용어의 쓰임이 '시각'과 '시간'만큼이나 뭔가 좀 이상하다..;; 과학 실험에다 비유하면, "측정값이 안 맞다."가 아니라 "오차가 안 맞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두 백분율(퍼센트)의 차이는 퍼센트 포인트이다. 20%이던 것이 50% 증가하면 30%가 되지만, 50%포인트가 증가하면 70%가 된다. 훌륭한 액션 영화 테이큰에는 "Your arrogance offends me. For that the rate just went up 10%."라는 대사가 있는데, 상납금 요율이 진짜 1.1배 상승인지 아니면, 실제로는 10%에서 또 10%포인트가 상승한 20%를 가리키는지 문맥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20%로 협상이 마무리 되니까 말이다.

2. 힘은 빛을 만든다

'힘'이라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고 뜻의 표현 범위가 넓은 단어이다. 영어로 하면 보통 power, strength가 떠오르고, 과학에서 사용하는 질량 곱하기 가속도로서의 힘은 force이다.
이 힘은 찰나의 순간에 가속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힘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힘이 쌓인 거리가 곱해진 '일'인 경우가 많다. 마력수가 높은 엔진을 흔히 힘 좋은 고성능 엔진이라고 하는데, 마력이 괜히 단위 시간당 '일률'인 게 아니다. 마치 질량보다는 그게 발현된 형태인 무게· 중력이 더 친근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런데 이런 단어 말고 might도 평소에 동음이의어인 조동사로 하도 많이 쓰여서 그렇지 사실은 '힘, 세력'을 뜻하는 단어이다. mighty라고 '강한, 힘센, 힘 있는'이라는 형용사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마이티 마우스, 현대 자동차 트럭 마이티처럼.
유명한 왈도체 표현인 "힘 세고 강한 아침"도 Mighty fine morning인 거 잘 알려져 있다.

음절초에 파찰음이 없어서 딱히 힘 있게 들리지는 않지만, 얘는 마초 액션물에서도 은근히 종종 볼 수 있는 단어이다.
모탈 컴뱃의 격파 시험 Test your might!
그리고 둠 코믹스에서 Might makes light! "힘은 빛을 만든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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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문구인 독일어 Arbeit macht Frei에서 단어만 바꿔서 Macht macht Licht를 떠올리게 한다. 독일어는 공교롭게도 '힘' 명사와 '만들다, 행동하다' 동사가 동음이의어이다..;;

3. 형용사 no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 싶은데, 한국어는 부사와 용언(동사)을 좋아하는 언어이고 영어만치 명사를 이것저것 수식하는 관형어 쪽은 훨씬 덜 발달해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어는 영어로 치면 형용사 more, less, no 따위에 동일한 품사로 대응하는 어휘가 없다. 그래서 '더/덜'은 체언이 아닌 용언에만 붙을 수 있는 부사이고, '없다' 역시 용언이다. 이거 영어와 한국어 사이의 굉장히 큰 차이이며, 상호 번역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다. 단적인 예로 Oh no! More lemmings 같은 게임 타이틀을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시겠는가?

그래서 한국어는 None, nobody라든가 더 나아가 void 같은 단어도 한 단어로 대응하는 번역이 없으며 기껏해야 '없다'에다 명사형 전성어미가 붙은 '없음', 또는 한자어 無 접두사로 비슷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단, 반대로 영어는 '없다', '모르다' 같은 용언이 용언 형태로 딱 떨어지게 있지는 않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모르다'가 한 단어 동사로 존재하는 언어는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 모국어인 한국어밖에 못 봤다. 기억이나 지식이 없는 게 무슨 동작과 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구를 아는 것의 반대로 누구를 모른다는 상태를 타동사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편리한 점이긴 하다.

4. out of

하루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한국어로는.. "너그러운 자비의 마음을 베풀어서 자네에게 또 한번 살아남을 기회를 주겠다."라고 번역된 대사가 영어 자막으로는 "Now, out of the mercy of my heart, I will give you one more chance to live a long life."라고 번역된 걸 봤다.
out of라는 건 굉장히 뜻이 많고 추상적인 단어이다. 의미가 반대로 달라질 수도 있을 정도로 뜻이 많아서 문제이며, 성경 번역에서도 이거 의미가 왔다갔다 한다.

컴퓨터에서 out of는 '-없음, -부족'이라는 뜻으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나 역시 Out of memory라는 응용 프로그램 에러 메시지, Out of data in line xx라는 GWBASIC 에러 메시지에서 out of를 난생 처음으로 봤다. 그래서 '아오안'(out of 안중 = 관심없음) 같은 말도 있다.
하지만 out of는 저 영어 자막에서 보듯이 from, among 비스무리하게 뭔가 '출처, origin'을 뜻하기도 한다. "뭔가를 어떤 집단으로부터 밖으로 끄집어냄"에서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해석 방식이 달라진다. 저 문맥에서는 run 같은 동사가 앞에 붙어야 out of가 '고갈, 부족'이라는 뜻이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더는 나도 인내심이 한계가 있거든? 못 참겠거든?" 이럴 때도 당연히 out of patience가 쓰이니 말이다.

또한, out of가 인내심 같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물리적인 장소를 받을 때에도 '-밖에서', '-밖으로'가 다 되는 듯. 의외로 골치아프다.

5. die / be dead

한국어는 영어처럼 완료형· 수동태 같은 게 없거나 발달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사의 일반 과거형이 0에서 1로 바뀌는 그 움직임 자체뿐만 아니라 0에서 1로 바뀌어 있는 그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개가 죽었다"라는 말을 영작하면 "XXX died"가 아닌 경우가 많다. 십중팔구 "XXX is dead"가 맞는 번역이다. 당신이 밥숟가락을 놓았고 저승사자 내지 천사가 "넌 이제 죽었어. 나랑 같이 하늘로 가자" 이런 말을 한다면 당연히 "You are dead."이다.

초점이 숨이 끊어지는 동작이 아니라 현재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어도 '죽어 있다'라고 말을 풀어서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게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어로 "틀렸다"도 영어로는 it is / you are wrong이다. 한국어로 과거 시제 동사인 것이 영어로는 현재 시제 be 동사 + 형용사인 것이다. 하긴, 일상생활에서 '틀린다, 틀리게 된다'라고 저 동사를 현재 시제로 곧이곧대로 쓸 일은 매우 드문 것 같다. 그러니 '틀리다'의 현재 시제의 의미가 자꾸 '다르다'처럼 변질돼 가는 것일 테고.

그 반면, "고인은 2017년 몇 월 며칠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이 게임은 너무 어려워서 나도 다섯 번쯤은 죽은 뒤에야 깰 수 있었다" 이럴 때에는 영어로도 동사 died(혹은 그에 상응하는 경어체 동사)가 쓰인다. 관점의 차이를 아시겠는가?
또한 신학적으로는 예수님 역시 일회적인 죽으심을 나타낼 때 died이다. 그분은 한때 die 하셨지만 언제까지나 be dead는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찾다'라는 단어에도 존재한다. 한국어의 '찾다'는 찾는 동작 자체를 가리키는 seek/look for과, 그 동작의 결과로 인해서 무언가· 누군가와 실제로 연결이 성사되는 find에 대한 구분이 없다.
성경의 "seek, and ye shall find." 그리고 테이큰 대사"I will look for you.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를 생각해 보자. 이게 '죽다'로 치면 "Die, and ye shall be dead"와 비슷한 관계인 셈이다.

6. 그 밖에

(1) 가끔씩 본인은 총에 맞은 건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을 때에나 쓰는 게 맞지 않나(be struck) 생각한다. 날아오는 야구공에 맞듯이 "총알"에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총알이 아닌 총에는 "쏘였다"고(be shot) 말해야 맞지 않을까?
뭐, 한국어는 머리카락을 자른 것을 머리 자른다(!!!)고도 줄여 말하는 언어인데, 총에 맞는 것쯤이야.. 총알도 총의 연장선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다. 다만, 활의 경우는 내 언어 직관이 크게 이상하지 않은 한, 화살에 맞았다고 꼬박꼬박 말하지 활에 맞았다고는 잘 안 그러는 것 같다!

(2) abandoned이나 forsaken을 번역할 때는 '버려진'이라고 잘만 쓰면서 왜 lost를 번역할 때 '잃어버려진'이라고는 선뜻 표현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잃어버리다'는 피동형으로 잘 안 쓰는 게 기독교계 문서 사역 번역계에서 불문율인가 보다. 덧붙이자면, 난 개인적으로 번역투 피동형을 기피한답시고 given도 괜히 주어가 불분명한 능동으로 번역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 영어 같은 외래어가 국어로 들어오면, 원래는 다의어나 동음이의어이던 것이 토착화 과정에서 상상도 못 할 기괴한 방법으로 '구분'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도트(문자 그대로 픽셀 화소. 도트 프린터, 도트 노가다)와 닷(인터넷스러움), 네트(구기 종목 경기장에서 쓰이는 그물망;;)와 넷(역시 IT스러움) 같은 건 대표적인 예이고, 3D조차도 그렇다. '삼디'라고 읽으면 더럽고 어렵고 위험하다는 뜻이고 '쓰리디'라고 읽으면 왠지 삼차원 입체라는 의미가 된다. 물론 3D 업종를 '쓰리디 업종'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 어감상은 느낌이 좀 덜하다.

(4) '물 불 / 맑다 밝다 / 묽다 붉다' 이런 관계를 보면 한국어에도 꽤 오묘한 구석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말소리와 의미가 서로 아무렇게나 형성된 게 아니어 보이기 때문이다.
ㅁ과 ㅂ 계열 음운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대표적인 쌍은 어머니와 아버지(맘마 빠빠..)이다. 가장 발음하기 쉬운 축에 드는 입술소리인 데다 갓난아기가 본능적으로 거의 제일 먼저 구사하는 축에 드는 어휘이다 보니, 저 관계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세계 공통이다. 부/모, papa/mama 등..
그런데 엄마 아빠 말고 물과 불이 관련 심상까지 비슷하게 저렇게 한데 엮이는 건? 한국어 말고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3 08:35 2017/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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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부르는 찬양곡 중에 "찬양하라 내 영혼아"라는 짤막한 곡이 있다.
국내외로 모두 대체로 작곡자 미상이라고 적혀 있고, 국내에서는 '예수전도단 번역'이라고 소개돼 있다. CCM 앨범 중에는 1991년에 나온 주찬양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에서 거의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성경 좀 읽은 분들은 이 곡의 가사가 기본적으로 시 103:1에서 착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절은 시편 구절대로 "찬양하라"인데, 2절은 "감사하라", 3절은 "기뻐하라"라고 뭔가 다른 좋은 동사들로 바리에이션이 있다. 이것은 살전 5:16-18의 3대 권면에서 '기도하라'만 빼고 적당히 가져와서 가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뻐하라'(시 33:1 등), '감사하라'(시 106:1, 107:1, 136:1 등)는 시편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단, 가사의 번역에는 아쉬운 점이 좀 있다. 먼저 1절의 동사는 원래 praise가 아니라 bless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우리말 성경의 번역 관행에 따라 단어를 구분하자면 찬양보다는 찬미, 찬송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한국어 찬송가 특유의 영/혼 혼동도 아쉽다. "내 영혼아"가 아니라 "오 내 혼아"가 되면 음절수가 딱 맞다. 성경 구절에는 감탄사 O가 실제로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 찬송도 후렴이 "내 영혼 평안해" 대신 "내 혼이 평안해"라고 고쳐 주면 교리적으로 더 정확해진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겠는지를 생각해 보자. '내 속에 있는 것들'의 정체는 뭘까? 내 자아? 내 세포? 내 장기? 혹은 병균? 박테리아? '그들의 벌레'만큼(막 9:44, 46, 48)이나 알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성경은 성경으로 풀면 된다. 성경에서 within me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면 답이 나온다.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시 43:5, 시 42:11) 등.

사람의 자아 내지 인격, '나 자신'을 구성하는 것은 혼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몸이라는 껍데기 안에 '혼'이 들어있어서 나 자신이 나의 혼을 제3자 대면하듯이 "내 혼아" 이런 형태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구약 시절에는 교리적으로 몸과 혼이 완전히 밀착해 있었다고 함) 내 속에는 혼도 있고 영도 있고 마음, 생각 등도 있다. 한편, '내 속중심'(bowel)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건 문자적인 신체 장기와 마음(창 43:30, 왕상 3:26)을 모두 가리키더라.

이런 심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내 속에 있는 것들아"가 내포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결국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명령처럼 혼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찬양 악보집에 따라서는 "내 속에 있는 것들아"라는 표현이 생소하다고 가사 자체를 "온 맘과 정성 다하여"라고 고친 물건도 있다.

또한 그냥 in이 아니라 within이기 때문에 '안'이 아닌 특별히 '속'이라고 번역한 듯하다. 둘은 구분이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단어이긴 한데, '안'의 반의어는 '밖'이고 '속'의 반의어는 '겉'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다.

준비 찬송으로 이거 부르면서 '내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 주니 아주 도움 됐다면서 반응이 좋았다.
나 역시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찬송을 회중들에게 같이 부르자고 주문할 수는 없으니 곡들의 배경과 의미에 대한 공부가 필수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성경이 말하는 몸, 혼(soul), 영(spirit)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겠다.
한글 글자판에만 두벌식과 세벌식이 있는 게 아니라 신학계에서도 2분법(몸 / 영혼)과 3분법(몸 / 혼 / 영)으로 해석 노선이 대립하는가 보다.
하지만 본인은 언어· 단어 차원에서 명백하게 다른 개념을 자기가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왜 한데 싸잡아서 일컫는지 모르겠다.

물론 혼과 영은 단순한 언어 직관만으로는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엄밀하게 구분해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성경적으로 혼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대충 영혼이라고 싸잡아서 말하고,
성경에서 영이라는 일컫는 더 추상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성령' 말고는 나머지는 다 그냥 정신, 기운 정도로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Q정전에서 유래된 그 이름도 유명한 병맛 용어인 '정신승리'도 영어로는 spiritual victory이다.

혼, 영에 해당하는 '가장' 가까운 순우리말을 굳이 찾자면 내 생각엔 각각 넋, 얼 정도라고 본다. '넋을 잃다/넋이 나가다/얼이 빠지다/넋을 위로하다' 이런 데에만 쓰기에는 아까운 단어이지만, 지금은 좀 국뽕(우리얼! 말과 글과 얼 ㅋㅋ)이나 동양철학스러운 느낌이 너무 짙어져 버린 것도 사실이다. 정서상 당장 성경 번역에다 반영하자는 말은 아니다.
반도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고 성경이 처음으로 번역됐을 때 성경의 표현이 언어의 용례를 주도해서 정착시켰다면 모를까 지금은 좀 늦은 감이 있다.

단순 어학 사전에서는 이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용례를 찾을 수 없다. soul을 찾아도, spirit을 찾아도 다 비슷하게 정신, 영혼 따위의 풀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넋, 얼을 찾아도 마찬가지이고. 마치 heart-mind, 생각-마음 같은 미묘한 유의어 관계이다.

이런 전문용어들의 엄밀한 구분을 위해서는 어학사전이 아니라 해당 업계의 전문 용어사전을 참조해야 한다.
가령, 국어/영한사전에서 철도 용어인 궤조/궤도/선로, rail/railway/track의 엄밀한 차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 뒤섞여서 제시돼 나오지. 이런 예가 한둘이 아닐 것이며 성경· 신학 용어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엔 spirit이 비인격적인 '정신' 같은 용례가 없지는 않다. 세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보고는 너무 놀라서 멘탈이 붕괴되었다고 할 때 "there was no more spirit in her"이 딱 한 번 있다. 어쩌면 저 숙어 자체가 그냥 관용구인 것일지도..
언행에서 어떤 영이 나왔느냐는 물음(욥 26:4)에서의 영(사람의 영, 짐승의 영, 마귀의 영, 하나님의 영..)도 영 자체에 어떤 인격적인 의미를 부여한 용례는 아니다.

하지만 아합 왕을 꾀어내어 죽이겠다고 말한 것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어떤 영이다(왕상 22:21). 이게 이해가 안 되니 평범한 공포물을 많이 본 현대인들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장면(마 14:26)이나 욥 4:15 같은 장면에서 ghost 같은 '귀신, 유령'을 떠올리며, 심지어 성경조차 그렇게 번역된 경우가 있다.

성경의 표현은 여기서도 그냥 a spirit이다. 영은 살과 뼈가 없는 존재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눅 24:39). 이건 사람이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ghost는 성령님을 나타내는 Holy Ghost가 아니면 다 give/yield up the ghost라고 해서 말 그대로 '숨지다/죽다'에서 '숨'을 의미하는 용도로만 쓰였다. 그 이상 wraith, phantom, spectre 같은 개념은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저런 영들이 사람의 관점에서 gods(신들)라고 일컬어지긴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굳이 콧구멍 두 개, 손발가락 5개 같은 외형뿐만 아니라 사람도 몸· 혼· 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 계층을 이어받았다는 뜻도 있다. 한글 개역성경은 영과 혼 구분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사람의 창조를 설명하는 창 2:7에서 혼을 영으로 뒤바꿔서 번역했고, 짐승에게도 영이 있음을 말하는 전 3:21에서는 영을 혼으로 뒤바꿔 번역한 흑역사가 있다.

복음을 전해서 다른 사람을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행위를 영어로 soul-winning이라고 하는데.. 이게 우리말로는 번역이 완전히 엉망진창이다. 여기서도 멀쩡한 혼을 영으로 바꿔서 흔히 '구령'(口令 말고)이라고 하는데, 동음이의어는 둘째치고라도 명백히 오역이다. 개역성경이 창 2:7의 'living soul'을 '생령'으로 엉뚱하게 번역한 것과 동급의 오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영을 혼이라만 바로잡으면 우리말은 婚과 동음이의어가 되어서 매우 생뚱맞은 결혼 프러포즈처럼 들리게 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어느 동네에서는 win을 문자적으로 번역해서 '혼을 이김/이겨 옴'이라고 자체적으로 말을 만들어 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뜻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저건 더 이상한 번역이 아닐 수 없다.
상을 탔다고 할 때 상을 이겨 왔다고 말하지는 않잖아(win a prize)..;; 트로피나 상장을 발로 잘근잘근 짓이기기라도 하나?

상대편을 무슨 승부를 벌여서 이겼다고 자동사가 아닌 '타동사' 형태로 영어로 말할 때는 beat를 쓴다. win은 대회 이름(win the game)이나 보상을 목적어로 받을 때에나 '이기다'라는 뜻이지, 적군이나 경쟁자를 받는 단어가 아니다. Doom 게임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은 아래의 1994년도 어느 PC 잡지의 문구가 두 단어의 용례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고(win) 싶은 신작 게임이 있는가? 그렇다면 Doom부터 제치고(beat) 올라와라."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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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win에 beat 같은 인격체 목적어가 들어갔다면 그건 남의 마음을 얻어서 내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승리하다'와는 완전히 별개의 의미와 용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이런 것도 영· 혼과 관란하여 언어에 존재하는 혼동의 카오스의 한 예이다.

개인적으로 spirit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본 곳은 페르시아의 왕자 2 게임의 부제 the spirit and the flame이었다.
soul이라는 단어는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아시아의 혼(심장, 눈동자?)' 이라고 자화자찬 홍보를 하는 듯하다. 이거 아니면 쏘울메이트 같은 거.

둠 2의 몬스터 중에는 대놓고 '(구원받지 못하고) 잃어버려진 혼'이 있다(lost soul). 그런데 lost soul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곳은 pain elemental(고통의 근원?)이라는 몬스터이다. 이것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작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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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기독교 카테고리에 넣을지 언어 카테고리에 넣을지 꽤 고민되는 내용이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03 08:33 2017/06/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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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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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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