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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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잔디밭 부지 위에 지어진 하늘색 건물들, 그리고 까리용과 오리 연못.
지극히 카이스트스러운 분위기를 잘 표현한 풍경 사진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올해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3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카이스트 학부생이 무려 4명이나 연달아 자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거기다가 교수까지 한 분 자살!). 몇 년 전의 일명 '카이스트 미네르바' 사건 때는 인터넷 공간 위주로 카이스트가 구설수에 올랐다면, 이번 사건은 정말 개교 이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충격적이고 안타깝고 불미스러운 일인지라 오프라인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되었다.

이 일 때문에 연일 도마에 오르며 까이고 있는 인물은, 카이스트 개혁의 장본인인 서 남표 총장이다. 서 총장 개인은 정말 너무나 대단한 인물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세계구 급의 과학 수재들이 가는 MIT에서 그냥 교수로도 모자라서 학과장을 역임한 박사 중의 박사요, 교수 중의 교수이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이를 두뇌 유출이라고 아까워했다. 서 남표의 인생 경험과 사고방식이라면, 국비로 공부하는 주제에 학부 때 평점 3.0? 3.3도 못 받는 쪼렙들은 징벌성 등록금 좀 매겨도 된다.

내 지론은, 아까운 학생을 4명이나 잡아먹은 서 남표 총장을 당장 짜르고 징벌적 등록금· 영어 강의 따위를 전면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또한, 요즘 대학들의 학점 인플레가 얼마나 심한지는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카이스트의 상대 평가 자체도 반대하지 않는다. 똑같은 CD-_- 그레이드라도 카이스트나 아주대나 서강대에서 받은 CD는 다른 학교의 CD하고는 어차피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건 사회가 알아서 인정해 준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사항은, 그렇게 상대 평가를 하는 주제에 징벌적 등록금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 이건 누가 봐도 문제이다.
그리고 애초에 애들을 오로지 수학· 과학 덕후 공부기계 nerd, geek, science wonk로만 만들려면, 그 정책에 위배되는 애들을 뽑지 말았어야지.
뽑기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서 고등학교에서 영어나 수학· 물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한(?) 애들을 대인배스럽게 많이 뽑아 놓고서는,
걔네들을 별다른 배려 없이 획일화한 시스템에다 꽉꽉 집어넣고 부적응자는 등록금 폭탄으로 응징하는 것도, 매우 잘못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은 의무 교육이 아닌 대학에 대해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철학을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는 지지한다.
그 학교의 건학 이념과 정책에 동의할 수 없으면 학생이 애초에 거길 가지 말거나 나중에라도 자퇴를 해야지,
기독교계 학교에 제 발로 가 놓고는 종교의 자유 운운하면서 채플 거부 시위 따위나 해서는 안 된단 말이다.

그런 것처럼 카이스트도 거기가 얼마나 유별난 곳인지는 지금까지 사회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니 거기에 적응 못 할 사람은 애초에 거기에 안 가야 한다. 생각은 그렇지만 사회가 그렇게 이상적인 모습처럼 단순하게 돌아가지는 않으니 현실은 시궁창이다. 학교나 총장이 잘못이 없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_-;;

카이스트는 원래 대학원만 있는 학교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소수정예 집단이었고, 학생들은 100% 기숙사에 학비 100% 면제는 물론이요, 병역까지 사실상 면제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혜택이 있었다. 프로필이 1970년대의 '서울대 학사, 카이스트 석사, 외국 박사'인 공대 교수들은 전형적으로 이 혜택을 입은 분들이다.1)

하지만 지금 카이스트는 학부도 생겼고 특히 서 총장 때 벌어진 엄청난 대학 몸집 부풀리기 덕분에 학생 수가... 마치 새마을호 정차역 수가 늘듯이(ㄲㄲㄲㄲ) 굉장히 늘었다. 그래서 지금 기숙사가 부족해서 난리이고 이 많은 학생들에게 전액 수업료 면제를 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지금은 근본적으로 1970년대처럼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이공계를 갓 육성하던 시절도 아니요, 그런 옛날 방법만으로 이공계를 획기적으로 띄워 줄 수 있지도 않다. 21세기에는 카이스트의 정체성에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인은 아직까지는 서 남표 식 방법이 근본적으로 나쁘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전임 총장인 로버트 러플린은, 카이스트를 아예 종합 대학으로 바꾸고 로스쿨과 의대를 만들려고까지 했었다. 그것보다는 낫잖아?

수업료 하니까 생각난다. 그렇게도 세금이 아까우시거들랑, 성적 나쁜 애들보다는...
국비로 단물 실컷 빨면서 공부하고도(그리고 그놈의 성적도 아주 잘 나왔는데도!) 의대로 돌아서 버린 친구들한테서나
먹었던 수업료 뱉게 하는 게 국익을 위해서 차라리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_-

하지만 그런 제도는, 우리나라가 부카니스탄 같은 국가가 아니며 카이스트도 이공계 연구소 의무 복무-_- 기간이라도 존재하는 사관학교급이 아닌 이상... 밀어붙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일개 기관이 개인의 차후 진로를 어떻게 일일이 다 찾아다니고 간섭할 수 있겠나?)

또한, 더 생각해 보면 의대 가는 애들 탓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이공계가 얼마나 비전 없고 암울했으면, 어렸을 때 순수하게 과학자의 꿈을 품었던 애들마저 그 꿈을 접지 않을 수 없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서 총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학생상처럼 그렇게 미치도록 애들 공부시켜서 수학· 과학 덕후를 만들어 봤자 한국에서는 겨우 사악한 악당 공 박사(이 말년 시리즈 ㄲㄲ)밖에 되지 않는다면... 과연 학교가 서 총장의 의도대로 돌아가 줄까?
요즘 평범한 애들이 아무 비전이 없이 9급 공무원에 목숨 건다면, 걔네들보다는 더 머리 잘 돌아가고 똑똑한 애들은 의대· 법대에 매달리는 셈이다.

본인의 재학 시절에는 자살자는 아니고 풍동 실험실 폭발 사고 때문에 학교가 제대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기억하는 분이 계시는지? 이 사고로, 박사 과정 대학원생 한 명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또 한 명은 다리를 잃었다. 역시 이공계의 비극.. =_= 항공 우주 공학은 레어템이어서 기계/전자 공학이나 전산학만치 흔하고 학생 많은 과도 아닌데... 인재의 손실에 따른 타격이 어느 과보다도 컸을 것이다. 사망자인 고 조 정훈 씨에게는 명예 박사 학위--훈장이나 일계급 특진은 아니고ㄲㄲ--가 추서되었다.2)

수학· 과학 덕후와는 거리가 멀고 아예 문과로 계열을 바꾼 본인조차도 카이스트를 잘 버티고 졸업해 나왔는데... 자살이든 사고사든, 뜻하던 학업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심히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얼마나 국가적인 손실인가?
본인의 졸업 논문 지도 교수이던 전산과의 ㄱ 교수님도 워낙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다 보니, 이 사건과 관련해서 이분의 인터뷰 문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카이스트 학사 졸업생으로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니, 아마 서 총장은 이 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 같다. 화려한 미국물 프로필, 천재형, 민심을 모르는 독재자형, 누군가가 죽는 유혈-_- 사태, 유쾌하지 못한 퇴임 같은 점에서.


Notes:
1) 카이스트는 국비 장학생이 기본 구도이기 때문에, 대학원을 자퇴하려면 지금까지 면제 받았던 수업료를 뱉어야 한다. 이는 재학 중의 성적과는 아무 관계 없으며 서 남표 집권 이전부터 있었던 제도이다. 학칙을 찾아보면 관련 조항이 있다. 단, 학부는 그런 조건이 없음.

2) 덧붙이자면, 2003년은 국내 과학계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사고가 전국민을 슬프게 했다. 하나는 5월에 발생한 저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그 해 말, 남극 세종 과학 기지에서 전 재규 대원이 순직한 사고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4/12 19:22 2011/04/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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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 남표 총장의 프로필을 읽던 중..
도대체 그의 부친이 어떤 분이기에 무려 1954년에 하버드대 교수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 유학을 갔는지가 당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친 중의 한 명이 미국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몰라 ㄲㄲㄲㄲㄲㄲ 이것도 자료를 찾아봤다.

서 남표의 아버지는 서 두수 박사. 그는 경성 제대와 연희 학교 시절부터 국문과 교수이다가 1949년에 국비 장학생 명목으로 도미하여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국어학/한국학과를 개척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말 충격과 공포이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버지는 골수 인문계이고 아들은 골수 이공계;;
특히 아버지는 국문과 교수도 이렇게 글로벌하게 놀 수 있다는 첫 사례를 남겼음이 틀림없다.

아울러, 미국에서 맨손으로 성공하여 대학 교수에다 동양인 최초의 워싱턴 주 상원 의원까지 역임한 그 유명한 신 호범 의원이... 서 두수 박사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그분은 나의 은사라고 회고했다. 이때 서 박사는 하버드가 아니라 워싱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햐.. 인연이 또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기가 막힌다.
게다가 워싱턴과 하버드는 이 승만 박사가 학사와 석사 코스를 거친 학교이기도 하다. (박사는 프린스턴에서;;)

본인은 2008년에 관광차 미국 갔을 때, 신 호범 의원의 간증 집회에 따라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호칭도 장로였다.
그런데 그때는 죄송하지만 저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잘 몰랐다.. ㄷㄷㄷ;;
짤방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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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금 서 남표 총장에게는 딸만 넷이라고 한다. 그 중 둘째딸은 역시 교수가 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1 08:32 2010/10/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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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를 떠난 교수들 외

본인이 학부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는 서 남표 총장을 주축으로 하여 내부 시스템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나 같은 학생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바뀐 제도도 꽤 되기 때문에, 병특도 휴학이 아니라 일찌감치 졸업을 해 버리고 간 것을 본인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_- (본인은 최 덕인· 홍 창선 원장에서 시작해서 러플린 총장으로 끝난 세대이다.)

본인의 전공인 전산학과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조교수였던 분이 부교수가 되고 부교수가 드디어 정교수로 진급해 있는 것을 홈페이지를 통해 보곤 했다. 또한 ICU가 진통 끝에 카이스트와 결국 합병되면서, 그쪽 인력의 유입으로 인해 예전에 못 보던 교수들 얼굴이 크게 늘었다. 정보통신부가 없어진 게 크게 작용했으리라.

200X년도에 스탠퍼드, MIT 등 굴지의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곧장 카이스트로 온 젊은 신임 교수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제는 교수가 돼도 정년 보장이 옛날만치 쉽지 않고, 주변에 온통 널린 게 천재들 뿐이니 연구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찮을 것이다. 서 총장이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엄청 쪼아대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샌가 카이스트를 떠난 교수도 보인다.
얼마 전엔 우연히 졸업생 조회 웹사이트에서 본인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그랬는데, 본인의 학부 졸업 논문 지도교수였던 분이 지금은 카이스트 교수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뭐, 학부 졸업 논문은 진짜 형식적이었고, 교수님이 내 리포트를 읽어는 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얼렁뚱땅 통과가 되긴 했다. 그래서 요즘은, 학부 수준에서는 졸논을 좀더 실무 위주인 현장 실습이나 졸업 프로젝트로 대체하는 게 카이스트를 비롯한 국내 대학들의 전산과의 추세이다.
처음에 본인의 지도교수는 다른 분이었는데, 나중에 졸논을 쓸 무렵에 여차여차 하다 보니 저 교수로 바뀌었다. 어째서 하필 그분으로 배정됐는지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좀더 검색을 해 보니까, 그 교수님은 고려대로 전근을 가 계셨다. 오홋;;;
호기심에 옛날 교수들 검색을 더 해 봤는데, 굉장히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성균관대에 전직 카이스트 교수가 네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2008~09년 무렵에 한꺼번에 저기로 간 것이었다. 본인은 학부 시절에 그 교수 4인 중 3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어이쿠, 게다가 이것도 나 혼자 뒷북이었다. 성균관 대학교는 스마트폰 열풍 속에서, (그리고 아마도 이 건희 본좌님의 입김으로) 소프트웨어학과를 신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드웨어인 반도체에 이어서 소프트웨어까지 특성화?? 본격 IT 대학으로 거듭나려는 듯.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대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를 한꺼번에 네 명이나 스카웃해 갔으며, 이것은 이미 그 당시에도 큰 뉴스거리로 떠올랐다고 한다.

아마 대전 생활에 신물을 느꼈거나, 서 총장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거나, 반대로 성균관대의 파격적인 처우 제안에 끌렸거나...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분들이 전근 간 게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말:

1.
본인은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오지 않았고 병특 중에도 딱히 군대와 관련된 안 좋은 일을 겪은 적은 없기 때문에,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_-;;; 같은 건 안 꾼다.
하지만 한때는 아래와 같은 판타지 같은 꿈도 자다가 몇 번 꾸긴 했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ISEF에 또 출전하는 꿈 (10년 도 더 전 일을..;; ㅋㅋㅋ)
- 병특을 마친 뒤에 카이스트로 3년 만에 복학하여 졸업 이수 요건 채우느라 고민하는 꿈 (아놔 나 3년 전에 졸업했어-_-)

2.
본인은 주임 교수가 국문과 소속인 협동 과정 대학원에 갔지만 학위 논문의 지도교수는 국문과가 아닌 컴퓨터과학과(전산과의 연세대 학과 명칭) 교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이곳의 교수들은 어떤 분이 있는지 틈틈이 찾아보고 있다. 본인의 코스와는 정반대로 학부는 연세대에서, 석· 박사를 카이스트에서 마친 교수가 한 분 계시는구나. 뭐 학번 차이는 본인과는 이미 까마득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내년부터는 국어학뿐만 아니라 컴퓨터과학과의 대학원 수업도 들을 예정이다. 본격 공학관에도 드나들게 되겠구나.

3.3.
그나저나 내 홈페이지 메인의 공개 사진을 바꿀 때가 되긴 했다. 공중파 TV에 출연한 화면이고, 분장도 아주 잘 돼 있는 데다 자막 내용-_-까지 여러 모로 아주 간지나는 모습이긴 하나.. 벌써 5년도 더 되어 너무 오래 됐고, 결정적으로 본인은 이제 카이스트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TV에 출연한 게, 2006년에 한글 관련 다큐에 출연한 게 마지막이니, 다음엔 철도 관련 다큐에서.. (ㅎㄷㄷㄷ) 자막은 당당하게 '연세대 언어정보학과'라고 말이다. 그런 화면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 듯.

그래도 대전과 카이스트도 언제까지나 내게 제 2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남을 것이다. 일반 대학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카이스트만의 그 학교 분위기와 프라이드(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_-)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19 09:39 2010/10/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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