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비용 치르기

자동차의 불법 주차 문제는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문제와 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눈에 현물이 보이는 컴퓨터 하드웨어나 자동차야 당연히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물건이라는 것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돌아가는 무형의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도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상품이라는 것, 그리고 땅값 왕창 비싼 곳에서 자동차가 상당한 공간을 점유하는 데도 비용 지출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단속만 없다면 불법을 저지르기도 훨씬 더 쉽다. 간단히 프로그램 파일을 복사하는 것이나 길가에 슬쩍 차를 세워 버리는 건.. 가게에 침입해서 컴퓨터나 자동차를 훔쳐서 튀는 것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가히 비교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은 이건 시민 의식이나 법 집행 시스템이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른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다.

2. 본보기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법을 어겼을 때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의를 응징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사람들이 당장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수고도 얼마든지 감수하며,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관념이 있어야 하리라 여겨진다.
가령, 내 돈 100원을 꿀꺽 먹은 공중전화나 자판기를 시정하기 위해서 1천, 1만 원의 시간과 노력과 금전 비용을 소모하며 민원 넣고 난리 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 일상적으로 배출되는 게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리암 니슨이나 차 태식 같은 아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유괴범들은 징역보다 무서운 전기/네일건 고문과 사적 보복이 두려워 범죄를 꺼리게 되며, 덕분에 그 아재 같은 피지컬을 갖추지 못한 아빠들도 덤으로 안심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다. 백신만 집단면역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국가로 가면 이 원칙이 더 절실해진다. 이러니 정상적인 나라라면 소말리아 해적한테는 인질 몸값을 호락호락 주면서 타협 거래를 하지 않는 거다. 반대로 소말리아 해적도 러시아 같은 무지막지한 나라의 선박은 안 건드린다.
동일한 맥락에서, 북괴하고도 돈 퍼주는 거래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다. 법과 상식이 안 통하고 힘에 굴복하는 것밖에 모르는 놈들한테는 저렇게 하는 게 정의 구현이다.

3. 불가피한 상황

세상의 보편적인 법은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라는 걸 인정한다.
자기가 목숨을 부지하려고(= 죽지 않으려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남을 해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으며, 비슷한 맥락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억지로 범죄에 떠밀려서 가담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를 법률 용어로는 '위법성 조각 사유 성립'라고 말하는 듯한데.. 물론 이런 극단적인 예외를 입증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질병을 입증해서 군 면제 받는 게 쉽지 않듯이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너무 배고프고 굶어 죽기 직전이어서 눈이 뒤집힌 나머지, 남의 음식을 집어먹은 사람도 이론적으로는 용서될 수 있다.
하지만 평시에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에서는 그 정도로 막장 상황에 몰린 사람 자체가 극도로 드물며, 또 절도죄를 저지를 체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진짜로 굶어 죽기 직전 상태는 아님을 시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건 여느 정당방위 긴급피난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고 하겠다. 허나, "사흘 굶고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니, 이렇게 진짜로 굶주린 좀도둑은 정상이 참작되기는 할 것이다. 마치 "긴 병에 효자 없다"처럼 말이다.

4. 신고의 의무, 불고지죄

의사는 자신이 맡은 환자의 신체· 건강 상태 같은 개인 정보를 외부에 절대로 누설하지 말고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직업 윤리이고 법적 의무이다.
단, 환자에게서 총상이나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했다면 이를 경찰에 무조건 신고해야 한다. 이 또한 의무이다.

비슷하게.. 웹하드· 클라우드 사업자라면 업로더가 보관하는 데이터를 절대로 검열하거나 유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온갖 음란물· 불온물 등등을 제치고 아동 포르노는 발견 즉시 무조건 신고하게 되어 있다. 이건 너무 선을 넘는 막장짓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서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마치 서류 복사를 하는 기계나 사람이 위조지폐를 만들려는 정황이 발견되면 즉시 신고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 같다.

그 외에, 술이나 음란물이나 마약 같은 물건은 소지만 해도 죄, 소지는 자유이지만 판매· 유통하면 죄(미성년자에게 술) 등, 나라마다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 인권 국가에서라도 죄질이 악랄하고 매우 안 좋은 일부 죄에 대해서는 무죄 추정 원칙을 포기하고 그냥 걸리면 무조건 처벌, 미수도 처벌을 넘어서 신고하지 않고 묵인한 것만으로도 '불고지죄'로 처벌.. 이렇게 독하게 취급하는 게 있다. 그런데 시민들을 감시· 통제를 많이 하는 사회주의 비민주 국가에서는 국가 존립이 아니라 단순 정치와 관련된 별 희한한 행위까지 이런 식으로 검열하고 감시하기도 한다.

5. 죄를 지은 동기

같은 살인죄로 감방에 들어왔어도.. 신입 죄수가 이런 식으로 신고를 한다면 어떨까..??

  • 중증 치매/자폐 앓는 부모/자식을 10년을 간병하다가 도저히 참다못해서 차라리 교도소 가기로 작정하고 목 졸라 죽였다
  • 내 딸 죽인 데이트폭력 살인범을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니 억울해서 밤에 찾아가서 차로 치고 밀어버렸다
  • 김 구 선생 암살범을 내 손으로 패 죽였다
  • 우리 나와바리를 침범하는 상대방 조직원들을 몽땅 칼빵 놓고 보스의 목을 땄다

감방 분위기는 싸~해질 것이고 주변 죄수들이 그 사람 털끝만큼이라도 못 건드릴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이 그 감방의 왕고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딩 유괴살인으로 왔다고 하면 그냥.. 정반대 분위기가 되는 거다. 이런 죄수는 감방에서도 딴 죄수나 교도관으로부터 완전히 찐따 호구 동네북으로 전락이다.

인지상정이라는 게 죄수들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죄수들끼리도 인간 취급 안 하는 더 나쁜 죄인이란 게 있다. -_-;;

6. 가족

우리나라의 법은 혈연 가족 관계를 여느 인간 관계보다 더 밀접하고 특별한 것으로 보고 이를 존중한다.
예를 들어.. 보통은 수배된 범죄 피의자를 숨겨주고 도피를 도와주는 건 그 역시 범죄로 간주되어 처벌된다. 하지만 그 피의자의 가족이 당사자 편을 들어서 저렇게 해 준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

물론, 사회 공익을 위해서는 가족이라도 그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족도 범죄자를 숨겨 주기보다는 자수를 권유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미국에서는 유나바머가 동생의 신고와 제보로 잡혔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박 나리 양 유괴 살인 사건은 가해자의 부친이 적극적으로 신고해서 잡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가족이 최소한 공범 가담까지는 아니고 당사자를 숨겨 주기만 한 것은 국가 공권력이라도 묵인하고 눈 감아 준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인륜을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는다.
매체에서 어떤 애새끼가 대놓고 자기 부모를 어디 고발하는 장면을 딱 생각해 보아라. 골수 세뇌 사이비 종교나 공산당 빨갱이 집단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존속 살인은 일반 살인보다 더 무겁게 처벌된다. 마치 군대에서 상관 살해가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것처럼 말이다.
단, 현행법은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게 아니다. 존속(부모 쪽)을 비속(자녀 쪽)보다 더 '존귀하게' 취급한다. 다시 말해 다른 모든 정황이 동일하다면 아이가 부모를 살해한 것이 부모가 아이를 살해한 것보다 형량이 더 무겁다. 애초에 존과 비라는 글자에서부터 그런 뉘앙스가 대놓고 담겨 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건 결과만 보자면 정말 상상도 못 할 극악무도한 패륜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나뉘는 것 같다. '돈 때문에'는 어처구니없는 사유이지만, 'xxx를 견디지 못해서'는 일면 수긍이 가는 안타까운 사유인 듯하다.

  • 어린 자녀가 부모로부터의 학대를 못 견뎌서 -- 주취 가정폭력이나 지나친 학업 성적 압박, 집착
  • 다 큰 자녀가 부모의 노답 질병(특히 치매 같은..)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 개차반 니트 백수 자녀가 단순히 돈 때문에 (유흥자금-_-)
  • 다 컸고 사회적 지위에 문제가 없는 자녀라도 진지하게 돈 때문에 (유산 상속 관련)

하지만 오늘날은 가족이라고 특별하게 취급하고 봐 주거나 가중 처벌하는 걸 없애는 쪽으로 법리가 바뀌어 가는 추세이다. 애초에 가족이라는 조직의 정의 자체도 굳이 남자와 여자가 천년가약 맺고 친자식 낳아서 형성된 조직이 아니라.. 그냥 뜻 맞는 사람끼리 동거하면 동성이건 제3의 성끼리건 전혀 무관하게 형성 가능하고, 그러다가 수틀리고 안 맞으면 언제든지 해체도 가능한 가볍고 부담 없는 모임으로 바뀌어 간다.

명절들은 전통적으로 원래 하던 이벤트가 다 사라지고 그냥 해외여행 가고 노는 날로 바뀌었다. 간통죄라는 게 없어지고 동성 결혼도 법적으로 인정된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가~ 족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러면 서로 피곤할 일 없고 육중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 없고 가정 폭력도 없을 것 같고 좋긴 한데.. 뭔가 종족 보전과 번성도 안 될 것 같다. >_<;; 옛날 사람들이 바보여서 그렇게 무뚝뚝하고 고지식하게 산 게 아니었다.

7. 사회악

술이나 성, 폭력이 관여하는 통상적인 중범죄를 차치하고, 집과 차와 관련하여 없어져야 할 3대 사회악은 이런 것인 듯하다.

(1) 전세 사기: 빌라왕 같은 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부동산 바닥에서 카드 돌려막기나 폰지 사기, 유령 회사 같은 부류를 구사한 건가..??
(2) 중고차 사기: 하도 악명 높아서 침수차 부활을 엄벌하고 근절하겠다고 나랏님이 칼을 빼 들었는데.. 처벌만 강화한다고 호락호락 척결할 수 있겠는지는 모르겠다.

(3) 달리는 대형 트럭에서 부산물이 떨어져나오는 일체의 사고들: 결박 불량 낙하물, 판스프링 짝대기, 터진 타이어 등등등.. 일부는 드디어 중과실에 추가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날벼락 맞는 차가 종종 나온다.
과적은 걸리면 운전자뿐만 아니라 그렇게 시킨 놈도 처벌.. 이런 식으로 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집은 부동산이지만 자동차는 준부동산 정도로 취급된다.
자동차, 텐트, 집은 모두 장기 무단 방치되고 있는 물건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제아무리 사유재산이라 해도 소유주가 관리를 안 하고 기약 없이 방치한 게 있으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더 일찍 더 강하게 처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2/12/29 08:35 2022/12/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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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예 vs 실리

(1) 롤스로이스: 한때는 구매자에게 차값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엄근진한 사회 지위 등,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한테도 "당신 같은 딴따라는 이런 고매한 차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퇴짜 놨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굳이 롤스로이스를 몰려면 중고차를 알아봐야 했다.
==> 지금은 그딴 거 없고 아무나 돈만 내면 살 수 있다. "돈만 내면"...;;

(2) 스위스 은행: 그 어떤 국제기구나 공권력이나 수사기관에게도 예금자의 개인 정보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구린일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출처가 떳떳하지 못한 돈을 여기에다 예치해 두곤 했다.
==> 스위스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국제 추세를 거스르면서 혼자 독고다이는 못 하며, 은행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수사에 협조해 주고 있다.

(3) 남성상: 과거에는 영국 신사, 조선 양반/선비 같은 이미지가 좋은 이미지였다.
==> 오늘날은 그런 거 없고 나쁜 남자 마초 상남자가 좋은 편이다. (절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4) 기네스북: 과거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연속살인범 우 범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강제로 잠을 안 잔 기록(266시간??) 같은 것도 실려 있었다.
==> 이제는 범죄 행위 내지 사람 건강을 망치거나 동물 학대를 조장하는 기행의 기록은 받아 주지 않는다.

(5) 복싱: 과거에는 선수가 바닥에 대짜로 완전히 뻗어서 기절하지 않은 한 무조건 경기 진행이었다. 그래서 "제 발로 링을 내려오거나 들것에 실려 내려오너라" 급으로.. 선수들이 승부욕 때문에 선뜻 gg를 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있다가 계속 얻어터져서 사망· 중상 같은 사고가 나기도 했다.
==> 사고가 몇 번 난 뒤, 지금은 경기 시간 단축되고 라운드 수가 더 줄고 휴식 시간 늘고, '스탠딩 다운' 판정에다가 선수 주치의의 재량으로 경기를 임의로 종료시킬 수도 있게 하는 등.. 온갖 안전장치들이 추가됐다.

요컨대 과거에는 지금보다 체면, 위신, 명예를 따지는 성향이 더 컸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기든가 죽어라" 근성과 의지드립을 더 강조했다.
오늘날은 그때보다 실리, 인권을 더 따지는 편이다. "이길 수 없으면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해서 후일을 기약하자" 같은 관점이 된 것이다.
"죽음으로 책임지고 속죄하자" vs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는 건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 사람은 살자"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2. 폭력

옛날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 지금보다 더 살벌하고 전투적이었다. 법을 어겼을 때의 형벌이 지금보다 더 엄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면모도 컸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애들이 일찍부터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철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러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깝죽댔다가는 바로 쳐맞았으며, 심하면 자기 밥과 목까지 날아갔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꼭 일진 양아치들이 있었다. 그때는 체벌이 훨씬 더 심했고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는 데도 아무 제약이 없었건만.. 그런 강력한 교권을 동원해서 진짜로 섬멸해야 할 교내 불량배들을 제대로 단속하지는 않았는가(혹은, 못했는가) 보다.
군대에서는 좀 만만하고 약점 잡기 쉬운 애들이나 고문관한테 구타와 가혹행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하게 행해졌으며.. 그게 군기 잡는다는 명목으로 간부들에 의해 묵인되기까지 했다.

동네의 체육관? 무술 업계(?)에서는 무협지에서나 보던 ‘도장 깨기’ 관행이 진짜 존재했다. 관장이라는 양반이 동네 양아치한테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사람은 쪽팔려서라도 밤에 짐 싸서 딴 동네로 몰래 이사를 가야 했다.

바로 이런 풍조의 강화 심화 버전을 상상해 보면, 과거에 서양에는 결투가 있었고 조선에는 석전(!!)이란 게 있었던 배경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자가 참관하는 정식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라 합법 무죄였다.

석전에서 남에게 돌 던져서 대가리 깨뜨리고 죽인 것 역시 합법이었고, 이때는 심지어 상대편 진영 집을 터는 것까지도 허용됐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인 것과 동급이라는 것이다!
그런 시절에 지금 같은 과학 기술이 있고 여건만 갖춰졌다면 심지어 오징어 게임 같은 것도 합법으로 운영됐을 수도 있다.

3. 인권

옛날은 “인생은 실전이야 이 존만아” 관념이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갑’과 ‘을’의 권익이 상충하고 둘 다 챙길 수 없었을 때는 명백하게 을이 일방적으로 희생됐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은 진짜 말 그대로 죽어야 했다. 사람을 고의로 죽인 흉악범은 자기도 목이 날아갔다.
  • 실수로 불을 내서 마을 전체를 태워먹은 사람은 처형 당하거나 평생 노예로 일하며 죄값을 갚아야 했다. 신분도 대물림되는 마당에 빚이야 당연히 대물림됐다.
  • 노예들을 배로 수송할 때는 전부 꽁꽁 결박을 했다. 사고가 나서 배가 침몰이라도 하면 그들은 그대로 같이 익사해야 했다.;; 정말 비인도적이고 잔인하지만 그렇다고 노예를 일일이 구조할 수 없으며, 탈출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수가 탈출하면 죄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간수가 자기 목숨을 대신해야 했다. 이건 성경에도 나오는 관행이다(행12:19, 행16:27, 행27:47).
  • 우리나라도 6 25 때 전국의 형무소 죄수들을 제대로 이감 수용할 수가 없으니.. 죄질이 가벼운 죄수는 그냥 가석방하고, 중범죄자나 좌익사범 같은 위험한 죄수는 그대로 다 총 갈겨서 죽여 버렸다. 군대에서 즉결처분뿐만 아니라 이런 잔혹한 일도 벌어졌었다.

하지만 요즘은 인권 의식(?)이 워낙 발달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형 집행을 안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채무도 말이다. 상속을 포기하거나 파산 선언을 하면 된다.
경제적으로 여러 불이익이 뒤따르며 현재의 자기 재산이야 다 공개되고 압류당하고 탈탈 털리지만.. 그래도 자기 능력이 되는 한도까지만 갚으면 되며, 무슨 신체 부위를 판다던가 본인 및 처자식을 노예로 팔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면 세상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바뀐 것 같고 인권이 향상된 것 같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제로썸 게임”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사형 집행을 안 해서 가해자의 인권을 챙겨 주면, 결국 가해자의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 내지 유족의 인권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말살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권팔이 위선자들이 한 마디도 입도 뻥긋 안 한다.

채무자 인권만 챙기느라 걸핏하면 채무를 탕감해 주고 배째가 가능하게 해 놓으면.. 결국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되고 경제 모랄빵이 벌어진다. 그리고 예전과는 반대로 채권자가 돈을 못 받아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채권자나 땅 주인 집 주인 기업주가 몽땅 다 샤일록 같은 놈일 거라는 인식도 프레임이고 거짓 선동일 뿐이다.

비정규직을 없애겠답시고 법을 무시하고 얼치기로 그 애들을 정규직으로 승격시키면.. 그럼 피똥 싸게 공부해서 공채 뚫고 정규직 입사한 애들이나 임용 합격해서 정교사가 된 애들은 뭐가 되는가? 이런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노예나 죄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먹고 살 만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나라 체제가 안정되고 사회 안전망 복지 인프라가 잘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인권을 챙길 여유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다시 옛날 같은 열악하고 처절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아무리 인권 인권 거리더라도 범죄자의 인권과 선량한 일반 시민의 인권을 다같이 챙길 수 없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윤리관 사회관 같은 게 달라졌더라도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나 딜레마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문제를 해결한 듯하지만 그 문제가 형태만 바뀌어서 다른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통찰이 없이, 절대악은 그대로 놔 두고 필요악만 나쁘다고 없애자고 선동하는 애들은 절~~대로 선한 결과를 산출한 적이 없었다. 이런 것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FPS 게임에 비유

FPS 게임에는 time to kill TTK라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 내지 필요한 히트수라는 개념이 있다.
단칼에, 총 한 방 잘못 맞으면 바로 훅가는 건 TTK가 짧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여러 발 때려야 되는 건 반대로 TTK가 긴 것이다.

TTK가 너무 짧으면 대부분의 뉴비들은 그냥 맵에 spawn되자마자 누가 쏜지도 모르는 총에 맞아서 바로 뒤지고 흥미를 잃기 쉽다. 그러나 고수도 재수 없으면 실수로 언제든지 훅갈 수 있으니 처신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초반에 살아남은 소수의 초보가 드물게나마 뽀록으로 선빵을 날려서 고수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TTK가 길어지면.. 그 누구라도 한 방 맞는다고 바로 죽지는 않고 반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여건과 기회가 비교적 공평해지고 안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여건에서는 기습 뽀록이 안 통하며, 초보가 고수를 이기는 건 확실하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극단적인 예로,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일격에 바로 쓰러뜨리지 못해서 골리앗의 반격을 허용했다면 그 다음 스토리가 어찌 됐을까? 바로 이런 이치이다.

이제 FPS를 현실 인생에다가 투영해 보자. 초보/고수를 흙수저 금수저에다 비유하고, 킬 올리는 걸 각종 성공이나 출세, 신분 상승 따위에다 비유해 보자면..
세상의 사회 시스템이라는 FPS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갈수록 TTK가 짧았다가 더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정황상 말이다. TTK 값이 바뀜으로서 발생하는 장단점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라떼는 말이야 더 가난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 버티고 성공했어" 이런 부류의 아재스러운 조언은..
TTK가 짧은 게임에서 살아남아서 고수를 여차여차 끝에 잡았다는 유형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사람도 노력을 안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만의 운도 있었고, 지금 TTK가 긴 시스템에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은 면모도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전장이야.. 눈부시게 발전한 무기들 덕분에 TTK가 엄청나게 짧다. 총이건 폭탄 포탄이건 한 방 맞으면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시체도 못 찾는 처참한 꼴로 죽는 게 태반이다. 군함을 수리하는 정비함이라든가 갑옷 같은 게 괜히 없어진 게 아니다.
TTK가 짧을수록 현실 군대 반영 FPS이고, 길수록 과거 Doom 스타일의 비현실적이거나 캐주얼한 영웅 원맨쑈 FPS 장르가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18 08:35 2021/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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