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여행

지난 설날 때 본인은 가족과 함께 당일치기로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강화도는 민족 영산(?)이라는 마니산이 있고, 고려 시대에 나라가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임시 수도였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장소이기도 해서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그러고 보니 팔만대장경도 지금이야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에 있지만, 만들어진 곳은 강화도이다. 고려는 그야말로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실천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방대한 무게와 부피를 자랑하는 수많은 경전들을 그 시절의 교통 인프라 여건에서 섬-내륙으로 바다까지 건너면서 수송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큰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과거에 신라에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고 여러 가문이 차례로 번갈아가며 왕위를 잇는 관행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저런 종교 배경의 특성상 말기에 신 돈 같은 비선실세(?) 승려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의 이념은 '숭유억불'이었다.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보기엔 고려가 망한 것에는 타락하고 막장으로 치달은 정교일치 불교계의 책임이 커 보였던 것 같다.
뭐, 지금에 와서는 조선도 이미지가 바닥을 기며, 유교 역시 진작부터 꼰대(질)의 상징에  '유교탈레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말이 나돌 정도로 평가가 최악이다. 뭐든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걸 느낀다.

아무튼,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차를 몰고 서쪽으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서 자연을 벗하며 놀 만한 곳으로는 동쪽으로 남한강이 있는 양평, 혹은 북한강이 있는 가평· 춘천 방면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거기보다 더 색다른 곳을 찾다 보니 강화도로 의견이 쉽게 한데 모였다.

강화도는 면적이 300㎢가 넘고 생각보다 크더라. 시내와 대부분의 볼거리는 북부에 있는 반면, 마니산만 혼자 최남단에 있는 듯했다. 북부에는 강화대교, 남부에는 초지대교가 있어서 육지와 통한다. 서울에서 강화도 남부를 가는 건 인천 공항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이고, 북부는 그것보다 거리가 살짝 더 길어지는 듯하다.
강화도로 가는 길은 올림픽대로 + 국도 48호선(북부) 또는 지방도 356호선(남부) 끝이다. 아주 직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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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유적이지 싶다. 안내문 표지판 말고 다른 시설은 없이 그냥 도심 속의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차 걱정 없는 시골이니 그냥 골목길 담벼락 아무데나 차 세우고 내려서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고려 행궁도 지도상으로 근처에 있는데 거기에는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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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강화도에는 고인돌이 있다. 그나마 돌하르방은 훗날 유명세를 타서 레플리카가 만들어진 게 훨씬 더 많은 반면, 여기에 있는 고인돌은 옛날에 만들어진 레알이다.
접근하기도 편하게 딱 국도변에 넓은 들판과 함께 강화도 전체에서 가장 고퀄이라 여겨지는 고인돌이 놓여 있었다. 영국의 스톤헨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인돌들은 딱히 식별 수단이 없으니 그냥 발견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서 부르는가 보다.

여기 주변에는 마침 강화 역사 박물관과 강화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두 박물관도 있었다. 하지만 설 당일이 휴관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고인돌'은 안 그래도 영어로도 dolmen이라고 하는데 故人인지 '고이다+전성어미ㄴ'인지 어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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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을 하나 더 답사했다. 처음에 봤던 것보다는 크기가 약간 더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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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풍경은 사방이 온통 논밭 벌판이고, 그러면서 높이가 300m쯤 돼 보이는 낮은 산들이 종종 둘러져 있는.. 그런 형태였다. 산들은 정상에도 뭔가 정자나 군사 시설 같은 게 빠짐없이 세워져 있는 편이었고, 그게 지상에서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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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우리는 강화도의 최북단에 있는 평화 전망대로 갔다. 여기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중간에 검문을 받고 출입증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연고지나 지인 초청이 없어도 되며, 사전 방문 신청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다. 모든 차량 동승자가 아니라 그냥 대표자 한 명의 이름과 연락처, 차 번호만 적으면 됐다. 내 경험상 국내 민통선 안의 출입 정책은 각 지역과 관할 부대마다 케바케였다.

우리나라 군사분계선은 대부분 높은 산지이며, 선 주변에는 DMZ라고 불리는 완충 지대가 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의 서쪽 끝은 그 특성이 내륙· 동부와는 극과 극 수준으로 다르다. 여기는 육지가 아니라 물이 그대로 군사분계선이고 양측 강변이 남방과 북방한계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는 DMZ 같은 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동부와는 달리 강안경계라는 게 있다. 한강이 서울 시내 구간만 해도 강폭이 1km 남짓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육박하고 강북과 강남을 가르는데.. 강화도가 있는 한강 최하류로 가면 강폭은 2km에 달하며, 강남과 강북이 무려 남조선과 북조선을 가른다..! 군사분계선이 육지에서 강으로 바뀌는 경계를 보고 싶으면 강화도에 도달하기 전에 파주의 오두산 전망대에 가 보면 된다.

6· 25 때 우리나라가 지형상의 불리함으로 인해 서부는 오히려 있던 땅도 빼앗겨서 38선 이남,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됐다. 이 때문에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졌으며, 군사분계선이 저런 식으로 한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있는 낙동강 하구와는 달리, 한강 하구는 민간인이 접근 불가능한 영역으로 봉인되어 버렸다. 여기를 뱃길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뱃길이라는 경인 운하를 나중에 또 만들어야 하게 됐다.

황해에는 강과 바다에 형성된 군사분계선 근처에 섬이 여럿 있다. 게다가 연평도나 백령도 같은 섬은 위도가 상당히 높고 북한의 본토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남한 땅이다. 이건 북괴가 전쟁 당시에는 섬들을 점령할 해군력이 없었기 때문에 종전 후에도 남한 땅이 될 수 있었다. 휴전 직전엔 오히려 국군과 UN군이 북한 지역 위도의 다른 섬들까지도 몽땅 점령해 있었지만 휴전과 함께 철수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강화도를 포함한 그 일대의 섬들은 비록 다리가 놓였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육군 전방 부대가 아니라 상륙 작전을 염두에 둔 해병대가 주둔한다. 민통선 검문도 응당 얘네들 몫이다. 그리고 군용차도 일반적인 전차(탱크)보다는 수륙 양용 장갑차 같은 게 더 친숙하다.
아니, 우리나라 해병대 전체가 그냥 서부 전선의 전방 도서 지역을 지키라고 존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병대는 훈련소와 자대, 본부도 후방인 포항이 아니면 전방인 황해 이렇게 딱 두 지역에만 있다.

옛날에 태평양 전쟁 시절처럼 섬을 땅따먹기 하면서 물과 육지에서 모두 작전을 수행하는 게 쉬울 리 없으니 해병대는 일반 육군 보병보다 전투력이 더 뛰어난 정예 병력으로 간주된다. 100% 지원자만 그것도 경쟁을 뚫고 들어갈 정도이며, 훈련 때 목봉 체조 같은 것도 육군이나 해군이 아닌 해병대만 한다. 다만, 그게 전투력과는 별 관계 없는 지나친 이빨과 마초이즘 기수놀이, 똥군기로 변질된 건 문제이긴 하다.

해병대 아니랄까봐 "빨간 배경에 노란 글씨"로 민통선 내 행동 주의 사항이 적힌 안내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망대 내부의 통제는 해병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리 빡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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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강 건너 펼쳐져 있는 북한 땅이다. 황해도 개풍군. 내륙처럼 남북의 DMZ 산림 없이 강 너머로 곧장 북한의 마을과 논밭, 건물, 심지어 사람까지 곧장 보이기 때문에 전국의 어느 전망대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것도 위도상 최남단의 북한 땅을 말이다. 이게 강화도에 소재한 전망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이었다. 그런데 저기는 북한의 입장에서 민통선 내부이지 않을까?

철원의 평화 전망대나 고성의 통일 전망대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였고, 파주의 도라 전망대에서도 기껏해야 군인 극소수만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당장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주택 담벼락을 서성거리는 두세 명의 사람 등 역대 전망대들 중 북한 민간인(군인이 아닌)을 제일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같이 "북한 방면 사진 촬영 금지" 이런 통제도 없었다.

아, 물론 사람까지 보는 건 육안으로는 불가능하고 유료 망원경을 동원해서 봐야 한다. 이런 곳에서는 500원 투자할 가치가 있다.
저 멀리 세로로 선전 구호가 쓰인 걸로 추정되는 기둥도 있었는데 글자가 무엇인지는 아쉽지만 망원경으로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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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우리의 이름이 제적봉이랜다. '적'의 한자가 enemy(敵)가 아니라 red(赤)이다. 즉, "공산당 빨갱이들을 제압하다"라는 뜻이다.
이름의 유래 설명에 따르면, '제적봉'이라는 이름은 박 정희 대통령의 개입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예전에 이 승만 대통령은 호수의 이름을 반공 컨셉을 넣어서 '파로호'(오랑캐들을 격파하다)라고 지은 적이 있는데, 이것과 무척 비슷한 심상을 형성한다. 조선 시대 얘기지만 '척화비'도 동일한 맥락일 수 있겠다.

이렇게 평화 전망대를 구경한 후, 우리는 교동도를 찾아갔다. 민통선 검문소는 교동대교보다 한참 앞에 있었다. 전망대에 갈 때와 비슷하게 간단한 출입 신청서만 작성하면 출입 허가는 곧장 나오며, 한번 출입증을 받으면 내 기억으로 2~3일 정도 교동도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여느 민통선 구역처럼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통금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자정~새벽 4시 정도에만 출입을 자제하면 된다.

교동도는 2014년이 돼서야 다리가 놓였으며, 아무래도 주민 출입이 뜸하니 대교 주제에 도로폭은 겨우 2차선이었다(편도 1차선).
그리고 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농촌 마을일 뿐 어촌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해수욕장? 횟집? 그런 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안 때문에 바다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괜히 민통선 마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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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갔을 때는 교동도에 있는 커다란 '고구 저수지'가 온통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늘의 색과 바닥의 색이 거의 동일한 게 무슨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보는 듯했다. 썰매를 타고 놀고 싶었다.

교동도를 한 바퀴 도니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강화도까지 왔는데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니산을 어귀는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남쪽으로 향했다.
정상의 참성단까지 가는 길은 서울 남산처럼 흙길 등산로와 계단 등산로가 모두 닦여 있는 듯했다. 등산은 차마 못 하고 돌아왔지만 여기도 마치 제주도 한라산이나 성산 일출봉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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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아이고 이거 무슨 예비 의료인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하는 것 같다. 등산을 이렇게 거창하게 윤색해 놓은 시는 난생 처음 본다. =_=;;

나중에 강화도를 다시 찾아오는 건 결혼하고 애까지 동반한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강화도에서 의미 있는 여행을 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22 08:33 2017/04/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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