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로남불 이중잣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중잣대.
이래도 X랄, 저래도 지X. 어떻게 대답을 하든 꼬투리 잡아 불평불만 욕하기.
이건 성경에도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특이다. 정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마귀 들렸다,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매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음식을 탐하는 자요, 포도즙을 많이 마시는 자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다, 하는도다. ... (마 11:18,19; 눅 7:33,34)

이솝 우화에 아주 비슷한 예가 있다. 나귀를 끌고 가는 부자 이야기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각각 나귀를 타거나 타지 않는 2*2 = 4가지 경우를 어떻게 조합하건 주변 사람들은 욕을 했다. 이건 뭐 답이 없다.

마녀사냥이 괜히 천하의 개쌍놈 짓이라고 지탄받는 게 아니다. 멀쩡한 여성을 물에 쳐박아 넣었는데 안 죽고 버티면 레알 마녀 괴물이니 화형에 처한다. 꼬르륵 익사해 버렸으면 사람이니 마녀 누명은 벗지만, 당사자는 이미 죽고 없다. 뭘 해도 걸린다. 뭐 이런 식의 논리이니까.. -_-;;
destructive testing을 무슨 양산형 제품 중 하나를 무작위로 추출해서 시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 시행하는 거다.

“난 이 승만은 보도연맹 학살과 국민방위군 사건 때문에 극혐하지만, 마오 쩌둥은 아무래도 좋고 대약진운동이건 제사해 운동이건 상관 안해요.” 같은 부류도 넓은 의미에서는 이런 범주에 속한다.
김씨 부자는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흉악 범죄자, 음주운전 교통사고 가해자, 731 부대장,히틀러나 도조 히데키 같은 전쟁광 인간 쓰레기들 한테도 안 쓸 욕과 저주와 악담을.. 좀 희생과 부작용 감수하고라도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조선이 적화되지 않게 막은 잘못밖에 없는 자국 초대 대통령에게 도대체 무슨 의도로 퍼붓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 시절에 그 욕 안 쳐먹고 곧이곧대로 신사적으로만 일 추진했으면 그냥 대한민국 간판 내리고 김 일성에게 정권 갖다바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뭐, 자기도 김 일성 싫어는 한댄다. 그러나 눈빛만 보면 안다. 똑같이 싫어한대도 이 승만을 욕할 때와 같은 혼과 진심은 절대 담겨 있지 않다. 이건 정상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다. 남조선 일부 대통령의 독재랑 북괴의 독재가 아무 차이가 없다는 망발도 사상에 이상한 데에 지독하게 오염된 중증 정신병이다.

그러니 이 정도면.. 그냥 “난 논리고 팩트고 뭐고 아무 필요 없고 특정 정치인은 그냥 괜히 아무 이유 없이 싫어요”가 차라리 솔직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대답이다. 그건 최소한 거짓말은 아니거든. 그러면 나라도 “아~ 그러세요?” 하면서 그 사람 앞에서는 정치 얘기 더 안 꺼낸다. 취향이야 존중해 줘야지?

그렇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자유이고, 심지어 그 주장을 자기 개인 사이버 공간에다 올리는 것 역시 자유다. 단지 그 따위 논리 체계를 갖고서 남의 사이버 공간을 더럽히고 오지랖을 놓는다거나, 남에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려고 하지만 않으면 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직업은 몰라도 정치인, 외교관, 법조인, 문과 계열 교사 같은 직업은 안 갖고 살면 된다 -_-;; )

애초에 저런 성향의 사람들은 미국 같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자기 나라를 욕하고 비관하지만, 정작 추종하고 모델로 삼고 친해지려는 나라는 북한이나 중국처럼 인권이나 민주 따윈 있지도 않은 나라들이다. 똑같이 외국이고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비판하는 잣대가 같지가 않다. 쟤들은 원래 저렇다. 그러니 종북 빨갱이라고 백 날 욕 먹어도 할 말 없다.

2. 악마의 편집, 기레기 기질

그때에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이 형제들 가운데 널리 퍼졌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셨더라. (요 21:23)

이것도 완전 대박이다.
본문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은 “요한은 설령 순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게 너(베드로)랑은 무슨 상관이니? 오지랖 부리지 마라”라고만, 즉 “안알랴줌” 노코멘트라고 대답을 하셨다. 그런데 그게 곧장 “요한은 순교 안 하고 천수를 누릴 거래!”라는 루머로 변한 채로 커뮤니티에 쫙 퍼졌다.

이게 인간의 심성이다. 다른 예로, 구약의 십일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신약에서는 성경에 약속된 보상 자체가 영적인 것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는 그 취지나 정신을 빼면 교리적으로 신약 교회와 무관하긴 한데, 그 얘기를 하면 "어 그럼 아예 헌금을 안 내도 되네, 내 물질 안 바쳐도 되네"처럼 원문이 의도하지 않은 내용까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슬그머니 넘겨짚는 사람이 꼭 있다.

성경 얘기 말고 더 선정적인 예로는, 15년도 더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고 나서도 너무 바빠서 자녀계획 같은 거 생각할 겨를이 없네요”라는 인터뷰가 어느 찌라시에서 “최 진실 임신 못 한다”라는 제목으로 한 줄 요약되기도 했다. ㅠㅠㅠㅠ 저건 거짓말은 안 한 건가..?? -_-

그러니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온대도 언론은 얼마든지 천하에 죽일놈 개쌍놈으로 조작할 수 있다. 전혀 이상한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처형하라고 날뛰던 백성들 하나도 욕할 자격 없음. 오늘날까지 괴벨스의 후예들이 워낙 많이 날뛰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앞에서 언급한 내로남불 이중잣대 테크닉이 합해지면 삼인성호 같은 건 일도 아니다.

성경을 보면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옳습니까?”(마 22:17), “간음하다 붙잡힌 이 여인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요 8:4-5)처럼 겉으로는 평범한 정치· 종교 질문 같지만 결국은 Yes/No 뭐라고 대답하든 앞뒤 문맥 짤라서 사람을 매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불순한 함정 질문도 있다.

그러니, 하물며 “성전 헐고 사흘 만에 재건” 운운은 기레기· 선동꾼들이 앞뒤 문맥 떼어내고 집어물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떡밥이었다.
원전은 요한복음(요 2:19)에 있는데 사람들이 나중에 써먹는 건 다른 책인 마태복음(마 26:61)에서 나온다는 게 흥미롭다.

3. 극단적인 것, 예외적인 것만 부각시켜서 큰 진실 왜곡

(1) 큰 그림: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다.
작은 그림: 그런데 장 미란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

(2) 큰 그림: 미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정~말 많이 도와줬고 물자 원조도 하고 고아들도 왕창 많이 받아줬다.
작은 그림: 근래에 주한미군에 그렇게 질 좋은 사람이 오질 않다 보니 윤 금이 살해 사건에, 이태원 살인 사건 같은 범죄가 가끔 발생했다. 장갑차 교통사고 때는 가해자가 실실 쪼개고 앉아 있었다.

(3) 큰 그림: 88 서울 올림픽을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아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작은 그림: 그런데 개막식 때 성화 점화와 비둘기 날리기가 서로 아귀가 안 맞아서 "세계가 지켜보던" 중에 비둘기 몇 마리가 산 채로 통구이가 돼 버리긴 했다. 그리고 미관에 안 좋다고 동선상의 판잣집들이 강제로 철거당하고 개고기는 더욱 음지화하게 됐다.

(4) 큰 그림: 북괴는 끊임없이 남한에 무력 도발을 하고 테러 저지르고 간첩 보내고 땅굴도 팠다. 악랄함의 수위로 따지자면 일제를 능가한다.
작은 그림: 그렇게도 반공 강조하던 박 정희도 김 일성으로부터 선물 받은 적 있고, 그 딸은 한때 평양 가서 김 정일한테 공손히 인사도 하고 온 적 있다.

(5) 큰 그림: 일제는 조선 땅의 물자를 가혹히 수탈했으며, 말기로 갈수록 전쟁 준비와 민족 말살 정책으로 조선인들을 매우 괴롭혔다.
작은 그림: 그런데 조선 말기가 워낙 너무 막장이었기 때문에 일제는 본이 아니게 한반도에다 철도 도로 전기 등 각종 인프라를 설치하고 근대화(?)를 시켜 주기도 했다. 초기엔 일제 순사가 마을 집집마다 파리채를 나눠주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 모든 정황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전히 대체로 여자보다 힘이 더 세며,
미국은 한국의 매우 고마운 우방국이다.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반도는 반미 할 자격 천하에 없는 나라다.
88 서울 올림픽은 전반적으로 매우 잘 치러서 한국의 리즈 시절 추억을 남겼고,
북괴는 오히려 그렇게 화해하는 척하면서도 호박씨 까면서 더욱 비열하게 도발을 했을 뿐이다.

일제 역시 조선을 조금 근대화시켜 준 건 돼지를 잡아먹기 직전까지 잘 먹이고 살찌우는 것과 같은 목적으로 한 것일 뿐이다. 쟤들이 말기엔 단군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아예 싹 없애려고 창씨개명, 한국어 사용 금지, 신사 참배와 궁성요배 강요 짓거리를 한 걸 생각해 보아라.
이건 사람을 대놓고 독가스실로 보낸 것만 아닐 뿐이지 몸이 아닌 정신에 대해서는 거의 나치 유대인 학살 급의 죄질이다. 이 엄청난 만행이 겨우 1920년대 리즈 시절에 알량한 인구 증가와 식량 생산 증가, 철도와 공장 건설 산업화 따위로 실드 쳐지겠는가?

작은 그림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은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은 그림에 "만" 꽂혀서 큰 그림을 부정하려 하는 외눈박이 이단들로부터는 반드시 도망쳐 나와라. 그런 애들은 순진하고 멍청하기보다는 사악하고 불순한 경우가 더 많더라.

기독교계에 이런 방식으로 넘어진 이단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두룩하다.
진리의 성경 말씀을 올바로 나눠야 하지만(딤후 2:15), 한편으로 역사 팩트도 올바로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divide란 분할, 구분, 분간..을 의미한다.

4. 결론

이것 말고 또 무슨 예가 더 있을까?
성경에는 마태복음의 끝부분처럼 로마 정부가 “예수 시체 도난”이라고 여론 조작과 매수를 시도하는 장면도 나오고,
또 고라 일당처럼 자기가 권력욕 대통령병에 걸려 있으면서 말은 “성직 계급 반대, 만민 제사장론” 드립을 치면서 모세를 상대로 반역을 부추기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능력껏 벌어서 필요한 만큼 쓰는 세상,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이런 것도 다~ 저런 케케묵은 전략의 후신일 것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인간이 그래도 뇌가 있고 일말의 지능이 있다면 최소한 옛날 사람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또 겪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실수를 하더라도 주토피아 OST 가사처럼 새로운 실수를 계속 만들면서 발전이나 변화를 해야지 뻔히 실패가 검증된 길을 또 가서는 꿈도 희망도 없다.

내가 늘 말하듯이 성경은 신약 크리스천의 행실 차원에서는 정교 분리를 명시하며, 기본적으로 정치 중립적인 책이다. 예수님이 재림해서 지구를 직접 다스리기 전까지는 인간이 만드는 완벽한 세상 정부와 지상락원 유토피아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성경은 "위의 권위와 주인과 갑에게 순종하라" 같은 보수적인 이념 위주이지만, 누가복음이나 야고보서 같은 매우 좌파스러운 책도 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데는 유대인, 로마인, 백성과 지도자와 외세가 공평하게 똑같이 기여했다.

이런 기본적인 균형이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소위 좌와 우 중에서 누가 더 크게 잘못하고 있고 더 반역적이고, 더 반성경적인 방법론을 즐겨 사용하는지는 정말 답이 이미 나와 있는 문제인 것 같다. 모두가 공평하게 잘사는 세상 따위야 인간의 힘으로 결코 이룩할 수 없지만 북괴에 안 퍼 주는 세상 정도는 인간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으며, 반드시 이룩해야만 한다!

물론 사람이란 게 성장 배경과 관심분야가 제각각이고, 보고 듣고 정보를 입수하는 경로가 제한돼 있다 보니 삼라만상을 보는 관점이 편파적이 될 수는 있다.
누구는 일본이 더 싫지만 누구는 북한이 더 싫고.. 누구는 경제와 안보에 더 관심이 많지만 누구는 약자 인권과 복지에 더 관심이 많을 수는 있다.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 일기장이나 SNS에다가만 끄적거리는 거면 그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감히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요구할 정도의 강한 결론이 담긴 주장을 하거나, 남의 주장을 반박하고 남의 SNS에다가 오지랖을 부리거나 남을 설득해서 논쟁에서 이기고 내 편을 만들려면 논리가 편파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아예 법조인, 정치인, 또는 문과 계열의 교사· 교수처럼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고 남에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처지의 사람이 사상 체계가 그따구여서는 절대 안 된다.

일관성이 없으려면 차라리 일관성 없게, 랜덤하게 일관성이 없어야(?) 그건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정말로 그 사람이 생각이 짧거나 식견이 부족했거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편파적으로 생각한 것일 수 있다. 그건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인권을 얘기하고 나라의 비극과 흑역사를 얘기하면서 오로지 북괴에 대해서만 절~~~대 침묵하고, 꼭 그쪽으로만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는 것"은 우연일 수 없다. 일부러 작정하고 그러는 것이며 매우 불순하고 사악한 태도이다.

그래 가지고는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설득을 못 할 것이고 내가 쓰는 글의 논조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얻다대고 비겁하게 팩트나 끄집어오다니? 인권 민주 복지 평화 통일 팔아서 거짓 날조와 선동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 이러려는 것 같은데, 그런 속 뻔히 보이는 전술은 나한테는 절대로 안 통할 거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07 08:32 2017/05/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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