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달산· 서울 현충원 답사기

6월을 맞이하여 본인은 호국보훈 이념을 등산과 결합한 꽤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서울 현충원이 자리잡아 있는 서달산을 오르고, 현충원을 정문이 아닌 산을 통해서 방문하고 왔다.
본인은 비록 서울 현충원과는 아무 연고가 없는 가문의 출신이지만, 지난 2007년에 한번 혼자 현충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딱 10년 뒤에 거기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참고로 사진들을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시간대가 이른 아침은 아니고 그냥 낮~저녁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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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이 아니라 숭실대입구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3번과 4번 출구 사이로 나 있는 비탈길을 계속 올랐다. 일명 '살피재'라는 고갯길이다. 지하철역 자체도 고도 차이로 인해 굉장히 깊지만 그래도 역이 있는 곳이 제일 높은 지점은 아니었다.
길가에는 한 경직 기념관, 기독교 박물관 등 숭실대 캠퍼스 건물이 계속 보였다.
그렇게 버스 한 정거장 거리 정도를 계속 걸으면 건물이 없이 산길 같은 구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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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 생태다리를 통해서 서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숭실대 뒷쪽으로 달마사를 거쳐서 서달산을 오르는 경로도 있긴 한 모양이던데, 길이 골목길 위주로 복잡한 것 같아서 본인은 그리로 가지 않았다.
참고로 서달산은 해발 높이가 200m가 채 되지 않는 낮은 산이며, 산 속 숲에 들어가기 전부터 길거리에서 이미 고도를 상당수 올려 놓은 상태이다. 저기서 추가로 오르는 높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달산의 정상은 서쪽 끝자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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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니나다를까, 건물 몇 층 높이를 계단으로 오르는 기분으로 설렁설렁 언덕을 오르자 현충원의 상도 방면 뒷문이 나타났다. 오후 6시까지 개방이라고 하며, 가 보지는 않았지만 동쪽으로 사당 방면 뒷문도 하나 더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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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은 하늘을 제대로 보기 어렵고 어두컴컴할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했다.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그야말로 싱그러운 초록색 그 자체였으며, 아카시아 같은 향기도 느껴졌다.
6월에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주변엔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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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낮을지언정 그래도 산은 산이니 정상에 도달했다. 저 정자는 이미 동네 어르신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들이 점령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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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이런 2층짜리 정자도 있었다. 정자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산이 숲이 얼마나 조밀하게 우거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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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정상을 구경한 뒤엔 서쪽의 숭실대 방면으로 하산하거나 동남쪽으로 산길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고 아까 그 상도 방면 뒷문으로 가서 현충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직선 거리로만 따지면 현충원 묘소들 중 산속 가장 깊은 곳에 놓인 박 정희 대통령 묘소와 아주 가깝다. 하지만 이 길은 묘소는 고사하고 곧장 현충원 내부로 들어가는 길도 아니었다. '호국지장사'라는 절까지 굉장히 우회를 한 뒤에야 현충원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우회가 심한 데다, 내리막이 계속되기까지 하니 나중에 다시 이쪽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비록 수평 이동이 길더라도 현충원을 나갈 때는 그냥 정문으로 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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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거쳐서 박 정희 대통령 부부 묘소를 1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대통령까지 되긴 했지만 애비의 처지와 딸의 처지가 모두 참 기구하다.
지금의 악한 대통령은 노골적인 좌편향과 친중종북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으며 도덕 청렴은 개뿔, 우리나라에서 정말 청산되어야 할 적폐는 무슨 이중국적·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 따위가 아니라 그냥 '내로남불'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다.

왜, 자기가 좋아하는 대통령,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혼자 똥을 싸도 그저 잘한다고 언론에서 칭송해 댈 것 같은 우리 달님 달링님을 까니까 기분 나쁘신가? 문 창극, 김 종훈, 윤 창중 시절에 그 정도까지 쌍욕 안 퍼붓고 개 난리 안 쳤으면, 나도 지금 이렇게 거친 말 독한 말을 안 늘어놓는다. 잣대가 동일해야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나라 꼴이 도대체 어찌 되려는지.. 이러려고 공산화 막고 가난 떨쳐내고 근대화 한 게 아니었을 텐데.. 저기 모셔져 있는 가문의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를 깨닫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본인은 묵념을 하고 방명록에 이름도 당당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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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을 내려가면서 병사 묘역의 구도 좋은 지점에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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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 100을 만든 분에 이어 아예 0에서 1을 만든 위대한 건국 대통령 할배의 묘소도 참배하고 방명록에다 내 이름을 썼다. 시뻘겋게 미쳐 돌아가는 나라 현실에 대한 자그마한 저항의 뜻을 이렇게 표현했다.

"배달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라는 시작하는 헌시를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다.
저기서 나라란 당연히 자유가 있는 정상적인 나라를 말한다. 북괴 같은 나라 말고. 일제만 망하고 물러났다고 해서 결코 저절로 수립 가능하지 않았다.

난 이분에 대한 온갖 악의적인 중상모략과, 정황에 대한 고려 없는 악성 거짓 루머를 어지간한 부정부패 이상으로 나라를 좀먹으며 사람 정신을 병들게 하는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 인생을 걸고, 그 어떤 인간관계 단절과 물질적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평생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 싸울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그냥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대통령 호불호를 문제 삼는 게 결코 아니다. 단순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승만은 건국의 공을 무색케 하는 과오도 너무 많이 저질러서 괜히 호감이 안 간다" "난 외교 노선보다는 무장 항쟁 노선을 더 좋아한다" 수준이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건전한 생각과 취향으로서 존중한다.

단지 내가 극도로 싫어하고 공격하는 건, 예전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악의적으로 일부러 친일 청산을 안 하고 전쟁 초기에 그냥 도망갔네 식의 개소리, 그리고 각종 학살 참극에 대해서 김 일성· 마오 쩌둥과 이 승만에 대한 비판의 잣대가 전혀 같지 않은 것 따위를 말한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왜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거짓을 근거로 싫어하며, 그 근거가 거짓이라고 반박해 줘도 듣지를 않는가? 그렇게 귀를 틀어막고 살 거면 남이 과격한 어조로 거짓을 저격하는 건 왜 듣고 반응하는데? 그런 것에 불쾌해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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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간 끝에 드디어 정문에 도착했으며, 입구에 있는 멋진 분수대를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았다.
10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지하철 9호선이 생겨 있으며, 특히 9호선이 현충원 입구와 더 가까이 만들어져 있어서 접근성이 더욱 좋다. 하지만 4호선과 9호선간의 막장환승은 답이 없는 것 같다. 고속터미널 7-9호선은 무빙워크라도 있다지만 저건.. 답이 없다.

글을 맺기 전에 역사 상식 하나..
현충원의 유래 정도는 검색만 하면 다 나오긴 하지만,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바를 이곳에다가도 또 늘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6· 25 전쟁 이전에도 38선 부근에서는 호전적인 북괴의 도발에 의한 국지적인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만큼이나 분위기가 험악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사자가 계속 찔끔찔끔 발생했으며, 이들은 처음엔 서울 중심부에서 가까운 장충단 공원에 매장되었다. 다시 말해 그때는 매장지가 지금 같은 '서달산'이 아니라 남산 기슭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6· 25라는 전면전이 터지자 전사자가 훨씬 더 많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매장하고 추모할 공간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새로 묘지를 만들 만한 곳을 전국적으로 물색하게 됐다. 아직 전쟁 중이던 1952년에 이와 관련된 신문 보도가 나갔었다.

그때 투표 같은 민주적인 절차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리박사 할배 각하가 여러 후보들을 몸소 검토해 본 뒤 그냥 답정너로 지금의 서달산 부지를 지목한 게 아닐까 싶다. 1950년대엔 한강 이남은 아직 인서울조차 아니었고 동작대교 같은 것도 없었다. 교통이야 지금과 비할 바가 못 됐겠지만 저 정도면 솔직히 서울 교외에 묘지로서 굉장히 좋은 입지이긴 했다.

그래서 이 묘지는 1955년에 '국군 묘지'라는 이름으로 첫 개장했다가 나중에 '국립 묘지'라는 명칭을 거쳐서 지금은 현충원이 됐다. 정부 청사가 서울, 과천, 대전, 세종 등 여러 곳에 있듯, 현충원도 서울에만 있는 시설이 아니다. 그래서 전체 명칭은 '서울 현충원'이다. 이 승만 당사자도 비록 하야 후 외국에서 죽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남을 위해 장지해 놨던 명당에 고이 묻히게 됐다.

서울 현충원은 이제 공식적으로는 공간이 더 없다. 국민 정서상 극히 예외적인 특례로 봐 줄 만한 위인· 유명인이 아니고 단순히 국가원수, 전투 중 전사, 몇십 년째 군 장기 근속 같은 규정만을 만족해서 현충원에 가는 거라면 신규 인원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서울 대신 대전 현충원으로 가야 한다. 대전 현충원도 무려 1985년에 개장했다.

우리나라가 군사· 정치적으로 안정화가 됐고 굳이 나라를 구하는 특출난 위인이 나올 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 서울 현충원에 누군가가 무리해서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전 현충원의 국가 원수 묘역에 최 규하 다음으로 둘째로 들어가는 인물은 과연 누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06 08:31 2017/06/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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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벌 2017/06/22 20:45 # M/D Reply Permalink

    앗! 저도 6월 6일 현충원 갔었는데. 아들과 함께.
    그 날 사람 엄청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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