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동안 본인은 등산은 너무 더워서 한동안 못 했다. 자전거로 한강 공원 정도나 다니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서울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 큰 강이나 호수를 보러 놀러 갈 만한 곳은 없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 결과 본인의 눈에 띈 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남양주와 양평 사이였다. 강 두 개가 만난다고 해서 지명부터가 '양수'리, '두물머리'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거기 일대에는 웬 다산 정 약용 선생 유적지가 있고, 강가에는 숲과 풀밭이 잘 꾸며져 있었다. 놀다 오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토요일 아침에 곧장 차를 몰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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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검단산을 올랐다가 하남시 배알미동 방면으로 하산하면서 팔당댐을 멀리서 본 적은 있다. 그런데 댐 위의 '공도교'를 건너는 건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여기는 국가 기간 시설인 댐 위이고 이게 딱히 교량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진 시설물은 아니지만.. 강북의 국도 6호선과 팔당대교가 주말에 워낙 많이 막히는 관계로 주말에만 소형차에 한해서 공도교의 통행이 허용되고 있었다. 도로의 폭은 그냥 2차선에 불과하며 좌우로는 온통 철조망이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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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유적지 겸 생태 공원 주변은 한가한 농촌 마을이었다. 이렇게 유적지 어귀에 공영 주차장이 있고, 카페나 생태 공원에 더 가까운 곳에도 주차장이 또 있었다.
아침 11시쯤에 왔을 때는 주차장이 널널한 편이었지만 오후 2~3시가 넘어가면서 여기는 차들로 온통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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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 유적지의 주인공인 다산 정 약용 선생의 생가(복원된 레플리카), 기념관, 동상, 묘지가 한데 있는 단지를 들렀다. 이분은 경치 한번 참 좋은 곳에서 태어났구나.
묘지는 단지 안의 10몇 m 남짓한 높이의 언덕을 올라가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가와 묘지가 같이 조성돼 있는 건 이 승복 어린이 기념관도 비슷한 형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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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약용은 '다산'이 아니라 '다작'이라는 호가 더 어울렸을 것 같다. 천재이고 생각보다 굉장히 대단한 인물이었다. 목민심서 말고 나머지 책들은 일반인에게는 다 듣보잡이긴 하다만... ㅠㅠ

이 사람은 평범한 유학자가 아니라 실학의 선구자라고 불린다. 윤리 도덕 분야 말고도 왕년엔 수원 화성을 쌓을 때 거중기를 고안해서 투입 인력과 공사 기간과 절감해 줬고, 과학과 추리를 이용한 사건 수사로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기도 했다. 손대는 분야마다 뭔가 비리를 척결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경영 효율을 올려 놨다. 그런 능력에다가 어진 인품까지 갖췄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설령 김 성모 식으로 우려먹기 재탕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그것도 한문으로 저렇게 많은 책을 쓰기란 매우 어려울 텐데.. 물론 정 약용의 경우 17년 동안, 다시 말해 박 정희 대통령의 통치 기간에 맞먹는 긴 기간을 유배 생활을 하느라 저술 활동을 할 시간이 많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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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근처에 있는 실학 박물관을 찾아갔다. 다산 유원지의 다른 모든 시설은 무료이지만 이 박물관만은 입장료를 받았다.
여기는 말 그대로 정 약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 후기에 실학이 등장한 배경, 그때 깨어 있던 사람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배경, 조선 후기에 지리학과 천문학이 조금이나마 발전한 과정 같은 게 소개되어 있었다.

이런 실학의 이념은 훗날 국민 교육 헌장에도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라는 문구로 어느 정도 반영돼 들어간 셈이다.
참, 내가 갔을 때는 특별 전시회 명목으로 한글로 글을 남긴 조선 여성들의 실학 트렌드 이런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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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를 이 정도로 한 뒤, 그 다음부터 본인은 본격적으로 자연을 즐기러 나갔다.
실학 박물관을 나와서 강 쪽으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분위기 좋은 풀밭이 꾸며진 카페들이 날 반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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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 멀리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돗자리는 이런 나무 아래 풀밭에 아무 데나 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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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기보다 호수나 저수지, 심지어 바다처럼 보이는 커다란 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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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여기는 엄연한 상수원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서울 시내의 한강 공원 따위와는 레벨이 다르다.
또한, 한강 종합 개발 사업 같은 게 없었으니 콘크리트 제방 같은 것도 없으며, 땅과 물의 경계는 그냥 흙· 뻘밭인 걸 알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물놀이를 할 수는 없다. 물에 들어가려면 바다나 산 속 계곡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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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면적이 워낙 크니 강바람도 바닷바람 만만찮게 느껴졌다. 시원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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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렇게 돗자리를 깔고 뒹굴뒹굴 하다가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프로그래밍 작업도 했다.
그러다가 폰과 노트북의 배터리가 더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엔 아까 봐 뒀던 카페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음료수와 전기를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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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일? 내가 카페에 들어간 사이에 저녁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풀밭과 강가에 그 많던 인파와 돗자리족· 텐트족들은 어느새 쏙 들어가고 일부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만 보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차 안은 너무 더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밖이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내기엔 쌀쌀해지고, 차 안이 비바람을 피하는 아늑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아지트가 됐다.

이렇게 더 있다가 완전히 해가 진 뒤에 돌아왔다. 이런 휴양지가 있었다니, 가 보길 정말 잘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7/11/03 08:30 2017/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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