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사기(판관기)의 전반적인 특징

-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주적 '바알'신이 등장한다. 블레셋도 본격적인 악역 몹 몬스터로 등장한다.
- 다들 지 꼴리는 대로 각자도생하던 영적 암흑 무법천지의 극치를 묘사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 폭력· 살인을 묘사하는 수위가 모세오경 시절보다 더 올라가고 잔혹해진다.
옆구리 칼빵, 대량 학살, 문자적으로 사람 뚝배기를 깨거나(아비멜렉) 못을 박아 넣어서(시스라) 죽이기,
자기 친딸을 문자적으로 번제 헌물로 만들어 버리기, 자기 첩 시체를 토막 내서 전시하기...
인간들이 성경에 무지하고 영적으로 막장으로 치달으면 저런 일들, 아니 저것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벌어진다는 걸 성경은 보여준다.

여친과 함께 읽으면서 주찬양 10집 회복 "왕이 없었더니" 트랙을 들려 줬다. 반응은.. 뮤지컬 남바 같다는 평.. ^^
이 음반은 예배 찬송가를 지향하는 게 아니고 그냥 성경 스토리를 노래로 표현한 것이니 뮤지컬 남바라는 비유가 적절해 보인다.

- 한편으로 사사기엔 심은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 참교육, 보복 살인이 자주 나온다.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을 짜르기(1:6-7), 찔레와 가시로 참교육(8:16), 삼손의 깽판 등. 뭐, 넓게 보면 사무엘상에서 아말렉의 왕 아각이 토막(..) 살해 당하는 것도 좀 인과응보 같은 묘사이다.

- 영화 300은 아무래도 기드온의 300 용사를 오마주한 것 같다.;;
- 판관 시대는 세습 왕조가 아니었는데 판관들이 그때 그때 어떻게 선출되었고, 어쩌다가 여성 판관이 등장하기도 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2. 기드온

기드온은 기본적으로 선한 인물이면서 정말 현실적이고 입체적이고.. 뭔가 오늘날의 크리스천과도 싱크로가 잘 되는 인물인 것 같다.
6:13.. "하나님이 계신다면 지금 우리가 왜 요 모양 요 꼴입니까? 옛 선조들에게 보여주셨다는 그 기적, 리즈 시절은 지금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가 얼마든지 던질 수도 있는 의문이지 않느냐 말이다.

최대한 의심하면서 하나님에게 증거 표적을 구했지만, 그래도 표적이 충족되자 군소리 없이 믿고 받아들였다. 삐딱하게 하나님을 떠보는 악한 의심을 한 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민족을 구하는 큰일을 하는 데 쓰임받을 수 있었다. 난 이 자세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는 그렇게 영웅이 되고 부귀영화를 얻자, 인간적으로 호색한 기질도 마음껏 발휘했다. =_=;;; 아내와 첩을 여럿 거느리고 자식이 70이 아니라 아들만 무려 70명을 두는..;;; 업적도 남겼다. 대단하다.
(성경에 아들 70명이었다는 사람은 기드온과 아합밖에 없다. 그런데 아합은 악인이잖아..)

그리고 기드온도 아들 70명을 두면 뭐 하나.. 개차판 아들 한 명(아비멜렉)한테 나머지 아들들이 몽땅 몰살 당하는 콩가루 집안 참극도 벌어졌다. 하긴, 아합의 아들들 70명도 나중에 한꺼번에 처형 당해서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이다.

기드온은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못을 박았었고 주님의 명령만을 신실하게 이행했었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부귀영화를 얻으면서 저렇게 색(...)도 밝히고 이상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황금 에봇을 만들어 입기도 하면서 교만해지고 흑화했다. 막 대놓고 우상 숭배를 하고 악행을 벌인 건 아니었지만 정신 상태가 초심을 잃은 것이다. 그것 때문에 저런 비극적인 가정사를 맞이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드온 자신은 개인적으로 가문의 심판을 당했을지 모르지만, 아비멜렉 같은 또라이가 기드온 집안을 대적한 것도 큰 죄악이었다. 성경은 기드온의 은혜를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인간들이 아비멜렉 편을 들고 반역했었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3. 나무나라 비유

우리나라엔 “뽕나무가 뽕 하고 방귀를 뀌니 / 대나무가 댓끼놈 야단을 치네 / 이때 참나무가 점잖게 하는 말~ 참아라”
라는 참 유치찬란한 우화 동화인지 동요인지가 있다. =_=;;;;
그런데 성경에도 이와 아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나무 우화가 있다. 사사기 9장에서 무슨 동물의 왕도 아니고 나무들의 왕 뽑는 비유가 등장한다. ㅋㅋㅋㅋㅋㅋ

사사기 9:8-15에 나오는 나무나라 비유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어쩜 이렇게 딱 정확하게 저격하고 풍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근래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아주 높다.
똑똑하면서 선량하고 인성 인품 좋은 사람, 자기 관심분야에서 바쁘고 할 일 많은 사람들은 굳이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다. 정치판에 들어오라는 손짓에 어지간해서는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능력은 쥐뿔 없으면서 찌질하고 열등감 쩔었고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명예욕 권력욕 많은 저질 인간은..
그런 기회가 오면 넙죽넙죽 나서는 편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더 큰 사람, 더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고 음해하면서까지 나선다.
그래서 큰 권력을 쥐게 되면 피바람을 일으키고 나라를 다 말아먹는다.

이게 인간 사회 정치의 역설 비극인 듯하다. 진짜 정치를 해야 하는 사람이 정치판에서 버티지를 못하는...
이 비유에서 올리브, 무화과, 포도나무가 나오고, 가시나무는 그런 귀한 열매를 맺는 게 없는 폐급으로 취급된다. 나무가 아니라 박꽈 덩굴로 치면.. 호박도 수박도 참외도 아닌 가시박이나 환삼덩굴 같은 잉여 잡초일 것이다. ㄲㄲㄲ

이 비유가 임팩트가 컸는지 "니 주제, 분수를 파악하라"라는 의미로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깝치다가 참교육 당했다"는 비유가 훗날 또 등장하기도 한다. (왕하 14:9) 또, 예수님도 이런 나무의 퀄리티 차이를 비유에다 동원해서 눅 6:44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 bramble, thorn, thistle 등 세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문맥에서 그리 중요한 차이점은 아니므로 패스..;;

4. 전반부와 후반부

성경에서 창세기 1장은 시간 순서에 따른 6일 창조 얘기이고.. 그 다음 2장은 그 중에서 여섯째 날(아무래도 아담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에 있었던 일의 세부 묘사가 있다.

그런 것처럼 사사기(판관기)는 1~16장은 옷니엘부터 삼손까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 대한 시간 순 연대기이다.
그 다음 17~21장은.. 그 재판관 시대의 특정 시기에 어떤 사건이 있었고 이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열거된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더니.. 주께서 이들을 징벌 차원에서 XXX 민족의 손에 YY년 동안 넘겨주었다" 패턴의 세부 내역이 이랬다는 뜻이다.
사사기의 주된 코멘트인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는 바로 후반부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후반부의 사건으로는 17~18장 종교 타락이랑, 19~21장 흉악 범죄 내전이 언급된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비느하스가 언급될 정도이니 여호수아 이후로 그렇게 먼 미래도 아니다. 가나안 땅 들어가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재판관 시대의 초창기에 벌써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5. 블랙코미디

리암 니슨이 나오는 2019년도 블랙코미디 영화 "콜드 체이싱"이란 게 있다.
거기 보면.. 그냥 심심하면 그냥 사람이 죽는다. 자기 아들이 죽은 댓가로 적대 세력의 누구를 또 죽이고, 소식 전하러 온 전령을 죽이고, 누굴 오인해서 죽이고 또 죽이고..
사사기의 저 후반부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건 타 민족과의 전쟁· 항쟁 얘기가 전혀 아닌데도 뻑하면 그냥 마을을 통째로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학살이 끊이질 않는다.

앞의 신명기에서 율법을 묵상하고 골수에 새기라는 신신당부가 그렇게도 많이 나오는데 사사기의 저 장면에서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뒷일 생각 안 하고 임기응변 병맛 광기로 우르르.. 뻑하면 보복으로 사람 죽이고 악을 다른 악으로 찍어누르고, 부작용 생기면 또 다른 사고를 치고..

아브라함과 롯만 해도 외부 나그네 대접을 얼마나 융숭 극진하게 했는데 사사기 19장에서는 그런 거 없다. "여기 처음 오신 분 같은데.. 노숙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하지 마세요. 봉변 당하십니다"..;;
"저 남자를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관계하리라)"
이게 수백 년 이상 전의 소돔 고모라가 아니라, 나름 율법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내부의 상황이었다.
그냥 다들 단체로 미치고 맛이 갔던 거 같다. 사사기 20~21장을 직접 읽어 보면 안다. =_=

애꿎은 여인을 싸패들이 집단 윤간해서 죽게 만든 거.. 정말 끔찍한 죄다. 그 범죄자들을 잡아 넘기지 않은 것도 명백히 그 지파 차원의 죄다. (베냐민)
그런데 그 여인도 이미 불륜 간음을 저지른 상태였다. 차라리 율법대로 돌에 맞아서 처형 당하는 게 나았을지, 아니면 저렇게 윤간 당해서 죽는 게 더 나았을지.. 그건 판단을 못 하겠다;;

하지만 그 여인의 남편 레위 인도 마냥 선의의 피해자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범죄 사실을 주변에 신고할 때 자기가 떳떳하지 못한 것은 일체 함구하고 그냥 감성팔이 선동만 했다.
애초에 그 여인은 정식 부인이 아닌 첩이었다. 그 첩의 불륜을 관대하게 용납한 덕분에 장인에게서 정말 굽신굽신 융숭한 대접을 받을 정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불량배들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여인을 몸소 지킬 정도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진짜 사랑하던 아내가 죽었으면 저렇게 시체를 토막 내서 "이 범죄자 놈들 때려잡자" 시체장사를 절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레위 인이었으니 직업적으로 동물들을 잡고 각 뜨던 그 솜씨로 자기 첩의 시체도 처리했지 싶다.;;

이 본문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10여 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 느낌, 감흥이 훨씬 더 강하게 와 닿는 것 같다.
원래는 이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맥락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11 08:35 2024/07/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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