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잡설

스타에서 프로토스 하이템플러는 바이오닉 유닛들을 번갯불(사이오닉 스톰)로 지지는 무서운 공격 유닛으로 보통 쓰이나, 잘 알다시피 할루시네이션이라는 마법도 있다.

내 유닛의 가짜 분신을 만들어서 적에게 나의 병력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보이게 훼이크를 구사할 수 있으며, 위험한 곳에 공격이나 드랍을 시도할 때 가짜 분신들을 총알받이 역할로 삼을 수도 있어 매우 유용하다.

분신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경로를 막는 것)과 이동과 기본 공격만 가능하다. 그 외에 일꾼이나 마법 유닛, 수송선 등이 하는 동작은 그런 유닛을 복제했다고 하더라도 못 한다.
공격 역시 폼일 뿐 실제로 적에게 데미지를 주지는 않는다. 상대방에게 under attack이라고 빨간 경보음까지 주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부르들링처럼 지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펑 사라진다. 이렇듯 분신은 실체가 없는 만큼, 상대방을 실제로 해치지는 못하는 일종의 read only 유닛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는 할루시네이션 분신은 마치 페르시아 왕자 2에서 영혼과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게임을 해 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level 10 이상부터 시작되는 빨간 궁전 안에서는 왕자를 좌우 화살표 키를 번갈아 누르면서 고개를 앞뒤로 뱅글뱅글 돌리기를 반복하면, 자기 분신 내지 영혼을 꺼낼 수 있다. 왕자의 분신은 새까만 그림자 형태이며, 분신이 튀어나오면 왕자의 몸은 죽어서 쓰러진다.

이 분신은 닫힌 문도 통과하고 발판을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이동 가능하고 심지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악당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악당에게 실제로 데미지를 주지는 않는다. 이런 특성이 스타의 할루시네이션과 살짝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신이 나오는 과정에서 왕자는 체력을 무려 8칸이나 영구적으로 잃으니 안습. 분신은 나중에 마지막 레벨에서 Jafar와 싸우기 직전에만 꺼내야 한다.

페르시아 왕자의 분신은 처음에는 시꺼멓기만 하지만, 나중에 Jafar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의 화염을 먹은 뒤에는 시퍼런 불꽃이 이글거리는 색으로 변한다. 그런데 이 파란색도 웬지 하이템플러가 만들어 낸 파란 분신과 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아래의 그림을 참고할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르시아 왕자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하이템플러 분신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실제 유닛보다 데미지를 두 배로 받으며, 각종 나쁜 마법을 맞으면 곧바로 정체를 드러내고 펑 사라진다. 분신이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적군의 마법 유닛을 낚시질하여 MP를 허비시키면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

그런데 이런 할루시네이션 분신은, 스타 개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구현 로직이 굉장히 복잡하고 버그가 틈탈 여지가 많았던 모양이다.
분신은 분명 훼이크만 구사하는 read-only 유닛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마치 진짜 유닛처럼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극소수 존재한 것이다.

가령, 브루드워가 처음으로 출시되었던 1.04에서는 할루시네이션 디바우러가 적 유닛을 공격하면 데미지는 안 주지만, side effect인 acid spore를 마치 진짜 디바우러처럼 남기는 버그가 있었다. 디바우러는 브루드워에서 새로 추가되었으며 유일하게 그런 특이한 방식으로 공격하는 유닛이다 보니, 이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버그이다. 1.05 패치에서 곧바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무려 1.16까지 나온 오늘날까지도..
할루시네이션 가짜 퀸은 다른 건 못 해도 테란의 커맨드센터를 감염시킬 수 있다! 이건 가짜 디바우러가 acid spore를 남기는 것보다 더 큰 side effect이지 않은지?
가짜 퀸은 클릭해 봤자 어차피 Move, Patrol 이런 명령밖에 안 뜨는데도 불구하고, HP를 절반 이상 잃은 적군의 커맨드센터를 목적지로 우클릭해 주면 거기 가서 알아서 감염시킨다.

사실 ‘감염’이라는 동작은 딱히 이동도 아니고 kill 수가 느는 공격도 아니고 무슨 마나를 사용하는 마법도 아니고... 참 퀸에게만 존재하는 이상한 개념이긴 하다.
이것도 원칙대로라면 분명 교묘한 버그일 텐데 워낙 인페스티드 커맨드센터 자체가 캐관광 용도가 아니면 볼 일이 없고, 아군이 하이템플러와 퀸을 동시에 보유하는 건 무한 맵 치트가 아니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니 블리자드도 그냥 묵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리플레이 기능이 추가된 이후부터는 게임의 동작 알고리즘을 이랬다 저랬다 고치기도 예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져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프로브는 다른 일꾼들보다 시야가 1 더 넓다는 것,
질럿은 야마토 포를 한 대 맞아도 안 죽는다는 것,
사이언스 베슬은 보통 때는 Detector라는 단어 때문에 다른 테란 유닛들과는 달리 군 계급을 볼 수 없지만, 락다운을 당해서 디텍터 역할을 못 하고 있을 때는 Major(소령)이라는 계급이 뜬다는 것.

등 스타는 나온 지 무려 10년도 더 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그 깊이와 완성도는 정말 불멸의 명작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윈도우 95급 컴의 256색 환경에서 쌩쌩 돌아가고 더구나 그 열악한 환경에서 클록킹 같은 이펙트까지 구현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팔레트 사용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튜닝했다는 뜻이다.

스타는 최초에는 비주얼 C++ 5.0으로 개발하다가 요즘 최신 패치는 7.1 (2003)로 개발되어 오고 있다. 캠페인 에디터는 MDI 프로그램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여러 맵을 동시에 열 수 있는 건 아니다. 문서는 여전히 한 번에 하나밖에 못 열고, 단지 한 맵의 서로 다른 제각기 표시하는 창들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다. 좀 특이한 형태의 MDI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5/14 08:01 2010/05/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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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0/05/15 11:04 # M/D Reply Permalink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들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과연 성경적인 게임은 개발이 가능한가?"

    성경적 기준에 98%이상(우리 삶이 성경의 완벽한 기준을 100% 충족하기 어려우니 2%는 뺐습니다. 하지만 98%를 만족시키려면 100% 만족시키겠다는 마음으로 기획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충족을 하면서 하는 사람에게 재미와 성경에 대한 이해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도(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플레이어를 구원에 이르게함)까지 가능한 게임은 과연 만들 수 있을까요?

    DirectX를 배우면서 계속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가능하다면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형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1. 사무엘 2010/05/15 17:05 # M/D Permalink

      게임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수단이고 매체일 뿐이죠. 특히 눈과 귀라는 육신 감각을 자극하는 매체입니다.
      그 반면 성경이라는 책은 육이 아닌 영을 추구하며, 특히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심사대로만 엮어진 텍스트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문학이나 논문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꽤-_- 산만하고 disordered인 형태입니다.

      저도 옛날에는 시대별로 성경 주인공이 되어서 무슨 퀘스트-_-를 수행하는 식의 게임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영양가는 없을 것 같아요.
      아예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은 말씀 선포라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전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고요, 다만 그런 식의 매체는 주일학교 학습용 교보재로는 쓸모가 있을 것 같습니다. ^^;;

  2. 사무엘 2010/05/15 17:14 # M/D Reply Permalink

    문득 생각이 나서 또 한 마디:
    프로토스의 위대한(?) 과학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면모 중 하나는.. 높은 일반형 데미지이죠.
    인간인 테란의 기술로는 높은 데미지는 폭발형으로밖에 만들 수 없으며(야마토 포나 핵) 그것도 나쁜 스플래시(마인이나 시즈 탱크) 일색입니다.
    그 반면 다크템플러의 칼질은 무려 일반형 40으로 업그레이드 안 한 마린을 원샷 원킬 할 수 있으며, 리버는 아군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좋은 스플래시가 무려 일반형 100(+25)! 또한 하이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톰은 일반형인 건 말할 것도 없고 방어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이 사기입니다. 덕분에 두꺼운 armor로 뒤덮인 저그 라바나 egg까지 순식간에 끔살할 수 있습니다.

  3. 김기윤 2011/01/18 14:07 # M/D Reply Permalink

    오랜만에 다시 보내요. 환상 만들기는 스타2에서는 파수기라는 유닛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작과 다른게 있다면 기존의 유닛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임의의 프로토스 유닛의 환상을 만든다는 점 정도. 때문에, 우주공항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불사조나 항공모함의 환상을 만들어서 정찰을 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감지기(전작의 디텍터) 유닛은 환상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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