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탐험 -- 上

인류 역사상 인간이 지구 밖으로 제일 멀리 나간 여행은 1970년의 아폴로 13호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세 명의 승무원이 모두 살아서 돌아오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폭발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후 승무원과 관제 센터 직원들은 가히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으며, 특히 승무원들은 갈증과 추위에 떨면서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은 8848m(현재는 더 높아져서 8850이라고도 하는데)의 높이를 자랑하는 에베레스트 산이며, 인간이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으로 등반 후 생환에 성공한 것은 1953년의 에드먼드 힐과 텐징 노르게이의 공동 등반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산들은 높아 봤자 대류권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며, 대류권에서는 고도가 1km 상승할수록 온도는 대략 6.4도 정도 떨어진다. 그래서 이런 높은 산들은 일년 내내 기온이 영하이고 눈이 녹지 않는 만년설 지대이다.
또한 해발 고도가 5천 m 정도 되면 기압도 해수면의 절반 정도로 떨어지고,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 무렵에서는 아예 1/3기압이 된다. 물은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기 때문에 밥을 지어도 쌀이 잘 익지 않으며, 산소도 덩덜아 부족하기 때문에 비숙련자는 조금 걷기만 해도 지표면에서 100미터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헉헉 숨이 차게 된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산 정도면 지형이 그렇게 험하지 않으며(특히 이웃의 콩라인 K2에 비해서) 인지도도 압도적이고, 덕분에 등산로도 개척될 대로 개척되어 있어서 찾는 사람이 연간 수백여 명에 달한다. 그래서 인근의 네팔은 등산료와 관광 수입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잘 알다시피 심지어 산소통 없이 등반한 사람까지 나왔다. 그러나 세계의 지붕인 이런 산들은 오늘날에도 만만한 곳이 아니어서 날씨가 험악할 때는 입산할 수 없으며, 해마다 최소한 국내의 철길 건널목 사망자 정도만치는 산에 오르다 죽는 사람이 꼭 나온다고 한다.

한편,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는 필리핀의 근처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 중에서도 더욱 아래에 11034m의 깊이를 자랑하는 비티아즈 해연이다. 1957년에 이곳을 발견한 구소련의 탐사선 비티아즈 호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탐사선이 그렇다고 해연의 밑바닥까지 다 내려가 본 건 아니고,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이부터는 그냥 초음파만으로 깊이를 측정한 거라고. 실제로 거기 밑바닥까지 내려간 건 1960년에 미국에서 트리에스테-II 호가 해냈다.

일반 비행기가 공기 때문에 성층권도 못 벗어나고 한없이 높게 뜰 수는 없듯, 일반적인 잠수함들 역시 의외로 깊게 못 들어간다. 겨우 대륙붕 정도의 깊이밖에 못 들어가고 최첨단 핵잠수함도 500~700m 정도의 수심이 한계라고 한다. 군사 목적으로도 더 깊게는 들어갈 필요도 없고, 어차피 그 깊이 안에서 더 오래 머무르는 것만이 목적이니까 말이다. 더 깊게 들어가려면 그 용도로 특별히 제작된 심해 잠수정을 써야 한다.

1만 미터 정도의 수심에서 물체가 받는 압력은 무려 1천 기압. 1㎠당 8톤의 힘이 가해져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으스러뜨릴 것만 같은 살인적인 압력이다. 수심이 10미터 깊어질 때마다 대략 1기압이 증가하며(참고로 금성의 표면의 대기압이 90~95기압. 덜덜~) 덩달아 빛도 적어져서 어두워진다. 그래서 어느 수심과 압력 이상부터는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된다. 태양열이 닿지 않으니 수온 역시 영하급이다.

심해 잠수정은 실용성은 포기한 채 최대한 둥글고 작고 단단하게 만들어졌고, 트리에스테 호는 무거운 추를 잡고 가라앉은 뒤, 그 추를 바다에 버리고 다시 떠 올라오는 방법을 썼는데, 그때는 기술상의 한계로 20분 남짓밖에 못 머무르고 다시 올라와야 했다. 그러다가 타이타닉 호의 제작자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거의 반세기 만에 비티아즈는 아니고 챌린저 해연이라고 만만찮게 깊은 밑바닥을 2012년 지난 3월 말에 탐사한 바 있다.

우주나 심해 탐사는 아무래도 전적으로 기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산 등정은 성격이 약간 다르다. 극소수의 연구원이 최첨단 기계에 탑승해서 탐험하는 형태가 아니라 목적지를 직접 발로 걸으면서 탐험하며, 물자를 보급하는 보조 staff의 숫자도 아주 많다. 마치 영화 한 편이 배우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오늘날은 마음만 먹으면 항공기로 금방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오르냐는 질문은, 이건 마치 상대방을 쓰러뜨리려면 권총을 쓰면 되는데 뭣 하러 무술을 연마하냐 하는 식의 우문우답이 될 듯하다.

지구에 저런 높은 산 말고 또 남아 있는 혹독한 미지의 환경으로는 사막과 극지방이 있다. 이 중 사막은 제끼고, 지구의 자전을 느낄 수 없는 두 꼭지점인 북극점과 남극점은 18세기~19세기 초 사이에 탐험계의 성배로 여겨져 왔다. 그 당시 인류 최초로 북극점을 정ㅋ벅ㅋ한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로 알려져 있었다(1909년 4월. 훗날 그건 오류로 판명되긴 했지만). 그리고 남극점을 정복한 사람은 잘 알다시피 그 이름도 유명한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다(1911년 12월).

산이나 해저나 우주 같은 다른 곳에 비해서는 비교적 일찍 정복된 영역이지만, 두 극점 중에서 남극점에는 다른 미지의 영역에는 없는 특이한 역사가 존재한다. 그때는 노르웨이의 아문센 팀과 영국의 로버트 스콧 팀이 남극점을 먼저 찍으려고 경쟁 중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듣보잡 빈민국에 불과했던 노르웨이가 물자가 월등히 더 풍부했던 대영제국을 누르고 압도적인 1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문센 팀은 1등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서(개들만 약 40마리쯤 죽었음;;) 국제적인 영웅이 된 반면, 스콧 팀은 그렇잖아도 1등 자리를 빼앗기고 우울하게 돌아오는 길에 며칠째 혹독한 눈보라 때문에 조난을 당해서 스콧 포함 5명의 팀원들이 추위와 굶주림 속에 모조리 목숨을 잃고 말았다.

두 팀의 결말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달라진 것에는 단순히 운(날씨)보다 훨씬 더한 차이가 존재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문센은 원주민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극도로 최적화와 현지화를 잘 해 간데 반해 스콧은 남극 탐험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으며 쓸데없는 곳에서 괜히 명분과 품위만 따지다가 참혹한 낭패를 당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사람들 얘기를 좀 해 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06/09 19:25 2012/06/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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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진 2012/06/10 01:45 # M/D Reply Permalink

    피어리 북극점 도달설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90년대말에 피어리는 북극점에서 40km 떨어진 지점까지 갔을 뿐, 북극점을 밟지는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피어리 이외에 북극점 최초 답사자라고 주장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이들이 북극점에 도달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서는 이들이 측량을 잘못했거나 거짓말을 했다는 견해가 대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것이 확인된 최초의 사람들은 아문센의 비행선 탐험대입니다.(1926년 5월 12일) 남극점을 처음 밟은 그 아문센이 사실은 북극점도 최초로 갔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불과 몇 달 전에 알았습니다. 피어리가 부정된 것이 십여년 전이니 잘못된 사실이 정정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리나 봅니다

    1. 사무엘 2012/06/10 14:35 # M/D Permalink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

      아 그렇군요. 하필 별로 자료 안 찾아보고(이 글의 초점은 북극이 아니라 남극이니) 제가 아는 역사 상식 기억에만 의지해서 잠깐 언급했던 대목에 하필 오류가 있었군요.. 위키백과만 찾아 보니까 곧장 나오는 얘긴데... 지적에 감사합니다.

      아문센은 북극점 선두를 피어리에게 뺏겼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남극점으로 갔는데, 결국 북극점 공식 정ㅋ벅ㅋ 인증도 나중에 그 사람 차지가 됐다니 이것도 참 절묘한 일입니다.

  2. Lyn 2012/06/10 12:25 # M/D Reply Permalink

    아... 콩라인이어서 이름이 K2엿군요 (Kong2?!)

    1. 사무엘 2012/06/10 14:35 # M/D Permalink

      서.. 설마 그건 우연의 일치겠죠 ^^;;;

  3. 주의사신 2012/06/10 17:51 # M/D Reply Permalink

    예전 교회에서 천년왕국 때에 8000m 넘는 산 14개를 정복해 보시겠다는 교회 학교 선생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산에 무척 가고 싶은데 전에 한 번 주일에 산에 갔다가 가이드가 길을 잃는 징계를 당하신 이후로 주일날은 무서워서 산에 못 가신다고....

    그런 산들은 일주일 내로 다녀 올 수 있는 산이 아니니까, 천년왕국으로 목표 달성 시점(?)을 미루신듯 합니다.

    1. 사무엘 2012/06/10 22:26 # M/D Permalink

      산에서 살았던 엘리야가 생각나는 일화군요. ^^

  4. 김 기윤 2012/06/11 00:18 # M/D Reply Permalink

    제목만 보고 우선 유명한 그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1. 사무엘 2012/06/11 11:09 # M/D Permalink

      아, 그 전설의 고전 게임도 있었죠!
      열차가 한번 역에 정차를 하면 표정 속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가르쳐 주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거리와 속도의 단위 뻥튀기가 무진장 심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펭귄이 900km 거리를 80초 안에 주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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