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복선 전철 1차 개통!

‘수인선’이라 하면 대한민국 최후의 협궤 철도라고 굳이 철덕이 아니어도 우리나라 역사· 지리· 문화에 약간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에 개통된 수인선은 원래 더 먼저 만들어진 수려선(1930년)과 직결하여 경기도 여주까지 이어졌다. 여주에서 나는 쌀을 인천항으로 수송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엔 쌀을 인천항으로 나를 일이 없어졌고, 도로 교통도 발달하면서 이 장난감 같은 철도는 잉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수려선은 이미 1972년에 진작에 폐선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참고로 현재의 국도 42호선이 수려선과 많이 겹쳤었다. 수원 시내 동쪽에서 수원 역 정문으로 닿는 그 도로가 바로 국도 42호선임.

그리고 수인선도 적자를 감당치 못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운행 구간은 축소되었고, 결국 1995년 12월 31일에 치른 종운식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운행 중단이라 쓰고 폐선이라 읽는다 ㄲㄲ)

물론, 운행 중단과 폐선은 엄밀히 보자면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가령, 서울 교외선은 여객 열차가 다니지 않는 운행 중단 상태이지만 폐선은 아니다. 그에 반해 수인선은 그 뒤로 선로가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었으며, 협궤 열차 자체가 한국 철도에서 완전히 맥이 끊김으로써 폐선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한 것이다.

그 수인선이 폐선된 지 딱 16년 반 만에 1차 구간이 부분적으로나마 표준궤 복선 전철로 부활하여 우리 곁에 돌아왔다. 만세! 개통 날짜도 2012년 6월 30일 토요일인 덕분에 본인은 전날인 29일 금요일에 회사 근무를 마친 후, 미리 시흥으로 답사를 갔다.

본인이 다니는 회사가 있는 곳은 판교이다. 자동차라면 성남에서 안산 내지 시흥으로 가는 경로로 우리의 친구인 외곽 순환 고속도로(고속국도 100호선)가 있지만,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서울과 위성도시를 잇는 방사형 노선만 발달해 있을 뿐 위성도시 사이를 잇는 순환형 노선은 인프라가 무척 열악하다. 철도는 그게 더욱 심하다.

그래서 성남 버스 103번을 타고 서쪽으로 간 뒤, 4호선 인덕원 역에서 전철을 쭉 타는 경로를 택했다. 사실 버스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이건 시간적인 메리트는 별로 없다. 인터넷 지도는 아예 서울 강남(분당선 - 2호선 선릉-사당 - 4호선)까지 매우 심하게 우회하는 지하철 경로를 제시할 정도였는데 차라리 그게 가장 빨리 가는 경로가 맞는 듯했다.

단지 나는 시간적으로 급한 상태가 아니고, 한국학 중앙 연구원 같은 생소한 지대를 구경하고 싶고,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아닌 다른 길(안양판교로. 지방도 57호선)로 성남-의왕-과천을 횡단해 보고 싶어서 버스를 선택한 것이었다.

새로 개통하는 철도역이나 노선을 개통 당일 첫 차로 답사하러 내가 직접 그 전날에 미리 근처에서 외박까지 하는 건 4년 전(2008년 6월)의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 역 개통 방문 이래로 이게 두 번째였다.
전국이 거의 한 달 가까이 이상 고온과 가뭄에 시달리면서 찜통 같은 6월을 보냈는데 이 날 저녁부터 때마침 단비가 땅을 촉촉히 적시고 여행을 한결 더 운치 있게 만들어 줬다.

수인선을 타려면 출발역인 오이도 역 주변에서 대기하는 게 좋다. 하지만 거기 주변은 그냥 닥치고 아파트뿐이고 식당, PC방, 찜질방 같은 상업 시설이 눈에 띄질 않았다. 특히 오이도 역의 동쪽 방면인 3번 출구는 그야말로 잉여 황무지인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오죽했으면 출구 역세권에 대해서 쓸 게 없어서 그냥 ‘동광장’이 끝이다!

그래서 본인은 부득이 그 앞의 정왕 역에서 내려서 거기 근처에서 외박을 했다. 이는 이튿날 실제로 오이도 역 주변을 살펴보니 정말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오이도 역에서 첫 차는 타야 하니 새벽 4시 무렵에 본인은 우산을 쓰고 어두컴컴한 빗길을 걸으면서 정왕에서 오이도 역으로 도보로 이동했다. 이것도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본인은 5시 30분에 오이도에서 송도로 출발하는 수인선 전동차에 성공적으로 탑승했다.

수인선은 세 단계에 걸쳐 개통될 예정인데, 이번에는 그 중 1단계가 개통한 것이다(오이도-송도). 아직 13km 남짓밖에 안 되는 짧은 구간이지만, 시흥시와 인천 광역시가 어떤 형태로든 철도로 이어지고, 인천 지하철 1호선 원인재 역과 환승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기대된다. 그 유명한 수인선 소래 철교도 이 구간에 포함되어 있다.

2단계 때는 인천 시내를 좀 더 깊숙이 관통하여 수인선이 드디어 경인선 인천 역과 연결된다. 1단계 구간은 모든 역들이 지상이거나 지상 고가이지만(연수-송도 사이에 잠깐 지하 터널은 지남), 2단계 때는 지하역도 생길 것이고 특히 수인선 인천 역 승강장은 지하에 만들어질 거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 동인천 역에서 회차하는 경인선 급행 전동차는 나중엔 이 지하 인천 역까지 들어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단계 구간에 포함돼 있는 용현 역이 개통되면 인하 대학교도 드디어 전철 역세권에 들게 될 것이다. 사실, 이 2단계 구간인 송도-인천은 수인선에서 가장 먼저 폐선된 구간이기도 하다. 무려 1973년이니, 수려선의 폐선과 시기적으로 별 차이도 안 난다.

마지막으로 3단계는 한대앞 역에서 수원 역까지 나머지 잔여 구간이다. 즉, 인천 다음으로 수원과의 연결이다. 여기는 수원 시내만 지하이고 나머지 교외 구간은 응당 지상이나 고가로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1995년 말 당시에 최후까지 영업을 하던 수인선 구간은 바로 여기였다.

한대앞-오이도는 복복선이 아니라 기존 안산선과 수인선 열차가 선로를 “공유”하게 된다. 이 구간은 안산선이 의도적으로 수인선과 동일한 선형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4호선 열차의 절반은 어차피 사당까지밖에 안 가기 때문에 안산선은 선로 용량이 남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인천-오이도-한대앞-수원이 연결됨으로써 수인선이 완공되고, 지금 기흥까지 가는 분당선도 수원까지 연장되어 내려오면, 수인선과 분당선은 수도권 남부를 도는 거대한 노란색 광역전철로 변모하게 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수인선의 노선색은 분당선의 그것과 동일한 노랑으로 설정되어 있다. 마치 광역전철 중앙선과 경의선이 미래의 직결 운행을 염두에 두고 둘 다 옥색을 쓰고 있듯이 말이다.

아마 그때쯤이면 전철 노선도의 토폴로지도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분당선은 동쪽으로 끝나고 안산선은 서쪽으로 끝나는 형태였는데 이젠 이들을 한데 이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1단계 개통을 한 수인선은 다른 노선과 직결 운행을 하는 게 없이 오이도-송도만 짤막하게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6량 1편성이고 전철 중앙선과 비슷한 배차 간격인 15분당 1대 운행이다. 민자 사철이 아니라 전형적인 코레일 광역전철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운임을 받는다거나 한 건 없다. 따라서 기존 기본 운임 체계에 따라 마음 놓고 타면 된다.

원래 오이도 역은 쌍섬식 승강장으로 한 섬은 상행, 다른 섬은 하행이 전담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수인선이 개통하면서 승강장의 용도가 반씩 분담되어. 한 섬은 안산선, 다른 섬은 수인선 승강장으로 바뀌었다. 시종착역은 플랫폼이 좀 많아야 할 텐데 저런 식으로만 운영해서는 회차 용량의 감소가 우려되긴 하지만, 안산선과 수인선 모두 배차가 최하 10분이 넘는 한적한 노선이고 둘 다 인상선도 있는 형태이니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 싶다.

수인선 1차 개통 구간의 주변 경치는 공장 아니면 고층 아파트들이다. 남동 인더스 파크는 남동 산업 단지를 쓸데없이 외래어 버프를 씌워서 표기한 것. 우리집에 있는 본드의 제조사인 ‘오공 본드’의 공장이 이 역 근처의 차창 밖에서 보였다.
인천논현 역은 서울 지하철의 논현 역과 헷갈리지 말라고 ‘인천’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사랑 침례 교회는 이 역에서 400m 남짓 떨어져 있다.

마치 지금 서울 지하철 6호선과 경의선 전철, 그리고 공항 철도가 공덕-DMC 사이에서 상당 부분 중복 구간이 존재하듯, 수인선과 안산선은 일부 구간을 중복 수준을 넘어서 아예 동일 선로를 공유한다. 하지만 대피선이 설치된 역이 많은 만큼, 수인선이나 오리지널 안산선(4호선) 중 어느 노선의 열차는 안산선 구간에서 표정 속도에 차이를 두어, 급행 형태로 좀 다니면 좋겠다.

본인은 수인선의 복선 전철 부활을 경축하는 바이다. 나머지 구간도 어서 개통하고 분당선-수인선이 경의-중앙선과 짝을 이루는 거대한 광역전철이 되는 날을 꿈꿔 본다. 그리고 안산선 구간과 만날 예정인 소사-원시선과 신안산선도 어서 개통하고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 구간과 인천 지하철 2호선까지 개통한다면 철도 덕후로서 무진장 행복해질 것 같다. ^^

Posted by 사무엘

2012/07/18 08:17 2012/07/1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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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2/07/18 15:25 # M/D Reply Permalink

    고등학교 때 원어민 선생님과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잘 만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해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아직 계속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가 봅니다.

    1. 사무엘 2012/07/18 23:45 # M/D Permalink

      우리나라 지하철은 시설 하나는 과잉 투자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짱입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답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VVVF 구동음 음악을 매일 들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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