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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의 역사

<사진으로 보는 한국 철도 역사>
이런 책이라도 있으면 당장 사겠다.
풍부한 역사 검증에, 사진에, 주제별 색인까지!

어쩌다 비슷한 주제의 책을 검색해 보면 전부 철도청 시절의 정부 간행물이고, 지금은 다 절판되고 없다. ㄱ- 어쩜 이 분야로 자료가 왜 이리 열악한지 모르겠다.

앞의 글은 지하철 글이고 이번에는 어제 철도 연표를 뒤져 본 기억으로 새마을호의 역사만을 종합해 보고자 한다. 새마을호 애호가라면 이 날짜들을 꼭 기억하라.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함과 동시에 관광호가 새마을호로 명칭 변경하여 운행 시작.
새마을호가 무궁화호, 통일호 같은 명칭보다 먼저 생겼다는 뜻이다. (밑줄 그으시길. ㄱ-) 나머지 명칭은 거의 10년 뒤인 84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명칭 공모를 83년 7월 4일에 했다.

1979년 1월 12일. 서울-경주 새마을호 운행 시작. 포항, 울산으로는 아직 안 갔다. 이때 새마을호는 지금 새마을호의 좌석이나 외형이 아니었다.

1983년 7월 1일. 열차 시각표를 전면 개정하여 운행 시간 단축. 다른 문헌을 종합하면, 이때 서울-부산 새마을호의 운행 시간이 4시간 40분이 되었다. 성능 좋은 특대형 기관차의 도입과 경부선 선형 개량 덕분에, 한창 열차 속도가 빨라지던 시절이었다.

1984년 8월 31일. 경부선 서정리-천안 구간에서 새마을호 150km/h로 시운전 성공. 역사적인 기록이다. 이곳은 지금까지도 KTX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선형이 가장 좋으며 열차가 가장 빠르게 전속력으로 달리는 구간이다. 철도 기술 연구소 연구진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런데 저런 말만 불쑥 있지, 이때 뭘 구체적으로 개선해서 속도를 끌어올렸는지 내용이 없던 게 아쉽다.

1985년 11월 16일. 83년에 이어 또다시 열차 시각표가 전면 개정된다. 지난해의 시운전 결과를 적용하여 열차 운행 시각은 더욱 단축되었으며 KTX 개통 직전까지 가장 빠른 시간인 서울-부산 새마을호 4시간 10분이 이때 달성되었다.

1987년 7월 6일. 오늘날 새마을호의 프로토타입인 전후동력형(PP) 디젤 동차가 운행되기 시작함. 대우 중공업에서 생산한 6량짜리 동차가 그 시초이다. 그 후 불과 사흘 뒤인 8월 9일부터는 주말에 중련편성 운행도 시작했다.

흔히 혼동하기 쉬운데, 새마을호의 과거의 트레이드마크이던 시속 150km 주행 및 서울-부산 4시간 10분 달성은 PP의 운행보다 먼저 별개로 일어난 사건이다. PP가 이를 최초로 달성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마치 공 병우 박사가 한글 타자기 자체를 최초로 발명한 분이 아닌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1988년 언젠가부터, 새마을호 기내지인 레일로드가 비치되기 시작함.
1989년 10월 22일. 서울-울산 간 새마을호 운행 시작

1991년 11월 25일, 수도권 전철의 확장 공사로 떠들썩하던 바로 그 때 장항선에도 새마을호가 운행되기 시작

1992년 6월 30일, 새마을호의 차기 구도로서 고속철 기공식이 거행됨. (참고로 알아 두셈)
1992년 10월 1일. 서울-마산 간 새마을호 운행 시작

1993년 5월 1일. 포항까지 가는 새마을호 운행 시작. 아마 이것이 발전하여 이내 울산-포항 중련편성 새마을호가 되지 않았나 싶다.

1995~97년 사이에 새마을호의 도색이 노랑-초록으로 바뀌었다. 철도청 연표에 왜 이런 기록이 없는지 궁금하다.

1998년 8월 1일. 새마을호 안내방송에 일본어가 추가되었다.

1999년 12월 1일. 전국 철도역사에서 대합실, 승강장이란 말이 사라지고 맞이방, 타는곳 등으로 바뀌었다. 이때 용어 개편을 단행했는데, 이걸 잘 했다고 철도청은 한동안 이 오덕 선생님 같은 우리말 운동 진영에서 꽤 칭찬 받았다. 새마을호와는 관계가 없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그냥 다시 소개함.

2000년 2월 10일, 철도청에서 6 sigma 경영방침을 선포함

2000년 6월 1일. 그렇다. 새마을호 객실 내부에 세계 최초로 영상정보 서비스가 개시되었다. 그 전에는 객실에 그냥 자막이 흘러나오는 전광판만 있었는데 모니터로 다 대체된 셈이다.
영상 서비스는 그 후로 약 7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아마 Looking for you도 2002년부터 06년까지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새마을호에서 들을 수 있지 않았나 추정된다. 이런 UI 쪽으로는 공식 문헌이 전무하며, 경험담으로 추측할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0 23:19 2010/01/1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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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의 어제와 오늘

-- 철도 근성 수련을 원하는 후학들을 위해 알기 쉽게 정리한 한국 철도 역사. ㄳ!

경부선은 우리나라 최장거리 간선 철도망입니다. 고속도로와 철도 모두 경인 다음으로 경부가 건설되었습니다.

  서울-대전: 평지입니다. 열차가 가장 빠르게 달립니다. 지금의 KTX 경부 고속선, 경부 고속도로도 쫙 평행하게 달리기 때문에 서로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대전-대구: 소백산맥을 넘느라 경부선에서 가장 험준한 구간입니다. 고속도로 건설할 때도 이 구간에서 순직자가 가장 많이 났습니다. 길도 꼬불꼬불하고 고속선, 고속도로, 기존 철길이 막 제멋대로 교차합니다. 특히 김천이 이 세 길이 한데 만나는 곳입니다.
  대구-부산: 병풍처럼 둘러진 산에 낙동강 따라 천혜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구간입니다. 경부 고속도로는 아예 경주 쪽으로 가 버리니 볼 일이 없죠.

1905년 전구간 단선 개통.
일본은 한반도를 영원무궁토록 자기 식민지로 삼으면서 이곳을 대륙 침략의 허브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조선 주권을 빼앗기 전에 철도부터 집요하게 건설했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노선이지만, 지름길인 상주, 용인 쪽은 지형이 너무 험해서 피했습니다. 그쪽과 얼추 비슷한 노선인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보십시오. 온통 고가, 터널인데다 전구간 개통도 무려 2004년입니니다. 그 당시로서는 기술로나 돈으로나 엄두를 낼 수 없었죠.

덕분에 김천, 대전, 수원을 경유하게 노선이 결정되었습니다. 특히 대전은 말 그대로 한밭이었다가 순전히 경부선 덕분에 엄청 대박을 보고 발전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나저나 이 정도 규모의 철도를 놓기 위해 일본의 측량 기사들이 제멋대로 남의 나라 영토와 지형을 허락도 없이 얼마나 철저하고 교묘하게 측량해 갔겠습니까?
거기에다 노동력 착취는 둘째치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이나 밭을 하루아침에 거의 반강제로 헐값에 날린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찮았습니다. 도시화, 산업화가 다 그렇듯이 경부선도 그 당시로서는 이런 흑역사를 남기고서 완공됐습니다.

경부선은 일제 강점기엔 경의선과 직결하여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도 가는 국제 철도의 역할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교통량이 꾸준히 증가하자 1939년 전구간 복선 개통. 일본은 한창 전쟁에 미쳐 있던 차에 이미 또다른 간선인 중앙선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물자가 부족한 전시인데다 중앙선은 애초부터 험준한 지형에 화물 수송용으로 계획되어서 경부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하고 굴곡이 심한 노선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언덕 나오면 빙빙 돌아 가고... 평균 운행 시속이 6, 70km밖에 안 됩니다.

그 후 1974년, 서울-수원간 수도권 전철 개통. 그 덕분에, 과거에 증기 기관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수도권 통근용으로 그때까지 운행되던 디젤동차가 서서히 퇴출되었습니다. 동력원만 전기로 바뀐 게 아니라 이 전동차는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과 그대로 직결 운행을 하여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도 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 개통 당시에는 지금의 중앙선 전철처럼 복선 구간에다 일부 역에 대피선만 설치해서 일반열차와 전동차가 선로를 공유했다는 것. 이때는 역 수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완급 운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옛날에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때문에 체제 경쟁을 했던 것처럼 서울 지하철도 북한과의 체제 경쟁의 산물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습니다.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한 게, 북한에서는 73년에 평양 지하철을 먼저 개통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이미 1920년대에 도쿄 지하철을 개통했으니 우리나라는 고속철은 일본보다 40년, 지하철은 반세기 가까이나 늦은 셈입니다.

1981년 말, 늘어나는 열차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서울-수원 수도권 전철 구간이 드디어 2복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철도 박물관에 다시 가 본 덕분에 정확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1983년, 새마을호의 서울-부산 운행 시간이 5시간대에서 4시간 40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경부선 어느 구간에 선형 개량을 한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천안-평택 쪽입니다. 현재 경부선, 아니 전국의 일반열차 노선을 통틀어 열차가 시속 140~150km대로 가장 빠르게 달리는 구간이죠. (더 자세한 정보 필요)

1987년, 한국 철도 차량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전후 동력형(PP)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대우 중공업에서 첫 생산되어 경부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스포츠카 같은 날렵한 외형에 디젤 기관차보다 조용하고 가볍고 가속력 좋고, 자체 발전 시설도 있고. 아직 우등 고속이 생기기도 전이었는데 세계 최고급의 호화 인테리어!

저번엔 노선이 개선되고 이번엔 차량이 개선됨으로써 서울-부산 운행 시간이 4시간 10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동대구· 대전만 정차) 비행기 다음으로 빠른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새마을호는 지금의 KTX 이상의 초호화 귀족 열차였습니다. 기내지 레일로드도 88년에 창간했죠.

그 후, 1999~2002년 그 사이에.. 서울-구로 3복선 개통.  (더 자세한 정보 필요)
만성적인 수송력 부족을 호소하던 경인선이 차츰 2복선 으로 확장되고 급행 전동차가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맞물려 경부선과 경인선 전동차가 합류하는 서울 구간의 선로 확장도 필요해졌고, 그 때문에 이 구간은 전국에서 선로가 가장 많고 열차가 가장 자주 다니는 3복선이 되었습니다. 완행 전동차, 급행 전동차, 일반열차 이렇게 한 쌍식입니다.

서울 외곽과는 달리 빽빽한 서울 한복판에서 선로 확장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 구간은 방향별 복복선 대신 비효율적인 선로별 복복선이 되었습니다. 상대식 승강장이 그대로 쌍섬식 승강장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쌍상대식 승강장이 됐습니다.
게다가 선로를 평행하게 쭉 확장을 못하고 대방-노량진 사이에서 일반열차 선로가 꽈배기굴로 전동차 선로 맞은편으로 옮겨 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사실 경부선은 최소한 수원까지도 3복선이 되어야 할 정도로 용량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KTX와 일반열차, 일반열차와 급행 전동차 사이의 만성적인 신호 대기와 지연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경인선은 전동차밖에 없는 2복선인데도 워낙 절대적인 수요가 너무 많아서 지옥철이고, 경부선은 수요는 경인선만하지 않지만 일반열차 때문에 전동차가 부족해서 지옥철입니다.

2003년 수원-병점 수도권 전철 개통. 경부선 전철의 남쪽 한계가 30년만에 더 아래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천안-수원간 복복선 및 수도권 전철 공사는 1996년부터 진행되어 왔는데, 가장 시급하던 병점까지 먼저 개통을 한 것입니다. 승객 수요보다도 시설 면에서 훨씬 더 시급했습니다. 수원 역은 지금까지 전동차의 종점임에도 불구하고 전동차 회차 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경부선에서 일반열차는 2복선 선로의 내선에서 달리고, 전동차는 외선에서 달립니다. 수원 역에서 운행을 마친 전동차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선로를 바꿔야 하는데, 한쪽 외선에서 맞은편 외선으로 가기 위해 일반열차의 내선 선로를 평면 교차하며 침범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구조로, 경부선 전동차의 잦은 지연과 신호 대기를 야기했으며 전동차 증차에도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열차를 취급하지 않는 인근 지역에 전동차를 입체 교차로 회차할 수 있는 역을 만들고, 천안 개통에 대비한 추가 차량 기지까지 연결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병점 연장 개통의 의미입니다.

  (사례 연구: 한때 청량리-회기 구간에 승객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악명 높았던 전동차 지연의 원인도 맞은편 용산-성북 경원선 전동차와의 평면교차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용산-덕소 노선이 되어서 교차가 해소됐죠. 그러면 회기에서 성북까지 가는 열차 수가 줄었다는 뜻인데, 그 대신 병점에서 출발한 경부선 전동차가 청량리를 넘어 성북까지 가 줍니다. 단, 천안 발 전동차는 여전히 청량리까지만 가죠.)

2004년, 고속철 개통. 전기로 달리는 KTX가 기존선을 임시로 사용하는 대구-부산 구간이 전철화가 끝났습니다. 고속철 개통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일반열차 감축과 정차역 증가, 그리고 새마을호의 급격한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2005년, 9년간의 공사 끝에 병점-천안이 2복선 전철화함과 동시에 수도권 전철 구간이 되었습니다. 수도권 전철 운임으로 천안까지 가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새로 건설된 구간은 전동차 완급 혼합 운행을 위한 대피선도 마련되어 있어 수원 이북보다 수월하게 전동차가 달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때 천안-조치원 구간도 전철화가 완료되어 경부선, 충북선, 중앙선의 삼각 전철 노선망이 완성되었습니다.

끝으로 지난 2006년 말에 경부선 전구간이 전철화가 끝났습니다. 이것도 최소한 90년대 말부터 꽤 오래 끈 공사였는데 한국 철도의 오랜 숙원을 이뤘습니다. 지형이 험준한 추풍령 쪽의 선형 개량 공사도 같이 했습니다.
경부선 첫 개통 100년만의 일이고 우리나라 국력과 교통 수요를 감안할 때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사실 고속신선 건설보다도 기존선 전철화부터 먼저 해야 했습니다.

중앙, 영동, 태백선 쪽에서나 볼 수 있던 전기 기관차가 서울-부산간 노선에도 투입되어 쌩쌩 달리는 것을 보노라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가감속력 좋고(지연 만회에도 유리함) 수송원가가 훨씬 더 싸고, 조용하고 운전하기도 관리하기도 더 편해서 기관사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일부 철도매니아들은 경부선 전철화가 고속철 개통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고 경사· 쾌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0 22:13 2010/01/1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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