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알겠지만,
갓 개통한 지하철 노선에다가 수십 편성이나 되는 열차를, 그것도 버스보다도 더 거대한 놈들을 안전하게 운반하여 집어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등장한 도시 철도들은 다 같은 표준궤를 쓰기 때문에 기존 철도 위에서 그대로 굴릴 수라도 있지, 경전철은 얄짤없이 별도로 실어서 운반해야 할 것이다. 차량 반입은 마치 "컴퓨터가 발명되던 당시에 최초로 고급 언어 컴파일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같은 아주 원천적인 질문에 속하는 셈이다.
철도 차량은 응당 공장에서 생산되며, 생산된 차량은 경부선 같은 기존 철도에서 분기하여 공장으로 통하는 레일 위에 놓인다. 배로 치면 이게 진수식뻘 되겠다. ^^;; 공장에서 수도권까지는 디젤 기관차가 이런 지하철 차량을 끌고 가 준다.
우리나라는 로지스라 하여, 현재 지나고 있고 앞으로 운행할 예정인 모든 열차의 열차 편성과 운행 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서비스가 있다. 철도매니아에게 주옥 같은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전동차를 반입하는 화물 열차도 물론 여기에 잡히기 때문에, 이걸 보고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사진을 찍는 열성분자도 많다. 대전 지하철 반입, 서울 9호선 전동차 반입, 공항 철도 전동차 반입 등.
1호선이야 태생부터가 기존 철도와 지하철과의 직결 운행 연결이므로 차량 반입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그럼 그 이후 지하철들은 어떻게 될까?
2호선은 1호선 신설동 역이 그 비결이다.
지하철 역에 승객이 다니는 환승 통로가 있듯이, 일부 역에는 레일상으로 인근의 노선을 연결하는 길이 있다. 이 역에서 1호선은 2호선 신설동 역 방면으로 몰래 진입하여 인근의 군자 차량 기지로 들어갈 수 있고, 성수 지선을 거쳐 2호선 본선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2호선은 원래 신설동에서 강남 종합운동장 역 사이가 가장 먼저 개통했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1호선에는 가끔 신설동 직전의 동묘앞 역에서 운행을 마치는 서울 메트로 차량이 있는데, 이놈이 바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신설동 역 지하 3층 유령 승강장을 거쳐 차량 기지로 들어간다.
(사실 1~4호선에 속하는 1기 지하철도 둘로 나누면 1~2호선과 3~4호선으로 나뉜다. 1~2호선만이 ATS 신호를 사용하고 있고 일부 구간에서는 자갈 노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지하철은 모두 ATC로 바뀌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모두 바뀌었다.)
3호선은 딱히 기존 철도와의 인연이 없으며 연결점이라고는 충무로 역이 유일하다. 이 역은 승객만 3, 4호선을 상호 환승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열차도 상호 노선을 바꿀 수 있다. 4호선은 금정과 창동 역에서 기존 국철 경부선 및 경원선과 만나기 때문에, 3호선 차량도 4호선을 통해 들어와서 충무로까지 가는 엄청난 우회를 한 끝에 3호선 기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5~8호선의 2기 지하철로 가면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그 근본 이유는 지하철이 불연속적인 구간 순으로 개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령 A, B, C로 이루어진 한 노선이 A, C 구간부터 개통하고 나중에 중앙의 B 구간이 최종 개통함으로써 단일 노선이 완공되는 식이다.
그리고 어떤 불연속 구간은 기존 철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2기 지하철의 목표는 아예 기존 광역전철과의 직결 운행을 염두에 두지도 않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노선을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더구나 비밀 선로라는 건 같은 기간에 건설된 노선끼리나 존재하지, 1기 지하철과 2기 지하철 사이를 연결하는 비밀 선로 같은 건 없다. 그러니 그런 단절 구간에 차량을 넣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순서대로 개통을 안 하고 그런 식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중앙은 대체로 서울 중심부이며, 2기 지하철이 1기 지하철보다 아래로 지나느라 통상 굉장히 깊고 공사하기가 힘들어지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철은 어느 쪽이든 필연적으로 차량 기지가 있는 구간부터 개통을 할 수밖에 없으니 양쪽 외곽부터 개통하고 나서 중앙은 나중에 개통하는 것이다.
2기 지하철 시대를 개막한 5호선은 역 수가 50개에 달하는 상당한 장거리 간선인데, 개통도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했다. 가장 먼저 개통한 구간은 고덕 차량 기지를 경유하는 왕십리-상일동이다. 기존 철도가 전혀 닿지 않는 단절 구간에다가 그 당시 차량을 어떻게 집어넣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로 삽질을 했다. 경부선을 거쳐서 서울의 중심부인 충무로 역까지 간다. 그 후 3호선으로 갈아타서 서울 동남부의 수서까지 간다. 거기서 크레인으로 열차를 들어올린 뒤, 인근의 8호선 가락시장 역 지점까지 1.6km 거리는 트레일러로 운반했다. 그 시기엔 8호선도 건설되고 있었으므로 거기에다가 차량을 집어넣고, 1.3km 정도 떨어진 가락시장과 오금(마천 지선은 당시 아직 공사 중) 역 사이의 비밀 선로를 통해 5호선으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1995년의 일이다.
쉽게 말해 지금 한창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 3호선 수서-오금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는 뜻이다.
지금도 8호선 가락시장과 5호선 오금 사이에는 비밀 선로 자체는 있지만, 복선일 리는 없을 테고 어차피 역을 만들려면 선로를 또 만들어야 하니 공사가 진행 중이다. 얼마 안 있으면 개통하지 싶다.
(참고로 수서 역은 3호선과 분당선의 연결 선로는 존재한다. 분당선 전동차는 이 경로로 반입되었다.)
5호선은 동쪽 구간이 먼저 개통한 후, 다음으로는 방화 차량 기지가 있는 서쪽이 까치산 역까지 개통했다. 여기는 조금만 센스가 있는 분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바로 2호선 신도림-까치산 지선이 5호선 차량의 반입 경로였다(신설동 역을 거쳐서 2호선으로 수월하게 들어옴). 원래 양천구청까지밖에 안 가고 서울 메트로 신정 차량 기지로 통하던 그 지선이 까치산 역까지 연장된 것은, 전적으로 5호선 때문이었다! ^^
그 후 5호선은 여의도 구간이 개통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을지로, 종로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전구간 개통한다. 5호선과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8호선도 차량이 두 차례에 걸쳐 도입되었는데, 처음엔 수서-가락시장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는 까치산을 거치는 식으로 거의 같은 방법으로 들어왔다. 서울 동쪽을 달리는 노선이 서쪽 끝까지 가면서 엄청난 삽질을 한 것이다. (서울 동남부에는 국철이 없음 -_-)
7호선은 1호선 환승으로 시작해서 1호선 환승으로 끝나는 노선이다 보니 5, 8호선 정도의 삽질은 없었다. 북쪽 장암 구간은 경원선 도봉산 역에서 아주 쉽게 반입이 가능했고(장암-건대입구), 남쪽만 북쪽과 단절되어 있던 시절에(온수-신풍) 약간 고생을 했다. 경인선 오류동 역에서 인근의 천왕 차량 기지까지는 도로 위에다 임시 선로를 깔아서 전동차를 굴려 넣었던 것이다. 그때 7호선 전동차는 마치 노면 전차처럼 차량 기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 그 후 건대입구-신풍 구간이 2000년에 연결됨으로써 7호선은 전구간 개통했다.
2기 지하철 중 가장 늦게 개통한 6호선은 차량 기지가 봉화산 쪽에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근본적으로 분산 개통을 할 수가 없었다. 반입 경로는 다 7호선의 경로를 빌렸는데, 처음엔 도봉산 역을 거쳐서 태릉입구의 연결 선로를 이용했고, 나중에 7호선이 남쪽까지 다 개통한 뒤에는 천왕 기지를 따라 쭉 올라가다 먹골 역에 있는 연결 선로를 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럼 9호선은 어떨까?
9호선 역시 차량 기지는 서쪽 끝의 개화 하나만 존재한다. 그리고 기존 지하철이나 국철을 연결하는 비밀 선로는 없다. 9호선 전동차는 경의선 행신 역까지 갔다가 트레일러를 통해 개화 차량 기지까지 수송되었다고 한다. 공항 철도는 경인선으로 인천 끝까지 간 후, 영종도에 있는 기지에 가기 위해 아예 배의 도움까지 받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국철 포함 1호선은 2호선(신설동), 4호선(금정, 창동), 7호선(도봉산)과 연결돼 있다.
2호선은 5호선(까치산)과 연결돼 있다.
3호선은 4호선(충무로)과 연결돼 있다.
5호선은 8호선(가락시장)과 연결돼 있다.
6호선은 7호선(태릉입구, 먹골?)과 연결돼 있다.
9호선과 공항 철도는 딱히 다른 철도와의 연결이 없이 단절돼 있다.
종이를 꺼내서 한번 그래프를 그려 보시라. ^^;;
국철에서 1, 4, 7호선이 뻗어나가고
1-2-5-8,
4-3
7-6 이렇게 연결된 구도임을 알 수 있다.
지하철 노선의 개통을 위해서는 먼저 초대형 대량 화물인 전동차의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수송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Posted by 사무엘